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신비한 창조의 법칙』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 이란 1989년3월31일

이제 가장 존경하는 마음과 열렬한 박수로 오늘 강연을 해주실 칭하이 무상사님을 환영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방금 배웠어요 모두들 어떠세요?(좋습니다) 개와 고양이들도 잘있나요? 그게 내가 아는 포모사 (대만어)말이에요 포모사말을 배우고 싶은데 배울 시간이 충분하고 지혜를 얻는 것은 부처님 은총에 달렸어요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도덕을 논하는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주 드문 일이에요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정부 관료들은 매우 바쁩니다 이 연회에서 저 연회로 뛰어다녀야하고 개회식마다 참석해야 합니다

그들은 많은 중요한 국사로 바쁩니다 나는 정부 관료가 될수 없어요 그들은 너무 바쁘거든요 좋아요 어제 우리 강연이 잘된 것 같았어요 모두들 나를 이해하는 것같아 보였고 나도 메시지를 잘 이해시킨 것 같아요 오늘 계속해서 논해 봅시다 공개 강연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쉬워 보이지만 돌볼 것도 많고 극복할 장애도 많아요 우리 동료 입문자들이 아주 열심히 일해서 완벽한 강연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제자들을 자주 칭찬하지 않지만 오늘은 이기회를 빌어 청중들을 대신해 그들의 성실함과 열의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이 세상 너머의 일들을 얘기해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세상에 부처의 축복을 전하기위해 육신을 가진 깨달은 스승을 찾아야하는지 내게 묻습니다

부처는 무소부재하므로 그에게 기도해서 축복을 받을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이 세상에 살고있는 소위 깨달은 스승이 필요할까요?

나도 부처가 우리를 직접 축복하고 깨달음과 불성,열반 신의 왕국,도 혹은 우리가 원하는 지복의 경지가 뭐든 얻게해 준다면 더 좋겠어요 하지만 창조주는 이렇게 안배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서 이 세상에서는 아이를 원하면 결혼을 해야합니다 창조주가 난데없이 아이를 만들어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지 않아요 채소와 쌀을 구하려면 먼저 씨를 심어야합니다 씨를 심은 후에도 농부가 잘 돌봐야지만 좋은 수확을 거둘수 있습니다

누가 창조의 법칙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합니다 이 창조의 법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주 혼란스러울 겁니다 뭐든 저마다 원하는걸 구할 거에요 무지로 인해 우리 인간의 두뇌는 때로 잘못된 것을 구하며 세상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내 생각에는 이 법칙도 좋아요

예컨대 지렁이는 굳고 메마른 산성 흙을 기름진 흙으로 바꾸는게 전공입니다 왜 창조주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왜 그런지 몰라요 사실,지렁이 덕택에 우린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갖습니다 그래서 지렁이는 인간 처럼 어떤 기능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만들려면 남편과 아내가 필요합니다 부처가 마술을 부리거나 『옴마니반메흠』을 외워 아이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들이 불성을 갖고 있다고 들어왔지만 이것이 어째서 그런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모두가 신의 자녀라고 들었지만 어떻게 그런지 모릅니다 우리는 천부적인 창조력이 있기 때문에 신의 자녀인 겁니다 그걸 본적이 있나요?

우리가 없이는 인간도 없고 자녀도 없습니다 부처와 보살들도 태어날 수가 없어요 심지어 부처와 보살들도 인간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모든 존재들은 자연스런 출산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 출산의 욕구는 신의 힘, 사랑, 혹은 부처의 자비입니다 신은 모든 중생들이 살아서 이 행성 전체에 퍼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 혼자서 신과 교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실을 받아 들이기가 참 힘들지만 그게 창조법칙입니다 우리가 들은 바로 모든 아이들이 신의 자녀이긴해도 여전히 우리를 통해서 태어나야 합니다 똑같은 땅에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과일이나 꽃들을 많이 심을수 있습니다

똑같은 땅에서도 꽃과 나무들은 저마다 필요한 양분을 취하고 각자 고유의 다양한 과일과 꽃들을 만들어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같은 신으로부터 태어났지만 각자 얼굴이 다릅니다 꽃과 과일과 나무 처럼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양분을 취한겁니다 이 양분이 바로 불교 용어로 업입니다 업이 뭘까요? 전생이나 이생에 했던 것이 뭐든 일종의 자장으로 변해 그와 비슷한 다른 품성들을 우리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우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세 생생 수행을 해야 부처나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불교경전에서 불성을 얻으려면 수억년을 수행해야 한다고 읽었습니다 완벽해지고 모두 갖추려면 여러가지 많은 품성과 기능을 습득해야하기 때문일 거에요 맞아요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나의 주제인 『즉각 개오』 『일세 해탈』과 되어 보이죠 그걸 얻으려면 억겁을 기다려야 하지 않나요? 그래요 안그래요? 왜 그렇지요? 누가 그렇다고 했죠?

깨달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요 깨달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고요?

깨달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세세 생생 윤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스승을 만나면 일세해탈을 할 수 있나요?(네) 수억겁을 거치지 않아도 되나요?

아니라고 한 사람들은 뭐죠?왜 아니죠?

바로 이 자리에 깨달은 스승이 있으니까요

농담이겠죠 마치 경전을 외우듯 말하는군요 나무헤레다나 두오라예예 나무아비.. 거기엔 지혜가 없어요 그래요! 부처가 되려면 수억겁을 지내야 됩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나는 『즉각 개오』와 『일세 해탈』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때가 되면 즉각 개오를 얻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이미 수억겁을 수행해 왔던 겁니다 안그러면 우리가 수억겁을 지나왔는지 때가 왔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깨달은 스승들은 세세생생 여기에 왔어요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부처 노자,장자,공자 묵자 같은 많은 ‘자’들 말입니다 왜 이 세상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할까요 아무도 해탈 못한것 처럼요 해탈한 사람이 있죠! 그런데 극 소수에요

우리는 소위 『육도』안에서 계속 윤회하고 있어요 『육도』는 불교 용어에요 이상하게도 석가모니 부처는 뭐든 숫자를 붙이길 좋아했어요 육도,육신통 팔정도 네가지 서원 네가지 진리 같은 것 말이에요 그리고 십지보살과 팔지보살도 있어요 모든게 숫자가 붙었죠 난 숫자를 않써요 자,육도란 뭘까요?

육도란 이렇습니다 천국에 가면 천사가 됩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떨어져서 인간이나 동물, 아귀가 되거나 지옥으로 갑니다 이 육도 안에서는 부처가 되지 못하고 윤회의 고리를 초월하지 못합니다 육도는 모두 삼계 안에 있습니다 삼계가 뭐지요? 이 세상 외에 우리가 오르거나 내려올 수 있는 세가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허나 오르내리기도 아주 어려워요 그 삼계를 보러 가는건 쉽지 않아요 그 세계를 보려면 영적으로 수행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선 수행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부처의 명호를 외나?』라는 질문을 해서 2세계를 얻기도 합니다 선 수수께끼에 집중함으로써 우리 또한 2세계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요가를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1세계 2세계,가장 높이는 3세계에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지요 더 높이는 못 갑니다 더 높이 가려면 더 강력한 법문 즉각 깨닫게 하는 법문을 행해야 합니다 그게 관음법문이지요

카오슝에 가고자 우린 오토바이나 차를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펑후에 가려면 보트를 타야 합니다 보다 먼 미국에 가려면,우리는 더 빠른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3계를 초월하고자 한다면,우리는 이 3계 너머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는 수단을 써야 합니다 세상의 언어로 질문을 하는 것으로는 그렇게 못합니다 세상의 언어가 얼마나 효율적이든 간에 그건 아직 여기 소속입니다 자동차가 얼마나 빠르든 간에 그건 차량입니다 차는 대양을 건너거나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영적 수행에는 수많은 법문이 있습니다

어제 난 여러분에게 집에서 수행하는 몇몇 법문을 소개했습니다 여러분이 좋다면요 내가 가르쳐준 건 몇몇은 마음의 평안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수많은 법문이 있지만 내가 원한다고 해도 그들 모두 여러분에게 가르치진 못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법문을 배우길 원하든 간에 난 가르쳐줄 수 있어요 하지만 몇몇 법문은 다른 법문에 비해 더 위험합니다 어제 가르쳤던 법문은 가장 안전한 겁니다

다른 법문들은 스승이 매일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한 안 하는게 더 나아요 그렇지 않으면 얼마간 수행한 뒤에 여러분은 불안하고 몸이 아프며 모든 게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법문을 안 가르치는 겁니다 많은 현대 인도인들이 여전히 아주 복잡한 법문을 수행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스승을 만나거나 복잡한 법문을 할 운명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예를 들면 이렇게 합니다,아주 긴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을 그들은 씁니다 모기장으로 사용하는 그런 부드러운 천을 말이에요 그런 천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그들은 5미터 정도의 아주 긴 조각을 가지고 씁니다 천은 좁고 그리 넓지 않은데 그들은 그걸 맙니다 그런 다음 뭘할까요? 여러분 아세요? 통째로 그걸 삽킵니다 그들은 약간의 물과 함께 한쪽 끝만 남기고 5미터 길이의 천을 전부 삼킵니다 그런 다음 천천히 그걸 끄집어 내지요 그걸 삼킨 뒤에 그들은 배를 이용해 일종의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위와 장을 청소하기 위해 배를 흔듭니다 끔찍하지요

그런 수행을 하기를 원해요? (아뇨) 싫어요? (아파요) 너무 아프다고요? 왜 그게 아프나요? 그건 맛이 아주 좋아요 그건 평범하지 않지요 우리가 천을 먹을 때 남들은 밥을 먹습니다 좋아요,이것 외에 다른 이상한 법문이 많이 있습니다 감히 말할 수 없어요 듣기가 그리 좋지 않거든요 때때로 그들은 그들의 콧속에 천을 집어 넣습니다 코를 청소하기 위해서 코에 천을 집어넣고 천천히 그걸 빼지요 그들은 모든 걸 청소하려고 합니다 그게 그들의 악업을 씻어줄 거라 여기지요

하지만 천 조각으로 악업을 씻을 수 있다고 난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공덕과 미덕 친절과 영적 수행의 힘으로 씻겨집니다 악업은 눈에 안 보이고 마음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마음으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인도에는 히말라야에 숨어있는 영적 수행자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아주 춥고 높은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달에 한 번 내려가거나 누군가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은 거기서 성실히 수행합니다 그들은 산 밑으로 내려가지 않아요 그런 곳에 가려면 걸어가거나 경공법을 써서 날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날듯이 걷습니다,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또 여러분은 그런 곳에 가려면 짐을 못 들고 갑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열기를 단전에서 몸 전체로 보내는 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거나 얇은 옷 하나만 입으면 됩니다 그때만 여러분은 거기 오를 수 있어요 거긴 너무 멀어서 많이 못 가져 갑니다 거긴 눈덮인 산이라서 오토바이도 작동이 안 됩니다

걷는 동안 주의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주 깊은 갠지스 강에 빠질 겁니다 그러면 『왕생주』를 외기 전에 여러분은 먼지가 될 겁니다 그런 곳에서 살려면 수많은 다른 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밀교의 유명한 스승인 밀라레빠가 수많은 법문을 행했던 겁니다 히말라야에서 살기 위해서 말이지요

예를 들어 그는 날 수 있으려고 경공법을 수행했고 단전에서 몸 전체로 열을 보내고자 몸을 따뜻하게 하는 법문을 행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입을 옷이 없었거든요 때로는 3개월 동안 눈사태로 길이 막혀서 아무도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럼 음식을 구걸할 사람이 없어서 3,4개월 동안 그는 음식 없이 지냈습니다

그 시대에는 편리한 운송 수단이나 안락한 생활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수많은 법문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우리가 여전히 그런 법문들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몸이 너무 약하거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어서 그렇게 멀리 걷고 그렇게 많은 복잡한 법문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극소수만이 히말라야의 날씨를 견딜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에서 조리된 음식을 못 구합니다 내가 거기 있었을 때 요리를 못했습니다 사실 가능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어요 왜냐하면 거기는 기압이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음식이 언 채로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음식과 내가 서로 보고만 있고 물은 끓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날로 먹었어요 난 지쳐서 조리를 포기했지요 난 갠지스 강에 가서 음식을 씻어서 먹었어요 그래도 맛은 좋았어요

히말라야가 아주 춥다고 해도 여전히 거기엔 채소가 있어요 상상이 되나요? 시금치 같은 일종의 야생채소가 있지요 그게 이름이 뭐지요? 빨간 꽃이 달린 그런 야생채소를 뜯어올 수 있는데 그걸 국수와 함께 조리할 수 있었어요 전에 내가 요리했는데 그건 포모사에 많이 있는 야생채소처럼 생겼어요 그게 거기서 자랄 수 있고,그걸 먹을 수 있어서 놀랐어요 하지만 그걸 너무 많이 먹으면 채소처럼 녹색으로 변하며 녹색 머리칼이 자랄 겁니다

그래서 밀라레빠가 히말라야에서 살았을 때 그의 몸에 녹색 머리칼이 자란 거죠 사람들은 그를 보면 그에게『푸타』냐고 물었지요 『푸타』는 티벳어로 유령을 뜻합니다 『유령인가요?』 그는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그 손님은 물었어요 『당신이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 녹색 머리칼을 가졌나요?』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드니까요 다른 이유는 우리의 영혼과 관련 있어요 이건 육식과 관련되어 있지요

우리 영혼에 관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는 됩니다 모두 이걸 들어봤자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왜 모두들 부처처럼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럼 그는 부처가 될 수 있는데요 아주 간단하지요? 집에 가서 여러분이 그렇게 해보세요 매일 생각하는 거예요 『난 부처다 난 부처다 부처다,부처다』 여러분은 부처가 될까요? (예) 정말로요? (예) 여러분 모두 부처가 됐나요? 충분히 안 외웠지요 그래요? 그럼 계속하세요

깨달은 스승 없이 그걸 외우는 건 소용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루 종일 아미타불을 외우지만 그들이 아미타불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처의 등급에 이른 스승을 만난다면 그 스승이 우리더러 그렇게 하도록 했다면 그건 유용합니다 그게 어떻게 그리 이상하겠어요? 여러분에게 말했지만 많이들 내게 묻습니다

왜 그들이 법맥을 얻으려면 깨달은 스승을 만나야 하냐고요 왜 부처는 우리에게 그걸 안 전했을까요? 왜 무소부재한 관음보살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고 인간의 몸을 통해 대신 일을 할까요? 여기 답이 있습니다 관음보살이 무소부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앞에 있어도 우린 보지 못합니다 우리 생각과 진동이 너무 거칠어서 그녀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관음보살 몸의 진동은 정말 미묘해서 우리가 볼 수도없죠 요가난다의 자서전인 어떤 요가 수행자의 전기라는 책이 있죠 여러분 요가난다 알아요? 네,맞아요 그는 인도의 유명한 요가 수행자잖아요 그는 아주 높은 영적 수행을 이뤘죠 그의 스승의 스승은 유명한 바바지인데요 그는 수천년이 넘게 살았습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그는 불사신이죠

어느날 수천년을 넘게 산 스승의 스승이 그의 스승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의 스승은 너무 기뻐서 서둘러 바바지를 위해 차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오자 더 이상 수천년을 산 그의 스승을 볼 수가 없었어요,왜일까요? 그가 햇빛에 숨었기 때문이었죠 전에 말한 적 있어요 어떻게 사람이 햇빛에 숨을까요? 상상이 됩니까? 사람이 햇빛에 숨어서 찾을 수 없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어요? 없지요 하지만 사실이죠 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예를 들어 우리 동료 수행자들은 가끔 내가 사라졌다고 알려주곤 합니다 내가 어디로 갔죠? 내가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30킬로그램도 넘는 몸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없어지겠어요? 삼십킬로그램이 그렇게 무겁진 않지만 그래도 무게는 있죠 그냥 갑자기 어딘가로 날아갈 수 없어요 그녀는 빛 속에 숨어 있어서 사람들은 못 봅니다 어떤 육체들은 아주 미묘해서 천안이 열려있지 않다면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동하면 볼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것은 여러분이 관음법문으로 명상하면서 가끔 부처의 경계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너무 즐기게 되면 부처가 떠나 버리죠 우리가 무서워서요?아니죠,우리 마음이 아니죠,우리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부처가 가버린겁니다 나중에 수행해서 더 높은 등급이 되면 우린 성불할 겁니다 그래서 부처를 보는 대신 부처가 됩니다 아주 높은 등급인데 성취한 이가 드물죠 관음수행 외에는 아무도 이 등급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관음수행자들조차도 모두가 이 등급을 성취하는 건 아닙니다 어제 우리는 금산활불의 등급에 대해 말했는데 기억합니까? (네) 그의 치유력은 비범하며 경이롭지요 모두들 알잖아요 금산활불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봤나요? (네) 그가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뭘 사용했는지 아세요? (네) 뭐지요? (몸의 분비물로요) 분비물! 뭐였죠? 침이요,또 뭔가요? (코딱지요) 코딱지 또 뭐죠? (목욕한 물) 목욕물,귀이지 등이죠 여러분은 그런 약이 먹고 싶어요? 네,설사 부처가 와도 우리가 축복을 받긴 어려운 겁니다 우리가 너무 분별심이 많으니까요

설사 그가 육체로 화현한다고 해도 쉽게 그를 믿지 못하니, 그가 공중에 떠다니고 안 보이면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우리 대부분이 단순한 마음으로 부처의 명호를 염할 수 없는 겁니다 볼 수도 없는 부처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부처를 믿고 싶지 않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가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볼 수 없으니까요 어느 날 금산활불은 한 재가자의 집으로 어떤 여성의 병을 고치러 갔습니다

그녀는 높은 경찰 관리의 부인이었죠 그는 들어가자마자 달려가서 그 부인을 안았습니다 그 다음 그녀의 입에 침을 뱉았습니다 물론,그 부인은 그런 부처는 본 적이 없었으니 도망가려 했습니다 몸부림치며 도망쳤죠 그녀의 남편도 너무 화가 나서 부인을 데려가 버렸죠 다른 여성은 이 얘기를 듣더니 애석해 하며 말했죠 『어머 안됐네요! 그가 병을 고치는 방법을 몰랐군요 그의 몸에서 나는 건 신통한 약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도 그건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그걸 먹지 못할 겁니다

그가 내게 줬다면 난 거절했을 겁니다 금산활불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정직해야겠어요 그러므로,이따금 소위 부처들은 감히 사람들을 구하러 나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거꾸로니까요 정말로 좋은 걸 우린 나쁘게 생각하잖아요 나쁘고 독성이 있어서 우릴 오만하게 하고 병들어 아프고 화나게 하는 건 좋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처들은 그런 방법을 안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서 이로움을 얻지 못하니까요 우린 중생을 탓할 순 없습니다

그들의 평범한 마음은 생각이 다른데다 그렇게 금방 그들을 바꿀 순 없으니까요 예컨대,내가 이렇게 제자에게 물었다면요 『난 신통력이 있어서 네 병을 고칠수있지만 그런 방법을 써야만 한다』고요 원합니까? (아뇨) 물론 아닙니다 여러분을 탓하지않아요 그래서 나는 더 편안한 다른 방법을 씁니다 그런 방법은 실현 불가능하다는걸 난 알고 있으니까요 이 시대에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고대에도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히 그의 치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음 왔을 때처럼 아픈 채로 떠났어요

어떤 부처들은 그런 방법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방법을 전혀 쓰지 않아요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의 명호를 반복해서 외우면 우린 이로움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요 이 방법이 좀 더 낫습니다,그렇죠? 관음보살의 명호를 염한다면 우리는 아들을 얻고 승진하고 오래 살게 되며 원하는 대로 남자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부처는 정말 드뭅니다

우린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여기에 자주 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명호를 전혀 들어본 적도 없죠 예를 들어,어떻게 아프리카 사람들이 관음보살의 명호를 들어봤겠어요? 아미타불의 명호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면 그들은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그럼 너무 불쌍하죠 좋아요

자,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을 내려놓고 더 강력한 부처들을 연구해 봅시다 그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고 그들을 알지 못해도 사람들은 구원받아요 그들은 최상의 부처들로 정말로 희귀합니다 설사 그들이 이 세상에 온다 해도 우린 인식하지 못하죠 그들이『내가 그 자다』하고 말해도 우린 그들은 못 믿죠 하지만 보통 그들은 사람들에게 말 안해요 『내가 그 자다』 당연히 그들은 말 안 할 테니,어떻게 그들이 알겠어요? 그러므로 우릴 구원할 수 있는 부처를 만난다는 건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관음보살의 명호를 여기서 계속해서 염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우린 그들을 볼 수도 없으니까요 우린 다만 그들이 이 세상에 다시 윤회해 와서 물질적 육체로 우리와 소통하길 바랄 뿐이죠 그래야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으니까요

허나 내가 어제 말했듯이 그들이 이 세상에 돌아오면 우리 상상과 똑같은 옷을 입지 않을 테고 우린 실망할 겁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늘 실망합니다 심지어 부처도 모두의 바램을 채울 수가 없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부처를 남자로 보려 하고 다른 이들은 부처를 여자로 보길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 두뇌에 말하는 게 최고에요 『그가 남자든 여자든 크든 작든 어떻게 생겼든 난 받아들이겠다』 라고요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