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살아있는 경전의 지도 하에 수행하라』
1988년6월19일 일란 포모사 (대만)에서 있었던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입니다

적어도 부처가 뭔지 마야가 뭔지 모른다면 우리 마음은 남에 의해 항상 흔들릴 겁니다 한 쪽에서도 우릴 당기려 하고 다른 쪽에서도 당기려 하죠 남들과 논쟁도 못하죠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 노자 같은 위대한 수행자들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우리 같은 범부들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러니 성인들과 높은 등급의 수행자들과 깨달은 스승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불쌍한 이들은 악한 자들이 아니라 위대한 수행자들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악한 자를 비난하지 않아요 악한 자들은 그 당시만 비난받았습니다 그 후론 더 하지 않았죠 하지만 위대한 성인은 이삼천 년 혹은 오천년이 지나서도 비방 당합니다

성인들이 열반에서도 (지고한 극락) 편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조 홍인이 진리를 설법하는 자들의 삶은 언제나 위험에 쳐했었다고 말한 겁니다 전혀 이득이 없는 직업이에요 한번은 나의 스승님이 강연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물었어요 『누군가 신이나 위대한 깨달은 스승을 지칭할 때 왜 항상『그』라고 부릅니까? 남성형이죠 그녀가 아니라 그요 『왜 남성형이죠? 왜 여자는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없나요? 여자는 스승이 될 수 없나요?』

이런 질문을 했어요 『여자도 스승이 될 수 있나요?』라고요 제 스승은 그녀에게 매우 자비롭고 동정하는 태도로 말했죠 『스승이 되지 않는 게 더 나요 스승이 안되는게 낫죠 너무 너무 힘들어요』 그는 너무 너무 힘들고 또 힘든 고된 일이라고 했지요 많은 압박감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 압박감은 견딜 수 없죠 그래서 고대로부터 스승은 보통 남자라고 말했던 겁니다

남자들의 신체가 더 강하기 때문이죠 또한 압박감 때문에 영혼이 쉽게 무너지는 일도 없지요 여자들처럼 감정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더 민감해요 여자들의 신체는 강하지 않아요 약하지도 않지만 강하지도 않아요 그래요 매달 월경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피를 많이 흘려서 몸이 좀 더 약합니다 그 주에는 몸도 좋지 않고 감정도 흔들리고 기분도 좋지 않고 심리상태가 좋지 않아요 때로는 움직이지도 못해요 우리는 아이도 낳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많아요 몸도 더 약해 지고요

또한 옛날엔 여자는 밖에 나가질 못했어요 한 걸음 나아가면 세 걸음 뒤로 돌아옵니다 그런 가르침을 펼칠 수 없었어요 예전엔 차도 없어서 더 어려웠어요 발이 묶였는데 어떻게 걸을 수 있었겠어요? 발이 너무 작아서 한걸음 앞으로 걸으면 궁전의 궁녀들처럼 세 걸음은 뒤로 갔습니다 잘 알잖아요 당연히 가르침을 펼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극소수의 여자들이 나가서 가르침을 전했어요 요즘은 시대가 달라요 신체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약도 많고 차나 비행기가 있어서 여자들도 쉽게 나가서 가르침을 펼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엔 발을 묶지 않아요 그렇게 작게 묶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여자들은 가르침을 펼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게 매우 편리한 오늘날에도 제 스승은 여전히 여자들은 스승이 되지 말라고 권했어요 책임도 너무 많고 일도 너무 많고 압박감도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견뎌내지 못해요 내가 금방 말했죠 고대로부터 위대한 성인들은 가장 많이 비방 받고 가장 많이 공격 받고 살해된다고요 그들의 얘기를 읽어 보면 비방을 견디지 못했던 스승이 하나도 없다는 걸 볼 겁니다

살해 당할 뻔 하지 않았던 스승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사형당했고 어떤 이는 살해당했고 어떤 이는 살해 당할 뻔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를 죽이려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누구는 약점을 잡고 누구는 누명을 씌우고 상처를 입혔지만 죽이지는 못했지요 어떤 사람은 육조 혜능도 죽이려고 했어요 예수는 그들에게 붙잡혔죠 공자도 비방을 받고 여섯 나라가 그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 쫓아냈죠

노자는 제자가 거의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깨달은 스승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들이 숨어버리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워요 공개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역시 숨어야 해요 대중 앞에 있을 때는 공개가 됩니다 하지만 돌아오면 숨어야 하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어요 그의 제자이거나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가까운 제자들만 찾을 수 있어요 보통사람은 찾을 수 없어요 일단 우리에게 법문을 전해주면 우리를 꼭 붙들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매일 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아무런 보시도 숭배도 시중도 원치 않을 겁니다 아무것도 원치 않아요 그를 찾으려고 돌아 다녀야 합니다 그를 보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깨달은 스승이 있다 해도 찾기가 어려워요 그게 다 그렇기 때문이에요 너무 공개하면 안돼요 공개적이지만 아니에요 그의 절은 닫혔어요 아무나 공개적으로 환대하지 않아요 환대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절만큼 공개적이지 않아요 누구나 원할 때마다 들어가 경배한 후 나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드나들 수 없어요 그들을 보러 오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신실하게 도를 찾아야 해요 그러면 받아줄 겁니다 들어가서 절한 후 나가는 대부분의 절과는 같지 않습니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깨달은 스승을 찾으려면 선전 광고에 의지해선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공덕에 의지해야 합니다 축복이 없거나 공덕이 충분치 않으면 광고를 해도 가지 않을 테니까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공덕이 충분치 않다면 선전을 한다 해도 가지 않을 겁니다 스승이 바로 옆집에 산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로부터 깨달은 스승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겁니다

이제 여기서 결론을 좀 내릴까 합니다 우리 관음 수행자들은 수행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고, 전에는 해본 적도 없었던 놀라운 체험도 더 많이 합니다 그렇죠? (네) 경전은 남들이 얻은 굉장한 체험만 묘사해 놓은 겁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체험이 없다면 행복도 이해하지 못하고 기쁨과 법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야기 책이나 아이들 책 또는 고대경전을 읽을 때는 그저 재미를 위한 이야기이거나 사실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방정토는 누군가 그려 놓은 그림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도 진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모든 경전에 있는 체험들 모두가 사실인 걸 알 겁니다 사실이 아닌 게 없어요 경전에 기록된 것을 체험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우리는 그 등급을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경전에 말로 쓰여져 있는 건 높은 등급의 체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높은 등급의 체험은 말로 할수 없는건 물론 기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리달마가 경전을 외는 건 소용 없다고 말했던 겁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게』 등급이 더 높아요 단지 체험은 해도 받아 적진 못해요 어떤 사람들은 입문하고 관음법문을 막 시작했는데 나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 체험이 높은지 낮은지 사실인지 거짓인지 물으며 보고를 합니다 어느 정도 수행한 후엔 말할 게 없어요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스승에게 와서 보고는 말합니다 『스승님, 오…』 설명하질 못해요 여러분이 물어도 설명을 못해요 나는 묻지도 않아요 그들은 이미 도취돼 버렸어요 어떤 말도 필요 없어요 그 때는 경전을 읽는 것이 마치 아이들 동화를 읽는 것과 같았는데 우리는 그 등급을 이미 넘어선 겁니다 묘사되고 기록될 수 있는 건 높은 등급에서 온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서방 정토에 갈 수 있는지 물으면 문제없다 말합니다

거기 머물고 싶지 않을까 염려 될 뿐이죠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서방정토를 넘어설 수 있으며 서방정토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서방정토는 한 사람의 체험과 집착일 뿐입니다 그 때는 서방 정토에 집착하면서 그 곳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에게 사후에 그런 아름다운 곳에 올라가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본 겁니다

석가모니부처는 『그렇다』고 했지요 여러분은 오늘 본 그 곳을 상상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 떠올리세요 아미타불을 보면 아미타불의 이름을 암송하고 그가 있는 곳을 묵상해야 합니다 매일 이렇게 하면 죽을 때 반드시 그 곳에 갈 겁니다 하지만 우리 관음 수행자들에게는 비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서방정토를 보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보지 못해도 괜찮아요 나중에 더 높은 경지에 올라 갈 겁니다

서방정토는 우주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아요 동쪽,남쪽,북쪽 그리고 위쪽과 아래쪽에도 많은 게 있는데 왜 서쪽에만 집착하지요? 서쪽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자리에 앉아서 아미타불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갈 수 없어요 돈을 벌고 싶다면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집에서 돈을 생각하는 대신에요 관음법문은 매우 유동적입니다

만일 서쪽으로 가고 싶다면 서쪽으로 데려다 주고 동쪽으로 가고 싶다면 동쪽으로 데려다 주고 북쪽으로 가고 싶다면 북쪽으로 데려다 줍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데려다 줍니다 노자와 만나고 싶다면 노자에게 데려다 줄 터이고 공자를 만나고 싶다면 공자를 보도록 해 줄 겁니다 살아있는 부처인 제공을 만나고 싶다면 제공도 만나게 해줄 겁니다

그들이 다른 곳에 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모두 높은 경지에 살고 있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대로 관음법문이 인도해서 데려다 줄 겁니다 이런 법문이 없을 때 서방에 가지 못하는 걸 걱정해야 합니다

나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방정토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돼요 왜냐하면 더 빛나고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높은 세상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뼉을 칩니다 알고 있을 거에요 서방정토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도 있어요 네! 서방정토나 『팔공덕수』나 새들의 노래에 집착하는 요인이 뭡니까? 그런 게 예뻐도 마음이 좁아서 그런 구석만 원하는 건가요?

우리는 우주 전체를 보러 가고 우주 전체를 우리의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우주의 한 구석에만 집착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겁니다 그리고 남들이 더 좋은 법문에 대해 말하는 걸 들을 때면 대놓고 비방하며『최고는 서방정토 뿐이야』 라고 합니다 원한다면 서방정토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법문만이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동쪽도 가지 못합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을 어떻게 전수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법문이 아니고 힘입니다 전수하는 힘이죠 입문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힘을 남에게 전하는 겁니다 하지만 마음도 진짜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언어가 매우 한정 됐기 때문에 『법문』이나 『마음』 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법문을 전수할 때 언어를 쓰지 않아요

지금은 그럴 수 없죠 왜냐하면 많은 걸 설명하고 논리와 이치를 이해시키려면 언어를 써야 하거든요 그러면 도를 찾으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도를 전해 줄 수 있죠 전달 도중에는 말할 게 없어요 나도 조용히 하고 여러분도 조용히 해요 우리 모두 조용히 하면 법문을 얻게 됩니다

법문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무슨 법문을 얻지요? 무슨 도를 얻지요? 법문은 있지만 말할 게 없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법문인 겁니다 내가 그 힘을 전수해 주면 뭔가 물어볼 게 있을 거에요

『스승님 방금 입문 받을 때 이런 등급에 도달 했는데 무슨뜻이죠?』 라고 물을 수 있어요 그 때는 정말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관음 법문을 전수할 때 여러분이 어떤 우주의 비밀을 알거나 깨달음도 약간 맛보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경전에 기록된 체험들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범천의 소리라든지 파도소리 같은 걸 말이에요

800 개 눈의 공덕과 800개 귀의 공덕이 뭔지도 이해할 겁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이 뭔지 부처의 무한한 빛이 뭔지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는 있지만 설명해 줄 법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만일 아이들이 관음법문을 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앞으로 계율을 지키지 못할까봐 염려된다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의 부모가 입문했다면, 6살부터 수행할 수 있습니다 부모나 친척 중 아무도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16살이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부모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한다 해도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있습니다 6살 때 반입문을 받을 수 있고 12살에 온 입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나 친척이 수행을 안하면, 16살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스승님』우리의 본성은 나투어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는 구절이 무슨뜻입니까

그것은 금강경에서 언급한 등급입니다 만일 입문하고 수행한다면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자신의 본성을 보도록 가르쳐 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건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입문식 때 내가 설명해 주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입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강연할 때도 법문을 전수합니다 한번 보는 것만으로 입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여기 그런 사람이 있나요? 깨닫고 보살을 보는 것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수호 천사나 빛, 혹은 스승이 사라졌나요? 없네요 아주 드물어요

3일만에 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예컨대 내가 가진 빛을 보거나 여기 많은 보살들과 수호 천사들이 있고 빛이 어디나 있는 걸 보죠 이런 건 깨달음의 작은 체험 중 하나죠 이 평범한 세상의 시야를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이 세상을 초월한 겁니다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거죠 강연을 들을 때 약간 깨달음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법시대엔 극소수만 깨달음을 얻지요

질문입니다 전에 계를 받기 위해 절에 간 적이 있는 사람이 관음법문을 수행할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보살계를 어기는 건가요? 모든 계율을 어기는 건가요?

보살계를 지킨다는 것은 보살의 길을 걷고 보살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관음법문은 관음보살을 위한 법문입니다 왜 수행할 수 없겠어요? 어떻게 계율에 어긋날 수 있지요? 나한테 배우려면 보살계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어요 계율을 지키면서 수행하세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계율만 지키는 건 소용이 없어요 계율을 지키는 목적은 수행하는 겁니다

나와 함께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먼저 어떻게 계율을 지키는지 보여준 다음 법문을 전해줄 겁니다 그래서 계율은 법문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이 법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법문 없이 계율만 가르칩니다 계율과 명상 그리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명상과 지혜 없이 계율만 가르친다면 두 가지가 빠진 겁니다

난 계율은 물론 명상과 지혜도 가르칩니다 그래서 완벽하죠 만약 당신이 보살계를 지킨다면 내가 그런 걸 가르칠 필요가 없지요 명상과 지혜만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면 완전한 법문이 되는 거죠 거슬릴 게 없어요 그래서 보살계를 지킨다고 깨달음을 얻는게 아니라는 걸 명백히 알수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조금 전에 이론 밖의 법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신 보리달마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직접 핵심을 가리키고 불성을 봄으로써 부처가 되는 법문은 무엇입니까? 그런 건 어떻게 수행하나요?

그것도 관음법문입니다 입문식 때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게 될겁니다 진짜 가르침을 말하는 것은 이론 밖입니다 보리달마는 경전을 읽는 것으로는 체험이나 도 또는 불성을 얻을 수 없는 걸 뜻한 겁니다 경전을 읽는 대신 가르쳐줄 깨달은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은 경전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법문은 이론 밖에 있다고 한 겁니다 법문은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법문은 경전에 적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경전 『밖』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할 말이 없다고 했던 겁니다

방금 전에 관음법문을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할 수가 없어요 전달만 해줄 수 있죠 법문을 전해 줄 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우리 둘 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갑자기 깨달을 겁니다 아무말도 할게 없어요 지금 내가 말을 많이 하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나중에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것이 소위 『이론적인 가르침 밖에서 법문을 전하는 것』이며『아무것에도 거하지 않는』겁니다

경전에 적혀있는 것에 집착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부처나 사원의 외형에 집착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소위 『아무것에도 거하지 않으면 자성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스승님 인간이 부처라면 어디에 부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신이 부처라면 어디에 부처가 있죠?

부처는 그의 마음에 있어요 부처가 있지만 못찾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예컨대 우리 몸 안에 피가 있는 걸 압니다 모두들 피가 있죠? 피에 대해 알지만 보지는 못합니다 아는 건 쉬워요 조금 상처를 내거나 주사기로 좀 뽑아내기만 하면 몸 안에 피가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보지는 못하죠 너무 어리면 사람들이 혈액 구조를 설명해 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지루해 하거나 들을려고 하질 않죠 하지만 어른이 되어 아플 때 의사가 피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수혈을 해야하고 어떻게 할지 보여 주기도 하고 의사가 피를 뽑아서 보여줍니다 그러면 관심을 가질 겁니다

피는 몸 안에 있지만 꺼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불성과 비슷해요 불성은 전능한 힘이며 그 힘은 신의 힘이며 『지고하며 완벽한 깨달음』이며 위대한『도』입니다 우리는 그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깨달은 스승이 문을 열도록 도와 준다면 매일 쓸 수 있고 매일 볼 수 있습니다 볼 수 없지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없지만 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되어 지는 것은 도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체험할 순 있지만 설명하진 못합니다 법화경에서 언급한 예지와 입문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그 둘은 다릅니다 입문은 법문을 전수받는 때를 뜻하며 자신의 본성을 찾았을 때 그리고 자신의 불성을 봤을 때를 뜻합니다 그것이 입문입니다 예지는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들에게 언제 부처가 되며 이러이러한 나라에서 홍법을 할 거라고 말해줬을 때를 말합니다 그것이 예지입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물었습니다

관음법문 수행의 핵심은 소위 법문이란 게 없지만 법문을 받고 즉각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법문은 즉각적인 법문이라 할 수 있죠 순식간에 가장 귀중한 『전능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수행하길 원한다면 자신의 신구의를 정화해야 합니다 보살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보살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의 살을 먹지 않는 것이며 살생하지 않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생과 도적질 간음,거짓말,음주를 하지 않는 겁니다 다른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매일 2시간 반씩 명상해야 합니다 시간을 나눠서 해도 됩니다 이런 것들이 관음법문에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하지만 말로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실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법문은 설명될 수가 없어요 법문을 말로 하는건 지루하게 만듭니다

스승님 이 분은 스승님과 공부한 적이 없지만 『즉각개오』 일권을 읽고 난 다음 스승님 모습이 앞에 나타난 걸 봤습니다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이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즉각 개오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을 읽을 때 다른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하니까요 그렇죠? 『즉각 깨닫는 열쇠』 를 읽자 곧 바로 스승님의 화신을 스승님의 화신을 봤던 겁니다 깨달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건 예사로 하는 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깨달아서 이 세상 너머의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즉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그것이 진짜 즉각 법문이란 뜻입니다 그러니『즉각개오』 책 이름이 맞지요! 틀리지 않아요 그렇죠? 축하해요 그래도 관음법문을 배워야 합니다 스승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더 배울 게 많아요

스승님 저는 스승님께 말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영적 체험인가요? 육신의 스승도 그걸 아나요?

네, 그것도 체험으로 칩니다 당신에게 뭔가를 가르치러 온 건 스승의 화신입니다 이것도 즉각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책읽는 것이 깨달음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즉각개오』 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체험을 해요 내 책을 읽으면서 체험을 합니다 육대조사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지요 『일단 지혜의 밝은 태양이 이 세상을 비추면, 그것이 생사의 온갖 근심을 씻을 것이다』

스승님, 『지혜의 밝은 태양』이 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단순한 비유인가요 영적 영역인가요?

그건 매우 간단해요 "지혜의 밝은 태양이 이 세상을 비춘다"는 것은 깨닫는 때를 의미합니다 지혜를 얻고 지혜가 열리는 겁니다 그래서 내 책에서 설명했듯이 지혜를 여는 것과 지혜안은 같은 겁니다 법안과 같은 겁니다

지혜가 열릴 때는 태양이 나올 때와 비슷합니다 어두운 구름과 같은 더럽고 암울한 곳을 모두 파멸할 겁니다 어두운 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어요 마치 우리의 악업과(응보) 무지가 우리의 비전과 지혜를 뒤덮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깨달을 때는 태양이 나와서 어두운 구름을 물리치고 무지와 생사의 구름을 없애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깨달을 때 불광이 우리를 비추는 것은 태양이 우리를 비추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 빛은 태양이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나오듯이 우리의 무지와 생사의 틀을 산산이 부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