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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사이
축복받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 19세기의 호흡식을 한 수녀 1/3부 (독어)


  • 인트로
  •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 『축복받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호흡식을 한 19세기 수녀 』는 독일어로 진행되며 자막은 아랍어 어울락(베트남)어 불가리아어 중국어 체코슬로바키아어 영어 불어 독일어 힌디어 헝가리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말레이어 몽골어 페르시아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펀잡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경전에서 인간의 몸은 종종 신의 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이 거하는 이런 신성한 거처가 되는 건 어떤 영혼에겐 아주 진귀한 특권이며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건 참으로 축복이지요 칭하이 무상사께선 몇 차례나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문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로의 환생은 힘들지요 인간의 품성이 충분해야 하고 부모와 사회 여러분이 태어난 곳의 주위 사람들과 인연이 있어야 하니 아주 힘들지요 인간이 되기 위해선 공덕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뭔가 선행을 했던 것이지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신의 사원으로서 인간의 몸은 모든 생명의 조물주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진,영적으로 의식있는 이들 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적적인 경이들을 완전히 갖추고 있죠

    이네디아는 단식에 대한 라틴어로 음식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하죠 태곳적부터 프라나나 생명력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이네디에이트 즉,음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양분을 얻기 위해 자연에서 에너지를 끌어 올 수 있었죠

    그들은 땅이나 숲 태양과 대기 중의 기로 살아갑니다 그런 온갖 것들을 활용하지요 사랑이나 믿음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호흡식,태양광식 워터리언 프라나리언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전역의 다양한 문화를 가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조물주께서 만드신 이 생명에 있는 가능성과 기적들은 실로 무한합니다 우린 신의 자녀로서 풍부한 유산을 깨닫기 위해 내면으로 접촉하기만 하면됩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 인자하게 수프림 마스터 TV의 주말 시리즈에 지상에서 음식없이 살았던 과거나 현재의 인물들을 소개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얘기들이 여러분을 매료시켜 마음이 더욱 열리고 넓어지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을 스승과 제자 사이 『축복받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호흡식을 한 19세기 수녀』 3부작에 초대합니다

    열린 마음의 여러분 『축복받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 호흡식을 한 19세기 수녀』 1부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2부에선 안네 카타리나가 어떻게 영성체만 먹고 살았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들이 방송되니 계속 시청해 주세요 신의 축복으로 풍성한 영적 삶이 되길 빕니다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호흡식을 한19세기 수녀 』 시리즈를 함께 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다음 주도 호흡식을 한 카톨릭 수녀의 자비롭고 성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세요 수프림 마스터 TV에 채널을 고정해주세요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들이 방송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많은 기쁨과 친절을 기원하며 신의 은총으로 작별을 고합니다

    축복받은 여러분 『호흡식을 한 19세기의 수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시리즈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이 방송되니 수프림 마스터 TV를 계속 시청해 주세요 여러분의 일상에 큰 기쁨과 친절이 함께 하길 빕니다 여러분의 삶이 웃음과 영원한 축복으로 가득하길

    오늘 우리는 1774년 8월 8일 축복받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라는 미래의 호흡식가가 태어난,독일의 프람쉔으로 떠납니다

    이네디에이트로서 안네 카타리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음식 없이 살았던 최장 기간은 대략 12년쯤 됩니다 안네 카타리나는 오로지 신의 영성체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는 오랜 세월 동안 음식 없이 지냈습니다 항상 마시기는 했지만 음식을 섭취할 순 없었습니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죠

    안네 카타리나의 어린 시절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베스트팔리아 프람쉔의 생가를 찾아가 봅시다

    안녕하세요 에머리히 하우스를 찾아가려고 하는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자,여기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의 재건된 생가입니다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는 1774년 이곳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안네 카타리나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나중에 침묵의 고행자이자 두엘멘의 예언자로 유명해졌지요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는 열심히 일하는 농가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인 베르나르드 에머리히와 안네 힐러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장려한 독실한 농민이었습니다

    이곳은 예전에 탈곡장이었는데 가축과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었죠 동시에 이곳은 부엌이자 거실 탈곡장이었습니다 이제 저쪽 벽난로로 가 볼까요 여긴 지금도 『훈제장』으로 불리죠 이 안에 연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따뜻한 효과를 내지요 옆 쪽은 헛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다락으로 불리는 곳에서 잠을 잤는데 헛간 위에 있는 방입니다 그들은 간단히 건초와 밀짚 위에서 잠을 잤는데 아래 쪽에 동물들의 온기 덕분에 집에서 가장 좋은 장소였지요

    이제 중요한 방으로 가보려 하느데 앞에 침대가 놓인 이곳은 부모님의 침실이었습니다 이곳을 『탄생지』 라고 부르죠 여기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가 태어난 장소입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을 계속 시청해 주세요 잠시 후 스승과 제자 사이가 계속됩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 스승과 제자 사이에 돌아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계속해서 축복받은 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와 그녀를 이네디에이트 또는 호흡식으로 이끈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안네 카타리나는 이미 들에 나가 가족을 도왔습니다

    그 당시는 모든 아이들이 일찍부터 힘든 농사일을 도우는 게 흔한 일이었지요

    종종 들에 나가있는 동안,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성인들도 나타났으며 그들은 종종 축제를 기념하여 그녀가 준비해왔던 화환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복된 성모의 빛이 나를 비추는구나! 성모께서 날 데려가니 내 어찌 어머니 곁에 남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안네 카타리나는 예리한 시각적 감각을 지녔는데 신을 향한 진심 어린 헌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곤 했죠

    구석 저쪽에는 구유가 있습니다 이 구유 내부는 아마 안네 카타리나가 만들었을 거예요

    안네 카타리나는 이 집,원시적인 건물에서 자랐습니다 이 집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해야 했지요 그래서 그녀가 학교에 가지 못했던 거지요 안네 카타리나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겨우 넉달 동안 읽기와 쓰기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재능이 많았죠 쓰기와 읽기를 배워 나중에 책과 기도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재능은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나중에 브렌타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시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얘기하면,안네 카타리나 에머리히는 즉시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녀는 그 영상들을 잘 받아들여 이런 구유를 만들었는데 우리 신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고.. 또 안네 카타리나는 어린아이였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성가족과 함께 나사렛에서부터 베들레헴까지 여행을 했다고 묘사했습니다 성가족과 함께 가서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봤습니다 안네 카타리나는 성가족과 함께 이런 식으로 부활절을 기념하고,특히 나중엔 예수의 고난을 봤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안네 카타리나는 천성적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걸 좋아해,좀처럼 잠들지 않았습니다 명상 중에는 자주 성인들과 성령이 불어 넣어준 신의 왕국의 복잡한 지식을 비전으로 받았습니다 안네 카타리나는 하나씩 이 지식을 남들과 나누었고 모든 어린이가 비슷한 체험을 할 거라 믿었죠 그녀는 순수했기에 본 모든 것들을 종종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질문을 통해 안네 카타리나는 본 모든 걸 공개해선 안됨을 깨달았습니다 내면의 체험을 말하지 않았던 다른 아이들처럼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안네 카타리나는 내면 왕국의 비전과 예수와 성인들과의 교류에 대해 말하기를 멈췄습니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그녀를 진보한 영적 존재로 인식했지요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좋고 나쁜 것 신성하고 불경한 것 복되고 저주받은 것을 물질과 영적인 면에서 구별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습니다』

    예를 들어, 안네 카타리나는 종종 아버지의 시골집주위에 쓸모 없다고 여기던 풀을 모으고 심었죠 하지만 후에 이들은 병치료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관적으로 그녀는 어느 식물이 독이 있고 예방 차원에서 뽑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물리적 환경에 대한 고도의 민감성을 가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녀가 큰 범죄가 일어난 지역에 있게 될 때는 강한 부정적 에너지를 느끼고 신속히 벗어나거나 기도하고 속죄했으며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곳에 있을 땐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신에게 감사 드리며 평화와 행복감으로 충만했습니다 아이였을 때에도 안네 카타리나는 이미 성인의 신성한 유적을 알아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죠 일례로 그녀에게 성인의 유적지를 보여주자 그 유적지에 속한 성인의 이름과 일대기 그 유적지의 역사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안네 카타리나는 이런 능력을 지녔음에도 거만하거나 자신을 특별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고통과 고난은 한번도 안네 카타리나의 신에 대한 믿음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타인을 향한 자비는 영혼을 정화시켰지요 무엇보다도 안네 카타리나는 자신이 자초한 짐을 견딜만큼 강하지 못한 다른 이들을 대신해 속죄하길 갈망했습니다 그녀의 기도와 행동은 늘 다른 이들이 스스로 만든 연옥의 고통에서 오는 슬픔을 덜어주려고 했습니다

    안네 카타리나의 자비에 대해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녀는 평생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했으며 가난한 자에게 모든 걸 주었습니다 안네 카타리나의 양심은 너무 여려서 아주 작은 죄도 병이 날 정도로 고통을 느꼈고 용서는 항상 그녀를 즉시 건강하게 회복시켰죠

    안네 카타리나는 순수하고 단순한 삶을 살면서 물질적 음식과 음료 없이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독일로 돌아가 호흡식을 한 수녀- 1774-1824년 까지 살았던 축복받은 안네 카타리느 에머리히를 만나봅니다

    그녀는 19세기교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특별한 카리스마를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신앙심이죠 그건 사람들이 지배적인 신 대신 자애로운 신을 느꼈고 이런 신의 사랑을 전파하며 헌신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경이로운 이야기예요 원시적인 오두막에서 자란 가난한 여성이 끝내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벽에 자신의 초상화가 걸리고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그녀를 경배했으니까요 요한 바오르 2세가 그녀를 시복했거든요

    안나 카타리나는 그녀 생애의 마지막 12년을 오로지 영성체에만 의지하며 음식없이 살았습니다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살며 안나 카타리나는 물질적인 음식과 마실 것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유년시절 그녀는 신께 더 가까워지기 위해 단식했습니다 10대 때는 다른 사람이 남긴 음식만 먹었습니다 좋은 건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아꼈죠

    아무도 필요치 않을 땐 자신의 희생으로 남을 이롭게 해달라며 음식을 먹지 않고 신께 바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안나 카타리나의 말을 들어보죠:

    쓸모 없는 행위는 죄악이었고 육체적인 감각들과 이런 종류의 모든 쾌락을 무시할 때 우리는 내면세계의 진보라는 커다란 보상을 받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포도나무와 다른 과일 나무들의 가지를 치는 것처럼요

    영성체로만 살 수 있는 능력은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안나 카타리나는 타인의 구원을 위한 자기희생의 방법으로 오랜 기간 단식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 때문에 울고 그들 대신 속죄하기를 신께 빌었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세속의 재산을 포기한 신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헌신의 결과로 안나 카타리나는 드디어 음식 없이 단지 신의 축복과 은총만으로 살 수 있는 경지를 성취했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 채널을 고정해 주세요 잠시 후에 스승과 제자 사이를 계속 하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 스승과 제자 사이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호흡식을 한 축복받은 카톨릭 수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에 대해 계속 알아 보겠습니다 안나 카타리나의 신에 대한 헌신은 독일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독일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습니다 그때 그는 베를린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나러 일부러 두엘멘까지 찾아갔어요 그리고 거의 6년을 그녀의 병상에서 그녀 예언을 기록하며 보냈습니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신에 대한 그녀의 지속적인 집중과 타인에 대한 자비심의 예를 들려 줬습니다

    『안나 카타리나가 어릴 적에,결혼식에 고용된 적이 있었는데 교회 마당의 잡초를 뽑게 해달라고 신께 간청했습니다 쐬기풀로 인해 그녀의 손이 화끈거리거나 게으름뱅이들의 일을 대신 해야 할 경우엔 신께 그녀의 고통과 피로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영혼들의 목자께서 싫증내지 않기를 그리고 모두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빌었습니다 고로 그녀의 노동은 기도로 변했습니다』

    종종 그녀는 코스필드 집 근처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걷곤 했습니다 10km나 되는 십자가의 길을요 거기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 상황을 보았고 그건 당시 그녀에게 아주 중요하고 뜻깊었습니다 어느 여작가의 말대로 수많은 죽음의 시대였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아주 젊은 나이에 죽곤 했어요 질병은 아주 널리 퍼져있었고 13명 아이를 중에서 때론 단지 반밖에 성년에 이르지 못했죠 에머리히가에는 9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5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건 아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죽는다는 것을 뜻했고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도 그걸 목격했던 거지요 그녀의 부모도 깊은 병에 걸렸고 그녀는 신께 그들의 목숨도 구해달라고 온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기본적으로 고통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그리스도의 고통이죠 그녀에게는 둘 다 똑같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고통 받는 그리스도 앞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면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안나 카타리나는 신과 가까운 관계에서 아주 깊은 명상으로 발전했기에 지속적인 황홀경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황홀경 동안 영적 상징들은 안나 카타리나의 비전 속에서 아주 뚜렷했고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목적과 그것을 이루는 방법 그녀가 견뎌야 할 위험과 갈등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비전은 농사나 정원 가꾸기 직조,파종에 대한 우화를 통해서 미래를 예견했습니다 일년 내내 각 상징들은 영적 의미와 맞는 날들에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각 상징의 수호 성인들은 그들의 축일에 특별한 은총들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녀의 영적 수행은 잠자는 대신 한 번에 몇 시간씩 그리스도의 수난의 처를 묵상하는 것도 포함됐습니다 그녀는 겨울에 눈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딱딱한 판자 위에서 십자 형태로 잤습니다 안나 카타리나는 16세가 됐을 때 수녀가 되길 꿈꿨지만 수도원에 들어가는 대가로 돈이나 재산을 기부해야 했고 안나 카타리나의 가족은 그녀를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소원을 가로 막진 못했습니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기로 결심하고 코스필드에서 재봉사 견습직에 취직했습니다

    그녀는 특별한 소원이 있었어요: 수녀가 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어디서나 그녀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재봉을 배웠고 많은 옷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있는 것들이죠 이 옷들은 그 당시 그녀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그녀가 다시 집에 들어와 살면서 재봉일도 하도록 그녀의 아버지는 이 작은 재봉실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면 그녀가 온 집안을 위한 부수입을 벌거나 수녀원에 갈 지참금을 모을 수가 있으니까요 왜냐면 수녀원에서 수녀의 삶을 사는 것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죠

    오늘은 호흡식을 한 축복받은 수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가 1774년 ~1824년에 살았던 독일로 다시 가봅니다 생애 마지막 12년간 그녀는 금식하며 신성한 교감만으로 살았습니다

    순수하고 단순한 삶을 살면서 물질적인 음식과 음료가 필요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나 카타리나는 16세가 되었을 때 수녀원에서 자신의 삶을 신께 봉사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가난했기에 수녀원에 딸을 맡길 재정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재봉사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돈을 벌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2년간 돈을 벌어서 3개의 수도원에 간청하였습니다.

    그녀는 주변의 많은 수녀원에 지원했지만 가난한 집안 태생이어서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지참금이 부족했던 거지요

    농장에서 일할 때 더욱 굳은 결심으로 성당 올간 연주자인 친구에게 연락하여 돈을 줄 테니 자신을 가르쳐 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일단 올간을 배우고 나면 수녀원에서 그녀의 지참금과 재능을 받아줄 것이고 그녀는 수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올간 연주를 배우면 수녀원에서 쉽게 받아줄 거라고 들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코스펠드의 성 야코비 성당의 성가대지휘자 죈트겐과 봉사하게 되었죠 그녀는 죈트겐 가족에게 봉사하는 조건으로 올간 연주법을 배웠습니다. 이 가정은 너무 가난하고 할 일이 많아,결국 그녀는 모든 돈을 이 가족에게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죈트겐 어머니는 몸이 아파 많은 약을 먹고 의사를 만나는 등 많은 돈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그녀는 한푼도 없이 떠나야 했어요

    그 돈은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재봉사로 일하면서 모았던 돈이었고 그 때,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갈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지요 후에 그녀는 언급했죠 『신이 참 잘 하셨어요 이 가족들이 간신히 생계를 꾸려 나가게 하셨고 내가 그런 상황에서도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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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 스승과 제자 사이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호흡식을 한 축복받은 수녀 안나 카나리나 에머리히에 대해 계속 알아 보겠습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한 그녀는 어머니가 가져온 음식을 모두 나눠 줬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말했죠 『전 남길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것은 타인을 도우라는 거룩한 신의 뜻이었으니까요 전 신에게 모든 걸 바쳤지요 신이 저를 돌봐 줄 것이며 모든 걸 도와줄 겁니다』

    안나 카타리나가 24세 때 친구와 함께 코스펠드의 예수회 교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명상을 하는 동안 그녀는 머리에서 기분 좋은 열기를 느꼈습니다 바로 눈 앞에서 갑자기 나타난 빛 속에 잠긴 예수의 비전을 보았지요 그의 왼손에는 화관이 오른손엔 가시관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그녀는 가시관을 택했지요 안나 카타리나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두통과 부푼 앞 이마 그리고 비전에서 가시관이 있던 곳의 성흔을 안은 채 예수 수난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안나 카타리나는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예수의 고난을 견뎠고,4년 후 수녀가 되고픈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여학교를 인수한 듀엘먼에 있는 수녀원에서 일할 선생님을 찾고 있었지요 그건 학생들이 돈을 지불해야 했지요 그래서 수녀들은 학생들에게 걷는 수입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급히 필요했고 게다가 선생님은 또한 오르간 연주자였기에 그들은 기뻐했지요 이리하여 클라라 죈트겐은 듀엘먼에 있는 수녀원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도 함께 받아준다면 하겠노라 밝혔어요

    마침내 1802년 28세의 나이에 안나 카타리나는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머무르면서 종종 성당에서 인류의 무지한 죄와 자신의 결점에 대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1802년 크리스마스 때에 심장에 격심한 통증을 느끼며 심하게 아팠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은 진정되었지만 계속되는 심장의 통증으로 그녀는 약해졌고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쾌활하게 정원을 돌보며 수녀원을 청소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며 의무를 다했습니다

    수녀원이 폐쇄되었을 때 그녀는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수녀원의 전 고용인과 나이든 신부가 그녀를 가련히 여겨 보살펴 줬는데 나중에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도록 해줬지요 안나 카타리나는 가난하지만 자선을 베푼 과부에게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매일 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그녀는 비전을 통해 예수의 삶과 그 이후의 사도들에 대한 정보 성경에 대한 지식과 모든 성인들의 축일의 중요성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1812년 말 그녀는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명상하며 그 고통을 나누길 기도하자 빛이 내렸고 십자가에 못박힌 구세주를 봤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에 3줄기의 빛이 그녀에게 닿아 몸에 피 흘리는 상처와 격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녀는 음식 없이 지내게 되었고 여생동안 그렇게 지냈습니다 안나 카타리나는 음식 없이 신의 은총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그녀는 오직 약간의 물만 마셨습니다

    그녀는 또한 예수의 고통 일부를 떠맡길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보이진 않았지만 이마와 손 그리고 심장에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근데 갑자기 이게 모두 열렸지요 십자가의 예수님께 가해진 것과 유사하게 이마에는 가시 면류관의 구멍과 손과 발에 찢긴 상처와 흔적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가슴에는 두 개의 십자가가 아래 위로 있고 오른쪽 옆구리의 상처는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병사가 찔러 고통 당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자애로운 신이 함께하심을 체험했지요 그때 성흔은 신의 응답으로 그가 그녀의 사랑을 받아 들였으며 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그 고통을 나누길 원한다는 걸 아셨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녀 또한 알았지요 그것으로 신은 그녀에게 성흔을 내려 답하셨지요

    그녀는 성흔과 먹지 않는 상태를 숨겼습니다 그 현상은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결국 그녀의 상태는 알려져서 한 의사가 실험을 해보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음식 없이 살았다는 그녀의 주장을 반박하려다가 그녀의 호흡식 생활방식이 사실임을 확인하고서 충직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의사들과 영적인 권위자들이 3주 동안 그녀를 관찰하며 조사했습니다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는 오랜 기간 조사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교회 대변인의 조사가 있었지요 보좌신부는 이에 대해 들은 이틀 후 뮌스터란드에서 매우 유명한 의과 교수와 신학자와 함께 뮌스터란트에 와서 안나 카타리나를 실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그 후 듀엘먼에서 온 32명의 사람들이 밤낮으로 그곳을 지켰습니다 상처는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상처를 내려고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죠 먹지 않고 지낸 상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3주의 조사기간이 다 끝날 때쯤 그녀는 3주 전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겪으며 먹지 않고 사는 능력은 사실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왕족들이 예배를 드리고 그녀의 기도를 청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걸 봤고 그녀의 단식 상태를 주목했습니다 호흡식의 상태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경험하는 능력은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는 데서 연유한 결과입니다 그녀는 설명했지요:

    전 매일 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죠 가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고통 받는 집집마다 다니는 걸 꿈꾸며 힘이 닿는 대로 그들을 돕는 것을 꿈꿉니다

    자신의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한 불굴의 용기와 관대함 놀라운 자비심은 성인의 성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과 완전한 헌신은 육체적 고통과 요구를 넘어선다는 것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본보기였습니다 신의 축복으로 완전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겐 매일이 기적이며 음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그녀의 비전과 예언은 독일어 이탈리아어,불어로 번역되고 출판되어 신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했습니다 2004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의 성스러움과 영웅적 덕을 시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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