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모사TV방송에 『마음의 여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티베트 라마승들과의 특별 인터뷰 시리즈를 방송한 적이 있지요 이 프로를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이 프로를 보면서 저는 무척 감동 받았어요 왜냐고요? 그 유명한 티베트 선사가 하는 말들이 스승님의 가르침과 모두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인터뷰에서 그 선사는 포모사의 불교 수행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얘기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포모사(대만)에는 사원도 많고 각 사원 마다 참배자들도 많다고 했지요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 자기들 사원의 신이 더 막강하다고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우리는 도를 찾을 때도 똑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충고하면서 티베트 라마승들은 깨달은 스승을 찾는데 매우 진지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는 포모사(대만) 사람들은 여러 스승들에게서 많은 법문들을 배우며 그 모든 스승들이 서로 매우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린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고 했죠 우린 너무 욕심이 많죠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그것은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 자신을 혼동시키기만 하죠 그리고 자신의 영적 수행을 가로막게 됩니다

스승님도 『즉각 깨닫는 열쇠』 1권에서 진정한 스승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스승님의 모든 강연에서 깨달은 스승을 찾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그들 모두 다 같은 생각입니다

둘째,그 선사는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 말했어요 여러분은 그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짐작 못할 겁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목적은 죽음을 찾는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을 겁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인생의 목적이 죽음을 찾는 걸까요?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때 모두 두려워하는 겁니다

스승님도 그녀의 책 제3권에서 논하셨습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공부하는 방법과 먹고 일하며 행동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스승님의 법문인 관음 법문은 단순히 죽음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부분을 읽을때마다 저는 감동합니다

스승님의 법문이 얼마나 특별한지 깊이 깨달았으니까요 얼마 전에 제 동료의 친척이 구강암으로 죽었습니다 죽을 때 암이 갑자기 돌발했어요 너무 아파서 그는 침대에서 딩굴었어요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들 대개가 인생의 전부를 명예를 찾고 이득을 얻는데 보냅니다 극소수만이 조용히 앉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대할때 매우 두려워 합니다

우리가 지은 업장(응보)에 의해 끌려 가면서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릅니다 스승님은 죽음을 대하는 방법을 상세히 가르쳐 줍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삼가 경의를 표하며 스승님께 강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중국 사람들은 영적 수행 전통이 있습니다 칭하이 스승님이 포모사에 온 다음부터 수행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늘 영적인 수행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경전들을 읽어보면 도덕과 영적 수행에 관한 가르침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에게 영적 수행을 상기시키는 경전들이 많아요 노자와 장자 공자,맹자, 묵자가 쓴 책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황제도 있고 요왕과 순왕 등등도 있습니다

또 더 많이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수행자들이 더 많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접할수 없는 큰 스승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책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죠 혹은 그들이 생존시에 제자들이 가르침을 적어놓지 않았거나 오늘날까지 그 책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를 들어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고대의 수행자들과 대화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다른 세계에서 봅니다 『영적 수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삭발을 하고 출가승이 되어 갈색이나 검은색의 법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산속 동굴에 숨어서 세상 사람들과 일체 접촉하지 않고 산나물을 먹거나 하루 한끼를 먹고 짚으로 만든 옷과 신을 신고 오두막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수행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수행』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이런 이미지를 마음에 떠올립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않됩니다 만일 모든 수행자가 삭발을 하고 출가승이 된다면 가족의 대를 이을 아이들이 하나도 없을겁니다 어느 쪽도 할수없어요 사람들 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는 일할 사람도 필요하고 나라에는 정치가와 대통령,경찰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관음 법문을 권합니다

이 관음 법문을 수행하면 출가승이 될 필요도 없고 동굴 속에서 살 필요도 없으니까요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면서 의무를 완수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생사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책임을 잘 완수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불교 용어로 『인과 관계』 또는 『업장』이라고 합니다

이생에서의 정업은 우리의 과거 생에서 지은 행동의 결과입니다 과거 생에서 지은 선행이나 악행들은 이생에서의 행동과 사회적 신분 생활방식을 보고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 말하길 『정업(응보)는 바뀔수 없다』고 한겁니다

공자와 맹자도 모두 우리는 세상에 머물며 책임을 완수하고 동시에 영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느날 공자는 그런 은둔자들이나 세상에서 숨어 사는 사람들을 비웃었어요 그들은 스스로 가로 막고있다고 했지요 그는 우리 자신의 모든 면을 계발하고 싶다면 사회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린 도망갈수 없어요 우리가 학교를 무단 결석한다면 쓰기를 배울 수도 없고 지식도 얻을수 없지요,그리고 선생도 될 수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진정한 영적 수행 방법은 세상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불법(참 가르침)은 세상법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공자와 맹자만 그렇게 말한게 아닙니다 불교도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세요 그가 잠시 숨기는 했어요 49일 동안 안거를 했으며 10년 넘게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진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것은 그가 숨은걸 뜻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진리를 찾고 공부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는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는 중생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영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돌봤습니다 영적 수행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계율과 명상』 그리고 지혜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도』와 『도덕』을 강조했습니다 『도』가 뭘까요? 도는 길을 뜻합니다 우리가 찾는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도덕』이란 세상의 의무를 완수하는 겁니다

공자도 역시 『인,의,예, 지,신』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맹자도 비슷한 말을 했지요 그는 『자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우주적인 사랑』이라 했어요,그렇죠? 사랑과 같은 겁니다 자비가 없다면 사랑할 수 없지요 자비가 없다면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자비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 똑같은 걸 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도 자비롭고 인자하라고 가르쳤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같은걸 가르쳤습니다 맹자는 수행자는 덕스러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도덕은 불교의 계율과 같은 겁니다 동정과 자비는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맹자는 『호연지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이『호연지기』를 얻지 못하면 계율을 훈련하는 것 뿐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지요 이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계를 지키고 선정에 들면 지혜를 얻는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계』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도둑질 간음,거짓말,도박 음주 등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이란 명상 중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대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호연지기』의 뜻을 물었더니 그는 설명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그는 이 호연지기를 수행한다면,이것을 이해하고 얻는다면 그것이 곧 하늘로부터 땅에 이르는 모든걸 포함하는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맞지요? 『맹자』를 읽어 봤나요? 네!내가 맞나요? (네)그래요?고마워요!

맹자도 설명하지 못한 이 『호연지기』는 무엇일까요? 맹자는 대지혜를 지닌 수행자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유명하죠 그와 공자는 유가에서 가장 유명한 스승입니다 맞습니까? 하지만 그조차 호연지기의 뜻을 설명할 수 없었어요 이 정신이 공기라면 설명할 수 있었지요 공기도 천국에서 지구까지 어디든 있잖아요,그렇죠? 공기는 물 속에 있고 바위 속에 있으며 나무 속에도 우리 육신 속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공기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공기라면 그가 숨쉬는 공기라고 말했겠지요 그러니 그건 아니에요 그걸 우리 몸 안에 기나 기공에서 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게 우리 몸 속 기나 에너지라면 그가 설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맞죠? 왜냐하면 기공을 하는 모든 이들이 어느정도 기나 에너지를 수련한 뒤에 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걸 아니까요 맞나요? 맞아요? (예) 우린 기가 여기저기 온 몸을##도는 것을 느낄 겁니다 그걸 『인간의 기』라 부릅니다

그건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이 호연지기는 아주 거대하니까요 그건 육신 속에 갇혀 단순히 돌아다니거나 몸 속을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 난 기공을 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나 역시 전에 기공을 했습니다 난 프로는 아니에요 전문가가 아니지요 조금 해 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힘을 사지나 우리 손으로 보내서 손이 단단하고 힘이 넘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우리가 손으로 사람을 치면,그들은 분명히 다칠 겁니다 그래서 난 그게 온화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만뒀어요 손이 너무 강해지면 무심코 사람들을 해칠까봐 난 두려웠습니다 그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하지 않아요 난 그걸 안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게 있다고 알려주는 거죠 그래서 맹자가 말한 그 고귀한 정신이 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는 아직 너무 유한하니까요 그걸 꺼내서 여기 넣고 어떤 행위나 일을 할 순 있지만 그건 그다지 온화하지 않습니다

『호』란 말은 광대함을 뜻해요 그건 도교에서의 『태극』과 같은 뜻을 지닙니다 『태극』도 아주 거대한,가장 커다란 궁극의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광대함과 같은 거지요 앞에서 우린 유교와 도교가 다른 말을 쓴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그들이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호연지기는 대단한 겁니다

적어도 노자가 말했던 『태극』만큼 위대한 겁니다 아니면 『태극』만큼 크고 거대한 무엇입니다 그건 평범한 공기나 내면의 기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몸 속에는 정말로 기나 에너지가 존재합니다 그게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몸 속에는 소위 말해 두 가지 기가 있습니다

맹자가 말했던 기는 두번째 기라고 난 생각해요 첫번째는 기공에서의 기입니다 우린 그걸 느끼고 통제할 수 있으며 우리 온 몸에 그걸 보낼 수가 있습니다 에너지로 쓸 수 있지요 기공을 하는 이들은 때론 칼에 의해서 다치지 않습니다 그가 기를 내면에서 외부로 밀어내면 자기 근육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럼 때려도 아프지 않을 겁니다 그를 찌르려고 유리 조각을 쓴다해도 그를 해칠 수 없어요 사실입니다 그래요 또 큰 철봉으로 몸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근육이 아주 단단해졌으니까요

우린 기를 모두 여기 모아서 쇠와 칼도 뚫을 수 없는 정도로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지요 이 기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어떤 기지요? 나면서부터 우리가 이미 가진 겁니다 누구나 그게 있어요 이 기는 우리 몸의 순환을 도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독을 내보내기 위해 있는 겁니다 땀이나 눈물처럼 그건 우리의 배설계지요 지배인처럼 그게 우리 몸을 돌보지요 이런 기 없이 우린 못 삽니다

우린 처음부터 그걸 안 건드려야 합니다 그게 더 낫지요 그걸 건드리면 우린 자연스럽게 정돈된 시스템을 방해하는 겁니다 이런 걸 봤어요 말하지 않을게요 난 끝까지 기공을 했던 몇몇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은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하지 않을게요 여기선 말 안할게요 그들을 몰아냈다고 할까봐 두렵군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지혜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 기공을 하는 사람들은 지혜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그들의 몸이 더 건강하고 칼로 다칠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여는 데 기공을 쓸 수 없습니다 이 기는 내면에 있고 몸에 속하니까요

그건 물질적인 에너지에 속합니다 통제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기가 있습니다 두번째 기는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히 존재하는 거죠 그건 첫번째 기를 통제합니다 따라서 첫번째 기조차 그것의 통제를 받습니다 첫번째 기는 없어도 모든 생명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기가 없으면 무엇도 존재 못하지요 그것이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의 기입니다 몇몇은 자정 이후에 밖에 나가서 자연의 공기를 들이마시며,그것을 『호연지기』로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렇다면,맹자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그걸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울락(베트남)에 호연지기가 천국과 지구가 합일하는 자정의 자연 공기라고 여기는 몇몇 영적인 수행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때 숨쉬러 나가야 한다고 믿지요 그럼 그들이 『호연지기』를 훔칠 수 있으니까요 난 그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해요 맹자가 『호연지기』을 묘사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그게 아주 크고 광대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게 공기라고 하겠어요? 따라서 그건 뭔가 다른 것이 틀림 없죠 그래서 고대 사람들의 말을 후대 세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나 역시 전에는 잘못 생각했었죠 호연지기가 공기일 거라 생각했어요 깨닫지 못했던 때이니까요 그래서 한밤중에 진지하게 밖에 나가 반쯤 감긴 눈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곤 했죠 고된 일이었어요 힘들었지만 얻는 게 없었죠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나서 맹자가 말한 그 『호연지기』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답할 수 없죠 그냥 알 뿐입니다 그게 뭔지 알고 싶다면 여러분 스스로 알도록 도와줄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이를 알고 난 후. 누군가 또 여러분에게 물어보면 여러분 또한 어떻게 설명할지 모를 겁니다 그러나 대략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어요 완벽히 설명하지 못할 뿐이죠 태극이나 도를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것처럼요 노자는 도는 형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도 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호연지기는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사랑의 힘, 에너지라는 겁니다

이로서 만물이 생겨나고 만물이 존재하며 그 본연의 특성을 발현하지요 유교 경전에서도 우리의 본연의 품성은 이 심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성,즉 진성은 천지에서 받는 것이라고 하죠 공자는 또한 말하길 참된 본성을 앎으로서 천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죠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불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죠? (네) 그래요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참된 본성은 같은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는 『일단 자신의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되리라』 라고 했던 거죠

유교에서는 일단 자신의 본성을 보고 이해하면 천하를 이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주를 이해할 것이라고요 같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나요? (네)

자, 석가모니 부처는 말하길 관음 법문이란 것이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를 『내면에 귀기울여 자성을 듣는 법문』 이라 부르죠 맹자는 이 호연지기는 아주 크고 아주 깊어 형언할 수 없지만 모두가 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심오하기에 그 자신만이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지요 그냥 이를 안다고만 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답하길 자신은 선악을 알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가에서 사람들에게 군자의 도덕과 성품만을 가르친 게 아니란걸 알 수 있지요 그 보다는 호연지기를 기릅니다

그래서 내가 전에 강조하길 5대 종교는 모두가 원래 같은 것을 수행했다고 한 거죠 모두가 최고의 힘을 기르고 자신을 수련하여 우주의 궁극적인 힘과 하나가 되려 했습니다 그런 후에야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지금 우린 한낱 인간으로 하늘에 대해선 알지 못하죠 우리가 호연지기의 법문을 수행하면 그 호연지기 안의 참된 자성을 깨닫게 되어 『우주와 합일』이 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린 이 사회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사는 법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완전하지요 자선도 베풀고 오계도 지키며 열심히 수행할 의지도 있지만 선정이 부족하죠 그래서 지혜가 없지요 이제 우리는 이 호연지기란 무엇이며 얼마나 위대하기에 맹자도 설명할 수 없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이는 창조의 힘, 우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모두가 도를 얻을 수 있다 했어요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부처도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나요? 예수 그리스도도 『지금 내가 한 일을 장차 너희도 할 수 있다』라고 했지요? 『너희도 나만큼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 점을 간과한다면 우린 모든 종교가 다른 말을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깊이 연구 비교해보면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난 모든 종교가 원래 좋다고 한거죠 그러니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 호연지기는 묘사할 수는 없어도 느끼고 체험하고 얻을 수는 있습니다 호연지기를 얻기 위해선 관음 법문을 수행해야 하지요 관음 법문은 『호연지기의 법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니죠 그냥 이름만 다른 겁니다

그럼 맹자는 이를 왜 『기』라 했을까요? 이는 일종의 에너지, 『기』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진동입니다 그래서 『기』라고 부르죠 고대 사람들도 우리처럼 적당한 말이나 이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영적 체험을 말하고 싶을 때 맞는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사용했던 겁니다

나도 때로는 관음 법문을 『죽는 법문』이라 하기도 하기도 하고, 『지혜의 법문』이라 하기도 하죠 어떻게 부르든 그 형언할 수 없는 걸 제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허나 이 법문은 어떻게 부르든 우리가 그 형언할 수 없는 것,말로 할 수 없는 도를 얻도록 도와줄 겁니다 이 기는 항상 있어요 온 우주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여 쓸 수 없는 겁니다 만약 이 『기』로 우리의 정업, 이 세상의 정업(응보)를 바꿀 방법을 말해주는 현명한 이가 있다면 우리도 이 창조력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창조주의 비밀을 훔칠 수 있다면 우리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정업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을 바꿔야 할까요?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고 우리 자신이 너무 많은 고통을 겪는 걸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나은 분위기를 만들어 모두의 삶이 더 쉬워지고 더 견딜만하게 만들고 싶은 겁니다 이것이 영적 수행의 목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