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삼보에의 귀의와
입문』
칭하이 무상사 강연
미국 아리조나 피닉스
1991년 3월 10일
강연 여행 중에
칭하이 무상사는
여러 나라에서 온
청중들과
가끔
그들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1991년
칭하이 무상사는
미국 아리조나의
강연장에서 어울락
(베트남) 청중들에게
강연을 하셨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주최측을 대신해서
오늘 칭하이 스승님의
강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또한 이 강연에
참석하고자 시간을
내어주신 점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신사 숙녀 여러분
칭하이 스승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나는
콜로라도 볼더에
있었어요 소도시인데
조그만 부락 같았어요
너무 너무 따뜻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웠어요
산들이 높았는데
2400M 쯤 될거에요
히말라야 하고
아주 흡사했어요
나무들이 아주푸르렀죠
소나무와 삼나무들도
녹색이고
겨울인데도
여전히 푸르렀어요
눈은 하얗고
나무들은 초록빛으로
아주 아름다웠어요
작은 부락이에요
거주민들이1만8천명
이라고 들었어요
1만8천명이 삽니다
겨우1만8천명 밖에
안되는데 3백명이나
강연에 왔어요
우리 제자들이
준비해야할 시간이
아주 짧았어요
2주 밖에 없었죠
그걸데 그 두 사람이
나를 처음으로
초대한 거에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초대 받은지가 벌써
2년 정도 됐지만요
나를 초청한 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미국인
이었는데 못 갔어요
이번에는 다른 미국인
두 사람에게서 초청을
받았고 그 주에 사는
동포들도 방문할
기회가 생겼어요
『지나는 길이니까
들르겠다』고
했지요 그들은
잠시라도 들러달라고
간청을 했어요
놀랍게도
잠깐만 들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격식을 갖췄어요
모두 미국인이었죠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은 15명 쯤
있었어요
나머지는 모두
미국인들이었어요
그런데 내 강연을
듣고 난 뒤
70여명이
입문을 받았습니다
3백명 참석자들 중
70명이 넘게
입문을 받은거죠
그들이 하는 질문들은
모두 영적 수행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런 질문들을 했죠
『다른 법문을
수행해 왔는데
이제는 싫증이 나서
계속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죠?』
명상을 하면
지루해지느냐는
질문을 했지요
예를 들어 그런
질문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강연에서부터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내내 웃었습니다
너무 많이 웃어서
오늘은 기운이 없네요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질문들이
아주 우스웠거든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질문에
대답할 때 마다
강연장 전체가
폭소를 터뜨렸어요
우리는 서로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영적 수준이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끼리는
한 마디만 해도
즉시 이해합니다
몇 마디만
교환해 봐도
벌써 많은 생을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 처럼 느낍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소위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긴 긴 시간 동안
얘기해야만 합니다
어울락(베트남)에선
그런 걸『천둥 소리를
듣는 오리』라고 하죠
그렇지 않나요?
혹은『오리 머리 뒤에
파도 소리』라고 해요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은 불교를
따르므로 인과 응보의
법칙을 믿습니다
누구든지 즉시
알아듣는 사람은
좋은 영적 자질을
타고났다거나 전생에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전생에 수행했다』는
것이 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밀교 같은
법문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생을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티베트의
법문 같은 것은
자신의 전생을 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랫 동안
수행을 해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즉시
아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세상에
초심리학이라는
학과목이 있어요
이 과목은
전생을 아는 법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상해요
내가 강연하러
유엔에 가기
하루 전날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나를
초청했거든요
나를 초청한
한 여자가 있었어요
그녀는 초심리학을
공부했어요
초자연-심리학을요
그 방법을 수행했어요
그래서 내가『당신의
전생을 아나요?』
라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어요
이 방법을 수행하는
사람들 모두가 전생을
아는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내가
아르헨티나에 있었을때
초심리학
또는 초자연 심리학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를 만났어요
그는 오랫 동안
그 과목을 연구했고
가르치기까지 했죠
그 과목을 가르쳤지만
내게 전생을 보는 법을
계속 물었어요
그래서 그런 수행법이
있어서 전생을
알 수 있다지만
수행하는 사람 마다
모두 즉시
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하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그렇게 전생을 알려고
수행하는 것도
오래 걸리는데
우주 전체를 아는 건
말할 것도 없지요
어울락(베트남)에선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아,그 사람은 많은
생을 수행한 게
틀림없어』맞지요?
그는 많은 생을
수행했던 겁니다
지난 생에는
혹독하게 수행을 했죠
그런 식으로요
『좋은 영적 자질』을
가졌다는 것은
아주 오랫 동안
수행을 해서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모두들 그런 말들을
하면서도 누군가
득도했다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죠
『어찌 그럴수가?』
『어떻게 도를
얻는단 말인가?』
『방금 수행했는데
어찌 즉각 개오를
한단 말인가?』
그 사람이 최근에만
수행을 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미 오랫 동안
수행했을 수도 있죠
우리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이『아마 그는
많은 생을 수행했을
거야』라고 종종
말하는게 맞나요?
이런 말도 자주 해요
『한 생을 수행하면
즉각 개오 한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믿지를 않아요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찾아라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전혀 모르면서 허튼
소리만 하지 마세요
남들에게 우리가 하는
빈 말을 듣게 하는 건
남들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관습이 되어
버리죠 모두들 『아
저 사람은 많은 생을
수행했군』하면서
줄곧 말합니다
『한 생을 수행하면
즉각 개오 하지』
그렇게 반복만 하죠
또한
『한 사람의 득도로
9대가 해탈한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말하는
방법도 다 알아요
그런 말을 할 때는
듣기에도 좋고 아주
시적이기 까지 하지만
이해하질 못해요
혹은 더 연구할
필요도 못 느껴요
자신을 찾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한 생을
수행한다』 라는 것은
없다거나 『방금
수행했는데 어찌 그리
빨리 얻을 수가?』
라며 비평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엊그제
『한 생을 수행하면
즉각 개오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누군가 또 말하길
스승을 따르면
5대가 천도 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누구나 수행하면
자신이 해탈하는 거지
어떻게 5대가 천도
될 수 있지?』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은
『한 사람의 득도로
9대가 해탈한다』
라고 말합니까?
9대라고 했는데도
믿지를 않아요
한 쪽에선 이렇게
말하고 다른 쪽에선
모순됩니다 그렇죠?
이런 걸『자기
몽둥이로 자기를
때린다』고 하지요
그렇게 하면서
논쟁만 일삼고 있죠
왜냐고요?
우리가 말하는 걸
이루지도 못했고
듣고 따라하던 것들이
뭔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깨닫거나 이해한
것들은 믿기가
어려운 겁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게 아닙니다
아무도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면
아무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이런 표현들이
존재할 수 없었겠지요
그게 어디서
왔을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성취가 없다고
아무도 이런 표현들을
이해 하지 못한다고
믿을까요?
또 왜 우리는
그걸 반복할까요?
그게 비논리적이고
얻을 수 없는 거라면
잊어버리세요 그렇죠?
우린 계속 그말을 하죠
『난 알고 당신은
말만 계속 한다』라고
북부 어울락(베트남)
인들이 과거에
말하고 했지요
그런 게 가능하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그럼 공부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가
깨달았다거나
한 생애에 수행해서
즉각 깨달음을
얻는다면
누구든 한 생애에
수행해서 깨달을 수
있다면,우리는
그걸 연구해야 해요
사실일 수 있잖아요
그저께 우리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어요
『한 생애에 수행해서
즉각 깨달음을
얻는다』
『한 사람의 득도로
9대가 해탈된다』
또는
『불,법,승에
귀의하면
연옥에 떨어지거나
아귀나 동물이
되지 않는다』
삼귀의를 하면
그게 다에요
채식은 언급되지도
않지요
『한 달에 두 번
채식을 해야 한다』고
적어놓는 절도
많이 있어요
난 신문을 거의
안 보지만 최근에
누가 보내줘서
신문을 읽었어요
거기서 읽었는데
어떤 절은 한 달에
두 번 채식할 것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입문을 원하면 말이죠
아주 좋아요
한 달에 두 번만
채식을 하면
연옥을 피할 수 있지요
부처에
귀의함으로써
여러분은 연옥에
안 떨어질 겁니다
법에
귀의하면
어떻다고요?
유령이 되지 않겠지요
여러분은 아귀가
되지 않을 거예요
유령이란
아귀를 뜻해요
승에
귀의하면
어떻다고요?
여러분은 동물로
환생하지 않을 거예요
왜 여러분은
즉시 삼귀의를
하지 않나요?
한 달에 두 번만
채식하면 됩니다
난 그런 절들을
신문에
광고했을 거예요
인간으로서 우리가
이런 고통을 원하지
않는 게 맞잖아요?
적어도 우리는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원할 겁니다,맞지요
그러니 채식을 하세요
한 달에 두 번만요
그리 심하지 않잖아요
여러분이 출가자의
삶을 택한다면
자신을 넝마로
생각해야 해요
남들이 발을 깨끗하게
하려고 발을 닦는
바닥 매트 말이에요
사람들의 칼을 가는
숫돌처럼 말이지요
더 많이 사용될수록
우리 몸은 더 많이
닳을 겁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게 출가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출가자가 된다는 건
삼계를
넘어가는 것이며
탐욕과 분노
분개를 넘는 거지요
출가란 다른 집으로
가기 위해 이 집을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절도 집이지요
다른 게 아니에요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곳은 깨끗해요
애들이 떠들지도 않고
갚을 빚도 없지요
내야할 돈도 없고요
전화요금도 없고
전기요금도 없으며
수도세도 없어요
난장판이 없지요
그 집에서 사는 게
우리집보다 더 낫지요
그러니 그건
출가가 아닙니다
출가자는 남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모든 명예와 재산을
완전히 희생하며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출가』입니다
출가자이면서
여전히 이것저것
갖고자 한다면
또 사람들의 존경을
바란다면
그건 명예와 이익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걸
포기한 자가 아니에요
영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승복을 입으면
그들이 금욕적 삶을
원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면
이유를 궁금해하는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따라서 천국과 지구는
아주 공정합니다
무엇이든 집중하면
그걸 얻을 겁니다
우리가 수행할 수
없고,아직 불성을
얻지 못했다면
우린 잘못 수행하고
있는 걸 겁니다
우린 금욕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금욕에 대해 올바른
개념이 없으니까요
또는 신실하게
금욕하고자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난 수행을
못하는데 왜 너는
할 수 있니?』라고
묻지 마세요
모두가 다릅니다
몇몇은 부유해질 수
있어요,그렇지요?
몇몇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지만
똑같은 일을 하지만
파산하고 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알겠어요
따라서 우리는
영적 수행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요
그게 보통이에요
시험을 치면
합격하고 불합격하는
이들이 있듯이 말이죠
그게 보통입니다
우리 역시
그걸 의심하고
우리 믿음을 막으며
불성을 공부하고
얻기 위해 그 사람의
모범을 따르는 귀한
기회를 잃어선 안돼요
우린 그걸 부처가 되는
공부라고 부르니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되려고
공부해서,의사가
되듯이 말이지요
왜 그게 불가능하죠?
따라서 예를 들어
특정 법문을 따르거나
부족한 스승이나
좋지 않은 법문을
따르다가 수행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그 스승을
탓하지 마세요
아마 그 때 우리가
충분히 신실하지
않았거나,인연이
많지 않았고
스승이 어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을 겁니다
우리의 선입견은
스승이 이러저러
하다고 소망하게
만듭니다,그런 뒤에
이러저러한 스승을
우리는 만나겠지요
어느날 우리가 잘못된
모든 낡은 개념을
모두 버리고
천국과
부처에게
좋은 스승이 있다면
우리에게 보내달라고
기도한다면요
『그나 그녀가 누군지
그의 외모나 가문이
어떠하며 어떤 옷을
입는지 상관 없습니다
그가 진정한
스승이라면,제발
천국과 부처님
그를 제게 보내주거나
알도록 도와주세요』
그럼 그때 우린
분명히 진짜 스승을
만날 겁니다
하지만 거기 앉아서
이러저러한
스승을 만나길
기대한다면,그럼
천국은 이러저러한
사람을
보내줄 거예요
신은 자녀를 기쁘게
하고자 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 속세는
다른 세상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을 겁니다
왜 이 세상에는
고통과 행복이
존재할까요?
그건 중생들의
욕망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또 그들이 일하는 법도
다르지요,그래서
그들은 다른 업의
응보를 창조합니다
선행하는 이들은
나중에 좋은 결과를
거둘 거예요
좋지 않은 일들을
하는 이들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을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선행하는 사람과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린 선과 악을
보는 겁니다
종종 우리는
이전 생에서
선행의 씨를
뿌렸기에 이번 생에
악행을 했다고 해도
멋진 삶을 즐깁니다
우리 악행의
결과는,우리가
나이가 좀 든 뒤에
또는 다음 생애에
거두게 될 겁니다
그걸 피할 순 없어요
어울락인들은
말합니다
『텐 봉 코이 코이
소 니 밧 라우』
이는 천국의 그물이
무한하게 크다고 해도
거길 머리카락 한 올도
달아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우주의 업의
법칙이에요
이 법칙이 없다면
천국과 지구는
혼란스러울 겁니다
남들을 해치거나
죽이길 원하는 사람
남의 것을
훔치고자 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할 수 있지요
업의 응보가
없으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응보가 있지요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지만요
그 법칙은 확실히
적혀있지만,몇몇은
두려워하지 않지요
없을 땐 물론이고요
이제 난 여러분에게
내 법문을 따르면
한 생에 해탈할 거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게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쉬울 수 있지?』
어떻게 여러분은
한 달에 며칠만
채식하는 것으로
고통의 삼계를
벗어날 수 있지요
또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요?
이따금 여러분은
공양을 하거나
몇 달러를 헌금하러
절에 갑니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사람을 위해 기도할
긴 목록을 제출합니다
정말 긴 족보를요
헌금 몇 달러나
사과 몇 개를
공양하고는
부처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합니다
또 그게 괜찮다고
논리적이라고 여기죠
그런데 내가 말하는
나와 함께 수행하고
일세해탈 하라는 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뭐라 설명하겠어요?
나와 수행하는 것은
일세해탈만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일생 채식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그렇죠?
나에 대한 신심도
있어야죠,신심은
모든 공덕의 어머지죠
나와 수행할 수 있고
나에게 신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등급이 아주 높습니다
그들은 지혜가 높이
진보하여 여성이
성불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직 남자만이
성불할 수 있으며
여성은 안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부처는
어디서 오겠습니까?
만일 여성이 없다면
부처는 어떻게
태어날까요?
왕들과 대통령,
그들은 어디서
오지요?
하루종일 우린
여성을 비난하지만
기술자나 의사 등
특출난 인물이 되고
부처나 그리스도
브라마나 신 등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 낳아 준 거죠
그런데도 감히 계속
어머니를 비방합니다
자,날 따른다면
여러분은
매일 명상해야 해요
두시간 반 동안요
그리고 채식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계란은 조금이라도
먹어선 안됩니다
약간의 술도 절대
마시면 안되고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 충실해야 하며
효도해야 합니다
충실해야만 하지요
보통 모든
삼강오륜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데
왜 일세해탈을
이루지 못합니까?
모든 빚을 청산하면
일세해탈 해야 합니다
논리적인가요?
(논리적입니다)
하루에 두 번
채식 하고
돈 몇 푼을 보시하고
절하면서 말합니다
『난 이런 저런
법명을 받고
삼귀의를 행했어』
그럼 삼계의 고통에서
구원된 걸까요?
세상에,삼계의
고통을 초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세생생 온갖 종류의
악업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 생에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면서
전생과 똑같이 산다면
어떻게 삼계의
고통을 초월할 수
있겠습니까?
인과응보 같은 게
없을까요?
누가 우리 빚을
자진해서 덜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직접
빚을 청산하겠어요?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십만달러를 빚졌는데
갚지 않으면 여러분은
감옥에 가겠지요?
아주 부유한
친구나 부모
혹은 큰 부자인
친척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십만달러의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만
여러분은 빚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영적 수행자도
거대한 공덕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 그가 수생 동안
영적 수행을 했다고
말합니다
우린 누가
수많은 전생동안
수행을 했는지
모릅니다,그런데
어떻게 함부로 없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세세생생 수행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공덕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큰 부자와
같이요,그가
우릴 돕고 싶다면
쉽게 빚을 갚아 주죠
별 어려움 없이요
평범한 이들은
빚만 지고 공덕은
별로 없어서 직접
갚기가 어렵습니다
공덕이 있고
빚이 없는 이들만이
갚을 수가 있습니다
무량공덕이 있으면
왜 갚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큰 공덕이
있는 사람을 따르고
그들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한다면
진실로 우리는
일세해탈 할 것입니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이상할 게 없습니다
뭐가 비논리적이죠?
위대한 공덕을
지닌 사람들은
오랫동안
영적으로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즉시
이 말을 이해합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우리가 도에 관해
말할 때 등급이
높은 사람은
즉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중간 등급의 사람은
집에 가서 연구하고
시도해보며
낮은 등급의 사람은
비웃을 것이다
그들이 비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라 했죠
도는 그만큼
광대하고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한정되어 있어서
등급이 다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인간으로서
많은 고통과 비탄
수많은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승을
만나서 약간의
가르침을 전수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혹은 스승의 제자들을
만나서 약간의
인연을 맺어 둔다거나
그들이 스승의
전단을 한두 장
읽는 다거나
스승을 보긴 했지만
스승을 믿지 않거나
돌아 가서 스승을
비방했던 겁니다
이것도 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연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비방을 통해서요
그것도 인연입니다
누굴 비방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친근해진다는 뜻이죠
누굴 비방하려면
알아야 하니까요
그것은 우리가
서로 안다는 뜻입니다
그건 우리가
안면이 있다는 것이죠
그럼 인연이 생긴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인간으로
태어나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나면
우린 지쳐서
약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지혜는
방금 동물에서
인간이 된 사람들과
다릅니다
막 지옥에서 올라와서
완전히 씻겨지지
못한 사람들과도
다르고요
그들은 불로
막 정화된 거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물로 씻어도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화를 위해
불을 써야만 합니다
그런 차원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불로 씻는 것은
좀 뜨겁습니다
물로 씻는 것은
좀 시원하죠,그렇죠?
물로 목욕하는 것은
시원하지만
불로 씻으면 뜨겁죠
불은 뜨겁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물로 정화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아서
저 밑에서
불로 정화합니다
그들은 올라와도
아직 몸이 뜨겁지요
불로 방금 씻었으니
그들이 뭘 건드리든
타버립니다
그들은 뭘 말하든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너무 뜨겁고
내면으로 화가
나 있는데다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못했으니까요
불로 정화되면서
그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채
여기 올라오면
거칠고 화를 내며
건드리면 다 타버리죠
동물에서 방금
올라와서 인간이
된 사람들은
여전히 사납고요
그들은 아직
지혜가 없어서
별로 섬세하지 못해요
종종 식물에서
방금 올라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물은 바로
인간의 등급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기적적인 인연이
있어야만 등급이
올라갈 수 있어요
마치 천재라고
부를만한 비범한
학생들이 있듯이요
초등학교에서 바로
대학교로 가는 거죠
너무 똑똑해서요
그건 그들이
전생에 이미
배웠기 때문이거나
높은 경계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여전히
높이 진보한 겁니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
된 사람들은 보통의
지혜를 지녔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모두다 즉시
이해하고
수행에서 즉시
결과를 얻는 이들은
높은 곳에서 온 거죠
전생에 수행하면서
최고 등급에
이르지 못했기에
여기 내려와서
인간으로 태어나
계속 수행하고
빨리 진보할 기회를
얻은 겁니다
이런 곳에서 수행하면
인과응보가 있어서
더 빠르거든요
균형이 있어서
더 빠릅니다
그게 아니고
더 높은 차원에서
수행하면 너무 편해서
공덕이 별로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니
공덕이 있겠어요?
그래서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종종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인간으로 내려오길
바라는 거죠,그래야
수행하여 더 빨리
진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 높은
차원의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이
매우 열려있고
깨달았습니다
그럼 식물이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이 됐을까요?
그건 이런 경우입니다
예컨대 어떤 나무가
살아있는 부처가
계시는 동안
거기 가서 꽃을 하나
땄다거나 그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는다거나
부처의 제자가
꽃이나 과일을 따서
부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제자일 필요도 없죠
제자가 아니어도 돼요
제자를 만드는 건
신심입니다
제자로 만드는 건
입문이 아닙니다
부처는
제자와 추종자들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신실하면
그 사람이 제자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들이 그 나무에서
꽃이나 과일을 따서
살아있는 부처에게
공양을 하면
그 나무는 죽은 뒤에
다음 생에
인간이 됩니다
물론 똑똑한 인간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스승을 만나게 되겠죠
그런 사람들은
살아있는 스승을
만나도 한 생 더
수행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평생 수행하면
이 인생은
그 스승과 함께
수행을 한 후에
죽으면
한 생을 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그들의 지성은
훈련이 충분치 않아서
공부가 느리고
그들의 대회는
이해하기 힘들어요
또한 스승의 말을
이해하기 힘든
시간이 있어요
인도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한 가족에게 아주
아파서 죽어가는
아들이 있었어요
그 가족의 아들과
부모는 모두
입문을 했어요
그래서 그의 부모는
매우 신실하게
스승에게 기도해서
그들의 아들은
병이 완쾌되고
소생했어요
독자였기 때문에
그를 무척 사랑했어요
하지만 결국
아들은 매우 아파서
죽으려고 했어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죠
그래서 그의 부모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들의 스승이 신통을
못부린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기도하는 건
다 얻을 거라고
왜 말하셨나요
우리는 아들이 하나만
있는데 지금 우리는
아들이 몇 년 더
살기를 기도했지만
이루어주지 않았어요
아마도 당신은
신통을 부릴 수 없고
우릴 사랑하지 않아요』
그들은 거기 앉아
비난하고 탄식했어요
그 때 아들이 깨어나
부모에게 충고했어요
『스승님이 마술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공덕이 없어질 거에요
저는 전생에
꽃이었고
한 사람이 그 꽃을 따서
우리 스승님께
공양했어요
그래서 저는 인간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비록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제 지혜가
최고 등급까지
열리지 않아서
저는 죽어서
인간으로 한 생을
더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완전히
해탈할 겁니다
더 이상 슬퍼 마세요
전 죽는 게 더 좋아요』
그 말을 하자마자
그는 눈을 감고
죽었습니다
그 때 그의 부모님은
알았습니다
그가 전생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때 그는 자기의
전생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죠
자기의 전생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누가 영적으로
수행을 하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워요
때로 우리는
외적으로만 사람을
보니까요
정말 수행을 하는지
아닌지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많은 경우에
우리는 출가자가
되려고 삭발을 한
사람을 봅니다
그들은 자기가 이미
모든 걸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안 그렇죠
그들은 그 일부분만
이해하고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해는 아직
완전하지 않아요
우리가 영적 수행의
모든 미묘한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등급이 아주
다른 것을 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