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시피 그런 것이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삶이며 보통 누리는 거죠 우리는 그런 삶을 누리다가 우리가 완벽하다는 걸 잊고 우리자신을 육체라는 불완전한 집과 동일시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우린 이걸 잃고 저걸 잃습니다 그때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마음의 병입니다

그것은 명상으로, 자신이 완벽하다는 내면의 깨달음으로 치유해야만 하는 병입니다 말로 하긴 쉬워요 『우린 신이야 신은 내면에 있어 난 신의 아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린 대체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요 가끔 그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모릅니다

가끔 우리는 어떤 장소에 가면 실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 다수가 아주 높은 수준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대화나 소견,철학 등을 듣게 되면 지루함을 느끼면서 잠이나 자고 싶어하죠 하지만,글쎄요 우리가 거기 있으니 그냥 있는 겁니다 텔레비전을 보든 아이들 수다를 듣든 새들이 지저귀는 거나 축구팬들의 환호 소리를 듣든 혹은 무슨 개똥철학을 듣든 같습니다,그렇죠?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레몬을 주면 너무 시다고 하지말고 설탕을 좀 넣어서 레모네이드를 만드세요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 알겠어요? 우리가 어디 있든 최대한 활용하면 돼요 과거의 우리도 그와 같았습니다 이런 수준으로 신을 몰랐을 때는 그렇게 말했지요 그 사람들처럼 말해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린 전에 말이 많았어요 맞지요? 이젠 침묵합니다 이제 모두들 말하지만 우리는 침묵해요 전에는 말이 많았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말이 많았어요 신에 대해 부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서 채식주의에 대해 철학에 대해 신은 하나이고 모두 하나며 우리는 신이고 신은 이 모든 것과 다른 것이라고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많이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정말 모른다는 것을 아니까요

한 스승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제자들에게 한번 흘끗 보고 그들 앞에 놓인 벽이 얼마나 높은지 적으라고 말했어요 그런뒤 그들은 그 크기를 적어야 했고 모두 적었어요 『오! 약 2.5미터입니다 어림잡아서요』 그리고 모두들 똑같이『약』, 『대략』이라고 적은 뒤에

스승이 말했죠 『너희 모두 틀렸다 답이 틀렸다』 그들은 놀랐어요 『그럼 무엇인가요? 어떻게 답해야 하죠?』 스승은 말했어요 『모른다고 써야 한다』 그래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해요 맞지요? 왜 문제를 만들고 많은 설명을 합니까 그들 중 몇 명은 그에 대해 더욱 철학적이기도 했어요 『사실 2. 5미터 2인치이지만 확실하지 않아요

다른 한 편으로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요 우리가 할 유일한 말은 『모른다』에요 이제 우리는 정말 몰라요 처음에 우리는 신을 안다고 생각하지요? 신에 대해 많이 말해요 모두에게 신을 소개합니다 그때는 우리가 모를 때지요 이제 우리는 알아요 그리고 우리가 정말 모른다는 걸 깨달았죠 신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신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맞지요?

『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 걸 알아요 우리가 뭐라고 부르고 싶어하든지 우리는 정말 신을 몰라요 우리는 알지만 모르지요 인간의 잣대로는 모른다는 거죠 인간의 언어로 그걸 표현하는 법을 우리는 몰라요 사람들에게 신이 어떤지 보여주는 법을 모르지만 우리는 신을 알아요 그것을 알아요 우리가 어린 아이나 아기일 때, 우리가 아직 신의 품 속에 있고 신 의식 속에 살 때처럼 신을 알아요 그러다가 자라면 잊어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 같은 명상을 통해 기억합니다 우리의 신구의의 정화를 통해 신을 다시 기억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몰라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신을 아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벌하는 신 보상하는 신 우리를 심판하는 신 온갖 지옥과 천벌로 우리를 위협하는 신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신을 몰라요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두뇌로 규정되는 신을 모르지만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즉 신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몰라요 어떻게 신이 신을 알 수 있겠어요? 어떻게 태양이 태양을 알지요? 어떻게 태양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태양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요? 우리는 그냥 몰라요 좋은 영화가 있어요

최근에 봤어요 『제 5원소』라는 영화에요 그 영화를 봤어요? 누구든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이 대본을 쓴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5원소를 대표한 여자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말합니다 『난 사랑을 몰라요』 왜냐하면 그녀가 사랑의 화신이니까요 그녀는 정말로 사랑을 몰라요 그녀는 자신이 사랑인 것을 몰라요 그녀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요 태양처럼요

태양은 빛이 나지만 아무것도 모르지요 태양은 아름답다거나 인류에게 이롭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마찬가지로 일단 신을 알기 시작하면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 모두를 바꾸려 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냥 우리를 바꿔요 그래요!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 명상을 통해 통찰을 통해 묵상을 통해서요 그럼 우리는 변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수준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인생에 대한 관점을 바꿉니다 우리가 되어야 할 것 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견해를 바꾸죠 많은 판단을 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냥 압니다 판단은 항상 좋든지 나쁘든지 판단이니까요 이를 테면 좋은 판사든 나쁜 판사든,심판하죠 우리가 이해하는 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얼마 지나면 더 이상 이해하는 것 같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그것이 됩니다 그것이 되는 겁니다

이곳은 성스런 땅이죠 수세기 동안 인도만이 아니라 온갖 인종과 모든 국적의 성현들과 예언자, 성스런 인물들의 축복을 받아왔어요 그래서 우리도 여기서 이런 분위기를 숨쉴 수 있어서 아주 행운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든 보답해 주려는 겁니다 영적인 각성을 키우는 땅입니다 고귀한 삶의 유산을 간직하려는 나라입니다

오늘날 이런 것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너무나 많은 다양한 학설과 다양한 도입의 영향으로 더욱 희석이 되었지만 그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다시 통찰하고 살펴볼 기회가 있어요 그러면 그들 자신의 선택을 할 겁니다

착하고 우호적이고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려고 하세요 고귀해지세요 원하는 존재가 되고 사람들에게 그들자신의 의도도 상기시켜 주세요 만일 우리가 좋으면 사람들이 보니까요 그렇죠? 좋은 본보기지요 누구나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양심에 따라서 그들이 어떤 악행을 하면 최소한 우리에게 『그런 악행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맞지요?

모든 상황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적응과 판단을 할 수 있고 모든 종류의 환경과 의견으로 자신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아니까요 우린 원하는 걸 알아요 예? 선택할 수 있어요 선택할 수 없으면 좋아요 다시 선택해요 신이 축복하기를 내일 만나요 행복해요? (예)

오늘 나는 다다지를 보러 갔어요 그 순수하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 알지요 수염이 없어요 그는 아주 귀여워요 그는 말했어요 『당신은 지난 전생에 나의 어머니였어요』 바로 지난 생은 아니고 아주 오래 전이라 기억할 수 없지만 그는 기억합니다 그는 아주 행복했어요 그가 여러 달 아팠다며 그의 제자가 말했어요 『아!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오늘 정말 행복해요 모두 아주 행복했어요

그가 당신과 앉아서 웃고 말하고 그랬으니까요 아!몇 달 동안에 그가 이런 것은 처음이에요』 사실 그는… 그들은 그가 어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늘 많은 의사가 그를 보러 달려 왔어요 점심때 그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와서 나를 데리고 가기로 한 제자들조차 그에게 달려갔어요 그가 아주 아팠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왔을 때 전혀 아픈 것 같지 않았어요 어린 아이 같았어요 그가 아주 순수하고 순진해 보였어요 그는 아주 순진하고 아주 순수해요 아주 행복했어요 항상 웃었지요 나를 보내주려 하지 않았어요 그랬어요 모두들 말합니다 『만일 깨달으면 법칙을 벗어나며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왜죠? 다 자랐는데 왜 다시 아기가 되려는 거지요?

여러분이 아기라면 어디서나 어디서나 볼일을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요 통제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었다면 왜 그걸 하죠 그렇죠? 또한 어떤 이들은 듣기 좋게 설교합니다 『신은 모든 것이다 신은 선이면서 악이기도 하다』 그게 사실일지 모르죠 사실일 수 있어요 하지만 무엇 때문에 우린 악마가 됩니까? 이미 악마는 충분히 있어요 왜 고작 악마가 되려고 신이 돼야 하죠? 그러면 될 필요 없죠

우리가 신이란 걸 나타내기 위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시 신이 될 필요조차 없어요 그렇죠? 우린 거기서 왔어요 악마에서 왔어요 이제 오직 할 일은 더 높아지는 거고 신이 되는 거죠 알겠어요? 그러니 소위 유사한 가르침에 속지 마세요

깨달음을 빙자한 값싼 대용품 값싼 행복과 같은 쉬운 방식에 유혹 당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걸 깨달음으로 오인하죠 무책임한 행동과 비천한 사고 방식을 해탈로 착각하지 마세요 해탈은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는 겁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모든 것과 선이 아닌 모든 것과 고귀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는 모든 것과 여러분을 구속하고 숨막히게 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여러분이 사악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과 바램과 성욕의 열망으로 불타는 듯한 모든 욕망에서 자유로운 걸 뜻해요

성욕은 사랑과 다릅니다 섹스는 자신을 바쳐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축하하는 것과는 달라요 사랑을 축하하는 건 섹스와는 다르죠 행동은 같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고 분별없는 행동을 해탈로 오인하지 마세요

해탈은 다른 이의 고통을 희생해 자신을 즐기는 게 아녜요 해탈은 여러분의 가장 고귀한 존재를 희생해서 자신을 낮추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자유는 대가가 많아요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 그게 모두 자유주의고 또한 자유라고 하지만 자유는 남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걸 뜻하진 않아요 기쁨은 남에게 고통을 일으킨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게 오늘 여러분과 모든 이에게 말했던 비폭력의 정신입니다 신은 모든 것이겠죠 그건 사실입니다 마치 사다리처럼요

아래층이 있고 위층이 있어요 우린 이미 아래층에 있었는데 이제 올라 가려고 하죠 이미 올라가 있다면 왜 내려가려 하죠?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죠? 그럼 왜 굳이 올라가겠어요? 우린 이미 낮은 수준의 소위 신의 품성을 나타내고 있었어요 그게 신이라면요

만일 우리가 신이 전부이고 모든 것이며 선과 악,악마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란 걸 받아들인다고 합시다 우린 이미 수 천년 동안 악과 그 사이를 대표해 왔지요 지금 다시 그걸 할 필요는 없어요 이제는 다른 절반의 숙제를 할 시간이에요 그렇죠? 그러니 누군가가 신은 모든 것이라고 믿게 오도하면 그건 사실이 아녜요!

우린 지금까지 다른쪽 아래쪽 절반만 가졌죠 모든 이들이 늘 여러분을 그 다른 절반 속에 남도록 오도하고 속이려 하고 있죠 이건 진정한 가르침이 아녜요! 여러분을 해탈시키지도 고양시키지도 못해요 속지 마세요 우린 아직 저 위에 있지 않아요 우린 모든 면에서 신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우린 집의 하층 절반을 대표할 뿐이에요 이제는 다른 절반도 대표하려고 해야 할 시기지요 하층 절반은 쉽고 이미 거기에 있어요 올라가는 게 어렵지 내려 가는 건 쉬워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오!신이 모든것이니 원하는 모든걸 하자 난 신이잖아,그렇지?』 라고 생각하게끔 오도할 수 있습니다 우린 수 천년 동안 이미 원하는 모든 걸 항상 해왔어요 그래서 달리 갈 곳이 없는 이 행성의 꼭대기인 여기서 어슬렁거리는 겁니다

이젠 나머지 절반인 더 높은 곳까지 우리 자신을 끌어올려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알겠죠? 이게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방법이죠 그게 차이점이에요 여기서 바로 그들이 오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난 여러분이 소위 영적 수행에 있어서 소위 영적 철학이라는 혼란스러운 밀림과 혼합 샐러드의 혼돈 사이에서 차이점을 분간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럼, 다른 절반을 올라가고 싶어요, 여기 머물고 싶어요? 올라가고 싶죠! 우린 이제 자신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 존재를 완성해야 합니다 신이 모든 거라고 가정하더라도 우린 이미 다른 절반을 가지고 있어요 그걸 완성하여 100%로 만들 때죠 아주 행복하군요 (네) 그렇군요 여러분에게 말하다보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무지로 고통을 겪는다는 걸 알았어요 난 좀 안타까워요

여러분은 진보하며 여러분에게 좋은 거죠 허나 매우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적인 감정 수준에 빠져 있어요 그들은 어떤 스승이나 다른 스승에 매달리죠 그 스승이 상냥하고 친절하고 온화하며 함께 놀아주고 놀게 내버려 두면요 그들은 매달릴 것이 있어요 그게 다에요! 이걸 소위『영적인 감정』이라 합니다 감정은 키우지만 영적 진보는 없지요 그걸로는 아무데도 못 갑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진보는 자신을 깨닫는 거예요 만일 어떤 사람이나 어떤 달콤한 성품에 매달린다면 여러분이 자신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건 영적 진보가 아녜요 그건 영적 진보에 도움이 안 되요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있어요 우리가 어떤 것에 조금이라도 집착하면 결코 자유롭지 못해요

스승은 상냥하고 온화하며 매우 순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우리는 또한 문제가 생깁니다 정말이에요 이건 진보의 단계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전체가 아녜요 게다가 이런 달콤한 것을 좋아하면 거기에 빠져버리죠 이걸로는 스승과 제자 둘 다 어떤 곳에도 가질 못해요 아무데도 가질 못하죠 바로 이런 차이점이 있어요!

한 제자가 공자에게 그의 수제자가 어떤 품성을 지녔는지에 대해 묻고서, 가장 용기 있는 품성을 지닌 사람을 열거했어요 다른 이는 가장 온화한 품성을 지녔고 다른 이는 아주 자비로운 품성을 지녔다고 했어요 심지어 스승보다 더요 저 사람,저 제자는 스승보다 더 자비롭다 저 사람은 스승보다 더 용기가 있다 저 사람은 스승보다 더 상냥하다고 했죠 그는 이처럼 몇몇 제자를 열거했어요

그 질문자가 묻길 『그럼 이들이 왜 스승님을 따릅니까? 이 사람은 당신보다 더 상냥하고 저 사람은 당신보다 더 자비로우며 다른 사람은 당신보다 더 용감한데, 왜 그러죠? 그들은 왜 당신의 제자가 되었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하길 『그들은 그것만 가졌기 때문이다 상냥함, 용감함, 온화함 뿐이고 그 밖에 다른 건 없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걸 너무 좋아하면 이를 테면 온화함을 아주 좋아하고 상냥함이나 용기나 자비 같은 것을 좋아하여 한가지 품성에 매달려서 그걸 좋아하면 이건 일종의 중독이죠 이건 우릴 멀리 데려가지 못하죠

그래서 그 제자들조차 때로는 한가지 품성을 스승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그건 한가지 뿐이며 극단적이죠 그리고 공자가 덧붙여 말했어요 『그 제자 A는 용기를 지녔지만 때론 용기있지 않을 겸손함은 지니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은 자비심이 있지만, 더 위대한 자비를 위해 어떻게 물러서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이건 예를 들어,내가 해석한 것이지 정확히 그런건 아니에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그냥 상냥함은 알지만 상황이 요구할 때 단호함은 알지 못해요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공자는 모든 걸 가졌어요 그는 용감하고, 또한 약함도 가졌죠 그나 약해야 될 때, 그는 약했어요 그가 용감해야 될 땐, 그는 강했습니다 또 그가 자비로워야 될 때, 그는 자비로웠죠

그가 냉정하고 냉담해야 될 때도 그는 그걸 사용했어요 그래서 한 성품이나 다른 성품에 매달리면, 한쪽 구석에 정체되고 맙니다 이를 테면 이 방에 네 구석이 있는데 물건이 많이 있고 우리가 늘 한 구석에 서있는 것과 같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생을 찾은뒤 스승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중독된다면 그땐 문제가 됩니다

자유롭고 빠르게 진보할 수 없습니다 그냥 말해주는 거에요 뭐가 뭔지 알도록요 난 여러분 의식수준을 조정하지 않아요 난 여러분이 영원속에 진보하기 위해 여러분 시간으로 하길 원하는 선택을 통제하지않아요 언제 깨어나길 원할지 선택할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있죠 좀 더 걸릴수도 있고 좀 더 짧을수도 있죠

여러분이 이 길을 원할지 저 길을 원할지 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난 그걸 조정할 수 없고 원치도 않아요 여러분 자신의 깨닫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길이 있죠 단거리를 선택하든 장거리를 선택하든 모두 여러분 선택이죠 난 그것에 대해 조정할 수 없습니다 조정하고 싶지도 않죠 왜냐고요? 모두다 자신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걸 할 자유가 있죠,맞죠?

사람들을 조정하는 건, 자신을 조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정말 매우 피곤하죠! 오직 한 사람을 조정 하려고 해도 벌써 골치 아픕니다 이 모든 사람과 더는 말 할 것도 없구요 경찰과 죄수를 보세요 또는 범죄자를요 범죄자를 붙잡을 때, 그들도 함께 경찰과 묶어야만 하죠 맞습니까? 그 둘 다 함께 수갑을 차야 해요

그들은 함께 어디든 가야만 하죠 그게 사람을 조정하는 방법이죠 만약 사람들을 조정 하고 싶으면 그와 같죠 진짜 조정은 이와 같죠 아주 피곤한 일이며 대부분의 시간이 고통스럽죠 그러니 자신에게 통제 하려는 성품이 있으면 점검하세요 점검해요 원한다면 잘라버려요 또한 원한다면 간직하세요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죠 예를 들면요 난 그냥 여러분에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 위해 여기 왔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 온 거지요 그냥 날 보러 온 게 아니죠

신이 나에게 보물을 맡겼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 온 거죠 그렇게 생각한 거지요 이 보물은 또한 여러분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신의 몫을 찾으러 온 거죠 그래서 내가 가진 걸 줘야만 합니다 왜냐면 그건 여러분 거니까요

여러분의 좋고 싫음을 난 조정할 수 없지요 난 그냥 말할 뿐예요 그럼 여러분의 두뇌가 가끔 여러분을 속여서 내가 여러분을 위해 갖고 있는 보물을 빼앗아 갈 경우에 그게 뭔지 알죠 알겠어요? 그게 다죠 명확합니까? (예) 우리가 명백해지고 깨닫기를 원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너무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지루하죠

우린 깨달음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공기처럼 필요해요 그래서 우린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거죠 우리가 뭘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며 아무도 깨달으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이것 저걸 따르라든지 명상하라든지 뭘 먹으라고 하지 않죠 그냥 필요로 합니다! 마치 누군가가 물속에 머리를 누르면 공기를 위해 밖으로 나오려고 발부둥치는 거와 같죠 깨달음도 이와 같습니다 충분히 숨이 막혀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순간이 옵니다

사람들도 똑같죠 그들이 깨달음을 필요로 할 때나 지혜를 구할 때는 이미 물속에서 거의 질식하기 전입니다 또는 생존을 위해 영적인 생존을 위해 질식에서 빠져 나오려 발부둥치는 때입니다 난 선택이 없어요 기회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이나 깨달음이나 추구하는 태도에 대해 난 조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때가 되면 그걸 해야만 하죠 그래서 난 안 급하죠 때가 되면 여러분은 와야해요 여러분은 깨달아야만 합니다 난 그 때만 기다립니다 마치 과일이 익듯이요 무르익으면 떨어져요 아무도 따지 않으면 떨어지죠 자연과정이죠 내가 아는 뭐든 간에 여러분과 나눌겁니다 그 다음은 선택하세요 여러분이 선택한 길에 머물도록 애쓰세요 왜냐하면 좋은 겁니다

그게 좋다는 걸 난 알죠 벌써 알고 있죠 적어도 당신이 무엇을 경험했든간에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적어도 견줄만한 뭔가가 있는 거죠 됐어요! 나쁘지 않죠 한편으론 나쁘지 않죠 여러분 선택이 옳다는 확신을 좀 더 얻었죠 맞죠? 좋아요 그리고 아직도 확신이 안 선 사람들은 계속 선택해 보세요 비슷한 곳으로 계속 가 보세요 그런뒤 앉아서 생각해 보세요 『그게 맞는 걸까?』 좋아요! 잘 자요!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감사합니다 스승님) 내면에 신의 축복을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축복하세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