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사이
 
[1~3부] 노자와 무형의 도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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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는 중국어로 진행되고 자막은 영어,아랍어 어울락(베트남어) 벨기에어, 중국어 크로아티아어,불어 독어,헝가리어 힌디어,인도네시아어 이탈리아어,일본어 한국어,페르시아어 포르투갈어,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BC 6세기와 4세기 사이 고대중국에는 위대한 영적 스승이자 깨달은 철학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도교의 가장 중요한 스승 중 한 사람인 노자로 세계적인 존경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이 이로 우주과학과 인간본성에 관해 통찰력 있는 이해로 노자,또는 현명한 스승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저서,도덕경은 오랜 시대를 통하여 영적 수행자들의 길을 밝혀주는 심오한 지혜의 귀중한 발견으로 계속 영감을 불어넣고 있지요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 에서는 1993년 3월 2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칭하이 무상사의 현인들의 초 시간적인 철학에 관한 강연 중 노자와 무형의 도란 제목의 말씀을 보내드립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수프림 마스터 TV에서는 주목할 뉴스에 이어 동물의 세계: 더불어 사는 세상이 이어집니다 신의 은총 안에서 풍성한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길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수프림 마스터 TV에서는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들이 이어집니다 천상의 음악이 여러분 삶 속에 내면의 평화 사랑을 가져오길

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이곳 수프림 마스터 TV에서는 주목할 뉴스에 이어 건강한 생활이 이어집니다 안녕히 계세요

입문자들은 매일 기적을 기대하지요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만 일어나지요 왜냐면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승의 힘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힘을 찾는 거니까요 결국 스승의 힘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즉,우린 하나지요 여러분 중 일부는 아직 모를 거예요 이 도덕경은 아주 훌륭합니다 몇 장을 읽어 주겠어요

『도를 듣고 경지가 높은 이라면 열심히 수행할 것이고 범인은 가끔 생각할 것이며 수준이 낮은 이는 비웃을 것이니 비웃는 자가 없다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충고하니 밝은 길은 어두운 듯 하고 진보의 길은 퇴보하는 듯하고 쉬운 길은 어려워 보이며 최고의 덕은 부도덕해 보인다』

이건 41장으로 노자가 도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죠 여러분은 중국인이니 노자나 장자의 가르침을 좋아하죠 그렇지요?

『가장 순수한 것은 더러워 보이고 풍요한 덕은 부족해 보이며 강한덕은 약해보이고 진정한덕은 거짓같다 완전한 원은 모서리가 없고 큰 재능은 시간이 걸려 완성된다 최고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최상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좋아요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죠 여러분 모두 첫 단락은 이미 이해하지요? 현자, 지혜로운 제자, 현명한 도교, 수행자, 구도자라면 도를 듣고 열심히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평범한 제자나 보통 지혜를 가진 사람은 도를 들으면 가끔 생각할 것이고 수준이 낮은 제자나 지혜가 부족한 이는 도를 듣고 비웃을 것이니 비웃는 이가 없다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광명의 길은 어두워 보이고 영광돼 보이지 않는다! 광명의 길, 빛의 길은 영광돼 보이지 않지요 우리가 진보하고 발전하길 원할 때 오히려 수동적이고 비관적이며 은둔적 이거나 퇴보하는 듯이 보입니다 발전이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유는 조금 있다 설명하죠 이완되고 쉬운 법문은 어려워 보이고 위대한 덕은 부도덕해 보이며 위대한 청정과 위대한 순수는 더러워 보인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 역설을 아무도 이해 못했죠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더 난해한 것을 말했어요 『덕이 충만한 이는 덕이 부족한 듯 보이며 강한 덕은 약해 보인다』 이는 도덕적으로 강한 자라면 매우 약해 보인다는 뜻이에요 『진정한 덕은 거짓 같고 없는 것 같다』 『완전한 원은 모서리가 없다』 노자는 또 말했어요 『위대한 재능은 늦게 발달되고 늦게 인정받는다』 이는 재능 있는 자는 성급하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위대한 재능을 지닌 자는 바로 뽐내지 않아요 재능이 없는 듯 둔해 보입니다 그의 재능은 마지막 순간에 밀어붙일 때만 알아볼 수 있죠 아마 그게 노자가 말한 뜻일 겁니다 그는 또 말했어요 『최상의 소리는 듣기 어렵고 최고의 형상은 보이지 않으며 형태가 없다』 그리고 『도는 이름이 없고 감춰져 있으나 만물을 지탱하고 만족시키는 유일한 힘이다』

이제 그가 의미한 바를 알아보죠 『지혜로운 제자는 도를 듣고 열심히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경험으로 첫 문장을 이해할 수 있지요 몇몇 제자는 나를 가까이 따릅니다 왜일까요? 노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에게 지혜가 많아서지요 경험상으로도 정말 체험이 좋은 제자는 끝까지 나를 따르고 시험에 떨어지지 않지요 내가 머리를 기르건 청바지를 입건 그들은 그저 나를 따릅니다 내면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죠 알겠어요? 내 말이나 원칙이 아니라 가르침을 내면으로 직접 받아들입니다 나와 내 제자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정말 그렇죠 내적 체험이 좋은 제자들이 나를 더 열심히 따릅니다 내가 어떻게 대하든 매우 이완되고 행복해하죠 내가 혼내건 사랑하건 많이 주건 안 주건 여전히 나를 따릅니다 내가 가르치는 게 옳다는 걸 내면으로 알기 때문이지요

평범하거나 보통 수준인 제자는 전생의 수행 근기가 깊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시 돌아와 수행할 때는 습관을 고치느라 힘들며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아 철저하거나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아요 내가 가르쳐준 후엔 돌아가서 가끔 명상하지요 이해하나요? 피곤하거나 고민이나 장애가 있을 때만 명상합니다 괜찮지요

가장 낮은 제자들은 지혜와 체험이 부족한 이들로 아마 입문하기 전에 도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믿지 않고 비웃으며 가버렸을 겁니다 비웃는 이가 없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죠 왜 비웃을까요? 이런 건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자선을 하고 경전을 읽고 나무 불상을 숭배하라는 말만 들어오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 나와 다른 걸 얘기하는 겁니다 이해하나요? 단 한 사람만 다르게 말하는 거죠 도를 수행할 때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내면으로 수행 하고 내면의 불성을 찾으라고요 단 한 사람만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온 세상을 설득하겠어요? 물론 못하죠!

그래서 대지혜가 있는 이들을 외의 평범한 사람들은 비웃으며 떠납니다 매우 간단하고 논리적이죠 그렇죠? 왜냐면 대부분은 습관에 따라 행하고 습관에 따라 판단하니까요 습관이 우릴 속이죠 오늘,내일,매일 똑같은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해하고 뭔가 새로운 걸 하려 하면 마음이 싫어하는 거죠

이제 달마가 왜 9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는지 이해할 겁니다 그는 아마 마음이나 습관에 속았을겁니다 거기 앉아 있는 게 너무 편해 세상의 고통을 상관치않았죠 세상의 고뇌도 잊고 그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잊고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도를 구했었는지, 깨닫기 전엔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도 잊은 거지요 그처럼 세상 사람들도 도를 찾고 있는데도 그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거기 오래 앉아 잘 살 수 있는 운명이었나 봅니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겠죠 비자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그렇죠?

왜 노자는 광명의 길이 어둡고 흐려 보이며 매력적이거나 영광돼 보이지 않는 다고 했을까요? 진정한 도,진리의 길은 바쁘지 않아요 이해합니까? 많은 사람이 모여 크게 암송 하거나 웅장한 예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구석에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않는 거죠 그렇죠? 야단법석을 떨 것도 예식이나 격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빛의 길이 영광스럽거나 밝지 않다고 했어요 그 말은 그런 의미죠 우린 많은 사람이 모여도 조용히 앉아 있어요 무슨 공연처럼 보여주기 위한 별난 예식 같은 것은 하지 않지요 아무것도 안 해요

내 견해로는 내가 뭘 말할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모든 이는 수준이 다르기에 내가 그렇듯이 말 없이 앉아만 있을 수 없습니다 가끔 수행을 격려하고 각자 수준의 문제를 처리해주기 위해 뭔가를 말해서 의구심을 풀어야 해요 아직 마음에 어느 정도 속는 경우에요 아니면 도는 말이 없는 게 사실이죠 그래서 내가 법문을 전수할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여러분과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있지요 내가 거기 있던 없던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은 고요함 속에 전수를 받습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단체명상을 할 때도 내 비디오나 오디오 테이프를 약간 틀어놓기도 하지요 매일 세상에서 받은 영향을 씻으려고요 그러면 주의가 영적 수행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가장 편안한 순간은 말 없이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조용히 명상할 때입니다 그렇죠?맞나요? 왜일까요? 도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앉으면 내면의 도와 통하지요 내면으로 대화합니다

내가 가르칠 때는 내면으로 조용히 합니다 강연할 때 가르치는 게 아니죠 강연은 그저 마음에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마음일 뿐 영혼이 아니에요 우리 마음엔 많은 복잡한 정보가 모여 있어 많은 복잡한 질문이 있죠 난 강연할 때 마음의 의심을 해소하고 없앱니다 여러분의 영혼과 지혜와 소통하는 거라면 말은 한마디도 필요 없지요 알겠습니까?

우리가 읽은 노자의 말은 이해하기엔 매우 심오하지요 내가 더 쉬운 말로 설명하면 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계속해서 더 복잡한 것을 말했습니다 진보할 때 오히려 퇴보하는 듯이 보인다고 했죠 왜일까요? 간단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는 세상과 관련 없는 듯 느끼지요 그렇죠? 더 이상 명성이나 부,사업을 위해 경쟁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살지요 전처럼 사업에서 경쟁하거나 관청에서 승진에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자연스레 사랑으로 국가 일을 처리하죠 자기 의견과 지위를 보호하려고 더이상 공격적이거나 다른 이들과 부딪치지도 않아요

명상을 할 때는 북적대는 장엄한 곳의 굉장한 의식에 참여하는 대신 조용히 집에서 명상 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보면 굼뜬 것 같죠 일이나 승진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진보하고 있을 때 퇴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 거죠 이제 명확합니까?

노자의 한 구절을 가지고 오래도록 얘기할 수 있어요 난 여러분의 이해를 돕도록 최선을 다해 몇 구절 설명하죠 나머지는 스스로 생각하여 뜻을 알아내세요 그렇지 않고 내가 다 설명해주면 더 깊은 내면의 지혜를 개발하고 깨달을 기회가 없을 겁니다

좋아요 계속하죠 노자는 가장 간단하고 순수한 법문이 수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했죠 왜일까요? 그냥 그렇게 보일뿐 관음법문은 실은 가장 쉽습니다 고기한점 포기하는것 말고는 어려운 걸 모르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위대한 군자가 그런 사소한 일도 할 수 없나요?고기한점 포기 못하면서 또 무엇을 포기할 수 있나요? 온 세상을 버리는 건 고사하고요 아무도 여러분에게 아들과 아내,남편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리고 삭발하고 출가하라고 하지 않지요! 그저 고기 한점도 포기 못하면서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방법은 가장 쉽지요 그냥 편하게 앉아 있으면 몸은 휴식하고 마음은 정화되며 원기는 충전됩니다 내면의 소리를 수행하면 정말 원기가 충전되지요

예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순례를 하는 이들을 난 정말 존경합니다 매 걸음마다 엎드려 절을 하고 3걸음 마다 3번 절을 하고 6걸음 마다 6번 절을 합니다 수십 킬로미터를 이렇게 하지요! 정말 그렇게 해요 때로는 무릎에 피가 납니다 그들은 추위와 찌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견디고 하루 종일 경을 외며 그렇게 절을 계속하지요 물을 마시려고 멈추지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속 도로를 따라 포모사 전체를 이렇게 다니죠 그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고 했어요 부모와 세상의 명성,친구와 친척들을 버리고 삭발하고 출가하여 경전을 암송하며 매일을 보냅니다 그는 그게 어렵지 않다고 했어요 알겠나요?

그런 건 어렵지 않고 매일 두 시간 반 명상하며 쉬는 건 어렵다고 하지요 우리 방법이 가장 간단합니다! 간단하지만, 어렵게 보이죠 왜일까요? 왜냐면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의 도를 속일 수 없으니까요 내면의 지혜와 자아를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워요 보통 우린 하루 24시간 밖을 보죠 아름다운 여자나 멋진 남자를 보고 영화를 보고, 세상을 관찰하고 멋진 불빛을 봅니다 외부를 보는데 익숙하지요 그래서 주의를 모아 안으로 향하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거예요! 단 5분만 앉아있어도 몸이 근질거리고 그냥 잠들고 말죠 이런 겁니다 그래서 정말 쉽지만 매우 어렵기도 한 거죠

그러면 왜 걸음마다 혹은 세 걸음마다 절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왜냐면 그건 여전히 외적인 행동으로 평상시와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습관은 우릴 괴롭히지 않고 『괜찮아! 절은 밭가는거랑 비슷해』 라며 내버려 두죠 맞나요? 운전과도 비슷하죠 이는 모두 외적인 행동으로 여전히 행동이 있고 뭔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편한 거예요 같은 것을 하기에 습관이 괴롭히지 않습니다

반면 조용히 앉아 있는 건 일상생활과 달라서 마음의 습관이 나타나 『왜 보통때처럼 하지 않는거야?』 라며 싫어합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일어나 커피마시고 요리하고 친구만나고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으라 하죠 평상시처럼 행동을 하라고 합니다 『왜 거기 조용히 앉아 있는거야? 정말 비참하다!』

그래서 우린 목이 쉴 때까지 경전을 암송하면서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거예요 무릎이 닳아 없어지도록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절을 하며 성지를 순례하지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5분 10분 앉아있는 건 아주 어렵다고 느껴요 그렇죠? 고기 끊기도 어렵고 술을 끊기도 어렵고 담배 끊는 것도 참기 힘듭니다!

이제 모두 알 겁니다 노자가 한 말은 사실이에요 가장 쉬운 길은 보기에도 어렵지만 실제로도 어렵죠 그래서 우리의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고 유용하고, 기적같은 체험도 많지만 여전히 수행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겁니다 그들은 차라리 외적인 수행을 하고 매 걸음에 한번 두 걸음에 두 번 힘들게 절을하고 목소리가 쉴 때까지 경전을 읊으며 무릎이 닳을 때까지 불상에 절을 하지요 이해합니까?

그렇게 절을 하고 경을 외도 체험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죠 습관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해야 뭔가를 한다고 느낍니다 조용히 앉아 자신을 마주하는 건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 생각하지요 뭔가 말할 거리가 없는 거예요 『난 이걸 했어』 『난 수행하고 있어』라고요 그렇죠? 명상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저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죠 여러분에게 수행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어요 『명상할 때 뭘 하죠?』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죠 아무것도 않고 그저 앉아 있으니까요! 그런데 뭔가를 얻습니다 그렇죠?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얻고 영적 수행에서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결과를 얻지요 그래서 지혜가 많지 않은 이는 열심히 도를 수행하지 않는 겁니다 진정한 도는 이렇죠

이제 노자의 말을 이해하나요? 그가 맞죠? 그래요! 동의 합니다! 노자는 훌륭해요 그가 그렇게 유명한 게 당연하죠 허나 말해주겠는데 유명하긴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죠 석가모니불도 마찬가집니다 비록 유명해도 일반인들은 그가 숭배받을 만큼 성취한 것을 이해 못하죠 알겠어요?

여기 계율을 지키고 겸손하고 근면하라는 그의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 있나요? 우린 다 이해하죠! 이를 따르는 건 둘째치고 우선은 모두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그토록 존경하고 숭배하게 만든 그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죠 왕과 고위직까지 그를 숭배하고 존경했는데도요

우리도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이해 못했을 거예요 수행한 후 그의 경전을 읽으면 그의 말을 이해할 겁니다 예컨대 내가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그의 가르침을 이해 못했을거에요 어렸을 땐 다르게 이해했지요 그저 그의 말이 아름답다고는 생각 했지만 지금처럼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 지금의 이해력과 그때의 이해력은 다르죠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 이해한 법화경은 전에 이해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전에는 문자 그대로 이해했던거고 지금은 그 본질을 이해하죠 난 법화경에서 설명한 체험을 이해합니다 몸소 이를 체험했으니까요 이것이 직접적 이해지요! 난 법화경을 읽지 않고도 비슷한 체험을 쓸수 있어요 물론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내 말은 법화경의 뜻을 이해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죠 맞나요? 수행을 잘하면 이를 완전히 이해합니다

계속 하죠 『가장 위대한 덕을 갖춘 이는 덕이 없는 것 같다』 맞나요? 왜 그럴까요? 큰 덕을 갖고도 부도덕하게 보이는 사람이 누가 있죠? 어떤사람이 그런가요?

예를 들어 보죠 누가 그렇죠? 석가모니불은 어떤 가요?그도 그 예죠 예수는 어떤가요? 그들은 부도덕한 듯이 보였어요 왜 그럴까요? 세속적인 견지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불효자고 불충한 시민이며, 나쁜 왕이고 불친절한 아버지, 불성실한 남편이었죠 맞나요? 그는 부모,나라, 아들,부인 친척과 친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일도 않고 거지가 되었죠 세속적인 견지에서 그는 도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는 그럴 용기가 있는 진실로 가장 덕이 있는 이였어요 그렇죠? 그는 소위 세상의 도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를 뛰어넘는 우주의 도덕을 얻었으니까요 마치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선 『2 더하기 2는 4』 를 계산할 필요가 없어 산수나 손가락 계산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과 같죠! 초등학교에선 손가락으로 계산해야 했어요 그렇죠? 선생님이 『5더하기 5는 뭐지?』 라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세어 보고 『네!10이요!』 라고 했었죠

마찬가지로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석가모니 부처는 무책임한 이였죠 하지만 그는 세상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했으며 가장 큰 책임을 졌지요 그렇죠?동의해요? 만일 그가 왕이 되어 아버지, 좋은 남편, 효자로서 의무만 다했다면 기껏해야 자신의 작은 왕국에만 이로움을 주었을 겁니다 가족에 봉사하고 아내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세상은 그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겠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가 그를 존경합니다 그는 여전히 위대한 횃불로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도를 찾도록 용기와 영감을 줍니다 아직 도를 찾지 못한 많은 이들도 석가모니 부처의 이름을 듣고 그의 전기를 읽으며 영적 수행을 갈망하지요 그렇죠? 도를 찾았건 못 찾았건 감동을 받고 덕스런 삶을 원하게 됩니다

노자도 같아요 그는 아무 일도 않고 송장처럼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죠? 장자가 말하길 노자는 송장처럼 앉아 있었지만 그 정신은 용과 같았다고 했지요 그렇게 노자를 칭송했어요 노자는 아무것도 안했지만 몇 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고 우린 여전히 그의 가르침을 공부하죠 그래서 지고의 덕을 지닌 이는 좋은 일을 않는 듯 보이는 거죠 석가모니불처럼요 그는 거지가 됐지만 누가 거지가 되어 그처럼 위대해 질 수 있겠어요? 그가 위대한 건 거지여서가 아니라 그의 덕 때문이었죠 그는 가장 비천한 이처럼 보였어요 좋아요!

예수도 마찬가지죠 그는 10대였을 때 진리를 찾기 위해 사라졌지요 부모도 돌보지 않았고 혈통을 잇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요 3년의 설법 후엔 박해받았고요 소중한삶을 낭비하고 유익한 일을 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유용한 일을 하지 않았나요? 네 했지요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를 숭배합니다 그의 덕과 가르침은 많은 이를 바꾸었지요 외적으로도 이로움을 얻죠 그의 가르침으로 어떤 이들은 더 양심적이 되었고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으로 어떤 이들은 사랑이 더 많아졌어요 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깨달은 스승의 내면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다면 더 완전할 겁니다

옛 스승들의 가르침에 감화되는 것으로는 완전치 못합니다 『지고의 순수는 불순해 보인다』 왜 지고의 순수함이 불순해 보일까요? 그건 아이의 마음과 같아서죠! 예컨대 어릴때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가 포옹하고 춤추고 뽀뽀하고 같이 목욕하고 같이 자는데 그들이 뭔가를 느낄까요? 부도덕하다고 느끼겠습니까? 자극을 느낄까요? 그럴까요? 성장한 후에 그러면 자신들은 자극을 느끼지 않아도 보는 이는 자극을 느끼지요 그렇죠?왜일까요? 마음의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똑 같은 일을 해도 그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이해하나요? 어린 아이처럼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지요 두 사람이 서로 껴안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을 겁니다 꼬마였을 때는 껴안는 것이 뭐가 나쁜가요? 알겠어요? 그냥 예를 든 거예요 아이처럼 되는 거죠 아무렇지도 않게 뭔가를 하고 뭐가 좋고 나쁜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 은행을 털거나 하진 않아요 안 그렇죠! 자연스럽게 합니다 좋은 일은 자연스레 잘 해낼 것이고 해선 안될 일은 자연스럽게 피할 겁니다 이게 좋은지 저게 나쁜지를 깊이 생각하는 게 아니죠 깨달았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연스럽게 압니다 알겠어요? 은행을 털 필요가 없지요 스스로 돌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부적절하다면 하지 않을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그런 거죠 그는 어린 아이처럼 합니다 물론 애들은 은행을 털지 않아요 그렇죠? 좋아요! 걱정할 필요 없죠 나쁜 건 안할 겁니다

노자의 말은 순수하고 경지가 높은 이는 쓸모없어 보인다는 거죠! 게으른 것처럼 보입니다 달마처럼요 그는 9년 동안 가만히 앉아 세상에 아무일도 안 한듯 보였습니다 세상에는 쓸모없어 보였지요! 하지만 유익했죠? 지금까지도 모두가 그의 가르침을 존경 합니다 그렇죠? 그는 선종의 시조로서 중국에 커다란 공헌을 했지요 말도 많이 안 하고 가끔 몇 마디 말을 하면 제자들이 이를 전승했어요 그런데도 그는 중국문화와 영적 수행에 큰 공헌을 했지요 그렇죠?

달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9년 동안 앉아만 있었죠 그냥 이렇게 앉아 아무것도 안 했지만 우리에게 준 영향은 지대합니다 그의 이름은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요 이해합니까? 몇천 년이 지났지만 우린 여전히 그를 알죠 석가모니불과 다른 대 스승들도 마찬가지죠 세계적으로 얘기할 스승들이 너무나 많아요

때로 우린 어떤 스승의 행동을 보고 생각하죠 『이상하군! 어째서 우리와 똑같은 거지? 우리와 똑같이 마시고 먹고 놀고 예쁘게 치장하고 화려한 걸 좋아하네』 실은 그렇지않죠! 화려한 게 있으면 쓰고 없어도 상관 안해요 좋은 집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텐트나 야외 어디서든 지내죠 그는 상관 안해요 어디가 더 좋다고 느끼지 않죠 이해하나요? 뭐가 더 좋은지는 알지만 더 좋은 곳에 살겠다고 고집하진 않죠 내 말 이해해요? 그러므로 전체 상황을 모르면 때로 영적 수행자가 탐욕스럽거나 물질적인 걸 좋아하고 우리처럼 물질적인 것에 매여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사실은 다릅니다 그렇죠?

마치 아이 때는 공원에서 놀기를 좋아하지요 그렇죠? 시소같은 걸 타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가끔 아이를 데리고 나가 같이 놀아주려고 시소놀이를 합니다 하지만 우린 시소엔 관심이 없죠 전혀 관심이 없어요 아이들이 원하니까 시소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지만 우린 집착하지 않지요 아이들과 같은 것을 하지만 마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언제 집에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죠 아이들은 내버려 두면 온종일 지치지도 않고 놀 겁니다 애들은 매일 놀러 나가지만 언제나 좋아하죠 이렇게 행동은 같아도 사고방식은 다릅니다 이해하죠?

우리 성인들은 집착하지 않아요 그래서 노자는 가장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세속적으로 오염되어 보인다고 한 겁니다 실은 다르죠 그래서 노자가 『현자는 무지해 보인다』고 말한 겁니다 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바보처럼 보이죠 명성과 부를 위해 애쓰지 않으니까요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밖에 나가 뽐내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저 자연스럽게 일하므로 그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가 위대하다 생각지도 않지요 사회적으로 명성이나 부가 없으니까요! 정치가나 대통령, 고위 관리가 되고자 하지 않죠 그런 지위를 두고 경쟁하지도 않고 사업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부유하고자 하지 않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똑똑하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큰 회사를 소유하거나 고위 관리가 되고 매우 유명해져야 영리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여깁니다 우둔해 보이면 어리석을 것이라 생각하죠 그러나 사실 영적 수행자가 이룬 그런 어리석음에는 도달하기 힘듭니다 세속적 지식을 초월해야만 『어리석음』에 이를 수 있지요

노자도 말하길 덕이 많은 이는 덕이 없어 보인다 덕있는 사람은 약해 보이고 쉽게 속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정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이 없어 보입니다 이해하나요? 덕이 높은 이는 남들만큼 훌륭하지도 않고 덕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그 말이죠? 맞나요? 예!

예컨대 관음법문 수행자는 자선을 하는데 집중하지 않아요 그렇죠? 도움이 필요하면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잠자코 있지요 인류를 돕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거나 조직을 만드는 등 관심을 주목시킬 일을 하지 않아요 이해합니까? 일하면 일하는 거죠 그 후엔 잊어버릴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린 대단한 평판을 얻지 못하고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대대손손 전하여 그가 아주 동정심 많고 자비로운 걸 모두 알게 됩니다 자선을 베푸는데 관대한 이라고요 그러나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자선은 조용히 해야 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지요 알릴 필요 없다면 모르게 합니다 자랑하거나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않지요 우린 좀더 내향적이죠! 사실 이것이 더 현명하게 자선하는 법이죠 남이 알면 문제가 많을 겁니다 사람들이 와서 칭찬하고 인터뷰하고 신문에 기사를 쓰겠죠

그래서 노자의 말이 모두 옳습니다 정말 훌륭하죠! 그의 가르침은 아주 간략해서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르침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어서 짧아도 제자들은 이해할 수 있었죠 이건 고대 중국어로 쓰여 있어요 옛날에는 책을 내기 쉽지 않았지요 납작한 돌이나 긴 나무 조각에 책을 새겨서 아주 비쌌고 육상이나 배로 운송하는 것도 불편했으며 사본 제작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글이 짧을수록 좋았던 거죠 그런 거예요

지금은 녹음기와 비디오 카메라가 있어서 자유롭게 더 말할 수 있고 쉽게 들을 수 있지요 그렇죠? 혹은 글로 쓸 수도 있어요 오늘날은 뭔가를 말하려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 시대에 이렇게 쓴 것도 이미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죠? 인쇄 장비도 없었고 운송 서비스도 없었는데 말이죠 당시 상황은 오늘날처럼 편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간략히 쓴 겁니다 그나 그의 제자가 이해할 수 있게요 더 있지요 맞아요!

노자는 말하길 덕이 높은 사람은 쉽게 속는 듯 보인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지요? 왜 쉽게 넘어갈까요? 내 설명을 들은 후에는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이지요!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파티를 사려고 부인을 판 까비르 처럼요 이해해요? 그는 마음이 너무도 순수하여 모든 게 순수하게 보였지요 그 경지에서는 마음이 신과 같아 세상이 연극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게 없으며 그냥 할 일은 뭐든 하지요 의도적으로 좋거나 나쁜 일을 하진 않아요 요구되는 상황에 따라 뭐든 하지요 복잡하거나 비판적 이거나 편협한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고 말하지 않지요! 상황에 따라 판단합니다 성경에서 예수가 말한 것처럼요 배고파서 빵을 훔쳤다면 죄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해합니까?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 고의로 훔치거나 게을러서 훔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몰아붙인 거죠 그저 살기 위해 애들과 가족을 돌보려고 훔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무죄인 거죠 이런 경우 오계를 어겼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안되죠! 나 역시 무죄라고 할 거에요 내 말뜻 이해합니까? 어찌 죄겠어요? 마찬가지로 까비르가 차파티를 사려 부인을 판 건 죄가 아닙니다 그에게 죄책감이 없었으며 우리도 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그러나 주의해야 해요 나도 그렇고 노자도 그렇게 말했으니 돌아가 오계를 어기며 이렇게 말해선 안되죠『스승님께서 덕이 높은 자는 약해 보인다』고 했다고요 그러면서 훔치면 안되지요

좋아요! 『참된 덕은 거짓처럼 보인다』 『거짓』이라기보다 없는 것처럼 보이죠 진정 덕있는 자는 부도덕해 보입니다 진정 덕있는 자는 사람들 앞에서 뽐내지 않아요 정말로 평범해서 우리와 같아 보이지요 평상심이 『도』 입니다!그렇죠? 그는 입는 것이나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죠 자신이 수행자거나 덕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려 특별히 뭔가를 일부러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평범하지요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돕고 배고픈 사람은 먹여주며 아픈 사람은 돌봐주고 수행에 관한 질문에는 최선을 다해 대답합니다 이렇게 행할 뿐이지요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자신이 진정한 수행자임을 일부러 밝히지 않아요 좋습니다! 그래서 특별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죠?

만약 수행자같은 법복을 입는다면 알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허나 법복을 입더라도 남에게 알리려 일부러 입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수행자임을 알리기 위해 특별한 옷을 입는 이들과 다르죠 알겠어요? 특별한 옷을 입으면 매우 고결해 보여서 대부분 사람들은 스님,성직자를 존경하지요 훌륭한 수행자처럼 보이니까요 좋아요! 우린 정말 훌륭한 수행자를 알 수 없죠 이것이 노자가 말한 의미입니다

예로 여러분을 들면 여러분이 수행자임을 누가 알겠어요? 아무도 모르죠 여러분은 집에서 조용히 수행하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일하러 가지요! 누구도 여러분이 어느 보살의 경지인지 불퇴보살인지, 아라한의 등급인지 모를 겁니다! 사실 여러분이 가진 어떤 체험은 매우 높은 수준이에요 여러분 중에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보살과 불퇴보살이 있어요 여러분은 보살과 똑같이 보이죠! 다른 뭘 기대하죠?

보살이면 관음보살처럼 차려입고 삭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석가모니불도 삭발하지 않았죠! 양파처럼 여기를 묶었어요 그렇죠? 무슨 말인지 알지요? 보살은 여러분과 같아요 보살이 이 세상에 있었을 땐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불성을 얻어도 여전히 같아 보입니다! 부처가 되어도 옷은 바뀌지 않지요 그렇죠? 예! 어쩌면 약간은 변하여 위엄 있어 보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그렇죠 하지만 부처가 된 후에 자신이 부처임을 알리려고 옷을 바꿔 입거나 하진 않아요 보살,아라한, 성인인 대수행자도 여러분처럼보였죠! 관음법문의 수행으로 얻은 내적체험이 성인의 경지인 것이지 외적인 어떤 게 아니에요 그래서 진정한 수행자,덕있는 자는 알아보기 어렵다고 하는거죠

계속 하죠 노자는 말하길 완전한 원은 모남이 없고 진정 재능있는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서서히 알려져 일찍 발견되지 않고 늦게 완성되어 나타난다고 했지요 그리고 가장 높은 소리는 듣기 어렵다 했어요 여러분은 소리가 무엇인지 알지요! 우리 모두는 내면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소리는 들을 수 없다고 하는 거죠 노자는 또한 최고의 형태는 실체가 없다고 했어요 최고의 형태, 최고의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실체가 없으니까요

도는 세인에게 보이지 않고 알아볼 수 없어요 그렇죠? 그런데 도를 명명할 수 있나요?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라면 도를 이해하지만 명명할 수 있나요? 설명할 수 없지요 그렇죠? 도는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단지 체험할 뿐이지요 매일 그 위대함을 체험할 뿐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설령 설명한다해도 소수만이 이해하고 믿겠지요 도는 믿거나 설명하고 명명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온 우주를 밝히고 성장시키며 중생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힘입니다 도를 들으면 모든 사람이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미소지을 것입니다 함께 해탈합시다 알겠죠?좋아요! 여러분의 인내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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