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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성공은 모델은 루마니아의 비범한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조명합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1876년 루마니아의 아름다운 지역 올테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목각과 다른 민속공예로 유명한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의 작은 마을 호비타의 소작농 가족 출신입니다

가족의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브랑쿠시는 주도 올테니아로 가서 크라이오바 예술공예학교의 견습생이 되었지요 영국 사우샘프턴 솔렌트 대학의 언론시각예술부 조교수이자 『콘스탄틴 브랑쿠시 -그의 작품 연구』의 저자인 샌디 밀러 박사님을 모시고 이 유명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겠습니다

크레이오바 예술공예학교는 사실 당시 유럽에서 목공 같은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는 최초 학교의 하나로 브랑쿠시가 경력을 시작하며 가구 만드는 법을 배운 곳입니다

후에 브랑쿠시는 부카레스트 미술학교에 다니며 전통조각을 배웠고 1903년 처음 독일 뮌헨에 갔다가 1904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1904년 그가 파리에 갔을 때는 이미 30대였지요 유명한 조각가 메르시에의 공방인 보우즈 미술학교에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해 그만두어야 했지요 그래서 아주 빨리 훈련을 그만두고 파리에서 조각가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그에겐 실제로 아주 힘들었지요 돈은 없었고 유명하지 않았지요

1907년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스타일을 바꾸었습니다 저의 첫 저서에도 논의 했었지만 그의 영향으로 동시대 인물인 피카소 등은 아프리카와 이슬람 예술과 민족지적 예술로 기울어졌지요

『기도하는 사람』은 루마니아에서 묘지 기념상으로 주문 받았습니다 브랑쿠시의 독특한 조각기술과 추상적이며 젊은 여성이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 비언어적 표현은 그의 유명한 혁명적 스타일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기도하는 사람』은 유럽 조각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훨씬 나중에 헨리 무어 같은 사람들은 그에게 그 시작점을 찾았습니다 대부분은 조각할 때 조각하는 대상에 어떤 모델을 활용합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조각가들이 쓰던 새 기법은 어떤 밑그림이나 준비가 없이 돌을 직접 잘랐습니다 브랑쿠시가 새 기법을 시작하며 돌을 직접 잘랐는데 1907년 경에 이것은 엄청난 혁명이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조각과 미술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브랑쿠시의 혁신적 스타일은 플라톤의 철학적 통찰과 동시대의 프랑스 후기 인상파 선구자인 폴 세잔느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의 본질적 생각인 이상적인 형태라는 것에 영향을 받았는데 일반적인 용어로는 보편적인 개념 용기의 관념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본질로서 『마이아스트라』에서 『공간의 새』로 옮겨가며 말했지요 『나는 비상의 본질을 잡아내고 싶습니다』 이 새에서 비행의 본질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만든 이런 방추형은 새의 비상의 순간을 잡으려는 겁니다 그리고 같은 방식을 그의 물고기에서 보게 됩니다

지금 세잔느는 구체와 원통 삼각형과 피라미드 라는 말과 함께 시각에 집중하는 개념의 그림이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사과를 보는 대신에 그는 사과의 본질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구체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브랑쿠시에게 중요해지며 그는 이런 새 시각을 부카레스트 국립 박물관에 있는 특별한 조각인 『기도하는 사람』 브론즈에 적용했지요

게다가 한 손을 없앴으며 후에 친구에게 말했지요 『나는 묘지에 여성을 넣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었다』 여성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본질로 옮겨간 것입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조각을 계속 했습니다 형식을 더 개발하고 기하적 대상으로 형태를 단순화했지요 그 과정에서 그는 『잠자는 뮤즈』 같은 걸작을 수없이 만들었습니다

그가 한 것은 검은 돌의 형태를 보고 표면을 그냥 부드럽게 깎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중요한 전환점은 거친 접근법을 완전히 버리고 아름다운 모티브인 『뮤즈』 『잠자는 뮤즈』 『포가니양』 『새들』 등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축소와 단순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포가니양의 머리를 단순화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그것은 특이하게 지금도 눈, 코 손을 알아볼 수 있지요

그건 1913년의 1번입니다 1919년의 『포가니양 2』는 세밀함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눈은 더 이상 거기 있지 않고 손은 합쳐져 하나가 되었지요 1933년 3번을 만들 때 모두 사라졌지요 인간의 머리와 막연히 닮은 무언가가 있지만 아주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브랑쿠시의 작품엔 그가 광범위한 여행에서 관찰한 다양한 문화들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파리에서 친구이던 많은 저명한 예술가와 지성인인 가령 스페인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미국 시인, 비평가 에즈라 파운드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앙리 루소 루마니아 작곡가 게오르게 에네스쿠 등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걸 잘 흡수했으며 잘 혼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1909년 『지구의 지혜』 같은 작품들을 만들 때 그가 루브르의 이집트 조각들을 보았음을 제가 발견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젊은 화가인 모딜리아니와 친구가 되었고 브랑쿠시는 그에게 조각을 하게 했지요 모딜리아니는 이집트를 사랑했죠

그리고 더욱 고전적인 시기가 오며 그 후에 1907-9년 돌에 직접 조각하는 직접 조각가가 오게 되었습니다 1909/10년 완벽하고 아름다운 걸작 알들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포가니양』이나 『공간의 새』 같은 다른 인물상은 아주 세련되고 완벽합니다

1910년대에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마르셀 뒤샹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르셸 뒤샹은 브랑쿠스의 몇몇 걸작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1914년 경에 그는 처음으로 나무로 작업하는 기법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에는 약간 루마니아 유산으로 회귀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마르셀 뒤샹의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1926년과 33년 뉴욕의 2번 전시회는 실제로 뒤샹이 큐레이터였지요 브랑쿠시는 아주 특별한 연습을 시작했는데 저는 뒤샹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먼저 그는 어떤 기성 제품을 사지 않으면서 스튜디오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최고의 예술의 스튜디오라는 의미입니다 스튜디오의 의자 탁자 등 모든 것은 그가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무조각으로 때로는 의자와 조각받침을 만들고 때로는 조각을 만들었지요 그들을 순환시키며 범주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단이 되었다가 조각이 되고 다시 의자나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장난은 바로 뒤샹에게서 나왔습니다

브랑쿠시의 명성은 신선한 개념과 아름다운 창작품과 함께 커졌으며 1917년엔 미국까지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브랑쿠시의 작품은 대중과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지요

1917년부터 그는 뉴욕에서 유명해지며 사랑을 받았고 많은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1957년 그가 사망한 후에 그의 추종자와 그가 만난 사람들인 헨리 무어 바바라 헵워스 벤 니콜슨과 그리고 전체 미니멀 운동과 칼 안드레를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일본 조각도 브랑쿠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지요

그는 미니멀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칼 안드레는 1965년 뉴욕의 유태인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벽돌로 만든 긴 줄이 있어 전체 갤러리를 수평으로 관통한 유명한 작품 『지렛대』를 만들 때 말했습니다 『나는 브랑쿠시의 『무한주』의 바닥에다 놓았습니다 『무한주』는 올라가지만 제 것은 편평하지요』

브랑쿠시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전체 개념은 공공 기념물로써 『무한주』는 트리구 지우에서 실제로 3개가 세트입니다 이 기둥의 전체 개념은 33번 반복된 모듈이 기반입니다 전체 미니멀 조각은 반복되는 모듈이 기본이며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솔 르윗이나 댄 플래빈 칼 안드레 같은 사람은 브랑쿠시의 특히 『무한주』에서 모듈조각법이 나왔다고 합니다

브랑쿠시에게 재능있는 친구들과 뛰어난 창의성의 불꽃을 일으키는 본보기가 많았지만 그에게 가장 깊고 가장 중요한 영감은 근원은 신성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그는 아주 종교적인 사람으로 삶에서 신이 중요한 부분이었고 신성을 추구했지요 여기에도 그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에게 흥미로운 다른 점은 특히 티베트의 사고에 영향을 받았고 그가 사랑한 책은 1929년 에반츠 웬츠가 불어로 번역한 『밀라레빠의 생애』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책은 언제나 그의 침대 곁에 있으며 그는 언제나 밀레레빠를 언급했습니다 형이상학이 그의 조각에 심오한 측면을 주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브랑쿠시는 겸손하며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잘 말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가 남긴 몇 마디 말들은 지혜가 가득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기에 신비롭게 남았지요 그러나 소수의 금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순수한 기쁨을 준다 꿰뚫어 볼 때까지 내 조각을 보라 신께 가장 가까운 것을 볼 것이다 신께 가까이 가는 것은 우연을 뒤에 남기며 원리와 사물의 본질을 말하고 눈이 절대를 향하게 하는 것이다』

브랑쿠시는 멋진 예술적 재능을 세상에 선사하며 삶의 소중함과 단순함을 일깨워 줍니다 샌디 밀러 박사님 재능 있는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에 대한 소중한 통찰에 감사드립니다 대중에게 예술의 보물을 계속 나누도록 당신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선량한 여러분 오늘 성공의 모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서 주목할 뉴스와 이어지는 고귀한 생활, 채식을 계속 시청해 주세요 하늘이 모두를 선과 사랑의 길로 인도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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