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술은 무척 진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달에 가려고 수많은 돈을 들여 우주선을 만들었어요 그들은 더 저렴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돈이나 통행증도 필요없어요 여행 비자나 훈련 같은 것도 전혀 필요 없고요

예컨대,우리가 달에 가고 싶다면 특정한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훈련도 받아야 해요 몇 달에 걸쳐서나 몇 년에 걸쳐서요 어떤 사람들은 달에 가기 전에 그런 식으로 합니다 거기 갔을 때 스스로 조절 못하면 온 사방을 떠다니게 됩니다 그 다음 연구할 돌을 몇 개 가져옵니다

우리 지구는 바위가 많아 구하기 쉬운데 그건 원치 않으면서 많은 돈을 들여 달에 가서 돌을 가져오죠 세상이 얼마나 거꾸로 됐는지 알 수 있겠죠 비용이 저렴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말했던 건데 아무도 원치 않았죠 여러분 가고 싶나요? (네)

이 방법은 비용이 전혀 안 듭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방법이지요 그걸 끌어내면 거기 날아갈 수 있죠 헌데 조건이 하나 있어요 용감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걸 무서워 하거든요 설사 가고 싶어도 날아 가면서 겁을 먹습니다

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내게 말하길 오랫동안 이런 경험이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답니다 아주 귀여워요 그는 『스승님 감히 여쭐 수 없었어요』라고 했어요 난 『물어봐야 해요』 라고 했어요 그는 매번 완전히 몰입할 때마다 다리를 꼬거나 명상하거나 집중하려고 분투하지 않아도 쉽게 나간답니다

내 강연 테잎을 듣다 곧바로 나가 버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내 책을 읽으면서 약간 집중했을 뿐인데 즉시 나갔다고 해요 그는 너무 두려웠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뭐가 무서운지 물었죠 너무 빨라서 두려웠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로는 높은 차원에 갈 때 산과 강을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는 구름과 별과 비행기를 봤어요 난 말했어요『그럼 비행기에 부딪칠까 봐 두려웠나요?』 그는 아니라면서 자기가 비행기보다 훨씬 빨랐다고 했죠 비행기를 봤을 때 그냥 『휙』하면서 빨리 지나갔답니다 그래서 부딪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난 물었죠,『그럼 뭐가 무서웠어요?』 그 사람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그는 어른이고 나보다 늙었어요 그는 나보다 크고 늙고 뚱뚱한데도 무서워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일 여러분이라면 무서워 했을까요? 아닌가요? 날기 시작하면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우리가 육체를 너무 단단히 붙잡고 있는게 확실해요 거기 너무 익숙해서 자신의 엄마에게 안겨 고무 젖꼭지를 물고선 뺏지 못하게 하는 어린애처럼요 아무리 흉해도 그는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기 익숙해져서 무섭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만 무서워 하는 게 아니거든요 많이들 무서워합니다 심지어 육체에서 해탈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무서워 하지요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데 익숙하니까요 뭔가 매달릴 게 있습니다 발 붙일 땅이 있는 거죠 뭔가에 매달리길 원한다면 즉시 할 수 있습니다

허공의 세계에선 매달릴 게 아무것도 없어요 또한 외로울 겁니다 내가 거기 있어도 손을 잡거나 함께 날 수 없을 겁니다 풀어주고 싶으니까요 내가 늘 모두의 손을 잡고 있다면 거기 익숙해져서 의지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스로 나가는 것 같아요

여러분 스스로 구름 위를 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정말 높이 날아서 전에 가보지 못한 수많은 경계들을 간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전에 한번도 본적 없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거나 문명세계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도구들을 본다면요 여러분 혼자라면 두려워 지겠지요? (네) 그래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수행하는걸 두려워 합니다,해탈하기가 간단하더라도요 하지만 우린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더 높은 차원의 용기를 내야 해요 수행하기 전에는 다른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용기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서 우리 선입관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력에 바탕을 둔 견해나 우리가 집착하고 의지하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합니다 평범한 세속인들이 가진 개념을 모두 포기해야 하죠 그리고 새로운 개념과 체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해탈할 수 있죠 그게 첫 단계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육체와 이 세상을 내려놓는 겁니다 아직도 이전의 선입관과 소위 세상의 낮은 개념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해탈의 법문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날아서 나갈 때 몸을 놓아버리는 건 고사하고 말입니다

우리 육체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습니다 수많은 구멍이 있어서 그리로 나갈 수 있으며 또한 빨리 돌아올 수 있죠 그런 식입니다 우리 몸에는 몇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신이나 창조주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미 준비를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몸에는 많이 구멍이 있어요 구멍이 많지요 빨리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이 집을 떠날 수 없지요 일단 집을 버리면 겁이 나서 재빨리 되돌아 오니까요 때로는 여러분이 자는 동안 내가 몰래 여러분 영혼을 데려가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갈 수 없죠 떠나기 싫으니까요 내가 반 정도 갔는데 벌써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집은 여기가 아니라 저 위에 있는데도 영혼은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빨리 돌아와 들어갈 구멍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구멍이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말하자면 죽을 때 아무렇게나 아주 낮은 곳에 떨어질 수 있지요 몸을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과 생소함 때문에 말이죠

우리는 또한 작은 방 안에 갇혀 있는 것에 익숙해진 범죄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데리고 나가려 해도 아주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안전하게 느끼니까요 아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안아 주면 왜 즉시 울음을 멈추는 걸까요? 그가 뭔가를 의지할 수 있어서죠

그렇게 그를 안아주는 뭔가가 있다고 느낄 수 있지요 자궁에 있는 것처럼 안전함을 느끼죠 그가 나왔을 때 우는 것은 자궁에선 완전히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늘 닫혀 있어서 열린 곳이 없었는데 일단 나와 보니 와아! 세상은 너무 넓고 붙잡을 게 없어요 매달릴 게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그럼 극도로 두려워 울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이따금 우리는 한 곳에 정착하면 거기가 더럽고 고통스럽거나 빈곤에 시달려도 다른 곳으로 가겠냐고 물으면 싫다고 합니다 때로 그 장소가 더 아름답고 편안하며 발전된 곳이지만 가기 싫다고 합니다

전에, 가난한 곳에 선물을 주러 갔었죠 이빨도 다 빠지고 자식도 없는 노인들이 좀 있었죠 집 안엔 아무것도 없고요 땅도 없고 돈도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가난에 찌들린 재가자였어요 난 말했죠『그렇게 나이가 들었으니 국립 양로원 같은데 가서 살면 더 편안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얘기하다 물어본 겁니다 더 편안하지요 정부가 경영하는 곳이면 편의시설이 많아서 더 안락한 삶이 될 겁니다 돌봐주는 사람들도 많은 테고요 냉장고,텔레비전 그런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어요 누가 아프면 곧 바로 돌봐주는 사람도 있고 직접 요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생각엔 그게 더 편안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왜 더 좋은 정부가 운영하는 양로원에는 가고 싶지 않은지 물어봤어요 그는 가지 않았어요 그가 사는 곳이 더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늙고 외로운 채로 텅 빈 곳에서 살면서 가기 싫다고 했어요 그는 더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 수행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또한 이 때문입니다

우리 몸이 고통과 질병 제약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으로 스스로를 둘러싸서 숨는게 더 안전한 거지요 볼 수 있는 구멍만 두 개 파면 충분합니다 우린 다른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너무 넓으니까요 그건 모두 비어있죠 하지만 거기 가서 익숙해지면 좋아하게 될 겁니다 그럼 너무 좋아서 돌아가기 싫겠죠

이 세상에 돌아오기 싫다는 이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아주 나이가 많고 제자였습니다 관음법문 제자였죠 이틀 전에 그가 체험에 관해 말했어요 그는 말하길 자신이 병에 걸려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하는데 의사는 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알아내지 못한 채 머리만 저었다고 합니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원래 죽기로 되어 있었던 날 나갔다고 말했어요 그의 영혼이 날아서 아주 높은 경계에 갔죠 그는 그걸 알았어요 얼마나 높은 지는 모르겠지만 내려보니 이 세상을 떠난 걸 보았어요 모든 걸 볼 수 있었죠 구름도 통과했고요 아주 행복했는데 내가 손을 잡고 그 옆에 있었대요 내가 잡지 않았다면 상황은 아마 달랐을 겁니다

그는 말했죠 『좋아요! 스승님 전 해탈했어요 전 해탈하고 싶어요』 난 『안돼요!』하며 재빨리 그를 데리고 와야 했어요 그는 돌아와서 불평했어요 그는 말했어요 『전 해탈하고 싶어요 어째서 저를 이런 더럽고 아픈 몸으로 돌아오게 하셨어요? 그 속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난 말했어요 『안돼요 당신은 아직 때가 안 되었어요 아직 수행을 충분히 잘하지 않았어요』 그는 행복하지 않았죠 그러나 지금 계속 살아가고 있고 오늘 여기 왔을 겁니다 그렇죠? (네) 좋아요 그런 경우가 두 세번 있어요 어떤 사람은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가서 오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늙었지만 수행을 잘 했어요 그의 온 가족이 수행해서 그들은 힘이 많았어요 그는 수행에 익숙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어요 첫번째 경우는 그가 어려서 이 세상의 소리와 형상에 더 집착했어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을 거에요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는 떠나는 걸 꺼렸고 두려워했어요 정말 이 세상을 내려놓으면 정말 우리 마음에 아무 집착이 없으면 두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상관없어요 이 사람은 두려웠지만 이렇게 매일 떠나면 거기 익숙해질 거에요 그리고 곧 행복해질 거에요

어느 날 갈 수 없으면 고통을 당할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내려놓는 것은 간단하지 않아요 그럼 왜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들을까요? 젊은이들은 아직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혹을 받아요 젊은이들의 몸은 많은 게 필요해요

그들은 아직 많은 욕망이 있으며 세상을 즐기려는 바람이 많아요 그들이 원한게 아니죠 반드시 의도적으로 원하는 건 아니에요 젊고 혈기왕성한 몸과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젊은이가 수행하는 건 더욱 어려워요 그래서죠 그러나 관음법문 같은 좋은 법문을 찾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애착을 갖는다 해도 관음법문의 힘 영적 수행의 힘은 우리가 나가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그 힘은 우리를 염려하지 않아요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약간 있고 위로부터 오는 우리를 돕는 부처와 보살의 힘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어요 안 그러면 혼자서 싸우는 건 아주 어려워요

예를 들면 바다는 크고 우리는 거기 빠지면 헤엄을 칩니다 그게 옳아요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헤엄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 해변에서 저 해변으로 헤엄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한가운데 배가 있어야 해요 맞지요? 아니면 한동안 우릴 도와줄 고리 부표가 있어서 안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의존해야 하며,또한 부처와 보살을 의지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충분하고 그걸 할 수 있어요

스승님 젊을 때 지혜안 주변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혜안에 집중하면 불편합니다 그게 입문이나 명상에 영향을 줄까요?

아니요 안줍니다 왜냐하면 우리 지혜안은 이 육신이 아니니까요 아주 안전하고 신비한 곳에 안전하게 잠겨있어요 거기에 상처를 주는 건 하나도 없어요 아픈 건 육신이지요 지혜안은 결코 상처가 나지 않아요

스승님은 저희에게 많은 복을 얻지 말라고 하셨어요 안 그럼 복을 즐기러 돌아와야 하지요 하지만 왜 부처는 제자들에게 복과 지혜를 둘 다 수행하라고 가르쳤을까요?

난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복을 얻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어디서 말했지요? 난 안 그랬어요 아마 문맥의 일부에서 그걸 가져왔겠죠 그런 게 아니에요 내 말 뜻은 예를 들면 부처가 말한 건 옳아요

석가모니부처가 복과 지혜를 둘 다 수행하라고 말했다면 그건 옳은 거에요 맞아요 백퍼센트 옳아요 180퍼센트 옳아요 왜지요? 『복』을 위해 수행을 하라고 하지 않았죠 그는 『복과 지혜』를 둘 다 수행하라고 말했어요 나도 똑같이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오직 복을 수행하면 그럼 물론 이 복을 즐기려고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수행하는 동시에 관음법문으로 지혜를 수행하면 물론 훌륭합니다 그러니 내가 말한 것은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것과 같지요? (예) 옳아요!

스승님이 11월에 선 얏센 홀에서 강연하는 동안 전신이 금빛으로 덮인 걸 봤어요 몇 초 후에 희미해졌어요 스승님의 옷 색깔이 회색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스승님 옷은 원래 노랑이었어요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매번 똑같았어요 스승님 왜 이런 일이 생기죠? 설명해주시겠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입문을 안 해서 이유를 몰라요 그러나 이런 것도 좋아요 이것도 좋아요 비입문자들도 내가 빛을 발하는 걸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입문자만이 아니에요 그게 다에요 집중하면 진짜 몸을 볼 수 있어요 내 진짜 몸을요 잠시 집중이 흩어지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매번 내 빛을 보는 건 아니지요 집중했을 때에만 빛을 볼 수가 있어요

스승님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최고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최고 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자신을 돕고 전 세계를 도울 수 있어요 이게 최고목적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이 최고 힘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그걸 쓸 수 없어요 아주 불쌍하지요 우리자신,조상들 또는 전 세계를 도울 수 없으니까요 우리의 최고목적은 우리 힘을 되찾고 자신의 스승이 되어 남을 돕는 거에요

스승님 전 수행이 별로 안 좋아요 아직 이기적이고 자비심이 많지 않아요 때로 저는 또한 탐,진,치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매일 변화하고 더 친절해지려고 부지런히 노력합니다 스승님 그렇게 나쁜 사람인 제가 수행으로 관음법문의 최고 목적에 도달할 희망이 있을까요? 스승님 저 같은 제자를 기꺼이 구할 것인가요?

예 우리 영적 수행자는 하루 만에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수행이 필요해요 이미 완벽하다면 수행할 필요가 없어요 우린 아이와 같아요 우린 천천히 자라며 먹어야 합니다 하루에 한끼를 먹고 당장에 어른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런 게 아니에요 자라려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자란 후에도 계속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적 수행자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관음법문의 최고목적을 성취한 후에도 여전히 영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면 나는 여전히 매일 수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세상에서 오염되니까요

예를 들면 의사는 여기 의사가 있나요? 예? 그래요! 좋아요 예를 들면 당신과 같은 의사는 병원에서 일하는데, 병원에는 전염성이 있거나 전염성이 없는 병을 가진 환자가 가득합니다 병원은 박테리아가 가득합니다 맞지요? 그가 의사라서 환자의 병에 감염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그가 자기자신과 환자를 구하는 법과 조심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법을 안다 할지라도 그가 방법을 알지만 여전히 매일 일을 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수술 전후에 세 네 번 아주 깨끗이 씻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듯이 손으로 수도를 틀지 않아요 대신 소매가 있는 팔을 사용합니다

독일 병원에서는 그렇습니다 수도꼭지를 손으로 돌리지 않아요 아주 긴 손잡이가 있고 물을 나오게 하려면 이렇게 하고 멈추려면 되돌립니다 손을 쓰는 걸 여러분도 피합니다 손을 깨끗이 씻은 후라서 더러운 꼭지를 돌리려고 또 손을 쓸 수 없어요 아주 조심하지요 그런 후 사람들을 수술하러 갑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해요 어떤지 알지요

포모사(대만)에서도 이와 같아요 그들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 전체를 덮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사람들을 수술합니다 그리고 마치면 또 옷을 갈아입어요 옷을 바꿔입고 모든 걸 깨끗이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자신의 업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전염성이 있는 악업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고 싶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탐,진,치가 있어도 그걸 치유하는 방법을 알아요 매일 명상해서 그걸 조절할 수 있고 줄일 수 있어요 그런 게 커지는 걸 바라지 않아서 그걸 예방합니다 때로는 탐,진,치가 우리 잘못이 아니고 남들과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때로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지요 그걸 되새겨보고 완전히 자신의 잘못인지 보세요 반드시 는 아니지요? 그걸 생각해보세요 그가 이 말을 안했으면 당신은 화가 나지 않았을 거지요? 그가 그러지 않았으면 당신은 화가 나지 않았을 거지요?

어떻게 자신에게 화가 나지요? 그가 여기 있어서 나는 화가 납니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두 사람이 있어요 바다처럼요 됐어요? 원래 바다에는 파도가 없어요 파도는 수면에 바람이 불고 그게 해변을 쳐서 파도가 있어요 원래 바다는 파도가 없었습니다

태평양은 원래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있어서 파도가 생겼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원래는 업이 없습니다 원래는 걱정도 없었어요 그러니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매일 그것이 자신의 실수인지만 점검하세요 우리의 잘못이라면 내일은 바꾸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 잘못이 아니라면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그럼 괜찮을 겁니다 상관 없습니다 수행을 계속 하십시오

스승님 구약시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의롭기 때문에 박해 받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느님의 왕국이 너희 것이니』 이 말이 예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겁니까? 고대로부터, 더 뛰어난 영적 수행자일수록 더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는 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네,그렇습니다 진리를 수행하는 우리는 불가피하게 오해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의 힘과 사탄의 힘이 있습니다 사탄의 힘은 마야를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마왕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는 부처의 힘이며 하나는 마야의 힘이죠 영원한 라이벌이지요 음과 양이 있어 세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리를 전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음의 힘의 저항을 받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개가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것과 같습니다 개의 의무이지요 과실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또는 작은 새가 아침에 일찍 짹짹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칭찬할 필요는 없지요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탉이 항상 아침에 꼬끼오 하고 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의 일은 사람들을 깨우는 겁니다 밤새도록 일을 해서 아침에 자고 싶을 때에도 닭이 깨울 것입니다 닭은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 그들의 의무죠 우는 게 의무입니다 우리가 깨더라도 그들을 탓할 순 없어요 『내가 방금 잠든 걸 모르니? 왜 나를 깨우냐?』 이렇게 그들을 탓할 순 없습니다

스승님,세상에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합니까?

나는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호가 필요 없지요 그들의 무지는 그들자신에 대한 거지 날 해치진 못해요 그들이 정말 무지한 건 아닙니다 시간이 되면 그들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스승님이 포모사에 오셔서 높은 영적 수행을 설법하고 수많은 중생의 영혼의 구원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헌신하며 스승님 당신의 안녕은 전혀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위대한 진리의 길을 감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오해를 삽니다 왜 한번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까?

그들도 또한 우리 국민들이죠 당신의 형이 사나워서 항상 당신과 싸우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두번 그를 비난 하겠지만 그는 듣지 않습니다 그는 바꾸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당신은 그가 때렸다고 보복할 수는 없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우린 가족입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도 대주어라』 석가모니도 또한 『인욕』에 대해서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은 참고,참고 끝까지 참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불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를 수행해야 합니다 카톨릭인이라면 역시 다른 사람과 싸우는 대신 인내를 수행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걸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이런 질문을 하고 있군요 왜 보복해선 안 되는지를 다시 한번 말해줄게요 한 가족에 여러 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 하죠 어떤 이는 평화 애호자 이고 어떤 이는 아니면 평화 애호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은 항상 다툴 겁니다

더 넓게 보면 한 나라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요 만일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싫어하고 비방하기 시작한다면 그 종교는 되려 비방하며 다른 종교도 상대 종교를 비방하여 이런 식으로 많은 종교들은 드러내고 서로 다툴 겁니다

처음엔 말로 했다가 나중엔 손으로 했죠 구두 만트라가 손 무드라로 변했다가 그 다음엔 무기와 화살을 써서 내란으로 폭발하겠죠 그렇지 않아요? (네) 여러분은 내란을 원합니까? 그렇지 않죠! 따라서 그렇게 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계속 참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시민이죠 두 당이 다투면 틀림없이 승자와 패자가 있을 겁니다 패자는 다시 싸우려고 할 거예요 또한 악의에는 끝이 없어요 혼돈만 있지요

이 세상은 이미 혼돈 상태에 있어요 정부는 이미 너무 할 일이 많아 국민을 통치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지요 영적 수행자로서 우린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며 정부를 지지하여 사람들을 보호하고 더 많은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줄 의무가 있어야 해요 이게 우리 영적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며 곧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네)

적대적인 분위기를 돋우는 건 영적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아녜요 그러면 우린 틀렸어요 이제 이해합니까? (이해합니다!) 그럼 좋아요!

스승님,왜 관음법문을 얼마간 수행한 후엔 왜 저는 전보다 더 잘 성경을 이해할 수 있나요?

왜 그런지 아세요? (깨달아서요!) 깨달아서죠! 맞아요! 스승의 말과 성경은.. (모든 길이 같죠) 좋아요! 좋아요! 그래요! 맞아요! 내 말이 성경과 일치하니까 당신이 그렇게 끌어낸 지혜 역시 성경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둘을 비교한 후 즉시 이해한 거죠

스승님, 부처의 설법 집회마다 수 백만 명의 사람과 천상의 존재들이 모였지만 오직 마하 가섭만이 정법안장의 전수를 받았기 때문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법이 전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왜 오늘날의 중생들은 다만 오계를 지키는 것만으로 입문과 마음의 전수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전수를 받는 것은 성불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전수를 받았던 수많은 사람에게도 그 법문을 전수했어요 설법이 끝난 후마다 그가 그 법문을 전수해 주고 나면 이 많은 사람들은 보살이 되었고 아라한이 되었으며 수다원이 되었지만 이들 모두의 이름이 전해진 건 아니죠? 그건 그들이 전수는 받았지만 궁극적인 등급을 얻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그와 가장 가까웠던 열명의 수제자를 포함하여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오직 마하 가섭만이 궁극적인 등급을 얻어 불성을 물려 받고 진리를 설법하러 밖으로 나갔죠 이것이 고대부터 내려온 방식이죠

깨달은 스승이 살아있는 동안 그에겐 제자들이 많을 수 있지만 한두명 만 스승직을 물려받을 수 있어요 그의 가장 높은 자리를 물려받는 다는 뜻이죠 나머지는 여전히 해탈할 수 있지만 성불은 못합니다 해탈은 아직 성불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