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모든 수단을 써서 채식을 하라』
칭하이 무상사 강연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톤
1991년 5월19일

모두들 어떠세요?
음식이 괜찮았어요?
식사 했어요?
아주 훌륭했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그럼 왜 웃지요?
(아직도 음식 얘기를 하니까요) 그럼요!물론이죠 내 말은,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요? 우린 식량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가 평화를 맺고 모두 식량 때문에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킵니다 자,뭘 듣고 싶지요?

(명상이요) 명상이요 좋아요! (내면의 평화요) 내면의 평화요 글쎄요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도 얻습니다 명상을 하면 내면의 평화를 얻습니다 어떻게 명상하는지 아무도 모르나요? 예? 여러분 알지요! 모두들 알고 있어요 여러분은 매일 다른 걸 명상합니다 누구는 돈을 명상하고 누구는 먹을 것을 누구는 남자 친구를 누구는 여자 친구를 누구는 사업을 누구는 아이들과 아내 남편 세금을 명상하고 때로 명예,지위, 권력을 명상하다가 사업이 잘 안될 때 간혹 신을 명상하죠 그 명상들이 모두 실패하면 그때 잠시 신을 명상할 겁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다른 종류의 명상을 알려줄 겁니다 그 명상으로 인해 이생의 어려움들의 대부분을 극복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너무 많은 기법이나 너무 많은 주제를 명상할 필요가 없어요 그대신 하나만 명상하면서도 많은 것을,혹은 모든 걸 얻을 겁니다

성경에 쓰여 있듯이요 『먼저 신의 왕국을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성경은 귀에 익숙하죠 그렇죠?

다른 경전들 보다는 성경에 더 익숙합니다 아니면 나도 많은 다른 종류의 종교 원문에 익숙합니다 지금 그저 거기 앉아서 온 종일 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신과 합류하고 신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늘 신의식 속에 있지요 신의 왕국이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신의 왕국은 관찰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다고 말했으니까요 만일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요? 여전히 명상해야합니다 신의 왕국이 관찰로 오는 게 아니라고 다시 말해 명상을 통해 오는 게 아니라고 해도요 뭔가를 관찰할 때는 그 대상을 향해 정말 주목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그것 또한 명상과 묵상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명상이 우리에게 신의 왕국을 주는 게 아닙니다 단지 신의 왕국을 좀 더 인식하게 해줄 뿐이죠

신의 왕국은 명상이나 명상에 의해, 명상과 함께, 명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명상을 함으로써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신의 왕국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옛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다른 곳에선 이렇게 말하죠『아버지께 기도할 때는 밀실이나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너희 기도를 은밀히 보시고 상을 주실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은밀히 기도를 하죠?
성경은 이교도들처럼 큰 소리로 기도해선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네,위선자나 이교도들이 하듯이 크게 떠들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라고 합니다 비법은 그겁니다 그래서 우린 대개 기도를 많이 하고 아주 크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들리게 합니다 신만 빼고요 그래서 대개의 경우 이뤄져야 할 소원이 성취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하지 않기 때문일거에요 성경을 믿는다면 뭘 해야 할지 좀 더 신중히 공부해야 합니다

아주 믿을만한 연구와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예수가 많은 나라들을 다녀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특히 인도와 티베트에서 그 당시 여러 종파의 많은 깨달은 스승들과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가서 정말로 스승을 찾으면 정말로 스승을 찾으면 명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명상을 가르쳐 줄 겁니다 그냥 길을 가다 아무나 골라서 스승으로 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실로 찾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스승들은 모두 명상수행을 하고 유명한 티벳 라마승도 대부분 명상을 합니다 아마 다른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명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곳에 십수년 넘게 있었다면 그런 소위 스승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그는 아마 전에는 그에게 주문을 가르치거나 요가 운동을 하거나 물이 우유가 되고 물이 포도주가 되는 등 그런 마술을 가르치는 자격이 안 되는 스승을 만났을 겁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히말라야의 소위 명상하는 스승을 만나기 전인 초기에 배웠을 겁니다 그러나 드디어 그들을 만났지요 그런 요술들을 할 줄 알아도 어떤 종류이든 명상법도 해야 합니다 비록 어쩌다 한번 일시적으로 한다 해도 말이에요

자,예수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명상을 했을 겁니다 그는 명상법을 배웠을 겁니다 아니면 그가 어떻게 광야에서 40일 동안 쉬지 않고 칩거할 수 있겠어요? 지금 갑자기 혼자 광야에 들어가 40일씩 칩거할 수 있겠어요? 사전에 준비와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관음 법문이라 부르는 명상법을 수행하는 우리들은 즉 내면의 말씀과 내면의 소리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 또는 신의 소리를 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선칠이나 한달 동안 안거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보통이지만 명상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5일은커녕 5분도 못 앉아 있습니다 해보고 싶다면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5분 동안 앉아있어 보세요 그러면 이미 스승이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가 40일 동안 명상하러 광야에 갔다는 걸 안다면 그가 명상법을 훈련 받았다는 힌트나 결론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동안 내내 명상을 해왔고 아마 그것이 세상에 나와 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했던 마지막 안거였을 겁니다 대부분의 스승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나 십자가를 질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지 전에 그렇게 합니다

일종의 마지막 순간이죠 아침에 자명종이 울릴 때 즉시 일어나지 않지요 가야 하는 줄 알지만 침대의 온기를 마지막으로 즐깁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스승들은 깨달은 다음 신이 그들에게 그 시대의 예언자나 당대의 메시아가 되는 임무를 맡겼다는 걸 알면 얼마 동안 안거에 들어갑니다 앞으로 닥칠 힘든 과제를 직면하고 신이 맡긴 험한 길을 걷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준비하는 겁니다

부처의 생애에 대해 아시죠? 메시지를 전하러 나가기 전에 그도 49일 동안 안거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도 49일 동안 했을 겁니다 왜 49일 일까요?

7곱하기7이거든요 많은 소위 신비주의 학문을 연구해보면 사람들이 7이라는 숫자를 믿지요 그들은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만들고 7일째 되던 날에 쉬었다고까지 하지요 그렇죠? 어쨌든 모두 합쳐서 7입니다 혹은 피라미드에 남아있는 이집트 수리 정보에도 7과 관련된 걸 언급했어요 7이 좋은 숫자이며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진 숫자라고 믿고 있어요

어떤 영적 시도를 하든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숫자일거에요 그렇죠? 그래서 부처가 안거에 들었을 때도 7일 곱하기7, 49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선을 할때는 주로 선칠을 합니다 가장 무난한 전통처럼 되어서 아무도 7일을 문제삼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예수도 49일 동안 들어갔다고 봐요 아니면 그가 전통을 깨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그가 말하길『아니 왜 9일이나 더하지? 충분히 했어』하면서 걸어 나와 버렸죠 그는 메시아라는 명성에 개의치 않았어요 해야 할 걸 했어요 그는 에고가 아주 적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마도 40일째 안거에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생각했어요 『와!9일 더한다고 뭐가 다르겠어 어쨌든 난 깨달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빠를수록 더 좋아』 하지만 내 말뜻은 아마 알다시피 예수가 전에 그렇게 명상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그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떻게 40일 동안 그가 명상하지요? 부처나 모하메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하메드의 생애를 공부해보면 그도 조국이나 신도들 앞에 설교하러 나서기 전에 안거를 했다는 걸 알겁니다 그들 모두가 똑같은 행동을 했어요

또 우연히 나 역시 그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같은 일을 했지요 내 말은,안거를 먼저 한 뒤에 나갈 작정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모든 일이 그저 그렇게 되어야 하는 방식 대로 됐지요 자연스럽게요 마치 배 고플 때 먹고,피곤하면 자듯이 말이에요 따라서 내면의 평화를 지니고 싶다면, 만족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서 구했던 내면의 평화를 얻으려면 다른 모든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특별한 만족을 우리는 지녀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구했던 걸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요구했던 것 그 숙녀나 친구가 요구했던 것은 요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며 우리가 얻어야 하고 갈망해야 할 유일한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평화를 얻음으로써 다른 모든 걸 얻을 테니까요 그것도 신의 왕국의 이름입니다

모든 기적과 모든 만족 속세와 천국의 모든 갈망의 충족은 신의 왕국에서 오며 영원한 화합과 영원한 지혜 우리의 전능한 힘을 내면으로 깨닫는 데서 옵니다 이를 얻지 않으면 우린 이 세상에서 결코 만족을 찾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많든 우리가 어떤 지위를 지녔든지 이 세상이 우리 발 아래 얼마나 많은 걸 제공했든지 관계 없이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했지요 『전세계를 얻었어도 그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또는 신의 왕국을요 왜냐하면 영혼은 신의 왕국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영혼은 신의 왕국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신의 왕국은 우리 안에 가까이에 있지요 따라서 그걸 찾으려고 히말라야로 갈 필요는 정말 없습니다

우린 교회에 기도하러 가겠지요 그게 도움이 되고 우리 일상 스트레스에 다소 위안이 된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신의 왕국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단 신의 왕국을 찾았다면 다신 그걸 잃지 않아요 또 다른 모든 게 우리 통솔 하에 있지요 그래서 부처는 속세의 왕국을 버렸지요 그래서 예수는 유대의 왕 자리를 거절했고요 표면상으로 말이에요 그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정말 그를 유대의 왕으로 만들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그가 거절했죠

그는 말했어요『내 왕국은 지상에 없다 내 왕국은 천국에 아버지와 함께 있다』 또 그는 심지어 모두에게 권했습니다 『너희의 보물을 지상이 아닌 천국에 두어라』 왜냐하면 여기서는 물건이 손상되며 파괴될 테니까요 그가 뜻했던 바는 우리의 모든 주의와 사랑을 신을 깨닫는 데 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희의 모든 영혼과 모든 마음,모든 힘을 다해 신을 사랑하라』 하지만 성경의 이런 모든 말씀을 이해하긴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시 말하지요 『보기는 하지만 이해하지 않고 듣기는 듣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요? 우리 대부분은 성경을 읽을 때 단어만 읽을 뿐이고 성경의 진정한 효과를 이해조차 못합니다

또 성경은 때때로 역설적인 말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지요 하지만 난 성경이 역설적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후대의 오역이라고 믿죠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지 않고 성경의 진정한 뜻을 명상하지 않고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이해한 바대로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는 통역가의 에고로 오역된 거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첫 장에서 신은 말했어요 『내가 들판의 모든 풀과 아름다운 열매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너희의 고기니라』

따라서 거기서 고기는 양식을 뜻합니다 음식만을 뜻하지요 요새 여러분이 먹는 비프 스테이크나 돼지고기 요리 같은 고기를 뜻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뒤에 다른 해석에서 그들은 생각합니다 『고기란 고기지』

또 진짜 뜻을 신경쓰지 않은 누군가가 그것을 고기로 해석했겠지만 사실 원문에서는 그게 식사를 뜻한다고 난 들었어요 그 당시『고기』는 먹을 것을 뜻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뜻하는 고기를 뜻하지 않지요

또 예를 들어 인도에는 아주 달콤한 음식이 있는데 그걸 달콤한 고기라고 부릅니다 인도에 가서 그걸 먹은 사람은 내 말뜻을 알 거예요 달콤한 고기요 이제 그걸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그건 달콤한 고기가 되지요 그건 맞아요,달콤한 음식을 뜻하지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만일 인도에 가본 적이 없거나 그게 뜻하는 바를 정말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걸 고기라고 하겠죠 그럼 인도의 스승들 모두가 지금껏 달콤한 고기를 먹은 겁니다

그리고 이제 누가 번역하다가 말하겠지요 『와! 말도 안 돼! 고기가 어떻게 달콤해 아마 그걸 잘못 썼겠지 지방이 적은 살코기를 뜻했을 거야』 또 어쩌면 그 번역가가 이중 안경을 썼는데 그걸 잘못 읽었겠지요 때로는 사람들이 손으로 그걸 쓰는데 어쩔 땐 알다시피 여러분이 그걸 잘못 볼 수 있잖아요 대학에서 공부하면 때때로 교수가 시험을 치지요

그가 여러분 귀에 단어 하나를 속삭이며 다음 사람에게 그걸 속삭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말이에요 그럼 15번째나 50번째까지 돌아가면 전부 변하지요 전체 의미와 단어가 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시험 쳐봤어요? 이제 내 말뜻을 알겠지요 그러므로 2천년 전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대에서 몇 분 이내에 단어 하나가 첫번째 사람에서 15번째나 50번째 사람에게 가면 변하는데 수천 개의 단어들이 2천 년 뒤에 어떻게 그들의 순수성과 원형을 보존하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이런 어둠 속을 기어가며 사람에 의해 번역된 신의 정확한 뜻을 찾고자 하는 건 아주 불쌍한 일이죠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논리적인지 찾고 온 힘과 신심을 다해 깨달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적어도 성경의 올바른 뜻과 올바른 원문을 구하고자 말입니다 또 우리가 옳은 걸 찾도록 신께 기도해야 합니다

난 더 젊었을 때 아주 열심히 기도했어요 매일 신에게 기도했죠 매일 성경과 함께 잠을 잤어요 그럼 기분이 더 나았죠 어울락(베트남)에 있었을 때 난 불경에 기도했어요 유럽에 있었을 땐 불경이 없어서 카톨릭 성경에 기도했지요 또 매일 적어도 한 장은 읽었어요 또 교회에 가면 다른 건 없고 단지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느님 당신이 계시다면 제게 보여주세요』 그게 다입니다

『당신을 알게해 주고 당신을 보여주세요』 난 다른 그 무엇도 구하지 않았어요 부처에게도 똑같이 기도했죠『정말 계시다면 어디 계신지 제게 알려주세요』 아마 이런 기도와 신실함 때문에 내가 신을 알고 부처를 알았겠지요 어쨌든 이제 우린 좋은 친구에요 신은 항상 거기에 있으며,있어왔고 항상 있을 겁니다

우리가 신을 무시하는 거지 신은 우릴 알아요 우린 매일 우리 삶의 매 초,매 순간을 신 안에서 삽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우리는 신이 모든 걸 돌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머리카락 한 올 빠지는 것도 신의 결정이란 걸 정말로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요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을 체험하고 즉 신의식을 체험한 뒤에야 그걸 알고 믿게 됩니다

내 말은,진정으로 신의 왕국을 알고 진정으로 순종하면 더 이상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이 무력하고 신이 우주를 운영하는 자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니까요 그럼 자유 의지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겠지요 자유의지는 여러분이 행하는 자라고 믿도록 합니다 그걸 믿는 건 자유며 아무도 막지 않아요 하지만 여러분에겐 신이 우주를 운영하는 자라고 믿을 자유의지도 있어요

또 신이 우주를 운영하는 자라고 믿을 이런 확신을 가지려면 우리는 바른 방법으로 신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유의지가 제 멋대로 날뛰겠죠 우린 온갖 것을 다 믿습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세뇌된 것들을요 우린 사회의 관습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될 일』과『안될 일』 『할 일』과 『안 할 일』을 믿으며 신을 믿지 않아요

부정적인 힘은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끔찍하고, 본래 죄 중에 태어나 죄 중에 죽는다고 하죠 예수 외에는 구원자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린 늘 죄인이며,예수처럼 될 수 없다고,또는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왜 그렇지요?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신은 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건 적어도 우리가 신과 비슷하단 겁니다

우리가 신의 형상이라면 왜 죄가 있어야 하죠? 누가 누구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면,그건 아주 닮았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이제 우린 신과 정말 닮았으니 우리는 다름 아닌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