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승과 제자 사이
『광흠 화상:
삼매를 통한
호흡식』은
포모사어로
진행되며
자막은 아랍어
어울락(베트남)어
불가리아어 중국어
체코슬로바키아어
영어 불어 독일어
힌디어 헝가리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말레이어 몽골어
페르시아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펀자브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입니다
경전에서
인간의 몸은 종종
신의 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이 거하는
이런 신성한
거처가 되는 건
어떤 영혼에겐
아주 진귀한 특권이며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건
참으로 축복입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선
몇 차례나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문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로의
환생은 힘들지요
인간의 품성이
충분해야 하고
부모와 사회
여러분이
태어난 곳의
주위 사람들과
인연이 있어야 하니
아주 힘들지요
인간이 되기 위해선
공덕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뭔가
선행을
했던 것이지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신의 사원으로서
인간의 몸은 모든
생명의 조물주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진,영적으로
의식 있는 이들 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적적인 경이들을
완전히 갖추고 있죠
이네디아는
단식에 대한 라틴어로
음식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하죠
태곳적부터
프라나나
생명력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이네디에이트
즉,음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양분을 얻기 위해
자연에서 에너지를
끌어 올 수 있었죠
그들은 땅이나 숲
태양과 대기 중의
기로 살아갑니다
그런 온갖 것들을
활용하지요
사랑이나 믿음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호흡식가(프라나리언 이네디에이트)
태양식가,수식가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전역의 다양한 문화를
가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조물주께서
만드신
이 생명에 있는
가능성과 기적들은
실로 무한합니다
우린 신의 자녀로서
풍부한 유산을
깨닫기 위해 내면으로
접촉하면 됩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
인자하게
수프림 마스터 TV의
주말 시리즈에
지상에서 음식 없이
살았던
과거나 현재의
인물들을
소개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얘기들이
여러분을 매료시켜
마음이 더욱 열리고
넓어지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을
스승과 제자 사이
『광흠 화상:
삼매를 통한
호흡식』에
초대합니다
소중한 여러분
스승과 제자 사이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이어
수프림 마스터 TV
주목할 뉴스에 이어
선한 사람 선한 일들이
방송되니
채널 고정하세요
신의 축복을 빌며
안녕히 계십시오
석가모니
부처 시대부터
불교 승려들은
물질적인 부를
버리는
전통적인
금욕생활 방식을
따랐으며
완전한 지혜와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인류의 영적 고양과
그들 자신의
수행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활동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으로
보냈습니다
명상에 잠긴
승려들은
종종 수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음식 없이
지내곤 했습니다
람 바하두르 봄잔은
네팔의 소년부처로
깊은 삼매에 빠져
4년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명상으로 인한 내면의
희열은 물질 음식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을
넘어선 것입니다
포모사(대만)의
광흠 화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깊은 명상에
빠지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스승으로 유명하죠
일년간의 안거 동안
그는 정말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어요
그의 많은 제자들이
당시 함께 했지요
지금부터 포모사의
가장 유명한 불교
승려 중 한 분의
삶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고 탐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광흠 화상은
1892년
후지안 지역의
장저우에서
광서제가 즉위한 지
18년~19년 째
되는 해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죠
그의 부모들 모두
농부였습니다
그는 세 네 살 때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어
길러지게
되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그의 양모는
항상 채식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세 네 살에
입양된 광흠 화상은
그때부터 채식을
하게 되었지요
그의 양모는
그가 11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승려가 되도록
청티엔 수도 사찰로
보내졌지요
27살에
광음 화상은
중국 청티엔
수도 사찰의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많은
귀한 가르침을 받았죠
한번은 그가
다른 승려들과
계를 받은 직후에
들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점심
때였어요
광흠 화상은
지치고 배가 고파
다른 승려들을 따라
주방으로 갔어요
나이 많은 승려는
그에게 식사 전에
도구를
정리하라고 했어요
광흠 화상은
화가 나고
자기연민에 빠져
사찰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좀 가다가
사찰을 떠나는 것이
그의 영적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감정을
추스리고 생각했어요
『생사를 해탈하기
위해 여기 왔는데
오늘 좀 힘들었다고
우울해 하다니』
이러한 깨달음으로
그는 즉시 사찰로
되돌아 가서
도구를 정리하고
나이든 승려에게
고백하였습니다
현명한 승려는 그를
용서하고 조언했어요
『인간들이 먹지 않는
것을 먹고 그들이
먹는 것을 먹지 말라
언젠가 너는
이해할 것이다』
결국 1946년
광음화상은
포모사(대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포모사(대만)의
여러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초기에 그가
여러 곳을
여행하며
기륭의 선인동굴에서
머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동굴의 환경은
산에 위치한
청티엔 수도사찰과
비슷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타이뻬이로 갔어요
포모사(대만)에 있는
동안 광흠화상은
『과일식 스승』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광흠 화상을
포모사의『과일식
스승』이라 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어디서
유래됐을까요?
그는
남동아시아에서
되돌아 온 후로
청티엔 사찰에서
수년간 머물렀어요
후에 그는 쌀 5kg을
갖고 친위엔 산에
있는 동굴에서
수행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 동굴은
청티엔 사찰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었죠
그 당시 그는
37살 이었습니다
그는 쌀 5kg을
금새 다 먹고 먹을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는 동굴에서 안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탁발하러 갈 수
없어서 산에 있는
생 과일이나 채소를
먹기 시작했지요
산에 사는 원숭이가
그에게 과일을
공양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 해전에
광흠 화상을 방문한
제 불교 스승님이
한 번은 광흠 화상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당신을 과일식
스승이라 부르죠?』
광흠 화상은
그에 대해 매우
겸손했다고 합니다
그 호칭에 대해
떠벌리지 않고
쌀이 떨어져 과일을
먹는 것 말고는
선택이 없었다고
간단히 말했지요
그는 8년 동안
동굴에 살았고
과일이 주식이 되었죠
제 불교 스승님은
광흠 화상께서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죠
과일 말고는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엔 과일식이
습관이 됐다고 했죠
일찍이
광흠 화상이
음식을 끊고
프라나나
우주 에너지로만
살았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광흠 화상과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했나요?
5년이요
5년요
예,5년요
광흠 화상은
깊은 삼매 상태에
들곤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땐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을 겁니다
함께 있는 동안에
그가 삼매에
가장 오래
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그는 80세 때
묵언을 시작했지요
밖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축복했지만
그 기간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약 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먹고 싶지 않아
일년간 음식을
끊었지요
많은 제자들이
애원하면서
몸을 돌보기 위해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청했지요
그래서 서서히
액체를 마시기 시작해
식사를 재개했지만
과일만 먹었고
액체를 마셨습니다
광흠 화상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90대에도
생기 넘치고
예리했습니다
95세 때
한 무리의 제자들이
아미타불을
낭송하면서
주위에 모였습니다
광흠 화상은
법호를 계속해서
쉽게 암송했지만
제자들은
목이 잠기고
가슴에 통증을
느껴 암송하는데
그와 교대해야만
했습니다
제자 하나가
광흠 화상이
거의 한달 동안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고는
그가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스님 저희가 암송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하지만 광흠화상은
눈을 뜨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모두 스스로
암송해라
모두 스스로 죽음을
넘어서야 한다』
광흠 화상의
인생관은 뭐라고
생각하지요?
매우 겸손한
분이었어요
수행을 열심히 하셨죠
항상 제자들에게
부처님 이름을
진심으로 부지런히
암송하라고 말했지요
다음은
그가 남긴
유명한 말씀입니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아무일 없다』
그건 아주 겸손한
사람이란 걸 보여주죠
예를 들어
과일식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죠
『수행을 하고 싶어
과일을 먹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데도
대신 이렇게 말했지요
『과일 말고는
먹을 음식이
없어서지요』
이 예로부터
우리는 그가
열심히 수행만 한
아주 겸손한
수행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런
높은 경지 올라
존경 받았던 거지요
아주 겸손하고
평범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부처의
이름을 성심으로
암송하라고 가르쳤죠
그의 영적 수행은
그의 책임감 있는
삶의 방식을 반영했죠
광흠 화상은
1986년 95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의 단순한 생활
방식과 자기 수양의
자애로운 모범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가 열반에 든 후
헌신적인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모아
아래의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습니다
『광흠 화상의
금언집』
현재
그의 사리함 유품들이
미륵 프로젝트
마음 유품 여행의
일부로 전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