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깨달음을 얻었어도 내 유전자 DNA 를 바꾸지 않았으며 몸 크기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까 나를 태워서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나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높은 의자에 앉는 게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랑 때문에 나의 부끄러움과 원칙을 희생해야만 하죠 모두들 어떠세요 괜찮으세요?여러분 어떠세요? 『사바디루플라오』가 아닌가요?(네 같아요) 같아요 좋아요

나도 언젠가는 태국어를 잘 배워서 다정한 이곳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요 난 정말 태국을 좋아하거든요 여러분 모두.. 많은 분들이 알거에요 제일 좋아하는 나라죠 아마 치앙마이가 태국에서 제일좋아하는 도시일 거에요 태국 사람들은 아주 온화하고 우아해요 일을 할 때 서두르지 않아요 그래서 제자들이 『즉각 개오』라는 포스터를 붙일 때 그게 태국인의 관심을 끌지 안 끌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점오』라고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고 놀랬죠 괜찮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깨달음을 얻는데 너무 느립니다 왜냐하면 세세생생 물질적인 창조를 즐겨 왔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수십억만년의 생을 즐겨왔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물질적인 연극을 충분히 한 나머지 지쳐버려서 빠르고 신속한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거나 고향에 가거나 불국토로 돌아가거나 신의 왕국에 돌아가길 원합니다

이 모두가 각 종교에서 쓰는 서로 다른 용어에요 아마도 그 때문에 사람들이 즉각 개오를 구하러 오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필요 이상으로,이번 생보다 더 오래 있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나도 히말라야에 가기 전에 똑같은 기분이었어요 이 세상의 많은 고통과 재난을 알고 난 뒤 나 자신도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게 되었고 어떻게든 당장 구해주고 싶었어요 내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신이나 부처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내 소원을 들어줬나 봐요 이것은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우리 동료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의 마음이 해탈을 갈망하면 그들의 마음이 신실하게 진리와 궁극의 지혜를 갈망하면 시방 부처들이나 전능한 신이 그들에게도 소원을 들어줘서 그들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관음 법문 수행을 통해서 매일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이 똑 같은 축복을 원한다면 우리는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의 열매나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러 어디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대 경전에서 여러 부처나 여러 스승들이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은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중 고행을 한 사람도 있고 재가자로 느긋하게 수행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나 수많은 생을 거쳐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도 있고 겨우 몇 개월 걸린 사람,몇 년 걸린 사람,즉각 깨달은 사람도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 당시 그의 승단에 한 보살이 있었는데 8살 짜리 용녀가 성불한 얘기도 해줬습니다

다시 말해 나이나 남녀와 같은 성별이나 DNA 같은 유전자 또는 용이든 인간이든 지역차이 같은 것은 성인의 자격이나 깨달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알다시피 용 같은 것은 해저에서 산다고 여겨지지요 그리고 그녀는 겨우 8살 꼬마였어요 법화경을 읽어본 사람은 알 거에요 자 만일 8살짜리 어린 소녀가 성불할 수 있다면 깨달음은 즉각적이거나 길어야 2년 걸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스승은 6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입문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길게 잡아봐도 용녀는 2년 만에 성불한 것입니다

우린 종종 인간만이 성불할 수 있다거나 인간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남자만이 성불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태껏 그 반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요 여성,소녀 심지어 어린아이도 성불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경우의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데도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어린 시절부터 수행한 수행자들을 찬탄하곤 합니다 어릴 때는 우리 마음이 더 순수해서 높은 등급의 이해수준과 높은 등급의 내면의식에 도달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고대인들은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언제가 성불을 했을까요? 우린 반드시 이 문제를 알아야 해요 금욕을 통해서일까요? 또는 이완덕분일까요? 아니면 어린아이의 순수함 덕분일까요? 아마도 이 모든 것 덕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이런 요인에 의존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비결이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대중에 좀 더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고대였기 때문에 누가 이 비법을 스승과 함께 배우고 싶다면 내 생각에 그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온갖 힘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사랑을 얻고 그 당시 스승의 제자가 될 수 있었죠 그 이유는 많습니다 아마도 고대였기 때문에 영적 비법을 수행하는 것은 스승과 제자에게 큰 위험을 가져오며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정부 종교단체로부터 수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들은 비밀 서약을 지켜야만 했으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관심을 끌지 말아야 했습니다

예수의 경우나 선지자 모하멧 석가모니 부처를 보더라도,모두들 설법을 하는 동안 많든 적든 어느 정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난 인도에서 다양한 종교 경전을 공부했는데 다양한 종교의 위대한 스승들이 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진리를 설한 대가로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산채로 불에 탔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도 매우 유명했습니다 그는 고귀한 귀족으로 태어나 왕자인데다 자비심과 지혜로 인도의 온 전역뿐 아니라 이웃나라까지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다양한 종파와 교리를 가지고 그를 박해하고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허나 실패했지요

또다른 이유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고된 일과 고행을 통해 스스로 얻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을 겁니다 왜냐하면 스승은 인간의 심리가 다소 그렇다는 걸 아니까요 뭐든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추구한 것에 대해 훨씬 더 감사히 여긴다는 것을요 뭐든 너무 쉽게 무료로 얻은 것에 비해서요 그래서 많은 시험과 함정을 통과한 제자만을 스승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고대에는 스승들이 제자가 집을 떠나 모든 육체적인 쾌락을 버리도록 했습니다 온갖 화려한 삶을 버리고 스승을 쫓아 고된 노동을 하면서 제자들의 강인함과 신실함을 시험하려고 말이죠 고대 경전을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스승의 시험을 통과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요 시험하는 방법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건 매우 훌륭합니다 매우 가치 있고 많은 이로움이 있지요

한 가지 이로운 점은 스승이 제자들의 축적된 악업의 짐을 덜 짊어진다는 점이죠 제자가 직접 갚으니까요 그래서 스승은 다양한 시험과 고난을 통해 제자들의 신구의를 순수하게 정화하는 연마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면 스승은 입문식에서 제자에게 지나친 힘을 들일 필요나 제자들의 무거운 짐과 같은 악업을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점이야말로 고대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고난과 시험을 주어 얻는 이로움 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인류에게 한편으로는 많은 불이익이 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지구가 여전히 퇴보한 상태인 겁니다 우주 저 먼 곳에 있는 보다 문명화되고 보다 진보한 다른 행성들에 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같은 종교 내에서도 지금까지 종교 차별과 종교 전쟁이 있으며 이 세상이 아직도 굶주림과 부정으로 고통 받는 겁니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 부처나 예수의 가르침이 공개로 허용되지 않는 겁니다

이미 20세기가 지났고 인간이 달에 착륙했고 화성 등을 탐사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이나 영적인 진보에 있어서 아주 뒤쳐져 있습니다 허나 대중에게 비밀을 공개하는 것도 우리의 희망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스승들이 목숨을 잃었던 거죠 영적 각성을 높이기 위해 대중들에게 그들 자신 안에 타고난 지혜를 말하는 위험과 그들의 목숨과 평판과 안위를 감수했기 때문이죠 오늘날 우리가 가진 어떤 영적인 메시지든 옛 스승들의 유산이며 우린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오늘날 작으나마 어떤 걸 물려받았든 위대한 과거의 모든 스승들 덕분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사원이나 교회나 모스크를 지어서 위대한 스승들을 기억하고 세상의 안녕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한 이런 스승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자 하지요 허나 사원이나 교회를 짓는 건 충분치 않죠 우리가 스승들에게 감사하는 거로는 충분치 않고 우릴 위해 남겨진 메시지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니까요

곧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불성과 지혜와 신의 왕국을 일깨우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는 모든 수단과 온 힘을 다해 그걸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승들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이나 숭배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그들을 스승이 되게 만들고 그들 내면의 위대함을 일깨우러 왔으니까요 그것이 스승들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