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여러분
성공의 모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역사를 통해
위대한 개인들은
인류의 유익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분들 중
오늘은 미국의
민권 운동가이며
미국인 작가인
코레타 스콧 킹을
소개합니다
국제적으로 존경 받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의
세상을 향한 비전은
그녀의 남편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코레타 스콧 킹은
미국 남부인
앨라배마주의
매리언에서
태어나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가정은
화목했으며,
부모인 오바댜 스콧과
버니스 맥머레이
스콧은 자녀들에게
늘 삶은 선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이를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죠
2004년
워싱턴 DC
국립 대성당의
공로 아카데미
인터뷰에서
코레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동안 전
제 부모님이
가르쳐 주신 훌륭한
가치들을 토대로
살아왔습니다
제겐 영웅과 같았던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오늘 날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처음으로 그 지역에서
트럭을 소유하게 된
코레타의 아버지는
근면한 노동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죠
한편 그녀의 어머니는
미래의 자립과
성공을 위한 열쇠로서
자녀들이
학업에 열중하도록
끊임없는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코레타는 충실하게
부모의 지혜를 따랐고
매일 아침
8킬로미터를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가족들은 열심히
돈을 저축해서
코레타 삼남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을 위한
링컨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는
등록금을 마련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14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기에
코레타는 학교 근처의
다른 가정에
머물러야 했지요
스콧씨가 트럭을
마련한 이후엔
그의 자녀와
마을의 학생들을
학교로 태워다
주었습니다
사회적
인종 차별로 인해
코레타 가족과
친구들은 종종
위협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죠
매일
그녀가 학교에서
가장 고대하던
수업은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노래와 트럼펫,
피아노 연주를 배우며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타고난
재능으로 많은 곡의
솔로를 맡았습니다
15세에는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요
근면한 코레타는
1845년, 반에서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한 뒤 오하이오주
옐로우 스프링스의
안티오키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안티오키 대학에서
코레타는 음악
교사가 되기 위해
음악 교육을
전공하고
캠프와 도서관,
간호 학교에서
인턴교사로 일합니다
풍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흑인 학교에서만
교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흑인 지위 향상 협회
(NAACP)와
안티오키 대학의
시민 자유 위원회,
인종 관계 위원회에
가담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인종을 초월한
모든 사람의 권익을
위한 단체들로,
나중에 코레타는
이것이 민권
운동가로서의 여정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 이후 코레타는
직업을 바꾸어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노래에 온 마음을
쏟기로 결정합니다
1848년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첫 콘서트에서
그녀의 놀라운 음성은
청중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녀는 곧 유명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 폴 로브슨과
공연 하는 등,
다른 무대에도
섰습니다
폴은 그녀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킹 여사는 처음 만난
때를 이렇게 회고하죠
『그가 무대 위에
걸어나오면
엄청난 파워를
느끼게 됩니다
그의 말은
의미가 깊고,
매우 깊은 음성으로
말하고 노래합니다』
그 후 코레타는
제시 스미스 노이즈
재단으로부터
보스톤에 있는
뉴 잉글랜드
음악학교에서
학업을 계속 할수 있는
보조금을 받게 됩니다
전액 등록금을
보조 받았지만
여전히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파트 타임으로
통신 판매 일을 하고
집 청소를 해서
하숙비와 아침 식사
비용을 벌었습니다
생활은 빠듯했지만
코레타는 자립생활에
만족했습니다
『전 제가 하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전 비극을 겪었지만
많은 기쁨과 승리를
경험했지요
전 결코 많은 돈과
좋은 옷-더 값비싼
물건이 행복을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행복에 대한 나의
개념은 영적인
충만감입니다』
보스톤으로
옮긴지 6개월 후
카리스마 있는
침례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만난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완벽하게 어울린
두 사람은 사회에 대한
비슷한 관점을 나눴죠
그들은 1853년
6월18일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며칠 후
킹 여사는
결합의 상징으로
남편의 교회에
등록합니다
성공의 모델은
잠시 후 돌아와
코레트 스콧 킹이
민권운동가와 내조자로
어떻게 그녀의 역할을
해냈는지를 소개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 주세요
성공의 모델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해요, 오늘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을 소개합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로 이사한
두 부부는 그곳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들로
민권운동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워싱턴 DC
국립 대성당의
공로 아카데미에서
킹 여사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우리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마틴은 저항 운동의
지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보이콧이 계속되자
저는 제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
심오한 역사적
중대성을 지닌 일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몽고메리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전체의 압박 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운동은
전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지요
저는 고귀하고
역사적인 대의명분을
위해 부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국제적인 인정과
지지를 받자
킹 여사는 전적으로
그를 돕고
지원했으며
보이콧과 행진에
활발하게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
『자유 콘서트』를
마련하여,
노래와 시,
강연을 하나로 엮어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을 높였습니다
킹 여사는 음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제 남편은
시카고 뿐 아니라
남부의 도시들,
클리블랜드와 북부의
다른 도시들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여 비폭력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세 자녀를 낳았고
가능한 많은 활동에
참여했죠
사람들은 어떻게
네 자녀를 키우며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내게 물었습니다
제 유일한 대답은
신께서 위대한
임무를 당신에게
맡길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도움을 주었죠
물론 마틴과 나는
늘 함께 했습니다
위대한 이상을 위해
우리가 기꺼이
희생할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선한 이들이 우릴
지지해 주니까요
그녀와 가족에게
아무리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킹 여사는 항상
신을 믿었습니다
2002년, 비전적
리더십 국가
프로젝트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습니다
전 내면으로 향해
영적인 추구와
기도에 열중했죠
신의 일을 하고
옳은 일을 하면
신은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란 걸
알았으니까요
그런 믿음을 간직했고
그렇게 느꼈어요
킹 목사의 서거 후
킹 여사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 계속
활동해 나갔습니다
남편의 고귀한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는 비폭력
사회변화를 표방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센터를 설립했으며,
인권운동에 있어
그의 중요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남편의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진정을 올려
통과시켰습니다
공로 아카데미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시간이 걸릴지라도,
평화로운 해결과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선 비폭력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킹 여사는
수많은 연설과
평화 시위를
통해, 사회 정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였습니다
그녀는 시민들이
여성인권과
사회에 만연한 문제 등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를 알리고
행동을
취하도록 격려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건
사람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이해시키는 것이었죠
비폭력을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게 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비폭력과
평등의 사상은
우리의 동물 친구들
에게도 적용되어,
킹 여사는
비건 채식인 아들
덱스터 스콧 킹이
소개한
자비로운 채식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녀는 2003년
에보니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죠
『12년 전
덱스터를 통해
채식을 알게 된 건
축복이었습니다
전 주로 생식을
즐겨 먹지요
그러자
활기가 넘쳤고
노화현상이
지연되었으며,
제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이
흔히 앓는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등의
병이 없습니다』
킹 여사의
평생의 업적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녀는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는
코레타 스콧 킹 상을
제정했습니다
2004년 인도정부는
킹 여사에게
간디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2006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조지 H W 부시 등의
전 미국 대통령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헌사를 바쳤습니다
존경받는 제시 잭슨은
말했죠,
『그녀는
굴곡 많았던 삶을
의연하게 대처했으며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고국의 정의와
세상의 평화를 외친
그녀의 음성은
계속 남을 것이며…
그녀의 음성은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전 생애를 통해
킹 여사는
품위와 우아함,
높은 이상의 한결 같은
모범이었습니다
인류를 향한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사회의 건설적인
변화를 향한 헌신과
노력에 동기를
부여해 주었죠
코레타 스콧 킹의
유창한 언변과
고귀한 성품,
아름다운 마음은
전 세계가 모두를 위한
평등과 행복을 위해
분투할 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전 여러분에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성공 뿐 아니라,
그 성공을 이용해
형제애와 자매애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창조해야 하죠
기도와 믿음,
굳은 결심으로
이 도전을
받아 들인다면
분명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면 21세기는
모든 인류를 위한
평화와 진보의
빛나는 새 시대가
될 것입니다
신이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셔서 꿈을 이룰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공의 모델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 주세요
주목할 뉴스와
고귀한 생활, 채식이
이어집니다
사랑과 자비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