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술과 영성은 어울락(베트남)어로 진행되고 자막은 아랍어 중국어 영어 불어 독어 헝가리어 인도네시아어 일어 한국어 페르시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타이어 스페인어입니다

곤 돗자리 상인이여 어디서 왔나요?
아직 더 많이 남았나요?
당신은 몇 번의 봄을 겪었나요?
결혼해 아이는 몇이나 있나요?

저는 서호에서 왔고 곤 돗자리를 팔아요
왜 더 있느냐고 물으시나요?
저는 이제 16살이 되어가요
남편이 없는데 물론 아이도 없지요

선녀 같은 당신이 나와 밤낮을 보내며 시의 기쁨을 나누어요

나는 선녀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에요

두 시인끼리 서로 사랑할까요

어디가 예뻐서 나에게 반했나요?

당신 매력이 선비를 설레게 해요
그대의 정열적인 눈빛을 사랑해요
그대의 모든 말은 시적이군요

저는 서호에서 왔고 화문석을 팔아요
왜 더 있느냐고 물으시나요?
저는 이제 16살이 되어가요
남편이 없는데 물론 아이도 없지요

선녀 같은 당신이 나와 밤낮을 보내며 시의 기쁨을 나누어요

나는 선녀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에요

두 시인끼리 서로 사랑할까요

어디가 예뻐서 나에게 반했나요?

당신 매력이 선비를 설레게 해요
그대의 정열적인 눈빛을 사랑해요
그대의 모든 말은 시적이군요
그대의 정열적인 눈빛을 사랑해요
그대의 모든 말은 시적이군요

15세기 레왕조 후기에 고관이던 응웬 뜨라이의 시로 만든 노래 『곤 돗자리 상인에게 묻네』를 감상했습니다 응웬 뜨라이는 문학과 외교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했습니다 또한 고결함으로 유명했습니다 『곤 돗자리 상인에게 묻네』 시로 두옹 띠엥 투가 작곡한 노래를 투이 뜨랑과 체 퐁의 목소리로 감상했습니다

어울락은 동남아시아의 아름다운 나라로 오랜 전통문화를 가졌으며 문학과 예술 종교, 전통의상과 요리까지 모든 분야가 생기고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지구의 은총으로 어울락은 사랑 받는 많은 지역 특산품이 있습니다 사실 1991년 3월 미국의 공개 강연에서 칭하이 무상사는 어울락(베트남)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칭찬했습니다

『어울락(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나라 중 하나지요 금, 은, 우라늄, 납, 아연, 주석 광산들이 있지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도덕심과 효도 화합과 함께 4천 년의 문명이 있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땅에는 항상 풍부한 식량과 과일이 열리죠 내가 학생일 때 빈 두옹과 롱탄에 갔었는데 아주 다양한 과일이 있었던 게 생각나요 쌀도요! 탐톰이란 어울락 (베트남)쌀은 동남아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르거나 신선한 다른 산물도 있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어울락(베트남)과 그 국민들에게 소중한 말씀과 한 없는 축복을 주신 칭하이 무상사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주 옛날부터 어울락 돗자리는 요람에서부터 사람들 삶과 가깝게 연결되었습니다 시골부터 도시까지 모든 어울락 가정에 돗자리가 있으며 시골 초가집에서 귀족의 궁전까지 사용합니다 현재 어울락의 세 지역에서 돗자리 만들기로 유명한 마을들은 북부의 응아손 마을 중부의 반타크마을 남부의 빈옌마을입니다 지역문화에 따라 돗자리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주요 재료는 여전히 왕골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어울락의 돗자리를 즐겁게 소개하겠습니다

돗자리의 기본재료인 왕골을 골풀로도 부릅니다 삼각형 줄기의 풀로 키가 2m에 이르며 습지나 강가의 충적토 지역에서 저절로 자랍니다 오래 전부터 때로는 수백 헥타르에 이르는 땅에 골풀재배가 전문인 빈롱성의 붕 리엠지역을 방문하겠습니다 붕 리엠은 남서부 지역에서 골풀의 주요 공급지의 하나로 유연하고 오래 가는 고품질 왕골을 생산합니다

골풀은 수확한 후에 흔히 현장에서 쪼개서 말립니다 태양에 충분히 말린 후에는 크기가 줄며 연녹색을 띱니다 지금 보는 골풀을 쪼개는 기계는 도 반민씨가 만들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당신이 이 기계를 정식으로 발명한 분이세요?

개량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네 개의 고정되어 회전되는 도끼로 만들었지요 그러나 제가 4개의 도끼를 골풀크기에 맞게 바꾸도록 개량해 큰 골풀에는 확장을 하고 작은 골풀에는 축소합니다 그러니 전보다 보기가 좋아요

남서부 지역에서 돗자리를 만들 마른 골풀은 흔히 골풀재배지인 붕 리엠 같은 곳에서 상인들이 가져옵니다 마른 골풀로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왕골염색과 베틀 준비 돗자리 짜기의 3단계를 거칩니다

가져오거나 수확한 마른 골풀은 길게 쪼개서 약 3일간 햇빛에 말립니다 햇빛에 말린 조각은 크기가 줄면서 연녹색이 됩니다 이제 골풀조각을 염색합니다 흔히 붉은색과 노란 색, 녹색으로 염색합니다 먼저 노랑을 염색하죠 물이 잘 끓으면 염료를 넣은 후에 왕골뭉치를 넣어 염색이 고르도록 5분간 뒤집습니다 그 후에 빼냅니다 붉은 염료를 넣고 계속 할 수 있지요 다른 솥엔 녹색 염료를 끓입니다 때로는 바꿔서 보랏빛을 더하기도 하며 염색 후에는 밖에서 말립니다

이제 촘촘히 꼬아서 베틀에 『뜨란』을 설치합니다 『뜨란』은 일종의 나무껍질입니다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 후에 긴 조각으로 쪼개 큰 타래로 감아둡니다 그리고 뜨란 줄을 베틀에 연결하지요 베틀은 짜는 축과 잡는 축으로 구성됩니다 짜는 축은 2개의 나무대를 마른 대나무로 만든 직기 골에 함께 연결합니다 각 골마다 구멍을 만들어 뜨란 줄은 구멍에 고정시킵니다 짜는 축을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인데 돗자리가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은 주로 짜는 축에 달려 있습니다 이 축을 솜씨 있게 만들지 않으면 골풀조각을 바르게 당기지 못하지요

이제 돗자리를 짜기 시작합니다 뜨란 줄을 짜는 축 위에 고정시키고 자리를 짜기 위해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잡는 축을 한 바퀴 돕니다 두 사람이 돗자리를 짭니다 낮은 쪽 작업자가 골풀을 넣지요 이 사람은 『삽입기』라는 작은 막대를 잡고 위쪽 작업자는 짜는 축을 아래 위로 돌리며 골풀 넣는 사람은 골풀을 삽입기에 감아서 뜨란 줄 사이에 넣습니다 위쪽의 작업자는 차례차례 골풀을 짜게 됩니다 각 골풀 줄을 짠 후엔 가장 밖의 뜨란 줄과 매듭을 지어야 골풀이 헐거워지지 않습니다 하나의 자리를 완성하면 낫으로 양쪽의 나머지 골풀을 다듬습니다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려면 단계마다 기술과 정확성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자리에는 다음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 쪼갠 골풀을 햇빛에 완전히 말리죠 둘째 골풀염색은 돗자리 색이 밝게 빛나려면 정확한 비율이 필요합니다 염색된 것은 적당한 햇빛에 말립니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부서지기 쉽고 햇빛이 너무 약하면 쉽게 곰팡이가 피죠 셋째 골풀을 넣을 때 아름다운 돗자리는 색을 솜씨 있게 배열해야 합니다 넷째 균등하게 짜면서 골풀이 부서지거나 틈이 생기지 않게 하여 아름답고 오래 가게 합니다

염색할 때 물을 잘 끓여야 빛깔이 밝고 아름답게 염색됩니다

자리를 짜기 전에 골풀이 충분히 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고 며칠 내에 색과 윤이 바랩니다

현대엔 대나무나 플라스틱 자리가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돗자리를 선호합니다 이제 전문가가 설명하는 돗자리의 장점을 알아볼까요

사용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돗자리를 쓰면 사람들은 편안하게 느낍니다 돗자리의 다른 장점은 순환이 좋아집니다

우선 돗자리를 사용하면 쉽게 땀을 흡수하여 통증이 없어지며 몸의 느낌도 좋아집니다 둘째 가벼우니 씻고 말리기 쉽지요 돗자리는 생물 분해되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습니다

돗자리는 쉽게 분해되고 환경에 위험한 물질이 남지 않습니다 분해된 후에는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합니다 질소와 인 칼슘처럼 환경에 좋은 것만 더해줍니다

돗자리는 특별한 특징이 있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계절이 바뀌면 다른 자리로 바꿀 필요가 없어 좋아합니다

돗자리는 어울락 사람에게 익숙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기는 돗자리에서 잠을 잡니다 시인도 젊은 부부의 다정한 행복을 돗자리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달빛 아래 나란히 놓인 돗자리 나는 책을 읽고 그대는 다른 자리에서 천을 짜네』 예술에서 표현된 돗자리에 대한 사랑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며 전설적인 어울락 남부의 옛 노래로 돗자리 상인의 고요한 슬픔을 그린 비엔 차우의 『돗자리 상인의 마음』이란 노래도 있습니다 200여 편의 현대 민속 오페라에서 눈부시게 공연하고 약 천 곡의 옛 노래를 부른 우트 뜨라 온의 목소리로 감상해 주세요 많은 청중들이 그를 최고의 가수로 찬미합니다

차마우 돗자리가 밝게 염색되었네
나는 많은 비와 햇살을 견디었지
이 특별한 돗자리는 팔지 않을 거라네
그대를 찾지 못하면 나의 베개가 될 거야
차마우 돗자리를 실은 배가 응아베이 수로에 들어왔네
지난 날의 아가씨는 왜 오지 않을까?

오래 전부터 그대 정원문은 잠겼네
무늬 돗자리를 배에서 들고 레이 마을로 갔네
흙투성이 셔츠는 땀에 젖었지
그대 집은 앞뒤로 고요하구나
겨울 저녁의 차가운 바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문류트 소리
내 마음의 깊은 슬픔을 깨우네

그대는 침실을 장식할 2m 돗자리를 주문했네
오늘 그대는 이미 나를 잊고 남편과 결혼을 하네
골풀과 황마를 직접 골라 내가 짠 이 돗자리
내가 왔지만 그대는 다른 마을로 떠났네
옛 정원에 서서 슬픔에 잠기네
이 돗자리를 누구에게 줄까?

작년 내 배가 응아 베이강에 들어올 때
그대 미소를 띠고 나를 집에 데려갔네
그대 방으로 나를 데려가
레인트리 침대를 재게 하고 한 쌍의 돗자리를 주문했네
가격을 묻기에 그대와 친하고 싶어 낮은 값을 말했지
5일 후 내가 떠나려 할 때
그대 부두에 서서 요구조건을 조심해서 말했네
그리고 돌아서 걸어갔었지
장밋빛 블라우스가 대나무숲 뒤로 사라졌었네
내가 모자로 얼굴을 가려 눈물을 감춘 것을 그대는 모르리
사람들이 비웃고 사랑에 빠진 놈이라 부를까 염려하여

과거에는 남부 모든 도시에 차마우 돗자리 상인이 다녔지요 점점 돗자리 짜기가 멀리 퍼지며 이제 남서부 지역에 돗자리 짜는 여러 마을이 생겼고 그들 중에는 1920년부터 돗자리를 짜던 동탑성의 딘옌마을이 가장 유명합니다 약 2만 명의 주민 중에서 80%가 돗자리를 짜는 사람입니다 딘옌마을에선 매년 140만 개 돗자리가 생산됩니다 딘옌마을에는 수공이나 기계로 돗자리를 짜는 크고 작은 시설이 많이 있습니다 딘옌마을은 돗자리만 있는 세상처럼 집의 안팎에 돗자리가 보이며 사람들이 어디서나 골풀과 돗자리를 염색합니다 모든 집 앞마당에서 골풀의 화려한 뭉치들을 햇빛에 말리며 골풀 향기가 모든 곳에 퍼집니다

이제 딘옌마을의 베짜기 직조시설을 방문해 기계로 짜는 기술을 알아봅니다 장인들은 또한 수공이나 기계로 짜는 과정의 차이점을 설명합니다

전에는 돗자리를 수공으로 짜며 베틀이 있었지요 나중에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첫 단계는 재료를 가공하는 겁니다 좋은 왕골을 선택해 말립니다 말린 후에 평평하게 흔들어 염색액에 잠깐 담급니다 염색 후에는 다시 햇빛에 말려서 돗자리 짜는 기계로 가져갑니다 2번째 단계는 기계로 짜기입니다 기계로 짜는 것은 왕골을 기계에 넣어야 합니다 작업자는 돗자리의 무늬나 디자인에 따라 정확한 색의 왕골을 선택해야 합니다 염색한 왕골조각이 기계에 들어가면 기계가 돗자리를 짜게 됩니다 기계를 작동하면 자동으로 왕골의 위치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돗자리가 약2m가 되면 기계를 멈추고 다른 돗자리를 짜기 시작합니다 돗자리를 짠 후엔 깔끔하게 다듬고 청소해 햇빛에 말립니다 말린 후에 단을 꿰매고 편평하게 만들죠

저희는 생산성과 생산량을 높이려고 기계를 샀어요 두 명의 수공직공은 하루에 돗자리 열 개를 생산하지만 기계로 짜면 약 40개를 생산합니다

현재 저희 마을은 수공과 기계 돗자리가 모두 있습니다

돗자리는 무지와 무늬의 2종이 있습니다 무지 돗자리는 염색을 하지 않은 연녹색입니다 무늬 돗자리는 색과 디자인이 다양합니다 과거엔 무늬 돗자리를 만들려면 작업자가 염색한 왕골과 흰 왕골을 섞어 원하는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장에서 많은 양을 요구하므로 무늬를 인쇄하는 과정이 생겼습니다

북부 어울락 응아 손 마을에서 돗자리의 무늬 인쇄기술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그림과 같아요 돗자리에 찍으려면 미리 디자인된 모델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하는 모든 가족들이 무늬를 찍거나 김을 쬐는 기술에 자신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지요 색이 아름답게 나오는 것은 솜씨에 달렸어요 무늬를 찍은 후에 돗자리를 스팀아궁이에 넣어 색을 밝고 빛나게 만들면 돗자리가 아름답게 보이며 돗자리를 씻거나 거기 누울 때 빛깔이 빠지지 않게 됩니다 찍기와 김 쐬기 단계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약간 빠르거나 늦어도 좋지 않아요 무늬를 찍고 김을 쐬는 시간이 정확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합니다 모든 무늬찍기에 아름다운 결과가 나오진 않지요

응아손 돗자리 마을과 함께 호이마을도 오랜 돗자리 마을입니다 호이 마을의 곤 돗자리는 아름답고 오래 가서 사랑 받습니다 어울락 문학사는 15세기 곤 돗자리 상인 응웬 티 로의 이야기를 아직도 계속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관이며 유능한 시인인 응웬 뜨라이가 어느 날, 서호를 산책하다가 사랑스런 돗자리 상인을 만났지요 천성이 유쾌한 응웬 뜨라이는 몇 마디 놀리는 시를 읊었습니다

곤 돗자리 상인이여 어디서 왔나요? 아직 더 많이 남았나요? 당신은 몇 번의 봄을 겪었나요? 결혼해 아이는 몇이나 있나요?

돗자리 상인이 망설이지 않고 시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서호에서 왔고 곤돗자리를 팔아요 왜 더 있느냐고 물으시나요? 저는 이제 16살이 되어가요 남편이 없는데 물론 아이도 없지요

매력적인 돗자리 상인의 유창하고 시적인 대답에 고관 응웬 뜨라이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재능을 찬미하며 응웬 티 호와 결혼했습니다 불후의 시가는 음악이 되어 오늘 방송의 첫 노래로 감상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돗자리는 어울락인의 생활에 뗄 수 없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어울락 돗자리가 수출되면서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았지요

돗자리를 다 짜면 양쪽을 다듬고 햇빛에 말립니다 말린 후에는 다시 청소하고 테두리를 꿰맵니다 테두리를 만들고 기계에 넣어 왕골을 똑바로 펴면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윤을 내고 작은 털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돗자리를 종이나 비닐가방에 넣어 포장해 10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죠 돗자리를 수출할 준비가 끝나면 자신이 직접 수출합니다 수출을 위해 사이공시의 큰 회사에 가는데 10개씩 말아서 그런 회사에 보내면 회사에서 포장하고 상표를 붙여 수출하게 됩니다 여기 돗자리는 한국과 포모사(대만) 캄보디아로 수출되었습니다

이곳 돗자리는 주로 중국시장에 보냅니다 이제는 일본과 한국, 러시아 태국에도 수출합니다

수공이든지 기계로 짰든지 돗자리 만들기는 많은 가족에서 고정 수입을 줍니다

돗자리 만들기 사업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지요 딘옌 마을과 딘안 마을에만 만5천에서 만6천 가구가 돗자리 만들기에 참여합니다 많은 수익은 올리지 못해도 손해는 보지 않아요

이런 수공예로 농부들은 농한기에 일을 하며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줍니다 가령 이 지역에서 학생들은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자유시간엔 가족을 돕지요 10살부터 돗자리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이런 직업은 안정적입니다 수입도 좋아요 열심히 일하는 것에 따라 항상 돈을 벌지요 쉽게 생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20년간 이 일을 했어요 이 수입으로 아이들의 대학 학비를 충분히 댑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하노이의 대학에서 공부합니다

어울락 돗자리는 다목적이며 저렴하고 몸에는 아주 편안합니다 돗자리는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분해됩니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전해서 돗자리가 더욱 정교해지며 편리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와 세상의 높아진 환경의식을 만족시킵니다

오늘 어울락 (베트남) 특산품인 돗자리 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서 앞으로 어울락 특산품에 대한 방송을 계속 시청해 주세요 주목할 뉴스와 고귀한 생활, 채식이 이어집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