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는 페르시아어로 진행되며 자막으로는 영어 아랍어 불가리아어 어울락어(베트남어) 중국어 크로아티아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불어 독일어 힌두어 헝가리어 인도네시아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한국어 페르시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페르시아에선 마울라나로 전 세계적으론 루미로 알려진 마울라나 잘랄루딘 무하마드 발크히 루미는 천재 시인이자 신학자이며 우리 행성에 은총을 내린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가 지구를 떠난 지 8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유산이 남긴 깊고 다양한 영향은 여전히 있으며 모든 문화와 경계를 넘어 많은 이들을 일깨웁니다 그의 방대한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루미는 페르시아 혹은 고대 이란의 풍부한 문학과 문화유산을 계승했고 신비롭고 훌륭한 시는 페르시아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영토지만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발크시에서 태어났어요 셀주크 제국 통치 아래 그의 일생 대부분을 보내고 일했으며 현재 터키에 속하는 코니아시에서 코니아시에서 타계했습니다 루미의 시집과 더불어 Fihi Ma Fihi (그 안에 무엇이) Majālese Sab'a (7개 수업) Maktubāt (편지)가 포함된 그의 산문집 또한 현명한 통찰과 지혜를 선사해 줍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는 루미의 강연, Fihi Ma Fihi (그 안에 무엇이) 제 6강연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함께 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곧이어 수프림 마스터 TV 주목할 뉴스에 이어 사랑스런 삶의 터전 지구가 방송됩니다 신의 무한한 축복과 사랑이 함께하길 빕니다

제 6강연

이는 이해할 말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겁니다 하지만 말 없이 이해하는 자들에게 언어가 무슨 소용 있나요? 천국과 지상이 그들에겐 말씀이니 신의 말씀을 그들 앞에 두노라 [코란 36: 82] 속삭임을 듣는 자에게 고함과 비명이 무슨 소용 있나요?

어느 날 아라비아 시인이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왕은 터키인으로 페르시아어도 알지도 못했지요 시인은 그를 위해 아랍어로 눈부신 싯구를 지어 그에게 받쳤습니다 왕이 왕좌에 자리하였을 때 조신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고 지휘관 대신들도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죠 갈채를 받을 만한 매 구절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움을 야기하는 매 구절마다 그는 감탄한 듯 보였죠 매 구절마다 그는 공손히 응답하였습니다 조신들은 몹시 놀라웠어요 『왕은 아랍어를 모르셨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고개를 끄덕이지? 그간 아랍어를 알고도 우리에게 그 사실을 숨기신 건가 아랍어로 무례한 말을 퍼뜨렸는데 화가 있을 지라!』

왕이 총애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조신들은 함께 모여 신하에게 말 한 필 노새 한 필과 거액의 돈을 주며 다시 그만큼 주기로 약속하였어요 『왕이 아랍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봐 주시오』 그에게 말했습니다 『모른다면 어떻게 정확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는가? 기적이었단 말인가? 신의 영감이란 말인가?』 마침내 어느 날 신하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왕이 기분이 좋은 걸 알고서 신하는 왕에게 노골적으로 물었어요 왕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어요 『하늘에 맹세코 난 아랍어를 모르네』 그가 말했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보낸 것은 시인이 무엇을 위해 그 시를 썼는지 알았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 쳤지』 그 시가 욕망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쓰여진 걸 알았죠 시인은 단지 그 목적에서 시를 쓴 겁니다 그런 목적이 없었다면 시인은 절대 그런 시를 쓰지 않았을 테죠

본 목적이 주목이면 이중성은 사라지죠 이중성은 가지를 나타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수피 세이크도 같습니다 비록 외형이라도 다양한 방식의 가르침과 범위가 다른 사회적 신분 심지어 행동과 말,게다가 목적에 따른 견해에서 볼 때 모두가 하나의 목적인 신을 추구하고 있죠

바람의 경우를 들어봅시다 바람이 집을 강타하면 카펫 끝자락을 들어올리며 담요는 펄럭이며 이리 저리 움직이죠 막대기와 지푸라기를 공중에 날려보내고 연못 수면은 쇠미늘 갑옷처럼 동요하며 나무와 가지들을 춤추게 하며 꺼진 불과 땔감에 반쯤 남은 불을 활활 타오르게 일으킵니다 이 모든 조건이 뚜렷이 달라 보이지만 대상의 관점과 본질과 실체는 모두 하나입니다 바람이 움직인 것이지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는 진짜 목적을 간과 했어요』 루미는 대답했어요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 그들은 스스로 비판하며 말했어요 『나는 뭘 위해 왜 이것을 하려 했던가?』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신의 사랑과 관심이 증명됩니다 『질책과 사랑은 함께 지속되죠』라고 시인이 말했습니다 친구는 꾸짖지만 결코 낯선 자는 꾸짖지 않습니다 질책에도 등급이 있어요 사람이 질책에 자극 받아 내면의 진리를 볼 때 그것이 신의 사랑과 보살핌의 징표라는 걸 보죠 그 사람에 대한 질책이 고통 없이 사라진다면 그건 사랑의 징표가 아닙니다 먼지를 털기 위해 담요를 두드릴 때 총명한 사람은 그걸 질책이라 하지 않죠 허나 여자가 사랑스런 자식을 때리면 질책이라고 합니다 그건 그녀의 사랑을 증명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당신이 내면에서 고통을 느끼고 후회하는 한 그건 신이 사랑하고 인도한다는 증거죠

당신이 동생이나 누이의 잘못을 본다면 그 잘못이 자기 내면에도 있는 거예요 진정한 수피교도는 거울과 같습니다 스스로를 비추지요 『신자는 동료 신자의 거울이다』 라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떨치세요 그들로 인한 근심은 당신 내면의 근심이니까요 모든 나쁜 성품들 억압,미움,시기 탐욕,무정,자만 그것들은 자신안에 있어도 고통스럽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서 그걸 보면 고통을 느껴 멀리 피하지요 제 몸의 옴,종기는 혐오스럽지 않아요 감염된 손으로 음식을 집고 조금도 거북함 없이 손가락을 핥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 손에 작은 종기나 생채기만 봐도 그 사람 음식을 피하며 조금도 먹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쁜 성품이란 옴이나 종기 같아서 자신에게 있을 땐 고통이 없으나 다른 이에게서 조금만 봐도 고통과 혐오감을 느끼게 되지요

당신이 피하는 것처럼 그가 당신을 피하고 고통 받는 다면 변명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의 변명에 고통 받으며 그 고통은 과실을 인식할 때 오니 그도 같은 과실을 알아보게 되지요 『신자는 동료 신자의 거울이니라』 이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신앙이 없는 자가 신자의 거울이니라』 라고 말하지 않았죠 신앙이 없는 자는 거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닦지 않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의미지요

어느 왕이 낙담한 채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를 겁내며 무서워했어요 어떻게 해도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어요 그가 매우 총애하는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웃게 만든다면 얼마간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광대는 왕에게 다가가 모든 노력을 다 했으나 왕은 보려고 조차 하지 않았어요 왕은 계속 강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죠 『물 속에 뭐가 있습니까 ? 』 광대가 왕에게 물었죠 『계속 나를 괴롭히는 오쟁이를 보고 있지』 왕은 대답했어요 『세상의 왕이여』 『당신의 노예도 눈이 멀진 않았어요』 경우에 따른 겁니다

자신의 고통을 동료에서도 본다면 결국 그들도 장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보는 걸 정확히 보지요 신 앞에 내가 둘 존재할 수 없어요 자신과 신의 본성을 알 수 없지요 신 앞에 죽거나 신이 당신 앞에 죽으니 그 이중성은 존속하지 못합니다 허나 신의 죽음은 불가능하며 있을 수 없지요 신은 생명이자 불멸입니다 은혜로써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신은 당신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당신이 죽어야 하죠 그래야 신 자신이 당신께 모습을 보여 이중성이 소멸됩니다

새 두 마리를 묶어 보세요 그들이 교우관계에 있고 날개가 둘에서 넷으로 늘었다 해도 그들은 날지 못해요 이중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마리가 삶을 체념하면 다른 한 마리에 묶여있대도 납니다 이중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이토록 태양은 자비로우니 기꺼이 박쥐 앞에 죽겠으나 그건 불가능하니 태양이 말하죠 『박쥐여 내 자비는 우주이니 친절을 베풀어 다오 네가 죽는 것은 가능하니 그리하면 내 영광의 빛과 함께 하여 박쥐의 무리에서 변하여 오프 산 가까운 곳의 시모그가 되리라 (전설의 새) 』

샴시 타브리즈는 신의 신하로서 친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그는 친구를 위해 신에게 기도했으나 신은 그의 청원을 거부하였죠 『그를 돕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어요 신의 신하가 고집스레 부탁을 거두지 않고 말했죠 『신이여 당신이 이 요구를 그에게 심었으니 저버리지 마세요』 결국 목소리가 들렸죠 『이 일이 일어나길 바라느냐 ? 그럼 네 자신을 희생하라 무로 돌아가라 기다리지 말고 이 세상을 떠나라』 『신이여』샴이 답했죠『기쁩니다』 그는 그렇게 했어요 친구와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 걸은 것입니다 신의 신하가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자비를 가질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세상의 일생의 처음부터 끝과 맞먹으니 자비의 근원은 이 사랑 또한 소유하고 있겠죠? 달리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신이 죽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니 당신이 죽어야 살아남을 수 있죠

한 어리석은 자가 위대한 성인 뒤에 앉았습니다 성인에게 있어 그런 사람이 뒤에 있든 등불 아래 있든 무슨 차이가 있죠? 등불이 높이 걸려 있길 바란 건 자신을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죠 그들이 빛을 즐기고 나누기 위한 거예요 등불이 어디에 있든 아래든 위든 영원한 태양의 등불입니다 성인이 세상의 위계를 구한다면 이 목적 때문이에요 그들은 이런 속세의 함정을 원합니다 진정한 진보를 보지 못하는 이에게 속세의 계급이란 덫을 쓰는 거지요 이를 통해 그들은 높은 세상을 위한 그들의 방식을 찾다 성인의 은혜의 덫에 걸립니다 이와 같이 예언자 모하메드는 (평화가 함께 하길) 메카와 주변 땅들을 정복하지 않았죠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고 빛을 수여하여 정복했죠 『이 손은 가져가는 것이 아닌 주는 것에 익숙한 손이다』 성인은 선물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속일 뿐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오직 성인의 외적인 말의 의미만 고려하여 말했어요 『이 얘기는 이미 많이 들었어요 우리 가슴은 그 말로 가득 차 있죠』 이때 그들은 저희의 마음이 굳었나이다 라고 대답하나 신은 그들의 불신을 저주하셨네 [코란 2: 88] 불신자들은 말하겠죠 『저희의 마음은 그런 말씀들로 굳었나이다 그 말씀들로 채워져 있어요』 지고의 신이 답했죠 『신은 그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금할 것이다! 그들은 속삭임과 헛된 자만으로 가득하며 악마의 의심과 부정 저주로 가득하도다』 허나 신은 그들의 불신을 저주했죠 [코란 2: 88] 그런 헛소리로 그들은 비어있겠죠 그러면 그들은 말씀을 받으려 열릴 겁니다 그들이 자격 있을 때 자격이 없다 해도 이 말씀들을 받을 것입니다 신은 그들 귀와 눈,마음을 봉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진실과 다른 것을 봅니다 요셉을 늑대로 보죠 그들의 귀는 진실과 다른 것을 들어요 코란의 가르침과 지혜를 횡설수설 헛소리로 간주하죠 그들의 마음은 밀담과 헛된 자만이 세든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겨울의 어둠의 모습과 허망한 자만의 혼돈은 그들을 소유하였죠 얼음과 서리와 함께 얼어버렸어요

신이 그들의 마음을 봉하고 그들의 귀를 봉하고 그들의 눈을 봉해 버릴 것이니라 [코란 2: 7] 이런 사람들이 어찌 진실된 말들로 가득할 수 있을까? 그들의 입김만큼도 잡은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 평생 한 방울도 맛보지 못했지요 그들도 그들이 숭배 하는 이들도 그들의 불쌍한 가정부도요 신은 한 주전자 가득 모두에게 보이죠 어떤 이들에겐 물이 한 주전자 가득 보여 질리게 마십니다 어떤 이들에게 신은 빈 주전자를 보이죠 빈 주전자에 어떤 감사를 표할 수 있을까요? 오직 신이 가득 찬 주전자를 보인 이들만 선물에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평화가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