솟아나 끝없이 흐르는 물처럼
긴 여정에서
울리는 웃음소리
먼 과거의 사슬 뒤에서
발을 끌면서
사슬소리의 박자를 향해
눈을 밝게 빛낸다
모두 앞에서 짤랑이는 사슬
영원한 미소는
신선한 미소가 아니듯
아득한 미소
분노가 담긴 미소
돌진하는 발걸음
인류 앞엔 벗어 던진 사슬
고대 반 랑성에서
솟아나오는 피
이 살과 피로서
선조들을 만들었네
우리가 웃는 시간이 지나면
거만하게 아픔속을 걸으리
자랑스런 무리가 되어
가시의 땅에서 노래하고
웃고 조롱하리
베트남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마음엔 여전히
수많은 영웅들이 있네
불타는 붉은 가마 위를
행진하고 달리네
동처럼 차가운 얼굴로
먼 미래를 함께 바라보네
땀으로 흠뻑 젖은 피부
새로운 혈관들이 솟아나
피 흘리는 상처를 잡고
태양아래 크게 웃으리
그들이 인간이라면
당당한 자가 되고
베트남 사람이 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네
자랑스런 사람이 되어
지구 존재를 이끌도록
돌진하는 발걸음
인류 앞엔 벗어 던진 사슬
많은 혼란과 격변을
견딘 나라에서 흔히
강력한 애국적인 노래가
국민의 정신을 지탱하는
열정을 만들어 줍니다
속박의 사슬과 수갑을
없앨 것을 노래하고
나라를 건국하는 어려운
길에서 끊임없이 아픈 상처를
달래기 위해 노래합니다
『우리는 밀물처럼
끝없이 흐르네
긴 길에는 단지
웃음만이 울리네』
각자에겐 소중하고
자랑스런 조국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후손들은 언제나
사랑과 자부심으로
선조들의 감동적인
말씀을 생각합니다
고대 반 랑성에서
솟아나오는 피
이 살과 피를 녹여
선조들을 만들었네
우리가 웃는 시간이 지나면
거만하게 아픔속을 걸으리
자랑스런 무리가 되어
가시의 땅에서 노래하고
웃고 조롱하리
어울락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마음엔 여전히
수많은 영웅들이 있네
불타는 붉은 가마 위를
행진하고 달리네
동처럼 차가운 얼굴로
먼 미래를 함께 바라보네
땀으로 흠뻑 젖은 피부
새로운 혈관들이 솟아나
피 흘리는 상처를 잡고
태양아래 크게 웃으리
그들이 인간이라면
당당한 자가 되고
베트남 사람이 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네
지구 생명체를 가르치는
자랑스런 사람이 되니
넘어진 모든 자가 일어나
앞으로 힘차게 행진하네
고대 반 랑성에서
솟아나오는 피
이 살과 피를 녹여
선조들을 만들었네
우리가 웃는 시간이 지나면
거만하게 아픔속을 걸으리
자랑스런 무리가 되어
가시의 땅에서 노래하고
웃고 조롱하리
베트남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마음엔 여전히
수많은 영웅들이 있네
오늘 예술과 영성의
음악과 시는1960년대
어울락에서 음유시인 운동의
창립회원인 음악가
응웬 둑 쾅에게 바치는
방송입니다
그는 음악에 소중한 선물을
주었으면 잊을 수 없는
그룹활동 노래들을 통해
사랑과 공정함, 높은 이상과
자신감을 고취시켰습니다
어울락(베트남)의
작가, 시인, 스카우트 리더인
호앙 킴 차우의 해설입니다
손따이 땅의 딴 산 기슭
다강 곁에서 응웬 둑 뜨룽은
둘째 아들에게 아주
평범한 응웬 둑 쾅이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어린 쾅은 부모를 따라
많은 곳을 가야 했는데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쾅은 한 번은 아버지를 따라
추운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까지 가게되었지요
제네바 협약 3개월 전
쾅은 부모와 막내아들인
응웬 둑 빈과 함께
사이공으로 가며
큰 형과 세 명의 누나를
뒤에 남겨 두었습니다
4년 후 쾅은 다시 한번
아빠와 꼰 다오섬에 갔지요
교사였던 응웬 둑 뜨룽씨는
평생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것이 일반적이었지요
그러나 쾅의 교육에는
장애가 되었는데 당시에
꼰다오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따이 출신으로
그는 역사적인 섬을
돌아다닐 기회를 얻었습니다
1959년 응웬 둑 뜨룽씨는
다랏으로 옮겨 갔습니다
쾅은 거기서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다랏에서 쾅은 고대
중부 고지의 장엄한
자연환경에서
모험에 대한 갈망을 채우러
보이스카우트에 들었지요
깊은 람 비엔 숲의
폭포와 시냇물 곁에서
생애 첫 모닥불을 피우며
차가운 안개 속에
불꽃이 펄럭일 때에
그의 스카우트 단원들은
작은 하모니카로
쾅이 공연한 많은 유쾌하고
유익한 노래에 매혹되었지요
팀 리더를 보조하다가
팀 리더가 되며 쾅은
단원을 안내하는
스카우트 리더들을 돕는
최초의 팀 리더가 됩니다
쾅은 뛰어난 보이스카우트로
당시에 소수만이 얻은
일급 보이스카우트
칭호를 얻었습니다
쾅은 20살에 유년부와
협력하는 스카우트 리더가
되며 어린이를 봉사하고
타인을 돕는 훌륭한
국민으로 키우길 열망했지요
쾅의 대부분 친구들은 같은
학교의 스카우트 단원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노래하고
여행하며 중부에서 흔히
발생하던 수해 구호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쾅이 대학에 들어가자
다랏은 너무 작아졌지요
쾅과 절친한 친구들에게
전쟁과 비극이 충격을
주었지만 그들은 함께
타인에게 봉사할 소망을 이룰
새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세상을 모욕으로 가득하기에
세상은 고난과 이별,
오랜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에
나는 거기서 길을 잃었네
긴 길에서 당황하며 높은
파도에 좌초한 사람처럼
세상에 대한 수많은 미소와
사랑, 애정, 미움, 경멸과
분노를 가지고 다녔네
어머니의 먼 대지와
떨어진 이후
입술의 우유꽃이 바랜
메마른 그대 마음 곁에
헌신의 정신을 가져갔네
피로로 온 몸이 떨리고
이제 오랜 소망들을 떠나니
누군가가 필요하다 느끼네
우리에겐 쌀과 장아찌보다
서로가 더 필요하네
바람과 비 속에서
서로가 필요하네
더 많은 노래와 향기, 꽃을
가지고 가방을 가볍게 하려면
서로가 필요하네
바다 위로 날아가려면
마음으로 서로가 필요하네
이 지구에서 쉬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네
열정이나 고통 속에서
미소 짓는 얼굴을 더하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네
쌀과 장아찌도 사람들의
사랑만큼 달콤하지 않네
우리는 함께 세상의
많은 불행을 가볍게 할
달콤한 맛을 나누네
우리는 함께 맹세하네
달빛에 비친 자장가 속에
돌아온 하루를 보네
영원히 서로가 필요하네
쌀과 장아찌도 사람들의
사랑만큼 달콤하지 않네
우리는 함께 세상의
많은 불행을 가볍게 할
달콤한 맛을 나누네
우리는 함께 맹세하네
달빛에 비친 자장가 속에
돌아온 하루를 보네
영원히 서로가 필요하네
무리를 이끄는 새처럼
쾅은 친구들을 사이공으로
데려가 더욱 노련한
많은 운동가들을 소개했지요
가장 주목할 인물로는
호앙 응옥 뚜에, 뜨란 반 응오
도 응옥 옌, 도 쿠이 또안
호 응옥 누안, 하 뚜옹 깟과
뜨란 다이 록 등으로
학교활동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이끌었습니다
쾅의 그룹은 뚜엔 둑에서
소수민족들이 집을 짓는
프린스 크릭 1과 2의
캠프를 도왔습니다
또한 빈 두옹에서
탄 록 마을 캠프와
쾅 뜨리의 깜로 캠프
구역 8에서 학교와
집들을 건설하는 다른
활동들도 도왔습니다
더 이상 문제를
질문할 시간이 아니네
자신의 손으로 새롭고
신선한 것을 만들어야 하네
수십 년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네
서로 의심하고 비난하면서
더욱 비통하고 뿌리깊이
아프게 만들었네
그냥 논쟁할 시간이 아니네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이끌 것인가?
더 이상 악령은 없다네
지금 세상에서 우상은
이미 빛을 바래었고
당신과 나의 평범한 능력이
앞서 가도록 두었네
칭찬과 비웃음에 상관 없이
함께 일하자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자
용감하게 시작하면 해결되리
뒤에 쳐져 느려도 여전히
여기 앉아 회의를 하네
질문과 망설임으로
언제 일을 다할 것인가?
앉아서 좋은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 아니네
열심히 시작해야 하리
아니면 완전한 폐허라네
먼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이 그것을 만들 수
있음을 믿어야 하리
우리가 어두운 밤에서
새벽으로 걸어야 하네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릴 시간이 아니네
우리에게 없는 힘을
아무도 줄 수 없으리
이론만이나 비평
공허한 정치이야기로
세상은 번영하지 못하네
자신을 갖고 앞으로 나가자
칭찬과 비웃음에 상관 말고
함께 일하자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자
용감하게 시작하면 해결되리
뒤에 쳐저 느려도 여전히
여기 앉아 회의를 하네
질문과 망설임으로
언제 일을 다할 것인가?
정의와 자비에 대해
계속 말하면 높은 하늘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바로
날아오는 것이 아니네
서로에게 친절하고
평등한 길을 찾자
역경과 고통의 길로
걸어가야 하네
민주주의와 독립은
사오 일의 선전 후에
얻는 마법이 아니네
공동의 선을 위한 봉사는
순간의 흥분이 아니네
며칠 만에 영광을
이룰 수는 없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이루리라
칭찬과 비웃음에 상관 않고
함께 일하자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자
용감하게 시작하면 해결되리
뒤에 쳐저 느려도 언제나
여기 앉아 회의를 하네
질문과 망설임으로
언제 일을 다할 것인가?
힘든 노고와 함께 쾅이
이끄는 그룹은 민요나
일깨우는 노래 등의
유익한 노래들을 부르고
모두가 즐겁게 살며
일하는 분위기를 위해
게임과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당시에 그룹은 뜨람 까
(반성의 노래들)이란 이름을
지었으며 젊은 동년배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이든 친구들의 격려와
지원으로 뜨람 까 그룹은
노래와 더 정확하게는
목소리로 모든 사회적
배경의 사람과 특히
청소년을 모았습니다
그룹은 또한
중급 스포츠 코치들 사이에
『훈련을 위한 노래』
과정을 요청 받았지요
건강한 오락활동에
관심 있던 청소년들도
과정에 참여를 초대받았고
그런 사람들은 후에
음유시인 운동에서
활동적인 멤버가 됩니다
상을 수상한 어울락(베트남)
작가, 시인으로
사이공 라디오의
인기음악프로그램
제작자이자 사회자인
응웬 딘 또안의 논평
응웬 둑 쾅은 남부에서
음유시인 운동을 시작하고
확장한 인물로
인정받습니다
음유시인(두까)란 여기저기
다니며 노래하는 사람들이죠
흔히 대학 캠퍼스나 강연장
스타디움, 여름캠프
혹은 그룹활동이나
군중이 모인 장소에서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서로를 위해 노래하며 슬픔을
줄이고 희망을 북돋았지요
밤의 슬픈 장막에서
희망이 생기네
전쟁의 근심과 두려움 속에
희망이 생기네
멸시에서 희망이 생기네
밤에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희망이 생기네
희망은 황야의
버려진 집에서 생기네
희망은 외딴 강가의
쓸쓸한 정원에서 생기네
희망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배에서 생기네
희망은 멀리 항해하며
긴 강을 흐르는
밀물처럼 올라오네
희망은 사람들의 손과
얼굴에서 생기네
희망은 당황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에서 생기네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율동적 발걸음에서 생기네
희망은 당신과 나의 마음
누군가의 마음에서 생기네
희망은 잊혀진 슬픔의
깊은 무덤에서 생기네
희망은 부드럽고 활기찬
태양 아래에서 생기네
희망은 온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생기네
희망은 어제에서
오늘로 내일을 위해
생기네
밤의 슬픈 장막에서
희망이 생기네
전쟁의 근심과 두려움 속에
희망이 생기네
멸시에서 희망이 생기네
밤에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희망이 생기네
밤에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희망이 생기네
밤에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희망이 생기네
밤에 밝은 빛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희망이 생기네
전쟁이 사람들을 쫓아가며
둘러싸니 어디로
도망갈지 모르게 됩니다
언제 전쟁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두까(음유시인)운동은
그런 불행한 시기에
결성되었습니다
오래 전, 뚜이 호아를 지났네
달콤한 꿈으로 빛나던 하늘
바람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새떼들
여기저기엔 퇴적층이
쌓이는 강물소리
길의 한가운데 구름이
걸린 저녁들
망부석도 연민과 슬픔 속에
흘깃 바라보네
뚜이 호아를 방랑하는 저녁
여기 앉으니 멀리 보이네
논 곁의 옛 학교는
쓸쓸하게 남아있고
밖에서 유쾌하게 노는 제비
슬픈 들판 곁엔 오랜
우울한 발자국들
주변을 둘러보니 외로움 속에
서있는 들판과 정원들
서쪽 산에서 햇살이
바래어갈 때
나는 여기 있지만
나도 서서히 바래는 듯하네
밤의 권총소리가
골목길 입구에서 울리고
창문 격자를 통해
먼 수평선을 흘깃 보네
긴 밤, 높이 반짝이는 하늘
나의 영적 수행은
깨달을 만큼 익지 않았네
남쪽으로 나를 데려가는 길
허나 내 마음은 끓임 없이
중부를 그리워하네
폭풍에 망가진 옛 다리
혼란한 사람들이
길 가에 흩어져 있네
슬픈 들판 곁엔 오랜
우울한 발자국들
주변을 둘러보니 외로움 속에
서있는 들판과 정원들
서쪽 산에서 햇살이
바래어갈 때
나는 여기 있지만
나도 서서히 바래는 듯하네
밤의 권총소리가
골목길 입구에 울리고
창문 격자를 통해
먼 수평선을 흘깃 보네
긴 밤, 높이 반짝이는 하늘
나의 영적 수행은
깨달을 만큼 익지 않았네
남쪽으로 나를 데려가는 길
허나 내 마음은 끓임 없이
중부를 그리워하네
폭풍에 망가진 옛 다리
혼란한 사람들이
길 가에 흩어져 있네
우울한 발걸음이
슬픈 들판을 따르고
밤새 많은 슬픔이 쌓였네
길의 한가운데 구름이
걸린 저녁들
망부석도 연민과 슬픔 속에
흘깃 바라보네
슬픈 들판 곁엔 오랜
우울한 발자국들
주변을 둘러보니 외로움 속에
서있는 들판과 정원들
긴 밤, 높이 반짝이는 하늘
나의 영적 수행은
깨달을 만큼 익지 않았네
우울한 발걸음이
슬픈 들판을 따르고
밤새 많은 슬픔이 쌓였네
음유시인 음악장르의
특징의 하나는 주제가
흔히 개인의 감상보다
그룹의 감상을 반영합니다
멜로디가 단순해
한 사람이 부르기 시작하면
즉시 모두 따라할 수 있지요
거의 모든 노래는 어느 정도
기도의 성가를 닮았습니다
어울락 음악에 귀 기울이면
각각의 분명한 시대는
보통 중요한 역사적 변화의
시기와 함께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름진 이마의 사람들이
여전히 여기 앉아있네
밤이 내리니 달콤한 꿈의
가운데서 고통을 느끼네
전쟁에서 동포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고난 중에
고통과 혼란을 겪네
우리는 사랑하기 힘든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함께 약해지는 몸을 위해
끼니와 옷을 구하고
우기가 오면 함께
미끄러지는 흙 길을 걷네
불행이 커지면 검은 눈이
희질 때까지 함께 염려하네
긴 여정도 길지 않은 듯이
여전히 용기를 간직하네
기쁨과 슬픔 속에 길에서
서로를 여러 번 만나네
마음의 열정이 쏟아지며
발걸음을 빨리 하길 바라네
방금 길을 떠났듯이
발꿈치에 이슬이 남아있네
우리는 사랑하기 힘든
이 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함께 약해지는 몸을 위해
끼니와 옷을 구하고
우기가 오면 함께
미끄러지는 흙 길을 걷네
불행이 커지면 검은 눈이
희질 때까지 함께 염려하네
아직 서로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네
예전에 만나지 않아도
피의 형제로
맹세한 것처럼
자신을 도심과 시골의
삶에 가두지만
고귀한 사랑은 세상과 함께
머물기를 요구하네
우리는 사랑하기 힘든
이 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함께 약해지는 몸을 위해
끼니와 옷을 구하고
우기가 오면 함께
미끄러지는 흙 길을 걷네
불행이 커지면 검은 눈이
희질 때까지 함께 염려하네
전쟁이 계속되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평화는 없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현재의 고통에도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편안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편안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편안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곳을 고국으로 택했네
음악의 각 시기는 약간씩
변합니다, 낭만, 애국과
그리움, 염려에 이어
비극적인 철학이 스며들지요
응웬 둑 쾅은 음유시인
음악세상에서 성공할
모든 요소가 있었습니다
달콤한 기타 연주, 아름다운
목소리, 매력적인 성격
숙련된 대중연설의 기술
온 마음의 공연 등이지요
베트남의 길
오, 얼마나 끝이 없는가
남쪽 바다에서 나와
긴 산맥 중앙으로 가는
자부심의 길
공포로 가득한 어제의 길
마을마다 반은 부서졌네
끝 없는 옥수수 밭 길이
코코넛 마을로 이끄네
단단하고 긴 길을 여행하네
언덕으로 땀이 흐르는 길
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귀향의 발걸음을 기다리네
베트남의 길을
걷는 사람들
조용한 발걸음에 부서진 가슴
탐욕이 쌓이며
무자비한 계획이 장애를
만들지만 폭풍이 거칠수록
우리는 더 애쓰네
씩씩한 발걸음이 움직이며
영광을 이루러 가네
이 황토빛 경주는 분쟁의 왕
우리 길이 평화로 데려가리
행복한 나날 속의
안전하고 한가한 길
베트남의 길은 먼 곳의
발걸음이
가까이 오길 초대하네
여정은 아직 멀기에
베트남의 길
오, 얼마나 끝이 없는가
남쪽 바다에서 나와
긴 산맥 중앙으로 가는
자부심의 길
공포로 가득한 어제의 길
마을마다 반은 부서졌네
끝 없는 옥수수 밭 길이
코코넛 마을로 이끄네
단단하고 긴 길을 여행하네
언덕으로 땀이 흐르는 길
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귀향의 발걸음을 기다리네
베트남의 길을
걷는 사람들
조용한 발걸음에 부서진 가슴
탐욕이 쌓이며
무자비한 계획이 장애를
만들지만 폭풍이 거칠수록
우리는 더 애쓰네
씩씩한 발걸음이 움직이며
영광을 이루러 가네
이 황토빛 경주는 분쟁의 왕
우리 길이 평화로 데려가리
행복한 나날 속의
안전하고 한가한 길
베트남의 길은 먼 곳의
발걸음이
가까이 오길 초대하네
여정은 아직 멀기에
어떤 음악은 라디오나
레코드의 노래로만
어울립니다
다른 노래는 군중 앞의
무대공연에 적당하지요
후자의 장르에서
멜로디와 가사는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수들의 동작과
얼굴표현을 위한 몇 가지
다른 요소가 필요합니다
라디오에서 방송되거나
레코드의 노래는 홀로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수들은 라디오나 레코드의
노래가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옷, 화장, 모습
동작이 도움이 되지 않고
목소리 뿐이니까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청중은 목소리의 장단점을
더 분명히 듣게 됩니다
응웬 둑 쾅은 음유시인
가수로 시작했기에
그의 음악은 대중공연에
적합한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남콴에서 까마우까지
높은 산에서 깊은 숲까지
우리는 조국의 다리를
건설하며 만났네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마을로 돌아가고 있네
유쾌한 소리로 가득한 행복
우리는 함께
뜨루옹손 산으로 가겠네
우리는 함께
호안손 산으로 움직이겠네
쓸쓸한 숲에서 함께
향기로운 벼로 돌아가겠네
바다를 건너 외딴 섬들로
수천의 강의 파도를 타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경작하겠네
남콴에서 까마우까지
높은 산에서 깊은 숲까지
우리는 조국의 다리를
건설하며 만났네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마을로 돌아가고 있네
유쾌한 소리로 가득한 행복
우리는 함께
뜨루옹손 산으로 가겠네
우리는 함께
호안손 산으로 움직이겠네
쓸쓸한 숲에서 함께
향기로운 벼로 돌아가겠네
바다를 건너 외딴 섬들로
수천의 강이 파도를 타니
부모님을 위해 경작하겠네
바다를 건너 외딴 섬들로
수천의 강의 파도를 타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경작하겠네
바다를 건너 외딴 섬들로
수천의 강이 파도를 타니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경작하겠네
응웬 둑 쾅은 노래집
『반성의 노래들』
『발견의 노래들』
『파리와 독수리들』
『행복한 기도들』
등을 출간했습니다
비방의 말이
생명을 불꽃처럼 태우네
험담과 소문의 말이
친척을 창피하게 만드네
그러나 한 나라엔 매일
수백의 신문이 발간되고
끝없는 불명예와 비난
질책과 비방뿐이네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쇠파리 무리에
둘러 쌓여 있네
쇠파리떼, 파리, 파리들
한 강도가 온 마을을 공포와
혼란 속에 살게 하지 못해도
한 사기꾼은 모두를 밤낮
걱정하게 만드네
그러나 한 나라엔
수천의 강도가 있어
우정을 배신하고
직위를 사고 팔며
시체를 팔아 사람을 해치네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쇠파리 무리에
둘러 쌓여 있네
쇠파리떼, 파리, 파리들
한 아첨꾼도 참기 어려운데
하인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하지만
한 나라엔 수천의
아첨하는 광대들
수천 세대 동안
알랑방귀를 따르는
수치와 고통이 쌓이네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나의 조국은
거대한 쓰레기통
보다시피 쇠파리 무리에
둘러 쌓여 있네
쇠파리떼, 파리, 파리들
사장은 방침으로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대통령은 모두의 눈을
붉게 만들 수 있네
이상하게도
한 나라에 열명의 대장들
일본인, 미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한국인, 러시아인
중국인 그리고 체코인
보다시피 내조국은
시체의 장소
보다시피 내조국은
시체의 장소
보다시피 매의 무리에
둘러 쌓여 있네
한 무리의
매들, 매들, 매들, 매들
응웬 둑 쾅의 노래책과
다른 노래들을 모아
응오 만 투와 응웬 테엔 꼬가
『햇빛 아래서』로
출간했습니다
밝은 햇살이 떠오르네
밝은 햇살이 떠오르네
언제나 멀리 비추는 내 마음
언제나 멀리 비추는 내 마음
긴 밤이 지나고 눈물 없는 눈
긴 밤이 지나고 눈물 없는 눈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한 노부인이 보도에서
땅을 보살피네
한 노부인이 보도에서
땅을 보살피네
단단한 땅 파는 소리
단단한 땅 파는 소리
늙은 나무처럼 흔들리는 햇살
늙은 나무처럼 흔들리는 햇살
너무 이르지 않게 천천히
일들을 생각하네
너무 이르지 않게 천천히
일들을 생각하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꼬마야 왜 놀지 않니?
꼬마야 왜 놀지 않니?
새벽이 오자마자 들판에 가네
새벽이 오자마자 들판에 가에
어린 시절, 내일이란 없네
어린 시절, 내일이란 없네
먼 곳들이 밝아지고 있네
먼 곳들이 밝아지고 있네
나의 장소는 더 어두워지고
나의 장소는 더 어두워지고
동물의 무리들이
인간의 걸음 곁을 걷네
동물의 무리들이
인간의 걸음 곁을 걷네
즐겁게 웃으며, 오 이상해라
즐겁게 웃으며, 오 이상해라
밝은 햇살이 떠오르네
밝은 햇살이 떠오르네
언제나 멀리 비추는 내 마음
언제나 멀리 비추는 내 마음
긴 밤이 지나고 눈물 없는 눈
긴 밤이 지나고 눈물 없는 눈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기쁨의 날을 위해 돌아보네
자신의 작곡 외에도
응웬 둑 쾅은 많은 친구들의
시로 음악을 만들었지요
응웬 둑 쾅이 음악으로
만들어 성공적으로
여겨지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곡은
응웬 응옥 타치의 시로 만든
『강의 반대쪽』입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강의 반대쪽은 햇살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언덕의 반대쪽엔 풀과
꽃들이 길을 엮었네
반대쪽은 높은 산이 구비치고
반대쪽은 시원한 시냇물
이것은 허망한 시의 구절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그대 내게 삶의 온기 주었네
햇살 아래 향기로운 꽃들
오, 산맥들이 다가온
구름에 기뻐하네!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사랑으로 서로를 데려가네
가볍게 걷고 입술에 속삭이니
나만이 듣도록 나직한 소리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강의 반대쪽은 긴 도로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들판의 반대쪽엔
어린 풀들이 길을 엮네
미풍 속에 가벼운 미소
산의 틈에서
인간의 마음들이 노래하네
영원한 사랑을 요청하며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밤마다 내 가슴은 영원한
사랑을 그리워하네
삶에 걸린 푸른 덩굴
웃음소리 안에
사랑의 열매가 꽃피네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부드러운 요람 안에
별들이 부드럽게 반짝이네
그대 귀에만 고요히!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강의 반대쪽은 햇살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언덕의 반대쪽은 풀과
꽃들이 길을 엮었네
반대쪽은 높은 산이 구비치고
반대쪽은 시원한 시냇물
이것은 허망한 시의 구절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그대 내게 삶의 온기 주었네
햇살 아래 향기로운 꽃들
오 산맥들이 다가온
구름에 기뻐하네!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사랑으로 서로를 데려가네
가볍게 걷고 입술에 속삭이니
나만이 듣도록 나직한 소리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사랑으로 서로를 데려가네
가볍게 걷고 입술에 속삭이니
나만이 듣도록 나직한 소리
오, 나의 사랑하는 연인
사랑으로 서로를 데려가네
가볍게 걷고 입술에 속삭이니
나만이 듣도록 나직한 소리
2011년 3월 27일
추도 콘서트의 밤에
작곡가 응웬 둑 쾅의
맏아들인 응웬 둑 뚜옹이
아버지를 대신해
북극성 메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베트남 스카우트에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법을
만드는데 여러 번 공헌한
스타우트 리더들의 무아의
봉사심에 대한 최고 영예죠
1907년 영국의
로버트 베이든 포웰경이
제정한 상입니다
응웬 둑 뜨루옹씨는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인
음악가 응웬 둑 쾅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말해달라는
수프림 마스터 TV의
초대에 응했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어릴 때 특히 여름에
아버지가 가족을 휴가에
데려가셨는데 그것이
우리가 가족외출을
했던 곳이며 제 삶에서
아주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둘째는 제가 자라
고등학교에서
농구팀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항상 거기 서서
제 농구팀에서 선수로
저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더욱 최근에는
제게 가족이 생겼니
항상 그곳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데리고 다니며
카우보이 놀이도 하며
그들을 웃기고
쫓아다녔습니다
항상 손주들과 웃었지요
이런 것들이 제가
아버지와 가진 기억나는
순간들입니다
응웬 둑 뚜옹씨는
자신이 감탄하고 따르고 싶은
아버지의 장점을 말했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아버지의 성품은 먼저
지지하는 아버지였습니다
항상 후원해 주었어요
둘째 다정한 남편이며
셋째는 언제가 아버지처럼
멋진 할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작곡가 응웬 둑 쾅의 유명한
노래들이 어울락 라디오와
수프림 마스터 TV같은
TV 방송국에서 방송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느끼는지 응웬 둑 뚜옹씨는
물었습니다
라디오나 TV에서
아버지 노래가 연주되는 걸
들으면 언제나 감동합니다
그를 기념하며
언론에서 보여준 지지와
사랑에 언제나 놀랍니다
그는 작곡가 응웬 둑 쾅의
노래 중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말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듣는 곡이 아니에요
그는 많은 노래를 작곡했고
특히 동시대인들이 운동에
많이 참여하도록
영감을 준 노래를 지었지요
그러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네』죠
제 세대의 노래입니다
남자들이 소극적이며
소녀들이 더 단호하고
소년들은 앉아서 소녀들이
다가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것을 알고
이 노래를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작곡가 응웬 둑 쾅의 노래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네』가 젊은 세대에게
주는 곡이라고 말했습니다
응웬 둑 뚜옹씨가 친환경
생활방식과 완전채식 운동에
대한 관점을 말씀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친환경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환경 친화적이 되면
지구를 지탱하고 더 오래
생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채식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건강을 이해하기에
채식이 더 좋은
생활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채식이 환경을 돕는다면
완전히 지지합니다
아버지의 추도기간에
저는 예전보다 단호하게
채식을 했습니다
아내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해야겠지요
저는 개선하려고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건강이 큰 문제였기에
우리도 미래를 기다리며
우리 식습관을 보고
더 건강한 방법으로
개선하려고 했어요
채식이 도움이 되었지요
어제 아버지를 위해 절에
기도하러 가서 채식을 했죠
저는 채식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떠나기 전에
응웬 둑 뚜옹씨는
시청자 분들께 인사드리고
특히 칭하이 무상사의
프로젝트 베트남에 대한
선물에 감사했습니다
이 봉사단체의
사명은 어울락(베트남)
어린이를 위한
의료를 향상하는
일입니다
작곡가 응웬 둑 쾅은
프로젝트 베트남의 여름캠프
창시자이자 대표로
동료들과 어린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기회에 아버지에 대해
특히 그의 개인적인 면을
말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신의 세대를 위한 영감을
주는 곡을 지은 위대한
음악가로 알려졌지만
그가 위대한 아버지였음을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칭하이 무상사와
수프림 마스터 TV
방송국과 시청자분들께
아버지를 지지하고 특히
돌아가신 후 그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
아버지를 기념하며
베트남 프로젝트에 관대하게
5천 불을 기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의 프로젝트 만이 아니라
재단입니다
돌아가서 시골지역의
개울을 건널 수 없는 길엔
다리를 놓는 일 등을
합니다
또한 시골지역에서
아이들이 의료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박시나 쿠인 키에우는
아버지가 협력했건
프로젝트 베트남 재단의
주요 공헌자이며
주관자입니다
보통 여름에 대학생들과
시골로 가서 베트남의
소외계층 아동들을
돕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기리는
모든 기부에 감사합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
제게 연락을 했기에
프로젝트 베트남 재단에
기금을 제공하는 것이
제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일 거라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응웬 둑 뚜옹씨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음악가 응웬 둑 쾅의
가족으로 다정하고
감동적인 추억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과 함께 삶에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세요
존경하는 여러분
음악가 응웬 둑 쾅은
낙천적이며 친절하고
상냥하며 성실했기에
항상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작가 부이 바오 뜨록이
말하길 『응웬 둑 쾅에겐
어두운 나이트 클럽이나
비극적인 로맨스, 편파적인
정치와 원한이 없습니다
응웬 둑 쾅은
청중에게 특히 베트남
청년들을 진정 사랑하며
그의 노래들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다가왔지요
거기에 카리스마가 있었죠』
응웬 둑 쾅은 언론분야에서
아주 성공했고 응우오이 비엣
일간신문 편집자이자
공동 설립자, 비엔동신문의
설립자, 치린 위클리와
여성포럼 주간지
브이오시 라디오와 TV에서
발간한 큐엠에스 미디아를
청설했습니다
어찌되었던
내면의 음악의 시냇물이
계속 흘렀기에 그는
작곡을 하고 북미에서
호주, 유럽 등 전세계의
많은 장소로 기타와
진심에서 우러난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2008년 1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칭하이 무상사의 책
『천상의 예술』
출판 기념회에
응웬 둑 쾅이 참석해서
칭하이 무상사의
창의적 재능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2011년 3월 27일
새벽 4시에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의
파운틴 밸리에서 음악가
응웬 둑 쾅은 자비로운
신의 품에서 영원한 왕국과
천상의 선율로 돌아갔습니다
가요 작곡가 응웬 둑 쾅의
사망 소식을 들으신
칭하이 무상사는
다음 메시지를 전했지요
『그의 가족에서 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며
추도 행사에 도움이 될
기도와 함께 천 불을 넣은##기도와 함께 천 불을 넣은
봉투를 전해주세요』
마음이 넓은 음악가를
추도하면서
칭하이 무상사는
응웬 둑 쾅씨의 특집과
수프림 마스터 TV
전세계 시청자에게
그의 노래를 소개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스카우트 리더이자
두카 (음유시인) 운동의
공동 창시자인 작곡가
응웬 둑 쾅은 헌신적인
가장이자 베트남계 언론의
리더이며 프로젝트 베트남의
봉사여름캠프 창시자로
아름다운 유산과 뜻 깊은
노래를 세상에 남겼습니다
또한 그의 삶도 강력하고
감동적인 발라드입니다
응웬 둑 쾅의 모든 본질적인
성품과 고귀한 정신에
청년 세대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공감하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작곡가 응웬 둑 쾅을
기념하는 특집에서
작곡가 응웬 둑 쾅이 지은
『자랑스런 조국 베트남』을
칭하이 무상사와
우리 협회 회원들이
노래한 공연을
감상하셨습니다
1996년 포모사(대만)
시후에서 우리협회원과
모임에서 불렀습니다
이어서 응웬 둑 쾅의 노래
『서로가 필요하네』
『그 때가 아니지요』
『희망이 생겼네』
『어느 저녁 뚜이 호아를
지나며』 『베트남의 길』
『부모님께 돌아가며』
『매와 파리』『햇살
아래서』를 감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조국으로
택했네』와
『강의 반대쪽』은
응웬 응오 타치의 시로
만든 음악입니다
이 노래들을 마이 후옹
듀이 칸, 엘비스 푸옹, 칸 리
타이 히엔, 호주 음유시인
그룹과 응웬 둑 쾅 자신이
불렀습니다
작곡가 응웬 둑 쾅에 대한
해설은 시인 호앙 킴 차우와
응웬 딘 또안의 기사에서
발췌했습니다
끝으로 작곡가 응웬 둑 쾅의
맏아들 응웬 둑 뚜옹과
수프림 마스터TV가
가진 인터뷰를
보내드렸습니다
칸리는 60 년대에 빛나는
가수로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는
모든 숭배자의 가슴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
NHK는 칸 리를
1990 년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 12명 중
한 명으로 뽑았습니다
감사와 찬탄을 표시하며
칭하이 무상사는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어울락 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지난 날의 발자취와
사랑노래들』자선콘서트에
참여한 가수 칸리에게 직접
기념선물을 주었습니다
마이후옹은 중부 어울락
다 농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명한 어울락(베트남)의
공연 예술가 부부인 키에우
한과 팜 딘 시의 장녀입니다
마이 후옹은 베트남의
국립 음악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라디오와 TV방송국에서
활동했습니다
마이 후옹이 발매한
CD앨범 『귀향의 꿈』
『유성을 줍다』
『빛 바랜 노란 잎새』 등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마이 후옹은
1996년 12월
미국 남부캘리포니아에서
칭하이무상사 국제협회가
주관한 콘서트
『지난 날의 발자취와
사랑노래들』에 참가했습니다
고국에 사는 어울락(베트남)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콘서트였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으로부터
사랑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가수 겸 작곡가 듀이 칸은
1936년 중부
어울락(베트남) 쾅 뜨리의
귀족가문에 태어났지요
1950 년대 중반 그는
프랑스 아시아라디오의
노래대회에서『평화로운
달』을 불러 우승했습니다
그 후부터 많은 라디오
방송국과 무대에서 공연하며
호항 티 토 연예그룹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그는 『돌아온 날』
『소박한 마을』 같은
노래로 유명합니다
전설적인 가수 타이 탄과
함께 연가곡인
『만다린 도로』『베트남의
어머니』를 녹음했습니다
듀이 칸은 자신이 작곡한
『당신이 훼에 간다면』
『중부로 사랑을 보내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노래로 호평을 받았지요
듀이 칸은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테라스
극장에서 열린 『지난날의
발자취와 사랑노래들』
자선콘서트에서
『소박한 마을』 불렀습니다
20 0 3년 1월 15일
가수,작곡가인 듀이 칸이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
우리 회원들이 재능 있고
온화한 예술가를 방문해
칭하이 무상사의 사랑과
선물을 전했습니다
듀이 칸은 스승님께
다음처럼 말했지요
존경하는 무상사님,
오늘 당신 제자들이 방문했죠
그들은 젊지만 아주
친절하며 스승님을
대신해 저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승님은
많은 사람들을 돕지요
저는 정말 감동했어요
스승님이 여행 중이고
여기에 없어 제가 스승님을
뵙지 못해 유감입니다
저는 항상 당신이
자비로운 분으로 많은
사람들을 돕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스승님,이곳에
제자를 보내셔서 저를
물질적,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스승님을
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할 겁니다
타이 히엔은 작곡가
팜 듀이와 가수
타이 항의 장녀입니다
타이 히엔은 13세부터
무대에서 노래했습니다
빛나는 가수로서
그녀의 목소리는 많은
청중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타이 히엔의 유명한
노래로『마법의 세월』
『꿈의 시절』
『모두 사랑으로』『잊혀진
것처럼』등이 있습니다
타이 히엔이 말했습니다
『음악 덕분에 인생을
사랑하고 모든 것의 덧없는
본성을 볼 수 있었지요,
삶이 단순해지면
살기가 쉽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성탄절 자선 음악회에서
가수 타이 히엔에게
직접 선물을 전하며
타이 히엔의 노래 소리가
『우아하다』고 하셨지요
타이 히엔은 칭하이무상사
국제협회가 워싱턴디시에서
주관한 1997년
자선 음악회에도
참가하였고
칭하이 무상사의 시
『에덴을 다시 만든 이』
『옛 길』
『내 사랑』『영원한 연인』
『향기의 손길』을
개작한 노래를 담은
CD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엘비스 푸옹은 6살때부터
음악을 감상했으며
평생을 예술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따뜻하고
풍성한 노래 목소리는
모든 청중의 찬사를 받습니다
1968년 처음
레코드를 발매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다양한
음악장르를 통해 많은 이를
감동시켰으며 어울락
(베트남) 음악계에서
유명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가수 엘비스 푸옹은 또한
칭하이 무상사의 시로
작곡가 푸옹 부가 작곡한
노래들을 담은
『향기의 손길』 CD에도
참여했습니다
청중의 사랑을 받는
그와 저명한 가수들인
바오 옌, 칸 리, 타이 히엔
탄 하, 탄 뚜옌, 티엔 뜨랑
뚜안 응옥, 뚜안 부, 빈 뜨린
부 칸 등이 참여했지요
시인 응웬 딘 또안은
어울락 북부에서 태어났죠
작가와 작곡가로서
『노란 국화의 테라스』
『그대에게 말하고 싶어』
『노란 난초에
내리는 비』같은
노래책을 출간했습니다
그의 소설 『바랜 옷의
꿈들』은 1973년
국립문학예술상을 탔습니다
시인 응웬 딘 또안은
자신이 시작하고 연출한
음악방송에서 당시의
새 노래를 소개해 청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로 만든 『섣달
그믐밤에 방문한 그대』
『첫 번째 사랑노래』
『그대를 위한 노래』등
많은 사랑노래가 있습니다
시인 응웬 딘 또안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감사로
칭하이 무상사는
시인에게 선물을 보냈으며
행운을 빌었습니다
호앙 캄 차우는 뜨람 까 그룹
멤버로서 베트남 음유시인
운동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보이단 스카우트리더로
맛 비엣 스카우트 그룹과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응웬 뜨라이 로버 스카우트에
활발하게 참여했습니다
또한 작가이자 시인으로
『감사의 6-8절 시집』
『옛 정원』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응웬 응옥 타치는 교육자
시인, 기자로 뚜 뜨로이
비엔이란 필명을 썼습니다
사이공의 타브레드 고교에서
공부했으며 1960년대 초
다랏 사범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시를 쓰면서 그림도 그리며
미술전에 참여했습니다
작곡가 응웬 둑 쾅이
노래로 만든 그의 시는
『우리는 이곳을
조국으로 택했네』와
『강의 반대쪽』으로
대중의 마음에
불후의 명곡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술과 영성의
음악과 시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유명한 채식인을
계속 시청해 주세요
천상의 사랑과 빛이 언제나
지구의 친절한 이를 보호하고
축복하길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마 늘 사랑하진 않겠지만
그대 위에 별이 있는 한
그걸 의심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확신하게 하겠어요
그대 없는 나는 신만 아세요
처음에는 바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창립멤버인 데니스 윌슨이
형제인 칼과 브라이언과
함께 윌슨 패밀리를 만들고
사촌인 마이크 러브와 함께
비치 보이스를
결성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데니스가
서핑을 가르쳐 주었어요
2011년 5월 28일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비치 보이스의 창설멤버이자
평생 그래미상 수상자인
알 자딘 특집 2부작의
1부를 기대해 주세요
알 자딘의 가장 유명한
노래들과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그와 가진 독점 인터뷰를
예술과 영성의
음악과 시에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