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업장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 타이베이
1990년 3월 2일
따뜻한 박수로
스승님을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승님의 제자들은
그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돈독합니다
스승님께 입문을
받은 후 모든 제자들이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더욱 자비로워지고
도에 대한 믿음도
깊어지며 더욱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책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었던 많은 기적적인
얘기들이 실려있습니다
이제 제자 한 분을
초대해서
스승님과 있었던
내면의 교류와
체험들을 나누겠습니다
따뜻한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부처에 대해
간증해보겠습니다
살아있는 부처와
제자 간의 깊고
미묘한 관계는
세상의 언어를
능가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스승의 힘을
느끼도록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을 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과 지혜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부처가 있으며
이 세상에는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깨달은 스승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세상에는 제가 알지
못했던 상상할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배운 모든 것들은,
세상이 가져다 준
불만과 불안을
변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했죠
때로는 학교 수업을
듣는 대신 하루 종일
농부들이나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으며
가두 시위 운동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수라
존재 처럼 살았어요
나중에
불교를 찾았지요
한번은 밀교
모임에서 내면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종교적인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그룹의 정식 회원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아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 보살이
내게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꿈을
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밀교의
신비스런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불가사의하게,
며칠 후
그녀의 꿈을
계속 다섯 번이나
꾸었으며 그 꿈은
아주 선명했습니다
저는 직관적으로
그녀가 진선미의
화신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일기장에
그녀가 내 영혼의
어머니라고 적었습니다
그후 저는 갈수록
도를 갈망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채식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부처와 보살들에게
종종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존재한다면
진상을 밝혀주세요』
그러자 기적적으로
갑자기 실습생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 직장에는
히말라야에서 온
큰 스승이 강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있었어요
실은 바로 그 스승이
제가 꿈에서 본 성스런
어머니였습니다
당장에 저는 그녀가
꿈에서 강연에 가라고
한 말이 생각났고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날짜를 보니
다음날인
8월 3일로 바로
내 생일날이었습니다
내가 거듭 난 날
스승님을 대하자
인연이 있다고 느꼈죠
아니면 내가
부처가 된 것처럼
느꼈다고 할까요
마음이 아주 맑고
고요해지는 듯 했어요
청중들을 포함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제 눈에 수정처럼
투명해졌어요
스승님 머리 위에서
황금빛 태양이
눈부신 빛으로
우주를 비추는 걸
내눈으로 분명히
봤을 때 내 마음의 모든
혼동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입문한 제자들만이
스승님이 어떻게 그녀의
자녀를 돌보는지압니다
스승님의 화신은
저의 영적 수행을
인도해줄 뿐만 아니라
저의 일상 생활도
도와줍니다
스승님은 제가
비참한 부처가
되는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참해할 때마다
그녀가 꿈에 나타나
함께 웃고 춤을 춥니다
제가 과거의
큰 스승들이나
세상의 신비한 것을
보고 싶어할 때면
스승님의 놀라운
축복의 힘으로
내면의 여행을 하고
체험을 얻게
해 줍니다
영적 수행에 있어서
스승님은 사람들이
내면의 빛과 소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제자들의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도록
가르쳐서 이 물질계에
천상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실천해
보이도록 합니다
스승님은 엄격한
계율로 유명합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준 계율은
이 속세에서
정토를 창조하는
만리장성이 됩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매일 명상하라고합니다
때로 전 피곤할 때는
누워 잠이 들지만
꿈속에서 일어나
계속 명상합니다
스승님은 진짜 내면의
화엄경을 가르쳐줍니다
관음 법문의 힘은
너무나 엄청나서
저처럼 완고한 제자도
전혀 장애가 없는
세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소리와 세계들은
같은 내면의 세계에
있습니다 모든 존재와
내가 게임 상에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정말로 우리의 진아를
찾을 때 진실로 스승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직 텅빈 마음을
체험 할 때
비로소
관음 보살이
누구인지
그리고 스승님의
감로수가 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감로수는
이 세상을 향해
저절로 솟아나는
대 자비이며
생명에 양분을 주어서
시들지 않게 합니다
나는,가지도 오지도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스승인 이 자아가
사실은 스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승님이 저의 일상
생활에 축복을 주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저는 늘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입문하고
일년이 넘게 지난 후
나쁜 업장 때문에
두번 아픈 것 말고는
아프질 않았습니다
그건 내 잘못이었어요
내가 왜 병은
나쁜 업장 때문이라고
할까요?
왜냐하면 아프기 전에
스승님이 와서 사전에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회복되는 동안
스승님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아팠을때
중생들의
끝없는 업장을 지는
스승님을 생각하면서
여러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내 몸의 하찮은 병에
집착했던 제 자신이
불쌍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결론적으로
병도 선물입니다
불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축복을
가장한 겁니다
스승님은 병을
치료하려고 신통력을
쓰진 않지만 그녀가
신통력을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우리
제자들은 모두 압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승님이 미아오리에서
입문자들과 모였었죠
그날밤 저는
시후 언덕에 있는
텐트로 돌아오던 중
제 오른쪽 하늘에서
강연을 하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살아있는 부처의
공덕은 참 엄청납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죠
『선은 말이 필요없다』
정말로 깨달은 스승이
눈길을 한번 주기만
해도 무한한 축복을
줄수 있습니다 바로
그 축복에서 모든 진동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스승님은 우주의
모든 부처들의
대 자비의
화신입니다
제자가 스승님을
묘사하기란 불가능이죠
제가 여러분에게
저의 체험을 보고하는
이유는 우주의 모든
부처들의 도움으로
오늘 모든 청중들이
깨달음을 얻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을까요?
여러분이 찾고있는
진정한 스승을 찾고
그 스승으로부터
입문을 받을 수 있죠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눌 것이 더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이제 삼가
칭하이 무상사님을
모셔서
강연을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나를 여기에
초대해준 동료
입문자들과 출가자들
재가자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귀빈 여러분의
사랑과 도를 찾으려는
신실함에 감사드리며
귀한 시간을
내어 여기에 와서
신실함을 보이고
내게 공덕을 얻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느라 바쁘고
비도 오고 빡빡한
업무와 국사와
가정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오늘 천국과
부처님의 가장 높은
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에
여러가지 많은
성격들이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불친절한 사람도 있죠
누구는 참을성이 있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죠
누구는 몸도 튼튼하고
똑똑한 반면
누구는 자주 아프거나
덜 똑똑합니다
이 모두가 과거의
수행 때문입니다
오늘은 많은 주제를
다룰 겁니다
하지만 먼저
어떻게 이런 좋은
품성이나 나쁜 습관이
쌓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나쁜
습관을 씻어 내고
좋은 품성을 기를 수
있는지 얘기해보죠
첫째 모든
좋고 나쁜 습관들은
우리가 만듭니다
신이나 부처님이
만든게 아닙니다
부처님은 신과
똑같은 가장 높은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신과 같은 분을 모시는
우리가 얼마나위대한지
상상이 갑니까?
하지만 모든 경전들이
신이 우리 안에 있거나
부처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합니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경전에
나와 있는 겁니다
모든 경전들이 신이나
부처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매우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지요
우린 매우 위대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위대한지 상상이 가요?
그럼 우리는 왜 좋은
품성과 나쁜 습관을
모두 갖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대 지혜
즉 무상의 지혜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면의 것들과
바깥 세상을 즐기느라
바빠서 가장 위대한
내면의 품성을
잊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나 예수 그리스도
모하메드 노자
공자 처럼 잊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들은 도를
얻었을까요?
그것은 도를
이루기 전에 도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도를 구할 수 있다면
우리도 구할수 있지요
그런 몇몇 사람들만이
얻을수 있는게 아니죠
대부분 사람들이
윤회를 하면서
이 세상에서 일생,
이생,여러 생을 고통 받는 이유는
도를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우리는 나쁜
습관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결정을 할때
좋은 방향을
추구하겠다고 결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나쁜 것을 선택합니다
매번 나쁜 선택만
한다면 우리는 갈수록
약해지고
갈수록 나쁜 것만
할 것이며
그러면 더더욱 나쁜
습관만 쌓일 겁니다
우리가 선행을 할 지
악행을 할 지 또는
나쁜 일을 할지 말지
정하는 때가 바로
중대한 순간입니다
그 때 선행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든 간에
시험이 얼마나 어렵든
간에 선행을 택한다면
그래서 좋은 쪽으로
바꾼다면,그리고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다면,우린 더욱
강해질 테고
점점 좋은 쪽으로
나아갈 겁니다
또한 나쁜 습관들도
줄어들겠지요
그렇게 우린
좋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항상
나쁜 선택을 한다면
우린 더욱
퇴보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결정합니다
신은 우릴 위해
결정하지 않으며
어떤 부처도
우릴 돕지 못합니다
우리 내면에는
지혜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항상 나쁜 쪽을
선택한다면..
우린 올바른 쪽을
선택하는 이들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일깨울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항상 나쁜 쪽을
선택한다면,그들은
아직 바뀔 수 있습니다
변하기란 아주 쉬워요
그들은 한 생애에
변할 수 있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아도,그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들의 성격과
생활방식을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불할 능력을
보장받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걸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스승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에게
그를 따라 배울 믿음을
안 줬다고 해봅시다
그럼 우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품성을
바꾸기 위해서
방편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렸을 때..
이번 생애에 우리의
좋거나 나쁜 습관들은
대부분 과거 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꼭
관음법문이 아닌
특정 법문을
수행한다면..
자신의 과거 생을
보고자 한다면
관음법문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법문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관음법문은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얻기 위한 법문입니다
단지 우리 과거 생을
보고자 한다면
관음법문을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실한 한
어떤 법문이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린 부처의 명호나
만트라를 외고
불상을 숭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느날 과거 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왜
이렇게 됐는지,
왜 어떤 이들에겐 화가 나는데
다른 이들은 좋아하고
집착하는지 알게 되죠
또한 몸의 특정 부위가
왜 항상 아픈지,
또는 왜 늘
어지러운지를
알게 될 겁니다
아마 전에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문제에요
많은 사람들이
누가 아프면
그건 그가 전생에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죠
우리가 사람들의 과거
생을 안 봐서 그래요
그래서 누군가 아프면
그의 악업 때문이라고
그가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우리는
어림짐작합니다
그는 그걸 견딜
필요가 없을지 몰라요
몇몇 질병은 의사가
고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병을
고치는 데 치유력을
쓰는 소위 치료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때로는
위대한 영적 수행자를
만나면,그의 힘이
갑자기 우리의 과거
기억을 녹여서 우리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통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 치유사들은
종종 그들의
신통을 써야 하지만
위대한 영적 수행자는
신통을 쓰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치료법이죠
우린 그를 보자마자
나을 것입니다
우리의 병이
그리 심하지 않거나
우리의 악업이 그리
심하지 않다면,우린
즉시 나을 것입니다
그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것으로
우린 나을 수 있습니다
그를 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이름을 들을
필요 없이,그 사진을
보고도 나을 수 있어요
또한 그의 이름을 듣고
사진을 볼 필요도 없이
그의 제자들과
마주치는 것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들이 그와
연관돼서 그런 겁니다
그들은 가까우니까요
이것들이 병을 고치는
몇몇 방법입니다
우린 왜 아플까요?
아직 설명하지 않았죠
때때로 우리는
과거 생에 전쟁 중에
있었거나,군대에
있었을 때 다쳤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다쳐서 죽었던 거지요
누군가 심장에 칼을
찔러서 우리가
죽었던 겁니다
그 이후에
많은 생이 지났지만
수 백 년 뒤에도
여전히 심장이
아픕니다
때때로 혹은
종종 고통을
느낄 겁니다
그건 우리가 과거에
반드시 악행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 생에 다쳐서
그런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따라서
최상의 치료가 항상
의사나 영적치료사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 생을 알아야 해요
때로는 우리의
과거 생을 안 뒤에
우리의 병이
자연히 나을 겁니다
그걸 안 뒤에 갑자기
우리의 기억과
영적인 몸은
자신을 치유하는
일종의 치유력을
발산할 겁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가장 영원한 치료지요
우리의 과거를 알지
못하면,많은 것들을
풀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에 대해
읽어봤나요?
그는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맞죠?
그건 중국어로
번역됐어요
레오 톨스토이 알죠?
그는 러시아인이에요
(톨스토이요)
톨스토이요 예!
우리 중국인은 다른
이름으로 번역했지요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어봤어요?
읽어봤다면 좋습니다
안 읽어봤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그도 영적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아주 좋습니다
그들 모두 영적
수행과 관련이 있고
인류와 우리 영혼에
이롭습니다
난 아주 좋아해요
그가 아주
유명한 게 당연하지요
그의 소설 중에서
남들이 못보는 것들을
갑자기 볼 수 있게 된
어떤 아이에 대한
소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누군가가
바람을 폈거나
누가 자는 동안
그들의 물건을
훔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런 걸 봤을때
간섭하곤 했어요
예를 들어,그 사람을
막으려고 하거나
그의 부인에게 남편이
나쁘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몰랐을
그들의 죄를
공표하곤 했어요
그런 후에 물론
그들이 체포됐거나
가정이 깨졌어요
하지만 그가 했던
이런 선행들 때문에
그는 엄한 벌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들의 악업에
간섭을 했으니까요
그는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본래 그 사람들은
그런 소소한 악행을
저지른 뒤에
그만뒀을 거예요
그 양쪽은
서로에게 졌던
업장의 빚을
되갚았을 겁니다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전생에 빚을 졌는데
이제 되갚으려고
온 거지요
그럼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그 아이가
비밀을 알고 방해해서
그는 그들이 악행을
더 많이 하게 했습니다
이 아이는
귀한 재능을 가졌지만
그걸 써서는 안 됐어요
그걸 씀으로써,그는
세상의 좋고 나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원하는 건 모두
볼 수 있었어요
마치 몇몇 마녀나
마법사들이
수정 구슬로
뭘 보듯이 말이에요
그들이
구슬 안을 보면,
그들이 보고자 하는건
모두 나타날 겁니다
아마 그 아이도
그런 재주가 있었겠죠
그들을 보는 건 좋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과거 업의 관계를
모르고서,
우리가 남의 행위에
훼방을 놓는다면
그들의 업장이
우리 것이 될 겁니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아이는 배고프면
뭔가 먹으려고 합니다
그에게 음식을 안 주면
그는 음식을
훔치려고 할 거예요
우리가 여전히
그에게 음식을 안 주고
그를 쫓아내면
배고픔 때문에,그는
다른 데서 음식을
찾으려고 하며,
먹으려고 높은 곳에
올라가 많은 걸 잡겠지요
그 결과,음식과 함께
떨어져서 많은 걸
파괴할 겁니다
아이가 다칠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영적 수행 없이
우리가 악행이 아닌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리 안전하진 않아요
우린 뭔가가 정말로
좋거나 나쁜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톨스토이의 소설
『대자』를 읽어봤다면
『대자』에서
그 아이가
선한 사람과 그들의
가정을 보호하고
나쁜 사람을 없애는
영웅처럼 선행을 하려 했단 걸
분명히 볼 겁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결과는 더 나빠졌지요
그 또한 벌을 받았고
그의 과거 잘못들과
잘못된 개념을
보상하기 위해서
수 십 년 동안
영적 수행을 하러
속세에 보내졌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그 의도가
얼마나 좋든 관계 없이
무지로 행해졌다면
그것은 해로우며
많은 문제를 줄 겁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하고 또한
많이들 악행을 합니다
하지만 무지하고
과거 업장을 모른다면
무엇이 진짜 좋고
나쁜지 우린 모릅니다
그래서
대 부처인
석가모니 부처가
99명을 죽인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던 겁니다
대신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서
아라한 성인이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제 막 자신을
따르기 시작했던
제자와 함께한
위대한 깨달은 스승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스승은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종종
세상을 여행했고
그와 인연 있는 이들을
모두 구했습니다
이 제자는 그와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이 스승은 아주
정직하고 의로웠어요
심지어 그는 음식을
구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피해서
숲과 산 속에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띄는
과일이나 산나물을
먹을 뿐이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제자는 더 이상
그걸 못 견뎠습니다
어느 날,그는 읍내에
선한 이들에게
음식을 구하러 갔어요
그는 한 가족을 만났고
많은 이들이 축제를
즐기는 걸 봤습니다
그들은 모두들 먹으러
오라고 초대했습니다
물론
그는 아주 기뻤어요
그는 들어가서
마음껏 먹었습니다
또한 스승을 위해
음식을 챙겼습니다
그가 음식을
가져왔으니
스승은 그걸 먹었어요
그는 음식을 먹는 동안
웃으며 말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축하하더냐?
그들의 빚쟁이가
빚을 받으러 왔는데도
축하하는구나』
그 말을 듣고서
그 제자는 당황했고
스승의 말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가정에 새로
아이가 태어나서
그들이 기뻐하며
축제에 사람들을
초대했던 겁니다
모두가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 스승은
그들의 빚쟁이가 빚을
받으러 왔다고 했지요
아마 그 스승이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맛이 좀 갔나 봅니다
그는 아무 말 안했어요
그는 여전히 스승에게
믿음이 약간 있었기에
그를 떠나지 않았어요
다음 날..
그 가족은 며칠 동안
축제를 벌였습니다
사내아이가 처음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오랫동안 남자 아이를
바라며 기도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매우
행복했고,수 일 간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제자는
그 다음 날 음식을
구하러 다시 거기에
가겠다고 말했어요
모두를 초대하는데
그걸 놓치면
안된 일이지요
결국,공짜니까요
그래서 그는 다시
많은 음식을 기대하며
행복하게 거기 갔어요
하지만
그가 들어서기 전에
소란한 내부를 봤어요
사람들이 울며
소리치고 있었고
음식은 없었어요
모두가 울면서
불평하고 있었어요
부모들은 어제
아주 행복했는데
지금은 바닥에 누워
신을 원망하고 있었죠
그 날 새로 태어난
아기가 죽었던 거죠
그래서 그 제자는
먹을 게 전혀 없었어요
그는 뛰어 들어가
남은 게 있는지 보고
뭔가 집어 들어
도망치려고 했어요
장례식을 치르는데
어떻게 먹겠어요?
그래서 음식을 들고
빨리 자리를 떠났어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죠
그는 돌아와서
스승에게 말했어요
『스승님,무서운 일이
있었어요,새로 태어난
아기가 죽어서 오늘은
좋은 음식이 없어서
그냥 어제 남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스승은 행복하게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제자가 물었죠
『왜 웃으세요?
아이가 죽어서
가족들이 슬퍼하는데
스승님은 웃으세요?』
그는 말했죠『세상은
거꾸로란다
어제 그들의 원수가
왔다가 오늘 떠났지』
제자는 물었어요『왜
그렇게 말하세요?』
그는 대답했어요
『그 아이는 부모의
이웃이었는데
그가 부모에게
돈을 빌려줬지
하지만 부모들이
그에게 갚지 않았어
그들이 부자가 되자
빚진 걸 잊어버리고
그에게 갚지 않았어
이웃이 죽고 나서
그는 아들로 태어나서
그들의 재산을
다 없애려 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아주 많은 돈을 써서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를 했고
그가 필요했던 돈을
모두 다 써버렸지』
예컨대 그들이
2십만이나 5십만
달러를 빚졌는데
하루아침에
그 돈을 다 써서
생일잔치를 한 거지
그래서 머물 이유가
없었던 것이고
그는 자기 돈을
다 찾았으니 떠난 거야
그래서 그런 거라네』
인간의 희로애락은
모두 무지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행복하고
왜 화가 나며
왜 슬프고
왜 즐거운지 모릅니다
우리 중국인들도
비슷한 얘기가 많지요
『봉신연의』같은
얘기들 말입니다
『봉신연의』에는
주왕과 달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기는 주왕에게
복수를 하러 왔어요
하지만 주왕은
그녀에게 빠져서
왕국도 파괴했는데
그건 바로 그녀가
원하는 바였어요
하지만 주왕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빚쟁이며
원수라는 걸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선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친척,친구인지
또 누가 원수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요
모르는 채로 삽니다
선행을 해도
이유는 모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왜 그랬는지
알지 못하고요
하지만 약간의
좋고 나쁜 성품들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진실로 원한다면요
대부분의
좋고 나쁜 영향들은
어린시절에 있었던
일과 관계됩니다
어렸을 때 남들이
우리 어떻게 대했으며
우리 내면의 느낌은
어땠는지 두뇌 속에
분명히 기록됩니다
우리가 다 자라면
기억 속에 살게 되죠
우리의 행동과 반응은
그냥 어린시절에서
나오는 것으로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고
나쁜 인상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설사 우리가 전생이나
과거의 업장을
모른다고 해도
미래의 안 좋은 업장을
피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거니까요
예를 들어 나쁜 습관을
바꾸는 건 쉽습니다
어린시절에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좋은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시간이나
불행한 일들이
고통을 주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순간을 적어 보고
기억하려고 해보세요
우리가 고통 받으면
어떻게 반응 했었는지
그리고 행복할 때는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명확히 회상해 보세요
그리고 또한
매일 일기라는 걸
쓸 수 있어요
우리의 좋은 성품을
다 적어 보세요
우리 자신과 남들을
슬프게 하고
없애고 싶은
안 좋은 성품들도
모두 적어 보세요
매일 점검하는 거죠
오늘은 좋은 일을
얼마나 했으면
잘못은 얼마나
저질렀는지 말이죠
이처럼
3달을 하고 나면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하지만 많은 변화가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습관을 바꾸려면
몇 년은 걸리니까요
우리가 신실하고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진실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나간다면
많이 진보할 겁니다
그럼 몇 년 뒤에는
나쁜 습관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없애고
좋은 성품을
기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많은
좋은 것들과
소위 말하는 복을 부르게 될 겁니다
그래서 경전에
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을 거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사실입니다
우리의 좋은 분위기가
좋은 일을
불러들이니까요
나쁜 분위기는
나쁜 일을 불러들여
우릴 더욱 더
안 좋게 만들지만
좋은 분위기는
점점 더 좋게 만들죠
그래서
영적 수행자들은
점점 더 좋아지고
수행하지 않는 이들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겁니다
그게 이유입니다
『유유상종』이라는
중국 속담처럼요
그건 사실입니다!
고대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것이며
영적 수행에서 온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걸 압니다
조그만 비밀이 있는데
여러분이 참고하도록
알려 주고 싶습니다
해보고 싶다면요
여러분도 스스로
영적 수행을 하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동시에
최고의 신과
최고의 부처님
최고의 여신 등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고 믿는
누구에게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의 축복으로
우릴 점점 더 좋게
바꿔주며 우리 나라와
가족,자신을 이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공자도 말했잖아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고요
먼저 우리 자신을
수양하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주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많은 나라와
왕조들이 쇠퇴하고
파괴되거나 부패됐죠
그건 모두
사람들과 관리들,
왕이 수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도덕적 가르침과
철학적 유산이
풍부합니다
그 가르침을 활용하면
우린 분명히
이로움을 얻을 겁니다
허나 사용하지 않으면
그 가르침을 수백 번
읽는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남을 가르치면서도
우리 자신이
실천하지는 않겠죠
정말 곤란한 일입니다
톨스토이 소설에도
대자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갚기 위해
고행을 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받는 과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매일같이 입으로
호수에서 물을 길어
탄 나무에 줘야 해요
그 나무에 다시 싹이
틀 때까지 물을 줘야
죄가 씻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숯처럼
타버린 나무가
다시 싹이 나겠어요?
그는 수행하면서
정말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사실과
그의 신실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와서
그를 보고 찬탄하며
공양을 바쳤습니다
비록 그는 마음이
아주 순수했고
아무리 귀한 보석도
개인적인 용도로
받지 않았지만
여전히 명성과 이익에
욕망이 있었습니다
이따금 아무도 그를
보러 오지 않으면
아주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뒤엔
그는 자신이 수행에
충분히 신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남들이
그를 보러 왔을 때만
기쁨을 느꼈으니까요
그는 남들을 위해
수행했던 겁니다
남들이 그의 고행을
알아 줘야만
행복했던 겁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면
그는 슬펐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했어요
그가 떠나려고 하자
나무에 싹이 텄습니다
그가 떠날 때
나무에 싹이 텄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무가
싹을 틔우길 바랬는데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열심히
수행하기로 하자마자
나무엔 싹이 텄습니다
왜일까요?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면에서 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수행하지만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난 정말 열심히
수행하는데 아무런
결과도 없어』
우리가 충분히
신실하지 않았겠지요
우린 신에게
불평해선 안되며
부처를 불신해도
안되고
스승을 의심해서도
안됩니다
자신을 점검해서
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는지 봐야죠
우리에게 큰 신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순간 모든 결과가
올 것입니다
가끔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해도
자신을 개선하여
영적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세상이
신실함을 줄 겁니다
때론 병이나 고난,
고통과 않 좋은
기분이 우릴
신실하게 해줄 겁니다
우릴 불만스럽게 하는
이런 달갑지 않은
상황들이
우릴 깨울 수 있지요
아직 희망이 있어요
여러분이 무슨 법문을
수행하고 싶어하든,
어떤 스승,
어떤 부처,
어떤 종교나
종교 단체를
믿든 상관없이
신실하게 수행하면
결과를 얻을 겁니다
신실하지 않다면
무슨 법문을 수행하든
이로움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지요
우리가 자신에게
충분히 신실하지 않고
아무런 이득이 없어도
여전히 남에게서
『훔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가 살아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고
영적 수행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99명을 죽인 사람이
사악한 법문을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그는 도를 이루려면
백명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사도입니다
사가 무슨 뜻일까요?
그릇된 거지요
그릇된 개념이 사에요
옆에 있기 때문이죠
그것도 『외도』나
『사도』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곧지 않아요
그런 사람도
부처를 만나자
이로움을 얻었으니
친절하고 덕스러우며
선행을 하고 자선을
베푸는 우리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죠
포모사(대만)에는
자선 단체가
많이 있고
여기엔 아주 친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죠
모두가 부처를
숭배하는 걸 압니다
나무 불상을
숭배하긴 하지만
우리 모두 부처를
숭배한다는 걸 압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지만 모두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나무조각이 아니라
무상의 존재로서의
그를 숭배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두가
신심이 있으며
영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래서 포모사(대만)
사람들은 분명히
희망이 있습니다
난 포모사(대만)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될거라 믿습니다
스승님
석가모니 부처는
보리수 아래서
명상하면서
하늘에 뜬 별을 봤는데
왜 그것이 그가
깨달았다는 뜻인가요?
그가 뭘 성취한거죠?
비밀을 알려 줄게요
그가 본 것은
외면의 별이 아닙니다
내면에 뜬 별이죠
입문할 때 많은 이들이
별을 봅니다
이것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내적 비전이고
우린 많이 말하지 않죠
석가모니부처는
별만 본 게 아니었어요
이것은 단지 내적
비전 중 하나였죠
나중에 그는
다른 걸 많이 봤어요
그는 온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어요
그는 아미타불의
세계,
화엄의 세계,
능엄의 세계,
약사불의 세계에
갈 수 있었어요
석가모니가
별만 보고 부처가
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빠르지 않아요
부처의 힘이
무한하다면
왜 부처는 모든 죄를
없애고 세상에
친절함과 아름다움만
남겨서 중생들이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게 하지 않나요?
그는 그랬어요!
하지만 우리가
분별심이 있어서
모두가 아주 친절한 걸
볼 수 없어요
모두 각자 자기의
교훈을 배우고 있지만
우리의 교훈을
배우는 동안 그걸
참을 수가 없지요
우리는 너무 무지하고
돌파하는 방법을
몰라요
그래서 이 사람은
선하고 저 사람은
악하다고 생각해요
자세히 보면 모두가
연기하고 있어요
나중에
우리는 다시 올 거에요
오늘 죽으면 내일
돌아올 겁니다
별일 아니에요
그저 우리 옷을
바꾸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악이 있어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배울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결정을 합니다
우리가 자신이
결정을 할 때에만
진보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선악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선행을
하도록 우릴 강요하면
이해를 못할 겁니다
내면으로 아직 악행을
하고 싶다면 어쩌죠?
예를 들면 당신이
대학교수지만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지 않고
숙제를 할 수 없으면
자녀를 위해 숙제를
전부 해줄 수 없어요
혼자 배우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고 자녀대신
숙제를 전부 해주면
그가 성적은
잘 받을 수 있어도
여전히 멍청하지요
소용이 없어요
안녕하세요
나무 칭하이무상사
카톨릭에서는
세례를 받은 후
인간의 원죄가
지워진다고 해요
스승님이 말씀하신
입문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그래요
입문은
진정한 세례지요
현재의 세례는
과거의 전통이지만
영적인 힘과
축복의 힘이
부족합니다
그게 다에요
형식은 비슷하지만 위대한 성령의
가피력이
부족해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을 때 또는
세례요한 당시에
그들이 행한 세례는
효험이 있었어요
그들이 세례를
행할 때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빛을 볼 수 있었어요
남들이 세례를 주면
효험이 없어요
그들이 살아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들의
행위를 모방했고
세례에 물을 썼지만
효험이 없었어요
모르는 자는 무죄라고
성인들은 말합니다
이제 전 육식이 아주
무거운 업장을
초래하는 걸 알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려고 이 독을
요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알면서 죄를
짓는 것 아닌가요?
매우 죄책감이 들어요
모든 이가 자기 식으로
수행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친절과
채식을 수행하는 반면
남들은 여전히
육식을 수행합니다
주부로서
그들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면
죄를 짓는 게 아니죠
약간 죄책감이 들고
불편한 느낌일
것입니다
영적 수행에
영향을 줄 테지만
당신은 죄가 없어요
강요된 거니까요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고
나쁜 의도로 하거나
남에게 독을 주길
원한 게 아니지요
무상사님
석가모니부처가
살아있을 때
제자들은 자신에게
아니면 부처의 힘에
의지해 수행했나요?
자신에게 또 부처의
힘에도 의지했어요
부처의 힘에
의지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우리의 지혜를 열고
안내하도록
우리를 돕는
부처가 없다면 어떻게
수행할 수 있나요?
자신을 의지한다는 건
우리가 열심히 안하면
부처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아무 결과가
없다는 것이에요
둘 다 필요해요
안녕하세요 무상사님
스승님이 다른 사람들
옆을 걸어가시면
스승님 몸에서
백단향이나 꽃 향기가
난다고 종종 들었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기죠?
난 몰라요
난 냄새를 못 맡아요
내 몸에서 향기가
난다니 놀랍군요
난 샤워할 때 특별한
비누를 안 써요
항상 무향 비누를
사용해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냄새를 맡으면
냄새를 맡는 거지요
아마 코에 이상이
있나 봐요
무상사님
고대에는
일단 영적 수행자가
더 높이 깨달은
스승을 찾으면
즉시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제자들이
진짜 가르침을 배우게
그 스승을 따르도록
인도하곤 했어요
왜 현대의
영적 수행자들은
이럴 수 없나요?
깨달은 스승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혹은 은밀하게
깨달은 스승에게
입문하는 건가요?
하지만 돌아가서는
제자들에게
알려주지 않거나
남들이 올바른 해탈
법문을 수행할 기회를
갖도록 해 주지
않습니다 너무
한심하지 않나요?
우리는 너무 심하게
남을 비판하면 안돼요
각자의 시간이
다릅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아직 안 왔으면
지위를 버리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의 업 때문이거나
그의 때가 아직
안 온 거지요
이게 첫째고
두 번째는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은밀하게 입문하려고
오는 게 사실이에요
그들이 용기가 없거나
악의가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게다가 그들은
중생을 구하는 게
어려운 걸 알아요
남들을 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목숨을
보호하기도 어려워요
입문하기 위해
자신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남을 설득하겠어요?
모두 인연에 달렸어요
우리는 세세생생
왔다가 갔어요
몇 번 더
돌아온다고
무슨 문제겠어요?
안녕하세요 무상사님
제가 읽은 불교서적에
따르면 만일 부처의
명호를 외며 그를
어머니나 잃어버린
아들처럼 그리워하거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깊이 그리워하듯 하면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걸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무상사님
스승님과 수행하는
제자들은 이걸
성취할 수 있나요?
그들에게 물어야지요
할 수 있어요?(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들은 사랑에 빠진
것보다 더 강하게
부처의 이름을
외우는 법을 알아요
사랑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죠
몇 명을 붙잡고
물어보세요
내가 말하면 뽐낸다고
말할 테니까요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무나 한 두명 잡고서
어떻게 사랑에 빠진
것보다 더 강하게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는지
물어보세요
말해줄 겁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은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 같은
부처의 이름을
외울 때 이런 강한
갈망이 없을까요?
그것은 이 부처를
볼 수 없어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거에요
평범한 사람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아요
먼저 그녀를 조금
봐야 합니다
최소한
사랑하기 전에
그녀의 손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그녀를 안 보면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나요?
아주 힘들지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부처를 갈망하려면
먼저 부처를 봐야지요
그래서
난 먼저 부처나
불성을 보도록
이 법문을 제공해요
그러면 부처를 그리워
하고 싶지 않아도
그리워 할 겁니다
원치 않아도 부처를
그리워할 거에요
무상사님 스승님께
입문하고 영적으로
수행한 후에는
남들의 보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제 선친들은 살생과
관련이 없는 윤리적인
직업에 종사하는데
그들에게서 유산을
받을 수 있나요?
예 가능해요
이건 당신이 의도적으로
청한 게 아니지요
이미 당신에게 남겼죠
충분히 가졌거나
충분한 것 이상이면
불우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과 병자,
병원에 유산을
기부할 수 있어요
상관없어요
그가 말하길 선친들은
그들이 쓰도록
유산을 간직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산을
남을 이롭게 하는데
정말로 쓰고 싶답니다
그러면 조상님들이
감정이 상할까요?
아니요 아니에요
이것도 당신이
쓰는 거지요
예를 들면 나한테
10달러를 주면
10달러는 내것이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어요
맞지요?
그걸로 사탕을
사고 싶으면 가능해요
과자를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어요
내가 쓰는 거지요
남들에게
주고 싶으면
남에게 기꺼이
줄 겁니다
그것도 내가 쓰는 거죠
더구나 우린 하나에요
모든 피조물은 하나죠
우리가 그걸 쓰면
다른 사람이
쓰는 것과 같아요
남들이 쓰는 것은
우리가 쓰는 것이지요
상관 없어요
그 때 당신 선친들은
큰 이로움을
얻을 거에요
많은 사람이 그 돈에서
혜택을 얻었으니까요
그들의 수준도
고양될 겁니다
그들의 복은
늘어나고 악업은
줄어들 겁니다
더 행복해 질 거에요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아요
안녕하세요
자비로운 무상사님
1945년에
외국의 한 예언자가
20세기 말에
구세주와 그 제자들이
중생들 앞에
나타날 거라고 했어요
성경의 예언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20세기 말에 있는데
저는 칭하이
무상사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 수십만의
길 잃은 영혼을 구하고
구세주와 살아있는
부처가 되어
끊임없이 제자들의
칭송을 받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그 외국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된 걸
증명하는 건가요?
감히 말을 못하겠군요
많은 사람이
수행을 잘하고
많은 걸 봅니다
그걸 믿으면 좋아요
안 믿어도 좋아요
대단한 게 아니에요
나는 나에 대해 말할수
없어요 당황스럽네요
안녕하세요 무상사님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몇 년 동안
영적 수행을 하고
많은 불교서적을
읽었지만
아직도 채식하려고
마음을 굳히는 게
불가능했지만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읽고서 즉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왜 당신의 책은 그런
큰 힘이 있지요?
아마도 내가 채식을
하기 때문이에요
아마 내가 말한 걸 실천해서겠죠
말만 하지 않고
자신이 그걸 실천하면
남을 고무시킬 수 있죠
많은 내 제자들도 전에
사람들에게 채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다른 종교단체와 함께
수행했다고
나에게 말했어요
그 지도자들은
채식의 이로움을
알지만
그들 스스로
엄격한 채식을
지키지 않아요
그들은 자주 남에게
채식하라고 격려했지만
아무도 듣질 않았죠
이제 나에게 오는
누구든 내 말을 듣는 건
나 자신이 수행하고
채식을 하며,
가르친 바를 정말
실천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고 있는 걸
남에게 하라고 말하면
효과가 있을 거예요
우리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채식이
왜 필요한지 진실로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진정한 이해는 남에게서
듣는 것과는 달라요
그러므로 진정으로
이해한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된 후엔
인식하게 된
모든 것에 우리 자신의
힘이 실립니다
그러면 그 메시지를
퍼뜨릴 때 사람들이
즉각 그걸 믿지요
이건 비밀이에요
무상사님,
난화이진 선생님은
그의 책에서 우리가
광대한 보리의 길을
백층 빌딩으로 여기면
신통력을 쓰는 능력은
2층에 속하며
더 높이 오를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같은 이유로
입문자에게 신통력
사용을 금합니까?
네
신통력의
효력은
영원하지 않아요
그건 아이들이
놀기 위한 힘이에요
우리가 그걸 쓰면
집착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워요
목건련에 대한
얘기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신통력을 쓰지 말라고
그에게 자주 경고했죠
그도 석가모니 부처를
따랐으며,그의 등급
역시 낮지 않았어요
허나 그는 이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포기할 수 없었죠
그는 밖으로 나가
남들과 경쟁을 했는데
신통력이
더 강했던 사람에게
패했어요
그는 신통력 때문에 근사하게
죽지 못했어요
안녕하세요,무상사님
대학교 급우 중 하나가
당신의 제자예요
제가 기억하기론
전에 그를 혼냈을 때
그는 화를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혼내면
화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으며
『고맙다』 고 말해요
전 이 변화를 보고
매우 놀랐어요
무상사님,채식하고
영적으로 수행하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왜 요즘엔 그가 늘
웃고 있는게 보이죠?
어린애 같고 행복하고
편안하며 세상과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는 제 회사의
동료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서로를
속여서
명예와 부를 위해
경쟁하고
자주 불화가 생깁니다
당신과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변합니까?
그건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수행 후엔 내면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찾았고
영혼이 원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가
열리게 되며
모든 걸 알게 되죠
내말은 무의식적으로
안다는 뜻이며 마음은
모를 수도 있어요
반드시 측정할 수 있는
뭔가는 아니지만
우린 여전히 압니다
왜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고
크고 작은 많은 것에
대해 걱정할까요?
그건 모두 우리는
뭔지 모르지만
내면에 갈망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은
불행 때문에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많은 돈을 번 후에
그리 행복하지 않으며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벌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 더 많은 아내나
남편이 있길 원해요
이런 사람 있나요?
그래요!
어떤 사람은
남들과 싸워서
행복을 느끼거나
더 행복하기 위해
지위 경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위가 높을수록
행복은 덜 느낍니다
그건 삶의 목적이
지위,재산,여자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영적 수행을 위한
것이란 걸
모르기 때문이에요
영적 수행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더라도 내면으로
만족을 느낄 수 없어요
위대한 왕이나
재산이 많은
고위 관리라 할지라도
내면으론 여전히
우울하고 불행하죠
영적 수행을 한다면
인간이 된 목적을
이행했다는
의미지요
신이 우리에게 준
목적과
부처가 우릴 여기로
보낸 이유는 이런
고통스런 상황에서
배우고 맞서서
영적 수행을 하도록
깨어나는 겁니다
만일 깨어나서
수행을 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소원성취 보석인
내면의 귀중한 보석을
얻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거예요
내가 그들에게 전하는
법문은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대신 자신의 지혜를
열게 도와줄 수 있는
무형의 힘이에요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소원성취
보석을 인식할 거예요
왜 이걸 소원성취
보석이라고 할까요?
그건 우리가 그걸
얻은 후에 소원이
성취되어서
매우 만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미소를 짓고
편안한 겁니다
그때에는
부처가 되고 싶지
않아도,될 거예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부처인가요?
남들이 혼내면 그는
미소 짓고 끄덕이며
『알았어요』 하죠
그게
부처의 길입니다
달리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진아를
인식해서 부처가 된다』
라고 합니다
내 말 이해하겠어요?
당신이 소위 내 제자나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동료 수행자를
만나면
그건 내 법문이 옳으며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탈시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일세해탈』
이라고 합니다
우린 고통에서,
묶인 곳에서
해방되므로
이걸 해탈이라 합니다
이것이 『즉각해탈』
이란 의미입니다
안녕하세요,자비로운
무상사님,저는
일관도를 믿습니다
일년 반 이상 전에
절에서 명상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건 궁극적인 법문이
아니었다는 게 제 마음
속에 매우 분명합니다
저는 궁극적인 해탈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깨달은 스승님과
법문을 찾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부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며칠 전,
뜻밖에 당신의 제자
한 분을 알게 되었어요
그는 저에게 당신의
강연 오디오 테이프와
견본책자를 보내왔어요
그걸 받아서
책을 펴볼 때
광대한 밝은 황금빛이
갑자기 나왔어요
저는 많은 불교서적을
읽었지만
이런 현상을 결코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요
게다가
책의 페이지마다
황금빛이 나옵니다
심지어 당신의 뉴스가
실린 월간회보에 있는
말씀에서도
빛이 나옵니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야기하며
이게 부처의 빛인지를
무상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이건 너무 심하네요
또한 난처하네요
나 역시 충격이에요
그건 매우 강력하죠
그게 불광인지는
몰라요
그게 불광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수행을 아주
잘 하니 알아야 해요
생각해보면 그건
불광일 지도 모르죠
어떻게 마야에게 빛이
있겠어요? 그렇죠?
마야의 빛은
황금색일 수 없어요
더 높은 세계에서 오는
빛만이 황금색입니다
그렇죠? (네)
불광임에 틀림없어요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제 두 아이를 데리고
가부좌 하고 앉아
함께 명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나모 칭하이 무상사를
나와 함께 20번
암송하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명호를
암송한 지 오래지 않아
제 몸이 사라져 버리고
공중에 떠 있던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 때에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매우 이완되고 편안한
것처럼 느꼈어요
명상을 배운 이래 이런
체험은 결코 없었어요
여섯 살 된
둘째 애가 말하길
당신의 명호를 암송 후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는 몰라도
둥근 모양의 빛이
노랑,빨강,보라와
다른 색들을 번갈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그날 밤 저는 다리를
건너는 꿈을 꾸었어요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건널 수가 없었어요
그 후에 당신이 나타나
제 손을 잡으시고
다리를 건너셨습니다
저에게 이런 체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처음 당신의
사진을 보았을 때,
모든 사진 속의 당신의
얼굴 머리 눈에서 매우
강한 빛이 나왔어요
그 빛은 너무 강해서
전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의
그림을 보면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어요
아무리 애를 써봐도
더 이상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사진에서 나오는 빛을
다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천히 하세요
이미 그런 좋은 체험을
가졌는데
왜 아직도
의심하나요?
당신 자신의 의심은
당신에게 큰 장애예요
믿음이 모든 덕과
공덕의 어머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부처도 당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내가 당신에게 좋고
진보하게 도와줘서
더 나은 자로 만들고
더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땐 계속해서
나를 따라도 됩니다
왜 고군분투하나요?
아무도 강요치 않아요
됐나요?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난 누구도 강요치 않고
남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다 자신의 인연이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야만 해요
어떤 길을 선택하든
계속하세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매우 높은 과위를
얻었다고 말하는데
중생들이 고통받는
광경에 당신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시며
채소를 먹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십니다
옛 부처님들도
눈물을 흘리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예!
석가모니부처의
경전에도 나와있죠
심지언 채소를
먹고 있는 중에도
자신의 아들의 살을
먹는 비젼을 보고
즐길 수 없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도
말했습니다
채소를 먹는 것은
최후의 방책이라고요
이건 경전에
기록돼 있습니다
무상사님,
누군가가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심지언 그가 부처가
되기 전에도
보이지 않는 힘을
얻어
조용하게 중생을 돕고
이 세상을 도울까요?
예!
우리 제자 모두다 그걸
알아요 매우 명백하죠
안녕하세요, 스승님
제가 듣기론 성경에
언급된 악령이
오늘날의
영매나 무당,
아수라 영에 의해
조정되는
야바위꾼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정도를 따른다고
할 수 없으며
삼계로부터
해탈하거나
신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지요?
그들도 할 수 있어요
그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신을 믿기 때문이죠
그들도 가장 높은 신을
믿고 있습니다
단지 때로
이 조그만 영들이
신이라고 실수한 거죠
시간이 좀 지난 뒤
그들의 때가 되면
그들도 깨어날 거예요
신도 도에 대한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며
옳은 길로
그들을 인도함으로써
보답해 줄 겁니다
때가 되면 신이
모든 사람을 구합니다
단지 시간 문제지요
우리는 사람의 내면의
믿음을 보지 못합니다
어떨 때 어떤 사람의
외적인 행동이 아마도
낮은 등급처럼 보여도
도를 추구할 목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죠
그는 그런 것들을
함으로써 도를 이룰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이전의
스승에게 속아서
99명을 죽인
사람과 같습니다
그 스승이 그에게
정오가 되기 전에
백명을 죽이면
부처가 된다고 말했죠
그래서 부처가 되기
위해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은
도에 대한 큰 신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신실치 않아요
우리가 방금 말해준
톨스토이 얘기처럼요
그건 훌륭한 예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
만을 점검해야 하죠
남들의 마음을
봐선 안됩니다
무상사님
석가모니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다음
부처가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수많은 당신의 제자가
당신이 부처가 됐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냥 자신을 쓰레기
수집가라고 말하나요?
쓰레기란 나쁜 업장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전 우주에 있는
모든 부처들이
쓰레기 수집가이며
기꺼이
중생의 나쁜 업장을
수집하려 합니까?
그렇기도 아니기도해요
어떤 부처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며
어떤 이들은 안해요
이건 당신이 그걸 하길
원하는지에 달렸어요
당신이 부처가 된
다음엔 더 이상 말할게
많지 않습니다
부처가 된 다음엔,
스스로에 대해
별 느낌이 없어요
왜냐하면 더 이상
공덕을 원치 않으며
복도 개의치 않게
되니까요
당신은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그들로부터 나쁜 업을
모읍니다
그래서 부처가
쓰레기 수집가라
말하는 건 옳습니다
하지만 부처가 된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수집하지 않지요
그래서,
선 얘기를 읽거나
옛날의 영적수행에
대한 얘길 읽게 되면
대부분의 깨달은
스승들이 매우
엄격한 걸 봅니다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 사람을 시험하며
수년동안 힘든
노동을 시키곤 했죠
심지언 그 이후로도
그 사람에게 법문을
전해주지 않기도했죠
밀라레빠의 얘기는
전형적인 거예요
혹은 6대 조사인
혜능이
거기서 8개월 동안
매일 쌀을
빻았던 것처럼요
누구도 그에게 뭘
가르치지 않았어요
또 임제선사의
얘기를 보면, 그는
수년 동안 스승의
절에서 살았지만
스승을 뵙는 게
허락되지 않았죠
그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내던져 졌습니다
세번이나
두들겨 맞았죠
우리 시대엔
겨우 한번 맞는 것도
벌써 견디질 못해요
모든 부처의 서원은
다 다릅니다
어떤 부처는
모든 중생들에게
어떤 차별도 없이
전해주고자 하지요
또 어떤 부처는
오직 더 높은 영적
세계에 있는 중생들만
제도하려고 합니다
이 물질계 존재들에겐
관심이 없으며
인간은 가르치지 않죠
어떤 부처는
오직 지옥 중생만
제도하려고 합니다
어떤 부처는
가장 고집세고
가장 어려운 존재들을
제도하려고 합니다
이건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죠
무상사님
석가모니 부처님은
49년동안 강연했어요
그렇게 강연이 많은데
왜 부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죠?
왜냐하면
그의 불성은 한 마디도
안 했기 때문이에요
그의 조용한 불성은
말하지 않았어요
선은 말을 안 씁니다
그는 말한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중생이 청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부처가 된 다음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좋다고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좋다는 걸 모르기에
고통은 고통이며
행복은 행복이라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
행복을 요청하고
고통을 피할려고 해요
만약 그들이 부처가 된
사람에게 그들 자신을
인도해 달라 기도하고
깨닫게 해 달라고
무지의 구름이 걷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그들도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몇 마디를 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그걸 요구했으니까요
아니면, 그는 어떤말도
해선 안된다고 느끼죠
왜냐하면
때가 되면 모두가
부처가 될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어쨌든
원래는 부처입니다
그게 그의 생각이었죠
이해하겠어요?
부처는 고통이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설사 그가 말해도
실제로는 안 한 거죠
그가 이런 것들을
말한 것은 그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말해야만 했기 때문도
아니라고 했어요
오직 중생들이
이런 것들을
듣기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했어요
원래 이런 것들은
그의 마음에 없었어요
이런 것들은
중생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입니다
그가 그 메시지를
받을 때
단지 되 비춰준 거죠
스승님, 예수 그리스도가
이 고통스런 세상에
와서 인간을 인도한 건
모든 사람들이 압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처럼
관음법문을
수행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왜
성경엔 기록이 없죠?
기록돼 있습니다!
어떻게 없겠어요?
관음법문을
가르치지 않고서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했던 사람은 없어요
왜냐하면
관음법문은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유일한 법문이니까요
만약 사람들이
이 길을 모른다면
고통을 피할수 없어요
이 법문에 대해,
소리에 대해 수많은
암시가 있어요
예를 들면,
영적 수행자들은
천둥소리와
바다 소리를 듣지요
모두
관음법문을
수행함으로써 오는
내면의 체험입니다
당신이 입문하면
알게 될 거예요
성경에서 언급된 신이
불교에서의
부처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두 이름이 다른가요?
사람들을 혼란시켜요
맞습니다!
가장 높은 부처님이
신이죠 혹은 범어로
신은 『아뇩다라
삼냑 삼보리』 혹은
최고의 부처님입니다
그럼 왜 두 가지
다른 용어가 있죠?
왜냐하면 이 세상엔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예요
예컨대 『부다』는
범어이고
인도언어입니다
중국어로는 『포 투오』
라고 발음합니다
번역한 게 아니지요
중국어로 부처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할 수 없었어요
우리가 가진 건
천신이나 신선들이죠
우린 그 유명한8선
같은 나이가 없는
신선들이 있었어요
고대에는 부처라는
용어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몇몇 중국인이
인도에 불교를
배우러 갔으며
인도 승려 몇 명이
진리를 전하려고
중국으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부처와
살아있는 부처와
중국의 신선을
구별하길 바랬어요
그들은 사람들이
고대 신선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신 살아있는 부처를
숭배하길 바랬어요
그래서 부처에게
『신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부처』라고
부르는 겁니다
범어로 『부다』 는
중국어 발음으로
『포 투오』가 됩니다
반면에 히브루어로
득도한 사람을
『그리스도』 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이런 사람은
메시아 혹은 예언자라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죠
『예수 부처』라고
불러도 됩니다
같은 거죠
혹은 『석가모니
그리스도』도 되요
그리스도는 부처라는
뜻이죠 본래 언어의
용어가 번역이 안되어
지금 이와 같이
되어 버린 겁니다
모두 같은 거예요
이건 매우 단순하죠
정말 단순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어로
『유-모』라는 말은
영어에서 온 겁니다
『유-모』는 재미있는
것이나 사람을 웃거나
행복하게 한다는 뜻의
유머입니다
재미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에요
『유머』라는 영어를
빌려온 것입니다
가령 『유머』라는
뜻의 다른 중국어가
있었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대신 『유-모』라고
하면 헷갈리게 됩니다
이 말들은
사실 같은 말입니다
스승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족들의 기대가
우리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도를 깨우치고
배우려는 목적으로
살며 관음법문을
수행해야만 진정으로
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깨닫거나, 진정한
자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도, 이번 생에
고통에서 해탈하지도
못한다면 우린 다시
돌아와야 할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 돌아올 거예요
『오! 난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이게 첫째 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우린 그것에 대해
뭔가 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그들의 이상이
있고 우린 우리게 있죠
만일 불화가 있다면
감싸 안으며 말하세요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해요 여러분이
없다면 살 수 없겠지만
저만의 이상이있어요』
불화는 없을 거예요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고위관리는 나라에
자신만의 책임이
있으며
이것들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사랑해서
그들도 돌봐야 하지요
그는 나라 일을
돌보거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가족을 등한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지요
그저 가족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말하세요
무상사님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임종 시에
전생과 이번 생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저승의 왕 앞에서
이생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영화를 보듯이
재현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게 사실인가요?
우리가 보고 싶지
않다면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거를 보는 일은
때론 매우 창피한
일이니까요
맞아요!
우린 보지 않는 걸
선택할 수 있어요
그건 자동체계이며
저승의 왕이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버튼을 누르는 건
우리의 업이지요
이런 곤란한 상황을
피하길 원한다면
인과의 영역과
저승의 왕의 영토를
넘어서서 그의 땅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 가지 않으려면
영적 수행과
깨달은 스승을
갖는 것을 통해서
큰 공덕을 얻는
방법 밖에 없어요
내가 보장하는데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그런 영화를
보지 않게 될 겁니다
알겠어요?
자비로운 스승님
전 곧 결혼할 건데
제 약혼녀와 전 둘다
채식주이자이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연회에서 고기를
대접하라고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먼저 부모님을
설득시키세요
당신 둘 때문에
동물이 죽는다면
결혼에 좋지 않은
영향이 될 겁니다
살생의 업이 당신의
행복한 결혼생활에
영향을 줄 거에요
불교 경전에 보면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지장보살경과 같은
경전에 보면
아이가 태어날 때
결혼식이나
축하행사 혹은
장례식에서,죽거나
태어나거나 결혼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즐긴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기가 태어날 때
아기를 위해
동물을 죽인다면
그 아이는 종종 아프고
부모들, 특히나
그 엄마가 불안감을
느낄 겁니다 왜냐면
많은 유령과 영혼들이
아이와 엄마를
따라다닐 테니까요
우리가 고인을 위해서
동물을 죽인다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훨씬 퇴보하게 됩니다
아마도 천국에 가기로
되었지만 그 대신
지옥에 가게 될 거예요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주려고 동물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축하하려고
동물을 죽인다면
그 부부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을 테고
아이들도 예쁘지
않을 거예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제가 듣기론 깨달은
스승의 보호 없이
기공을 수행하고
명상을 수행하면
마장에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진짜 깨달은
스승을 알아보나요?
그 사람이 덕이
있는지 기공을
가르치는 동기가
무엇인지 보세요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가르치는지, 돈을
벌려는 것인지 보세요
그가 그의 법문을
전수할 때
즉시 뭔가를
얻게 되는지 보세요
그럼 그가 진짜 스승
인지 알게 될 겁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채식인은 자비로워야
한다고 하던데요
자비심을 가지는 것은
사람들이 우릴
비난하고 오해할 때
마음 쓰지 않고 그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대한 화를
참는 것을 뜻하나요?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 관점을 표하는데
폭력을 써선 안됩니다
우린 많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 백의 이야기를
기억하지요?
이 백은 시인입니다
그가 당 황제를
방문하는 동안에
황제는 야만국에게서
도전장을 받았어요
황제는 싸우기 위해
군대를 보내고
싶어했지만 이백은
황제에게 충고하길
『그렇게 하지 말고
대신 먼저 대화해
봅시다 그들은
우리 반응이 어떤지,
두려워하는지 보려고
그 편지를 보냈습니다
먼저 대화를 해서
우리에게 싸울 힘이
있지만, 전쟁을 통해
많이 죽게 될테니
무력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요
대화 이후에
문제는 해결되었고
두 나라는 전쟁을
하지 않았지요
이건 이런 뜻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군사력이 있으며
고도로 훈련된
전투기술을 지녔지만
전쟁을 하길 싫어했죠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이게 나은 방식이죠
이 대답은 야만국이
당황제와 그 정부를
존경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우린 때때로
자신의 견해와 힘,
지혜를 표현하길
갈망하지만
강제적인 방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방금 대학생인
우리 제자에 대해
들은 이야기처럼요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면 웃으면서
『고마워요』하죠
이건 그가 연약한
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매우 행복하고
타인을 용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친구들을 감동시켰죠
만일 그가 평소처럼
흥분해서 화를 내며
대꾸하거나
친구와 싸웠다면
그 친구는 오늘
나의 강연을 들으러
와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알겠어요?
과거 영적수행자였던
사람들은 이번 생에도
좋은 사람인가요?
대부분 그래요
그가 매우 높은
영적 등급을 얻었다면
이번 생에도 분명히
훌륭할 겁니다
그가 수행한 법문과
수준이 매우
높지 않거나, 나쁜
법문을 수행했다면
그는 돌아와서
이번 생에도 길을
잃었을 겁니다
자비로운 스승님
『성인은 꿈을 안꾼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을 많이 꾸는 것은
나쁜 업 때문인가요?
업은 우리가
수집한 모든 과거의
인상을 말합니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만약 업이 너무 많으면
넘쳐서 우리가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을 꿈이라고 해요
마치 이 잔의 물과
같습니다
만약 물을 너무 많이
채우면 넘칩니다
성인은 그의 과거
기억을 모두 지워서
과거나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지 않는 겁니다
자비로운 스승님
전 아직 입문 안했지만
자주 명상을 합니다
제가 명상할 때
제 몸의 아래 부분이
얼음처럼 차갑고
저립니다
왜 그런 겁니까?
얼음처럼 차가워요?
걱정 마세요
계속 명상하세요
잠시 후에는
따뜻해 질 겁니다
따뜻해 지면
일어서도 됩니다
저는 채식을 합니다
저는 부추팬캐익을
파는 일을 합니다
대량으로 사서 팝니다
만들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판다고요?
(부추 팬캐익 입니다)
고기가 들어가나요?
파가 들어가나요?
그건 심각하지 않아요
라드(돼지기름)가
약간 들어갑니다
라드가 들어있군요!
제가 입문을 하면
이것이 수행에
영향을 줄까요?
다른 종류의 팬캐익을
팔 수 있어요
칭하이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우리 진아가
부처의 빛입니까?
부처의 빛과
부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부처는 빛이기도 하고
소리이기도 합니다
부처의 빛과
부처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가 빛입니다
그 빛이 부처입니다
하지만 빛은 안보여요
보일 수는 있지만
만질 순 없어요
그리고 일반적인 눈엔
보이지 않습니다
부처는 내면과 외면에
빛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빛에서 왔지만
물질적 육체로 변하여
우리가 보고 만지고
도움을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다 같아요
빛은 부처이고
부처는 빛입니다
그 둘의 밀도가
다를 뿐입니다
운명은 우리 손에
있지만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우리가
운명의 제어권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정해진 운명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칭하이
스승님
만약 누군가가 약자를
괴롭히는 걸 본다면
그 약자를 위해
맞서야 합니까?
그 사람이 전생에
그 불량배에게 빛을
졌나요?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불량배에게
약자를 약탈하지
말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니면 약자가
불량배가 원하는 것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
약탈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지요?
그냥 『원하는 걸
가져가고 저를
해치진 마세요』라고
하세요 그렇죠?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우릴 약탈하려고 하면
그냥 원하는 걸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약탈할 필요가 없지요
당신은 줄 수 없나요?
그걸 원하지 않나요?
주기 싫다면
그들을 설득하여
약탈하지 말고
떠나라고
해보세요 가능하면
그렇게 하세요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에게
전생이 빚을 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알기 위해서는 영적
수행이 필요할 겁니다
스승님
당신의 테이프에서
고귀한 영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요가에서 말하는
전 우주의 힘을
담고있는 개인적인
힘과 같나요?
네!
고귀한 영혼이라고
말한 것은 이 용어를
더 잘알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인도 요가
용어를 쓰면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같아요
그래서 『부처』와
『그리스도』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가 살았던 나라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최고의 힘을
나타냅니다
예수는 하느님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했죠
하지만 부처는
인도에 살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다른 용어를 썼어요
내가 중국어로 말할 때
『고귀한 영혼』
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하느님』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같아요
존경하는
스승님
의지가 강한 사람이
어떻게 굴욕을 견디는
수행을 할까요?
방법이 있어요
집에 가서
매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점검해보세요
그날 잘못한 게
없다면
노트에 빈공간을
남겨주세요
그 날 또 잘못 했다면
그곳에 체크해두세요
매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점검해봐요
언젠가 당신의
약점이 없어져서
자신을 제어하게되고
좋은 품성만
남게 될 때까지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성격을 바꿀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기독교도인 제 친구가
왜 석가모니 부처는
항상 인과를
강조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런 인과응보는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그가 가혹한게 아녜요
이 세상에
인과응보가
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한 것 뿐이에요
주의를 둘러보면
알게 될 거에요
가령
어떤 이가 살해되면
그의 가족은
법이 무서워 감히
살해자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그를
경찰에 넘기려 하죠
이건 인과응보와
같은 거에요
이생에서 그걸
볼 수 있어요
그걸 논할 필요가 없죠
그건 성경에도
나와있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은 『뿌린대로
거두리라』
이는 업장을 뜻하죠
『업장』이란 말이
성경에 쓰여지지
않았을 뿐
같은 의미에요
『나 배고파』혹은
『난 먹을걸 원해』
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은 의미에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방금 즉각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신의
과거를 알아야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우리의 과거를
알 수 있나요?
입문하세요
스승님
우리가 잠자는 동안
자신이 침대에 누워
꿈을 꾸고있다는걸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실제로 꿈꾸는 게
아니라
영혼이 나간거라고
들었는데요 맞나요?
어떻게 꿈과
실제 내면의 비전을
구별할 수 있나요?
깨어난 후에도
무엇을 꿈꿨는지
분명히 기억한다면
그건
영적인 체험입니다
깨어난 후에 단지
막연하게 기억한다면
그건 아닙니다
먼저, 영적 수행자인
우리의 꿈은
종종 꿈이 아닙니다
때로 우린 마치
누군가의 몸을 보듯이
누워있는 자신의 몸을
볼 때가 있어요
그런뒤 내면의 자아가
빠져나가 다른 나라나
다른경지를 방문하는데
그건 꿈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영적 체험입니다
제가 입문하지 않아도
집에서 혼자
명상할 수 있나요?
네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어요
다른 스승한테
명상을 배우거나
방편법을
수행해도 됩니다
무상사님,
방금 사람들의 미래와
과거를 볼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해
인과에 개입할수 있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길거리에서 죽은
사람을 보거나 차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면
그들의 나쁜 인과에
개입해야 하나요?
가서 다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나요?
그들을 도와줘야해요
이건 그것과 달라요
내가 들려준 이야기 속
그 소년은
신통력이 있었어요
그는 더 높은 경지로
가서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걸 보는
신통력을 얻었죠
예를들어,이야기에선
그의 대모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몰래 사귀고 있었어요
그의 대모는
그 사실을 몰랐었죠
하지만 신통력을 가진
그 소년은 그걸 알고는
그녀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죠
그녀가 사실을 안 뒤
가정이 파탄났어요
나중에 그 남편은
더 형편없게 됐어요
그는 더 많은 여자들과
사귀며 사람들에게
문제를 안겨줬어요
그리고 소년의 대모는
그 일을 알고 난 후에
더 우울해져서
매일
술을 마셨어요
그녀의 건강과 영혼은
피폐해졌고
상태가 악화되었죠
그녀가 몰랐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므로 이 경우는,
사람들이 몰랐었는데
그가 신통력을 써서
의도적으로 알아내고
그녀에게 말해준거죠
하지만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걸
자연스레 보게 된다면
당장 그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왜 망설이죠?
스승님
부처의 32길상과
80종호란
화신을 의미하나요?
그 화신들을 보려면
천안이
열려야 하나요?
육안으로
볼 수 있나요?
네, 그것들은
그의 영체 혹은
그의 화신들입니다
그걸 보려면 종종
천안을 사용해야 해요
하지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 수행으로
육안이 천안으로
발달되죠
불경에 기록되길,
사람들은
눈이 다치지 않고도
육안으로
천국과 지옥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이건 법화경에
나와있어요
『큰 스승의 공덕』
이란 장에
쓰여 있죠
내 제자들 중 여럿이
그들의 천안이나
육안으로
많은 비전들을 봅니다
여러 상황들이
있어요
존경하는
스승님
안녕하세요?
전 일관도
신자인데요
저희 일관도의
많은 고참스승들이
당신에게 입문하러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신참신도들도
입문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게 하면 일관도에
영향을 주나요?
우리는 스승들이
우리에게 구도의
기회를 주신점에
감사드리지만, 많은
신도들이 당신 강연을
듣고싶어하며 당신을
조용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입문하면
우리 스승을
배신하는 건가요?
우리가 불충한가요?
방금 우리 입문자의
보고를 들었을 겁니다
여러분이 신실하지만
실수하는게 두렵다면
여러분의 큰스승이나
모레 만달라에
물어보세요
칭하이 스승님에게
배우는 것이
옳은지 물어보세요
그럼 말해줄 거에요
가서 제공 부처에게
물어보세요
일관도의 여러
스승들과 고참들이
내게 배우러 왔어요
사실이에요
그들도 나를
매우 존경합니다
당신도 할 수있어요
수행은 자기 자신의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다른 누군가가 우리가
생사해탈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말을 들을 수 있죠
그들이 해탈을
보증하지 못하거나
즉각 깨달음을
줄 수 없다면
해탈하도록 도와줄
더 높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를 추구할 땐
어떤 법문을 따르든
우린 모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많은 지혜를 얻고
우리 나라와 사회를
돕기위해 더 큰 힘을
얻길 바랍니다
우리 스승이나 단체를
배신하기 위해
나쁜 일 하는게 아니죠
그렇죠?
일관도도 사람들이
부처가 되도록 돕고
생사해탈하고
지혜를 얻도록
도우려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들이그걸
줄 수 없다면
여러분은 조용히
내게 와서
구해도 돼요
행복을 찾기위해
혼자서 수행해도 되요
당신은 계속
그들 모임에
참석해서
고참들에게
봉사할 수 있어요
난 붙들지 않아요
나는 단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에요
조용히 수행하고
자신이 칭하이 스승의
제자라고
적어놓지
않아도 되요
우리가 도를 배우고
다른 이를 해치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건 옳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내 가르침은
일관도 대스승이나
제공부처의 가르침의
어떤 것도
어기지 않아요
나도 사람들에게
선행하라고 가르치죠
난 거기다
즉각 깨달음을
더해줄 뿐이죠
그러므로 여기 오면
추가로 깨달음을
얻게 되어
최고의 일관도신자가
될 겁니다
뭐가 문제되겠어요?
여러분을 대신해서
모든직원에게 감사해요
늦게까지 일하며
우릴 기다려주셔서
고마워요
큰 공덕이 있기를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