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
 
영적 수행과 계율 - 1부 1991년 3월 3일, 미국 포틀랜드 오레건 (어울락어)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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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수행과 계율』 칭하이 무상사 강연
미국 포틀랜드 오레곤 1991년 3월 3일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들께 존경하는 칭하이 무상사를 소개하겠습니다 1 년도 더 전에 한 친구가 제게 칭하이 무상사 님의 강연 비디오를 빌려줬습니다 그 당시,전 이 비디오테이프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른 많은 강연에 제가 참석했으니까요

이 비디오가 다른 강연과 비슷하다고 여겼어요 이 비디오를 보려고 집에 가져간 뒤 전 이 테이프가 완전히 다르단 걸 발견했습니다 스승님의 설명이 아주 의미심장했지요 그래서 전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전 입문을 신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스승님의 설명이 아주 논리적이고 그녀가 가르치는 진리가 어떤 종교도 배척하지 않으면서 모든 종교와 조화로웠거든요 입문한 뒤로 전 많은 내면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또 물질 생활보다 더욱 고귀한 뭔가가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제겐 탐험하고 나아갈 더 밝은 미래가 생겼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제 이런 변화를 보고 전보다 더 많이 절 좋아합니다 매일매일 물질에 대한 제 욕망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집,돈에 대한 제 욕망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선활동을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더욱이 아주 소소한 것이라고 해도,제가 스승님께 구하는 것에 항상 도움을 받습니다 총 12명인 식구들도 모두 입문을 했고 모두 내면으로 좋은 체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길과 일상 생활에서 우리를 안내할 스승을 가진 걸 행운이라고 느낍니다

오늘, 스승님께서 우리의 초대에 받아들여서 여기 오셔서 모두가 이로울 수 있도록 진리의 가르침을 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스승님 이제 칭하이 무상사 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신사숙녀 여러분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도 여전히 여기 진리를 들으러 와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어울락(베트남)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적인 미국인들도 진리를 들으러 오셨습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세상과 우린 미래에 대한 희망 세계에 대한 희망, 미국에 대한 희망, 어울락(베트남)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어울락 (베트남) 인들은 영적 수행에 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어울락 인들 대부분이 절과 교회를 가거나 특정 법문을 따르고 특정 종교단체를 따르며 수행을 합니다

여기에선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명상과 불교를 연구하지요 그들도 성경을 배우며 종교를 하나 따르거나 지금 현대 시대의 유명한 스승을 한 명 따르고 유명한 법문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내가 왔어요 제자들에게 초대를 받은 것과 별도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적 수행에 보다 정진하도록 상기시켜서 우리 세상에 문제와 폭력이 줄어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적 수행에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선한 사람의 등급도 많이 있습니다 영적 수행에는 수많은 법문이 존재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영적 성취를 얻으려면 금욕적으로 살고 이런 저런 걸 하고 계율을 지키고 부처에게 절하는 등 이런 저런 걸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깨달음은 자연스레 얻어지므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리 금욕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영적 수행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도록 수많은 영적 개념을 발전시킵니다 예를 들어 여기 오레곤의 많은 미국인들이 이미 영적 수행에 대해 뭔가를 알았기 때문에 이 강연에 참석하러 왔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그들이 설교자나 영적 수행에 대해 처음 들어본 거라면 그들이 여기 오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안내하고자 공개적으로 영적인 길을 확립해온 모든 스승들에게 공덕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스승들이 제자들의 수준과 그와 배우려고 오거나 진리에 대해 배우려고 오는 사람들의 목표에 따라서 다른 법문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우리가 채식을 하도록 하고 계율을 지키며 영적 수행에 엄격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스승을 만난다면 그건 우리 가슴이 그걸 원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 가슴은 올바르게 수행하길 원합니다 영적 수행에 엄격하길 원하지요 우리 가슴은 세속적인 추구에의 집착을 줄이기 위해 절제와 계율을 가지고 수행했던 고대 스승의 모범을 따르려고 해요 그건 우리 가슴이 그렇게 원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 가슴은 그런 이상을 좋아하죠 우리는 그런 이상이 매우 높다고 믿으니 그걸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수행에서 희생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그럼 조만 간에 우리의 이상과 어울리는 스승을 만나서 수행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스승들을 만나면 즉시 그들을 좋아해요 그들이 뭘 말하든 즉시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바로 우리가 늘 원했던 것이며 우리가 기대한 것이며 우리의 이상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또는 예를 들면 우린 진지하게 수행하길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소위 신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응보가 무엇인지 자연의 법칙이 무엇인지 천국과 지상의 법칙이 무엇인지 인류 진화의 법칙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도 알고 싶어하지만,규칙을 따라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자신을 단련하고 싶어하진 않습니다,채식도 원하지 않지요 우린 할 수 있는 한 수행을 원할 뿐입니다 그게 다지요 얼마나 조금 이해하든 그게 좋다고 간주되죠 우리가 삶을 즐기고 싶어하면서 또한 영적 수행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면 그럼 우린 분명 우릴 그렇게 가르칠 스승을 만날 겁니다

그들도 우릴 가르치기 위해 이전 스승들이나 오래 전 높은 스승들에게서 교리를 가져옵니다 그들은 부처는 열반이 어떻다고 말했으며 예수는 천국이 이렇다고 말했으며 공자는 이렇게 노자는 저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들도 우리에게 그걸 설명하고 소개하고자 그런 최상의 가르침을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여러분이 원하는 걸 모두 할 수 있으며 하고 싶은 대로 탐닉할 수 있으며 바라는 만큼 자신을 풀어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신은 관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분이 뭘 원하든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부처와 보살은 중생들을 꼬치꼬치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런 두 방법이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스승들 대부분이 엄격하게 조심하며 수행해야 한다고 말할까요? 그들은 진지해야 하고 훈련 받아야 하며 계율을 지키고 채식을 해야 합니다 그럼 높은 수준의 영적 성취를 얻을 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신이 인류를 제한하고 자비롭지 않으며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간섭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승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이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까 봐 난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이 둘 다 논리적으로 들리고,좀 비슷하며 여러분이 최고의 목표를 얻도록 돕는다고 주장해도 결국 그들은 똑같습니다 그들도 같은 가르침을 이야기하며 서로 비슷합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규칙과 자기 수양입니다 하지만 규칙과 계율이 있고 채식을 하는 방법이 우리에게 더 많이 이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우리를 제어되지 않는 길이나 계율이 없는 길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게 우릴 돕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의 마음은 유한하니까요

세세생생,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고 저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도록 세뇌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하는 게 모두 옳다고 믿도록 말을 듣습니다 난 우리가 그걸 인정하지 못할까 봐 우리가 우리 능력을 믿지 못할까 봐 우리가 우리 스승의 말을 믿지 못할까 봐 난 두렵습니다

신이 자비롭지 않고 죄를 용서 않는다고 신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우리입니다 따라서 난 어딜 가든 이렇게 조언합니다 궁극의 목표를 얻고자 수행하길 원한다면 우린 계율을 지켜야만 합니다 우린 채식을 계속 해야 합니다

우린 이 세상에서 인간의 도덕기준에 따라서 일해야 합니다 나중에 영적 수행으로 우리가 더 높은 등급에 오른다고 해도 우린 모든 것을 꿈으로,환상으로 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꿈 속에 있는 동안 환영 속에 있는 동안 우린 그 법칙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예를 들어,어울락 (베트남)의 소는 보통 소의 코를 이렇게 꿰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울락에서는 누가 소를 사면 콧구멍 한 쪽을 이렇게 뀁니다 왜죠? 그 소가 고집이 세니까요 그래서 그 코를 이렇게 꿰야 합니다,그리고 코뚜레를 당기지요 그럼 고통이 느껴질 때 그 주인을 따라야 하죠

이 세상에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벌이 없거나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 격려가 없다면 그럼 이 세상의 삶과 재산 시민들의 영혼은 위협 받을 테고 죽음을 위협 받을 겁니다 그러므로 업의 법칙이 이 세상을 통제하고 질서를 잡아두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우린 이미 이 세상에 있으니까 코뚜레를 한 그 소처럼 우리가 우리를 끄는 밧줄을 따르지 않는다면 많이 괴로울 겁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우리 코를 꿴 고리를 부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린 말할 수 있죠 『난 자유야 원하는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아직 못했어요

우린 그걸 끊지 않았지요 여전히 이 세상에 살며 이른바 이 몸의 감옥 안에서 삽니다 따라서 우린 상황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고대부터 세상의 모든 유명한 스승들은 그들의 제자들에게 계율을 지키고 법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를 보호하고 존경하라고 조언해왔습니다

그럼 우린 이 세상을 초월하기 위해 궁극의 목적을 이룰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내게 말합니다,언어는 덧없으며,이 삶은 환영인데 왜 당신은 채식과 육식을 구별하며 이런 개념과 법칙을 구별합니까? 난 말했어요 『채식을 먹는 것과 고기를 먹는 게 같다고 말한다면 우리 부인과 다른 사람의 부인이 같은 건가요? 그럼 결혼할 필요가 없네요,그렇지요?

우리 돈이 다른 사람의 돈과 같다면,그럼 우린 돈을 벌려고 일할 필요가 없군요 그냥 돈 많은 은행을 찾아서,거기 가서 돈을 가져가세요 결국 우리 돈이니까요』 우린 그 수준에 이르지 않았어요,그렇죠? 누구든 우릴 치면 우리도 고통을 느끼고 화가 나면서 받아 치고 싶어합니다

예수가 그랬듯이 사람들이 우리의 오른 뺨을 칠 때 그들에게 우리의 왼쪽 뺨을 내 줄 때 비로소 우린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와 예수조차 최후의 순간까지 채식을 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과 불경을 주의 깊게 보세요 그럼 여러분도 이에 대해 알 겁니다 우리가 부처보다 낫고 예수 그리스도보다 낫기 때문에 채식과 육식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육조 혜능은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선 스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적으로 수행했을 때 그는 여전히 채식을 계속했어요,알겠죠 그는 16년 간 정글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는 사냥꾼들 틈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채식을 계속 했습니다

그 사냥꾼들은 그에게 물었죠『왜 당신은 고기를 안 먹나요?』 그는 자기 위가 고기를 소화 못한다고 했어요 이런 식으로 그는 채식과 영적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육조 혜능은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미 의발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건 그가 그의 삶을 보존하고,법을 보호하길 원했거든요 그건 가르침을 펴기에 합당한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는 정글 속에 숨어야 했던 거였어요 하지만 그는 이미 의발을 전수받았어요 그는 그의 스승인 오조에게서 육조로 확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왜냐하면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숨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깨닫지 않았기에 우리는 채식과 육식을 차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깨달았고 의발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여전히 채식을 계속했습니다

또 그 당시 그는 절이 아니라 사냥꾼들과 살았어요 그러니 우린 그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모범을 보였다고 다른 스님들이 그를 괴롭힐까 걱정해서 그의 스승이 그를 욕할까 두려워서 독실한 불자들의 비난을 무서워해서 계율을 지켜야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절에서 산다면 우린 그에게 채식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절에서 사니까요 하지만 육대 조사 혜능은 16년 동안 정글에서 숨어있었고 고기를 먹는 이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고기를 먹는 건 보통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냥꾼이었고 고기를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계율을 지켰고 채식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채식이 우리 영적 수행에 아주 이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무형의 의식 등급을 얻고자 한다면 그게 없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보통 등급을 제한된 이해와 특정 정도만을 얻고자 한다면 그럼 우리는 뭐든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위대한 지식과 더 명석한 이해를 얻기 위해 우리 몸과 말,마음이 더욱 차분해지길 원한다면 그럼 우리는 우리 몸과 말,마음을 순수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수관은 뭐든 괜찮습니다 그게 깨끗하든 더럽든 괜찮지요,그걸 수원에 연결하면 물이 나올 겁니다 물이 있지요,그럼 우린 물이 흐르는 걸 보고 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깨끗하진 않죠 때때로 그 물을 우리가 마신다면 우리 영혼에 영양 상 최상은 아닙니다 대부분 그게 우리 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배수관이 아주 깨끗한 경우 그 수원에서 흐르는 물을 우리는 바로 먹을 수 있습니다 끓일 필요가 없지요 그건 우리 영혼에 매우 이로우며 우리 몸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비슷하게,우리 몸은 신에게서,신의 기적에서 창조됐지요

우리가 몸 안에 장애를 만들어서 그게 더러워지거나 오염되게 만든다면 그럼 이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 우리 몸에서 흐르는 신의 생명의 근원도 흐릿하게 될 겁니다 분명 그게 어느 정도로 어두워질 겁니다 그것의 이득도 분명 많이 줄 테고 때로는 이 세상에 그것이 약간은 해롭기도 할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실로 천국과 지구를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실로 인류와 세상에 유용한 도구가 되고자 한다면 그럼 몸과 말, 마음을 정화하고 채식을 지키며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를 아주 순수한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럼 우리에게서 뭐가 나오든 순수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끗이 닦이지 않은 배수관처럼 다른 수원과 다른 배수관처럼 거기서 물이 흐른다고 해도 가장 순수한 정도는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중 누구라도 전에 육식을 했는데 나중에 채식인이 됐다면 그 때 채식과 육식의 차이점을 느꼈을 겁니다

한 번도 채식을 안 해봤고 고기만 먹었다면 그럼 이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채식은 강요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채식이 정상이며 필연적인 거라고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맹세라고 우리가 깨닫는 데서 옵니다 그럼 그건 좋지요

어제,내가 12시 자정 경에 막 도착했을 때 난 다른 수행자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한 수행자가 말했어요 날 알기 전에 그녀도 채식을 했지만 한 달에 이틀만 했다고 말이죠 그녀는 매달 30일과 1일에만 채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들 모두에게 말했어요 『매달 30일과 1일에 내게 일러줘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릴 거야』 일깨워질 때조차 채식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시계 바늘이 자정을 가리킬 때까지 계속 시계를 보다가 그렇게 되면 즉시 다시 고기를 먹었을 겁니다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어요 많이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알 거예요 하지만 날 만나서 내 책을 읽고 우리가 왜 채식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한 뒤에 그녀는 깨어났습니다 이제 그녀는 고기를 욕망하지도 않고 고기를 두려워합니다 고기 냄새가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지요 고기나 물고기 판매대를 지날 때 그녀는 불편해합니다

부처가 된 뒤에는 고기를 봐도 채식과 같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린 괴로워요 우린 그걸 싫어하지만 비판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거나 거기 서서 사람들을 꾸짖지 않지요 우리가 뭘 좋아하든 그건 우리의 취향이고 사람들이 뭘 좋아하든 그건 그들 취향입니다

우리가 채식하는 걸 사람들이 알도록 소란을 피워서 불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걸 좋다고 간주하거나 좋은 걸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가 된 사람이나 깨달은 사람들에게 나쁜 건 나쁜 거고 좋은 건 좋은 겁니다 하지만 나쁘든 좋든 그렇게 내버려두지요 거기 서서 계속 차별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좋으면 우린 그걸 칭찬하고 사람들을 따르도록 격려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이를 칭찬합니다 하지만 어떤 게 나쁘면 우린 여전히 그들이 원하면 따르도록 해요 그들에게 강요하려고 극단으로 안 갑니다 우린 도덕 원칙을 설명할 뿐이지 극단으론 안 갑니다 그게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악을 고려 안 해서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것이 좋거나 나쁘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악행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영적 수행자들은 좋고 나쁨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불경을 오해했어요

우리가 선과 악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면 그럼 왜 부처가 살생하지 말고 훔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술과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을 가르쳤겠어요? 이는 부처가 선한 길과 나쁜 길에 대해 적절히 가르쳤다는 걸 뜻합니다,그렇죠? 불교도는 열가지 선행을 행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신의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어요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 건 이미 속세의 선과 악을 초월한 사람들을 위한 겁니다

그들은 사물을 보면 그걸로 다입니다 그들은 비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은 꾸짖을 생각도 안 합니다 그들은 누구를 비난할 생각이 없어요 그들은 자비만 쓰지요 그들은 인연이 있고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를 따라 듣길 원하는 사람에게 그걸 설명할 때가 되면 논리만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따르지 않거나 무지한이를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요 그게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부처나 보살의 등급에 올라서 우리 마음이 평온할 때가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의 좋고 나쁨을 볼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사람들을 격려하는 건 아닙니다 그 때 그들은 좋고 나쁨을 인과나 응보로 봅니다 그들은 맹렬하게 살인자를 비난하거나 살해된 사람을 바로 동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살생하지 말며 희생자에게 분개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이 나쁜 업보임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람들에게 인과의 순환 속에 돌아와 번갈아 서로를 죽이지 말라고 충고해 줍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해당한 사람을 편들거나 살인자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걸 두고 『선악을 구별 말라』고 합니다 선과 악은 서로 다른 게 아니니까요 우리가 나쁜 일을 한다거나 남들에게 나가서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과 살인을 권한다는 게 아닙니다 불보살의 경계라 그런 것입니다

아직 그런 경계엔 이르지 못했으면 잘못되게 설명해서 우리가 잘못 이해한 것을 사람들이 따르게 해선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오해만으로 이미 아주 유감스러운데 우리가 오해한 것들을 남들에게 가르치거나 그들이 우릴 따르도록 온갖 방법을 다해 우릴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예컨대,그들이 우릴 자연스레 따른다면 그럼 괜찮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남을 강요한다거나 달변을 이용해서 우릴 따르게 한다면 훨씬 더 죄가 무겁죠 이젠 차이점을 알 수 있겠지요 계율이 있는 법문과 없는 법문 사이에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하나요?

그 나라의 법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가 고의로 법을 위반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교회에 달렸어요 법에 따라 그를 처벌하거나 용서하지요 상황이나 그 나라의 법에 따라서요 난 입법자는 아니고 또한 우리는 특별한 상황을 봐야 해요 그렇죠?

여기 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상황은 다른 해결책을 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가 타인의 권리를 고의로 침해하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자각하고 회개하도록요 처벌만이 아니라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해야만 왜 그러면 안 되는지 그 사람이 알 겁니다

그가 알게 하고 그릇된 개념을 버리게 하는 게 힘으로 벌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적대감과 반감이 생길 거에요 이미 말한 대로 주변상황에 달렸어요 각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명백하게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법을 공부해야 하고 또한 예수가 이런 경우를 어떻게 다뤘는지 배워야 해요 그냥 예수가 이 경우 어떻게 했을지 부처는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거에요

이 미국인은 어떻게 정부가 범죄자를 판단하는지 어떻게 그 법이 범죄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지를 묻고 있어요

이것은 스승님의 대답의 요약입니다 법은 인간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님은 여기 모든 사람에게 도와 윤회법칙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난 정의의 저울을 쥐고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들은 나한테 이걸 물으면 안 되요 모든 상황은 다르니까요 그저 여기 앉아서 그 남자는 5년을 선고 받아야 하고 그 여자는 10년을 선고 받아야 하고 또는 각 죄의 처벌은 어떻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정의의 저울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부처에게 기도해야 하고 그리스도와 부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룰까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자연히 판단하는 법을 알게 될 거에요

육조 혜능은 어울락(베트남) 사람 인가요 중국사람인가요?

어울락인이지요 어울락 사람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출생지에 따르거나 그의 일대기에 의하면 어울락인이지요 어울락에서 났지만 나중에 그 지역은 중국영토가 되었고 그래서 중국인으로 언급됩니다

지금처럼 나는 포모사(대만)에 오래 살았으므로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칭하이스승이 포모사 출신이라고 말하거나 포모사의 칭하이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포모사(대만)사람들도 내가 그들에게 속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모두 똑같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세계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 서서 다투지 않아요 『아니요 안 그래요 난 어울락인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스승님 『모든 원인은 절대진리에서 나온다』는 개념을 설명해 주세요 저의 좁은 소견엔 그것은 무지는 절대진리에서 나온다는 걸 뜻해요 그래서 수행할 필요가 없나요?

무지는 절대진리와 같으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지는 절대진리에 대한 인간의 오해입니다 이제 절대진리를 알고 싶으면 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대 진리를 수행해야 그걸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무지의 길을 수행하지요 이 두 길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무대의 여배우 감독은 이미 대본을 썼어요 언제 뭐라고 말하고 언제 어떻게 연기하는지 썼지만 이 여배우가 게을러 놀러 나갔고 대본읽기를 신경 쓰지 않았거나 잘 외우지 않아서 무대에 올라가 자기의 역할을 즉흥적으로 하면 모두 틀립니다

그래서 감독은 그녀를 불러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자기 대본과 자기 역할을 다시 외워야 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배역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대에서 연기하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그 젊은 여자는 정말 못생겼지만 아주 아름다운 여인인 『카멜리아스의 숙녀』를 연기해야 했어요 난 그렇게 들었어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기로 예정되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그렇죠 진짜 연극에서 그와 같았어요 하지만 이 여자가 너무 추해서 『남자친구』가 그녀를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지요 『결혼하고 싶다면 그냥 가버려』 이것은 과장이었어요 대본은 그렇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우리 무지도 그렇죠

신의 의지에 따라 연기하는 대신에 외적인 배경을 보면 우리는 잊고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의 계획에 따르는 대신에 외적인 상황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틀리고 세상에 혼란을 초래하지요 안 그러면 우리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행성 중의 하나에요 왜 다른 행성은 평온한 평화와 지성을 누릴까요? 우리 행성에서는 매일 싸우고 공격하고 훔치고 서로 압박하며 온갖 불행이 있는 걸까요?

비록 약간의 지혜가 있지만 또한 많은 고통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 행성은 『주제』에서 벗어나고 연극을 잘 몰라요 그래서 부처와 보살은 종종 이 세상에 내려와서 감독이 되어 우리 역할을 다시 가르치며 말해줘야 합니다

『당신는 읽는 법이 틀리고 연기방법이 올바르지 않아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아요』라고요 그런 의미에요 하지만 듣는 이가 거의 없어요 배우가 이미 무대에 있으니까요 더 지시하려고 뒤로 불러내기엔 너무 늦은 거지요 그는 이미 자기역할을 즉흥적으로 했고 무대를 다른 연극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므로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일단 공연하면 종종 관객은 실제 연극이 어떤지 몰라서 그냥 박수를 칩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이렇게 만들어요 감독의 말을 듣지 않아요

절대진리에 음양의 이원성이 존재하면 뭐하러 절대진리에 돌아가려고 자신을 수양하나요 ?

음양의 이원성이 있지만 음은 아주 작고 양은 큽니다 하지만 자신을 수양하지 않으면 음은 거대한 반면 양은 아주 작지요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달라요 우리가 자신을 연마하지 않으면 지옥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연마하면 우리 마음은 천국이 될 겁니다

우리 마음이 행복하고 편하면 그게 천국이지요 우리는 죽어서 천국을 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요 천국은 마음속에 있다 그런 것입니다 계속 외부세계를 추구하고 외적인 행복을 찾으며 다른 곳의 천국을 찾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연마해야 다시 정상이 됩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는 것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리는 모든 곳에 음양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옳아요 아닌 게 아니에요 지옥에도 음양이 둘 다 있어요 하지만 음은 너무 많고 양은 아주 적지요

그러나 우리 세상은 음양이 다 있어요 그래서 고통과 행복 둘 다 있어요 다른 높은 세상에서는 오직 양만 있어서 행복이 더 많거나 완전한 행복이 있어요 그들의 음이 아주 적어 사람들이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영향력이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자신을 연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신생아는 이미 인간이지요 신생아를 동물이나 나무라고 할 수 없지만 아기가 더 크고 더 똑똑하게 성장하려면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인간이라고 불릴만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죄 문제는 어떻게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죠?

죄를 짓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행동이 죄인 걸 이해하지 못해요 비록 그들이 막연히 알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거지요 그들은 경전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자기 대본을 잘 배우지 못한 무대의 배우처럼요

경전을 잘 아는 사람은 그들을 안내해야 합니다 우주법칙을 잘 아는 사람은 그들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경전을 다시 배우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들은 악행을 그만 둘 거에요 예를 들면 무대에서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때리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 쪽으로만 가볍게 그녀를 쳐야 하는 거지요 겉으로만이요

하지만 그는 대본을 잘 암기하지 않아서 정말로 그녀를 쳐서 그녀는 기절했어요 우리 세상도 그와 같아요 죄를 지은 사람은 자기 진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고귀함을 모르고 우주법칙을 몰라요 우리는 자신을 수양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 전에 우리는 분명히 알아요 안 그러면 우리가 분명치 않고 우리가 모르고 역할을 즉흥으로 하면 아주 문제가 생기지요 더 즉흥적일수록 무대를 더 혼란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 아직몰라요?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나 과거의 다른 위대한 스승처럼 아주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처신하는 방법 진짜 인간이 되는 법 고귀해지는 법 우리의 고귀한 근원을 기억하는 법 우리의 행복을 기억하는 법 우리자신의 영광을 기억하는 법 신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우리자신의 지혜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임무를 가졌었죠 바로 그걸 완수했지만 너무 빨리 떠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와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했어요

이 미국인은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어요 스승님은 예수는 스승이라고 말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근원,행복 평화를 기억하도록 가르치려고 왔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임무를 완수했어요 그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가져다 주었고 신에게 돌아갔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일찍 죽어서 다른 사람이 신의 일을 계속하게 내려와야 했다고 했죠 그런 것입니다

사후에 관한 스승님의 불교개념은 무엇인가요?

지옥,천국인가요? 누가 어디로 가나요? 어떻게 거기 가지요? 글쎄요 불교에 의하면 각 사람은 현세에 그나 그녀가 뿌린 걸 거둡니다 불교만이 아니라 성경도 말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래서 그것은 인과응보법칙이죠 오렌지를 심으면 오렌지를 얻지요 몇 배로 되돌아오죠 그러니 오렌지 씨를 심으면 사과를 얻을 수는 없어요 가시덤불 씨를 뿌리면 거기서 튤립을 얻을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불교나 다른 종교에 의하면 세상의 다른 종교라도 우리의 신구의가 장래에 우리에게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돌봐야 합니다 그런 미덕이나 윤리적인 행동은 신이 규정한 게 아니죠 우리는 신께 복종하고 신이나 부처를 추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 이런 가르침은 우리자신의 영광스런 미래,안락한 미래의 건설에 유용해요 그것이 업의 법칙 인과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은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간단하지만 중요한 가교를 세우는 법의 지침을 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악행을 하면, 즉 신의 법을 위반하고 신의 계율에 복종하지 않으면 소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지옥은 사랑이 부족한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곳입니다 그게 지옥이라고 하는 오직 고통만 있는 곳입니다 그게 지옥이지요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들은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알지 못하고 남에게 고통을 초래했거나 아마도 고의로 고통을 야기했으니까요

이제 그들은 이것이 타인을 대하는 옳은 길이 아니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 교훈을 겪어야 해요 그게 전부에요 모두가 믿는 것처럼 영원하지 않아요 그저 일시적이지만 영원한 것 같아요 영원한 듯 하지요 고통을 당하면 일초가 일년과 같으니까요

우리 몇 몇은 병원에 있었거나 고통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일분이 일년이 되지 않나요? 예,그래서 지옥이 영원하다고 믿어요 그런 사람에게 이렇죠 이 개념은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기억해요 그들 몇 명은 기억해요 그들은 고통의 이런 교훈을 배웠기 때문에 다시 인생을 살면 감히 다시는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사회가 더욱 질서잡히고 덜 폭력적으로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서 원인과 결과를 상기하는 것이 일이 행해진 뒤에 처벌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아요 그러므로 과거의 스승들과 현재의 스승들은 사람들의 미래의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 도덕적인 기준을 돌보느라고 바빠요 지옥과 천국은 자기가 만든 겁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살면 우리는 항상 행복해요 우리는 타인을 위해 행복을 만들고 우리 마음 속에서 평온하며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이나 나쁜 양심으로 괴로우면 이미 지옥에 있는 것이고 죽은 후나 마지막 심판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그게 천국과 지옥에 관한 내 생각이에요 많은 종교서적에서 읽은 개념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정리해봅시다 이런 거지요 이 사람은 나한테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죠 누가 천국에 가는지, 누가 지옥에 가는지, 왜 거기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를요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나는 말했어요

우리가 악행을 하면 우리 양심이 우리를 괴롭혀서 그 죄책감으로 괴롭힘을 당해요 그때 고통을 당하면 우리는 이미 지옥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선행을 하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면 행복하고 편안하고 평화롭게 느껴서 이미 천국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지옥이나 천국에 가려고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지옥은 악행을 하고 남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맛보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깨어나고 이해하게 되는데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고통을 주었을 때 그들은 그걸 모르거나 알지만 계속 그렇게 해요 그들 자신이 고통을 맛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지옥은 있어요 그들이 고통을 맛보는 곳이고 그래서 나중에 감히 더 이상 악행을 하지 않아서 사회,세상이 더욱 평화로워집니다

불경은 과거의 모든 스승이 부처가 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그럼 당신의 법문은 이 생에서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부처의 법문과 다른 건가요? 그러면 그건 석가모니 부처가 한 생에서 부처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그 역시 한 생에서 부처가 되었어요 부처가 세세생생 수행했다고 말하는 과거의 생에 관해서는 우린 모릅니다 그걸 확인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어요 오직 알고 있는 건 그가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태어났다는 거죠

부처가 되기 전 그 역시 삼십 살이나 삼십 살 지나서까지는 한가한 삶에 빠졌었죠 이런 것만 알고 있지 다른 일에 대해서 우린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과거의 생에서 수행을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래서 지금 누군가 일생에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시도해 봐야 합니다 얼마 동안 기다릴까요?

이 생에서 수행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 우린 전설을 들을 뿐이며 그걸 맹목적으로 믿는 거죠 2500년 전 일인데 그것에 여전히 집착해 그걸 믿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육체적 쾌락에 빠졌던 왕자로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이로운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죠 그저 납세자들의 돈을 탕진했을 뿐이죠

그가 궁전을 나와서 삼사명의 사람들이 고통 받고 죽어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어서 영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고행과 같이 잘못된 길로 수행하기도 했어요 결국 그는 깨달아서 올바르게 수행했죠 그래도 그는 부처가 될 수 있었어요

존경하는 스승님 『인과의 예외적인 사례』에서는 음주의 허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술이 허용된 게 아니에요 그건 그 사람의 특별한 경우예요 그 경전은 『인과의 예외적인 사례』라고 부르는데 그건 그 경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예요

한 남자가 말하길 술을 마셨을 때 자기 친구들을 행복하게 했다고 했죠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역시 부처를 기억했죠 그는 여전히 평소처럼 마음을 명료했어요 결코 부처를 잊지 않았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죠 그래서 부처가 말했죠 『좋아,그럼 괜찮다』 하지만 부처는 음주를 권하진 않았으며 음주가 좋다고 말하진 않았어요

그 남자의 상황은 특별했어요 하지만 부처의 제자들은 맙소사, 그는 매우 엄격했죠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자는 부처의 제자가 아니라 마야의 제자다』라고 분명히 말했죠 알겠어요?

내가 전에 그런 두 승려의 특별한 경우에 대해 말했던 거와 똑같아요 실제로,한 승려는 여인을 잡거나 껴안는 걸 허용치 않죠 하지만 그 상황은 달랐어요 그건 특별한 상황이었죠 왜냐하면 술을 마신 건 당신이니 그 결과를 인내해야 하니까요 당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그건 당신의 마음,당신의 문제이죠

존경하는 스승님 결혼생활 중 한 사람이 간통을 해서 그 가정이 파괴되면 그건 저 자신의 악업입니까?

그게 악업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고통을 겪는다는 것만은 압니다 그러므로 불경에서는 외도를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또한 지금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버리고 나중에 저 사람이 이 사람을 버리며 이처럼 주고받으면 어느 생에서나 고통만 초래할 겁니다 이제,그 또는 그녀는 우릴 이미 떠났어요 그러면 우린 그 선례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린 참아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아름답게 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우리의 일, 외모,말, 덕행이 좋아야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옵니다 집이 항상 깨끗하고 아름답도록 해야 하며, 애들은 말 잘 듣게 하고 우리 행동이 훌륭하며 말이 기분 좋고 온화해서 떠났던 사람이 옳은 길로 돌아오게 돕도록 살펴봐야 합니다

허나 그게 불가능하면 『그가 이렇게 했으니 난 저렇게 할수있어』 라며 화내거나 앙갚음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 후에,그 순환이 영원히 반복되면 심지어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합니다 배신 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그런 길로 계속 가서는 안되며 남을 고통스럽게 해선 안됩니다 이게 올바른 태도이죠 그렇지 않으면, 지금 거기 앉아 나에게 이게 자신의 악업인지 아닌지 물으세요

내가 『그래요』 하면 당신은 매우 괴롭고 『아녜요』 하면 그 만큼 역시 괴로워요 그걸 고치고, 개선시키는 길을 찾는 게 더 나아요 그렇지 않고 앉아서 그게 악업인지 아닌지 묻는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되요

예컨대 내가 『네, 당신의 악업이죠』 라고 하면 당신은 더 수동적이 되어 『글쎄, 이게 내 악업이니 어쩔수 없지 내 악업이 이러니』라고 하겠죠 아녜요 인간으로서 우린 최후 끝까지 노력해야 해요 개선할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개선하세요

그렇지 않고, 모든 사람이 악업이라고 말하면 아프더라도 의사에게 갈 필요가 없고 빈자가 너무 가난해도 죽게 내버려 두겠죠 그럴 수는 없어요 인간으로서 우린 최후 끝까지 노력해야 해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해요 그런뒤 말할 수 있죠 『아,아마 악업은 이런 걸 꺼야』라고요 여러분에게 알려주자면 때로는 악업이 아녜요

예를 들면, 항상 찡그리고 말씨가 천한 여인을 아름답게 화장하고 멋있는 옷을 입으며 향기가 나는 다른 여인과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 남편이 밖에 나가 이런 여인들에게 환영을 받고 집에 와서 자기 부인이 이런 걸 보면 어떻게 타락하지 않겠어요? 이것도 우리 잘못이죠

또한 아이들이 올바르게 크지 않아요 남편이 집으로 올 때 아내가 따뜻하게 그를 맞이하지 않고 온종일 불평만 하며 아이들을 때리면 그는 괴롭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서 그걸 즉시 고쳐야 해요 집과 가정을 확인해서 결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서 그걸 즉시 고치세요 그러면 행복은 돌아올 겁니다

정말 외도를 원하는 남편이나 아내는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자기 배우자를 몹시 존경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상황이 있어요 그러니 우린 우리의 평생 배우자를 옳은 길로 돌아오게 도와야 합니다 거기 앉아서 악업에 대해 불평하거나 남을 비난하지 마세요

불성은 소리도,형체도 없고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부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설명해 주세요 스승님

이 『소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 없는 소리입니다 임시로 그걸 『소리』라고 부릅니다 내가 그걸 어떤 걸로 부르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계속 물으니, 같은 거예요 난 그게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말하지 않아요 불경에는 우리의 본성을 들어야 한다고 써있어요 우리의 본성은 불성이에요

우리의 듣는 습관에 역행해서 우리의 내적 본성을 들어야 해요 또한 지금 당신은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죠 하지만 그 내면에는 진정 소리가 있어도 그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어요 허나 지혜를 사용해서 그걸 인지하죠 그런데 이건 대체로 외부의 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해요

자, 그걸 『소리』 라고 부르지 않으면 어떻게 불러야 하죠?

그걸 진동이라고 부르거나 천상의 음악 또는 부처의 명호라고 부르기도 해요 부처의 명호는 불경에서도 언급되어 있어요 음류지요

능엄경에 써 있기를 『모든 부처는 이 음류에 의지해서 내려와 중생을 구하고 나서 이 음류에 의지하여 중생을 불국토로 다시 끌어 올린다』 라고 합니다 이게 그 음류에요 하지만 그게 소리 같지 않더라도 무엇으로든 불러야 해요

두엉 투엉 탄이 번역한 작품이 있어요 집에서 그걸 조사해 당장 알아 보세요 여전히 질문이 있으면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다음에 다른 강의를 할 때까지 기다려요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그런 제한된 시간의 틀로는 완전히 대답할 수 없어요 자주 이미 얘기했던 것들이 있지만 여기선 언급하지 않았으니 질문하세요

방금 얘기하셨던 소녀를 구했다는 두 스님에 대한 얘기는 사실입니까 그저 예입니까?

네,그건 사실이에요 그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사실이죠 유명한 얘기랍니다 선 얘기예요 이 얘기는 선 명상에 관한 책에 있어요

제 남편은 기독교인이고 저는 불교인입니다 나중에 그이가 죽었을 때 제가 기독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까 불교 전통에 따라 그의 장례를 치르고 싶다면 죄가 될까요? 우리 결혼식은 기독교 전통이 아니라 제 남편 가족의 불교 신앙에 따랐습니다 제 남편은 스무 살 때부터 기독교를 따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 남편도 부처를 믿고 때로는 관음보살께 기도하여 매일 잊지 않고 경을 외도록 일러줍니다 그러면 죽기 전에

그에게 묻지 왜 나에게 묻지요? 아직 죽지 않았으니 이렇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장례를 기독교 전통을 따라야 하나요,불교 전통을 따라야 하나요?』 그가 기독교라고 하면 기독교로 하고 불교라 하면 불교로 하세요 문제 없어요 그가 기독교를 따라 하고 싶으면 목사님을 초대해 와서 그에게 성경을 읽어 주세요 그래서 전문가를 초대해야 해요

예를 들면 그가 불교를 원하면 스님을 초대해서 뭘하는지 보여달라고 하거나 당신 대신 해 달라고 하고서 스님께 보시 좀 하세요 기독교를 원하면 목사님이나 수녀님을 초대해서 성경을 읽어주면 됩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존경하는 스승님, 저는 채식하지만 가끔 고기가 그리워요 이게 나쁩니까?

그 동물에게 나쁘고 고기 조각에 나쁘죠 누군가가 그리워하지만 가까이 하지 못하니까요 당신은 채식주의자인데 여전히 고기가 생각나도 계속 채식을 하세요 그게 이미 훨씬 더 낫죠 하지만 그건 당신에게 많은 고통이고 또한 고기 조각에게도 많은 고통이에요 채식을 원하고 관음법문을 수행하길 원하면 고기가 생각 나지 않죠

한 달에 이틀 동안 채식하지만 고기가 든 냄비로 바로 돌아가기 위해 자정을 계속 기다리는 한 여자의 얘기를 전에 언급했죠 그녀가 관음법문을 아직 수행하지 않았고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진정한 법문을 수행하면 우리 불성은 열려서 무한한 힘의 근원이 우릴 보호하고 안내할 겁니다

신실하게 그 법문을 따르고 진실로 그 법문을 믿으면 우릴 도와서 채식을 쉽게 유지하도록 하며 더 이상 고기를 탐내지 않을 거예요 고기를 보면 역겹고 두려우며 나쁜 냄새가 나서 한참 동안 구역질이 납니다 또는 가려움 등등을 느끼는 고기 조각을 지날 때 가려움을 느낄지 모르죠

얼마 동안 수행한 후에 육식과 채식과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계속 하세요 너무 배가 고파서 쌀국수 식당을 지나가게 하지 마세요 항상 가방에 과일이나 찐빵을 가지고 다니면 배고플 때 바로 드세요 조금만 들고 나중에 집에서 더 많이 드세요

우린 이미 약해서 자신을 시험합니다 그건 좋지 않아요 우리 능력을 알아야 하며 너무 배고픈 채로 음식을 사러 가지 마세요

예수는 제자를 고치고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이 치유할 영혼을 부여 받았다면 왜 인간을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까?

네,그들이 원하면 할 수 있지만 내 제자들만은 안되죠 왜냐하면 그들이 치료자만이 아니라 온전한 치유력이 되어야 해요 마치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려는 사람과 같아요 둘 다 도움이 되지만 우린 의사가 되고 싶어하죠 간호사가 되고 싶으면 치료할 수 있죠 오늘날 치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요

아주 많은 의사,병원과 장비들이 있어서 이런 것들이 필요 없기 때문이에요 예수가 치유에 대해 말한 건 영혼이 영원히 치유되는 걸 의미해요 내가 지금 당신에게 말한 것과 같아요 당신이 이걸 수행하면 항상 치유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항상 치유됩니다

당신은 늘,영원히 치유됩니다 다신 절대 아프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아요 하지만 육신의 질병을 오늘만 치유하면 내일 다시 아플 겁니다 내년에는 다른 병이 날 것이고 아마 악화될지 모르죠 이렇게 치유하는 건 나쁜 업장에 관여하는 걸 뜻해요 잠시 동안 고통을 멈추게 하면 나중엔 심지어 이자까지 더 붙지요 하지만 내면에서 나온 진정한 힘으로 치유하면 우린 영원히 치유됩니다 이것만이 제 진의이죠

나도 사람을 치유하나 치유함 없이 하고 있죠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훌라 훌라 훕 같은 건 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치유됩니다 내 말 뜻은 이런 것들은 진리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겐 궁극적이 아니고 가장 중요한 문제도 아니란 거죠

당신이 수 년 동안 또는 장기간 수행해서 이런 치유력을 가진다면 자연히 그걸 발산하게 되며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주위의 사람들이 치유됩니다 그러면 좋지요 그게 치유함이 없는 치유이고 함이 없는 함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괜찮죠 에고와 업장에서 자유로운 거죠

당신이 고의적으로 관여하려고 해서 사람들의 자장을 어지럽히고 그들의 악업이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게 하려 하면 무거운 업장을 지게 될 겁니다 이게 내 진의입니다

자비심을 갖지 말라는 게 아녜요 훌륭한 치유자가 되고 싶으면 예수처럼 되세요 그는 능력이 됩니다 그가 무한한 능력을 가졌어도 자연의 일에 관여한 많은 기적을 행한 이유로 삼 년 반만 살 수 있었어요 그는 원치 않았지만 여러 번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물을 술로 만들라고 그의 어머니가 시켰죠 그러자 그는 말했죠 『왜 하라고 했습니까 왜 이런 일을 하게 합니까?』 그는 기쁘지 않았죠 하지만 아마 그 당시엔, 때로는 기적 같은 걸 행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나는 이제 다신 그걸 믿지 않아요 우리에게 치유력이 있어도 치유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까지 진리,사랑, 힘의 길에서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치유할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우린 에고로 치유하며 그들 내면에 있는 신의 힘에 의지하여 자신의 치유력을 개발해서 스스로를 영원히 치유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우릴 의지하게 합니다 우린 그들이 하루 이틀 일 이년 동안 우리에게 의지하게 하고 신대신 우리에게 감사하게 합니다 그건 좋지 않아요

한 미국인이 물었어요 예수가 사람들을 치유하고 제자들에게도 치유하라고 했는데 요즈음엔, 치유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왜 그들에게 그걸 하지 말라고 하시죠?

또한 나는 예수의 치유 방법은 오늘만 치유되고 내일은 다시 아프게 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어요 아무도 이 세상에선 한 번 그리고 영원히 치유되지 않아요 그러므로,우리가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를 들면, 그걸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인과의 법칙에 관여하는 거니까요

그럼 사람들은 우리의 신통력에 의지해서 그들의 불성을 개발하는 걸 잊지요 결국 우리가 나쁜 일을 했고,옳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뜻해요 왜냐하면 오늘 그들을 구했지만 내일은 다시 아프거나 나중에 다시 아프니까요 게다가 그들은 더 많은 이자조차 지불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관음법문을 가르쳐서 그들이 영원히 치유되는 게 더 나아요

장차 그들은 이 세상에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니 다시 아파도 괜찮아요 또한 병을 고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그냥 여기 머물러서 영원히 고치세요 하지만 인과의 법칙을 견뎌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의지하게 하니까요 사람들은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신이나 부처의 위대함에 대해 잊어버리는데 그건 죄지,공덕은 아녜요

사람들은 신과 부처를 기억 해야 하지 조금 고칠 수 있는 치료자인 우릴 기억해선 안됩니다 오늘은 치유되지만 내일은 다시 아프게 됩니다 이게 내 진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치유력을 갖고 사람을 고치고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실제로 좋지 않아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아플 때 악업 때문이 아니라 신체 병 때문이라면 치료하려고 의사를 부르면 됩니다 요즈음엔 의사들이 매우 많으니 치유력을 뽐낼 필요도 없어요 이건 영적 수행자의 일이 아닙니다 의사의 일이지요 우리가 수행하면 삼계에서 벗어날 힘을 사용해서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야 합니다 단지 주사만을 가지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의 일을 하는 건 영적 수행자인 우릴 위한 건 아닙니다

또한 우린 거기 앉아서 이십 년 이상, 수십 년 동안 수행해서 이 신통력을 얻을 뿐이죠 그러면 우린 거기 앉아 사람들을 고치기 위해 비와 바람을 부릅니다 반면 의사는 단지 주사를 놓고 일을 해냅니다 왜 그런 어려움을 겪어가며 다른 사람의 일로 경쟁까지 하나요?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고쳐도 그게 난 대단치 않다 말했죠 이 치유력을 개발하고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데 수 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의사가 주사 한 방만 놓으면 끝납니다 치유하는 게 무엇이 대단합니까? 그냥 의사로 하여금 그의 일을 하게 해서 물리적인 방법으로 신체를 치료하게 해요

왜 우리가 영적 힘을 사용해서 그 문제에 허비해야 하나요 일단 환자가 치료되면 내일은 다시 아플 겁니다 아무도 이 세상에선 영원히 치유될 수 없죠 그러니 왜 굳이 의사와 간호사가 바로 할 수 있는 이 치유력에 대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해야 하나요? 그게 내 뜻입니다 그건 가치가 없어요

또 다른 얘기 해줄게요 이거 역시 이 문제와 관련되었어요 부처가 살아 있을 때, 한 사람이 부처에게 와서 자기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자랑했어요 그는 이 강둑에서 저 강둑으로 어떤 교통 수단도 사용치 않았어요 결국 부처가 말했죠

『오,아주 멋지군요 아주 멋져요 이 멋진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수행했죠?』 이 사람은 25년동안 수행했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부처가 말했죠 『세상에,25년요! 돈도 시간도 너무 많이 들어요 난 5센트만 사용하면 곧바로 건너편에 나룻배로 갈수 있죠』 그럴 가치가 없었어요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적인 힘을 결코 쓰지 말라』 는 규칙에 관해서, 만약 어떤 사람이 의사나 치료사라면 그들은 이 규칙을 어떻게 따라야 하나요? 전 늘 이 수행의 힘이 유용해서 치료사는 남에게 이 힘을 전해줄 수 있다고 이해해왔는데 말씀 해 주십시오

예,그런데 가치없는 목적에 힘을 낭비하는 거죠 난 이미 말했습니다 단지 단 한번이 육체적인 병에 그런 큰 힘을 쓸 필요 없습니다 그리 문제가 안 되죠 의사에게 찾아가서 돈을 좀 지불하면 됩니다 수행의 힘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것에 쓴다면,너무 가엾죠

마치 다이아몬드와 빵 한 덩어리를 교환하는 거와 같죠 만약 다이아몬드도 상관없다면 괜찮아요 하지만 신경쓰이고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꼭 붙잡으세요 아니면,적어도 돈을 많이 받고 팔아서 빵 한 덩어리를 사세요 그 중에 하나로요 빵 한 덩어리에 다이아몬드 전부와 바꾸지 마세요 그렇게 해도 돼요 하지만 그러지 말아요 지혜롭지 못합니다

마치 25년 동안 강을 건너기 위해 수행한 남자처럼요 부처는 오직 5센트만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요 서로 다른 분야와 다른 일이 있어요 모든 걸 그것처럼 섞어 버려선 안돼요 만약 우리가 해탈하고 부처가 되고 싶다면 그땐 몇몇 다른 사람을 위한 사소한 일에서 떠나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물론,대통령은 모든 권력이 있지만, 그냥 범죄자를 쫓아 다니거나 경찰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바보라고 생각해요 그는 모든 권력이 있죠 그가 범죄자를 쫓아다닐 순 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죠? 경찰도 있는데요

어떤 미국인이 왜 치유가 허용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난 대답했죠 허용 안되는게 아니라 그건 낭비라고요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찐빵과 바꾸는 거와 같죠 빵 한 덩어리와요 그렇게 낭비하는 거죠 할 수 없는게 아니구요 돈 몇 푼이면 빵을 살 수 있죠 돈으로 그걸 사세요 왜 다이아몬드와 맞바꾸려고 합니까? 이와 유사하게,만약 대통령이 밤낮으로 범죄자를 쫓는다면 그건 낭비입니다 비록 그렇게 할 수 있어도요

그에겐 최고의 힘이 있죠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그는 더 큰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또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하는 일은 경찰이 하는 일입니다 경찰이 있는데, 그가 왜 그런 일을 해야만 하죠?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보살의 길을 따릅니다 우리는 관음법문을 따르죠 왜냐하면 부처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사랑이며 온전한 앎이며,전능한 존재가 되길 원하죠 모두를 구하려고요 여기 저기에 부스럼 등이 난 그냥 병자 한 두명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죠 그건 하찮은 일이에요 다른 사람더러 이 일을 하도록 놔둬요 이 분야에 전문가예요

유사하게, 경찰이 범죄자를 쫓도록 놔둡시다 왜 대통령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죠? 대체로,이와 같아요 오직 우리가 선택한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만약 교수이면 그럼 교수가 되세요 만약 당신이 학교의 수위라면, 학교수위가 되세요 그렇게 하지 않고, 교수가 학교를 청소 한다고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경외하는 스승님, 어떻게 해야 무의미한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평온히 할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좀 수행하고 나면 우리 마음도 익숙해 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무의미한 생각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이제 그냥 수행을 시작하세요 아니면 부처의 이름을 외운다면 더 집중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좀 어렵죠 그냥 습관이에요 나중에 부처의 이름을 외는데 익숙해 지면 습관이 될 겁니다 습관이 이런 방면으로 기울게 될 거예요 다른 방면으로 기울지 않고요 결국 감소할 거예요

경외하는 스승님, 지옥이 존재합니까?

예 극도의 슬픔이나 고통에 빠질 때 그게 지옥입니다 심한 고통을 주는 의식 자체가 이미 지옥이죠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가 마음에 있으며 지옥도 마음에 있죠

경외하는 스승님, 전 최근에 채식을 하기 시작했고 불교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저처럼 채식을 하지 않고 불교를 더 많이 배우지 않나요? 대신에,제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 관점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며 교육이 다르니까요 우리 자신은 채식을 한다는 걸 압니다 우리 스스로는 불교를 공부하는 걸 알죠 남들이 우릴 따라하게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자신이 이해한 걸 남들에게 말할 권리와 책임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도 거부할 권리가 있죠 우리에겐 오직 그것을 말할 권리가 있지만 모든 사람이 우릴 따르도록 강요하거나 기대할 권리는 없어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심지언 부처조차 성공하지 못했죠 예수도 그런 점에선 실패했어요 우리가 뭘 하겠어요? 듣는 자에게 말하세요 안 들어도 상관말고요

죽은 사람은 영혼이 그의 몸을 떠날 때 압니까? 전 이제 76살입니다 당신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됐어요 전 3개월 동안 채식을 해 왔고 몸이 약해졌습니다 의사가 다시 고기를 먹으라고 충고했죠 어떻게 해야 채식을 하고도 계속 건강을 지킬수 있죠?

채식 음식을 먹을 땐 적절하게 먹어야 해요 아무거나 먹었다간 몸이 약해질 거예요 나이가 들면 종종 몸이 약해집니다 채식 요리 때문에 몸이 약해진건 아니죠 나에겐 젊은 제자들이 많이 있지만 약해지진 않았어요 나도 역시 늘 채식을 하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여행을 떠나거나 이곳 저곳을 가며 매일,하루 종일, 밤새도록 이와 같이 말을 과다하게 해요 그리고 또한 많이 먹고 마시지도 않죠 하지만 나의 힘은 여전히 넘칩니다

많이 일하고 있고 너무 많은 힘을 허비 했다고 느끼지 않죠 힘의 손실은 나쁜 업장 때문이에요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나쁜 업장을 받을 때죠 그건 음식의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이 일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너무 많은 힘을 잃었다고 말할수 있죠? 그건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기 때문이에요

우린 채식을 지키지만 먹기 전에, 이런 식으로 먹으면 확실히 힘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먹는 건 징벌이며 고행이라면 그땐 확실히 힘을 잃는 겁니다 우리가 채식을 지킬 때 신과 부처가 축복을 준다는 걸 믿어야 해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음을 믿어야 하죠 안 그러면,평생 고기를 먹었을 거예요

이제 당신은 나이가 들어서 채식을 시작했죠 그래서 힘든 거예요 끊임없이 채식으로 식사하면 힘을 잃는 원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세뇌하는 거예요 그렇게 계속 생각하며 자신을 벌주는 거죠 소위 자신에게 나쁜 개념을 심는 겁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에게 그걸 하죠

경외하는 스승님, 전 영적으로 수행하며 당신을 따르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 미혼인 아들이 4명이나 돼요 그래서 매우 슬퍼요 당신을 따라서 수행할 수 있나요? 두 번째,전 당신을 따르고 싶지만, 자신을 부양할 돈도 없고 교통비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 번째,당신은 나를 따라서 출가할 필요가 없어요 영적 수행이란 출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출가승이란 진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과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서 그들이 이해한 이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걸 의미하죠 그럴 방법이 있다면요 그리고 만약 수단이 없다면 가지 않아요,그게 다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다 출가해야만 하는 건 아니죠

이 젊은 남자도 출가승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수행한다고 출가하는 건 아니지요 영적 수행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하나는 주부가 되는 것, 또 다른 방법은 출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조건들을 갖췄고, 가족의 집착이 없으며 책임이 없다면, 혹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서 가족과 안배할 수 있다면 출가자가 되어 우리의 신구의를 도에 바치고 출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르침을 퍼뜨리기 위해 쉽게 어디든 갈 수 있죠 그게 아니고,여전히 남편과 아내가 있으면 묶여서 갈 수 없습니다 예로 들면 이와 같죠 만약 기준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다면 집에 책임을 갖고 그땐 집에 머물며 수행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출가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나라에 전쟁이 나면 많은 사람이 입대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꼭 입대하는 건 아니죠 누구든 나이든 부모가 없는 사람이나 외동아들이 아니면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입대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누구라도 외동아들이거나 나이 든 부모가 있는데 부모를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땐 입대하지 않아도 돼요

그들 둘 다 똑같이 그들 나라를 사랑해요 입대한 외동아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요,맞죠? 만약 그렇게 하는게 우리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출가를 했는데도 알맞게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재가 제자보다 더 나쁘니까요 그런 식으로 구별할 필요 없어요

수도승들은 이 세상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죠 그들은 도에 대한 의무를 돌보죠 그리고 재가 수행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책임이 있어서 이 방면으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영적 수행은 다른 것이죠 영적 수행자들은 세상의 의무를 충족 시키며 동시에 영적수행도 하는거죠 출가승들은 나가서 전도하고 동시에 영적수행도 해요 어느 쪽이나 수행은 같습니다 하지만 일은 다르죠 그 뿐이에요

우리 관심사는 어떻게 자신의 스승을 찾으며 자신의 집의 스승이 되는 가입니다 지금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우릴 가르칠 수 있을지 인도할 수 있을지 이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스승의 강연을 듣거나, 아니면 입문함으로써 당신은 스승의 힘을 증명할 수 있어요 그걸로 충분하죠 너무 많이 질문할 필요가 없어요

쌀이 이미 식탁 위에 있고 빵이 그곳에 있다면 그걸 먹고, 당신의 몸을 에너지와 건강과 활기로 채우는 겁니다 그곳에 앉아서 빵이 어디서 왔는지 농부가 어떤 사람인지 이 빵을 빻는데 어떤 제분기를 썼는지 그때 어떻게 해서 가루가 되고 물을 얼마나 넣는지 이스트는 얼마인지 물을 필요가 없어요 이런 모든 것들을요 이 모든 걸 알기 전에 굶어 죽을 겁니다

맙소사, 스스로 불필요한 잡담으로 부담을 줘요 이미 너무 많습니다 스승은 결코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법전을 만들어서 국가들과 종교간에 많은 혼란을 야기하죠 이것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합니다 그에 앞서, 난 이 남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우리 머리속엔 너무 많은 쓰레기가 있어요 모든 경전들로 가득 채워져 있죠 그것들을 아직 다 없애지 못했어요 또한 많이 이해하지도 못했지요 그냥 공허한 용어에 집착해서 계속 질문해요 집착이 매일 더 심각해지고 있죠 해탈하기 위해서 언제 이 모든 것을 보낼 수 있겠어요?

해탈하기 원한다면 모든 쓰레기를 내려놔야 합니다 좋고 나쁜 모든 것이 없어져야만 하죠 그때야 갈수 있어요 왜냐하면 어떤 집착 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직도 무거운 거죠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무거운 것은 아래에 머물 것입니다 가볍다면 날아오르겠죠 난 그냥 현실적인 것과 어떻게 수행할 지에 대해 말했어요

자신의 일이 끝나면 스승들은 결코 흔적을 남기지 않죠 왜냐하면 우리가 표시와 법전을 만들어 우리에게 고통을 야기시키고 자신을 묶으니까요 하지만 이 경전에 대한 우리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든 것들이

예컨대,내가 지금 이미 만들어진 빵 한조각을 먹으라고 하는데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인데도 빵을 먹지 않고 그냥 그곳에 앉아서는 분석만 한다고 합시다 『이 빵들은 어디서 왔을까? 누가 주인일까? 누가 가루로 빻을까? 그리고 주인의 이름은 무엇일까? 또 제분기의 상표명은 무엇일까? 얼마나 클까? 언제 빻았을까? 그리고 물을 얼마나 넣었을까? 베이킹 파우더를 얼마나 넣었을까? 밀가루를 얼마나 넣었을까? 언제 만들었을까? 오븐은 뭘 썼을까? 그리고 밀을 심은 사람의 이름은 뭘까? 어떤 방법을 써서 화학물질을 뿌렸을까? 또 어떤 비료를 사용했을까?』라고요

그냥 빵을 먹고 재빨리 기분 좋게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일하러 가세요 할 일이 너무나 많지요 계속 질문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배고프지 않아요 나의 책임은 배고픈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거죠 또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일들을 돌보도록 하는 거예요,왜냐하면 모든 것을 할 순 없죠 그냥 대체적인 겁니다

경외하는 스승님, 현재의 삶에 있어서 입문의 이로움에 대해 좀 알려 주십시오

수많은 이로움이 있죠 그냥 수행하세요 그럼 알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여기 앉아 계속 광고해 봤자 여러분은 생각하겠죠 영적 수행을 강요하려고 한다고요 그냥 저절로 알게 해요 영적 수행을 해서 스스로 해탈하기를 원할 때, 그때가 진실로 그걸 갈구할 때예요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바로 달려 가죠

그곳에 앉아서 우리의 일상 생활에 이로움이 있는지에 더 이상 묻지 않죠 우린 일상의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탈하러 수행합니다 일상 삶에서 이로움을 얻는 다면 여분의 축복이자 일종의 수수료이죠 옛날의 이발사처럼 이미 봉급이 있어도 팁은 여분의 돈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줍니다 계속 팁을 기다리는 미용사가 아니지요

머리를 미용하는 것은 왜냐하면 사람들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으니까요 정직한 일을 하는거죠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돈을 좀 버는 합법적 직업을 갖고 있는 겁니다 미용술을 배워서 계속 팁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어요 팁이 있으면 미용술을 배우고 없다고 배우지 않는게 아닙니다 소 면전에서 쟁기질에 대해서 말하는 거와 같아요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걸 얘기하죠 우리는 이 삶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그냥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그럼 스스로를 봅니다 그 세상은 이 세상과 서로 달라요,내가 묘사하긴 어렵네요 예를 들면,여러분이 미국에 오기 전에 미국이 어떤지 몰랐죠 그리고 이제 이것 저것 말해도 틀리게 생각합니다 또 부처의 삶을 알고 싶으면 아미타경을 읽어요

보석을 박은 궁전에 황금이 깔린 거리 등을 명확하게 설명했죠 이런 경지를 갈망하나요?

영적수행은 이런 경지를 갈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지고 순수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경지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냥 팁처럼요 만약 마음이 이미 고요하고 순수하다면 물론 아름답고 순수한 경지에서 살아야겠죠 바라거나 갈망할 필요가 없어요 미리 부탁할 필요가 없어요 때때로 우리 마음이 이 경지를 상상 못하죠 비록 내가 묘사했지만 여러분은 틀리게 상상합니다 명확하게 알기 위해선 그 경지에 가야 하기 때문이죠

경외하는 스승님, 인간의 몸과 행동의 양식은 신성한 존재가 창조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왜 신성한 존재가 좋은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만들지 않았죠? 사람들이 나쁜 업장을 짓지 못하도록요?

전에 말했습니다 우린 경전을 적절하게 못 배운체 행동하죠 경전을 틀리게 적은건 관리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배워야만 하죠 신에게 돌아갈수 있게 우리는 영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배워야만 해요 그런데 지금 틀리게 행동하고 있죠 우리의 의지에 따라 그렇게 합니다

기독교에도 채식주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고기만이 아닌 달걀 새우 물고기를 먹도록 허용됐죠?

그들이 오해했기 때문이죠 그건 오해했기 때문이에요 성경에서 말하기를 고기 먹고 술마시는 자 가까이 머물지 말라고 했죠 고기를 먹어선 안돼요 일반적으로 말하면요 사람들은 물고기가 고기가 아니라 여겨요 하지만 물고기는 채소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론 이걸 의미하죠

예를 들면, 내가 여러분에게 관음법문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나 또한 여러분에게 고기를 먹지 말고 채식하라고 말하죠 내가 그렇게 말할 때 모든 사람이 미리 이해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의도적으로 오해하려는 자가 있죠 그럼 난 포기합니다 의도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곳에 앉아서 긴 목록을 만들순 없죠 『고기를 먹지 마라』 그럼 어떤 고기를 뜻하냐며 묻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말하죠 『붉은고기는 안먹지만 돼지고기는 먹는다』 붉은 고기란 쇠고기죠 어떤 사람은 말해요, 『붉은 고기는 안 먹죠』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들은 닭고기를 먹죠 그리곤 괜찮다 여겨요

그래서 내가 명확하게 하고 싶어서 『쇠고기 닭 염소 거위 돼지 새 생선 쥐』를 먹지마세요 그리고 오직 위의 것만 목록에 넣고 곤충이나 귀뚜라미를 언급하는 걸 잊으면,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곤충과 귀뚜라미를 먹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스승이 오직 『새 쥐 돼지 닭만 언급하고 곤충과 귀뚜라미는 언급 안 했으니 곤충과 귀뚜라미는 먹어도 된다』고 하죠 그럼 난 포기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고기가 있어요 그 모든 걸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거에요 단지 일반적으로 한거죠 우린 지적이며 현명하며 말은 적게 하면서 많이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부러 이해하지 않으려는 애들이 아닙니다

해탈을 하려면 칭하이 무상사를 얼마나 많이 염해야 하나요?

한번이면 됩니다 하지만 한곳에 집중해서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한번 외면 백번,천번 외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다른 생각도 해선 안됩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외기만 해도 마음은 벌써 『무』를 향해 달려가면서 아미타불이나 『칭』을 생각하다가 쇠막대기를 생각하고는 명호를 잊어버립니다 한번 외는 걸로 족해요 신실하게 외운다면요 여러 번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실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 외워야 합니다 이 염이 효과가 없을 경우 다른 염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쪽이 다른 쪽을 조금이라도 보충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채식을 할 때 정말로 양파와 마늘을 끊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싶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진보를 느리게 하나요?

느리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양파와 마늘을 먹어야 하죠? 냄새가 고약합니다 여러분이 아플 때는 먹을 수 있어요 단지 냄새가 정말 고약해요

존경하는 스승님 모든 사람들은 전능한 신이 이미 안배해 놓은 운명에 의해 특정한 사회적 지위나 서로 다른 지적 능력을 갖고 태어납니다 영적 수행을 하면 사람의 지능이 변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능이 변하는 게 아니라 바르게 기능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기로 되어있다면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서 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지능에 따라 하게 되고 우리의 지능은 훨씬 발전할 거예요 하지만 틀리게 하면 잘못될 겁니다 그래서 영적 수행은 올바른 길을 따라서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배우가 대본을 정확히 외워야 하듯이요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를 가르치기 전 13~29세 사이에 그가 뭘 했는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티벳으로 가서 선 명상을 배우고 불교를 수행하고 나중에 중동으로 돌아와서 설법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이미 출간된 책들을 읽어 보세요 그들은 티벳과 인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찾아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침을 펴기 전에 아시아 사람들은 이미 불교와 도교 힌두교가 있었는데 서양인들은 무슨 종교를 믿었나요?

우리와 비슷합니다 어떤 곳에선 불의 신을 숭배했고 어떤 곳은 태양신을 믿었으며 소크라테스나 신들 그리고 이집트 고대 스승을 따랐던 곳도 있었습니다

『전 입문하길 원해요 제가 얼마간 이 수행을 한 다음엔, 정기적으로 스승님을 뵙고 저의 진보를 확인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수행에는 사제 지간이라는 게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진보를 점검하는 법을 알려줄 겁니다 매일 자신을 성찰할 때 말입니다 알다시피 지혜안이 도와줍니다 지혜안에 맡기면 답이 나옵니다 자신의 진보를 성찰할 수 있는 수행 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보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입문할 때 알려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측정할 수 있지요 그리고 사제간에는 내면으로 맺는 확실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은 입문 후 늘 제자와 함께 하며 절대 떨어지지 않으며 제자들의 안녕과 영적인 진보를 돌볼 겁니다

만일 제자들이 가르침을 따르고 스승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승이 제자를 따라야 해요 함께 나란히 가는게 아니라 뒤에서요 그가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제자들은 어디선가 쓰러지고 길에서 넘어진 다음 부르면 스승이 나타나야 할테니까요 그러면 참 힘듭니다 따라서 제자가 스승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러면 양쪽 모두 편하지요

하지만 입문한 후엔 스승은 결코 제자를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느끼고 보게 되며 또한 알게 될 겁니다 바로 여러분이 재난 가운데나 필요로 할 때 여러분이 받는 기도 응답 속에서 스스로 확인하거나 혹은 여러분 집이나 명상중에 또는 꿈속에서 스승의 모습을 보면 스승이 늘 여러분 주변에 있다는 걸 느낄 겁니다 그럼 스승이 늘 거기 있다는 걸 알 겁니다

『전 스승님이 말씀하시는 마지막 조사인 것 같아요 저는 채식주의자이며 깨달았습니다 제 가족은 내가 깨달았다는 걸 압니다 종교적 갈등이나 개념들 때문에 가족들에게 뭔가를 숨기는것 같지만 말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해야하죠?

글쎄요 당신이 뭘 숨기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깨달음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들은 이해 못합니다 그들은 받아들이지도 않고 우리를 바보 취급할 겁니다 그러니 비밀로 하세요 가능한 말만 하세요 만일 못한다면 어쩌겠어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우리 가족입니다 모두를 기쁘게 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이들 마음에 들게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자기 길을 계속 가면서 그들을위해 기도하세요 알겠어요?그들이 만족해하지 않으면 그저 손을 잡고『널 매우 사랑해』하세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에요 사람마다 선택하는 길이 달라요 누군가 우리를 이해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예수도 오해 받았고 부처도 무시 받았죠 아주 외로운 길이죠

경을 외우거나 향을 피우면 무슨 이득이 있나요?

전혀 득이 없어요! 향 파는 사람만 득을 봅니다 『경을 외운 다음엔 평온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가정일로 괴롭고 아이들에게 화나 있다면 아직 평온치 못한겁니다』 사실이에요 우리가 아직 평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이 스승님 스승님께선 비난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고 하셨는데 도박과 도색 잡지 읽는 걸 반대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그랬어요? 『하지만 자신이 깨달았다고 말한 바그완 라즈니쉬는 우리가 억누르는 것이 항상 남아있어 마음을 통제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초의식으로 가는 길에 우리의 열정을 즐길 수 없죠?』 나는 라즈니쉬 말에 책임이 없어요 난 도박을 비난하지도 않고 도박에 대한 말도 전혀 꺼내지 않았어요 그랬죠? 도박과 도색 잡지는 거기에 있어요

그건 우리 규칙입니다 나를 따르고 싶으면 나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라즈니쉬를 따르면 그의 법칙을 따르세요 알겠어요? 항상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학교 마다 방법과 규칙에 대한 규정이 다르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가 초등학교나 유치원생일 때는 선생님 앞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도 있고 바지에 쉬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대학생이 되었을땐 그렇게 할 수 없죠 다 컸기 때문에 대학교에 장난감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난 어른을 가르칩니다 성인들에게 대학교에 장난감이나 젖꼭지나 인형을 가져오게 할 순 없지요 이제는 진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놀 때는 지났어요 유치원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 땐 필요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요 난 도박을 비난하지 않지만 여러분 모두 도박의 결과가 뭔지 알 겁니다

가정 불화가 생기고 사람들의 평화와 마음과 재산을 파탄시키고 모든 가족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도색 잡지는 섹스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와 가족 안에서 하며 결혼생활 안에서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한다면 섹스는 사랑이 됩니다 하지만 신체적 감각만을 즐기려고 고의적으로 에너지를 쏟는다면 도가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좋지 않아요

왜 도색잡지를 읽어야 하죠? 알만큼 알잖아요? 당신의 아내가 잘 모르나요? 부모가 잘 가르치지 않았나요? 지난 생에 충분한 인상을 못 받아서 돌아와서 이런 평범한 것들을 배워야 하나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압니다 전생에서 받은 인상은 두 명의 십대들이 함께 행동으로 옮기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읽을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이런 시간을 아껴서 보다 경건한 가르침을 읽고 영적이며 정신적인 이해를 증진시켜서 우리자신을 생의 원초적 충동으로 끌어내리는 대신 보다 고귀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동물들도 섹스하는 법을 압니다 왜 우리 인간들이 이런 저급한 것들을 배워야만 하죠? 바로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과 끌어 올리는 것은 달라요

내가 대학교수인데 학생들에게 장남감이나 가지고 놀라고 장려한다면 내 의무를 올바로 수행하는게 아니죠 섹스하는 건 좋아요 해선 않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비정상적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미 아내가 있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선 안돼요 마음을 아프게 하는게 뭔지 알잖아요 사람들이 그런 고통에 익숙치 않거든요 모든 사람이 익숙해 있다면 해도 됩니다 신경 안 쓰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견디질 못합니다 그래서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는 겁니다 나는 성관계를 전혀 금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재가자이며 입문 후에도 아이를 갖습니다 내 말은 섹스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걸 공부하거나 가외 잡지 같은 그런것 조차도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놔두세요

비판이 아니라 안내하는 것 뿐입니다 이미 여러 생 동안 이런 것들을 충분히 해봤으니까요 이제는 뭔가 더욱 고귀하고 필요하며 보다 높이 즐길수 있는 것을 배울 때입니다 성관계는 즐겁긴 하나 여러분이 모르는 그래서 보여주고 싶은 그 보다 더 즐거운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그 뿐입니다 알겠죠? 다른 사람들처럼 온갖 혼잡한 성관계 같은 것을 즐기는 낮은 삶을 택한다면 이 그룹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난 사실을 말해야돼요 아주 힘든 일입니다 누군가 이미 여기 있다면 그를 이곳에 데려오는 건 쉬워요 그런데 누군가 이미 저쪽에 있다면 먼저 그를 여기 데려온 다음 저기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럼 일이 많아지죠 『영혼을 위해 육신을 버려라』 『죽는 법을 배우면 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성적인 경향과 온갖 육체적 욕망을 물려받았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그 불에 계속 기름을 쳐서 더욱더 갈구하고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빠져들려 하거나 더 많이 만족하고 즐기려고 또 다른 별난 방법들을 찾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요? 그 모두를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정상적으로 하되 연구를 해서까지 추구할 필요는 없으며 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도 어떻게 하는지 압니다 심지어 개미도 호랑이도 압니다 항상 섹스를 언급해야 하는 것이 왜 그리 큰 일입니까?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임에서 말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왜 내가 그런 걸 말해야 하죠?

왜 스승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말하고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까? 그들은 알고 있어요 그들이 몰랐다면 어떻게 이처럼 인구가 넘쳐 나겠어요? 이 세상에 인구가 더 많이 넘쳐나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생각은 그래요 우린 굶주리고 있어요 이 사람은 왜 내가 도박과 혼외 정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어요 그의 스승인 바그완 라즈니쉬는 제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당신의 스승은 그렇게 가르치지만 나는 다르게 가르친다고요 이곳에 왔으면 나의 법문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곳으로 가십시오

난 대학생을 가르쳐요 내 학생들은 교실에 장난감을 가져오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대학교에 장난감을 가져올 수 없으며 더 이상 바지에 쉬를 하는 것도 안되고 아무렇게나 입안 가득히 먹거나 마시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어떤 학교인지 알고 있다면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유치원은 필요한 거지만 그 나이에만 필요할 뿐입니다 이제는 어른입니다 그런 것에 집착하면 안됩니다 그뿐이에요 대체로 그렇습니다 난 도박이나 혼외 관계를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파경을 불러온다는 걸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통스런 상황을 피하기를 바라므로 하지 말라고 한겁니다 그러니 비판이 아니죠 그렇죠?

나의 조언은 자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좋은 친구라면 친구에게 무엇이 좋은 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비판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왜 내가 도색 잡지를 읽지 못하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섹스란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 더 읽거나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다 압니다 그런 걸 더 많이 읽고 장려하면 불에 기름을 보태는 겁니다

만약 세상 누구도 성에 대해서 모르고 우리가 더 연구해야 한다면, 어떻게 이렇게 인구가 증가하여 모두를 먹일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거죠? 이미 식량이 부족한 상황인데 뭣 때문에 이런 것들을 더 연구해야 하죠? 우리는 자신을 발전시켜줄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동물들도 알고 있습니다 개미들도 매미들도 압니다 뭣하러 그런 걸 배우고 심지어 더 많은 잡지를 읽고 도색 영화 관람을 장려하죠, 뭣 때문이죠? 난 남녀 관계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뭐든 사랑으로 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관계를 갖는 건 괜찮아요 그러면 아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미 아이들도 있는데 더 많이 즐기기 위해 더 많은 방법들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지나칩니다 타당치 않아요

인간으로서 육적인 욕망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의 영혼도 돌봐야 합니다 육체적인 쾌락은 충분히 즐겼습니다 낮에는 종일 육신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밤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잠을 잡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거기다 온갖 안 좋은 것을 배우려고 잡지까지 읽다니 뭣하러요?

『존경하는 스승님, 사람들이 서로 더 사랑하도록 거짓말을 하는 것도 죄인가요?』

아닐수도 있죠 죄란 없어요 예를 들어 어떤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가 이해한다면 설명할 방법을 찾고 거짓말을 좀 해서라도 사랑하고 이해하게 하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해야 하죠? 사실대로 말해서 서로 더 사랑하게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진실을 말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길을 찾고 진리를 배우길 원하기 때문에 항상 진리를 대변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거짓말을 한 게 발각되면 그런 사랑은 금방 식을 겁니다 그러면 전보다 더 악화되겠죠

『만일 호흡법이 비 실존적인 요소라서 우리의 깨달음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관음법문은 깨달음을 보존할 수 있는 건가요?

몸 자체도 같은 요소인데요 네,호흡법과 관음법문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관음법문은 아무 요소도 사용하지 않죠 심지어 육신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진아를 사용하죠 진아는 진아를 이해합니다

불멸의 자아는 확실히 불멸의 자아를 인식할 뿐이지 요소를 인식하지 않아요 호흡은 코를 통해 공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나 진아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깨닫고 나면 입문하고 나면 자신이 육신이나 호흡이나 이런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이생을 사는 동안 그리고 사후에도 계속 간직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내적으로 깨어났기 때문이죠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요 꿈속에서는 자신을 위해 분투하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일단 깨어나면 그럴 필요가 없죠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이미 깨어났으니까요 그래서 늘 깨어 있는 상태가 유지될 겁니다

이것은 호흡 수련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이미 예전에 설명했었는데 내가 호흡이 육체적인 것이어서 영구하지 못하다고 했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육신이 죽으면 더이상 가질수 없으니 관음 법문도 영구하지 않거나 그런 요소에 속해있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었죠 영적 수행을 위해 육신은 물론 물질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관음 법문은 진정한 자아이며 우리의 진아를 아는 겁니다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 깨어났는 지를 압니다 우리는 깨닫기 위해 어떤 요소도 어떤 수단도 더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치 긴 밤이 지난 후 깨어난 사람처럼 그는 자기가 깨어난 걸 압니다

꿈 속에서는 온갖 방법을 써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때리거나 온갖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일단 깨어나면 깨어난 겁니다 그 어떤 법문도 필요 없습니다 사실 관음 법문이라고 말하지만 『법문』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나 경전을 쓰지 않고 이심 전심으로 전수된다고 하는 겁니다

입문식 때 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지만 여러분은 받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아를 알고,깨닫게 되며, 여러분 자아가 빛이라는 걸 봅니다 밝고 대단히 좋은 소리인 여러분 자신을 듣게 되며 이 소리는 우리를 가볍고 공기처럼 느끼게 하고, 세상의 먼지나 업을 씻어 줍니다 스스로 정화하는 거죠 그래서 입문을 줄때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언어를 포함한 그 어떤 요소를 쓰는 그런 과정이 아닙니다 언어는 단지 그곳에 어떻게 닿는지만 설명할 뿐이죠 어떤 일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요 그뿐이에요 하지만 그것 조차도 법문이 아닙니다

나의 영혼이 여러분의 영혼을 가르치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그 어떤 두뇌나 어떤 육체적인 도구보다 더 총명합니다 입문식 때는 언어를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뭔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 내면으로 알게 됩니다 진아는 진아를 알고 그 진아는 영원합니다

언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허나 모든 입문자들이 이 법문을 좋아하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 내가 말한 것이 진실이며 오직 진실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입문자들이 입문하고 난 후 진리와 내면의 세계의 영광이나 진아를 알고 맛보는 겁니다

그들은 나와 그들이 하나임을 압니다 이것은 일종의 천상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내가 그들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가르쳤고 그들 자신을 알고, 자신이 되며 내적으로 위대해지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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