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스승과 제자 사이는 중국어로 진행되며 자막은 영어,아랍어 어울락어(베트남어) 불가리아어,중국어 체코슬로바키아어 크로아티아어,불어 이태리어 ,헝가리어 힌두어,인도네시아어 독어,일본어 한국어 페르시아어,러시아어 포르투갈어,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장자는 대략 기원전 370-301년에 생존했던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중국의 가장 위대한 문학가이자 철학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철학은 그의 이름인 장자라는 책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자연에 상반되는 행위를 자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무위였습니다 그는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실현된 삶의 방식을 신봉했고 개념의 이해를 위한 실용주의적 접근과 유연성을 옹호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장자의 내편 『제물론 (만물평등론)』 제2장에서 발췌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의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목할 뉴스에 이어 동물의 세계 더불어 사는 세상이 이어지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신의 섭리가 빛과 지혜,평화 속에 여러분을 안내하길..

장자, 내편 -제물론(만물평등론) 제2장

남곽자기가 탁자에 앉아 있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쉬었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안성자유가 곁에서 지켜보다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몸은 죽은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야 불 꺼진 재처럼 가만히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생님의 모습은 조금 전의 그 모습이 아닙니다』

자기가 말했다 『여기 앉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게 좋을 거라 생각못했다 하지만 대답이 떠올랐다 방금 난 무아의 경지에 들어 갔었다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들어 봤겠지만 대지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대지의 음악은 들어봤어도 하늘의 음악은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대답했다 『그것에 대해 더 말씀해 주십시오』

자기가 말했다 『대지가 기운을 토해내면 그게 바로 바람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지의 모든 계곡과 구멍이 소리를 낸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가? 굉장히 우아한 산의 숲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코와 입,귀,구멍 잔,회반죽 운하,하수구 같은 틈과 동굴을 둘러싸고 있지요 외치고,소리치고 고함치고,빨아 들이고,통곡하고 소리치고,휘파람불고 으르릉대고,역풍이 노래한다 『우!』 순풍도 노래한다 『야!』 부드러운 바람이 저음을 내고 강한 바람이 고음을 낸다 사나운 바람은 모든 텅 빈 구멍과 동굴 속에 분다 이 기묘한 악기들의 이런 조화로운 소리를 들은 적 없는가?』

자유가 대답했다 『대지는 많은 틈과 동굴들로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대나무 악기로 음악을 만듭니다 하늘의 음악에 대해 더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기가 말했다 『수 천 가지의 서로 다른 것들이 소리내지만 그들만의 형식에 맞춰 만들어 낸다 그들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모두 맞춘다 그들을 정말 사로잡을 이가 있을까?』 위대한 지식은 가깝고 빛나는 것에 집중한다 작은 지식은 멀고 어두운 것에 집중한다 호언장담은 밝고 격렬하다 잡담은 재잘거리며 분산된다 잠잘 때 영혼과의 접촉이 있다 깨어있을 때 다른 면이 나타난다 함께 접촉하고 만날 때 매일 우리 가슴과 생각이 경쟁한다 우린 냉담하고 말없이 우울할 수도 있다 작은 두려움이 걱정과 근심을 만든다 큰 두려움은 냉담과 격리를 만든다 석궁의 화살처럼 쏘아 그들이 단정지은 옳고 그름을 지배하려 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변하듯 쉽게 죽이고 하루가 지나면 소멸될 말들을 한다 그들 스스로 자극된 행동에 빠져 그들로부터 돌아설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들의 혐오감에 포위되어 하수구에 정체된 물과 같은 말들을 사용한다 그들의 가슴은 죽음에 가까워 사물의 밝은 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모든 그들의 체험은 행복과 화 외로움과 기쁨 걱정과 고민 순응과 제한 압박과 게으름 개방과 자만이다 한 때 비어있던 것에서 기쁨이 나온다 마치 버섯이 증기와 표토에서 만들어지듯이 밤낮으로 자연스레 서로를 따르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충분하다! 날이 새고 해가 뜬다 각자 삶을 창조할 곳이 있다!

『나』없이 『그들』이 있을 순 없다 뭔가 붙잡을 것 없이 『내』가 있을 순 없다 이해하기 쉬운 듯 보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이유가 없다 완벽한 진실이 있는 듯 보이지만 딱히 무엇을 정말 명백하게 깨달을 순 없다 개인적 신념을 가질 순 있으나 실질적 형태를 갖는 건 허락치 않는다 사물에 대한 감정을 가지되 그들 주위에 교리를 만들진 않는다 뼈 수백 개와 구멍 9개와 6개의 기관이 존재를 완성한다 이 중 가장 가깝게 느끼는 게 뭔가? 그들 모두를 위해 기쁨을 표현하는가? 그들 모두 똑같이 소중히 여기는가? 그들 모두 시중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이 시중들 중 누가 다른 누구를 제어할 수 있는가? 이들 중 누가 다른 시중을 통치자처럼 여겨 자신을 맡기는가? 그들 중 진정 완벽한 통치자가 있는가? 진정 그런 계급을 정하고 싶다면 그들의 활동 관계는 목적을 향한 가치가 사라지고 감소하여 완벽하고 조화롭게 작용하지 못할 것이다 한번 육신을 얻으면 지칠 때까지 그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서로를 파괴하고 낭비한다 그들은 전속력으로 온 사방을 달려 스스로를 마모시키며 무엇도 그들을 막지 못한다 슬프지 않는가! 일생 동안 전투와 싸움을 보내고도 그들이 원하는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 스스로 온갖 전투로 기진맥진 하게 만들고도 빠져나올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확실히 슬플 수 밖에 없다! 누가 불멸에 대해 말하는 것이 뭐가 이롭겠는가? 외양이 일그러지면 그들 마음도 더 이상 이해 할 수 없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프다! 본래 인간이 이런 우스운 생각을 갖고 태어났는가? 이를 우습게 생각하는 건 나 뿐인가 아니면 동감하는 누군가가 있는가?

선생을 따르라는 뜻이었다면 지금 선생 없이 있는 이가 하나라도 있을까?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다른 이의 가르침과 한 사람의 진정한 감정으로 바꾸라는 뜻인가? 멍청이들은 모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마음과 연결되지 못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가졌다면 오늘 월에 가서 어제 거기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다 무에서 뭔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무에서 뭔가를 만드는 건 위대한 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가르침을 따르겠는가!

말하는 것은 단지 입에서 부는 바람에 불과하지 않다 말하는 자는 실로 뭔가 말하고 있으나 그가 말하려는 건 정말 모호한 듯 할 것이다 그러니 말하는 목적이 뭔가? 아무 말이 없다면 뭔가? 말하는 것은 아기 새가 지저귀는 것과는 다른 생각이다 말로 뭔가를 명확히 할 수 있는가? 말로 뭔가를 혼란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진실과 가짜가 있을 정도로 도가 숨겨지게 되었는가? 어떻게 옳음과 그름이 있을 정도로 언어가 숨겨지게 되었는가? 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어디인가? 존재하지 않아야 할 단어들이 무엇인가? 도는 작은 성취들 속에 숨어있다 단어는 과장된 말속에 숨겨져 있다 그럼 우리는 옳음과 그름에 대한 유가와 묵가의 사상을 갖게 된다 누군가 맞다 하면 누군가는 틀리다 한다 누군가가 틀리다고 생각한 일을 다른 이는 맞다 생각한다 옳음을 그름으로 만들고,그름을 옳음으로 만들려면 정말로 명쾌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사물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어떤 것을 저것이라 생각하고 바라보면 명확하게 볼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저것은 이것에서 나고 이것도 저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저것과 이것은 고유의 이론들로 삶에 대한 비유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삶과 죽음을 비교할 지 모른다 누군가는 죽음을 삶에 비교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적합한 것과 부적절한 것을 비교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부적절한 것을 적합한 것과 비교할 수도 있다; 옳음이 있는 이유는 그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름이 있는 이유는 옳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자는 이러한 논법의 단계를 따르지 않고 천국에서 오는 것을 반영한다,이러한 논법을 사용함으로써: 이것은 또한 저것이다 저것 또한 이것이다 저것은 옳음과 그름 모두 어느 정도 갖는다 이것도 옳음과 그름 모두 어느 정도 갖는다 이것으로 인해 저것과 이것이 생기는가? 저것과 이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 결과인가? 저것과 이것이 더 이상 떨어져 있을 이유가 없어질 때가 바로 도의 주축으로 일컬어진다 추축이 파괴되지 않은 원의 중심에 있을 때만이 끊임 없이 응답할 수 있다 옳음은 그 끝없는 원의 일부이다 그름도 그 끝없는 원의 일부이다 즉,이렇게 전해진다 『너는 진실로 명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손가락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쓰는 것을, 어떤 것이 손가락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좋지 않다 어떤 것이 말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보여주기 위해 말을 쓰는 것을 어떤 것이 말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보여주기 위해 말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좋지 않다 천국과 지옥은 손가락들이다 만 가지의 사물들은 말들이다

가능한 것은 가능하다 불가능하면 불가능하다 도와 함께 가면 성공이 있을 것이다 말되어 지는 것들이 그렇게 된다 어찌 그리 될수 있나? 그러한 것은 그러하다 어찌 안 그러겠는가? 아닌 것은 안 그러하다 사물들은 실제로 다소 그러하다 사물들은 실제로 다소 가능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안 그렇다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풀잎의 작은 새싹과 거대한 회오리 바람도; 못난 도깨비와 서시도 (유명한 중국의 미녀) 그 무엇이 비범하게 보여 드러나겠는가? 도는 그 모든 것과 함께 한다 이들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그들의 파괴를 불러 온다 평범한 것들은 구분도 파괴도 없으며 그들끼리 서로 연관될 수 있기에 이들은 하나가 된다 오직 날카로운 이해력이 있는 자만이 모든 것들 안에 있는 통합을 읽을 수 있다 그것에서 유용성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평범하다는 생각 안에 거주함으로 인해 가능하다 평범한 것은 유용하다 유용한 것들은 연결을 만든다 연결을 만드는 것은 뭔가를 찾게 된다 아주 소수만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뭔가를 찾는다 그들이 뭘 하는 지 알지 못한 채로 멈출 때,이들은 도의 요점을 얻는 것이다

영혼과 지성을 닳도록 만들고 모든 것이 이미 조화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한 채로 모든 것을 통일시키려 하는 것이 바로 『조삼』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아침에 세 개』? 원숭이 조련사가 있었는데,그는 원숭이에게 견과류를 먹이는 일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밤이 되면 네 개를 주시오』 원숭이들은 모두 분노했다 그래서 그가 『좋소 그러면 아침에 네 개, 밤에 세 개 주시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행복해했다 먹이는 양 전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기쁨이나 화를 표현하는 그들의 반응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러므로 현자는 옳음과 그름 사이에 조화를 찾고 천국의 평등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것이 바로 적응 가능함(양행) 이다

고대 이래로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무엇을 통해 그렇게 했는가? 먼저 사물들이 분리된 독립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 범위였고 아무것도 더해질 필요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분리된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그 어떤 것도 다른 것 위에 두지는 않았다 그 후에는 어떤 것들이 실제로 다른 것들 위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지만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구분은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구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들은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나자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성취들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렇게 길을 잃고서도 성취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누군가 그렇게 길을 잃을 때에는 아무런 성취도 할 수 없는가? 길을 잃었을 때에 성취감을 느끼려면 조씨 가문의 사람이 (유명한 중국 음악가) 치터를 연주할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에 성취감을 안느끼려면 조씨 가문의 사람이 연주를 안 할것이다

조문은 치터를 연주했다 사광은 그의 봉을 휘둘렀다 혜자는 나무 그늘에 기대었습니다 이 세 군자가 얼마나 알았을까? 이들 모두는 부유했고 여생 동안 매우 유명했다 그들 하나 하나가 자기 일에 뛰어나서 모든 사람이 마치 자기처럼 재능이 많은 것이 쉬운 일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겐 그들과 같은 재능이 없었죠 이들은 각자 다른 분야에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타인을 가르치려는 그들의 결심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들의 재능도 함께 죽었다 여기에 더해 문의 모든 학생들은 남은 여생 동안 계속 현을 켰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이것이 성취라고 불릴 수 있다면 나도 뭔가를 성취했다 이것이 성취라고 불릴 수 없다면 나나 그 누구도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혹적인 것에 대한 의심에 빠져드는 것 현자는 이것을 지도로 삼는다 무엇이 유용한 지를 찾기 보다,모든 것이 그저 평범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현명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