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최고의 힘을 얻는 법』 칭하이 무상사 강연
포모사(대만) 신쭈 1988년 3월 31일

이렇게 멀리 떨어진 차오퉁 대학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칭하이 무상사님의 강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이 드문 기회 또한 축하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평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 있으니까요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왜냐하면 저는 신추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많은 돈을 벌기를 바랬습니다

물질적으로 아주 부유해지길 원했죠 하지만 아내가 종종 묻기를 『뭣 때문에 그처럼 많은 돈을 버는 거지요?』하면 나는 이렇게 되물었죠 『돈을 벌지 않으면 뭘 한단 말이오?』 그러던 어느날 아내와 저는 칭화 대학의 연못가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내가 한가지 목적인 더 큰 자유를 위해 돈과 명예를 쫓고 있다는 생각이들었어요 왜그럴까요? 그것은 돈이 있으면 원하는 걸 다 살 수 있고 유명하고 부자가 되면 뭐든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한가지 목적을 위한 겁니다

부와 명예는 자유를 얻기 위한 겁니다 우리의 의지가 타인에 의해 지배 받지 않고 뭐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길 바라는 거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주 부유하고 유명하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 가족은 꽤 잘 사는 편입니다 그런 환경 하에 보통 말하는 처자식이 있고 집과 차가 있는 저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저녁 초대를 할 때면 거절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안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누군가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무례하게 얘기해도 부와 명예를 갖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의 뜻에 굴복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부처의 가르침이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게해 준 칭하이 스승님을 만나는 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자유로워 질까요? 그것은 돈과 명예를 쫓으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지녔어도 그것들을 잊을 수 있고 남들을 이해하고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사교적일 필요가 없죠 칭하이 스승님의 강연은 나에게 아주 중요해서 강연에 가야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용기를 갖고 친구에게 말한 사실이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이로움을 얻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전에는 채식을 5,6년씩 했으면서도 친구에게 감히 채식을 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채식을 하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고 할까봐서였지요 사실 채식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 것 또한 아주 힘듭니다 내 자신도 채식하는 과정에서 채식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랬동안 혼자서 채식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모두들 저녁 모임에 가자고 나를 부르면 『나는 오늘이 초하루이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만 하는데도 그럴수 없었죠 정말로 고기가 먹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승님께 배운 후로는 고기를 보기만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정말 이상하죠 그래서 스승님께 물었죠『지난 4,5년 동안 억지로 채식을 하면서 내가 채식을 해야 하는 날에 왜 그렇게 고기를 먹고 싶어 했지요?』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고대 인도의 깨달은 스승들은 계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법문을 전해주었고 법문의 전수란 깨달은 스승이 여러분을 여러분의 본래 힘과 연결시켜 주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평생 사용할 수 있지요 이제는 더이상 고기를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킬 필요도 없어요 이렇게 되다보니 거리낌이나 어려움 없이 채식을 할 수 있고 친구들에게도 채식한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친구들도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것이 육바라밀에서 말하는 소위 『계율을 지키는지 모르면서 지키는 것』 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저는 이제 더이상 채식을 하고 중생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힘과 나의 사적인 체험을 통해서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용어가 아닌 『계율을 지키는지 모르면서 계율을 지키는』진정한 나의 개인적인 체험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육바라밀입니다

변증법적인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의 타고난 반응이며 이 자연스런 현상은 우리가 원하는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주목적인 자유입니다 그래서 오늘밤 비바람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축하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스승님을 모셔서 강연을 듣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새로울 게 없어요 유덕한 여러분은 원래 모든 걸 압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너무 바빠서 잊은 겁니다 뭘 잊은 걸까요? 방금 형제님 말씀처럼 우리는 여기에 돈을 벌 목적으로 온 게 아니란 걸 잊은 겁니다 우리는 한백년 살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열심히 일한 다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기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걸 잊었지요 내면에 있는 위대한 임무를 잊었습니다

그 임무가 뭘까요?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하며 여기에 백년 동안 온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따금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거나 아플 때는 생각하거나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나는 여기에 뭐하러 왔는가? 나는 정말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이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들을 해왔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대답할 수 있었죠 그렇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

우린 석가모니불이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고 노자,공자,보리달마 또는 고대 스승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서양의 스승들이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답을 찾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 답이 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배운 사람들도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가서 당대의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번 찾아 봅시다 현시대의 석가모니 부처가 있나요? 현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 봤어요? (네!네!) 본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도 축하하고 아닌 사람도 축하합니다 오늘 강연에 왔으니 내일이면 그런 사람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설령 찾았다 해도 알아보질 못합니다 그래서 아주 골치아파요 어떤 곳에서 듣고 봤다고 하면 모두들 그곳에 거대한 사원이나 교회를 세우고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서 시간과 돈을 쓰고 하늘에 기도를 하거나 보지도 못하는 부처에게 스승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런 살아있는 부처나 보살을 찾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원을 짓거나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찾았다면 말입니다 살아있는 부처나 살아있는 깨달은 스승을 찾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원이 필요없어요 더많은 절과 교회를 지을수록 그곳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원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교회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 거기서 친절을 기도하고 도덕적인 것들을 듣습니다 그것 역시 아주 좋아요

다만 많은 사원이 지어진다는 건,아직 사람들이 스승을 찾지 못했다는 걸 뜻해요! 그들을 못 찾아서 기도하는 겁니다 일단 그들을 찾으면 우린 만족할 겁니다 그래서,석가모니 부처 생전에 그는 절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 제자들도 절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그의 출가 제자들은 매일 그와 함께 탁발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뒤에 밤을 보낼 장소를 무작위로 찾았지요

다음날,그들은 다른 곳에 가서 진리를 설법했을 겁니다 그 제자들이 석가모니 부처를 찾았을 때 그들 역시 사원을 짓거나 뭔가 구하러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를 만나지 못했던 다른 이들이 사원을 지었지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최고의 천국) 든 뒤에야 그 제자들은 그가 남긴 사리를 모아서,기념으로 그걸 간직하고자 탑을 지었습니다 그건 마치 우리가 부모님 사후에 그들의 시신을 특정 장소에 묻고 그들을 기억하고자 무덤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부처 사후에 그를 기억하고자 탑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지요

하지만,물론 부처의 사후에 그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여전히 그리워합니다 따라서 대부분 매일 일 년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그들은 그들의 스승을 기리고 숭배하고자 그곳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가 죽은 뒤에 일년에 한 번이나 더 자주 그들을 기리러 무덤에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리움을 표현하기를 원하지요 이제 그 사람을 더이상 보거나 접할 수 없어서 그를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와 관련된 장소에 갑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 전에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그들을 기리는 절을 짓지요 우리 인간의 이런 면에 난 정말 탄복합니다 그들을 봤던 이들은 그들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들을 본 적 없는 이들도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는 2500년 전에 있었어요! 우린 그를 전혀 모릅니다! 그가 우리에게 뭘 가르치거나 함께 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그를 여전히 숭배하죠 그건 우리가 매우 훌륭한 사람임을 뜻합니다 왜 훌륭할까요? 왜냐하면 우린 분명 누가 훌륭하고 누가 우리 내면의 최상의 이상과 덕을 대표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아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그를 숭배하는 겁니다

지금껏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 노자,공자 소크라테스와 다른 많은 이들을 여전히 숭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면서도 또한 왜 그들을 숭배하는 지 점검하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그건 본래 그들이 우리와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매우 근면하게 열심히 수행했고 큰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수행을 했으며 결국 최상의 힘과 최상의 영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린 그들을 숭배합니다 하지만 이러면서도 우린 다시 자신에게 자문해야 합니다 그처럼 될 수 있을까? 아주 위대하게요? (예,굳게 결심하면요)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 먹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면,다른 누가 존중하겠어요?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누가 우릴 믿겠어요? 부처가 될 수 없다면 우릴 위해 누가 부처가 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념을 우리가 갖기란 매우 드뭅니다 정말 안됐지요! 오늘부터 여러분은 부디 자신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지십시오

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지혜를 열어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우린 우릴 구원할 다른 사람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게으르면 어쩌지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그가 임무를 실패하면요? 위아래 다 찾아봐도 다른 모두들 게으르고 자신감이 없다면 어떻게 하죠? 그럼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겠어요?

(자비심과 관용에요) 그건 불충분합니다 (불충분하다면 사랑이요) 지혜가 없는 자비와 인내는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요!) 지혜요 이 지혜를 찾는 법이 가장 큰 문제에요 우린 아주 지적입니다 여기 우리 모두가 지적이지요 그가 어리석다고 아무도 말 못합니다 나도 말 못하겠어요 여기 그 누구도 어리석지 않아요 하지만 지능과 지혜는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뭔가 발명했다고 해봐요,예를 들면 컴퓨터와 원자 폭탄 비행기나 다른 기계를 말이죠 그런 다음 우리는 매우 흡족해하거나 거만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에겐 작은 신통이 있습니다 그들이 병을 치유하거나,사람의 과거를 읽고 그들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해봐요 그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가 있고,그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어떤 이들에겐 더 큰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와 바람을 부를 수 있고 콩으로 병사를 만들며 산과 바다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들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겠죠

하지만 우리 중국인은 그에 대해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우린 영화 속에서 그걸 봐왔습니다 또는『서유기』를 우린 읽어봤습니다 그게 어떤 이야기죠? 현장 스님이요! 그러니 모두들 압니다 그리고 그 원숭이요 손오공 원숭이 왕이요 손오공은 원숭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에요 그는 음양의 힘으로 합쳐졌다고 말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극도로 영리합니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영리하지요 또한 그는 72가지 신통을 지녔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로 나타날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아서 살짝 깨문 다음에 『후』불면 그들은 수많은 손오공들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진짜 손오공이고 누가 가짜인지 몰랐어요 또한 관음보살에게 기도하러 그는 부처의 왕국에도 갈 수 있었어요 또 그는 태상노군에게 갈 수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우린 태상노군이 위대한 신임을 압니다! 가장 위대한 다섯 왕중의 하나였지요! 태상노군이요 또 누가 있지요? 동양에는,어떤 동방의 신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 여신이 있지요 방금 『서유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린 거기에 위대한 왕들이 많으며 손오공이 그들에게 갈 수 있다고 했지요 이건 정말로 흥미롭고 놀랍지요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위대한 존재를 볼 수 없죠 그는 원숭이일 뿐인데 어떻게 거기 올라가 그들을 볼 수 있었죠? 스스로 이 질문을 해 본 적 있습니까? 있어요? 이 원숭이가 누굴까요? 여러분 아세요? 원숭이는 현장의 마음입니다 그의 내면의 힘이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원숭이가 그냥 원숭이라고 합시다 그는 위대한 신통력을 지닌 스승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신통을 지녔죠! 자기 공부를 성취한 덕분에 그런 위대한 신통이 생겼죠

그리하여 그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콩을 군사로 바꾸며 자신을 여러 몸으로 나툴수 있었죠 그런데 왜 손오공이 아무 것도 모르는 현장법사를 모셔야만 했을까요 현장법사가 가진 건 이상 뿐이었지요 현장은 우리가 공부하도록 서방에서 많은 경전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그건 당시 소수의 스승만이 인도에서 대승 불교를 설법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 모든 장소에 불교가 있습니다 불교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도 진리를 가르쳤고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를 가르쳤으며 노자 또한 진리를 가르쳤으며 공자도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많은 법문과 가르침을 설했습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곤 몇 권의 경전이 전부입니다 노자가 도덕경만 가르쳤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허나 그의 정수가 도덕경에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의 정수가 도덕경입니다 그래서 도덕경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자의 가르침이 뭔지 알지 못한다면 도덕경만 공부해서는 절대로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도덕경만 공부해선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덕경이 뜻한 바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 뜻을 이해하려면 수행으로 노자의 등급을 성취해야죠 공자도 똑같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중용이나 대학만 가르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전이 유실됐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위대해지기까지 뭘 수행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너무 바쁘니까요 뭣 때문에 바쁠까요?

삶을 편안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발명하느라 바쁘지요 이런 일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매우 유용한 일이죠 누가 이 마이크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편안하게 강연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비디오 카메라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강연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내 강연을 듣지 못했을 테고요 그래서 이런 발명을 하는 과학자들은 놀랍습니다 그런 일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물질적인 방면에만 도움이 됩니다 다른 방면들,영적인 방면들도 있거든요 그걸 모른다면 많이 놓쳐버리겠죠

사실 외국인이랄게 없습니다,우리는 다 지구인이니까요 모두 지구인입니다 하지만 우린 다양한 집에 살고 있어요… 지구에는 수많은 집들이 있습니다 포모사(대만)라는 『집』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집』은 어울락(베트남)이죠 그런 다음 공부하러 영국이라는 『집』에 갔습니다 그 후에 내가 간 곳은 포모사(대만)이라는 『집』이었거든요 이곳은 좀 달라서 약간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 온 뒤로 좀 친근해졌습니다

내 느낌에는 포모사(대만)와 큰 인연이 있어서 매우 친근한 듯해요 그래서 내가 가서 강연하는 곳이면 늘 그들이 무척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 놀랍습니다 (지상의 천국같아요) 네,맞아요! 이것은 신쭈의 동료 수행자들이 기부한 것입니다

바깥의 길에도 수없이 많은 노란 깃발과 화환이 있습니다 난 너무 당황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직접 이렇게 했습니다 난 억지로 시키거나 그만두라고 못합니다 오늘까지도 이 일을 몰랐어요! 놀랐죠! 그들은 날 놀라게 해주고 싶었나 봐요! 나도 그들이 이렇게 웅장하게 만들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 모두들 고맙습니다! 정말 열정적이죠 신쭈 사람들의 얼굴에도 있습니다 신쭈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정말 열정적이고 매우 고귀합니다 내면의 상태는 그대로 외양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외양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루종일 이렇게 행동한다면 우린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네,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어요! 말하지 마세요! 알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구를 봤을 때 늘 웃고 있다거나 얼굴이 매우 인자해 보인다면 당연히 무척 편안하게 느끼겠지요 그럼 그 사람이 분명 사랑이 담긴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누가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도와주길 즐기며 재난에 빠진 이들을 구해주고 환자들을 편안하게 보살펴 주며 치유해 준다면 그 사람 마음이 무척 자비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되죠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희의 행위로써 알려지게 되리라』 그 말은,일과 행동을 관찰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면에 고귀한 이상이 없다면 고귀한 행동을 실천할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말 할 것도 없죠 안그래요?(맞습니다) 맞아요! 좋습니다! (얼굴을 보면 마음이 드러납니다) 좋아요! 그녀는 말할 줄 아는 군요,나중에 단상에 초대할게요 말이 난 김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면에 있으니까요 늘 남을 도와 주고 남들을 구하고 도움을 줄 생각만 하며,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고 자신의 힘이나 그들을 편안하게 해줄 본성을 찾도록 인도하는 사람을 보게 됐는데, 그가 신이 아니라면 분명 그 사람은 신을 위해 일하고 부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 걸 알지요 신은 천국에서 한가하게 매일 수염이나 쓰다듬으며 우리 선악만 심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관찰하되 아직 행동은 안 취했지요 중국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빈틈없이 경계하되 움직이지는 말라 관찰만 하는 겁니다 『오! 넌 사악하구나 나중에 지옥에 넣어 주마』하지도 않고 누가 매우 훌륭한 걸 알게 된다고 『아! 정말 착하네! 나중에 천국으로 올려주마』하지 않죠 그렇게 하지 않아요 신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선과 악은 별 상관하지 않아요 신은 평범한 인간의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초월했으니까요

신을 찾고 싶다면 우리 이웃을 보세요 그가 친절하면 우릴 신 대신 돌보는 거죠 그 순간에 그는 신의 자질을 지녔고 부처의 품성을 지닌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디 가서 신을 찾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중생들이 신의 자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녔다고 했었고요

그럼 왜 불성을 사용하면 안됩니까?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가 자비로울 때 바로 신의 품성인 불성을 사용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돕는다면 그 때가 불성을 사용하는 것이고요 누군가 외롭고 도움이 필요할 때 편안함을 준다면 그 순간이 우리가 신의 힘을 사용하는 순간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그걸 낭비하는 거죠 우린 낭비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바쁘니까요 돈을 버느라고요 돈을 벌어다가 은행에 넣은 다음 화려하고 편안한 집을 세우죠 자신을 위해서요 즐기기 위해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보냅니다 나중에는 늙어서 떠나버리겠죠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갑니다

일생 백 년 동안 신의 힘을 낭비하고 불성과 부처의 힘을 낭비하면서요 우린 사실 그걸 전혀 사용하지 않죠 정말로 불쌍해요! 하지만 우리가 병든 사람을 돕거나 보시를 하면 아주 약간의 신의 자질을 사용하는 겁니다 부처의 힘을 단지 약간만 쓰는 거고요 우린 이 힘을 완전히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자신을 부처라고 여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깨달은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불』은 부처입니다 부처는 깨달은 스승을 의미하지요 여러분 모두가 그걸 알아야 해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는 그냥 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많은 생애에 단 하나의 부처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정말 불쌍하겠죠 세세생생 늘 무지한 중생만 있을 겁니다 어떻게 세세생생 단지 하나의 부처만 있을 수 있겠어요?

우린 모든 삶에서 늘 선생님들이 와서 학생들에게 영어,수학,철학 또 다른 과목들을 가르쳤다고 들었어요 선생님들이 모든 생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처는 그렇게 많은 생에서 한번만 와서 해탈의 길을 가르쳤을까요? 비논리적이잖아요 모든 생마다 부처들이 있습니다 깨달은 스승과 예수 그리스도,또 다른 스승들도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런 부처일까요? 그는 우리와 정말 비슷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보이나 모든 내적 힘이나 신의 힘, 부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을 대로 부르세요 또는 도의 힘이던가요 다양한 장소와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있는 종교 때문에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이름이 쓰이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그럼에도 모든 종교는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죠 우린 이름에 집착해선 불교가 좋다느니 도교가 좋다느니 말해선 안됩니다 여기선 그런 게 없어요 난 그런 걸 말하진 않죠 우리 모두 부처처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이 완전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힘 중 아주 조금만 쓰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모두 내면에 이 위대하고 전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100% 전능하죠 이게 필요하면 언제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아주 조금만 쓸까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그리스도,노자 등 이 위대한 스승 모두 우리는 진정한 길을 수행해야 하며 가장 위대한 이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뭔가요? 우린 가장 위대한 지혜와 완전한 지혜를 갖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