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잠자고 있는 영원한 부모인 무한한 비현현에 대해 학자들은 우리들이 자주 그렇게 생각하듯이 영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불꽃이 태어나고 그 안에서 보존되는 순수한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 긴밀한 추론 및 구분이 있는데 계속 나가다 보면 학생들에게 명확해 지겠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첫 번째 격언은 덧붙여 말한다 『시간이란 없었다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기에』여기서 다시 한 번 시간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한 학자들에게 난해한 문구가 있다 순전히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적 어의는 존재의 연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존재에 대한 측정』인 것이다 지속되는 존속 중에 아무런 형태의 변화나 활동의 변화 정도의 변화 정신적 물질적 변화가 없는 것이 시간이 없는 영원이다

사실 시간은 『변화의 측정』에 불과하다 변화 없이는 앞서 말한 것에 부합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순수한 존재는 시간을 현현하지 않는다 시간이란 무엇이 되는 혹은 변화의 결과이며 항상 변화나 무엇이 된 것으로 측정되어 지는 것이다 현대의 한 교과서에서 발췌한 아래 문구가 순수한 연속성과 시간의 개념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다

『순수한 연속성이란 사물의 변화의 진행 상황에 관계 없는 개념이다 반대로 시간은 명백한 천상 물체들의 회전이나 지구가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 같은 특정 현상들로 점철되는 어느 연속의 부분에 대한 섬세한 측정인 것이다 우리의 시간 개념은 운동 상황에서 유래한다 특히 규칙적이며 안정된 천상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은 그들의 완전한 상호 간의 근접성들로 인해 그것과 공존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이라 불리는 지속적이며 연속적인 수량에 대한 정확한 측정 도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연속적인 움직임에 대한 인지된 수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천상의 물체들이나 지구의 움직임에 근거한 시간은 흔히 그런 움직임에 기초한 도구들인 손목 시계나 벽시계 해시계 등으로 측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깨어있는 상태와 꿈에서 우리의 마음상태와 생각 그리고 심상 등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한다 그런 변화의 인식으로 우리의식에 나타나는 외부세계의 변화나 우리 마음상태의 변화없이는 우리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가설의 영원 불변의 현실이 된다 외부세상은 누구를 위해서도 누구에 의해서도 존재하거나 현시되지 않는다

첫번째 격언에 묘사되어진것처럼 그것은 무의식과 꿈없는 잠속에 싸여있다 그런 현실이기에 시간은 존재할수 없다 -시간없는 그 자체로 존재할 것이다-시간이 없음은 변화가 다시 시작될때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학자는 우주의 밤의 잠에 빠진 영원불변의 근원에 대한 첫번째 격언의 필연적인 진리문구를 이해할 것이다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의 속성과 영원불변한 근원의 우주의 밤동안 변화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다른견해를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 학자는 가설의 무한한 실존과 변화의 부재를 이해할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순수한 존속과 시간의 부재를 가정해야만 한다 이 결론에서 논리적인 회피란 있을수없다

첫번째 금언은 더 명시하길: 『형태가 그자신을 재현하지 않았으므로 사물은 없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회피할수 없는 확신을 얻는다 사물이란 『분리된 실체와 분리가능하거나 구별가능한 생각의 대상으로써 존재하는것 또는 존재한다고 생각되는것』이다 모든 사물은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형태는

(1)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로부터 구별되는것으로써 어떤것의 모양 또는 구조 그러므로 어떤것의 형태나 외형

(2) 감각이나 지성을 통해 감지되는 어떤 것의 형태화 또는 운동양식

(3) 개념을 구성하는 특성들의 집합 또는 존재하는 것이 그렇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내부구조

엄격히 말해 사물은 그것을 다른것으로부터 구별시키는 특성 속성,특질의 구성으로 생각되어지거나 상상되어질수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감각과 지성으로 그렇게 구별되어지고 인지되어지기 위해 형태로 화현돼야 한다 영원불변한 근원은- 무한한 비현시- 그것이 비현시 상태에 있을 때엔 분명한 형태로 생각되거나 현시의 어떤 특정한 특성, 특질 또는 속성으로 표시 또는 나타내어질 수 없다 영원불변한 근원이 현시의 덮개를 가질때 그것은 사물의 모습으로 화현하기 시작한다 -이 사물들은 각각 다른 현시된 사물로부터 구별되는 어떤 특성,특질 속성과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형이상학과 철학에서 자명하다 비현시는 어떤 특성 특질,속성의 세트를 (핵심적 본질에서) 가지거나 나타낼것으로 생각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중에 사물의 현시에서 반대되는 특성, 특질 속성과 구별됨으로써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현시는 반대되는 두개의 특성 특질,속성의 세트를 (핵심적 본질에서) 가진다고 생각될 수 없다 『반대인 것은 서로 상쇄』되고 그것은 『모순되는 조건』이기때문이다

특성, 특질, 속성을 가지는 대신에 -또는 형태, 이 단어의 모든 의미에서- 비현시는 『그것의 현시에서 형태, 특성, 특질, 속성의 무한한 현시가능성』또는 『그것의 현시된 사물에서 형태, 특성, 특질, 속성의 무한한 현시가능성』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무한한 비현시는 물상이나 그것 자체로 또는 무한한 상징으로 간주될 수 없다 계몽된 신비주의 스승이 표현한것처럼 이것은 『모든 추측이 불가능함을 고려할때 무소부재하며 영원하고 무한한 불변의 법칙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개념의 힘을 초월하고 인간의 모든 표현과 그 유사물에의해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각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것은 생각할 수 없고 말해질 수 없다』

우주의 밤동안 무한한 비현시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무한한 비현시로 보여지는 것이다 『형태가 그자신을 재현하지 않았으므로 사물은 없었다』 이 결론에서 논리적 회피는 있을수 없다 첫번째 격언은 더 명시하길: 『움직일 사물이 없었으므로 움직임도 없었다』 이 말은 설명이 거의 필요없다 거기에는 존재하는 사물도 움직일 사물도 없었다 그리고 무한의 모든 움직임은 물상을 통해 의해 또는 그속에 있다

모든 움직임은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가 없는 곳에는 움직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무한한 비현시는 모든 힘을 가졌기에 무력하게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 자체가 추상적인 움직임이므로 부동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제한된 관점에서말할때 영원불변의 근원은 그것의 무한한 비현시 상태에서 상대적인 움직임과 비교해서 절대적인 휴식의 상태같은 무한한 움직임의 상태에 거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격언에는 더 명시되길: 『양극을 나타내는 사물이 없었기에, 거기엔 반대되는 속성이 없었다』 모든 철학도들이 알고 있듯이혹은 알아야 하듯이 모든 사물은 고유의 속성과 특성의 결합체이다 각 속성과 특성은 양 극단의 한 부분 반대적인 것의 일면을 구성한다 사물로서의 한 가지 속성혹은 특징이 주어져 존재화되면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다른 『극』이 뒤따라 필연적으로 생성된다

이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처음에는 반대되는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추구는 그것을 드러낼 것이며 그것의 필연적 존재는 논리적으로 예측될 수 있다,반대 되는 것엔 이런 것이 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뜨거움과 차가움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 위와 아래 낮과 밤 빛과 어둠 길고 짧음 등. 우리의 언어가 발견된 속성, 혹은 특성의 반대되는 용어를 규정하는 일에 실패했을지라도 반대말은 무나 유같은 접두어를 붙여 표현할 수도 있다

어떤 사색가들은 무한이라는 단어의 반대적 속성으로 유한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 용어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 무한이라는 단어는 한계와 경계의 부재 혹은 형상이 없음을 가리키며 크기와는 상관없이 어떤 한계도 속박도, 형상도 아니다 무한한 무를 이미지로 형상화하거나 그것이 무엇이든 객관적 실재성 모양 속성 혹은 특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러므로 무한의 진정한 반대말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반대되는 특성 혹은 양극이 존재화되기 시작할 때 가능하다

무한한 무(무)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배재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의 혹은 여러 속성과 특성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무한한 비현시 그자체- 영원한 부모의 본질 안에는 이원성 혹은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첫 번째 격언의 귀절들을 탐색하길 원할 때 다른 곳처럼 여기서도 학생들은 무한한 공간이란 상징을 통해 무한한 비현시를 생각하도록 인도된다

첫 번째 격언은 마침내 이렇게 끝을 맺는다 『영원한 부모는 원인없고 불가시적이며 변화도 없고 무한하며 무의식과 꿈 없는 잠 속에서 쉬고 있었다 영원한 부모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실재든 비실재든』 영원한 부모는 원인이 없으며 스스로 존재한다 무는 모든 만물을 만들어 내는 영원하고 근원적인 존재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은 필연적으로 원인이 없어야 한다 무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건 없다 또한 무에서 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에서 무를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