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성공의 모델은 마담 CJ워커 즉 사라 브리드러브를 조명합니다 농장 노동자로 초라하게 시작한 마담 워커는 현대 화장품산업의 선구자이자 성공한 기업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첫 백만장자로 우뚝 섰습니다 자신의 부를 타인을 돕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한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는 미국 인디애나의 워커 극장을 방문하여 마담 워커의 증손녀이자 『그녀의 땅에서- 마담 CJ 워커의 삶과 시대』란 전기의 작가인 아렐리아 번들씨와 대화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그녀 이야기를 연구하여 그녀를 모발관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기업가 자선사업가 정치활동가로 알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태어난 사라 브리드러브는 초년에 불우한 생활을 하였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1967년 루이지애나 델타에서 부모가 노예로 있던 농장에서 태어났고 부모는 그녀가 7살 때 모두 돌아가셨으니 정말 기회가 없었던 셈입니다 6남매의 5번째 아이로 언니와 자신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던 가난했던 형부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14살에 결혼하며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었지요 모세스 맥윌리엄스란 남자와 결혼해 자신과 이름이 같은 렐리아란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20살에 모세스가 죽었지요 그러니 정말 힘든 초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끈기와 쾌활함을 가졌고 그런 품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888년 남편이 죽으면서 브리드러브와 딸은 세 오빠가 이발관을 하는 미주리의 세인트루이스로 옮겼습니다

그들 이발관은 성 바울 아프리칸 감리교회 근처였습니다 교회여성들이 그녀와 딸을 돌보면서 그녀에게 문맹의 직업세탁부 이외의 이상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니 교회의 중산층 여성들이 그녀가 다른 길을 보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교회 여성들의 도움을 통해 사라 브리드러브는 자선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세탁부일 때도 그녀는 그녀 교회가 돌보려고 했던 실명한 남자와 자매를 위한 모금을 도왔습니다 그녀는 교회에서 잔돈을 모으던 여성 단체인 마이트 미주리회에 속했습니다 자선과 사회에 대한 환원은 언제나 인간으로 그녀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1890년대에 사라 브리드러브는 두피문제로 탈모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제품을 시도했지만 탈모는 계속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녀가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끔찍한 외모가 부끄러워 주께 해결책을 기도했어요 어느 날 밤, 꿈에 큰 흑인 남자가 나타나 나에게 조제방법을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나는 성분들이었지요 그것들을 섞어 두피에 발랐어요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빠지지 않았어요』

이것이 샴푸를 개발하는 열쇠가 되었으며 여성들에게 머리를 더 자주 감도록 권유했습니다 일단 두피가 깨끗해지면 유황과 광유로 만든 연고를 두피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발랐습니다 일단 두피가 건강해지자 모발이 돌아왔습니다

브리드버드씨는 연고를 비슷한 두피문제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열렬히 나누며 부드럽고 강한 모발의 회복을 즐기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 머리칼이 아름다운 걸 보고 그녀 방법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지요 (맞아요) 그리고 타인에게 연고를 팔았고 주방에서 연고를 혼합했습니다

1906년 사라 브리드러브는 찰스 조셉 워커와 결혼하며 이름을 『마담 CJ 워커』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부부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그녀의 새 두발용품들을 홍보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고 교회와 여관에서 시범을 보였지요

마담 CJ워커로 제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녀 모습이 새겨진 작은 주석을 개발해 제품의 이름에 붙였습니다 1908년 마침내 남편과 피츠버그에 정착했습니다

자신의 딸의 이름을 본 딴 렐리아 대학이란 미용학교를 열고 여성들을 훈련시켰습니다 1910년에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겨 여기서 한 골목 떨어진 곳에 공장을 세웠지요

부부는 또한 다른 여성들을 훈련시키면서 워커 영업사원과 미용문화사가 되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을 찾기 어렵던 시기에 마담 CJ워커는 여성들의 경제독립을 도와 함을 더해주길 원했습니다

그녀는 이 헤어제품이 그냥 제품이 아닌 여성에게 자신감을 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독립적인 수입을 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여성에겐 직업기회가 정말 적었습니다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자신처럼 생계를 벌어야 하는 여성들이 있으며 특히 흑인 여성에서 직업기회가 제한된 것을 잘 알았습니다

일해야 하는 대부분 흑인여성은 세탁부나 하녀 요리사였고 교사나 간호사는 아주 소수였을 뿐입니다 그녀는 이 일을 그들이 수익을 얻는 방법으로 보았습니다

타인을 도우려는 마담 워커의 소망은 계속 되었습니다 회사가 계속 성장하면서 마담 워커는 직원들에게 사회에 환원하고 인종 화합을 지지하게 했지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1917년 그녀는 첫 영업사원 회의를 열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2백 명 여성이 필라델피아로 와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녀가 회의에서 말했습니다 『워커 영업사원의 첫 번째 의무는 인류인 것을 알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자신만이 아닌 타인을 보살피는 걸 알기 바랍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판매한 여성과 새 영업직원을 가장 많이 데려온 여성을 표창하며 가장 많은 자선을 한 여성에게도 상을 주었습니다 이 여성군단이 지역사회를 정말 바꾸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 미용실에 오면 공동체와 교회, 지역학교를 돕기 위해 할 일들을 말할 수 있었지요 회의의 끝에 여성들은 우드로어 윌슨 대통령에게 전보를 보내 연방 범죄를 끝내기를 촉구했습니다

마담 워커는 또한 인디애나폴리스에 새 YMCA를 만드는 등의 다른 지역사회 사업에 참여했지요

마담 워커가 서서 말했습니다 『YMCA를 세우는 기금으로 천 불을 약속합니다 소년들을 도우면 소녀들을 돕는 일이 될 테니까요』 사람들을 놀랐는데 어떤 흑인여성도 이런 기부를 한 적이 없었기에 전국의 신문에서 그녀에 대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마담 CJ 워커는 극장에 가서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두를 환영하는 자신의 극장을 세우기로 했지요 이런 이상은 인디애나폴리스 사회와 창의성도 자라게 했지요

이 건물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장과 사무실의 필요성도 있었지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흑인들을 위한 시민 문화회관을 만드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1층엔 극장과 미용실, 약국과 다른 상점들을 두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층은 치과의원 의원, NAACP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가 있어 지역사회 단체들이나 의료 서비스들이 이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2층엔 다른 공장과 3층엔 사무실들이 있었습니다 4층은 회사의 본부이며 또한 무도장이 있어 흑인사회가 춤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담 워커는 1919년 세상을 떠나며 극장개막을 보지 못했지만 딸이 이어받아 마담CJ 워커 극장센터를 1927년 12월 26일 개장했지요

마담 워커 극장센터는 가장 훌륭한 전국의 역사적 건물이자 문화예술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청소년들에게 예술교육이 있고 마이클 볼턴 스티비 원더 글래디스 나이트 중국곡예단 러시아 발레 사비온 글로버 드림 걸스 등의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지역극단도 참여합니다 무도장을 빌려 결혼리셉션도 합니다 학기 중에 흑인 역사의 달 여성 역사의 달 프로그램을 위해 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정말 광범위해요 저희는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문을 들어서면 마법을 느낍니다

마담CJ 워커의 사업 성공과 인류를 위한 온정의 유산은 여러 단체의 인정을 받았지요

미국 사업 명예의 전당과 시카고의 과학산업박물관에 올라갔으며 뉴욕의 여성 명예의 전당과 국립 흑인 밀랍인형 박물관에 있지요 직접판매협회의 명예의 전당 전국 화장품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 영예도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수성가하여 백만장자가 된 첫 흑인여성으로 그녀의 놀라운 업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게 인상적인 면은 그녀가 돈과 영향력을 이용해 수천 명 여성에게 직업을 주고 자선사업에 참여하여 학교와 교회, 단체들에 기부하였고 정치에 참여한 실천주의자인 점입니다

그녀는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받아들여 타인들과 나누었기에 여전히 영감을 줍니다

지역봉사에 대한 마담 워커의 무아의 본보기는 젊은 세대들이 따를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마담 워커에 대한 리포트를 썼다는 젊은 사람들의 이메일을 받을 때 정말 흥분했어요 캔자스시의 어떤 학생들이 리포트를 썼는데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난 즈음에 마담 워커에 대해 배운 후에 지역사회에서 돈을 모금해 아이티로 보내 사회에 환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노예의 딸로 태어나서 아주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이 여성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제 다른 이에게 본보기가 되어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번들스씨가 수프림 마스터 TV 시청자 분들께 자신의 증조모에 대한 생각들을 전했습니다

마담 워커에게 영감을 받아 특히 삶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녀가 가진 끈기와 믿음이 있다면 정말 많은 일들이 가능함을 알기 바랍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서 마담 워커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방송에서 놀라운 사람들을 소개하고 세상에 변화를 가져왔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에 포함되어 마담 워커의 활동을 알린 것은 제게 정말 뜻 깊은 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렐리아 번들스씨 소중한 시간을 내어 기업가 자선사업가 사회활동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된 마담 CJ 워커씨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결단력과 관대한 정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밝은 미래에 가지도록 격려하기 바랍니다

자비로운 여러분 성공의 모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목할 뉴스와 이어지는 고귀한 생활, 채식을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서 계속 시청해 주세요 천국의 축복 속에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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