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사이
 
비구 불자협회단의 법서: *채식, *보편적 정의, *깨달음      
비구승 불자협회 1대 조사 민당꽝

1950년대에 불교에 기원을 둔 한 종교가 남부 어울락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이 종교의 외형은 소승 수행과 유사하며 수행자들은 노란 법복을 입고 탁발 그릇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들은 수행을 위해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루에 한번 오직 정오에만 먹습니다 이 금욕적 수행법은 입문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점차로 이것은 오늘날의 어울락(베트남) 비구승 불자협회로 발전했습니다

이 종교의 창시자는 젊은 승려로 그의 법명은 민당꽝입니다 그는 1923년 남 어울락(베트남)의 빈 롱에서 응우엔 탕 닷으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 그는 진리를 찾기 위해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곳을 다니며 불교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1941년에 그는 어울락(베트남)으로 돌아왔고 수년 간 인적이 없는 곳에서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탓손(칠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마을로 가서 탁발을 했고 밤에는 숲에서 명상을 하며 중생을 돕기 위해 깨달음을 얻길 갈망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 자신의 공부와 경험을 통해 그는 불교의 두 가지 전통인 인도의 대승과 소승의 정수를 결합하여 어울락(베트남)에서 독특한 탁발승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탓손(칠산)을 떠났고 하티엔 주로 가서 7일 밤낮으로 계속 명상했습니다 그때 그는 진리의 궁극적인 실현이며 해탈로 이끄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는 『천 집에서 한 그릇의 밥을』 이라는 전통에 따라 법(진정한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에 그는 어울락(베트남) 비구승 불자연합의 1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비구승 불자연합의 법서에서 발췌한 『채식주의』 『보편적 정의』 『깨달음』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채식은 청정식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음식을 갈망하거나 까다롭지 않고 음식으로 청정해지는 것이며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고 어둡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수행의 진보와 고통에서 자유로운 법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음식을 보통의 값싼 것으로 여기고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음식은 생명을 유지시키지만 그것에 빠지는 사람은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감옥에 갇히고 사슬에 묶이고 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머리를 들수도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음식은 중생의 친절한 어머니이지만 또한 중생의 무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음식을 사용하는 법을 알면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아니면 나중에 몸과 마음을 파괴할 겁니다

많은 다양한 요리로 구성된 식사는 까다로운 식사법이다 그의 마음이 아직 순수하고 고요하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검소하고 소박한 채식식사는 사람이 음식 맛에 개의치 않는 것이고 음식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며 세속 사람들의 잔치에 참가하는 것을 거절한다는 뜻이죠 출가자들이 집중과 지혜를 발전시키고 쉽게 지복의 상태에 이르는 것은 이런 단련된 식습관 덕분입니다 미각을 정복한 사람은 군자가 되고 과보의 굴레를 초월하며 그로인해 의하여 극기를 성취한다

게다가 중생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진화의 길에 있는 우리를 따르는 존재며 우리의 자녀이고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연장자로서 우리의무는 그들을 돕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형제 자매를 죽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건 우주의 법칙과 자비로운 어머니에 반하는 게 아닌가요? 고대인은 감히 동물을 경시하지 않았어요 비록 그들이 동물의 형상을 했지만 그들은 인간과 신의 마음을 가졌으니까요 누가 알겠어요? 부처와 성인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려고 그 모습을 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무시하죠?

육신이 있으면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현자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럽고 헛되고 고통스런 삶을 사느니 차라리 순수하고 평화롭게 죽지요 우리가 삶을 갈망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죄가 더 적은 음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신과 부처는 채소를 먹는 것도 죄스럽게 생각했는데 그들은 어떤 중생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마음을 갖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식물을 뽑지도 않았죠 채소를 먹는다 해도 부처는 여전히 죄스럽게 여깁니다 우리가 그보다 얼마나 더 많은 공덕이 있기에 우리가 그렇게 고기를 먹나요?

영적으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은 다음을 명심하고 먹어야 하죠 중생에게서 빌리는 것이고 그 영혼이 아직 증오를 발전시키지 않은 채소로부터 약간 빌린다는 것을요 하지만 수행자들은 여전히 죄책감이 있고 빚을 지는 것이니 그 호의를 갚기 위해 나중에 설교하러 나가야 하죠 그들은 감히 죄없는 존재로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감히 자기 위를 좋은 음식으로 안채우는데 고기를 먹고 악마의 길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인간』이란 자비롭게 행동하는 것 인간과 동물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고 결국 나무와 식물을 포함해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을 배운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재가자들은 불살생계율을 지키고 좋은 과보로 몸에 자양분을 줘야 합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 살생의 본을 안만들고 고기를 위해 동물을 키우거나 팔지 말아요 장수하기를 원하면 중생을 억압 마세요 식물을 죽이는 게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매일 회개하고 가능한 한 많이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많은 생애동안 초래한 악업의 빚의 결과로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적들은 사람을 죽이죠 사람들이 이전에 동물을 죽인 것처럼 혼잡한 장날은 수 많은 생명에게 죽음을 초래합니다! 던져진 그물은 수 많은 생선과 조류를 죽이죠 인과의 법칙은 실수하지 않아요 살고 싶으면 남의 생명을 뺏지 마세요!

정의도 진리이고 또는 조화로운 우주의 중도입니다 정의는 더도 덜도 아닌 적절하고 공정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정의가 없다고 믿어서 자유롭게 악행을 행하고 그 결과 재난을 초래합니다 정의는 힘이고 권위입니다 정의는 그림자처럼 한 사람을 따릅니다 더 높이 오를수록 더 힘들게 추락하고 협잡꾼은 오래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상인 열명을 구하려고 도둑을 죽였는데 다음 생에 그는 열개의 유산으로 부를 누렸지만 나중에 살해됐어요 한 장군이 나라를 지키려고 수천명을 죽였고 그 나라는 그를 왕으로 만들었지만 수 천 생 후에 그는 남에게 살해됐어요 그것이 정당한 보답과 처벌의 정의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실체는 결코 감춰지지 않아요

풀을 짓밟은 승려는 남에게 무시를 당할 것입니다 요리하려고 채소를 뽑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고통이 있을 겁니다 모기를 강타하고 파리를 죽이고 개미를 짓뭉갠 사람은 맞거나 박살나서 죽을 것입니다 물고기를 조리한 사람은 불완전한 몸으로 죽을 것입니다 동물가죽을 벗긴 자는 전신에 옴과 상처가 날 겁니다 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그들이 남의 팔다리를 잘랐기 때문입니다 남을 죽이는 자는 살해될 것입니다 악한 과보의 씨는 씨를 뿌린 사람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지금이든 또는 사후나 다음 생이든 조만간에 느리거나 빨리요 악한 씨와 좋은 씨를 섞어 심은 자는 섞인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심자마자 바로 열매가 이미 우리 마음에 형성되고 나중에 외부에 나타날 것입니다

서둘러 참회하고 죄악의 길을 멈춘다면 나쁜 과보는 덜 심각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씨는 뿌리지만 열매가 안 열리는 것과 같죠 물과 비료를 주지 않으니 빨리 죽거나 싹이 날 때 제거해 버리는 것이죠 두렵거든 씨를 뿌리지 마세요 씨가 뿌려졌다면 비료나 물을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니 나쁜 말과 행위를 삼가고 마음 속의 남은 씨들을 버리거나 지혜의 불꽃이나 명상의 불을 찾아 소멸시키세요 더 퍼지지 않게 하세요 이미 씨가 과일을 생산했다면 파괴할 수 없으나 두려워 마세요 명상의 즐거움에 집중하여 무시해 버리세요 그리고 과일이 익으면 기다리지 말고 빨리 다 먹어 버리고 앞으로 다시는 자라지 않게 하세요

얼마나 많은 지옥이 있습니까? 수 없이 많습니다 혼란한 마음도 역시 지옥이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것도 역시 지옥이며 편견 또한 지옥이고 잔인함도 지옥입니다 탐욕과 분노와 무지도 소위 지옥이며 이기심도 지옥이고 큰 지옥 작은 지옥 모두 우리의 행동과 말 생각에 달려 있지요 이런 지옥은 지구 중심의 그것과 같지요 철벽으로 된 어두운 타는 불과 늪에 질식시켜 죽이는 온갖 벌이 있는 곳이지요

지옥에는 어떤 벌들이 있습니까? 지옥이란 사람들이 비참함을 견뎌야 하는 죽고 또 죽으며 나쁜 과보가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죄란 행위와 말과 생각에서 오는 것이죠 행위와 말과 생각에 의한 10개 지옥은 살생과 도둑질 성적 악행 및 거짓말 자만이나 비방 모욕과 탐욕 증오와 무지입니다

이 10개 지옥은 10개 방이라 합니다 이 10악이 끝나면 방도 사라져 버리죠 4요소의 지옥에 있어 벌이 아닌 건 없으니 술은 끓는 술잔에 있고 아름다운 여인들은 타는 기둥이며 불은 분노이고 무지는 어두움이며 소란함은 고문이고 끓는 기름은 명예와 부의 가마솥입니다 무수한 고통과 고통스러운 각본들 수 없는…

지옥에선 고통이 가장 무서운 것이죠 중생들은 그 곳에 남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오해가 그들을 이끄니 곧 그들 자신이 고통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 비참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사악하게 미쳐서 아무도 돕기 위해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면 어떤 이들은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지요 충분히 고통을 당하면 깨우치게 되어 자신의 죄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의 죄는 점차 사라져 해탈을 하게 됩니다

지옥에 빠진 이들은 어떻게 구합니까? 신과 부처가 구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신이나 부처를 따를 것에 동의해야 하지요 고통 받는 이를 보세요 고통을 당할 때는 다른 사람이나 장소 등 어떤 것에 신경은 커녕 살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위로하려고 혹은 충고하려고 하면 그는 더 화가 나고 더 비참해질 겁니다 그들은 어둡고 황폐한 세상에 홀로 있으며 그들 주변의 모든 것이 음산하게 보입니다 죄가 클수록 더 비참하게 느낍니다 그들의 배우자나 부모나 사랑하는 이도 고통을 나눌 수 없지요 탈출할 길이 없는 심연 속에 빠진 것처럼 외롭게 느낄 겁니다

악업이 너무 무거워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영원히 공포와 혼돈의 상태로 지내야 합니다 그들은 꿈 속처럼 멍한 상태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지냅니다 두려운 차원에 빠져 수 천 년간을 깨어날 수 없는 상태로 있게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어떤 어두운 세계에서 계속 쫓기게 되며 환생을 모릅니다 무겁고 나쁜 업장에 눌려 참으로 그들은 아비지옥이라 불리는 아주 위험한 상태의 격심한 고통으로 미치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그들이 지옥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서 나가야 한다고 원하지 않는 한 구하기 힘들죠 그 때만이 부처와 보살들의 빛이 그들 위에 비추어 무지와 어두움의 마음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 빛은 시원하고 깨끗하며 맑고 깨어나 있어 명확한 이해를 가져다 줍니다 그들은 세상의 중생을 보며 위대한 자비의 서원을 세우게 되고 그것이 4요소로 된 탐욕과 이기심의 철벽을 허물고 더 이상 그들을 가두지 못하게 됩니다

병든 이들이 비참함 속에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돕습니까? 병든 이들이 비참한 차원에서 그들의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그들의 자식은 반드시 수행을 해야 그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들에게 진리를 설파하며그들을 위해 선행을 하면 그들이 행복해 질 것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들으면 그들은 기쁨을 느끼며 깨닫게 되고 영적 수행을 하여 그들의 모든 나쁜 업장을 점차 태우게 됩니다

병에 걸린 이들 모두 구원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오계나 팔계를 지키는 이들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인간보다 높은 단계에 있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비살생계만을 갖지만 그들은 욕망의 천국 단계인 오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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