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여자가 출가를 하면 평생동안 팔경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녀가 뭐든 위반하면 불교의 질서를 어지럽히게 겁니다 이런 팔경법을 전파하는 것이 필요한가요?

아니요 팔경법은 이렇게 나왔어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가 그를 따라서 비구니가 되려고 한 최초의 여성이었죠 원래 인도 여자는 비구니가 될 수 없었죠 고대 중국여자들처럼 외부에 나갈수 없었죠 이걸 아세요? (예) 그들은 아주 높은 벽안에 감금되었어요 그들은 남자를 볼 수 없었고 직접 남자에게 말할 수 없었죠 인도 여자들도 이와 같았어요 오늘 날에도 그들의 상황은 아직 비슷해요 그들이 외출하면 동반해야 합니다 여자가 혼자서 외출하면 강도를 당하거나 이용당하지요

좋아요 석가모니 부처가 여자에게 출가를 허용했을 때 그건 큰 혁명이었어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박았지만 이런 공격을 피할 수 없었죠 원래 그는 여자가 출가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고 사회가 그를 배척하여 나쁜 분위기를 만드는게 두려워서요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이모를 시험하려고 팔경법을 만들었어요 그의 이모는 그에게 어머니와 같았죠 처음부터 그를 길러줬으니까요 그는 그녀에게 효도를 하고 싶어서 그녀를 거절할수 없었죠 그래서 이 방법을 사용한 겁니다 그는 말했죠 『만일 이 팔경법을 따른다면 비구니가 되게 해 주겠어요』

팔경법 중 첫째가 이랬어요 『나의 남자 제자들을 볼 때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출가승을 했든 그에게 절을 하고 그가 아무리 젊어도 그에게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할수 있겠어요?』 그녀는 하겠다고 했죠 그는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계속 어려운 일을 진술했어요 그의 어머니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불은 그녀의 헌신과 겸손함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원래 생각하기를 그녀가 국왕의 아내인 왕비인데다 부처의 어머니라서 아주 거만하여 그녀가 와서 승단의 규율을 따르거나 그런 출가승을 존경할 리가 없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그런 엄격한 규율을 써서 그의 어머니를 시험했지요 그는 그의 어머니가 비구니가 되는 걸 말릴 의도였지요 그렇지만 그의 모친은 모든 규율을 수행했죠 그래서 그가 한 말을 돌이킬 수 없었어요 그는 그의 어머니가 출가승이 되게 했죠 그날부터 그의 승단에 비구니를 받기 시작했어요

팔경법은 그 시기에만 유용한 거였어요 그 시기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남자 제자들과 출가승들이 아주 겸손했으며 그들 대부분이 아라한과를 얻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불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고 또한 갓 비구니가 된 그의 모친이 그 아라한과 보살들을 존경하지 않으면 큰 업장(응보)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 그녀는 수행을 성공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죠 『제 제자들의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거만해지는 걸 막았고 미래의 비구니들이 행동을 가볍게 하여 비구들과 너무 가까워 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남녀간의 깊은 관계에 빠져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니까요 그 당시에는 필요한 일이었어요

스승님 화를 조절하는 것과 화를 누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떻게 화를 다루지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어떻게 할 지 알게 됩니다 내가 방법을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수행하면 지혜를 얻어서 우리가 그 순간에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쉬워질 겁니다 때로 우리 일반인들은 화를 조절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요 힘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먼저 내면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조절하는 방법을 알게 되지요 이건 가르칠 수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깨쳐야만 알게 됩니다

스승님 좀 전 강연에서 말씀하시길 일어나기로 예정된 나쁜 차 사고 같은 정업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관음법문을 배우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 사고가 생기는 꿈을 꿨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지혜안에 집중하고 수행해야 하는데요 태극권은 수행해도 될까요?

과거에 달마대사도 쿵후를 가르쳐서 건강과 명상이 좋아지게 도왔습니다 태극권은 수행해도 됩니다 태극권은 호흡조절을 전혀 할 필요 없어요 운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태극권은 중국 전통 무술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을 죽일수있나요? 아니요! 그럼 수행해도 됩니다 죽이지 않는다면 수행해도 됩니다 죽일수 있다면 안되죠

스승님 잘 볼 수 없는 사람도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수행하는데 눈을 사용하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스승님 관음법문은 호연지기를 기릅니다 세상이 끝난다는 게 사실인가요? 세상이 파괴된다면 호연지기를 길러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맞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가 세상이 끝날 거라고 말한다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 오늘부터 먹는 것도 그만두면 됩니다 뭘 하든 상관없이 언젠가 죽을 테니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 부와 명성을 얻거나 땀 흘려 가며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를 위해 경쟁하거나 수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것도 소용없지요 조만 간에 우린 모두 죽을텐데요 그렇죠? 하지만 세상이 끝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영적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 삶은 언젠가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래를 곧게 펴기를 바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죽은 뒤에 어디로 가겠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후세계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많은 영원한 곳이 있어요 이 호연지기의 법문을 수행한다면 우리의 본래면목으로 돌아가게 될 테고 머물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을 많이 찾을 겁니다 앉아서 세상의 종말을 기다려선 안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천국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말해주세요 천국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영원한 세상이며 그런 뒤 윤회를 통해 고통스런 세상으로 돌아올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죠 천국에선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겁니다

스승님 전 스승님의 강연을 많이 들었고 책도 읽었습니다 스승님의 강연은 움직이는 구름과 흐르는 강처럼 감명깊어서 완벽합니다 강연장이 즐거움과 평화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천국이 아닌 세상에서 그걸 경험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보기드문 현상이란 의미입니다 강연중에 스승님께서 어울락어(베트남어), 영어,혹은 중국어로 생각하시는지요? 스승님께서 강연중에 어울락(베트남)어와 중국어, 혹은 영어로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난 부처의 말을 쓰죠 서너가지 언어로 생각해야 한다면 말할수 없을 겁니다 고대의 선 스승은 『말은 도를 방해한다고』 했지요

사람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동안 도와 연결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는 『말이 도를 방해한다』는 건 말하는 중에는 도와 분리되어서 연결될 수 없다는 뜻인지 물었습니다 이런 뜻은 아닌가요?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옛날 사람들은 우리가 언어로서 도를 표현할수 없다는 것을 뜻했지요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요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도중에 도와 분리된다면 정말 큰 문제가 됩니다 나는 늘 도안에 있어요 말할 때조차 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불교도가 기독교 병원에서 일한다면 아침 예배 시간에 신과 어떻게 대화할수있을까요? 만일 삼보와 불명를 조용히 외운다면 죄가 될까요?

왜 죄가 되지요? 기독교 병원에서 일하니까요 아침 예배가 있어서 그는 어떻게 신과 소통할 지 의아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일한다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신과 가까워질 겁니다 왜 기독교 장소에서 불명을 외우면서 마음속에서 그렇게 심한 고통을 받으려 하지요? 만일 당신이 삼보를 어긴다고 느낀다면 불교 장소에서 직업을 찾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면 거기서 신과 예수를 암송하세요

아직도 모든 존재가 하나이며 5대 종교가 하나란걸 느낄 수 없다면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말하건대 거기서 외우더라도 삼보를 어기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 기관에 부처를 갖다 둬서 두 종교를 통합했으니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할 뿐이죠 하지만 정말로 신과 소통하고 싶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해요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커피는 식물성 음료지만 자극제인데 영적 수행자도 마실수 있습니까?

마셔도 되겠지만 영적 수행자들은 그런 부자연스런 자극제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호연지기를 작동시키죠 우리 센터에는 차, 커피, 콜라, 자극성 음료를 모아두지 않습니다 때로 차를 마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엄격해서가 아니에요 차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면 마십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도 있지요 편하게 하세요 그러고 싶지 않으면 마시지 않습니다 중독된 사람처럼 매일같이 마시진 않습니다 이게 차이점이지요 우리가 움직이는데 차나 커피가 필요해서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몸이 부서지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수행할수록 더 자유로운 겁니다 만일 뭘 갖고 싶다면 가지겠지만 우린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 괜찮아요

사랑하는 스승님 전 아직 입문하지 않았지만 입문식에서 전생의 모든 업장(응보)를 가져가신다고 입문자에게 들었어요 입문한 뒤에 스스로 제 업장을 없애길 바란다면 이것이 제 영적 수행에 영향을 줄까요?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많은 전생의 업장을 어떻게 없앨 수 있지요?

모두 없앨 수 있다면 입문할 필요가 없지만 당신이 못할 것 같군요 세세생생 너무 많은 업장(응보)를 쌓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호연지기와 연결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문 앞의 장애물을 치우는 걸 도와야 하며 여러분을 방해하는 모든 업장(응보)을 가져다가 태워버립니다 그러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지요

사랑하는 스승님 저는 묵상을 하면 어떤 진동을 자주 느낍니다 이것이 본성의 힘인가요?

아직 아닙니다 이건 내부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기공수행으로 생기는 내부 에너지며 호연지기는 아닙니다 호연지기는 좀 다릅니다 입문식에서 알게 될겁니다 우린 알수있습니다 그 진동은 호연지기가 아닙니다 평범한 법문으로 명상하면 이따금 진동을 느낍니다 그래서 명상할 때 내면의 에너지가 순환하기 시작하고 진동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아니면 내면의 몸부림치는 생각이 선악이나 내면의 다툼으로 바뀝니다 그것이 그렇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건 호연지기가 아닙니다 호연지기는 진동하지 않습니다 그건 매우 평화롭고 잔잔합니다 그래서 침묵의 수행이나 침묵의 명상이라 합니다 만일 호연지기가 수행자를 진동하고 움직이게 만든다면 『동작수행』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만일 입문 중에 누군가 신구의가 순수하지 않거나 에고가 너무 크다면 그는 입문할 수 없을까요? 그런 사람은 입문이 소용없습니까?

그래도 효과는 있죠 우리 에고가 너무 크고 업장(응보)가 너무 많으며 아직 순수하지 않아서 그걸 씻으려고 결심한 거니까요 우리가 벌써 매우 순수하다면 멋진 일이죠 이미 부처라면 입문할 필요가 없겠지요 모두가 약간의 문제는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환영해요 친애하는 스승님 왜 불상은 대체로 가부좌를 하고 있는 건가요? 저희가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까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어째서 가부좌를 해야 하죠?

인도인들은 늘 가부좌를 한다는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도 가부좌로 앉았지요 나중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게 되었고 많은 가구들을 발명했습니다 그 다음 의자에 앉기 시작한 겁니다 과거 사람들은 걸었으면 지금은 자동차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를 그릴 때 걷거나 가부좌를 한 모습을 그리지 테이블이나 의자를 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날 그린다면 자동차나 버스 기차 옆에 있는 나를 그려야 할겁니다 세상은 변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부좌를 하느냐는 취향에 달렸죠 하지만 명상할 때 가부좌를 하면 매우 안정감이 듭니다

삼매에 들어도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와 같습니다 서있다면 좀 더 위험해질 겁니다 서서 명상한다면 이상해 보일겁니다 한시간동안 서있는걸 아내가 본다면 아내는 걱정이 되어서 여러분이 괜찮은지 와서 밀어볼 겁니다 그럼 문제가 되죠! 가부좌로 명상하고 있는걸 본다면 아내는 이것을 눈치챌 겁니다 앉은 자세를 보면 그녀는 당신이 명상하는걸 알겁니다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남들은 당신이 삼매에 들었음을 알겁니다 서있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삼매에 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히기 시작하겠죠

영적 수행자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한시간동안 서서 명상을 한다면 스스로 문제를 찾게 될 겁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가부좌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서서 강연하는 것이 더 좋나요? 아니면 가부좌를 하는 게 좋나요? 이렇게 앉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더 오래 앉을수 있고 좀더 안정되어 있어요 긴장되지 않습니다 말하는 동안에 앉아있는 사람은 서서 말하는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앉은 것이 더 친근하고 친밀합니다

서있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거나 좀 긴장하거나 달릴 준비가 된것처럼 급해보여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을 할 때 항상 앉아있었던 겁니다 또한 명상하는 것처럼 앉아있곤 했습니다 요즘에도 인도사람들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가구가 없어서 업무를 보거나 일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거나 부처와 신을 숭배하는 중에도 가부좌를 합니다 습관이 된 거죠 불교의 명상법이나 다른 몇몇의 법문들은 인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해진 것입니다

고대 영적 수행자의 대부분은 매우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공자는 강연을 하려고 수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의자나 테이블을 항상 갖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가는 곳마다 가부좌로 앉았습니다 가구는 없었지요 석가모니 부처는 49년간 설법했으며 사람들을 구하려고 모든 곳에서 강연했어요 부처가 의자와 테이블을 항상 갖고 다녔을까요? 그래서 고대의 중국인들도 대개 전통을 따라서 가부좌를 했던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강연하는 동안에 가부좌를 했으며 제자들은 강연하는 동안에 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혹은 부처가 법(진정한 가르침)을 전하는 동안이나 명상하는 동안에요 물론 그때에도 가부좌를 했었지요 하지만 온종일 앉아있진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49년간 걸었겠어요? 누가 탁발했겠어요? 석가모니 부처는 모든걸 했습니다 걷고 쉬고 앉았으며 잠도 잤습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진정한 사원은 우리 가슴 안에 있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절을 세울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우리 도장에 멋진 사원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본질을 벗어날 겁니다 난 우리 도장이 늘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남아있길 바라며 겉모양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래요 우린 사원을 세울 시간도 없어요 내가 얼마나 자주 강연을 하나 보세요 어떻게 시간을 내죠? 미안해요 절을 가질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하나도 바라지 마세요 우린 절을 지을 시간이 없어요 하나 짓는다 해도 감당할 수 없어요 우린 만 평방피트의 땅을 개발했는데 다 짓기도 전에 이미 북적댑니다 우린 방금 지붕을 마쳤어요 사원을 짓는 건 따라잡을 수 없어요 절을 짓는데 3,4년이 걸리는 거 알지요 난 짓고싶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난 텐트에서 삽니다 난 강연하기 위해 돈을 씁니다 멋진 절을 지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지붕만 짓고 천막을 치면 돼요 이런 걸 짓는걸로 충분해요 우린 절이 필요없어요

안녕하세요 스승님 현대 사회에서 우린 종종 살인이나 절도를 범한 사람들 얘기를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사형을 받습니다 그들 중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잘못을 했다는 걸 종종 깨닫곤 합니다 (네)

스승님 이 깨달음이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인가요? 또한, 불교에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결국엔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아마 다른 시대나 다른 생에서요 이 생에서는 불가능해요 그들의 삶이 단절되었는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지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형을 폐지합니다 아마 대만(포모사)도 나중에 폐지할 겁니다 우리 바람이에요 사람들이 도둑질과 강도질, 살인을 멈추는 게 최고지요 그러면 정부는 그런 끔찍한 형을 부과하지 않아도 돼죠 정부가 그걸 하기 원해서가 아니에요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려 하죠 그래서 그렇게 엄격한 형벌이 있는 거죠 정부는 엄한 형벌이 사람들을 겁줄 거라 여기죠 정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검진하여 남들이 여러분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만두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가 그런 법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걸 사용할 기회가 없는 겁니다 아무튼 그러면 안돼죠

스승님 우리가 관음법문을 배울 때 서약을 해야 하나요?

아뇨 서약을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린 아주 쉬워요

스승님 왜 명상은 저절로 우리의 나쁜 습관을 바꾸도록 도우지요?

그건 호연지기를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동적으로 일이 정돈되며 옳고 그른 것을 알게 됩니다 맹자는 자신이 호연지기를 길러서 옳고 그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님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해야 초자연적인 스승을 볼 수 있나요?

모두 상황에 달렸죠 어떤 이들은 입문 후에 몇 분만에 보며 어떤 이들은 수행을 시작한지 몇 일 후에 봅니다 어떤 이들은 몇 주, 몇 달, 몇 년이 걸립니다 어떤 이들은 죽을 때에 스승의 화신이 와서 그들을 낙원으로 데려가는 걸 봅니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보게 됩니다 비록 이 생에 보지 못하면 죽을 때에는 반드시 그녀를 보게 됩니다 그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렇죠? 수 십 년이죠 절대 볼 수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렇죠?

스승님, 한 사람은 평화롭게 죽었으며 다른 사람은 병으로 죽었는데 이 두사람이 죽은 후에 결국엔 같은 장소로 가게 될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때론 누군가 병으로 고통 받았다면 그것은 그가 업장의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했다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거예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평안히 죽었더라도 별거 아닐 거예요 천국엔 가겠지만 그 뿐이죠 생사에서 해탈할 수 없지요 혹은 불국토에 갈 수 없죠 사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병으로 죽지 않아요 그렇지요? 대부분 평화롭게 죽으며 안색이 화사하며 자신들이 죽을 때를 미리 압니다 스승이 와서 그들의 손을 잡을 겁니다 그래서 평화롭고 높은 등급을 얻었죠 이것이 가장 안전한 죽음이죠 이런식으로 죽으려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스승님 우리를 해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죠?

업의 인과응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인과응보를 강조해요. 아마 전생에서 그에게 뭔가를 빚져서 이생에서 기꺼이 그의 원한을 받아 들이죠 이후로는 모든 사람이 기쁘지만 눈에는 눈이라면 언제 보복이 끝나겠어요? 지금은 모두 알지요

스승님,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깨닫지 않은 사람들이 있나요?

예, 너무 많아요 그들은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행주좌와가 모두 선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도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걷고 쉬고 앉고 잠자며 시간을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시간이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갈 건지 모르지요

스승님 육감도 신통력의 일종인가요?

육감이요? (네) 하지만 이건 실제 신통력이 아니에요 신통력은 의도적으로 사용하지만 육감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걸 신통으로 보지 않죠 그것은 그저 전생의 수행에서 물려받은 일종의 영적인 특성이지요

스승님, 저는 불교 스승에게 귀의했는데 지금은 관음법문을 배우길 원해요 과거를 참회하고 전에 배운걸 없애며 자유롭고 해탈하려면 뭘 해야 하나요?

참회할 게 뭐죠? 당신은 그 기간동안 그에게서 배웠어요 이제 나를 따르는 거죠 마치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듯이 등급이 올라간 거죠 참회할게 뭐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