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궁극의 법문』 칭하이 무상사 강연
홍콩 1989년 7월 7일

청중들을 대신해서 모든 분들의 편의를 도모하느라 수고하신 스태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연을 들을 때 편안하게 들으세요 너무 심각하지 말고요 함께 만난 이 시간을 즐깁시다 이 세상에는 정말로 심각할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물질적인 형상을 한 것은 모두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일단 우리 자신의 부처의 눈이 열리면 그 물질적인 형상을 보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존재하고 우린 여전히 볼 수 있지만 때로 그들의 물질적 형상을 안 봅니다 예를 들면 연단에서 강연하는 사람은 없고 빛의 바다만 보일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환상 속에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합니다 환상이 없다면 배울 필요가 없지요 오늘 여러분에게 불교와 천주교 및 다른 종교들의 관점에서 본 영적 수행과 우리 자신의 인격과 도덕을 훈련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살아있었을 때 그가 많은 명상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명상이 뭘까요? 그것은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집중력을 흩어지게 하는 대신 다시 되돌리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명상입니다

왜 명상법이 그렇게 많을까요? 예컨대 석가모니 부처는 사람들에게 육체의 불결함을 명상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 몸 안의 더럽고 불순하고 조잡하고 냄새나는 지저분한 부분을 떠올리는 거죠 이것도 명상법 중의 하나입니다 또 다른 명상법은 『해골』을 관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자면 명상할 때 다리를 접든 펴든 조용히 앉아있는 겁니다 조용히 앉아서 몸이 해골이 되는 상상을 하는게 핵심입니다 그렇게 성공하면 몸은 더이상 보이지 않고 해골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도 해골로 보입니다 그러면 육체적 욕망이 사라지고 그 육욕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호흡을 관한다』라고 불리는 명상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흡이 무상하다는 걸 깨닫는 겁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잖아요 그 외에도 몸의 변화와 감각이나 심장 박동 또는 혈액순환 등을 관하는 것과 같은 여러가지 명상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가모니 부처는 『관음 법문』이라는 명상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부처들이 수행한 명상법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오직 이 법문을 수행해야만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누구든 부처가 되려면 반드시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법문은 또한 수천억년 전 관음 법문을 수행해서 성불한 관음 보살이 수행했던 법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석가모니 부처가 왜 그렇게 많은 법문을 가르쳤는지 말해보죠 그것은 사람들 마다 필요로하는 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부처가 되길 원하는 대신 건강이나 집중력이 좀 더 나아지는 것만 바랍니다 그러면 사업이 잘 되고 공부를 잘하거나 세상사를 잘 해나가겠죠 그런 경우에는 물론 석가모니 부처는 성불하는 법문을 가르치지 않고 호흡이나 해골 또는 부정한 곳을 관하는 법문만 가르쳤습니다

해골 명상법은 육체적인 욕망이 강해서 그것을 조절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일단 해골을 보면 이성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수행하고 모든 여자들이 해골로 변한 걸 봤다면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질 겁니다 부정한 것을 관하는 명상법도 육욕이 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육체적인 욕망에 의해 지나치게 지배된 나머지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고상한 생각은 커녕 욕망이 너무 강해서 일상 업무나 가족의 평화에 방해가 되어서 석가모니 부처에게 육욕을 다스릴 법문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는 누구나 수행하기 쉽고 몸도 마음도 하는 일도 그리고 식습관도 바꿀 필요가 없는 이런 법문들을 가르쳤던 겁니다 잠시만 호흡법을 수행하고 부정한 곳을 관해도 최고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음이 편해지고 육체적 욕망이나 정욕도 줄어들고 IQ도 높아집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돼요,전혀 도움이 안 되는게 아니에요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법문이 또 있는데 비교적 수행하기도 쉽고 우리의 영성과 지능도 향상시켜 주는 법문이 바로 기도입니다 경전을 낭송하고 부처의 명호를 외며 절을 하고 회개를 하거나 고해성사를 하고 교회에 가서 찬송을 하거나 신이나 부처에게 도움을 청할 때도 일종의 수행을 하는 겁니다 아주 쉬워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쉬운 또 다른 방법은 주문을 외는 겁니다 사원에 갈 필요도 없어요 집에서 외울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든 외울 수 있습니다

불교 수행에서 가장 유명한 주문이 『옴마니 반매흠』이죠 여러분 아세요? 가장 인기있는 법문입니다 또 다른 주문은 『나무아미타불』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 두 법문을 좋아하죠 요즘은 또 다른게 있어요 일련종이란 게 있는데 『나모 연화경』을 암송하는 겁니다 성구나 주문 또는 명호를 외는 것은 집중도 잘 되고 편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법문들을 수행하기 좋아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옴마니반매흠』을 외지 않아요 뭘 외는지 아세요? 『옴』을 욉니다 아마도 인도가 더워서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쉽게 지치니까 긴 구절 보다는 간단히『옴』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내가 수년 전 양력으로 6월 여름날에 인도에 있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가 성불했다는 곳을 가보려고 『보리 사원』에 순례를 간 적이 있었는데 걸을 수가 없었어요 걷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빨리 걸으라고 해도 기운이 떨어진 것 처럼 이렇게 걸었어요 인도 출신이 아니면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해요 그러니 기운이 적게 드는『옴』만 왼다고 탓할 수 없죠 많은 사람들이 『옴』만 외우고도 큰 이득을 봅니다 IQ 도 좋아지고 지혜도 생기고 건강도 좋아지고 신통력도 생기고 기운도 더 납니다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이득을 봅니다

천주교 신자들도 성경에 쓰인 것을 수행하면 많은 이득을 봅니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십계를 지킵니다 살생,도적질, 간음,거짓말 등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매일 신의 은총을 구합니다 매일 같이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지능도 높아지고 이 세상을 초월한 신통력이라는 것도 얻을수 있어요

왜 그렇게 많은 수행법이 있을까요? 불교의 법화경에는 관음 보살의 품성을 묘사해 놓은 『보문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불이 그녀의 얘기를 설명한 거에요 그는 그녀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을 때 그녀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받을 거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해탈을 구한게 아니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뭘 구했을까요? 아들을 원하거나 아름다워지고 돈이나 편안한 삶을 구했죠 그렇죠? 그런 걸 구하니 그런 걸 가지겠죠 그래서『관음보살』을 좋아하는 겁니다 뭐든 다 주니까요

그런데 그녀에게 구하지 않아도 명상을 하고 자신의 가피력과 지혜를 쓰면 그런 걸 가질수 있어요 결국엔 관음보살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릅니다 그때는 그녀의 도움을 청하는 대신 우리가 그녀가 되어서 똑같은 힘과 똑같은 신통력,똑같은 자비,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똑같은 사랑을 갖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비가 없어서 갖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특히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수행하는 것인데,사람들에게 자비를 관하도록 가르치는 법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이렇게 앉아 눈을 감은 다음에 여러분의 오른쪽은 어떤 친구들이라고 또 여러분의 왼쪽은 어떤 적들이라고 상상하고,여러분의 앞쪽은 친척들이고 여러분의 뒷쪽은 죽은 이들이라고 상상합니다 정확히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요 앞쪽과 뒷쪽,왼쪽과 오른쪽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지요 문제 없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다른 중생들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좋은 인연이 있는 중생들과 도움이 되는 중생들 우리를 사랑하거나 우리와 싸우는 중생들 우리와 의견 차이가 있고 우릴 좋아하지 않는 이들을 말이지요 물론,그들 중 몇몇은 우리의 친척이고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온갖 중생을 상상하며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 선한 소망을 보냅니다

어느 정도 수행한 뒤 사랑이 많아질 겁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법문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중생들은 다른 요구와 배경을 가지니까요 그들은 다른 이해수준 다른 필요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 법문을 평생 할 순 없다고 난 생각해요 우리는 내내 자비심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생 호흡에 집중할 수 없어요 또 우리는 뛰어다니며 평생 사람들의 해골만 볼 수도 없습니다

전에 산이 많은 숲에서 해골에 집중하는 법문을 수행하던 여승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범죄자 둘이 그녀의 절을 지나다가 도망갔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쫓다가 여승이 거기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물었습니다 『두 죄인이 여길 뛰어 가는 걸 보셨나요?』 그 스님은 한참 생각한 뒤에 답했어요 『아뇨,못 봤어요』 경찰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확실합니까? 정말 못 보셨나요?』 그 스님이 말했어요 『아뇨! 난 명상 중에 두 해골들이 뛰어서 가는 것을 봤어요』

그 당시,그녀는 이 법문 수행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를 종일 또는 평생 해골로 본다면,세상은 멋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해골 사이에서 살 수 없습니다 너무 지루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성공하면 나아가 다른 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게 더 좋지요

석가모니 부처가 시각화와 호흡 명상 해골 명상 육신의 불결한 것에 대한 명상을 포함한 많은 명상법을 가르쳤지만 그는 또한 완벽한 법문인 관음법문을 가르쳤습니다 가장 유명한 능엄경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귀를 내면으로 돌려 네 자신의 불성을 들어라』 『귀를 내면으로 돌려 네 불성을 들어라』자성을 들으라고 석가모니 부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왜 우리 자신의 본성을 들어야하죠? 왜 그게 들릴까요? 어떤 본성일까요? 그가 들으라고 했다면 분명 소리가 있습니다 듣는 건 듣는 거예요

그럼 왜 우리 본성엔 소리가 있을까요? 우리 자신의 본성은 소리가 아니지만 일종의 에너지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처음에는 소리도 빛도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롭고 고요할 뿐이지만 그것이 이 세상의 거친 분위기와 가까워지면 그것은 소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과 다른 종류의 소리지요 인간의 말로 그런 것을 묘사할 수는 없어서 우린 임시로 그것을 일종의 소리와 진동이라고 부릅니다

평범한 인간의 관점에서,그것은 일종의 소리지만 진짜 소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귀로 그걸 듣지 않으니까요 평범한 인간의 경험으로, 그것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말했어요 『내면으로 돌려 참 본성을 들어라』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뭘까요? 본래,우리는 외부의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귀는 외부의 소음과 사람들의 말소리,외부 음악을 듣습니다 밖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떨어지지요 모든 것이 밖에서 옵니다,그래서 우린 대개 밖에 관심을 갖고 소리를 듣습니다 그럼 이제『내면으로 향해서 듣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우린 내면을 듣습니다 그래서『내면으로 향해서 듣는 것』이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뭘까요?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이 가슴이 아니라 본래 자아입니다 거기서 우리 육신의 자아가 온 곳이며 돌아갈 곳입니다 우리의 본래 자아가 우리의 진짜 본성이죠

예를 들어서 이 컵의 본래 자아는 플라스틱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플라스틱으로 그게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그 본성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원래 본성은 다릅니다 이 수건의 본래 자아는 무엇일까요? 면입니다 네,맞아요 그것이 빨갛고 녹색으로,검고 희게 염색됐든 간에 또 크던 작던 간에 그것은 면입니다 그것을 분해하면 다시 면이 될 것입니다 비슷하게 우리의 진짜 본성은 대 자비 대 평화 대 지혜입니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있고 뭐든 가능합니다 추가 도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본성을 듣지 못해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본래 우리는 누구일까 우린 어디서 왔을까?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의 답을 알고 싶다면 『우리 본성을 듣고자 내면으로 가야』하죠 내면의 진짜 본성을 더 많이 들을수록 더 많은 지혜가 개발되며 우리가 누군지 더 많이 이해하고,우리의 능력과 엄청난 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짜 본성을 듣고자 내면으로 향해야 하는 겁니다,언젠가 최상의 존재가 되어서 우리의 최고 지위를 알 때까지 말입니다 그 때를 불교 용어로 불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비슷하게,영어로 말하고 싶고 영어권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매일 조금씩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많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집에서 약간의 영어만 말할 수 있지요 『안녕하세요? 전 미스터 왕입니다 이것은 내 손입니다 이것은 꽃입니다』 몇몇 단어일 뿐이지만 그들은 이미 중국어가 아닌 영어처럼 들리죠 하지만 적어도 우린 영어를 좀 압니다 그런 뒤 더 많이 배워서 영어를 나중에 더 많이 안다면,우리는 영어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과 같이 됩니다 우리는 영어책을 읽을 수 있고 영어권 사람들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부처나 석가모니 부처 노자,공자,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한다면 과거의 스승들처럼 위대하게 되고 싶다면 그들이 했던 것과 같은 걸 배워야 합니다 그럼 그들과 소통할 이 언어를 쓸 수 있지요 우리가 더 많이 소통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나아집니다 결국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그들에 대한 전부를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린 그들이 됩니다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나중에,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적어서 내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린 자신에게 왜 영적 수행이 필요한지 물어야 해요 매일 먹고 자고 일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왜 우리의 진짜 본성을 듣고자 내면으로 향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먹고 자고,일만 한다면 엄청난 능력의 낭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두 삶을 살 수 있어요 하나는 덧없고 제한된,고통과 근심으로 가득한 삶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롭고,강력하며 놀라운 삶입니다 네,우리 인간은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우리는 인간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의 삶인 위대하고 무한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부처라면 감정이나 식욕을 잃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인간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먹고,자고 물의 온도를 맛보거나 사탕의 단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모든 걸 알지요 여전히 인간임을 즐기며 속세의 과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 없어요 여러분이 사업가라면 계속 여러분의 사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은 부처가 됐다는 것 뿐이지요 부처면서 동시에 여러분은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잃지 않지요 직업이 두 개인 겁니다

내가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이들이 비밀 스파이란 걸 아나요? 난 들어봤어요 007영화를 보면 스파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걸 알 것입니다 그는 자국과 타국의 국가 기밀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택시 운전사처럼 또는 사업가처럼 보입니다 그는 사업하는 법을 압니다 그는 공장 같은 것을 열고 그의 수입이나 지출이 얼마나 될 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할 일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경영자도 사장도 다 될수있죠 허나 그의 진짜 일은 더 중요한 것으로 자기 조국과 국민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 일은 더욱 중요하고 위대하며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권위를 줍니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그를 존경하지요 장관들을 포함해 모두가 그를 존경해요 경찰은 감히 그를 체포하지 못하거나 어떻게 하지 못하죠 그는 어디든지 다닐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제한된 곳도 다 접근 가능한 암호가 있습니다 그는 남들이 못하는 놀라운 일들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국방 기밀도 많이 알고 있지요 일반인들이 모르는 비밀을 말입니다 그는 남들이 갈 수 없는 수많은 회의나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성불한 사람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소위 최고의 지능과 지혜가 있고 여전히 세상에서 일을 계속 하면서 자신의 조국과 가족을 돌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공식적인 그의 다른 직업은 중생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는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서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가서 영혼을 천국에 데려올수 있죠 천국에 있는 영혼을 더 높은 불국토로 끌어 올릴 수 있고요 그건 그의 일이죠 허나 세속적 의무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존재는 큰 권한이 있어서 세속적인 쾌락이나 즐기고 매일 일이나 하면서 백년을 살다가 죽으면서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반인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인간 존재의 최상의 목적이 위대한 지혜를 얻고 깨닫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 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압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운명에 굴복하여 소중한 인생 백년을 낭비하는 대신에요 많은 이들이 묻지요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게 고귀하거나 비천하게 운명지어졌다고요 그럼 영적인 수행이 무슨 소용인가요? 수행으로 달라지는게 뭐가 있습니까?』 난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난 이렇게 말했었죠 세속적인 의무를 다하면서 함께 다른 권리도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위대한 지혜를 획득하고 내면의 보물을 발견하기만 하면 많은 일을 할수있죠 심지어 우리가 택시 기사라서 힘들게 살면서 하루하루 직접 생계를 번다고 해도 여전히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서 남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천백억 화신과 막대한 영적 힘은 우리가 택시를 운전하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가난하면서 동시에 고귀하고 막강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인도에 약 5백년 전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까비르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불교도가 아니었어요 일단 사람이 성불하면 그가 어떤 종교에 속하는 지는 아무상관 없습니다,왜냐하면 우리의 불성이 똑같으니까요 카톨릭 신자의 불성은 불교 신자의 불성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만일 내면을 본다면 그들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불하거나 도를 이루고 최고의 등급을 이룬 후에도 그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합니다 그는 천을 짜는 일을 하면서 돈을 아주 조금씩 벌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했어도 그는 여전히 수많은 화신과 위대한 영적 힘을 가지고 있었죠 그는 천국과 지옥을 여행할 수 있었고 인간과 다른 존재를 가르쳤습니다

사회적 지위는 초라했지만 내면의 등급과는 상관없었죠 그의 가난한 삶은 운명이나 정해진 업이었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위인 최고의 부처를 성취했습니다 그것은 부지런히 수행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부자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착하든 나쁘든 상관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늘상 업장이나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수행할 수 있겠어요? 인간은 계속 인간이고 부처들만 계속 부처일 테고 희망도 없겠지요 아뇨 희망이 있어요 희망이 있으니까요 석가모니부처는 고난을 겪었고 49년간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삶을 바꾸기 위해 이 법문을 수행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삶은 변할 수 있으니까요 법문은 효과가 있고 희망이 있어요 그런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참으며 사람들에게 위대지고 믿을 수 없는 힘을 우리 내면에 감춰진 보물을 찾는 법을 가르치면서 돌아다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