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을 보고 계십니다
『평화는 우리부터 시작하자』 칭하이 무상사 강연
말레이시아 1989년 10월 1일

눈을 감고 전지전능한 신과 부처와 보살들이 자비를 베풀어서 오늘 이 귀한 모임을 축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도록 신실하게 기도합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친구 여러분 어디서든 강연을 하기 전에 내 마음은 언제나 청중들에게 최고의 이익을 줄 수 있는 완벽한 강연을 하려고 고심합니다 그래서 매번 강연을 하기 전에 늘 신과 부처에게 전능한 신과 자비로운 부처가 나를 통해 말하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신령들과 혼령들을 포함한 각처의 친구들과 여기 참석한 모든 분들이 나의 2시간 강연에서 최상의 이익을 얻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러 절에 간 것도 아니고 기도하러 교회에 간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의 교회에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 소중한 몸을 교회로 절로 사용해서 신과 부처에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이 강연을 들으며 최상의 이익을 얻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매번 이렇게 기도할 때마다 축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매일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는 신에게 기도하러 교회에 가고 알라에게 기도하러 모스크에 가고 부처에게 기도하러 절에 갑니다 왜냐하면 부처나 신이나 알라나 어떤 이름이든 경배하면 축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배경과 문화가 달라서 ‘만물의 창조자’를 부르는 이름도 다르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최고의 힘을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우린 그를『신』이나 『불성』『도』 『알라』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논쟁해선 안됩니다

자,우리가 무슨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습니다 기독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불교도,시크교도, 도교이든 상관없어요 모두가 자신의 종교가 가장 좋다고 믿고 있고 나도 그래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건 뭐든 좋은 겁니다 그런데 각자 종교에서 제일 높은 존재를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도 있어요

내 말은 이를테면 불교 신자라면 가끔은 부처를 만나거나 보살을 만나거나 석가모니 부처나 관음보살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나 성모 마리아 또는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과거의 성인들을 만나거나 신이 보고 싶을 겁니다

여러분이 나만큼 부처나 신을 보고 싶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부처도 보고 싶었고 보살도 보고 싶었고 신도 보고 싶었어요 신과 부처에게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근심이나 의심들 또는 내가 몸소 경험한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직접 얘기하고 싶었어요 나는 깨닫기 전에는 늘 교회나 절에 가서 매일 기도했어요 교회를 보면 들어가 기도하고 절을 보면 들어가 부처를 참배하고 기도했는데 두가지 기도만 했어요

교회에 갈 때는 두 가지 기도만 기억합니다 신께 말했죠『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당신을 보게 해주세요 언젠간 당신을 보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꼭 뵙고 싶어요 다른건 원치 않아요』이것이 내 첫 번째 기도에요 하루는 절에서 부처에게 기도하면서 말했어요『부처님 정말 계시다면 저에게 보여주시고 다른 모든 이들도 보게 해 주세요 어떤 방법으로든 보게 해 주세요 당신의 영광을 알게 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자비와 힘을 더욱 믿고 안심할 겁니다』 그렇게 수없이 기도했지만 신도 보지 못하고 부처도 보지 못했어요

어느 날 나는 지치고 말았어요 그래서 하루는 아침 예불을 드릴 때 울어버렸어요 불교도들이 어떻게 아침 예불을 드리는지 알지요? 나무로 만든 목탁과 종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서 주문을 외웁니다 『대비주』나 『나무 라트나 트라야 관자재 보살』등을 외우고 그런 다음 관음 보살의 명호를 외웁니다 『관음 보살』 같은 명호나 『나무 아미타불』을 수없이 외웁니다

나는 그렇게 한 다음 수없이 기도했는데도 부처를 보지 못해서 아기처럼 울었어요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발을 구르며 『왜 나는 아무 것도 없는 거야?』하잖아요 나는 울부짖으며 말했어요『부처님 당신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뵙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믿기를 바랍니까?』하면서 엉엉 울었어요

내가 흐느끼며 울자 이웃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말했어요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바보 같은 짓 하는 거 아니죠?』 내가『아니요 왜요? 내가 왜 바보 같은 짓을 하죠?』하자 『아침 내내 우는 소리를 들었어요』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한 거에요 나는 부처에게 운 것 뿐이었는데 너무 심하게 크게 울어서 이웃 사람들을 전부 깨웠던 거에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아무리 기도하고 아침 저녁으로 부처에게 절을 하고 명호를 외워도 만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부처의 흔적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가서 뭔가 다른 걸 해야만 했어요 이 방법으론 효과가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지요 그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순 없었죠

나는 부처를 보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어디든 가서 사원마다 기도하고 세상에 절이 있고 승려들과 교회가 있는 곳은 모두 참배했어요 누구든 조금만 깨닫고 유명하다고 들으면 가서 절을 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했어요 이렇게 수많은 해가 지났지만 얻은 게 별로 없었어요 조금은 얻긴 했어요 조금 얻었죠 때로는 기도하면 어떤 직관적인 응답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하루는 아미타불을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나는 헌신적인 불자에 헌신적인 기독교도였죠 하루는 부처를 노려봤어요 계속 쳐다보며 말했죠 『왜 나를 서방정토에 안 데려가는 거죠?』 하면서『응답 좀 주세요』라고 하자 부처가 답을 줬어요 내가 너무 신실하고 마음 상해하니까 응답을 받을 만하다고 느꼈는지 나를 높이 들어 올려 줬어요

나는 갑자기 밑에 아무것도 없는 걸 알고는 겁이 나서 『아니요 내려놔 주세요』했어요 마치 나는 것 같았죠 이런 느낌 알지요? 모르나요? 있었나요? 정말 열심히 기도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부처가 응답을 줍니다 때로는 삼매에 들기도 해요 그게『염불삼매』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의 명호를 외우면 고양되어 법열을 느낀다는 뜻이지요 삼매란 그 자리에 앉아서 아름다움과 축복과 평안함만 느끼고 세상의 근심이 전혀 없다는 뜻이죠 범어로 사마디라고 하고 중국어로는 ‘산메이’라고 합니다 서구에서도 사마디라고 해요 슬픔도 근심도 두려움도 없는 더없이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사마디라고 합니다

삼매에 들면 절대적인 완벽함을 느낍니다 세상에서 괴롭히는 것도 없고 전혀 아무일 없이 느낍니다 모든 게 완벽해요 때로 그런 상태에 들어가면 세상의 질서가 완벽하게 잡혔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노자가 삼매에 들었을 때 『천하본무사』 라고 외쳤지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이것이 내가 부처에게 신실하게 기도하고 신에게 기도해서 얻은 작은 체험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그래서 더욱 더 간절해졌어요 왜냐하면 부처가 조금만 주고 충분히 얻지 못했거든요 어떤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사람들이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 당연히 좌절감을 느끼고 더 원하게 됩니다 난 더 원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계속 헤매면서 해결책을 구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내 말은 진정한 큰 깨달음을 뜻합니다 소소한 것이 아니고요 난 모든 게 이미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어요 우린 그렇게 빨리 헤맬 필요도 없고 그걸 구하러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조용히 차분하게 다시 찾으면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매번 뭘 바라는 기도를 해서 그걸 얻게 되면 부처가 우리에게 준 거라고 여기지만 아니죠 이미 있었어요 우리가 가졌다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우리가 아주 공들여 신실하게 기도하면 우리 에고와 마음이 사라져서 분리감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위대한 힘이나 창조자,도,혹은 불성과 하나인 듯이요 그 순간엔 그 힘과 분리되지 않았기에 우린 갑자기 더욱 현명해지고 사물을 더 명확하게 보며 그럼 우리가 이런걸 가졌다는 걸 봅니다

하늘에서 온 게 아니라 우리 공덕의 창고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죠 왜 이런 걸 말할까요? 내가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은 삶의 조건들이 좋지 못하고 바라는 모든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원하는 걸 찾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부처도 있고 예수도 아직 있으며 신과 알라도 있어서 어떤 이름을 지녔든 그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안 봐요 그를 찾는 걸 잊거나 그들을 찾는 것을 잊었으니까요 부처만이 아니라 신이나 예수,혹은 여러분이 믿는 사람은 아직 다 있습니다 허나 모든 것이 다 원하는 것은 모두 창고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아니면 우린 원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를 것입니다

예컨대,아프리카의 비문명화된 부족인들처럼요 그들은 텔레비전을 이전에 본 적이 없어요 지난 30여 년간 수백 년 간 그들은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텔레비전을 보고 싶은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텔레비전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지금 살면서 바라는 모든 것들은,예컨대 부와 행복,축복과 신이나 부처 등과의 접촉과 같은 건 이미 우리 창고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거생의 기억들이나 이 세상에 살았던 수많은 인생들은 이미 일종의 이미지로 등록되어 있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겁니다,아니면 어떻게 그걸 원하고 그런 게 있다는 걸 알 수가 있겠어요? 우린 정말 원합니다 가진 것을 아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깨닫게 되거나 위대한 지혜를 얻으면 창고에서 이런 것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부처는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신도 주지 않겠지요 이미 가진 것이니까요 다만 사용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 뿐입니다 그래서 신의 사랑을 인식하는 방법 부처의 자비심을 인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차분히,조용하게 신과 부처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매일 수행하는 것은 두 가지 부분인데요 첫 번째는 원하는 걸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의 말과 부처의 말을 듣고 어디서 원하는 걸 얻는지 아는 것입니다 항상 묻기만 하면서 듣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면 얻지 못하겠지요 우리는 거의 항상 기도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선생님을 찾아가 영어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우리가 그에게 질문하면 그 다음 조용히 차분하게 대답을 경청해야 합니다 안 그래요?알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신이나 부처에게 뭘 청하면 매일 계속 합니다 아침에 가서 부탁하고 저녁에 다시 가서 부탁한 다음 정오에 다시 가서 계속 부탁합니다 늘 우리만 말하지요 물론 우린 신의 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부처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우리 삶은 별로 좋아지지 못하죠

심지어 신이 항상 자비로워서 우릴 도우려고 해도요 시방삼세 불보살이 늘 우리를 보살피고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서 우리가 삶을 잘 다루고 일상적이 문제를 잘 해결하며 위대한 지성을 성취하게 도와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말고도 우주 전체에서 다양한 수준의 세상을 통과하게 해 줍니다

때론 차분해져야 해요 그것을 우리는 『명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거기 앉아서 머릿속으로 아직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명상이 아닙니다 그건 명상이 아니에요 침묵 속의 대화지요 그래서 우린 명상법과 차분하게 앉는 법을 알아야만 하며 난 그걸 알려주려 해요 정확하고 적절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럼 우린 신과 부처 알라의 메시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 여러분이 가장 믿는 사람에게요 우린 차분해져야만 완전하게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이 우리 말을 듣지 않거나 아미타불이 우리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듣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따금 내 책에서 부처와 신의 명호를 외워도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를 읽어봤을 겁니다 신과 부처가 여러분 말을 듣지 않는 다는 건 아닙니다 내 말은 우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거죠 우리가 너무 많이 말하고 듣지는 않는 다는 뜻이지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아직도 부처에게 기도하며 아직 신에게 기도해요 하지만 그 다음 우린 고요히 앉아 메시지를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우리에게 신이 전하려 하고 부처가 우리에게 주려하는 메시지를요 논리적이지요?그렇죠?(네!) 고마워요!고마워요!

자,이제 두 번째는 고요히 앉는 법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앉아 있어도 고요하지 못합니다 앉아 있으면 오히려 더 나빠지죠 안 그렇습니까? 자,만일 여러분이 날 믿지 못하겠다면 오늘 밤에 집에 가서 고요히 앉아서 5분 동안 마음을 비우려고 해 보세요 무척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은 아마 상자에 갇힌 듯 하겠죠 이런 식으로 자신을 묶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온 사방을 여전히 뛰어다니겠죠 그것은 명상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과 부처의 메시지를 듣는 방법도 아니고요 자,그렇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우리가 부처나 우리 내면의 불성에 기도한 다음에 중국인들이 『성선설』이라고 부르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비와 선량함 등에 기도할 때이죠

중국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이다』 선량함이요 그래서 우리가 신을 믿는다면 신에게 기도하세요 부처를 믿으면 부처에게 기도하고요 만일『성선설』이라는 우리 내면의 선함을 믿는다면 우리 내면의 선함에 기도하면 되고요 하지만 어디에 있든 최고의 힘에 기도하세요 최고의 힘에 항상 기도하세요 최고의 신과 최고의 부처에게요

작은 신에 기도하지 중국에서 『선』과『귀』라고 부르는 토착신 등을 통틀어서 말입니다 그들의 힘은 지역에 한정되니까요 그래서 지역 신에는 기도해선 안됩니다 최고의 힘이자 최고 신에게 기도해야 최고,최상의 힘을 얻게 됩니다 이제 우린 원하는 걸 기도한 뒤에… 헌데 좋은 기도여야 해요 이런 뜻은 아닙니다 누가 죽기를 바라거나 은행강도가 성공하게 신이 도와 주시길 바라는 건 안되지요 안됩니다,안돼요 그건 도와주지 안겠죠

인간의 자비심과 능력의 한계로 인간의 삶의 논리와 평화로 기도한다는 겁니다 자비심과 평화 충고와 최고의 안내를 기도하여 여러분의 삶과 이웃의 삶 그리고 국가의 삶이 윤택하고 지혜로우며 평화롭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매일 신이 인도할 겁니다

부처가 우리 할 일을 알려 줄 것이고요 갑자기 모든 게 바뀔 겁니다 사물이 더 좋아지고 부드러워지며 무슨 일이든 전보다 더 잘하게 될 겁니다 전보다 더 현명하게 결정하고 전보다 더 빨라지겠죠 신이 인도한다는 걸 아니까요 여러분을 도와주고 지탱해주고 매일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과 생각하는 모든 걸 축복하고 인류에게 더 잘 봉사하고 자신과 가정을 더 잘 돌보고 더 지혜를 얻게 돼요 그렇게 하고 나면 다르게 느낄 겁니다

우리 두뇌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진실로 아니까요 그 힘을 우린 신 불성,도라고 부르죠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이름을 다르게 부를 자유가 있어요 그게 우리가 신이나 부처를 듣는 방법이죠 매일 이걸 하지 않으면 부처나 신에게서 메시지를 많이 얻지 못할 겁니다 우린 신이 정말 있는지 부처가 정말 있는지 그들이 우릴 사랑하는지 안 그런지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이 명상에서 이런 이로움을 얻지 않으면 여러분이 신,창조자 부처의 사랑을 알도록 도울 다른 방법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