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내면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칭하이 무상사 강연
브라질 상파울로
1989년
11월 11일
사람들 거의가 어떻게
천국을 찾느냐 물으면
나는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찾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이
너희 안에 있으며
너희 몸이 신전이며
신이 너희 안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에서도
똑같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성이 있으며 부처가
너희 안에 있다 라고요
그 말은 우리가
불교도이든
기독교도이든 더 높은
이상과 더 높은 힘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찾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자유 의지
때문입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신은
자유의지를 줬습니다
세상과 낮은 지식을
선택하는
자유의지와 함께
천국과 더 높은
지혜를 택하는
자유의지를 줬습니다
바로 이 자유의지
때문에 신 또는
소위 더 높은
지혜는 신의 힘과
더욱 일치하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신이 우리를
신과 일치하도록
강요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신은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우리 두뇌에는
소위 여러 개의
방이 있습니다
그걸 쓰면 우리 자신을
신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신은 우리 마음을
사용해서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신을
『불성』이라고 하고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서는
『신』 이나
『창조주』라 부르며
모든 힘의 중심을
『신』이라고 합니다
신이라고 부르는
소위 존재나 힘은
너무나 위대하고
상상을 넘어서기에
단어나 지능을
사용해 묘사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힘
또는 그 신
그 위대한 존재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 존재나 신을
알려면 우리는
그 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 두뇌의 어떤
부위가 주파수를
맞추면 신 또는
불성이라 부르는 것
우리의 진아나 더 높은
자아 또는 도라고도
부르는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마다
이 위대한 힘,위대한
사랑의 존재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 다릅니다
마치 사람들마다
부르는 연인의
이름이 다르듯 이요
어떤 사람은
『내 사랑』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내 꿀 파이』
어떤 사람은
『달콤한 사탕』
누구는
『내 사랑하는 꽃』
누구는 『나의
연인』이라고 합니다
같은 겁니다
『내 사랑』 『내가
아끼는 사람』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죠
우리가 신이나
부처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이유는 내면에
있는 장치를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TV나
라디오가 있지만
TV채널이나
라디오채널을
틀지 않았기 때문에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나
공연들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신과 접하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좀 더 느린 방식도
있고 빠른 방식도 있고
안전한 것도 있고
좀 힘들거나 위험한
방식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명상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이라는
단어가 익숙치 않아요
하지만 명상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일종의 집중입니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매일
명상을 하면서도
명상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공상을 하며
명상을 합니다
사탕이나 케익
장난감이나
곰 인형을 명상합니다
때로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는
엄마를 명상합니다
『명상』이란
한가지 주제나
한가지 문제
한가지 생각에
깊이 집중하거나
깊이 생각하는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기도나 예배를
더 잘 알고 있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는
언제나 신에게
축복해 주고
인도해 주고
뭔가를 주거나
보호해 달라고 합니다
어쨌든 욕망이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뭔가를 구할 때는
응답을 기다려야
하는 걸 잊곤 합니다
그래서 신에게 자식을
달라고 기도한 후에는
조용히 앉아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명상이라는
겁니다
신을
명상하는 겁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실
생각을 명상하고
신이 내려 줄 지시와
신이 주실 축복을
명상하는 겁니다
아무리 부처나 신이
내면에 있다 해도
언제나 바빠서
신이나 부처를
소홀히 한다면
신과 부처는 우리에게
무엇을 할지
말해주거나 어떻게
문제를 풀고 더 높은
지혜를 얻을지
지시할 기회가
없을 겁니다
명상은
일종의 교육이며
배우는 과정입니다
마치 대학에 가서
교수나 선생에게
뭔가를 물을 때는
조용히 앉아서
가르침과 지혜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생이 대학에 가서
교수에게 뭔가를
묻고는 즉시
자리를 떠나 뭔가
다른 걸 한다면
현명해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교수가 바로
앞에 있다 해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명상은 우리 삶의
학문과 같아요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혜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느 학문이나
공부처럼
듣고 연습해서
배우는 겁니다
침묵 속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많은 지혜와
축복 사랑 에너지가
우리 존재에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명상을 하고 나면
달라진 걸 느낍니다
그런 시간이 길수록
명상을 길게 할수록
더욱 현명해지고
더욱 평화로워집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각 개개인에서
시작하니까요
모두가 평화로우면
세상에는 전쟁도
갈등도 없습니다
많은 평화 운동이나
소위 평화 대회나
평화 협정 등
원탁 회의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사람들의 노력과
성의는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지구 전체의 평화를
결정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죠?
네?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고
평화에 다가섭니다
우린 요청 받지 않고
요청하지도 않으며
신도 알고 있습니다
신은 지상에서
평화를 이루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지요
평화는 우리의
내면이 평화로울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매일 여러분은
길거리나 일터에서
혹은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죠
만일 그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여러분도 평화롭고
행복해져서
그 날은 일이나
장사가 순조롭게
잘 굴러갈 것입니다
만일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이 이런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면
여러분도 갑자기
너무 불안하고
불안정해 질 겁니다
그래서 브라질에
처음 왔을 때도,지금
두 번째 왔을 때도
난 너무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나
사람들이 항상
웃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
사업을 얼마나 큰지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들이
웃고 있어서 나도
기분이 좋은 겁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신과 가깝게 보여요
브라질 사람들은
대다수가
매우 순수하고
긍정적입니다
항상 자연의
좋은 측면을 봅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삶을
용감하고 행복하며
긍정적으로 삽니다
기복이 심하고
이자율이나
나라 안의 모든 것이
변화가 극심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엄을 가지고 참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합니다
신과 여러분은 무척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신과 가깝거나
부처와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삽니다
깨달음에는
단계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깨닫지 못했고
깨달음이 뭔지
모른다고 하겠지요
천국과 신
열반(가장 높은 천국)
부처도 모른다고
할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여러분은 잘 압니다
여러분이 사는 모습에
안다는 것이 드러나죠
깨달음은
천국을 보거나
신이 되거나
성인이 되어
유명해져서
강연을 하거나
자선을 베풀며
교회를 운영하는
그런 일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깨달음은 무척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이며
긍정적인 생활방식과
평화로운 생활방식을
의미합니다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입니다
평화로운
생활방식이고요
만일 누군가
매우 평화롭고
사랑과 매력이 넘치며
긍정적이라면
다소 깨달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아마 한 단계만 지나면
그리스도나 부처 같은
매우 높은 성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라는
여기 온 모든
다른 나라 시민을
잘 보살펴 준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일본인도 오고
중국인도 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땅을 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점차 발전하고
잘 정착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게 신의 사랑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신의 본성입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이것을
보살도라 부릅니다
『보살』은 성인이며
사랑이 많고
깨달음 사람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은 성인을 말하죠
부처는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나라가 달라서
같은 것에 명칭만
다르게 붙인 것입니다
난 브라질에 오면
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나라와
사랑이 많은
국민들을 알게 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물론이지! 여기선
행복한 게 당연해!』
만일 여러분이
자신과 매우 비슷한
환경에 있다거나
여러분이 좋아하는
곳에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행복한 것처럼요
물고기는 물이
잘 맞으니까요
야생동물은
산이나 깊은 숲에서
행복합니다
산이나 깊은 숲은
야생동물에게
적합하고 좋으니까요
동물원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정업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비슷한 환경과
사고방식을 가고
지적 능력이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가족이나
같은 나라에
태어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가족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나라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가끔
어떤 나라에 가면
여러분의 조국과 달리
그 나라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신의 눈으로 보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모든 인종이 똑같다고
말하긴 하지만
국가 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나라의 관습이나
풍습 때문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진동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코스타리카와
브라질에선 행복해요
지혜는 내면에서
나옵니다
남들과의 관계나
느낌,감정 등은
외부에서 비롯되고요
내면과 외면을 모두
우리가 느낄 수 있어야
완전한 인간입니다
만일 감정과 분노
사랑,열정,행복
슬픔만 있고
내면의 지혜가 없다면
반쪽 인간일 뿐이지요
성경에서 우리를
상기 시키듯 이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처럼
완벽해져라』
완벽해지려면
나머지 본성이
필요한데요
지능이자 지혜이며
혹은 소위 불성,내면의 천국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상의 평화를 말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다양한 이상을
조화시키려 노력은
하지만 협소한 지능만
가지고 합니다
신의 지혜를 가지고
그걸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실패하고
그래서 아직도 늘
전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면의 평화를
얻는 최상의 방법은
우선 내면의 평화로운
천국을 접하는 것이며
그리고 나서 세상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평화롭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내면으로 평화로운지
난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요,안 그래요?
고개를 젓는 군요
맞아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면으로 평화롭고
모두 내면으로
신의 왕국을
찾았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전체
지구의 평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런 노력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죠
매우 훌륭합니다
좋은 의도니까요
하지만 지상에서
천국을 얻고 싶다면
우리 각자도
평화를 찾아야 합니다
많이들 이렇게 묻죠
『당신이 힘이 있다면
왜,내일 지구에
평화를 만들지
않나요?
신통력을 써서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사람들이 평화를
갖게 강요할 순 없죠』
이게 문제입니다
안 그럼 예수가 그렇게
했을 것이며 부처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노자,공자,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등도
그렇게 했을 거고요
때로 커피를 좋아하고
케익을 좋아하는 게
우리에겐 만족스럽지만
우리 친구는 싫어하죠
중국인은 중국음식을
좋아하지만
브라질인은 싫어합니다
가끔은 그들도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매일 그런 건 아니죠
제가 알고 있는
홍콩의 한 출가승은
독일 태생인데
불교 승려가 되었고
홍콩에서 20년간
살고 있지요
그는 엄격한 승려죠
스스로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로지 신이나 부처의
은총에만 의지하죠
옷도 몇 벌만 있으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주 폐허가
된 곳에서 삽니다
또한 어떤 돈을
받더라도
책을 인쇄하거나
가난한 자에게 줍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면
먹겠지만 직접
요리해 먹진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홍콩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쌀과
중국음식을 주는데
그는 빵을 좋아하고
감자도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감자를 좋아하며
독일 빵은 기가 막히죠
여러 가지 다양한
빵이 있는데
매우 건강에 좋고
영양도 풍부합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독일 승려는 거의 밥을
먹어야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힌두식당으로 데려가서
빵을 사주면
항상 고마워 합니다
그러니 아시다시피
인간은 다양한 천성과
다양한 배경
다양한 기호가 있지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읽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할머님과 아버님
등도 철학을 좋아해서
나도 태어날 때부터 이 모든
철학적 관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성장
해서 영성의 길을
추구했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집
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불교인이나 기독교인
으로 태어나진 않죠
어떤 이는 아주
외진 곳에서 태어나
예수나 부처의 이름
또는 그 어떤
철학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불교에
육조 혜능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혜능은
기원 후
약 6,7세기에
유명한 선사입니다
그는 문맹이었고
교육도 받지 않았고
외진 곳에 살았습니다
또한 매일
자신과 어머니를
돌보기 위한 쌀과
음식을 교환하기 위해
나무를 잘랐습니다
그의 직업 덕분에
때로는
도시로 가서
학식이 있는 자나
부자 몇몇과 아는
사이가 되었지요
어느 날 그가 부잣집을
지나면서 누군가
금강경을 외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금강경은
매우 유명한 불경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경전의
한 문장을 듣자마자
자신의 내면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의
사고 방식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 전에는
어머니를 섬기려고
돈 벌 생각만 늘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문장을
들은 후에는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신을 찾고 싶다거나
불성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소위 깨달음
입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지적인 깨달음에만
깨닫게 된 겁니다
또 다른 종류의
깨달음이 있는데
그건
직접적인 깨달음이죠
지적 능력을 통한
이해가 아니라요
이건 직접 신을
보고 불성을 보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며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생각하지 않고도 신이
무엇인지 부처가
무엇인지 압니다
이걸 『직접 깨달음』
이라 합니다
이게 더 높은 수준의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은
지적으로 깨달은 후에
스승을
찾아 나서서
두 번째 종류인
더 높은 종류의
깨달음을 얻었지요
신 또는 불성을 직접
알았던 겁니다
대부분의 종교의
이론과 설교 및 경전은
첫 번째 종류의
깨달음 다시 말하면
신이 있고
부처가 있으며
우리 물질세상보다
더 높은 뭔가 있고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보거나
나라를 돕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가 해야 할
뭔가 다른 게 있으며
학교 지식과
과학적 업적 이외에도
우리가 발견하고
배운 것보다
더 높고 초월적인
뭔가 있다는 걸
이해하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이건 이 세상의
비참함 이외에 삼매나
열반(영원한 지복)
또는
천국 이라고 하는
어떤 상태에서의
더 없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줄 겁니다
천국을 찾기 위해
삼매에 들기 위해
열반의 지복을
맛보기 위해
우린 정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일에
근면한 만큼
천국과 지복을 위한
일에도 근면해야
합니다
천국은 내면에 있고
지복,행복,열반도
모두 우리 내면에 있죠
많은 이들이
이걸 찾았으며
많은 이들이 이걸
즐겼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천국이나 열반에 가기
까지 기다리지 않지요
지금 즐깁니다
천국이나 열반을 찾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고
안전하고 빠른
방법은 관음법문
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이걸 찾았다면
축하합니다
찾지 못했다면
제가 도와 드리죠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저의 무조건적인
보시를 받아준다면요
『무조건적』이란
여러분에게서 바라는게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사랑도
여러분의 숭배도
여러분의 돈도
여러분의 재산도
여러분의 시간도
여러분의 헌신도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유일하게 바라는 건
명상입니다
여러분이 평화와 사랑
내면의 천국을 원하면
매일 한 두 시간
여러분의 시간을
헌신하여
내면의 천국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조건의 전부예요
마치 요리하는 음식을
맛보고 싶으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요
먹기 위해 우리 집에
올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집에서 드세요
여러분 집에 배달하나
여러분이 먹어야 해요
제가 준 음식을 먹고
즐길 시간을 아껴야죠
일리가 있지 않나요?
아주 논리적이지요?
따라서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집과 아내
직업,돈을 떠나서
저에게 올 필요 없어요
여러분 집에 있으면서
명상하세요
여러분 내면의 평화와
지복을 즐기세요
시간을 아끼고
마련해서
음식과 음료를
즐겨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을 아껴서 생명의
빵과 물을
즐겨야 합니다
천국의 빵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