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하나요?

그 나라의 법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가 고의로 법을 위반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교회에 달렸어요 법에 따라 그를 처벌하거나 용서하지요 상황이나 그 나라의 법에 따라서요 난 입법자는 아니고 또한 우리는 특별한 상황을 봐야 해요 그렇죠?

여기 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상황은 다른 해결책을 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가 타인의 권리를 고의로 침해하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자각하고 회개하도록요 처벌만이 아니라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해야만 왜 그러면 안 되는지 그 사람이 알 겁니다

그가 알게 하고 그릇된 개념을 버리게 하는 게 힘으로 벌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적대감과 반감이 생길 거에요 이미 말한 대로 주변상황에 달렸어요 각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명백하게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법을 공부해야 하고 또한 예수가 이런 경우를 어떻게 다뤘는지 배워야 해요 그냥 예수가 이 경우 어떻게 했을지 부처는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거에요

이 미국인은 어떻게 정부가 범죄자를 판단하는지 어떻게 그 법이 범죄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지를 묻고 있어요

이것은 스승님의 대답의 요약입니다 법은 인간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님은 여기 모든 사람에게 도와 윤회법칙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난 정의의 저울을 쥐고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들은 나한테 이걸 물으면 안 되요 모든 상황은 다르니까요 그저 여기 앉아서 그 남자는 5년을 선고 받아야 하고 그 여자는 10년을 선고 받아야 하고 또는 각 죄의 처벌은 어떻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정의의 저울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부처에게 기도해야 하고 그리스도와 부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룰까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자연히 판단하는 법을 알게 될 거에요

육조 혜능은 어울락(베트남) 사람 인가요 중국사람인가요?

어울락인이지요 어울락 사람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출생지에 따르거나 그의 일대기에 의하면 어울락인이지요 어울락에서 났지만 나중에 그 지역은 중국영토가 되었고 그래서 중국인으로 언급됩니다

지금처럼 나는 포모사(대만)에 오래 살았으므로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칭하이스승이 포모사 출신이라고 말하거나 포모사의 칭하이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포모사(대만)사람들도 내가 그들에게 속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모두 똑같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세계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 서서 다투지 않아요 『아니요 안 그래요 난 어울락인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스승님 『모든 원인은 절대진리에서 나온다』는 개념을 설명해 주세요 저의 좁은 소견엔 그것은 무지는 절대진리에서 나온다는 걸 뜻해요 그래서 수행할 필요가 없나요?

무지는 절대진리와 같으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지는 절대진리에 대한 인간의 오해입니다 이제 절대진리를 알고 싶으면 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대 진리를 수행해야 그걸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무지의 길을 수행하지요 이 두 길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무대의 여배우 감독은 이미 대본을 썼어요 언제 뭐라고 말하고 언제 어떻게 연기하는지 썼지만 이 여배우가 게을러 놀러 나갔고 대본읽기를 신경 쓰지 않았거나 잘 외우지 않아서 무대에 올라가 자기의 역할을 즉흥적으로 하면 모두 틀립니다

그래서 감독은 그녀를 불러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자기 대본과 자기 역할을 다시 외워야 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배역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대에서 연기하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그 젊은 여자는 정말 못생겼지만 아주 아름다운 여인인 『카멜리아스의 숙녀』를 연기해야 했어요 난 그렇게 들었어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기로 예정되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그렇죠 진짜 연극에서 그와 같았어요 하지만 이 여자가 너무 추해서 『남자친구』가 그녀를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지요 『결혼하고 싶다면 그냥 가버려』 이것은 과장이었어요 대본은 그렇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우리 무지도 그렇죠

신의 의지에 따라 연기하는 대신에 외적인 배경을 보면 우리는 잊고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의 계획에 따르는 대신에 외적인 상황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틀리고 세상에 혼란을 초래하지요 안 그러면 우리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행성 중의 하나에요 왜 다른 행성은 평온한 평화와 지성을 누릴까요? 우리 행성에서는 매일 싸우고 공격하고 훔치고 서로 압박하며 온갖 불행이 있는 걸까요?

비록 약간의 지혜가 있지만 또한 많은 고통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 행성은 『주제』에서 벗어나고 연극을 잘 몰라요 그래서 부처와 보살은 종종 이 세상에 내려와서 감독이 되어 우리 역할을 다시 가르치며 말해줘야 합니다

『당신는 읽는 법이 틀리고 연기방법이 올바르지 않아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아요』라고요 그런 의미에요 하지만 듣는 이가 거의 없어요 배우가 이미 무대에 있으니까요 더 지시하려고 뒤로 불러내기엔 너무 늦은 거지요 그는 이미 자기역할을 즉흥적으로 했고 무대를 다른 연극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므로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일단 공연하면 종종 관객은 실제 연극이 어떤지 몰라서 그냥 박수를 칩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이렇게 만들어요 감독의 말을 듣지 않아요

절대진리에 음양의 이원성이 존재하면 뭐하러 절대진리에 돌아가려고 자신을 수양하나요 ?

음양의 이원성이 있지만 음은 아주 작고 양은 큽니다 하지만 자신을 수양하지 않으면 음은 거대한 반면 양은 아주 작지요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달라요 우리가 자신을 연마하지 않으면 지옥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연마하면 우리 마음은 천국이 될 겁니다

우리 마음이 행복하고 편하면 그게 천국이지요 우리는 죽어서 천국을 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요 천국은 마음속에 있다 그런 것입니다 계속 외부세계를 추구하고 외적인 행복을 찾으며 다른 곳의 천국을 찾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연마해야 다시 정상이 됩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는 것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리는 모든 곳에 음양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옳아요 아닌 게 아니에요 지옥에도 음양이 둘 다 있어요 하지만 음은 너무 많고 양은 아주 적지요

그러나 우리 세상은 음양이 다 있어요 그래서 고통과 행복 둘 다 있어요 다른 높은 세상에서는 오직 양만 있어서 행복이 더 많거나 완전한 행복이 있어요 그들의 음이 아주 적어 사람들이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영향력이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자신을 연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신생아는 이미 인간이지요 신생아를 동물이나 나무라고 할 수 없지만 아기가 더 크고 더 똑똑하게 성장하려면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인간이라고 불릴만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죄 문제는 어떻게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죠?

죄를 짓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행동이 죄인 걸 이해하지 못해요 비록 그들이 막연히 알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거지요 그들은 경전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자기 대본을 잘 배우지 못한 무대의 배우처럼요

경전을 잘 아는 사람은 그들을 안내해야 합니다 우주법칙을 잘 아는 사람은 그들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경전을 다시 배우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들은 악행을 그만 둘 거에요 예를 들면 무대에서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때리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 쪽으로만 가볍게 그녀를 쳐야 하는 거지요 겉으로만이요

하지만 그는 대본을 잘 암기하지 않아서 정말로 그녀를 쳐서 그녀는 기절했어요 우리 세상도 그와 같아요 죄를 지은 사람은 자기 진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고귀함을 모르고 우주법칙을 몰라요 우리는 자신을 수양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 전에 우리는 분명히 알아요 안 그러면 우리가 분명치 않고 우리가 모르고 역할을 즉흥으로 하면 아주 문제가 생기지요 더 즉흥적일수록 무대를 더 혼란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 아직몰라요?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나 과거의 다른 위대한 스승처럼 아주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처신하는 방법 진짜 인간이 되는 법 고귀해지는 법 우리의 고귀한 근원을 기억하는 법 우리의 행복을 기억하는 법 우리자신의 영광을 기억하는 법 신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우리자신의 지혜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임무를 가졌었죠 바로 그걸 완수했지만 너무 빨리 떠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와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했어요

이 미국인은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어요 스승님은 예수는 스승이라고 말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근원,행복 평화를 기억하도록 가르치려고 왔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임무를 완수했어요 그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가져다 주었고 신에게 돌아갔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일찍 죽어서 다른 사람이 신의 일을 계속하게 내려와야 했다고 했죠 그런 것입니다

사후에 관한 스승님의 불교개념은 무엇인가요?

지옥,천국인가요? 누가 어디로 가나요? 어떻게 거기 가지요? 글쎄요 불교에 의하면 각 사람은 현세에 그나 그녀가 뿌린 걸 거둡니다 불교만이 아니라 성경도 말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래서 그것은 인과응보법칙이죠 오렌지를 심으면 오렌지를 얻지요 몇 배로 되돌아오죠 그러니 오렌지 씨를 심으면 사과를 얻을 수는 없어요 가시덤불 씨를 뿌리면 거기서 튤립을 얻을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불교나 다른 종교에 의하면 세상의 다른 종교라도 우리의 신구의가 장래에 우리에게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돌봐야 합니다 그런 미덕이나 윤리적인 행동은 신이 규정한 게 아니죠 우리는 신께 복종하고 신이나 부처를 추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 이런 가르침은 우리자신의 영광스런 미래,안락한 미래의 건설에 유용해요 그것이 업의 법칙 인과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은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간단하지만 중요한 가교를 세우는 법의 지침을 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악행을 하면, 즉 신의 법을 위반하고 신의 계율에 복종하지 않으면 소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지옥은 사랑이 부족한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곳입니다 그게 지옥이라고 하는 오직 고통만 있는 곳입니다 그게 지옥이지요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들은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알지 못하고 남에게 고통을 초래했거나 아마도 고의로 고통을 야기했으니까요

이제 그들은 이것이 타인을 대하는 옳은 길이 아니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 교훈을 겪어야 해요 그게 전부에요 모두가 믿는 것처럼 영원하지 않아요 그저 일시적이지만 영원한 것 같아요 영원한 듯 하지요 고통을 당하면 일초가 일년과 같으니까요

우리 몇 몇은 병원에 있었거나 고통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일분이 일년이 되지 않나요? 예,그래서 지옥이 영원하다고 믿어요 그런 사람에게 이렇죠 이 개념은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기억해요 그들 몇 명은 기억해요 그들은 고통의 이런 교훈을 배웠기 때문에 다시 인생을 살면 감히 다시는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사회가 더욱 질서잡히고 덜 폭력적으로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서 원인과 결과를 상기하는 것이 일이 행해진 뒤에 처벌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아요 그러므로 과거의 스승들과 현재의 스승들은 사람들의 미래의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 도덕적인 기준을 돌보느라고 바빠요 지옥과 천국은 자기가 만든 겁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살면 우리는 항상 행복해요 우리는 타인을 위해 행복을 만들고 우리 마음 속에서 평온하며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이나 나쁜 양심으로 괴로우면 이미 지옥에 있는 것이고 죽은 후나 마지막 심판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그게 천국과 지옥에 관한 내 생각이에요 많은 종교서적에서 읽은 개념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정리해봅시다 이런 거지요 이 사람은 나한테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죠 누가 천국에 가는지, 누가 지옥에 가는지, 왜 거기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를요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나는 말했어요

우리가 악행을 하면 우리 양심이 우리를 괴롭혀서 그 죄책감으로 괴롭힘을 당해요 그때 고통을 당하면 우리는 이미 지옥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선행을 하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면 행복하고 편안하고 평화롭게 느껴서 이미 천국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지옥이나 천국에 가려고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지옥은 악행을 하고 남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맛보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깨어나고 이해하게 되는데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고통을 주었을 때 그들은 그걸 모르거나 알지만 계속 그렇게 해요 그들 자신이 고통을 맛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지옥은 있어요 그들이 고통을 맛보는 곳이고 그래서 나중에 감히 더 이상 악행을 하지 않아서 사회,세상이 더욱 평화로워집니다

불경은 과거의 모든 스승이 부처가 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그럼 당신의 법문은 이 생에서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부처의 법문과 다른 건가요? 그러면 그건 석가모니 부처가 한 생에서 부처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그 역시 한 생에서 부처가 되었어요 부처가 세세생생 수행했다고 말하는 과거의 생에 관해서는 우린 모릅니다 그걸 확인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어요 오직 알고 있는 건 그가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태어났다는 거죠

부처가 되기 전 그 역시 삼십 살이나 삼십 살 지나서까지는 한가한 삶에 빠졌었죠 이런 것만 알고 있지 다른 일에 대해서 우린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과거의 생에서 수행을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래서 지금 누군가 일생에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시도해 봐야 합니다 얼마 동안 기다릴까요?

이 생에서 수행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 우린 전설을 들을 뿐이며 그걸 맹목적으로 믿는 거죠 2500년 전 일인데 그것에 여전히 집착해 그걸 믿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육체적 쾌락에 빠졌던 왕자로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이로운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죠 그저 납세자들의 돈을 탕진했을 뿐이죠

그가 궁전을 나와서 삼사명의 사람들이 고통 받고 죽어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어서 영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고행과 같이 잘못된 길로 수행하기도 했어요 결국 그는 깨달아서 올바르게 수행했죠 그래도 그는 부처가 될 수 있었어요

존경하는 스승님 『인과의 예외적인 사례』에서는 음주의 허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술이 허용된 게 아니에요 그건 그 사람의 특별한 경우예요 그 경전은 『인과의 예외적인 사례』라고 부르는데 그건 그 경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예요

한 남자가 말하길 술을 마셨을 때 자기 친구들을 행복하게 했다고 했죠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역시 부처를 기억했죠 그는 여전히 평소처럼 마음을 명료했어요 결코 부처를 잊지 않았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죠 그래서 부처가 말했죠 『좋아,그럼 괜찮다』 하지만 부처는 음주를 권하진 않았으며 음주가 좋다고 말하진 않았어요

그 남자의 상황은 특별했어요 하지만 부처의 제자들은 맙소사, 그는 매우 엄격했죠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자는 부처의 제자가 아니라 마야의 제자다』라고 분명히 말했죠 알겠어요?

내가 전에 그런 두 승려의 특별한 경우에 대해 말했던 거와 똑같아요 실제로,한 승려는 여인을 잡거나 껴안는 걸 허용치 않죠 하지만 그 상황은 달랐어요 그건 특별한 상황이었죠 왜냐하면 술을 마신 건 당신이니 그 결과를 인내해야 하니까요 당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그건 당신의 마음,당신의 문제이죠

존경하는 스승님 결혼생활 중 한 사람이 간통을 해서 그 가정이 파괴되면 그건 저 자신의 악업입니까?

그게 악업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고통을 겪는다는 것만은 압니다 그러므로 불경에서는 외도를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또한 지금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버리고 나중에 저 사람이 이 사람을 버리며 이처럼 주고받으면 어느 생에서나 고통만 초래할 겁니다 이제,그 또는 그녀는 우릴 이미 떠났어요 그러면 우린 그 선례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린 참아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아름답게 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우리의 일, 외모,말, 덕행이 좋아야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옵니다 집이 항상 깨끗하고 아름답도록 해야 하며, 애들은 말 잘 듣게 하고 우리 행동이 훌륭하며 말이 기분 좋고 온화해서 떠났던 사람이 옳은 길로 돌아오게 돕도록 살펴봐야 합니다

허나 그게 불가능하면 『그가 이렇게 했으니 난 저렇게 할수있어』 라며 화내거나 앙갚음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 후에,그 순환이 영원히 반복되면 심지어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합니다 배신 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그런 길로 계속 가서는 안되며 남을 고통스럽게 해선 안됩니다 이게 올바른 태도이죠 그렇지 않으면, 지금 거기 앉아 나에게 이게 자신의 악업인지 아닌지 물으세요

내가 『그래요』 하면 당신은 매우 괴롭고 『아녜요』 하면 그 만큼 역시 괴로워요 그걸 고치고, 개선시키는 길을 찾는 게 더 나아요 그렇지 않고 앉아서 그게 악업인지 아닌지 묻는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되요

예컨대 내가 『네, 당신의 악업이죠』 라고 하면 당신은 더 수동적이 되어 『글쎄, 이게 내 악업이니 어쩔수 없지 내 악업이 이러니』라고 하겠죠 아녜요 인간으로서 우린 최후 끝까지 노력해야 해요 개선할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개선하세요

그렇지 않고, 모든 사람이 악업이라고 말하면 아프더라도 의사에게 갈 필요가 없고 빈자가 너무 가난해도 죽게 내버려 두겠죠 그럴 수는 없어요 인간으로서 우린 최후 끝까지 노력해야 해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해요 그런뒤 말할 수 있죠 『아,아마 악업은 이런 걸 꺼야』라고요 여러분에게 알려주자면 때로는 악업이 아녜요

예를 들면, 항상 찡그리고 말씨가 천한 여인을 아름답게 화장하고 멋있는 옷을 입으며 향기가 나는 다른 여인과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 남편이 밖에 나가 이런 여인들에게 환영을 받고 집에 와서 자기 부인이 이런 걸 보면 어떻게 타락하지 않겠어요? 이것도 우리 잘못이죠

또한 아이들이 올바르게 크지 않아요 남편이 집으로 올 때 아내가 따뜻하게 그를 맞이하지 않고 온종일 불평만 하며 아이들을 때리면 그는 괴롭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서 그걸 즉시 고쳐야 해요 집과 가정을 확인해서 결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서 그걸 즉시 고치세요 그러면 행복은 돌아올 겁니다

정말 외도를 원하는 남편이나 아내는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자기 배우자를 몹시 존경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상황이 있어요 그러니 우린 우리의 평생 배우자를 옳은 길로 돌아오게 도와야 합니다 거기 앉아서 악업에 대해 불평하거나 남을 비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