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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십자회 운동의 신비적 형제애는 부득이하게 많은 부분들이 비밀로 행해졌습니다 이것의 뿌리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파라오 투트모세 3세는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원칙에 의해 입문자들의 첫 번째 비밀 학교를 세웠지요

현대 연구가들은 장미십자회 운동이 1607-1616년 독일 신교도들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익명의 성명서 3개가 출판 되었습니다 그 3개의 문서는 『형제애에 대하여』 『형제단의 고백서』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의 결혼』입니다

장미십자회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존재의 근원은 신임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믿었습니다

채식은 개인의 진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고 과학적 신비적 윤리적으로도 타당한 것입니다

장미십자회는 지성에서부터 신비 의식 혹은 깨달음에 이르기 까지 깨우침을 밝히기 위해 고대의 지식을 함께 나누는 듯 보여집니다 오늘은 장미십자회 비경의 현명한 가르침들을 함께 하겠습니다

장미십자회 비경

영원한 부모

장미십자회의 비경에는 창조에 대한 이러한 잠언이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잠언 1. 영원한 부모는 우주적 밤의 고요 속에 감싸여 있었고 빛은 없었다 성령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지 않았기에. 변화는 다시 시작되지 않았고 형상도 다시 스스로 나투지 않아서 그곳엔 시간도 사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행위의 대상이 없었기에 그곳엔 행위도 없었다 음양을 나타내는 사물이 없었기에 그곳엔 이원성도 없었다 영원한 부모는 원인없는,나뉠 수 없는,변화없는 무한한 무의식 속에서 꿈 없는 잠을 자며 휴식하고 있었다 영원한 부모 이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창조에 관한 첫번째 잠언에서 장미십자회 수련생은 『만물이 그로부터 유래한』 만물의 무한한 근원인 영원한 부모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됩니다 장미 십자회는 이 영원한 부모- 무한한 무의 상징을 안과 밖에 아무것도 없는 원으로 표현합니다 원은 한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원이 무한을 나타내는 최선의 상징일지라도 무한성을 유한한 형태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영원한 부모를 나타낼 유일한 상징은 무한한 우주일 것이며 이 역시 기호로서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원을 크게 그린다 해도 우주는 그 경계를 넘어갈 테니까요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고대의 장미 십자회는 무한한 무의 상징으로 가장 의미가 가까운 텅 빈 원을 사용했지요

장미 십자회는 무한한 우주를 무한한 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개념으로 여겼습니다 사실상 무한한 무는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며 의식은 오직 사물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사물』이 아닌 무한한 무의 『무』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무제한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무한한 우주는 사물로 간주될 수 없지요 사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존재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는 무-존재로도 표현될 수 있는데 여기엔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이 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무한한 우주는 존재이든 비존재이든 모든 것을 감싼 절대적 공간일 겁니다 무한한 우주의 바깥은 오직 무일 것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한한 우주엔 바깥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무한한 우주는 늘 신비롭고 심원한 상징이었습니다 그 상징을 통해 우주적 밤의 고요 속에 감싸인 영원한 부모-무한한 무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의 신비한 교리문답에는 이런 질문이 있지요 우주가 존재하든 안하든, 신들이 존재하든 안하든 늘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은 무엇인가? 답은 공간입니다 무한한 무를 나타내는 무한한 공간의 상징의 힘은 마음이 무한한 공간의 부재나 창조 이전의 부재 혹은 파괴 후의 부재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려고 할 때 인식됩니다

물론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상상으로 창조 전과 파괴 후의 공간의 소멸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마음은 지금 존재하는 무엇이든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 언제든 사라질 가능성에 상관없이 공간은 무한하며 영원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동시에 마음은 공간을 사물로 규정지을 수 없으며 무로 간주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무한한 공간은 늘 영원한 현재이자 사물의 유한성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것으로 인지하게 됩니다

게다가 무한한 우주는 보이지 않고 다른 감각들로 알 수 없으며 존재로서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언제나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다』 이는 옛 현자가 실체에 관해 말한 내용에 부합합니다 『존재의 실체는 속성과 형태와 특징이 없으며 절대적인 것보다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다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말과 생각으론 이를 표현할 수 없다 그 본질을 생각하며 침묵하는 것만이 현명한 대답이다 그것의 특성과 특질과 속성을 탐구하는 모든 생각들이 찾는 답은 간단하다- 아니 아니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는 현명한 이들이 말하는 답이다』 그리고 다른 현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상과 지성과 추상적인 생각으로 무한함을 설명하려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 유한한 형태는 무한을 (생각과 말 또한 포함해서) 표현할 수 없다 유한한 것들은 영원함과 불변함을 표현할 수 없으며 인과의 사슬로부터의 결과를 생각할 수가 없다 무한함은 이유가 없고 독립적인 것이다 우리는 현시가 일어나기 전에 존재의 본질의 무한한 비 현현함을 생각해 보면서 모든 방법과 시각을 동원해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개념이 고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의 실체를 상징함을 알았습니다

첫 번째 잠언은 영원한 어버이가 우주의 밤에 깊이 잠들어있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우주의 낮과 밤은 관련된 가르침을 언급하고 있으며 많은 명칭이 있는 우주의 낮과 밤은 모든 비전의 가르침과 오컬트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가장 고등한 인간들과 초인들 지성으로 리듬이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과 명백한 존재들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존재의 모든 부분까지 리듬이 언제나 명백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최고의 오컬트 정보 자료에서 찾은 사실을 보면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 우주의 낮이라 불리는 현시의 기간과 뒤이어 따라오는 우주의 밤이라 불리는 비 현시의 기간에 번갈아 가면서 머문다고 합니다 우주의 밤 동안에 영원한 어버이는 마치 의식이 없이 꿈이 없는 잠에 빠진 것처럼 존재하며 새로운 우주의 낮이 밝아옴에 따라 차차 눈을 떠 현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의 낮이 차츰 황혼으로 바뀌고 모든 것이 또다시 정지하고 고요해지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우주의 밤의 어둠으로 빠져듭니다 이렇게 무한한 반복과 무한한 리듬 속에 우주는 낮과 밤을 연속해서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현시와 비 현시를 의미합니다 이는 영원토록 지속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끝나거나 방해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의 현자들이 밝혀낸 것입니다 위대한 오컬트 스승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글로 남겼습니다 『비전의 교리는 불교와 브라만교와 심지어 카발라와 같이 무한한 미지의 실체는 영원과 활기차기도 하고 소극적이기도 한 정기적이고 조화로운 반복 속에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마누의 시를 보면 이러한 상태를 범천의 낮과 밤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또한 깨어남과 잠듬으로도 부른다 활기가 가득 찬 기간에 접어들면 비경에서는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영원불변의 법칙에 따라 신성한 존재가 팽창하기 시작하고 점차 활기를 띠는 우주력의 긴 사슬의 최종적인 결과로 인지할 수 있는 우주를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소극적인 기간이 도래하면 신성한 존재가 수축되기 시작하며 앞에서의 창조 활동이 점차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볼 수 있던 우주가 분해가 되면서 요소가 흩어지고 어둠과 고독과 외로움이 닥치며 병아리들은 또다시 깊은 수심에 잠긴다 비경에서 나온 미지의 존재가 숨을 내쉬면 세상이 만들어지고 숨을 들이쉬면 세상이 사라졌다는 암유를 사용하면 개념을 더 명확히 전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모든 영원의 세계와 우리의 현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연관 관계에서 허버트 스펜서 파의 학자들은 고대의 신비주의 이론과 가르침에서 그들의 현대 스승의 가르침의 튼튼한 기초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리듬의 활동과 우주적 존재에 관한 스펜서의 가르침은 옛 신비주의 가르침의 아류인 것이다 진화에 관한 현대의 예언자의 펜으로 쓰여진 다음 글을 주목해 보자 『명백히 우리가 본 우주적으로 공존하는 흡인력과 배척력들은 우주 전체를 통해 모든 작은 변화들에 있어 리듬을 필요로 하며 전체가 변화하는 데에도 리듬을 필요로 하는데 이 힘들이 흡인력이 지배하는 측정할 수 없는 우주적 응축의 기간을 생성하며 또한 배척력이 지배하는 측정할 수 없는 우주적 확산의 기간을 생성하는데 이 두 기간들이 진화와 해체의 순차적 반복의 시기인 것이다』

이 첫 번째 격언은 계속 말한다: 『빛은 없었다 영혼의 불꽃이 아직 지펴지지 않았기에』 이것은 반만의 진리로 다른 반 쪽 진리의 존재를 모르는 채 무한의 현실을 영혼으로 간주하여 불꽃이 당연히 그것의 신비주의적이며 심오한 상징으로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난해한 말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장 겸손한 스승들에 의해 알려진 최고의 고대 지혜는 알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쳤으니 그것은 물질 뿐만 아니라 영혼의 배경에도 영원하며 무한한 영혼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영혼과 물질의 무조건적인 근원이며 원천인 본질적인 정수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영혼에 대한 두 가지의 신비주의적이며 심오한 우주적으로 알려진 상징인 빛과 불꽃은 그 배경에 『빛도 없고 열도 없는』빛과 열의 본질적인 정수가 있는 것이다 무한한 현실은 빛이나 불꽃이 아닌 빛 혹은 불꽃으로 표현된 영혼의 정수다 학자들이 등불이나 촛불 가스 불이나 다른 종류의 물리적 불꽃을 숙고해 본다면 이 진리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그는 중앙의 불꽃 아래에 검고 투명한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불꽃이 계속 타며 자양분을 얻고 지원을 받는 본질적인 정수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신비주의 전문 용어로 이 존재의 높은 차원에 상응하는 것은 검은 불꽃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불꽃이나 빛이 아닌 불꽃과 빛의 본질적 정수인 것이다 고대의 작가가 말했듯 본질적인 정수는 불의 기운이지 불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불의 특성인 열이나 불꽃 빛 등은 본질적 정수의 특성이 아닌 본질적 정수가 원인이 된 불의 특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