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신의 횃불이 되자』 칭하이 무상사 강연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1999년11월25일

신사 숙녀 여려분 칭하이 무상사의 깨달음이 있는 지혜를 경험할 시간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를 스승이라 하지만 여러분 모두 스승이죠 여러분이 잊은것 뿐이에요 우리가 하나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주가 하나라는걸 기억하게 되면 우리가 신과 하나이며 두루 편재한 지성과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잊게되면 모든 것을 잊게 되지요

그리고는 기도나 경전들,요가나 명상 같은 것을 통해서 생각해 내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좋아요 우리에게 좋은 거지요 언젠가는 진실로 우리 모두 스승이라는 것을 기억할겁니다 이 방안이나 다른 어느 곳이든 스승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소부재한 스승과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린 그 무소부재함 안에 있고,그것과 하나이며,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진 유일한 것입니다

신의 본질과 가장 위대한 것들 외에 우리 존재를 만든 것은 없어요 그것을 우리는 진리, 지혜,신,여신 부처라고 부르죠 무엇이라 칭하든 우주의 가장 위대한 이 존재는 우리와 우리 모두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죽을때 우리 자신이나 육신이라는 것이 땅바닥이나 어디든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움직임과 모든 행동의 본질이 죽을 때 육체적인 도구를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고,실제로 우리와 하나인 이 위대한 존재의 무한함과 광대함을 더 체험해 보기 위해서 또 다른 도구를 찾을 겁니다

일단 두루 편재한 지성과 두루 편재한 사랑과 하나됨을 발견하고 나면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신의 깨달음 또는 자아 실현 또는 성불이라고 합니다 각 나라마다 이 지성과 이 지혜와 이 최고의 사랑을 칭하는 말이 다르지요 언어가 서로 다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을 감싸는 하나,하나됨만 있을겁니다

우린 이 하나됨과 절대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분리되려 해도요 이 하나됨과 분리감을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이 단일체를 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린 망각을 통해서 이 위대함을 다시 체험하고 우리 자신을 다시 창조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자 가장 위대한 자아인 신과 하나되는 천상의 기쁨을 기억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이렇게 묻지요 『우리가 죽을때 어떻게 되나요?』 난 항상 말합니다 『난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주 깊은 기도나 묵상중에 죽는 느낌을 체험할수 있어요 아주 깊이 기도에 몰두하면 자신을 포함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잊게 되고 온갖 근심들이 사라지게 되지요 이 때가 바로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말하는『삼매』지요

이 삼매에 들때 신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됩니다 죽을 때와 거의 같지요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죽는 것을 배우면 살게 될것이다』 한 성자도 말했지요 『나는 매일 죽는다』『누구든 영혼을 위해 육신을 버리면 신을 찾을 것이다』등등 어떻게 육신을 잊거나 버릴까요?

우린 매일 살아가고 생존하는 문제들을 수없이 갖고 있지요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사소한 일들과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늘 우리가 육체적인 존재이며 그저 죽을 수밖에 없고 약하고 힘없고 운명앞에서 무력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깨웁니다 어떻게 이걸 잊을수 있을까요? 가능해요! 수행하면 할수있어요 방법을 알면 됩니다 아주 간단해요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우린 6살 아이들부터 있고,그보다 더 어린 5살짜리도 있는데 그들은 벌써 신과 하나되는 체험을 했죠 육신을 버리고 성령과 일체감을 느끼는 현상도 체험하고 살아있는 동안 천국을 가보는 체험도 합니다 그건 아름다운 여러분 나라를 방문하려고 내가 아프리카에 왔다가 내일이나 다음날 다른 나라로 가거나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그처럼 간단해요

천국에 갔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수 있어요 육신이 아닌 우리 자신의 본질로요 그것을 영혼이나 정신이라고 하며,그건 언제나 신과 하나지요 이 몸은 단지 한 촛점으로서 영혼이 모든 주의력을 그곳에 집중해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어떤 지상의 체험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그 영혼을 그나 그녀라면요 호칭을 붙여야 하니까요 그녀나 그가 이 물질계에서 뭔가 체험하고 싶다면 그 영혼이나 그 위대한 신의 일부는 어떤 초점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몰두해서 집중하면 자신이 신과 하나였다는걸 완전히 잊을 수 있죠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태어나고 물질계에 태어나 몸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나 그 신 의식의 일부가 집중하기로 선택한 몸이 어떤 몸이든 이 집중점에 계속 몰두하면 그것이 그다 그녀다,인간이다 또는 무엇이다라고 말하게 되는거죠 사실 그 영혼의 일부, 또는 개별 영혼이라는 것은 신 의식의 전체를 절대로 떠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린 정말로 태어나지도 않고 결코 죽지도 않지요

그러나 우리는 신과 우리 자신의 합일체 전부를 완전히 잊고 이 육체적인 존재에만 집중하도록 선택할수 있어요 그러면 신이 온사방 어느 곳에나 있지만 전혀 신성을 체험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깨어나고 기억하기로 결정을 한다면 할 수 있어요 잠시 우리의 관심을 버리고 얼마간 이 육신에 집중하지 말고 합일체에 다시 집중하게 되면 신을 찾을 수 있어요

우리가 신을 절대로 떠나지 않았으며 신과 하나이며 항상 분리되지 않았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비밀이지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의식이 항상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인간이 되기로 선택하면 인간의 몸에 집중해서 인생을 경험해 보는 거지요

모든 슬픔과 고통 행복 육체의 모험들 즐거움들 아픔의 경험을요 육체적인 체험을 충분히 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우린 다른 체험을 하고 싶어하지요 그럼 또 다른 선택을 하는 거지요 천신이 되는 걸 선택하거나 꽃이 되는 체험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그것도 가능해요!

그래서 다른 등급의 존재로 환생하는 윤회의 이론이 생겨난 거에요 하지만 사실 우린 전혀 어디에도 가지 않지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아요 그저 영원히 우주의 생명력 안에서 떠다니며 영원히 신성 안에 있지만 다른 집중 지점을 체험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서요 그러나 우리가 육신에 머무는 동안 때로는 자신의 지혜를 잊어버리게 되지요 따라서 이곳에 오기 전에 했던 선택도 잊어버리지요 그래서 우리가 했던 선택이 아픔과 고통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불평을 하죠 불평을 심하게 합니다 우린 고통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육체는 고통을 싫어하고 마음은 압박감을 싫어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영혼이 체험하고 싶어하는 거지요 압박감을 체험하게 되면 신 의식 안에 있는 자유를 다시 감사하게 됩니다 고통을 선택하게 되면 다시 한번 영원한 기쁨속에 들어갔을때 천배나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겁니다

신과 우리 자신을 더 알게 되니까요 옛날 어떤 나라의 왕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왕은 자신을 평민으로 변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다닙니다 진짜 백성의 신분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요 그런 다음 돌아오면 자신의 지위를 더욱 감사하게 되지요

안락한 궁전과 시중드는 모든 하인들과 자신이 갖고있는 모든 힘을요 자신을 평민으로 변장했을 때는 온갖 어려움과 온갖 평범함을 겪어야 했지요 그의 모든 백성들처럼요 그는 자신이 왕임을 밝힐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감춰야만 했지요

그래야 정말로 자기 나라 백성들과 동화되어서 그들의 일상생활이 어떤지 체험할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때는 신과 하나였죠 그때는 의식하고 있었죠 우리는 신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물질적인 삶의 고통도 충분히 겪어보고 세속의 체험도 해보았더니 따분해진 거지요 여기에는 더이상 즐길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신이 창조한 이 광대한 우주에 체험해야 할것이 뭐가 또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요 이때가 바로 이런 질문을 하고 이렇게 호기심을 가지는 때지요 이것이 바로 깨달음을 체험할 때입니다 준비가 된겁니다! 깨달을 준비가 된거죠

이 모든 세월동안 여러가지 다른 인간이 되어 왔던 겁니다 때로는 우리가 한 집중점이나 한 인간 존재에만 집중하다 보면 물질적 즐거움이나 물질적 모험을 충분히 했다고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인간이라는 또 다른 존재에 집중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지칠때까지 계속 나아갑니다

그래서 실제로 준비가 된 사람은 신의 빛과 신의 합일체와 깨달음을 체험할 수 있지요 그처럼 아주 간단해요 여러분의 선택이죠 잊기로 선택했다가 이제는 기억하기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기억하기로 했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내가 여러분을 도울겁니다

신이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고 명령했기 때문이죠 아마 언젠가는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나면 신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말할겁니다 『가거라,내 아들아! 가거라,내 딸아! 내 자녀들과 나에게 봉사하라』 우리는 결코 신과 분리된게 아니니까요

그걸 기억하세요 설사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믿으세요 우리는 신 의식 안이 아니고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요 신의 집 말고는 지금 당장 어디 다른 곳이 없어요 모든 곳에서 그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감싸고 있죠 모든 꽃들과 태양 달과 별,행성들과 은하계들은 모두 신 안에 있어요 아무것도 신성을 벗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비록 깨닫지 못했다 해도 역시 괜찮아요 사실 가야할 지옥은 없어요 의식있는 영혼에겐 지옥이란 것이 없지만 단지 영원의 과정에서 그가 거쳐야만 하는 일시적인 통과 경험인 거지요 왜냐하면 성장하고 행복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 고통이라는 체험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지요

모든 영혼과 신의 모든 작은 분신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선택합니다 신의 다른 모습들을 체험하기 위해서요 온 인류나 모든 존재들의 모든 체험은 신의 전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말했죠 『이웃을 사랑하라』 심지어는 『원수도 사랑하라』 모두가 우리니까요! 그들은 그 역할만 하기로 택한 거지요 원수라는 건 없어요 그저 우리지요

인생을 더 풍요롭고 더욱 다양하며 더욱 다르고 더욱 다채롭게 하기 위한 신의 다른 집중점이요, 마치 신이 우리를 다른 색깔들로 만들어서 서로를 즐길 수 있게 하듯이요 나는 노란 옥수수 프레이크처럼 보이고 또 여러분은 초콜릿처럼 보여요 네 그는 설탕처럼 보이지요 크리스마스 설탕요 신은 다채롭거든요

그가 온갖 꽃들을 서로 다른 색깔들로 만든 것처럼요 과일도요! 똑같은 흙에서 수없이 다양한 과일들과 다양한 꽃들이 나오지요 모두 다 색깔이 달라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항상 화려한 색깔의 옷들을 골라 입지요 왜냐하면 내면으로 신과 매우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행복하지요!

그래서 신을 찾거나 우리의 진아를 찾는 것이 정말로 신비하거나 어려울 게 없어요 우리는 신이자 신의 본질, 신과 하나, 신의 아이들,자녀 신의 불꽃,신의 일부가 아닌 적이 결코 없었으니까요 마치 바닷속 물고기와 같아요 그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며 죽을 때 다시 바다가 됩니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린 절대 어디로 달아나지 않죠 여러분에게 내가 발견한 좋은 소식을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에겐 갈 지옥이 없습니다 결코 우린 영원한 어둠이나 고통에 몰리지 않을 겁니다 영원한 고통같은 건 없어요 왜냐하면 영원한 사랑만이 존재하니까요 지금 우리의 문제는 우리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린 바꿔야 해요 우리에겐 너무 많은 죄책감과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우린 성공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요 우리가 부자면 사람들이 우릴 죄인처럼 느끼게 하죠 신이 우리에게 어떤 부나 성공적인 사업을 준다면 사람들이 우릴 죄인처럼 느끼게 해요 여러분에게 예쁜 부인이 있다면 때론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만들죠

그들은 곁에 와서 물어요『어떻게 이런 미녀를 알게 되었나요』 또는 그녀에게 묻겠죠 『그의 어떤 점이 좋아요? 그는 못생겼잖아요』 이런 식이에요 그들이 참견할 일이 아닌데도 불쾌하게 만듭니다 돈이 많아도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정치나 사업에서 성공해도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온 세상이 아주 많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렇게 교육 받았으니까요 이런 가르침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모세가 우릴 자유롭게 해주려고 와야 했어요 그의 희생만이 아니라 신은 모든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말해서 우릴 자유롭게 합니다 『두드리라 그럼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그럼 너에게 주어질 것이니라』 하지만 어딜 두드리죠 우린 더 이상 두드릴 수조차 없어요

우린 너무 약합니다 이런 복수심에 불타는 신에게 받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지고 있죠 복수하는 신 같은 건 없습니다 복수심에 불탄다면 신은 우리와 같지요 여러분과 나 말이에요 전쟁의 신이요 『너희는 내게 뭔가 좋은 일을 하라』 이건 신이 아니에요 그런 신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럼 우린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을 숭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정말 사람이고 그런 신이 있다면 굳이 신을 경배할 필요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그냥 힘을 남용하는 사람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이 행성에서도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에게 아이가 있거나 부인과 남편이 있다면 때론 여러분의 부인이 실수하고 여러분의 남편이 약간 빗나가지만 여전히 그를 용서하고 그를 안아줍니다

『좋아요 용서할게요 다시 그러진 마세요』 또는 아이들이 때론 고집을 피워서 많은 문제를 줍니다 아이들은 여러분 말을 안 듣고 두통을 일으키죠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을 줍니다 돈도 주고 모든 것을 희생해요

그러니 어떻게 신이, 가장 위대한 아버지 또는 온 우주의 어머니가 복수심에 불타오를 수 있고 여러분이 인간이며 더 나은 걸 모르고 가끔 실수를 한다는 이유로 여러분을 지옥에 빠뜨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대대손손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너무 약하여 기도에 답하시는 신이 있다는 걸 믿지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고 우리 기도가 응답을 받을거란 확신을 갖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죠『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구하면 얻을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신은 정말 그래요 여러분이 뭘 하든 신은 여러분의 기도에 항상 응답할 겁니다 그냥 들어야 해요

난 어떻게 신을 듣는지 알려줄 겁니다 이렇게,우린 생각의 방식을 바꿔야 해요 오늘부터 신이 용서와 사랑이란 걸 우린 믿어야 합니다 신이 용서와 사랑임을 안 믿는다고 해도 예수가 여기 와서 여러분을 위해 희생한 걸 믿지요 난 그가 말했던 게 사실임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겁니다

나는 정말 신이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 또는 부처, 심지어 알라, 여러분이 모든 사랑과 아름다움 모든 믿음의 이름으로 부르는 누구든요 그것이 항상 자비롭고 결코 한 순간도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는 신입니다 언제든 신에게 돌아서면 사는 동안 얼마나 나쁜 짓을 했든 지 상관 없이 신은 즉시 문을 열어줄 겁니다 그래서 우린 이걸 즉각 깨달음이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즉각적이니까요

또 매일 여러분은 다시 연습할수 있어요 이 삶에 존재하는 단 하나는 신이며 그가 어디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완전히 기억할 때까지요 그럼 행복할 겁니다 신의 빛을 본 그 첫날부터 이미 여러분은 행복할 거예요 아마 오늘부터요 내가 이걸 여러분에게 줄 거라고 충분히 날 믿는다면 여러분은 바로 가질수 있어요 여러분은 성경에 쓰여진 무엇이든 볼 겁니다 백프로 사실이에요

모세가 신을 만났듯이,예수가 신과 하나되어서 그랬듯이 말이에요 또는 그는 항상 신의 아들이었지만 그가 신의 유일한 아들은 아닙니다 우리도 신의 아들이에요 신은 불구가 아니에요 신은 아들 하나만 낳지 않았습니다 많이 낳았어요 단지 예수가 기억했을 뿐이에요 그는 신과 연결된 최상의 자아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모든 걸 기억했고 우린 기억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어떤 왕에게 아들이 두 명 있었어요 한 명은 온 땅을 헤매느라 그가 왕자임을 잊었습니다 다른 왕자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자신이 왕자임을 기억했어요 둘 다 왕자죠 그래요 차이가 없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기억하고 다시 돌아갔어요

이제 같죠 예 그러니까 우린 신의 방황하는 아들과 딸입니다 집에 가고자 하는 순간 집은 바로 거기에 있어요 모든 게 생각만으로 창조됩니다 예를 들어 우린 지금 육신 안에 있어서 예수나 부처의 가르침을 많이 이해하진 않습니다 이렇게들 말하죠 『네가 뭘 요청하든 너희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 이 말은 여러분이 뭘 생각하고 뭘 바라든지 이뤄질 거란 뜻이에요

하지만 우린 그걸 믿지 못해요 왜냐하면 몸이라고 부르는 족쇄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무한한 사랑, 두루 편재하고 무조건적이며 영원한 신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우린 육신을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 게요 그건 아주 간단해요

여러분은 버스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공원에서 어디에서든 할 수 있어요 어떤 조건이 없습니다 내가 곧 여러분에게 방법을 알려줄 거예요 또 난 여러분에게 몸을 떠나서 더 깊은 다른 등급으로 가는걸 알려줄 수 있어요 더깊이 가고싶다면 여러분이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설명하려면 몇 시간 걸립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몇 초면 되요 설명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죠 왜 설명을 할까요? 여러분이 집에서 그걸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걸 알아야 해요 그러니 스스로 돌보고 스스로 스승이 되세요 그럼 날 스승으로 부를 필요 없이 자신을 스승으로 부르세요 아님 신경쓰지 마세요 우린 친구에요 네! 우리 모두 똑같아요 정말로 그래요

여기서 너무 많은 것들이 나옵니다 제발 천천히 하세요 그는 너무 빨리 말해요 내 입은 충분히 빠르지 않아요 왜냐하면 더 높은 차원에서 우린 말하지 않고도 서로 이해합니다 마치 내가 머리 속으로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요 메시지가 너무 빨리 와서 때론 내가 잊어요 내가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신과 하나란 걸 모르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항상 우리 코 앞에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육신에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넘어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우린 예수와 부처 또는 모하멧과 접촉할 수 있어요 이 물질계를 떠나 다른 차원에 들어간 과거의 스승 누구와도 접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보려면 그들 차원에 들어가요 그럼 그들을 봅니다 아주 간단해요

난 아프리카 사람이 제일 보고 싶어서 여기 왔습니다 또 난 영국 사람이 보고 싶으면 영국에 가요 가끔 우리 집에 오는 영국 사람이 있어요 또는 우리 집에 가끔 오는 남아프리카 형제들이 있지만 그들은 드물어요 알겠어요? 모든 아프리카 사람이 보고 싶다면 난 여기 옵니다 그 뿐이에요!

우리가 천국 전체나 신성 또는 어떤 천상의 집을 보고 싶다면 우린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 해요 또 우린 생각으로 그렇게 합니다 깊고 깊은 생각으로요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분 생각의 힘을 어떻게 꾸밀지 보여줄게요 여기 이 문을 나가서 언제든 다른 차원에 들어가려면 말이에요 여러분이 수행하면 언제 어디서든 그걸 할 수 있습니다

왜 성인들이 우리가 죽는 법을 배워야만 살기 시작한다고 말할까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렇게 깊은 기도에 대해 깊이 명상하는걸 배우면 우리가 천상의 존재차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많은 평범한 이들이 죽는 순간과 비슷합니다

수행자와 요기들 또는 다른 걸 말할 필요가 없어요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분명할 때 그들 삶은 선의 완벽한 본보기에요 그들이 죽을 때 그들은 자신이 아주 자유롭단 걸 발견해요 그들은 자신이 두루 편재하며 동시에 모든 곳에 충만하단 걸 발견합니다 또 그들이 뭔가를 원할 때마다 그게 그들의 바로 앞에 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날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원하는 사물이나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 앞에 그들 자신을 즉시 투영할 겁니다 그래서 죽는 법을 배운다는 건 우리가 이 육신을 떠나서 일시적으로 죽는 걸 뜻해요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그럼 우린 정말로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우리가 뭘 원하든 신이 그걸 허락하시며 우리에게 준다는 걸요 이 육신 속에서 우린 천상의 축복과 신의 사랑에 너무나 눈 멀고 귀 먼 벙어리에요 우린 무력함을 느끼죠 우린 이 육신에 있을 때 가장 무력합니다 마치 상자에 갇혔는데 열쇠를 강에 던져버린 것과 같아요 너무나 무력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사랑의 영광을 체험하려면 이 육신 너머로 올라가는 걸 배워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고 갖지 않았든 관계 없이,우린 매일 아주 행복할 거예요 우린 항상 만족할 것이고 항상 행복할 겁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는 죽음을 대면했을 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아버지께서 저를 영광되게 하셨나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걸 받아들였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든 도망갈 수 있었어요 그런 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원하지 않았죠 그를 더욱 영광되게 만들고 더 행복하게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알고 있는 무언가에서 그가 왜 도망가야 할까요?

그가 광대한 천국을 아는 데 왜 이렇게 작은 감옥에 집착하겠어요? 왜 그가 이 물질계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집착하겠어요?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볼 수 있고 모든 형제자매들, 친척 친구들이 결국엔 그와 하나될 것을 아는데 말입니다

그게 진정한 해탈이죠 신의 깨달음에서 얻는 자유와 비교될 만한 자유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구해야 하는 유일한 진정한 자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