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최고의 힘을
얻는 법』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대만)
신쭈
1988년 3월 31일
이렇게 멀리 떨어진
차오퉁 대학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칭하이 무상사님의
강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이 드문 기회 또한
축하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평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 있으니까요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왜냐하면 저는
신추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많은 돈을
벌기를 바랬습니다
물질적으로 아주
부유해지길 원했죠
하지만 아내가
종종 묻기를
『뭣 때문에 그처럼
많은 돈을 버는
거지요?』하면
나는 이렇게 되물었죠
『돈을 벌지 않으면
뭘 한단 말이오?』
그러던 어느날
아내와 저는
칭화 대학의
연못가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내가
한가지 목적인 더 큰
자유를 위해 돈과
명예를 쫓고 있다는
생각이들었어요
왜그럴까요?
그것은 돈이
있으면 원하는 걸
다 살 수 있고
유명하고 부자가
되면 뭐든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한가지 목적을
위한 겁니다
부와 명예는 자유를
얻기 위한 겁니다
우리의 의지가
타인에 의해
지배 받지 않고
뭐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길
바라는 거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주 부유하고
유명하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 가족은 꽤
잘 사는 편입니다
그런 환경 하에
보통 말하는
처자식이 있고
집과 차가 있는
저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저녁 초대를
할 때면
거절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안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누군가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무례하게 얘기해도
부와 명예를 갖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의
뜻에 굴복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부처의 가르침이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게해 준
칭하이 스승님을
만나는 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자유로워
질까요?
그것은 돈과
명예를 쫓으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지녔어도
그것들을
잊을 수 있고
남들을 이해하고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사교적일 필요가 없죠
칭하이 스승님의
강연은 나에게
아주 중요해서
강연에 가야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용기를 갖고
친구에게 말한 사실이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이로움을 얻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전에는 채식을
5,6년씩
했으면서도
친구에게 감히
채식을 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채식을 하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고
할까봐서였지요
사실 채식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 것 또한
아주 힘듭니다
내 자신도
채식하는
과정에서
채식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랬동안
혼자서 채식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모두들 저녁
모임에 가자고
나를 부르면
『나는 오늘이
초하루이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만
하는데도
그럴수 없었죠
정말로 고기가
먹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승님께
배운 후로는
고기를 보기만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정말 이상하죠
그래서 스승님께
물었죠『지난
4,5년 동안
억지로 채식을
하면서
내가 채식을 해야
하는 날에
왜 그렇게 고기를
먹고 싶어 했지요?』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고대 인도의 깨달은
스승들은 계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법문을
전해주었고
법문의 전수란
깨달은 스승이
여러분을 여러분의
본래 힘과 연결시켜
주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평생 사용할 수 있지요
이제는 더이상 고기를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킬
필요도 없어요
이렇게 되다보니
거리낌이나
어려움 없이
채식을 할 수 있고
친구들에게도
채식한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친구들도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것이
육바라밀에서
말하는 소위
『계율을 지키는지
모르면서 지키는 것』
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저는 이제 더이상
채식을 하고 중생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힘과
나의 사적인
체험을 통해서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용어가 아닌
『계율을 지키는지
모르면서 계율을
지키는』진정한
나의 개인적인
체험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육바라밀입니다
변증법적인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의
타고난 반응이며
이 자연스런 현상은
우리가 원하는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주목적인
자유입니다
그래서 오늘밤
비바람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축하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스승님을 모셔서
강연을 듣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새로울 게 없어요
유덕한 여러분은
원래 모든 걸 압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너무 바빠서
잊은 겁니다
뭘 잊은 걸까요?
방금 형제님 말씀처럼
우리는 여기에
돈을 벌 목적으로
온 게 아니란 걸
잊은 겁니다
우리는 한백년
살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열심히 일한 다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기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걸
잊었지요
내면에 있는 위대한
임무를 잊었습니다
그 임무가 뭘까요?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하며
여기에 백년 동안
온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따금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거나
아플 때는
생각하거나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나는 여기에
뭐하러 왔는가?
나는 정말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이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들을 해왔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대답할 수 있었죠
그렇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
우린 석가모니불이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고
노자,공자,보리달마
또는 고대 스승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서양의 스승들이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답을
찾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 답이
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배운 사람들도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가서
당대의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번 찾아 봅시다
현시대의 석가모니
부처가 있나요?
현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 봤어요?
(네!네!)
본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도 축하하고
아닌 사람도
축하합니다
오늘 강연에 왔으니
내일이면 그런 사람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설령 찾았다 해도
알아보질 못합니다
그래서
아주 골치아파요
어떤 곳에서
듣고 봤다고 하면
모두들 그곳에
거대한 사원이나
교회를 세우고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서
시간과 돈을 쓰고
하늘에 기도를
하거나 보지도
못하는 부처에게
스승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런
살아있는 부처나
보살을 찾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원을
짓거나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찾았다면 말입니다
살아있는 부처나
살아있는 깨달은
스승을 찾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원이
필요없어요
더많은 절과 교회를
지을수록 그곳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원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교회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 거기서 친절을
기도하고 도덕적인
것들을 듣습니다
그것 역시
아주 좋아요
다만 많은 사원이
지어진다는 건,아직
사람들이 스승을 찾지
못했다는 걸 뜻해요!
그들을 못 찾아서
기도하는 겁니다
일단 그들을 찾으면
우린 만족할 겁니다
그래서,석가모니
부처 생전에
그는 절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 제자들도
절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그의 출가 제자들은
매일 그와 함께
탁발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뒤에
밤을 보낼 장소를
무작위로 찾았지요
다음날,그들은 다른
곳에 가서 진리를
설법했을 겁니다
그 제자들이 석가모니
부처를 찾았을 때
그들 역시 사원을
짓거나 뭔가 구하러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를
만나지 못했던
다른 이들이
사원을 지었지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최고의 천국)
든 뒤에야
그 제자들은
그가 남긴 사리를
모아서,기념으로
그걸 간직하고자
탑을 지었습니다
그건 마치 우리가
부모님 사후에
그들의 시신을
특정 장소에 묻고
그들을 기억하고자
무덤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부처 사후에
그를 기억하고자
탑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지요
하지만,물론 부처의
사후에 그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여전히
그리워합니다
따라서
대부분 매일
일 년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그들은
그들의 스승을
기리고 숭배하고자
그곳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가
죽은 뒤에 일년에
한 번이나 더 자주
그들을 기리러 무덤에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리움을
표현하기를 원하지요
이제 그 사람을
더이상 보거나
접할 수 없어서
그를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와 관련된 장소에
갑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 전에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그들을
기리는 절을 짓지요
우리 인간의 이런 면에
난 정말 탄복합니다
그들을 봤던 이들은
그들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들을
본 적 없는 이들도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는 2500년 전에
있었어요!
우린 그를 전혀
모릅니다!
그가 우리에게
뭘 가르치거나 함께
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그를 여전히 숭배하죠
그건 우리가 매우
훌륭한 사람임을
뜻합니다
왜 훌륭할까요?
왜냐하면 우린 분명
누가 훌륭하고
누가 우리 내면의
최상의 이상과
덕을 대표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아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그를 숭배하는 겁니다
지금껏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
노자,공자
소크라테스와 다른
많은 이들을 여전히
숭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면서도
또한 왜 그들을
숭배하는 지 점검하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그건 본래 그들이
우리와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매우 근면하게
열심히 수행했고
큰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수행을
했으며 결국 최상의
힘과 최상의 영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린
그들을 숭배합니다
하지만 이러면서도
우린 다시 자신에게
자문해야 합니다
그처럼 될 수 있을까?
아주 위대하게요?
(예,굳게
결심하면요)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 먹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면,다른
누가 존중하겠어요?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누가 우릴 믿겠어요?
부처가 될 수 없다면
우릴 위해 누가
부처가 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념을 우리가
갖기란 매우
드뭅니다
정말 안됐지요!
오늘부터 여러분은
부디 자신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지십시오
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지혜를 열어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우린 우릴 구원할
다른 사람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게으르면 어쩌지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그가 임무를
실패하면요?
위아래 다 찾아봐도
다른 모두들
게으르고 자신감이
없다면 어떻게 하죠?
그럼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겠어요?
(자비심과
관용에요)
그건 불충분합니다
(불충분하다면
사랑이요)
지혜가 없는 자비와
인내는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요!)
지혜요
이 지혜를 찾는 법이
가장 큰 문제에요
우린 아주 지적입니다
여기 우리
모두가 지적이지요
그가 어리석다고
아무도 말 못합니다
나도 말 못하겠어요
여기 그 누구도
어리석지 않아요
하지만
지능과 지혜는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뭔가 발명했다고
해봐요,예를 들면
컴퓨터와 원자 폭탄
비행기나
다른 기계를 말이죠
그런 다음 우리는
매우 흡족해하거나
거만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에겐 작은
신통이 있습니다
그들이 병을
치유하거나,사람의
과거를 읽고
그들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해봐요
그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가
있고,그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어떤 이들에겐 더 큰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와 바람을
부를 수 있고
콩으로 병사를 만들며
산과 바다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들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겠죠
하지만 우리 중국인은
그에 대해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우린 영화 속에서
그걸 봐왔습니다
또는『서유기』를
우린 읽어봤습니다
그게 어떤 이야기죠?
현장 스님이요!
그러니 모두들 압니다
그리고 그 원숭이요
손오공 원숭이 왕이요
손오공은
원숭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에요
그는 음양의 힘으로
합쳐졌다고
말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극도로
영리합니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영리하지요
또한 그는 72가지
신통을 지녔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로
나타날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아서 살짝
깨문 다음에
『후』불면
그들은 수많은
손오공들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진짜
손오공이고 누가
가짜인지 몰랐어요
또한 관음보살에게
기도하러 그는
부처의 왕국에도
갈 수 있었어요
또 그는
태상노군에게
갈 수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우린 태상노군이
위대한 신임을
압니다!
가장 위대한 다섯
왕중의 하나였지요!
태상노군이요
또 누가 있지요?
동양에는,어떤
동방의 신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
여신이 있지요
방금
『서유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린 거기에 위대한
왕들이 많으며
손오공이 그들에게
갈 수 있다고 했지요
이건 정말로
흥미롭고 놀랍지요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위대한 존재를
볼 수 없죠
그는 원숭이일 뿐인데
어떻게 거기 올라가
그들을 볼 수 있었죠?
스스로 이 질문을
해 본 적 있습니까?
있어요?
이 원숭이가 누굴까요?
여러분 아세요?
원숭이는
현장의 마음입니다
그의 내면의 힘이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원숭이가 그냥
원숭이라고 합시다
그는 위대한
신통력을 지닌
스승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신통을 지녔죠!
자기 공부를 성취한
덕분에 그런 위대한
신통이 생겼죠
그리하여 그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콩을 군사로 바꾸며
자신을 여러 몸으로
나툴수 있었죠 그런데
왜 손오공이 아무 것도
모르는 현장법사를
모셔야만 했을까요
현장법사가 가진 건
이상 뿐이었지요
현장은 우리가
공부하도록
서방에서 많은 경전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그건 당시
소수의 스승만이
인도에서
대승 불교를
설법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
모든 장소에
불교가 있습니다
불교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도
진리를 가르쳤고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를 가르쳤으며
노자 또한
진리를 가르쳤으며
공자도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많은 법문과
가르침을 설했습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곤 몇 권의
경전이 전부입니다
노자가
도덕경만 가르쳤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허나 그의 정수가
도덕경에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의
정수가 도덕경입니다
그래서 도덕경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자의 가르침이
뭔지 알지 못한다면
도덕경만
공부해서는 절대로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도덕경만 공부해선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덕경이 뜻한 바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 뜻을 이해하려면
수행으로 노자의
등급을 성취해야죠
공자도 똑같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중용이나 대학만
가르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전이
유실됐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위대해지기까지
뭘 수행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너무 바쁘니까요
뭣 때문에 바쁠까요?
삶을 편안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발명하느라 바쁘지요
이런 일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매우 유용한 일이죠
누가 이 마이크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편안하게 강연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비디오 카메라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강연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내 강연을
듣지 못했을 테고요
그래서 이런 발명을
하는 과학자들은
놀랍습니다
그런 일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물질적인 방면에만
도움이 됩니다
다른 방면들,영적인
방면들도 있거든요
그걸 모른다면
많이 놓쳐버리겠죠
사실 외국인이랄게
없습니다,우리는
다 지구인이니까요
모두 지구인입니다
하지만 우린 다양한
집에 살고 있어요…
지구에는 수많은
집들이 있습니다
포모사(대만)라는
『집』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집』은
어울락(베트남)이죠
그런 다음 공부하러
영국이라는
『집』에 갔습니다
그 후에 내가 간 곳은
포모사(대만)이라는
『집』이었거든요
이곳은 좀 달라서
약간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 온 뒤로
좀 친근해졌습니다
내 느낌에는
포모사(대만)와
큰 인연이 있어서
매우 친근한 듯해요
그래서 내가 가서
강연하는 곳이면
늘 그들이 무척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 놀랍습니다
(지상의 천국같아요)
네,맞아요!
이것은 신쭈의
동료 수행자들이
기부한 것입니다
바깥의 길에도
수없이 많은
노란 깃발과 화환이
있습니다
난 너무 당황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직접
이렇게 했습니다
난 억지로 시키거나
그만두라고 못합니다
오늘까지도 이 일을
몰랐어요! 놀랐죠!
그들은 날 놀라게
해주고 싶었나 봐요!
나도 그들이 이렇게
웅장하게 만들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
모두들 고맙습니다!
정말 열정적이죠
신쭈 사람들의
얼굴에도 있습니다
신쭈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정말 열정적이고
매우 고귀합니다
내면의 상태는
그대로 외양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외양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루종일 이렇게
행동한다면
우린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네,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어요!
말하지 마세요!
알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구를 봤을 때
늘 웃고 있다거나
얼굴이 매우
인자해 보인다면
당연히 무척
편안하게 느끼겠지요
그럼 그 사람이 분명
사랑이 담긴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누가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도와주길 즐기며
재난에 빠진 이들을
구해주고
환자들을 편안하게
보살펴 주며
치유해 준다면
그 사람 마음이 무척
자비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되죠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희의 행위로써
알려지게 되리라』
그 말은,일과 행동을
관찰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면에 고귀한
이상이 없다면
고귀한 행동을
실천할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말 할 것도 없죠
안그래요?(맞습니다)
맞아요! 좋습니다!
(얼굴을 보면 마음이
드러납니다)
좋아요!
그녀는 말할 줄
아는 군요,나중에
단상에 초대할게요
말이 난 김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면에 있으니까요
늘 남을 도와 주고
남들을 구하고
도움을 줄 생각만
하며,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고
자신의 힘이나
그들을 편안하게
해줄 본성을 찾도록
인도하는 사람을
보게 됐는데,
그가 신이 아니라면
분명 그 사람은
신을 위해 일하고
부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 걸 알지요
신은 천국에서
한가하게
매일 수염이나
쓰다듬으며
우리 선악만 심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관찰하되 아직
행동은 안 취했지요
중국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빈틈없이 경계하되
움직이지는 말라
관찰만 하는 겁니다
『오! 넌 사악하구나
나중에 지옥에 넣어
주마』하지도 않고
누가 매우 훌륭한 걸
알게 된다고
『아! 정말 착하네!
나중에 천국으로
올려주마』하지 않죠
그렇게 하지 않아요
신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선과 악은
별 상관하지 않아요
신은 평범한 인간의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초월했으니까요
신을 찾고 싶다면
우리 이웃을 보세요
그가 친절하면 우릴
신 대신 돌보는 거죠
그 순간에 그는
신의 자질을 지녔고
부처의 품성을
지닌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디 가서
신을 찾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중생들이
신의 자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녔다고
했었고요
그럼 왜 불성을
사용하면 안됩니까?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가 자비로울 때
바로 신의 품성인
불성을 사용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돕는다면
그 때가 불성을
사용하는 것이고요
누군가 외롭고
도움이 필요할 때
편안함을 준다면
그 순간이 우리가
신의 힘을 사용하는
순간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그걸 낭비하는 거죠
우린 낭비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바쁘니까요
돈을 버느라고요
돈을 벌어다가
은행에 넣은 다음
화려하고
편안한 집을 세우죠
자신을 위해서요
즐기기 위해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보냅니다
나중에는 늙어서
떠나버리겠죠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갑니다
일생 백 년 동안
신의 힘을 낭비하고
불성과 부처의 힘을
낭비하면서요
우린 사실 그걸
전혀 사용하지 않죠
정말로 불쌍해요!
하지만 우리가
병든 사람을 돕거나
보시를 하면 아주
약간의 신의 자질을
사용하는 겁니다
부처의 힘을 단지
약간만 쓰는 거고요
우린 이 힘을 완전히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자신을 부처라고
여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깨달은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불』은 부처입니다
부처는 깨달은
스승을 의미하지요
여러분 모두가
그걸 알아야 해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는 그냥
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많은 생애에
단 하나의 부처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정말 불쌍하겠죠
세세생생 늘 무지한
중생만 있을 겁니다
어떻게 세세생생
단지 하나의 부처만
있을 수 있겠어요?
우린 모든 삶에서
늘 선생님들이 와서
학생들에게
영어,수학,철학
또 다른 과목들을
가르쳤다고
들었어요
선생님들이 모든
생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처는
그렇게 많은 생에서
한번만 와서
해탈의 길을
가르쳤을까요?
비논리적이잖아요
모든 생마다
부처들이 있습니다
깨달은 스승과
예수 그리스도,또
다른 스승들도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런 부처일까요?
그는 우리와 정말
비슷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보이나
모든 내적 힘이나
신의 힘,
부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을 대로 부르세요
또는 도의 힘이던가요
다양한 장소와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있는
종교 때문에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이름이 쓰이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그럼에도
모든 종교는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죠
우린 이름에 집착해선
불교가 좋다느니
도교가 좋다느니
말해선
안됩니다
여기선 그런 게 없어요
난 그런 걸 말하진 않죠
우리 모두 부처처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이 완전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힘 중 아주 조금만
쓰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모두 내면에
이 위대하고 전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100% 전능하죠
이게 필요하면 언제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아주
조금만 쓸까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그리스도,노자 등
이 위대한 스승 모두
우리는 진정한 길을
수행해야 하며
가장 위대한 이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뭔가요?
우린 가장 위대한
지혜와 완전한 지혜를
갖고 싶어 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최고의 힘을
얻는 법』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대만)
신쭈
1988년 3월 31일
우리모두 내면에 이
위대하고 전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100% 전능하죠
이게 필요하면 언제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아주
조금만 쓸까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노자 등
이 위대한 스승 모두
우리는 진정한 길을
수행해야 하며
가장 위대한 이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겁니다
그러면,가장 큰
목표는 뭔가요?
우린 가장 위대한
지혜와 완전한 지혜를
갖고 싶어 합니다
하찮은 신통에
만족해선
안됩니다
아주 작은 힘이라도
가질 거라고
기대해선 안됩니다!
아주 작은 지혜라도
가지리라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그건 안된 일이에요
예를 들어
한 과학자가
마이크를 발명했고
어떤 이는 비디오
테이프를 발명했으며
어떤 이는 전화나
텔레비전과 같은
다른 물건을
발명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걸
발명할 수 있거나
모든 걸 할 수 있는
과학자나 회사는
없습니다
한 개의 제조 공장에선
단지 한 두 개의
물품을 생산합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회사에선
이 컴퓨터가
어떤 특정한 일을
하지만
다른 컴퓨터는 또 다른
일을 처리하지요
우리에겐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한 대의
컴퓨터는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갖고 있는
도구에도 적용됩니다
그걸 샀나요?
내가 그런
『컴퓨터』를
무료로 팔겠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갖고
있으니 내면에 있는
완전한 컴퓨터를
활용하도록 도울게요
인간만이 그 완전한
컴퓨터가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그런
컴퓨터가 있지만
너무 바쁩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서
작은 컴퓨터를
발명하고서
내면에도 컴퓨터가
있다는 걸 잊어버렸죠
그들도
내면에서 완전한
컴퓨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모릅니다
오늘날
이 세상 과학자들은
수행을 많이 해왔으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초소형
기계와 멋지고
유용한 도구를
발명하느라 밤낮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매우 이로운
컴퓨터가 있지만
자신에게 한정된 힘만
있다는 걸 인지합니다
또한 그들은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도
정말로 완전한 걸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의 두뇌처럼
완벽한 것조차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두뇌는
가장 완벽한 컴퓨터죠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건
단지 두뇌이며
영혼이나 부처의 힘은
아직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과학자는
방향을 바꿔
자신에게 묻고 있죠
왜 그렇지?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
역시 영적 수행자이죠
어떤 법문이
최고입니까?
가장 완전한 컴퓨터를
얻으려면 어떤 법문을
수행해야 할까요?
그건
관음법문입니다
관음법문은 한가지
이름만 있지 않아요
많은 종교와 종파가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오직 한 법문만이
있습니다
모든 스승이 이걸
다른 이름으로 부르니
혼동되는 겁니다
혼동되고 나면
우린 어떤 법문을
수행하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스승이
수제자 없이 떠나면
끔찍하게 될 것이며
상황이 더 악화되죠!
그때부터 그들은 모두
무모한 수행을 합니다
맹목적으로 수행하면
좋은 결과를 못 낳지요
얻지도 못하며
동시에
어떤 것도 갖지 못하죠
그래서 길을 잃고
더욱 무분별해져서
결국은
어떤 좋은 결과에도
이르지 못하는 더욱
다양한 체계가
발달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이 생기죠
제 방법은 좋지만
당신 것은 안 좋아요
제 종교는 좋지만
당신의 종교는 좋지
않아요 라는 등등
잘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존재와
하나라는 걸 알 겁니다
그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누구도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며
어떤 종교가 나쁘거나
어떤 행동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것 같아요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가
부처가 된 후
일어나지 않고 말했죠
『오,기묘하구나,
어떤 중생도 나와 같은
불성을 지녔다니』
『그가 나보다 낮다』
라고 말하진 않았죠
아니야!그는 말했어요
『모든 중생이 나와
똑같구나
조금도 다른 게 없어』
하지만 왜 그들은
스스로 그걸 모르지?
이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부처와
똑같다는 걸 알 수
없었기에 부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그래요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도움을 청해 자신들도
똑같다고 말합니다
어떤면에서 같을까요?
그들이 부처와 같다는
걸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부처나
깨달은 스승이
이 세상에 오는
유일한 사명과
목적은
그들도 부처와
똑같다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우리들 중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이는 우리도
부처와 같다는 걸
알았음에 틀림없어요
우린 진정 불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장난이 아녜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성을 인식하는 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조금만 인식했고
완전한 부처의 힘,
곧 불성이나
신의 힘을 인식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모든 스승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겁니다
그들은
다양한 이름과
다양한 제목을 쓰지만
아무튼 그건
관음법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 역시
능엄경에서
자신도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상정등정각은
최고의 경지이자 신을
뜻하며 모든 존재와
하나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같은 법문을 수행했고
노자와 공자 모두
같은 법문을
수행했습니다
난 그걸 여러 번
언급했지요
내 책에 매우 명확히
증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에서 참고사항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든지
매우 명확히
증명되어야 합니다
내가 말한 게 진실인지
여러분은 말할 수 없죠
믿든 안 믿든
그건 여러분 일입니다
우리가 그걸 할 수 없죠
우린 과학에 기반을
둔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더구나 우리가 말한 건
사람들이 수용하기에
합법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미신을
믿게 가르칠 순 없어요
이 세상엔 두 종류의
법칙이 있죠
하나는 업(응보)의
법칙입니다
『세상』이란
이 우주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우주에는
두 종류의 법칙이 있죠
하나는 업(응보)의
법칙이고
하나는 사랑의 법이죠
위대한 사랑과 자비의
법칙입니다
업(응보)의 법칙이
무엇입니까?
업(응보)의 법칙이
어디에 존재합니까?
그건 우리 세상과 좀 더
높은 세계에 존재하죠
이 두 세계에는
업(응보)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업(응보)의 법칙은
삼계에 걸쳐 있습니다
하지만
3세계에서는
그렇게 많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의 존재하지 않죠
2세계와
1세계,우리 지구 등
이 삼계에는
업(응보)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삼계를 초월하면
다른 종류의
법칙이 있습니다
오직 자비와 사랑의
법칙만이
있지요
좋아요,이제 이 업
(응보)의법칙이 뭐죠?
왜 여기에만
존재하나요?
우리모두 사람이
죽은 후에 난폭하고
악하면 지옥에 갈
거라고 들었죠
그걸 들었나요? (예)
좋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지구로 옵니다
이 지구는 지옥과 같죠
인간에겐 이미 매우
고통스러운데
여기보다 더 고통스런
다른 장소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고통이 너무 많죠!
그걸 참을 수가 없어요!
따라서 누군가 사납고
악하다고 생각되면
조심하세요
여기 다시 와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천국이 있습니다
행복한 이들은 천국의
경지에 있지요
억압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벌받고,감옥에
갇히고,튀겨지며
굽히며,억압받고
고통 당하고 살해되고..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것은
지옥의 상태입니다
이런 걸 들은 적이 있죠
전쟁 시에
적이나
두 나라 모두에서
시민들을 붙잡을
때마다,
어떤 처벌을 그들이
가하는지 알 겁니다
이것은 지옥의 조건이
아닌가요? 예,맞아요
게다가,
동물들이
도살 당할 때,
어떻겠습니까?
이것 또한 어떤 형태의
지옥이지요
예로,왕새우를
알아요?
새우는
매우 작아서
이렇게 곡선을 그리죠
하지만 매우 큰
새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먹는지 아나요?
바다가재가 살아있어요
아직 살아있어요!
매우 뜨겁게
물을 끓여서
살아있는 새우를
끓는 물에 집어넣죠
그러는 동안,그는
소리를 질러서 당신을
어지럽게 만들 겁니다
만약 들을 수 있다면요
어지럽고 마음이
오그라들 겁니다
매우 고통스럽지요!
난 이것도 지옥이라고
봐요 지옥에 아니면
뭐겠어요? 천국이요?
그걸 먹는
사람들에겐
그건 천국이겠죠
먹는 그 시각엔
그건 천국입니다
하지만 그 가재에겐
지옥이지요
결국 보는 바와 같이
천국과 지옥이
저녁식탁에 있어요
예,호텔
식탁에 있지요
새우와 왕새우에겐
지옥이며,손님에겐
천국입니다
이곳에서 천국과
지옥이 보입니까?
보이나요?
그렇지 않나요?(예)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나는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런 천국을 가지는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나의
수행 법을 따르려면,
채식을 해야 한다고
들었을 거예요
자비가 모든 존재를
자유롭게 하고 공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죠
이 지구는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 지구가
오직 인간만 살고
동물을 위한 건 아니라
써놓지 않았어요
어쨌든,동물들은
집에 살지 않고
야생에서 삽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죠
그런데 동물을 잡아서
우리 자신을 위해
천국을 만들죠
동물의 지옥은
그들 일로,
우린 천국을 원합니다
우린 이게 천국이라고
계속 얘기하지요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음식을 위해
먹기 위해
동물들을 죽이지
않기에,전혀
아무것도 못 느끼죠
그들 모두 이미
살해당했기에,그걸
먹지 않는다는 건
낭비일 뿐이지요
그러니까 그걸 사서
예쁜 색으로
장식을 하지요
그럼 좋아 보입니다
우린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감히 먹는 거지요
여러분은
굴을 아십니까?
조개의 껍질은
매우 딱딱하고 이처럼
함께 나오지요
칼로 여기를 열면,
안에는 살이
있습니다
그게 먹는 방법이죠!
요리도 하지 않고요
예,그것이 그들이
하는 방법입니다
조개를 열어서는
그 안에 레몬 주스를
한 방울 떨어뜨리죠
중국인 분들
이런 게 있습니까?
이런 걸 먹어봤나요?
(예) 먹어봤군요!
맛이 좋아요?
맛이 없죠!
그럼 왜 그걸 먹죠?
글쎄,모두 다 그걸
먹으니 따르는 거죠
인기 있으니까요!
그러니
좋든 나쁘든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때론 남들에 의해
영향 받은 것이죠
금방 태어난 영아처럼
너무나 작아서
담배도 피지 않죠
태어났을 때
담배 피기를 원하는
영아를 본 적 있나요?
영아는 그냥 젖꼭지만
원합니다,그게 다죠
그런 다음
그 얘가 자라면
그의 친구가
담배 한 개피를 주죠
그리고 두 개피가 돼요
그건 시험해 보고
침을 뱉으며 기침해요
내일이 되면
더 좋아집니다
그 다음날이 되면
그걸 좋아한다 여겨요
결국 이 세상엔
나쁜 물질들은 많고
좋은 물질들은
거의 없죠
뭘 해야만 할까요?
우리는 바로 어려운
위치에 놓여져 있어요
우리는 진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통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았고
그 가재의 느낌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순하게 행동한 거죠
남들처럼 한 거예요
대다수는 그리 많이
생각할 여유가 없죠
그래서 우리가
좋고 나쁜 뭔가를
배울 건지 아닌지는
우리가 처한 배경에
전적으로 놓여있어요
우리 친구와 사회단체
에 근거를 두지요
우리가 처한 환경을
한 번 둘러보세요
이것들은 진짜
우리가 만든게 아니죠
태어날 때 그렇게
사악한 아기는 없죠
한 명도 없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뭐든지 봅니다
그런 다음 따라 하죠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번 이사했어요
첫 번째 이사 한 곳이
시장 옆이어서
살생이 빈번하여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
살생도 배워왔습니다
나중에 묘지 옆에
이사를 갔는데,
시체가 있는 곳으로
곡을 하고 우울했죠
맹자는 집에 와선
극장에서처럼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결국,그들은 학교
근처로 이사했지요
그렇지요?
그 이후론,
올바르게 행동하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다 그렇게
운이 좋아 그런 좋은
부모를 뒀다면,모두
좋은 사람이 됐겠죠
하지만 우리 부모가
그렇게 훌륭한
부모가 아니거나
우리 부모는
우리 부모의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니었죠
그래서
우리 조상에게까지
이르지요
그래서 우린 무죄예요
살생에 관여하는
즉 채식을 안 하는
가족에게서 태어났죠
우리가 처음으로
눈을 떴던 그 순간에
담배와 관련된
장소에서 태어났어요
탄생의 그 순간에,
우리는 이미 그걸 봤죠
나쁜 상황을 봤어요
그래서 배경에 의해
오염이 되어
어둡게 바뀌는데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왜 소위 이런바 악업
(응보)를 갚아야만
합니까?
소위 말하는 악업
(응보)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압니까?
그건 우리들의 나쁜
행위의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돌아오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예,그것이 악업
(응보)의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 오렌지를 심으면
오렌지를 얻는 거지요
만약 독이 든 나무를
심는다면,
독이 든 나무를
얻을 것입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업이란 우리가 하는
나쁜 행위가 뭐든
열매를 맺어
악업이 된다는 거죠
악업이란 나쁜 과일이죠!
우리 삶에서 나쁜
결과가 뭐든 간에,
그건 우리 행동의
결과입니다
나쁜 결과로 변한 거죠
나쁜 결과가 우리에게
되돌아 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악업(응보)입니다
지금 내가 방금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조건이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런 속담이
있지요『영웅은
이 시대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다』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예,이렇게도 말해지죠
『악인은 시대의
조류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떻게 오직 영웅만
창조되겠어요?
악인도 창조됩니다
만약 우리가 악인이
되도록 만드는 사회
라면,우리가 악인으로
변하도록 영향을 주죠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가
악업(응보)를
갚아야만 할까요?
정말 불공평하지
않나요?예!
그렇지 않나요?(예)
그럼,뭘해야 하죠?
이 세상엔 정의가 없죠
죽은 다음엔 지옥에
가야한다고 들었어요
알겠어요?
이 세상에서 고통받은
것도 부족해서 나중에
지옥에 가야만 해요!
너무 비논리적이죠!
그래서 내가 지옥으로
가지 말라고 한 겁니다
설사 지옥이 있다해도,
그곳에 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충분히
고통 받았어요
받을 만큼 받았죠
우리에겐 충분합니다
우린 밤에도 낮에도
고통을 받고 있죠
즐기는 시간은
너무 한정돼 있어요
좋은 시간은
항상 너무나 짧죠
고통 받고 억압당하며
저조하게 느껴지며
문제가
일어나는 때는
너무나 길게느껴져요!
이걸로 충분해요
충분히 벌을 받았죠
거기에다 만약
신이 지옥을 만들어
우리를 기다린다면,
무슨 신이 그렇죠?
무슨 부처가
그렇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형태의
법칙이 있는 겁니다
자비의
법칙이지요
사랑의 법칙입니다
그곳에 가고 싶어하죠
그곳은 정의의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너무나 많이
고통받아서 신의
자비를 계속 부르고
기도했으니까요
신이 우리의 상태를
아시고 우리의
약한 몸과 영혼을
염려하도록요
우리는 이곳에
버려졌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죠
그 누구도 이 세속에
태어나고 싶은지
물어 본 자는 없어요
우린 왜 태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태어납니다
왜 떠나야 하는지
모른 채 죽고요
인생이 그런 겁니다
그런 다음
이 부정하고
더러운 사회에서
버림받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말했듯이
순수해져야 해요
그런 신이 있다면
반드시 그와
싸워야 합니다
정말로 부당하잖아요!
하지만
신은 그렇지 않아요
불공평하지 않습니다
매우 공정하지요
다른 세계를 찾아서
우릴 기다릴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위로
가길 원하지 않으면
끌고 가진 않아요
올라가길 원해야만
신이 안내자를
우리에게 보낼 거예요
출구는 반드시 있지요
희망은 반드시 있어요
유약함 때문에 더러운
진흙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진흙탕 속에 빠졌던
사람이 진흙탕에서
빠져 나오고 나서도
전과 같이 옷이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불가능하죠
같은 겁니다
사회를 보면 모든 것,
모든 상황이
나쁜 일을 하게
우릴 부추깁니다
원래 우리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밝은 장소에 와인을
가져다 두었지요
술집은 언제나
가장 밝습니다
예를 들어서
노래방은 언제나
흥분시키죠
많은 조명이 있어요!
왜일까요?
모두 빛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들도 알죠
악행을 하는 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밝은 곳을
좋아해서 거짓 빛으로
사람들을 그리로 오게
합니다 그러면 우린
우리의 진정한
빛을 잊게 될 겁니다
거짓 빛은 우리의
진짜 빛을 잊게 해요
미국에서 온 두 명의
수행자가 있습니다
예전에
그가 입문을 하고
몇 일 동안
내면의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름을 대지는
않겠습니다
본래
우리 영적 수행자들은
내면의 체험을
드러내선 안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귀신에 홀렸다고
착각하고 말할 겁니다
아니면 질투하거나
비웃을 거예요
많은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내면의 체험을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조금 말해줄게요
그들은 우리와 같이죠
입문하고
몇 일간
그는 내면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는 높은 등급에
갔었으며 그 곳에서
위대한 스승,과거의
스승을 만났어요
여러분은 현재의
스승만 보는게 아니죠
수많은 과거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
보리달마와 많은
과거의 부처들이
있습니다
현재의 부처와
미래의 부처도
분명히 있어요
그는 올라가서 과거
큰 스승을 만난 거죠
과거의 스승을 만났고
스승은 그를 아름다운
세계로 데려갔어요
그곳은 보석이
하늘을 뒤덮지요
이 세상의 흙과
이곳의 모래와
바위 같이
셀 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극도로 아름다웠어요!
그는 찬양을 멈출 수
없었죠『와!
극한의 아름다움이야
우리의 세계보다
더 아름다워』
그 당시에 나의
선대 스승은 그가
명상할 때 더 높이
올라가서 내면으로
보았던 분인데,
그에게 말했어요
『세상의 보석들은
거짓이다 단지
사람들 내면의 보석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적은 사람들을
길을 잃게 하고
진짜 보석을 감추기
위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요
외부 세계의 모든
밝음은 호텔이나
노래방 혹은
술집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빛을
잊게 만듭니다
그런 장소에
많이 갈수록
빛을
잃게 될 겁니다
거기에 많이 갈수록
빛을 찾는데
더욱 실패하게 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빛,덧없는 빛이며
우리의 진짜 빛
영원의 빛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영원한 빛은
부처의 빛입니다
영원의 빛은
천국의 빛이고
신의 빛입니다
우리는
『불광은 영원히
빛난다』고 말하죠
『영원히 빛난다』는
항상 언제나
빛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왜 볼 수가
없는 거죠?
우리가 외부의 빛을
찾기에 바빠서예요
정말 높은 경지까지
수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의 주의를
끄는데 자신의 힘을
쓰겠지요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 생각과 본래
인간의 개념을 잠시
잊게 해줄 겁니다
아마
잠시 동안
1분,1초 혹은
5분 정도겠지요
바로 그 때
우리 자신의
불광을 볼 겁니다
진짜『빛』을
볼 겁니다
그때 비로소
『진리』를
얻고
『불성』을
깨닫고
『신성』을
찾았다거나
『천국』을 찾았다고
하는 겁니다
『천국』은 어떤
장소도 아니며
물리적인 위치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아닙니다
일종의 내면의 변화죠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어떤 사람이
행복하고 아주
편해서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갔어요
앞으로 어떤 좌절이
닥칠지 전혀
몰랐지요
그 때는 천국에
있는 겁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아프거나
좌절할 때는
세상에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런 때는
지옥과 아주 가까운
아수라계에 갔거나
벌을 받거나 살해
당하는 것 같지요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상태는 어떤
세계가 아닙니다
여기서 천국을
체험할 수도 있지만
진짜 천국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입니다
천국을 보러 올라
갈 수도 있어요
불국토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묻지요『원래
모든 것이 비었고
아무것도 없는데
왜 항상 천국과
지옥과 불국토를
말씀하십니까?』
천국도 없고
세상도 없고 부처도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왜
입문식 때
사람들에게
천국이나 부처나
예수 그리스도를
볼 거라고 하십니까
그 게 뭡니까?』
틀리지 않아요
맞아요 원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무』의
경지를 얻고싶어하죠?
정말로『공허』하고
아무것도
없길 원하나요?
그런 걸 원하세요?
처음에는
뭔가 있었는데
모두 없어지게 된다
참 딱한 일이군요!
밑지는 장사잖아요
그래서 그런
상태는 우리가
원할 때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싫다 해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도
이『공』의 경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 동안
일분간 이며
24시간 내내
그 공허함을
인식하진 못합니다
그것은 비었지만
더없이 행복하며
그런 공허 속에
있지만
무소부재합니다
무소부재한 경지에
이르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무와 돌과
모든 것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 속이나 돌 속에
있는 게 아니며
나무나 꽃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무소부재하며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있게 될 경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시 돌아와
인간이 될 수 있으며
각자의 인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군요!
최선을 다 할 뿐이에요
그래서 영적 체험을
하는 겁니다
무소부재 속에서
무한히 떠돌 수는
없으니까요
무소부재한
상태가 되면
여래(부처)의
경지가 되는 겁니다
무소부재한 상태는
매일 무소부재하지만
여전히 이 육신
속에 있는 겁니다
아니면
일도 못하고
사람들을 구하거나
가르치지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못하고 어떤 좋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공기처럼 떠돌며
어디에나
존재할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무의
상태와 무소부재한
상태에서는
세상도 없고 부처도
없는 겁니다
아주 신비하고
터무니없이 들리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행도 하고
어느 일정한
등급도 얻고
아름다운 경지에도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다 안전하고
좋은 것도 더 많이
생기고 의미도
깊어질 겁니다!
그러니『모든 게
공인데 왜 수행
하는가?』라고 묻지
마세요 공허한
상태에서 좋게
느낀다면 좋은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때릴 때는
고함치거나 아프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때리면
아픕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공허하고
수행할 필요도
없다면서『일상
생활의 모든 행동이
‘선’이다』라고
하지만 ‘선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도』를 얻은 다음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하기 전에는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은 ‘선’이
아니라 고통이죠!
좋습니다!
내 말은
여전히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며
비전에 집착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중생의
절반 이상이 그런
어떤 경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공허하게
변한다면
누구를 구하겠어요?
모든 걸
놓는다면 누구와
연결할 수 있겠어요?
온세상과 온 우주도
내려놓고
아내와 부모님과
그 밑에 딸린
수혜자들도
친구가 돌봐 주니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는데
뭣때문에 수행
체험을 합니까?
그래서 아미타불이
수행할 때 그도
수행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아미타불의 경지가
어떠어떠하며
그의 제자들도
올라와 더욱
편하게 해주고
친구와 가족들도
올라와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제자들도 그런
경지를 좋아하고 그의
제자들도 그런 경지를
좋아하는 친구와 가족을
좋아하거든요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수행하지 않아요
우리도 고통받고
남들도 우리처럼
고통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행합니다
또한 친구와 가족
우리 나라와
세상도 구하길
원합니다
모든 존재의
등급이 같지
않으며 모두가
우리처럼 비어있길
바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설령
비어있고 싶어도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를
인내해야 하니까요
여러분이 언제나
비어있다면 그들이
올라갔을 때 있을
곳도 없고
살 곳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 체험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비전을 보고
어떤 경지를 얻기위해
수행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친구와
친지들을 데려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원래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큰 집을 짓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어요
그들은 집을 원하고
안전하길 바라며
태풍을 무서워 합니다
그래서 안전하고
튼튼한 집을 지어서
살게 해줘야 합니다
당신 혼자라면
상관 없지요
하지만 처자식이
있다면 집을
지어야 합니다
마찬가지에요
부처와 보살
(성인)들은 원래
그 어떤 경지도
개의치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들과 수행할 때는
가야할 세계가 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아미타불 경지와
약사불 경지
화엄 보살 경지
능엄 보살 경지를
말했던 겁니다
경지들이
그렇지요?
여러가지 경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지들은
지금이라도 놀러
갈 수 있어요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도 갈 수 있어요
올라가 보고 싶어요?
(네!) 갈 수 있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갈 수 있죠
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최고의 힘을
얻는 법』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대만)
신쭈
1988년 3월 31일
스승님 인간의
본성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성은
부처입니다 아주
아주 밝고
사랑이 많고
자비롭고
무소부재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진정한 본성입니다
이 육신은
일종의 옷이며
감옥일 뿐입니다
마치 집처럼 사람의
진짜 본성을 안에
가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우리의 본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진짜 본성은 말로
설명이 안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무한한 힘이며
위대한 지혜입니다
어떻게 그런 힘과
지혜가 있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품성입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습니다
당신의 본성이
뭔지 알고 싶다면
당신도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관음법문은
우리가 수행하는 법문입니다 이것이 관음이죠
중국어로
그건 관음입니다
소리에 집중하는 걸
뜻하지요
생각이 분산되는 걸
어떻게 없애나요?
천천히 하세요
그걸 즉시 없애는
법을 지금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 빠르지 않죠
석가모니 부처도
6년이 걸렸습니다
다른 스승들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예수는 19년이나
걸렸습니다!
당신의 진아를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관음법문으로요
관음법문을
수행함으로써
여러분의 진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건 사람의 진짜
본성과도 같아요
채식은 채소와
과일을 먹는 것을
뜻하지만 이들에게도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동물과
같으며 사람들이
먹기 위해 때가
되기 전에 잘려져
죽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 아무것도
먹으면 안되네요
매우 간단합니다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마세요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살기 위해 공기에
의존할 뿐이지요
이 세상에서 살생을
피할 순 없습니다
호흡도 살생입니다
여러 번 그걸 말했지요
손을 씻는 것도
살생입니다
박테리아를 죽이지요
박테리아를 죽이는
걸 말하는 겁니다
모든 위생 과정이
박테리아를 죽입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이미 뭔가를
살생하는 겁니다
우린 더 진화한 존재를
더 해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른 것에도 영혼이
있지만 잠들어 있고
많이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그리 깊지 않아요
그리 강하지도 않지요
그들의 고통과 삶에
대한 갈망도 적습니다
그들은 많은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죠
그래서 살생을 피하려
우린 최선을 다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이 더 클수록
그들에겐 감정이
더 많습니다,우리가
감내해야 할 나쁜 업장
(응보)도 더 많지요
따라서 그런 식물에는
최소한의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린 손을
씻을 수도 없어요
작은 존재가 있죠
우리는 감염과
비위생적인 걸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손을 씻고
옷을 세탁하고
몸을 씻습니다
이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행위에요
네,그들을 죽입니다
작은 존재를 죽이지요
본래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법이 그랬어요
큰 존재들은 살기
위해서 작은 존래를
죽일 수 있지만,그걸
갚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세세생생
우리는 빚지고 갚으며
먹고 먹힙니다
그가 날 먹은 뒤에
내가 그를 먹지요
그가 날 먹고,내가
그를 먹지요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껏 여기있는 겁니다
이젠 지겨워졌어요
서로 죽이는 이런
시스템이 싫어져서
거기서 벗어나서
도망가길 원합니다
도망가려고
우린 나가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구합니다
그들이 방법을 알까요
우리는 세상이 너무
지겹습니다
다시는 그걸 하고 싶지
않고 매일 악업을
짓고 그걸 갚고
계속해서 주고받길
난 원하지 않아요
난 떠나길 원합니다
분명히
어느날,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을 겁니다
그가 스승이지요
그가 우릴 데리고
서로 죽이는 이곳에서
떠나게 할 겁니다
식물을 먹는 것도
악업을 짓습니다
악업을 지어요
즉각 깨닫는 열쇠
2권에서
난 채식을 하는 것에
악업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요?
채식을 하는 것에도
나쁜 업(응보)이
있습니다
채식에도 나쁜 업장
(응보)가 있습니다,
그것도 살생이지요
하지만 먹기도 전에
이미 살생을 합니다
호흡도 살생이에요
손을 씻는 것도
살생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최소한의
악업이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최소한의 살생을
하는 방법을 말이죠
가장 적게 갚을
방법을 말입니다
그럼 더 가벼워져서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채식을 한다고
악업(응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악업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매일 두시간반동안
명상해서 적은 양의
업장은 아주 빨리
갚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해지죠
고기를 먹는다면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는 못 갚아요
그런 뜻입니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5천만원을 빌리는 건
5억원을 빌리는 것과
다릅니다
그렇겠지요?
부디 이 문장의 뜻을
설명해주십시오
『색즉시공
공즉시색』
내가 보입니까?
보여요? (네)
잘 보입니까?
(아니오)
왜 잘 보이지 않죠?
(그는 스승님이
공이라서…)
정말이에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당신의 등급이
달라서죠,그래요!
보는 사람들도 있죠
그것이
『색즉시공』입니다
만일 볼 수 없다면
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녀에겐 색즉시공과
비슷해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강연할 때
다른 행사 때에
날 못 봅니다
그는 사람을 못 보고
내 말만 들을 수 있죠
그것이『색즉시공』의
수준입니다
다른 등급도 있어요
그걸 성취한 후에요
난 그것에 대해
그냥 말했을 뿐이죠
우린 무소부재하며
사람이 아닙니다
허나 우린 존재해요
난 사람입니다
사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지만
어떤 존재입니다
존재의 상태입니다
우린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린 한곳에 있지
않지만 또 한곳에
있기도 합니다
말로는 할 수 없어요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내가 증명하겠어요
내가 여러분에게
관음법문 수행을
하라고 권한 다음
직접 경험할 수 있죠
석가모니 부처는
말하길 여러분이
성불하면 위대한
힘이 생겨 만중생을
도울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많은 이들이
왜 여전히 고통 속에
있습니까?
그는 성불했지만
우린 성불하지
못했으니까요
그가 뜻한 바는
우리가 성불하면
도울 수 있다는 거죠
다른 존재들도 돕는건
우리자신을 돕는 거죠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할 순 없거든요
우린 분명히 압니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물을 마시면
나만 갈증이 풀리죠
내가 여러분을
만족시킬 수 있나요?
물론 아닙니다
무슨 질문이었나요?
성불한 것은
그의 일입니다
그는 우리도 반드시
성불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말한 겁니다
물론 우리가 만일
성불한다면 수많은
중생을 구하겠지요
우린 많은 존재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건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이죠
그 이후가 아니고요
그는 살아있을 때
많은 사람을 구했죠
들어본 적 있나요?
제자들이 많았는데
다들 신통력이 있고
내면이 완전히
평상심을 이뤘으며
아라한과 불보살을
성취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어떤 제자들은
성불해서
다른 중생들을
구했습니다
그냥 한 사람이나
한 육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불을 했든 못했든
어떤 등급이든 간에
여러분도 오직
한 육체만 있습니다
육체는 한정된
힘입니다
예컨대 난 오늘
여기서 강연하면서
타이페이에서도
강연할 순 없습니
다른 중생들은
그럴 수 없어요
내가 포모사(대만)에
살면서 동시에
미국에 살진 못하죠
예를 들면 그런 거죠
그래서 구할 수 있는
존재의 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부처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어요
또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과
인연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난
포모사(대만)인들과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내 말을 듣고 이해하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와
내가 인연이 없다면
그들은 듣지 않겠죠
다 듣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더 많이
성불할수록
더 좋습니다,
내가
한 무리의 친구가
있고,여러분에게
한 무리의 친구가
있다면 우린 각자의
친구들을 구하고
그 친구들은 각자의
친구들을 구하겠지요
그럼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겠죠
만일 그와 같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여러분은 알겠지요
과거의 부처들만
마냥 밤낮으로
숭배할 순 없습니다
그걸론 부족합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그들 일은 끝납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할 겁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과 같습니다
우린 과거의 대통령을
정말 사랑하고
많이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현 대통령을
존경해야 합니다
할 일이 있으면
그를 찾을 수 있지만
지난 대통령을
찾아 다니진 않겠죠
아무리 훌륭해도
그는 떠났으니까요
과거의 부처들을
종일 밤낮 숭배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수행하기 위해
스승을 찾고
있을 때
어떤 스승이 가장
믿을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죠?
그건 당신이 어떤
스승을 찾고 싶으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는가에 달렸습니다
스승을 구해서
영적으로 수행하고
해탈하길 원한다면
해탈한 스승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그 스승에게
솔직히 물어보세요
『그렇다』고 하면
그와 수행을 하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스승님의 불성을
깨달으셨어요?』
깨달았다고 하면
함께 수행하세요
묻는 것보다 더
확실하길 원하면
증명해달라고 하세요
『제가 불성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나요?』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즉시 그와 함께
공부하세요
중요한 건 없습니다
알아야 할 건 그거죠
외양은 남들과
똑같을 겁니다
누구나 도덕에 대해
말할 순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즉시
증명할 수 있다면
모두 하지 못하는 걸
그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서
물어 보세요
『좀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조금이면 충분하죠
그다지 많이
원치는 않습니다
우린 매우 겸손해요
그저 약간의 체험을
원하는 것 뿐입니다
『조금만 제게
보여주시겠어요?』
그가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건 정확한 겁니다
만일 그가 해탈하지
못했다거나 불성을
보지 못했다면
또 여러분의 불성을
보게 해주지 못하면
찾던 스승이 아니죠
당연히 아닙니다
그게 맞겠지요?
누가 돈이 있다면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럼 여러분에게도
좀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종이조각을
가지고 있다면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거예요
그건 간단한 겁니다
부처는 팔만사천가지
법문이 있다고 했죠
그런데 왜 관음법문
하나만 수행하나요?
관음법문을 어떻게
수행하나요?
입문하는 동안
법문을 전수할 때
수행법을
알려주겠습니다
시간과 조용한 곳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알려 주기엔
불편하니까요
너무 시끄러워서요
당신이 집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엔
이 법문을 배우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수행하도록
강요할 순 없잖아요
수행하길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나한테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와서
법문을 청해야 해요
수행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할 순 없습니다
여기서 공개적으로
전수하지 못합니다
팔만사천 법문이란
우리가 수없이 많이
윤회했고 많은 법문을
수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많은 법문은
무엇일까요?
개구리법문
뱀 법문,사자 법문
코끼리 법문
소 법문 등이 있어요
우린 그 법문들을
이미 다 수행했죠
지금은 인간 법문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처가
되길 원한다면
부처의 법문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 마지막 법문이
관음법문입니다
팔만사천가지 법문을
수행하고 난 뒤에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팔만사천
법문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팔만사천 법문이
여러분을 성불하게
도와주는 게 아니죠!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벌써
부처가 됐을 겁니다
그럼 아무 것도
수행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면 지금
이 법문을 어떻게
놓칠 수 있겠어요?
오직 관음법문만이
마지막 관문입니다
그건 불국토로
여러분을 보내 주죠
다른 법문은
다른 곳에 가게 되죠
그것 뿐입니다
태어나서 30살이 된
다음에야 팔만사천
법문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건 아니죠
많은 법문을 섞는
그런 것도 아니고요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아주 분명히 말했죠
관음법문이
성불할 수 있는
유일한 법문이지요
다른 경전에도 아주
명확히 나와 있어요
집에 돌아가서
내 책을 읽어보세요
증거가 있습니다
스승님,소위
불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힘을 뜻하는데
내가 강연하면서
방금 언급했던 거죠
가장 자비로운
사랑의 힘입니다
인과를 초월한
힘이기도 하고요
그 힘은 인과법을
초월해서 우리가
영원히 해탈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영원히 정말 위대한
존재가 되게 해주죠
부처와 같은 겁니다
고통스런 세상에서
윤회하는 것을
멈추게 해줍니다
그 힘은 우리가
원래 지녔던 것으로
우릴 부처로 바뀌게
해줄 수 있어요,아직
개발만 못한 겁니다
우리가 그걸 꺼내서
쓰지 않았던 거지요
만일 그 힘을 꺼내서
쓰면 갖게 될 겁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불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자비로운
이 힘을
사용할 수 있죠
좋고 나쁜 건 없어요
나쁜 업장(응보)을
개의치 않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든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이 힘을
성취하고 나면
깨달음을 얻고
이 힘을 성취한다면
나쁜 업장(응보)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힘이
정말 놀라운 겁니다!
무슨 말로 이 힘을
찬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판사가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는데
왕이 누군가를 보내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만!그는자유다』
이 힘은 그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번 생에서만 우릴
구하는 게 아니라
끝없는 윤회에서
우릴 구해서
다시 무지해지지
않도록 도우며
영원히 최고의 힘을
가진 성인이 되게 합니다
안됐지만
그에 관해 너무 많이
말할 순 없습니다
이 힘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간단히 말해,만일
인과법에서
해탈하고
업장(응보)의 법칙을
벗어나고 싶다면
이 힘을
성취해야 합니다
이 힘은 본래 우리가
지닌 것입니다
본래 우리 것이지만
그걸 사용할 줄
몰랐던 겁니다,우린
너무나 고통 받았죠
마치 어떤 사람에게
부모님이 남겨주신
많은 유산이 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아요
그는 매일같이
성실하게
남의 고용인이 되어
일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겁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돈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
즉시 우린
백만장자가 되겠죠
마찬가지로
본래 우린 위대해요
다만 우리 위대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렇게 고통 받고
약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힘을
성취한다면 우린
위대해질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이 힘을 성취해서
위대해진 것입니다
우린 현재까지 그를
여전히 숭배하잖아요
아직 그를 숭배하죠
예수 그리스도도
이 힘을 성취해서
아직까지 숭배 받죠
노자,공자
소크라테스 등도
모두 같습니다
그들이 이 힘을
성취했기 때문에
아직도 숭배합니다
나도
이 무한한 힘을
성취했습니다
수행이 무슨 뜻이죠?
왜 수행합니까?
영적으로 수행한 뒤
어디서 살게 되나요?
똑같습니다
방금 내가 말했듯이
영적으로 수행하면
당신은 이 힘을
성취하게 될 겁니다
해탈해야 합니다
어떻게 종교가
선입견 없이
동등해지며
또 어떻게 인류가
평화를 찾게 돕죠?
이건 종교의
문제입니다
선입견 때문에
우리 일반인들은
보수적이 되고
우리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은
틀리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분리되는 것입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죠
우리가 일부러
그런 것도,이렇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의 생각에서
배울 시간이 없으며
남들이 일하는
방식을 고려할만한
시간도 없고요
그래서 우린 그들이
뭘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않습니다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는
저 나라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며
거기서 전쟁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그렇습니다
만일 다른 종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특정 종교가
가짜라고 여기겠지요
난 남들이 하루 종일
이건 외도이고
저건 외도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오직 외도수행자들만이
다른 사람을
외도수행자로 봅니다
내도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이가 도 안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가
부처가 된 후에
모든 중생이 부처라고
말했지요
그는 브라만은 부처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고
도교인들이 부처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죠
그는 모든 중생이
부처라고 말했어요
우린 우리 스승을
오해했죠 원래
종교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거죠
우리 모두 개인
소유물을 좋아하니까요
자신의 가족이 있고
자신의 집을 지으며
자기 소유의
정원과
화원,
개인 집,
개인 재산 등등이 있죠
다른 사람이 그걸 쓰면
우린 불쾌하고
싫어하지요
그래서 더욱 더
분리되는 겁니다
지금도 아주 많은
종교단체가 있으며
많은 종교들이
그런 상황입니다
불교 역시
같습니다 때때로
한 절에 있는 승려는
다른 절로
옮길 수 없지요
한 절에 있는 한 스승의
제자는 다른 절에 있는
다른 스승에게
배우러
나갈 수 없지요
불교,
소위 불교 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집니다
기독교는 현재 백개가
넘는 종파가 있지요
불교인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곳에서도
그 상황을 볼 수 있죠
그들은 모두 갈라졌죠
그래서 우린
매우 외로운 겁니다
우리 모두 서로
협동하고 연합하며
화목하다면
우리 세상은
더 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세상을
한 번 보세요
지금까지는 아직
그렇게 좋지는 않죠
텔레비전과
교통수단으로
좀 나아졌지요
소통이 더
편리하고요
하지만 영적인 면과
화합적인 면에선
아직 좋지 않습니다
여전히 갈라져있죠
삼국시대
처럼요
여전히
춘추전국시대와
같아요
많이 변하지 않아
유감이에요!
하지만 사실이죠
이런 거지요
우린 개인 소유물과
개인 단체를
선호합니다
협동을 꺼려한다면
더 좋아질 방도가
없습니다
우린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령 지금 내가
여기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온갖
종교단체가 와서
나에게 배운다 합시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난 매일 여러분 모두가
선하고 모든 종교가
같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모두 와서
날 따르고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곤 여러분의 종교
단체로 돌아가도 되죠
종교단체 생활을
계속하세요
나와 함께 있을
필요 없어요
단지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전처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아마 어느 날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두 사람의
내 제자 중
하나는 좋아지고
하나는 나빠지는
날이 올 겁니다
항상 그래요
하나는 북쪽에 있고
하나는 남쪽에 있어서
남북이 됩니다
그건 다릅니다
오조 홍인이
살아 있을 때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그들 중 둘은
매우 유명했지요
육조 혜능과
신수에요,맞죠?
그 두 스승들은
서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제자들은 이미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죠
혜능의 제자는
신수가
나쁘다고 말했고
신수의 제자는
혜능이 나쁘다고 했죠
그 당시
두 진영은 이미
서로를 죽이고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상이 가지요
당연하죠!
모든 시대가 같아요
하지만 난 도울수 있는
많은이들을 도울겁니다
누가 날 따르던지
환영합니다
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며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이처럼
매우 엉망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난 이 속세에
와서
모든 이들을 모으고
모든 종교를 모을
의도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세상이 이미 이와
같으니 내버려 둡시다
난 내 자신을 돌봅니다
누구든 와서 날 따르고
싶으면 환영합니다
누구든 나의 보호를
받고 싶으면
난 보호하겠으며
보호받고 싶지
않는다 해도
역시 환영합니다
이런 겁니다
세상이 이미 엉망이니
너무 많이 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요
이 세상은 세세생생
이랬습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고
개선하지 못합니다
고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당연히 이렇게 됩니다
이게 더 재미있죠
우린 멀리 살기 때문에
스승님과 자주
가까이 할 수 없는데
그래도 관음법문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걸 잘 배울 수
있을까요?
예,할 수 있어요
오늘날엔 스승을
따르는 게 매우
편리하거든요
스승과 매일 함께
있을 필요가
없어요
옛날엔
교통이 편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통신 또한
불편해서
하루 만에 스승을
찾는 건 불가능했죠
때로는 수개월 동안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서
스승이 있는 곳에
도달해야 했지요
스승을 찾고난 후에
조금만 공부하고는
너무 일찍 돌아가면
낭비지요
따라서
그에게 매달려 더 많은
가르침을 얻고
그의 더 많은
축복의 힘과
그의 가피를
얻기를 바랬지요
그게 진보가 빠르죠
그러므로 전에는
승려가 되어서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날엔
그럴 필요 없어요
집에서도 수행할
수 있어요
비디오테잎이 있고
오디오와
비디오와
녹음기가 있어요
스승의 책이 있고요
오늘날엔 책을 아주
빨리 출간할 수 있고
싸게 살 수 있어요
우리 모두 돈도 있고요
돈이 없으면 내가
무료로 줄 테니
아무 문제가 없어요
따라서 매일 함께
머물러서
수행할 필요 없죠
시간을 내어 집에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잘 수행해서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고
지혜도 얻을 수 있죠
확실히
문제 없어요!
그건 참 스승이
무소부재하기
때문이죠
그는 한 장소에만
있지 않아요
물론
그는 한 육신만 있지만
그의 힘
그의 화신은
무소부재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에
있든 스승의 화신을
볼 수 있습니다
참스승은 이와 같죠
안 그럼
그는 거짓 스승이에요
무소부재하지 않으면
그는 가짜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수행하고 나서야
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수행하면 할수록
더욱 더 스승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린 모를 겁니다
사람들은 행복만큼이나
고통을 가집니다
부처에게
배우고 싶은 사람은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만입니까?
예,허나 아니기도해요
고통을 받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가 수행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걸
여러분은 압니다
가서
거지에게 물어보세요
우리가 계를
받을 때
밖에는 거지들이
많습니다
음식과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요
그에게 수행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틀림없이
원하지 않을 겁니다
돈을 원한다고
말하겠죠,그렇죠?
공덕이 있는 사람은
수행할 필요가 있고
수행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행을 갈망하는 거죠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수행하는 건
아니에요
방금 우리 수행자를
언급했는데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이
아녜요
그는 돈이 있어요
그는 매우 명확히
말했죠
그의 일은
돈을 잘 벌고
아내는 아름다우며
가족은 부유하고
애들은 사랑스럽지요
그러면 뭐가부족하죠?
수행이 필요할까요?
아녜요
그는 매우 젊고
잘 생겼으며
건축가이기도 하죠
사회적으로 보면
그는 뭔가를
성취했지만
아무 것도 할 필요
없는데 여전히 수행을
좋아합니다
그는 나에게 가장
신실하죠
매우 충직하고
존경스러우며
이해력 있고
맹목적으로 믿지 않죠
그는 포모사
(대만)에 살기 때문에
수백명의 스승들을
따랐죠
그는 모든 스승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법문들을
알고 있었죠
처음이 아니었죠
칭하이 스승을
우연히 만났다거나
무턱대고 만나서
집은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수행하길
좋아한다고 할수없죠
옳지 않은 말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수행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제자들이
맹세를 할 때,
난 한 두명을 보내
맹세를 하게 만들죠
그뒤 그들을 보러가죠
밖에 수많은 거지들이
있고,어떤 스승들도
구걸을 합니다
본 적이 있습니까?
(예) 좋아요!
수많은 그들은
노란 법복을 입고서
그곳에서 구걸을 해요
그건 전통입니다
그게 필요해서가아니죠
전생의 전통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길 원합니다
바깥에서 구걸을 해요
난 이런 스승들에게
공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한두 명의 거지들이
뒤따라왔어요
누군가가 공양하는 걸
보게 되자 그도 좀
받고 싶어했죠
난 그들에게도
같은 것을 공양했죠
모두 다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양했어요
그 이후로
그는 익숙해 졌어요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돈을 원했습니다
곧장 말을 꺼냈죠
『스승님,절 좀보세요
이때문에 고통스러워요
전 다리를 잃었어요
전 이곳이 아파요
저곳도 쑤셔요
오! 돈을 좀 더
주실 수 있으세요?』
난 말했죠,어제
그 전날에
이미 돈을 좀 줬잖아요
그럼 그는 그게 충분치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주사약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런 다음 많은 것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돈을 원하지요
난 그가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도록 부탁하죠
그럼 그는 말합니다
『난 돈이 필요해요』
그는 밤이나 낮이나
이처럼 읊어댑니다
내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죠
나는『 좋아요
돈을 좀 줄게요
괜찮아요
그 정도로 많이
돕지는 못해요』하죠
그럼 네네 하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죠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돈이라고 합니다
그럼 난 말합니다
『좋아요,돈을 주죠
하지만 경전을 읽고
부처의 이름을
좀더 암송해
보세요 그럼
아마도 다음생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고통도
그다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듣질 않죠
오직 돈만 원합니다
그는 돈,돈,돈만
암송하지요
부처를 암송하지 않고
그냥 돈만 암송해요
결국 이런 류의 사람을
고통 받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수행이 필요
하다곤 말할 순 없어요
그들은 수행할수 없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관음보살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스승님,사람들이
부처가 됐을 때,
왜 중생을 구할 수
없는 거죠? 부처는
전능하지 않나요?
예,예!
하지만 너무 높아요
부처란,진정한 부처란
이와 같습니다
그를 신으로 간주하죠
부처는 부처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운 겁니다
보살이란 무엇이죠?
부처란 무엇입니까?
부처란 이와 같아요
진정한 부처란
모든 것을 가진 자죠
부처는 신이 됩니다
창조주가 되지요
그는 저 위에
열반(최고의 극락)에
있지요
그러므로 부처가
중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부처로서
그가 중생을
이해하길 바란다면
그는 중생과 함께
섞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열반(최고의 극락)에
있을 수 없어요
우리를 구하기 위해
빛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내려옵니다
바다에 빠뜨려져
빠져 죽게 생긴
사람이 한 명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구하고 싶겠죠
해변가에 서서는
『오,이곳으로 와요
당신을 구해줄게요』
라고 말할 건가요?
아니죠,당신은 바다
속을 헤엄칠 거예요
그를 끌어낼 거예요
그게 바로 이뜻예요
그래서
지장 보살이
부처가
되기 전에
서원을 세웠죠
만약 부처가 됐다면
해야 할 서원이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무소부재합니다
그가 그 맹세를
하는 순간
그의 이해력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부처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맹세를 한 겁니다
그는 내가 성불한
다음에 이런 저런 걸
할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 뒤
그는 부처가 되었고
견해가 달라졌어요
하지만 그 과정 중에
그런 맹세를 해버렸죠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그의 얘기를 말했을 때
물론 모든 얘기를 했죠
그가 그 서원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동의해야
했던게 아니에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에
살 듯 지옥에 삽니다
그가 그런 맹세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건 같은 거였죠
그가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구제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지옥에 묶이지 않죠!
그건 오직 중생들의
생각일 뿐 이예요
석가모니 부처는
그처럼 상황에 따라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이해
수준에 따라서,
부처는 그와 같이
말했죠
지장보살이
지옥에 사는 게
아닙니다
앞전에도 언급했듯이
지옥이란 없습니다
지옥은 이곳이죠,
충분히 고통받고 있죠
사실 지옥은 없어요
지옥은 이곳입니다
만약 지옥에서
해탈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해탈해야만 합니다
그게 좋습니다
지장보살은 이곳에
있지,거기 있지 않죠
우리가 지장보살을
볼 수 없다면
그건 우리 문제예요
그는 편재하니까요
지옥에만 있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