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궁극의 법문』 칭하이 무상사 강연
홍콩 1989년 7월 7일

저는 불교 신자입니다 종종 기독교인들과 토론을 하곤 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독교인들은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는겁니다 무엇이 진실인가요?

유일신이란 없습니다 사실 신은 없으며 어떤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창조의 힘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이 힘에 의해 창조됐지요 주위를 둘러 보면 많은 걸 볼 수 있죠 그래서 아무도 창조한 사람이 없다거나 창조의 힘이 없다고 한다면 참지 못할 겁니다 그런 텅빈 감정을 견디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우주를 만든 어떤 창조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창조의 힘은 실은 사람이 아니라 그 보다는 자연적인 변화의 힘입니다 그 힘이 너무 완벽해서 『절대자』또는 『무한 존재』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둘 다 같은 뜻이죠 석가모니 부처는 신을 언급하지 않았어요 『무상』이나 『능가할 수 없는 완벽히 깨달음』 이라고만 했지요 그 힘과 같은 거에요 온 우주가 『능가할 수 없는 완벽한 깨달음』에 의해 창조됐습니다 이 힘이 없이 석가모니 부처가 어디서 왔겠어요? 그가 스스로 생겼을까요? 그런 지고한 힘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힘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 없어요 이 힘은 우주의 근원입니다 이 힘이 우주를 창조하고 이 힘이 우주를 파괴하며 이 힘이 우주를 키우고 그런 다음 재창조합니다 이 힘을 우리가 『음양』이라고 하죠 그 음과 양이 번갈아 가며 우주를 창조합니다 만일 창조라거나 그런 음양이 없다면 우주는 재미없이 단조로웠을 겁니다 변화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똑 같거나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이 지루할 겁니다 이 세상은 또한 진동으로 창조됐고 그 진동이 우리의 본래 자아를 창조했죠 그래서 불교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지요 수행을 시작하면 우리가 신이란 걸 알게 됩니다 결국 그걸 깨달을 겁니다 일체 유심조라고요

스승님,병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사를 찾아가서 약을 먹고 쉬거나 부처,신 또는 예수에게 기도하세요

높은 경지에 오른 수행자는 부처나 예수를 볼 수 있나요?

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높은 경지가 아닙니다 예수나 부처를 보는 건 최고의 경지가아닙니다 최고의 경지는 자신이 부처나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나의 많은 제자들이 예수나 부처를 봤죠 많은 제자들이요 불교도인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기독교도인 사람들은 부처를 봅니다 둘 다 재미있죠 그러면 차이가 없다는걸 알게 됩니다 불교신자가 석가모니 부처를 봤다면 놀랄 게 없지만 내가 예수를 보게하면 모두가 하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부처나 예수의 비전을 보는 것에 대해 좀 설명을 해 보죠 우리 수행자들이 예수나 부처 또는 노자,공자, 모하메드와 같은 과거 스승들을 보는 것은 그들의『일터』를 지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가 과거에 스승이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난 다음 다른 세상의 존재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러 갔죠 그 세상은 우리 보다 더 좋으며 사람들도 가르치기 쉽고 외모도 아름답고 순종도 잘하고 훨씬 도덕적입니다

그 스승들은 여기서 할 일을 마치면 진급을 합니다 임무를 끝내면 더 높은 경지로 승격되어서 가르침을 더 잘 알아듣는 존재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때나 반드시 명상이 아니어도 수행을 시작해서 걸을 때나 쉴 때,앉을 때, 잠잘 때 등 언제라도 열심히 수행하면 그런 스승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걷거나 앉거나 자거나 쉬는 동안에도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네가지 상태가 모두 같아요 모두 다 명상하는데 차이가 없어요 잠자는 동안에도 깨어있는 기분이죠 명상하는 동안에도 먹는 것과 같고 먹는 동안에 명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상태가 똑같다는 겁니다

언제든지 더 높은 경지의 내면의 비전을 볼 수 있어요 내면의 지혜가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예수나 석가모니 부처 또는 노자나 모하메드를 봤다면 그 비전이 우리의 지혜가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또한 그 스승들이 어떤 경지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죠 예컨대 어떤 스승이 이 세상 보다 약간 더 높고 아스트랄계라고 불리는 일 세계에서 살도록 지명됐거나 우리의 의식이 아스트랄계 수준이거나 우리의 지혜가 아스트랄계 높이라면 그런 스승을 만날 겁니다 우리가 본 스승이 높은 경지에 지명이 되고 우리의 지혜도 2세계를 이해할 만큼 높아서 그런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런 스승을 만날 겁니다 별거 아니에요

입문이 뭡니까?

지혜를 여는 겁니다 말이 없이 법맥을 전하고 비밀의 가르침, 『선』을 전하는 겁니다 나는 입문을 줄때 언어를 쓰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 줍니다 적절한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마음은 가장 중요하며 가장 잘 이해합니다 감정으로 가득하지요 그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심전심으로 그것을 전한다고 하는 거예요 이는 그것을 여러분과 관계시키는 방법이죠 그래야 말할 뭔가가 있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그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난 진정한 가르침인 법맥 또는 지혜를 전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 여러분 자신의 지혜를 열 수 있고 불성을 열어서 내면의 불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난 그것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무형의 감정과 무형의 이해 이심전심을 대표하죠 마음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지혜를 대표합니다

다른 종교를 따라도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기독교인들은 부처를 모르지만 예수를 믿습니다 그럼 그들이 최후에 부처가 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부처가 뭡니까? 석가모니가 아니에요 『부다』는 범어이며 중국어로『포투』지요 우주의 비밀을 완전히 아는 깨달은 스승을 뜻합니다 이 스승을 부처라고 부르지요 누구든 우주의 비밀을 알거나,완전히 깨달으면,또는 완전한 지혜를 가졌다면, 부처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인데 완전한 지혜를 얻었다면,여러분은 부처일 것입니다

이 사람은 부처가 모든 중생을 구하는데 어떻게 그가 모두를 구하냐고 묻습니다

우린 이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누구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번갈아가며 서로를 죽이지요 오늘 그를 죽이면 내일 당신이 죽겠지요 이번 생에 그를 죽이면 다음 생에 그가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위대한 영적 수행자들이 여기 와서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살생하지 말라에는 채식이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간접적으로 죽일 수도 없으니까요

매일,스스로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우릴 위해 수많은 동물을 죽이니 그 살생 업장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것은 슬프고 화난 에너지,잔인한 에너지가 되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에너지도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따라서 이 에너지가 수많은 재난과 슬픈 상황들,더 많은 살생의 원인이 됩니다 내가 비유해볼게요 여러분의 배우자와 싸우고 나서 30분 뒤에 싸움을 멈췄다고 합시다 싸우는 행위만을 그만뒀을 뿐 여러분의 마음은 아직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뒤에 예를 들어 제 삼자인 여러분의 어머니가 왔습니다 그녀는 여러분 둘이 싸웠다는 것을 전혀 모르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기운이며 바로 그것을 씻어낼 수는 없습니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인 살생의 에너지가 있죠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매일 수많은 중생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도 그런 잔인한 기운을 갚아야 해요

난 누구를 비난할 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내 친구에요 친절한 이들도 내 친구이고 나쁜 이들도 그렇지요 그들 모두가 무지하며 그들은 이 세상과 우주의 법칙을 어기고 잘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응보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모두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그렇죠? 모두가 부처를 믿지는 않아요 부처는 모든 중생을 구하고 싶어하지만 중생들은 자신들을 구하기를 원하지 않죠,그래서 아무것도 못 되지요

여러분이 부모인데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도,그는 안하죠 대신에 그는 도박을 하러 갑니다 그는 자신과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때론 부모가 자녀의 개성을 바꿀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선행을 하도록 그를 가르치나,그는 고의로 악행을 합니다 따라서,때때로 여러분은 덕 있고 평판 좋은 부모에게 도둑질과 강도짓 하는 자녀가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과 부모의 명성을 더럽힙니다 그들은 모든 걸 합니다 그들 모두가 같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스스로를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부처는 구할 수 없어요 부처에게 모든 중생을 구할 힘이 정말 있다면,그는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천국에 머물며 어떤 만트라를 외워서 여기 전 세상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러지 못했어요 왜 못했을까요? 부처가 사람들을 강요할 수 없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나쁜 짓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을 좋아해서 떠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와서 고생을 했고 예수가 와서 그렇게 힘들었던 것입니다

모든 부처나 깨달은 스승들이 여기서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돌아다니며 말했어요,『고향에 가고 싶다면,내가 데려갈게요』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이들만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원치 않으면 스승은 그들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을 견디며 좋거나 나쁜 것들,축복이나 나쁜 업장(응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린 다른 모두들처럼 함께 박혀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책임을 나눠야 하지요 아무도 혼자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그 책임을 일부 나눕니다 우리 역시 이런 자장에 공헌했기에,이런 일들이 생기고 어떤 사람이 죄를 짓거나 악행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비유를 들어볼게요 예를 들어,여러분은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가난한』소녀들의 포스터를 봅니다 그렇지요? 전에,그 남자는 나쁜 생각을 안했거나 적어도 많이 안했어요 우리 아들들은 그리 생각을 많이 안했지만 그런 포스터를 봤거나 그런 영화를 봤다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런 뒤에 나쁜 짓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아들들의 잘못만은 아니에요 이것은 전부 그 사회의 잘못입니다 그 사회와 그런 영화 때문이지요,맞죠? 또는,그게 이렇지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 가정에는 돈이 없어서 호화로운 옷과 자동차를 살 수가 없습니다,그럼 우린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훔치기 시작하지요 그럼 경찰이 우리를 체포해 비난합니다 그렇지요? 그런 상황을 만들도록 도운 것은 우리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한가지 선택만 있지요 탈출입니다 우린 다시 이런 기운에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만일 돌아온다면 사람들을 구할 겁니다

우리에겐 그런 살생의 기운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구원자의 자장을 갖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중생을 가엾게 여기거나 고귀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가 창조해온 부정적인 자장이나 영향을 배상해야 하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고쳐야 합니다

영적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 수행은 우리의 말과 행동,생각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 좋은 불자나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죠 그래서 살생과 도둑질 간통,도박,음주 등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엄격히 계율을 지킵니다 이것이 첫걸음이지요 다음 단계는 자선을 행하고 사람들을 도우며,덕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경전을 공부하고 마음을 정화하며 명상법을 배우거나 신 또는 부처에게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경전을 암송하고 부처를 숭배하며 경전을 연구해서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을 더욱 정화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영적 수행은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는 것이 최고의 성과입니다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세례가 불성을 보도록 이끄는 방법과 유사합니까?

세례하는 동안 신의 빛을 보거나 예수가 세례 받았을 때처럼 흰 빛을 여러분이 본다면 하얀 비둘기 같은 영적인 빛을 본다면 그럼 마음을 정화하고 불성을 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위로 물만 끼얹고 아무것도 안 봤다면 이것은 마음을 정화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성관계를 삼가해야 할까요? 티벳 불교는 커플이 영적 수행을 함께 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옳습니까?

영적인 수행을 하면서 성관계를 삼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줄여야 합니다 그것을 관둬야 한다면 누가 수행하겠어요? 우리 대부분이 여전히 가족과 함께 삽니다 시간을 가지고 수행하세요 괜찮아요 최선을 다해서 줄이기만 하세요 성불할 때까지요 티벳 불교에서는 부부들에게 함께 수행하라 가르칩니다 스승들도 그들 둘 다 영적 수행을 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부부가 수행하면 더 편리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협력하니까요 용기를 북돋워주고 서로 지지해줘서 그렇게 많이 서로를 오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기를 먹고 싶은데 누가 채식을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수행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나중에 부부가 천천히 육체 관계를 줄여나가면 됩니다 부부가 함께 수행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잘못 수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번 생에 수행해서 위대한 지혜와 해탈을 얻는다면 전생의 안 좋은 업장들을 지울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영적 수행의 목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번 생에 우리는 전생에 지었던 악업을 다시 갚을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악업(응보)를 이번 생에 다시 갚을 수 있어요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말입니다

아직 창고에 좀 남아있다면 우리의 영적 공덕과 스승의 축복으로 그걸 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 버려서 다시 돌아올 구실을 없앨 것입니다 네,할 수 있지만 정업을 바꿀 순 없습니다 가난이 운명이면 가난할 것입니다 부자가 운명이면 부유할 것이고요 조금밖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를 테면 나쁜 업장의 규모를 좀 줄이는 거지요 작은 업장은 없애버리거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신 꿈에서 일어나게 합니다 만일 차사고가 일어날 운명이라면 꿈에서 사고가 나는 것으로 업장을 치루면 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바꿀 수는 없습니다

윤회가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증명할 필요 없어요 뭣 때문에요? 증명하고 싶다면 영적인 수행이나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두 번째 세계에 도달하면 자신이 얼마나 윤회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경지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경지를 초월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 현재 미래를 봅니다 이건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영혼이 윤회한 거라 말하는데요, 영혼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면 왜 점점 더 많은 인간이 생깁니까?

누가 그러던가요? 영혼이 정해져있다면 석가모니 부처는 내려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는 천상의 존재니까요 어떻게 왔겠어요? 영혼은 정해진 게 아닙니다,인간은 늘 인간이 아닙니다 이따금 동물들이나 아귀들이 올라와 인간이 됩니다 어떨 땐 천사가 내려와 인간이 되고요 많은 존재들이 인간이 됩니다 인간만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아니죠 그래서 인간들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영적 수행자들은 아주 드문데다가 해탈하거나 부처가 되는 경우는 더욱 드뭅니다 해탈하는 사람도 적은데 성불하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해탈하는 것은 성불하는 것과 다릅니다 해탈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불하는 것은 보다 어렵습니다 부처는 해탈했으며 대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탈한 영혼들이 모두 부처가 되는 건 아닙니다 부처의 힘으로 해탈할 수도 있고 아라한(성인)이 되거나 아라한이 못되기도 합니다 그가 깨달은 스승을 만났을 경우에는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일정기간 수행을 했는데 아라한(성인)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 돌아와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린 위대한 스승이 있기 때문에 중간 차원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그가 가르쳐줘서 다시 이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가 우릴 보호하고 보증해주며 우릴 가르쳐서 우리는 계속 고양될 것입니다

만일 전쟁이 나면 영적 수행자도 정의의 편에 서서 싸워도 될까요?

여러분에게 선택권이 없을 것 같군요 여러분은 법을 따라야만 할 겁니다 전쟁이 있으면 그 법을 따를 거에요 우리가 군대에 갈 필요가 있다면요

그가 회의장에서 스승님의 강연을 처음 들었을 때 입문을 하고 싶었지만 채식하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그는 완전 채식을 하면 가족 문제가 약간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 채식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나요?

그는 반쪽 채식을 할 수 있고 이런『반쪽』법문을 수행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이 많아요 경전암송이나 부처의 이름 암송 또는 참회 또는 호흡수련이나 해골을 떠올리는 것 등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유령과 신이 있나요?

인간도 다 돌볼 수 없는데 왜 우리가 유령과 신을 걱정해야 하나요? 예 정말 있어요 무서워요? 아닌가요? 나한테 몇 명 보게 해달라는 건가요?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큰 복이 있으면 감히 우리한테 나타나지 않아요 그들은 추하거나 어떤 것은 추해서 무례할 겁니다 우리가 공덕이 있으면 그들을 안 볼 겁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나타날 힘이 없어요

우리 호법이 그들을 막거나 쫓아 버릴 겁니다 귀신을 보는 건 쉽지 않아요 복이 많지 않은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제가 명상이나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을 제 가족이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요?

천천히 하세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내 책이나 내 테이프를 듣게 해주세요 가족을 더욱 더 사랑하세요 하지만 당신도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매 생애마다 가족이 있었으니까요 손오공처럼 불쑥 그냥 태어난 적은 없었어요 이 생에서 가족의 방해를 받는다면 다음 생에서도 방해를 받을 겁니다 그러니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결심을 확고히 하세요 자신만이 구할 수 있죠 우리는 우리자신만을 구하는 게 아니에요 만약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5,6,7대 조상이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9대가 더 높은 곳으로 천도된다고는 말을 우리는 들었어요 맞지요? 9대가 천도될 것입니다 그걸 들어 봤나요? 정말 그래요 그래서 영적으로 수행하면 우리는 부모님께 더 좋은 자녀가 되고 우리 조상들과 부모님과 미래의 친척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5,6,7대 혹은 8대가 모두 천도될 것입니다 말해 주세요

스승님 우리는 업의 법칙을 만들어요 언제 그걸 만들지요? 우리가 그걸 만들 때 우리는 누구지요? 우리는 지금 이 물질계에 있어요 (예) 우리가 업을 만드는 때

그 때 우리는 누군가? 우리는 업을 지었는데 우리가 항상 인간인 때는 아니었지요 때로는 동물일 때 업을 만듭니다

업의 법칙(응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습니다

(예) 다음 생에 아마 우리 중 누가 동물의 몸으로 함정에 걸리겠지만 법칙은 이미 거기 있었어요 언제 그걸 만들까요?

우리가 이 업(응보)의 세상에 내려올 때요 예를 들면 이제 우리는 자유세상에 있어서 자유롭게 많은 일을 합니다 차를 소유한다거나 TV를 소유하거나 농장을 소유하거나 집을 소유하거나 문제가 없지요 당신이 별로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 간다면 차를 소유하면 죄가 됩니다 텔레비전을 소유하면 일종의 법률위반이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내려오는 한 이 법칙에 따르면 많은 실수를 하지요 우리가 거기 올라가면 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멈추는 최선의 길은 법칙이 없는 데 가는 거지요

처음에 우리가 지고에 있을 때를 뜻하나요? (예) 우리가 지고에 있다면 왜 우리가 떨어졌을까요?

우리는 지고한 자에서 왔지만 우리는 지고한 자가 아니었어요 지난 강연에서 난 이미 설명했어요 우리는 지고한 자에서 왔지만 일종의 지고의 자의 찌꺼기였어요 그래서 여기 내려왔고 우리가 도움이 되고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신을 정화해야 해요

누가 지고한 자이죠?

아무도아니면서 모두죠 이제 여러분은 이 모든 형이상학적 질문을 하고 난 밤중까지 답변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이해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혼자서, 자신의 지혜로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으로 알아야 해요 내가 말해주면 더욱 더 오해할 겁니다 그러니 더 좋은 건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지혜를 얻어 가장 높은 곳에 가서 거기에 누가 있는 지 아는 겁니다

고맙습니다

나 역시 고마워요

나도 그들에게 질문 했었는데 이 법문을 수행한 후로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죠 모든 것에 답변을 얻지만 인간의 언어로는 아니고 최고의 이해력과 최고 수준의 지혜로 답변을 얻습니다 또한 이 최고의 지혜를 최저의 우리 세상으로 가져왔다면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쓰레기죠 예를 들어 우리가 왕을 데려와 우리 집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왕이 되는 게 어떤 기분이고 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면 그가 우리 집에 있을 때 그는 더 이상 왕처럼 생기지 않지요 그는 설거지를 하고 여러분과 함께 먹고 얘기하면『왕이, 이런가?』생각하겠죠 그가 왕이면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해요

또한 여러분이 그를 알고 싶으면 왕궁에 가서 매일 그의 일을 함께 하면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봐야 해요 그러면 그를 여러분 집에 데려와서 매일 그를 지켜보지 않고도 진정 그를 압니다 감사합니다 난 여러분에게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마음은 높은 지혜의 갈망으로 가득한 걸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는 겁니다 또한 질문해줘서 기쁘지만 제한되고 매우 빈약한 언어로 인해 기쁘지 않으며 가끔 여러분과 나의 절망을 느낍니다

내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을 바로 여러분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진 평화와 자유를 여러분에게 바로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주는 게 아녜요 여러분이 노력해야죠 모두가 최고의 지혜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아무도 누굴 못 도와요 그래서 부처가 살아 있었을 때 길을 보여주는 것 외엔 아무도 도울 수 없었죠 그 다음엔 모든 이가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

부처는 모두에게 자신이 깨달았던 모든 걸 말해줄 수 없어요 난『여러분의 갈망하는 마음에 진정 동감해요』 라고 말했죠 여러분은 높은 수준의 질문을 많이 했어요 높은 수준의 지혜를 알고 싶어 했으니까요 난 여러분을 동정하며 이런 것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유감이에요 답변을 듣고 싶은 여러분의 고통과 갈망 절망을 압니다

나도 과거에 똑같이 느꼈어요 이해하기 전에는요 나 역시 절망했고 괴로웠어요 지금은 이해했지만 표현할 수 없어서 많은 절망감과 고통까지도 느낍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을 동정하는 고통이에요 내 고통은 아녜요 여러분에게 내가 이해하는 모든 걸 주고 싶어요 내가 느끼는 내면의 자유를 보여주고 싶고 여러분도 자유를 느끼게 하거나 내가 이해하는 모든 걸 주고 싶어요 하지만 난 이렇게 할 수 없어요 모두가 이걸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그래서 석가모니가 부처가 됐는데도 다른 이들은 여전히 스스로 노력해야 했던 거예요 모두가 그처럼 부처가 될 수 있는 건 아녜요 어떤 이는 성불했어요 그의 열명의 수제자 중 하나인 마하가섭처럼요 다른 이들은 아라한 (성인)이나 수다원 같은 다른 천신 또는 보살 등이 되었죠

어느 날 석가모니가 숲에 있는 동안 마른 잎을 한 손 가득 짚어 들고 아난과 다른 제자들에게 물었어요 『이게 많으냐?』 제자들이 말했어요 『많지 않습니다』 석가모니가 말했죠 『내가 이만큼만 너희에게 가르쳤다』 내가 아는 건 숲에 있는 모든 잎만큼 많지만 너희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없구나』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른 선생과 함께 정확한 법문을 배우면 숲에 있는 모든 잎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아무도 우리에게 줄 수 없었던걸 얻지요 그들이 아마 우리에게 조금은 줄 수 있어요 아무도 우릴 대신해 부처가 될 수 없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그의 모든 지식을 줄수없죠 줄 수 있다 해도 하루만에 우리에게 줄 수는 없을 거예요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사람은 다른 시기에 다른 것을 얻어야 할 겁니다

매우 현명한 대학 교수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처럼 되고 싶으면 수년 동안 그와 함께 배워야 하고 차근차근 해야 할 겁니다 그가 하루에 우리의 높은 수준의 질문을 모두 답할 수 없지요 어째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랑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