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궁극의 법문』 칭하이 무상사 강연
홍콩 1989년 7월 7일

희망이 있으니까요 석가모니부처는 고난을 겪었고 49년간이나 돌아다니면서 삶을 바꾸기 위해 이 법문을 수행하라고 말했지요 삶은 바뀔 수 있으니까요 법문은 효과가 있고 희망이 있어요 그런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참으며 사람들에게 위대지고 믿을 수 없는 힘을 우리 내면에 감춰진 보물을 찾는 법을 가르치면서 돌아다녔지요

물론이 길은 호흡을 관하고 해골을 떠올리고 자비를 떠올리고 육신의 불순물을 떠올리는 것만큼 쉽지는 않아요 염불이나 경전 읽기 불상에 절하기 참회하기 산과 강에 절하고 기도하거나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은 통상적인 법문을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어요 그들은 어떤 계율도 요구하지 않아요 우리 목표가 높지 않으니까요

우리의 목적은 작아요 단지 약간의 복과 약간의 마음의 평화와 약간의 지성과 더 적은 육체적 욕망과 약간의 사랑과 자비를 바라는 게 전부죠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본성으로 내면으로 돌아가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가장 위대한 지혜를 발견하고 부처가 되기를 원하면 좀 더 힘들지요 그래서 대부분이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들은 차라리 종교적 후원자가 되려고 하고 영적 수행을 불상에 절하고 산에 절하고 경전을 읽고 회개하고 호흡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운동으로 만드는데 그것도 재미는 있습니다 자신을 계속 바쁘게 해서 허튼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작은 만족을 줄 것입니다

나는 6,7년을 가르쳤지만 전에는 대중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어요 아주 은밀했고 아무도 그걸 몰랐어요 한 명씩 말로 했어요 그게 전부에요 나는 그것을 비밀로 간직했지만 더욱 더 제자들이 많아졌고 그들은 매 주 왔어요 마침내 내가 살던 곳은 너무 협소해졌어요 그들은 내게 말했어요 『스승님 사람들이 더 많이 오도록 더 큰 곳을 빌리게 해주세요』그래서 난 매주 그들에게 강연을 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그들은 말했죠 『아주 큰 장소를 빌리기는 하지만 공공장소를 빌려서 다른 사람도 강연에 오게 해주세요』

나는 이 법문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으며 그것이 일과가 되었죠 그래서 그냥 계속 가르쳤어요 그렇게 이 비밀의 법문이 대중에게 알려졌어요 모든 사람이 이 법문을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도덕기준과 계율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들은 전에 그것들을 몰랐어요 지금 그들을 가르치면 후에 그들은 갈등하고 나쁜 생각을 하고 악업을 만들 겁니다

예를 들면 불교의 많은 것이 비밀이었어요 예를 들면 재가자들은 출가자를 위한 계율을 읽으면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왜지요? 그들은 이 계율을 지킬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이 그것을 읽는 것은 쓸모 없고 갈등하게 만들지요 그들이 계율을 알지만 지킬 수 없으면 고통스러울 겁니다 『석가모니부처는 내가 이런 저런 걸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매일 그렇게 한다』 심한 죄책감이 들겠죠

여러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을 모를 때는 괜찮아요 이제 그것을 알지만 지킬 수 없으면 갈등을 겪을 겁니다 그래서 재가자들은 그것을 읽는 게 허용되지 않았어요 계율이 해로워서가 아니지요 우리가 어떤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이런 계율을 아는 건 우리의 마음의 평화를 방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합니다 예컨대 그들은 물어요 『관음법문이 좋다면 왜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만 가르쳐주는가? 왜 모든 사람에게 교회나 길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않는가? 왜 책을 써서 공개해서 가르치지 않는가? 이게 사람들에게 더 이롭다면 왜 비밀로 하는가?』 이것은 아주 논리적인 질문이지만 많은 약초가 어른을 위한 거지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어른에게 그 약을 준다 해도 그들의 나이와 몸무게에 맞춰서 적절히 줘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처방하면 안되지요 그것은 전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약초는 아이들에게 처방할 수 없어요 좋은 것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함부로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약과 같아요 사람들에게 좋다고 해도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왜 의사가 그렇게 엄한지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엄한 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걸 할 수 없으면 그걸 알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어른이 결혼한 후에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과 같아요 어른에게는 아주 흔하고 정상적이지요 거기에 아무런 비밀이 없어요 해롭지 않아요 우리모두 이걸 알지만 기꺼이 아이들에게 이걸 알게 하나요? 아이들에게 그걸 가르칠 건가요? 아니요 안 그럴 겁니다 이건 아주 논리적이죠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해로울 것입니다 그들은 그걸 다루는 방법을 모르니까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보통 법문을 수행하면 더 쉬울 거라고 설명했어요 그것을 비밀로 간직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만큼 많은 사람에게 수 백 번 공개로 가르칠 수 있죠 이것이 소위 불교의『현교 혹은 열린 가르침』이고 공개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불교에는 『밀교 혹은 비밀의 가르침』이 있어요

내가 가르치는 관음법문은 비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많은 계율이 있어요 그리 많지는 않아요 단지 5개 입니다 5개면 충분해요 아마 여러분에게 충분해요 예를 들면 채식입니다 영적인 비밀도 많이 있어요 예를 들면 30가지가 있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영적 수행에서 해로울 겁니다

진지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그걸 이해하거나 전혀 흥미가 없거나 전적으로 믿지 않고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에 정말로 진지하지 않고 중생을 도우려고 부처가 되는 것에 정말로 진지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것은 여러분이 정말 흥미가 없고 이 계율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해요 그저 멋대로 수행하면 그다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때로는 여러분 자신에게 해롭지요 그래서 이런 법문은 공개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비밀의 가르침』 이라고 불립니다

비밀의 가르침은 출가자의 계율과 입문과 내적인 전수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입문할 때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적인 전수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갑자기 위대한 깨달음의 경험을 할 겁니다 그 날부터 우리는 더욱 더 깨닫게 되고 더욱 더 지혜가 있고 더욱 더 이해력이 생기고 더욱 더 편해지고 많은 다양한 것을 더욱 더 많이 알게 됩니다 그것이 소위 『밀법』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적고 사람들이 그걸 읽어도 그 법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밀법』이지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가르치면 그 사람만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훔칠 수 없고 몰래 엿보고 나서 혼자 배우지 못합니다 내면으로 전수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법문이지요 우리 세상에서처럼 많은 것이 보이지요

예컨대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싶으면 그걸 적어서 ABC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안녕? 날씨가 좋다 날씨가 화창하다 당신은 아름답다』 우리는 그걸 적어서 크게 말할 수 있고 혹은 칠판에 적어서 남들이 그걸 베끼거나 테이프에 녹음해서 나중에 그것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면 그들은 매일 이렇게 공부하고 매일 연습할 수 있어요 언젠가 그들은 말하는 법을 알 겁니다 이것을『세속법』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불법』은 보이지 않는 법문이죠 칠판에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 속에 써 지지요 그걸 우리 지혜 속에 쓸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의 지혜의 스승이어야 합니다 그는 완전히 자신의 지혜를 통제할 수 있죠 그는 자신의 위대한 지혜를 최대한도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는 우리의 지혜와 교감하는 능력을 가질 것이고 그걸 우리의 지혜 안에 쓰며 우리가 지혜를 열고 계발하게 도와 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린 그 또는 그녀를 『깨달은 스승』 또는 득도 한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천국,지옥, 불국토와 물질적인 세계를 갈 수 있어요 우린 그를『신성한 선생』또는 뭇 생명의 아버지라 부르죠 그는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석가모니는 세상을 떠난 뒤 부처가 되었으며 이 힘과 법통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수되었어요 그의 제자 마하가섭은 그 당시에 석가모니 부처처럼 도를 이루었죠 하지만 아난이나 다른 제자들도 부처와 같은 등급에 도달했는지는 모릅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이 힘을 그들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등급은 부처처럼 높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다른 이에게 그 법문을 계속 가르칠 수 있었죠 마치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요 때때로 부모는 매우 유능하고 사업에서 성공적이어서 부모가 죽을 때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아들에게 물려 줍니다 그 아들이 그의 부모만큼은 유능하고 현명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부모가 그에게 권한을 주어서 그를 후계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사장이 됩니다

그의 밑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를 따르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죠 그의 부모가 그를 위해 길을 열어 놓았기에 그가 자기 회사를 경영하는 게 매우 쉽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우리가 성불은 하지 못했어도 때로는 불력에 의지하거나 부처가 우리에게 그 힘을 전해줘서 우리도 진리를 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펴는 데 잘 하기 위해선 두 가지의 가르침을 배워야 해요 하나는 공개적인 가르침이고 다른 건 은밀한 가르침이죠 공개적인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펴는 건 많은 스승들이 강연하고 경전을 설명해줄 때와 같아요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도록 부처의 명호와 만트라를 외우게 하고 불상을 숭배하거나 자신의 죄를 참회하도록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도덕적이게 가르칩니다 이게 열린 가르침인데 이건 이해하기 매우 쉽고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도를 이루었다면 은밀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죠 가장 높은 등급에 이르지 못했다면 스승에게 허락을 받아 은밀한 가르침을 전해야 해요 이건 마치 부모에게 허락을 받아서 회사를 보살피는 것과 같아요 그들은 여러분에게 책임을 위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를 펴더라도 두 방법을 모르면 우린 하나를 놓치는 거예요 공개적인 가르침만을 알고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은밀한 가르침 무형의 가르침 진정한 내면의 지혜를 모른다면 우린 절반 스승에 불과합니다

두 가지 유형의 스승이 있는데,은밀한 가르침을 아는 스승과 공개적인 가르침을 아는 스승이 있죠 은밀한 가르침만을 알고 공개적 가르침은 모른다면 이 역시 문제예요 왜죠? 그건 공개적 가르침이 세속적인 법과 지침을 언급하기 때문이에요 우린 많은 경전을 읽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의 질문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법을 압니다 예를 들어 육조 혜능은 은밀한 가르침만을 알았고 공개적 가르침을 몰랐어요

또 다른 예로 스승 신수는 공개적 가르침은 알았지만 도를 이루진 못했기에 신수는 가장 높은 등급에 이르지 못했죠 그는 모든 경전을 설명할 수 있고 그 모두를 알았지만 은밀한 가르침을 전하는 허락을 얻지 못했어요 그 법통이 그에게 전해지지 않았기에 그의 스승이 했던 것과 같은 은밀한 가르침을 전할 수 없었어요

육조 혜능은 도를 이루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는 경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적 가르침을 몰랐어요 그는 자연적으로 도를 이루었죠 우리가 경전을 읽지 않는다 해도 도를 이루는 건 더 쉽습니다 우린 더 단순하고 순수하니까요 하지만 도를 이룬 후에 여전히 경전을 읽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연구해야 해요 우린 다른 이들을 구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부처가 된 사람은 공개적 가르침을 모르고 경전을 읽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그에게 경전을 읽으면서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개적 가르침만 알고 은밀한 가르침을 모른다면 가끔은 공개적 가르침조차도 이해할 수 없어요 읽기는 하지만 이해를 못하는 거죠 그러므로 은밀한 가르침, 이 무형의 방법이 더 중요합니다

도를 이루는 게 더 중요해요 이건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어요 석가모니 부처처럼 지혜를 갖고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게 더 중요해요 둘 다 안다면 최고죠 둘 다 아는 건 매우 쉬워요 공개적 가르침을 아는 건 더 쉽죠 우린 책과 경전을 읽을 수 있어요 경전을 사서 집에서 그걸 공부할 수 있죠 우린 천천히 그걸 이해할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은밀한 가르침을 알고 싶으면 가서 은밀한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는 선생 경험 있는 스승을 찾아야 해요 마치 경험 있는 영어 선생에게 가듯 이요

그가 우리를 가르치면 둘 다 알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대개 공개적 가르침을 이미 압니다 요즘은 경전을 찾는 게 매우 쉬우니까요 많은 이들이 경전과 책을 인쇄하여 다른 이에게 무료로 주거나 모든 절이 대중에게 개방적이고 무료인 도서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공부하는 게 매우 쉽죠 따라서 오늘날 공개적 가르침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아요

옛날엔 사람들이 공개적 가르침에 접근조차 불가능 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경을 외운 거예요 어떤 이는 먼 곳으로 가서 부처와 함께 공부하곤 했어요 그는 부처가 말한 걸 기록해서 집에 돌아온 후 다른 이들에게 그걸 읽어 주었을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암기했을 거고요 그들은 그걸 함께 암송해서 잊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경을 암송하는 전통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아직 이 전통을 지키는 거죠 이건 매우 아름다운 전통이에요 우린 고귀한 가르침을 배워서 어둡거나 저급한 생각을 갖지 않을 겁니다

경을 외는 건 잡담보단 더 나으니 이건 매우 아름다운 전통이에요 또한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갈 수 없어서 문맹이었어요 그래서 남들이 경을 대신 읽어 주어서 한 문장씩 그걸 외고 기억해야 했어요 매일 이처럼 읽고 외웁니다 그게 옛 전통이에요 그래서 옛날엔 공개적 가르침을 알게 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경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죠 그러면 그 사람이 시간이 있고 자진해서 하고 싶다면 경전을 읽어 주곤 했어요 그들이 경을 암기할 수 있을 때까지요 이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공개적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선생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더라도 그에게 절하고 그를 존경하며 그에게 무릎을 꿇고 공양을 해야 했어요 그래야만 경을 읽어 주었을 거고 안 그럼 가르치지 않았겠죠 해서 이 전통이 오늘날 까지 지켜지는 거예요 오늘날 성직자에게 가서 그와 얘기하거나 라마승을 방문해서 경을 읽고 설명해주길 청하거나 절에 가서 경을 설명해주거나 경을 함께 암송하길 스승에게 청할 때에는 공개적 가르침을 펴는 스승에게 깊은 존경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 역시 매우 훌륭한 전통이에요

남들을 더 많이 존경하면 할수록 에고가 적어지며 오만하지 않게 됩니다 에고가 적을수록 더욱 더 고상하고 현명하며 자유로워지죠 왜냐하면 우린 이 에고와 우릴 묶는 이 작은 자아와 이 민감한 심성 또는 우릴 해치는 열등감이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게 매우 아름다운 전통이에요 모든 전통이 매우 아름답지만 완전함을 달성하고 싶으면 한 가지만 공부해선 안됩니다 대신 공개적이고 은밀한 가르침 둘 다 공부해야 합니다 그게 완전할 거예요

내 말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 가르침을 펴고 있고 많은 절들이 이 고귀한 일을 하고 있어서 그걸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단지 비밀의 가르침을 가르칠 뿐이에요 그건 묘사할 수 없는 도이며 그 방법과 내면의 전달은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아요 난 여러분이 깨닫도록 도와 자신의 진정한 지혜를 깨닫고 자신이 진정 속해있는 곳으로 가고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든 가서 강연을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절반, 잃어버린 절반을 가르치고 내면의 전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승님 우리가 깨달은 뒤 퇴보하기도 하나요?

가끔은 그래요 그리고 가끔은 그렇지 않죠 작은 깨달음만 얻었고 불퇴보살 혹은 아라한이라 불리는 경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떨어집니다 불교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할게요 아라한은 다신 지구로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말해요 불퇴보살은 성불까지 계속 진보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아라한은 그의 경지에 계속 머물며 부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죠

불퇴보살은 퇴보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적어도 아라한의 경지나 불퇴보살의 경지에 이른다면 퇴보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도달 못하면 퇴보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아주 위험하죠 그렇지만 스승에게 충실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우리가 아라한이나 불퇴보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떨어지거나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되진 않을 거에요 우리는 계속해서 죽은 다음에도 진보할 거에요

내가 기독교의 주님을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불교의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겁니다 이것이 나의 믿음과 상충하는 건가요?

아뇨 당신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명상을 더하는 거죠 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관음법문은 불교의 수행법도 아닙니다 우주의 수행법이죠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관음법문을 수행했어요 여러분이 돌아가서 성경을 신중하게 읽는다면 알 거에요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야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요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관음법문과 연결된 부분들을 놓칩니다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어떤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성경에 관음법문과 관련된 내용이 어느 부분에 있단 걸 설명해주는 내 책들을 읽을 수 있어요 수행을 계속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믿으세요 괜찮습니다 난 여러분에게 부처를 믿으라고 하지 않아요 오직 관음법문을 수행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스스로 이해하고 누가 예수 그리스도인지 누가 부처인지 알게 되며 그것 또한 재미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알아야 하는건 아니죠 부처도 조금은 알 수 있어요 다치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 부처, 노자와 공자 중 누가 더 훌륭한가요? 누구의 가르침이 더 나은가요?

당신의 종교가 가장 좋아요 그리고 당신의 종교의 지도자가 가장 훌륭합니다 당신의 종교의 지도자가 가장 높고 당신의 종교가 최고 입니다 그보다 나은 건 없어요 만약 모두가 진정한 천주교인이 되었다면 세상은 오래 전에 평화로워졌겠죠 만약 모두가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대로 자비와 사랑을 실천했다면 세상은 오래 전에 평화로워졌을 겁니다

그러나 우린 좋은 천주교인이나 불교신자 가 아니었지요 여태 어떤 종교가 더 좋은지 계속해서 얘길 합니다 우리의 좋지 않은 거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종교가 다 좋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뭘 가르치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뭘 가르치죠?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너의 나라를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자비와 동정심을 가져라 거짓을 말하지 말라 남을 험담하지 말라 허튼 소리를 하지 말라 남을 비난하지 말라 이건 불교의 계율이 아닌가요? 그들은 같습니다

무엇이 가피력인가요? 축복음식을 먹으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가피력이란 이런 것과 같아요 높이 깨달은 존재의 에너지 영역은 넓고 막대합니다 그리고 그의 힘은 매우 강해서 그게 무엇이든 그가 만지는 건 거기에 남겨진 그의 고귀한 에너지를 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음식을 먹었을 때 좀 더 고귀해지고 좀 더 깨닫게 되며 우리의 삶은 더욱 축복받게 됩니다 우리의 축복의 힘으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재앙이 좀 덜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수행할 수 없죠 그래서 가끔 부처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부처와 얘기를 나누고 가까이 가서 부처를 만져보려 오는 겁니다 부처는 우리에게 어떤 등급으로 작용해요 백단향처럼 말입니다 숲에 백단향 나무가 오직 한 그루만 있어도 그 근처의 모든 숲에서 백단향 나무 향기가 날 거예요 어떤 종류의 나무든지 상관없이 백단향 나무의 영향을 받아서 매우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겁니다 이처럼 크게 깨달은 존재는 높은 덕과 매우 고귀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그의 이상은 이 세상 너머에 있으며 그의 힘은 삼계를 초월해 있어요 우리가 그와 접촉하게 되면 조금은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마치 자석과 같이 바늘을 끌어당깁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 다음 그 바늘도 자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바늘을 끌어당기게 되죠 그럼 커다란 바늘 다발을 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영적 수행자의 축복을 받게 되면 약간의 복과 고귀한 성품을 갖게 될 겁니다

누군가 호랑이로 태어나면 다른 동물을 먹으려고 죽여야 해요 업이 더 무거워져서 구원받을 수 없게 되는 겁니까? 그도 구해질 수 있죠 하지만 더 어렵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은 나쁜 업장에 때문에 호랑이에 의해 죽었음을 명심하세요 호랑이 탓만은 아니죠 그래서 어느 날 서로의 업을 갚고 난 후에 그들은 평등해져서 호랑이는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아마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호랑이처럼 아주 잔인한 겁니다 방금 호랑이였다가 환생했을 거예요

부처는 무한한 신통을 가졌음에도 어째서 독이든 버섯을 실수로 먹고 죽게 된 겁니까?

부처는 실수로 먹지 않았어요 진작부터 알고 있었죠 그걸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서 제자들이 먹지 못하게 하고n자기만 먹었어요 그는 먹기 전에 이미 열반에 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석 달 뒤에 죽었어요,그렇죠? 그는 먹기 전에 분명히 말했어요 그리고 제자들이 모두 돌아와 유언을 듣도록 불렀어요 그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먹은 겁니다 독을 먹지 않았어도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역시 죽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는 그 사람의 공양을 받아서 그 사람이 복을 받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버섯을 먹었던 겁니다 그가 먹어야 해서 먹은 게 아닙니다 그가 먹든 안 먹든 곧 죽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에 먹었다고 달라질게 없죠 예를 들면 밀라레빠는 티베트의 큰 스승이었지요 그는 독을 마시기 전에 이미 알았어요 아주 분명히 말했죠 하지만 시간이 다 돼서 마셔야 한다고 했어요 그를 독살하려는 사람에게 그의 힘을 알게 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마신 겁니다 그것도 좋은 일이죠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에 박히기 전에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분명히 밝혀서 모두 알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됐기 때문에 해야할 것을 한 것 뿐입니다 피할 수 없었어요

『선』이 뭡니까?

『선』은 언어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물어도 설명을 못합니다 『선』이 뭔지 알고 싶다면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스승님 저는 지금 채식을 배우고 있는 중인데 평생 동안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섭니다 만일 제가 마침내 채식주의자가 된 다음 포모사(대만)을 찾아가서 관음법문을 배워도 됩니까?

좋아요 먼저 해보세요 좋습니다!정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채식이 이로운 것과 육식이 해로운 것은 물론 동물에게 해롭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육식을 못할 겁니다

스승님『보리』 가 뭐지요?

불교에서『보리』란 『보리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보리』는 범어로 지혜나 현명한 지식 또는 지력을 뜻합니다 보리심을 갖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수행을 하겠다고 서원한다는 뜻이죠 관음 법문을 수행하듯이요 이런『보리』와 지혜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내기로 서원하는 겁니다 보리심을 갖는 사람은 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며 정말로 수행을 하고 지혜를 얻고 부처가 되어서 중생을 구제하며 생사윤회를 초월 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곧바로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채식을 시작하고 우주의 신비를 공부하며 깨달은 스승을 찾으면 부처가 되는 비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깨달은 스승을 찾아가서 스승의 계율과 수행법을 배웁니다 그것이 보리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