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가 하는 일
1993년 1월20.26.29일 포모사 라이니
다시 까비르 이야기 입니다.
그의 시는 수행자의
품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엔 어떻게 수행하는지
가르칩니다
시의 제목은
“현자가 하는 일”입니다
성인이 일상에서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가 무얼 했는지 볼까요
제자들을 먹이려 아내와
차파티를 바꾸기도 했는데
다른 건 뭘 했을까요?
잘한게 있는지 한번 볼까요
그는 부인 하나조차
둘 여유도 없었어요
모든 스승에게 안락한 삶이
운명지어진 건 아니죠
그렇죠? 왜냐면
그가 정말 정직해서요
알겠어요?
그는 구두 수선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그리고 어떤 기부도
받지 않았죠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면,
공주인 아주 부유한
제자가 있었답니다
한번은 그녀가 큰 진주를
보시하려 했지만
스승은 받지 않았어요
그녀가 맞는지 모르지만
이름이 ‘미라바이’라고
매우 유명한 여자였죠
그녀는 결국 높은
깨달음을 성취하고
명망 높은 스승이 되었어요
그녀는 많은 시를 썼죠
그녀가 스승에게
아주 크고 값진 진주를
선물했어요
어쨌든,
이야기는 대략 그렇습니다
스승이 선물을 거절하자
그걸 지붕 밑에 뒀어요
초가집 아나요?
그리고 “스승님,여기뒀어요,
이만 갈게요” 했습니다
그녀는 먼곳에 살았어요
이해했나요?
공주는 큰 도시에 살았고
까비르는 시골에서
구두를 만들어 생계를 이었죠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돌아와, 스승이
전과 같은 걸 봤어요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였죠
부인은 이미 팔았으니까요
자신을 차파티와
바꿔야 할 정도였어요!
‘스승님, 왜 진주를 팔아
나은 삶을 살지 않으셨나요?”
하자, 그가 물었어요
“무슨 진주?” 그러자 그녀는
“지붕 밑에 둔거요, 아직거기
있는 건가요?” 하자
“자네가 둔 곳에 있겠지
아무도 만지지 않았을 거야”
했습니다 그는 보시를 받지
않았던 겁니다
어쩌면, 또 다시 와서
또 스승이 되야 하는 윤회가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스승은 한번으로도 힘들지요
그러니 그를 비난하지 않아요
이제 알 겁니다
말이 나왔으니, 까비르와
그 부인에 대해 얘기해보죠
그 얘기 기억하죠? (네)
예, 다시 말할 필욘 없군요
우리가 듣기엔 약간
이상하게 들립니다?
왜 스승이 그런 비도덕적인
일을 했을까 생각하겠죠
자기 부인을 다른 이의
상대자로 팔았어요
그리 좋지 않은 일이에요
하룻밤 동안뿐이라도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아요? 나빠요?
나쁜 것 같아요!
좋지 않죠!
나도 좋다 생각하진 않아요
그의 부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행위라 느끼지 않나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네! 좋아요
까비르는 좋지 않았어요!
여러분 모두 안 좋다고
얘기했죠?
이 경우만 좋지 않았어요
다른 건 모두 잘 했지요
그렇죠? (네)
그럼 용서할 수 있나요?
여러분은 그를 용서하나요?
너무 망설이는군요
사형, 사저 사이에
견해가 다른지 봅시다
누군가 최고의 변론을
내놓을 수 있겠죠
오늘 우린 이 중요한
사건을 토론해 보는 겁니다
세계의 모든 이들이
결혼했어요
99.9%가 결혼했죠
이건 중요한 사안이에요!
스승은 결혼을 했던 안 했던
동반자는 한 사람만
있어야 된다 했죠
카비르가 아내를 팔면
한 사람당 한 명이 되는게
아니예요
한 사람당 반 명이 되는 거죠
그렇죠? 몇 등분만
갖는 건 좋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아요
만일 누군가 팔아야 했다면
자신을 먼저 팔아야 했어요
그러나, 아무도 원치 않죠!
그게 문제였어요!
너무 늙고 가난했던 거죠
그런 남편을 사서
부양하길 바라나요?
아내는 아름답고 원하는 이가
있었죠, 그녀가 먼저 동의해야
했지만 나중에 동의했어요
만일 아내가 동의했다면
그가 그리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들겠죠!
그럼 괜찮나요?
둘 다 반대하지 않으면
그럼 그건 그들 일이겠죠
나도 그건 그들 일이라고
느끼지만
여러분은 그런 남편이 좋다
나쁘다 생각할 수 있어요
스승의 행동 그 이면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나도 모르는, 그의 과거의
인과 때문일 거에요
그럴 수도 있죠
인과 문제였어요!
난 그게 차파티의 원인과
결과라고 느낍니다!
틀림없어요
제자들이 너무 많이 왔는데
집엔 차파티는 커녕
밀가루와 버터도 없어
빌리려 하자
그 남자는 카비르의 아내를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아내를 팔았어요!
인과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난 카비르를 지지해요
진정한 스승이니까요
제자들을 위한 계율은
스승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입니다
즉, 그의 행위는 계율을
넘어선 거였어요
우린 계율로 스승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세속적 두뇌로
스승을 평가할 수 없어요!
그는 뭘 하든 옳아요
단지 우리 두뇌가 그걸
수용못할 뿐입니다
더 있나요?
난 저 사형이 절대적으로
사실이라 한 것에 대해
뭔가 덧붙이고 싶군요
문제는 세상 사람
99.999프로가 깨달음을
얻지 못했단 겁니다
그의 등급에 이르지 못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후대에게
쉽게 오해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는 명성보다 중생을
더 귀하게 여긴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첫째, 스승이든 아니든
자기 아내를 파는 건
그들 일이에요
왜 간섭해야 하죠!
그가 좋던 나쁘던 왜
그런 걸 토론해야 하나요
지루합니다!
더욱이 그녀는 동의했어요!
여러분 일이 아녜요
다 속은 겁니다!
나도 그에게 동의합니다
단지 “냄새나는 가죽자루”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지요
그걸로 원하는건 뭐든 해요!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버려지고
벌레에 뜯깁니다
사람에게 뜯기나 벌레에
뜯기나 별 차이가 없는 거죠
지금 뜯기나 나중에 뜯기나
그것도 별 차이가 없어요
사람의 육신을
그토록 귀하게 여길,
위대한 게 육체에 있나요?
그 냄새 나는 가죽자루에요
행동이 아니라 목적이
중요한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둔겁니다, 알겠나요?
경우가 무척 달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겁니다
이해하나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요
냄새 나는 가죽자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요
알겠어요? (예)
무덤에 뉘이게 되면
벌레들이 뜯어먹으러 오고
개미도 조금씩 뜯어 갈거고
다른 곤충들도 조금씩 몸
전체를 가져가 버릴거에요!
곧 몸은 썩고 사라져 나무의
비료가 되지요
그렇지요? (예)
집에 돌아가
아내를 팔라고
부축이는게 아녜요
내 말은 그런 상황에선
그게 옳았단 거죠
보통 남편과 아내는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그의 행동에 아내가
동의했으니 서로 존중한거죠
그렇게 했다고 아내를
존중하지 않은게 아녜요
그는 그와 아내가 하나란 걸
알았으니까요
그가 뭘 말하든
아내는 동의했어요
그가 뭘 하든, 아내는
즉각 이해했지요
당시는 이해못해도
돌아와서 이해했을 거예요
남편이 동의한 거니까요
알겠어요? 그녀가
즉시“좋아요” 라고 하고
집에가 카비르에게 말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죠
그러니 남편에게 묻는 건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그녀가 어쨌던 간에요
당연히 여전히 여성스럽고
수줍게 행동해야 했어요
남편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게
아니란 마음을 보여주려고요
알겠어요?
남편이 결정하게 한거죠
그래서 즉시 동의한 겁니다
좋은 아내였어요!
많이 깨달았죠
등급이 거의 비슷했어요
알겠죠? (예)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서로 그대로 둔 거예요
냄새 나는 가죽 주머니는
많은 값어치도 없어요
만일 누군가에게 수행과
자양분이 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즉시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기와서 일하고 나무 심고
땀 흘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 같은 것이지요
다른 동료수행자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돌아가면 역시
매우 지치고 피곤 할 겁니다
머리가 아프거나
손을 좀 다칠 수도 있겠죠
알겠습니까?
상처 좀 나고 땀 좀 흘리겠죠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죠
이해합니까? (네) 좋아요!
그런것 외에
또 뭘 했나 볼까요?
대부분 육체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죠
옛날 중국 전통이나
다른 곳의 전통에 의하면
여자가 남자에게
성폭행 당했을 경우
여자는 절벽이나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해야 했습니다
왜죠? 생명은 귀중한 건데
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죠?
관용이 부족해서예요
만약 인과를 알고
높은 이상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다면
육체를 그토록
중시하는 그런 결말은
보지 않았을 거예요
자신에게 부주의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을
해도 된다는게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꿰뚫어 봐야죠
그건 전부,
자신을 파는 것이나
자신의 귀한 생명을 해하는
소소한 문제를
저울질 하는 데서
기인됩니다
단지 그런 하찮은 문제를
지나치게 저울질 한 탓에
수많은 가정이 파괴됐죠
(알겠습니다)
또는 남자가 한 여자를
건드리면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하거나
죽어야 했어요
그 남자가 어떤 모습이든
크든 작든 잘났든 못났든
상관없이 그 사람과 해야
했어요 왜 그래야 하죠?
그런 식이어선 안돼요!
한 사람의 인생을 팔 만큼
남녀관계가
중요하진 않아요
그래서 이런 개념이
많은 민족, 중생, 여성들을
해친것입니다
많은 결혼생활이 깨졌고
많은 가정이 흔들렸죠
그렇죠? 또 그 해악은
자녀, 부모, 가족, 심지어
친척, 친구들에까지 미쳐요!
그래선 안돼요
그렇지요? 중요치 않아요!
그런 일은 콧물닦듯 다루세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좋습니다
물론 우리같은 수행자들은
그런 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많은 것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이런 문제로
자신을 해하지 않아요
그렇죠? 생명이 소중한 것은
많은 일을 할수 있기 때문이죠
불성을 얻거나 수행하여
나라와 가족을 돕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왜 거기서 작은 문제로
다투고 있나요? 좋아요
시를 읽어 볼까요
“현자가 하는 일”
먼저 영어로 읽을게요
“비는 같이 내린다
그가 자만으로 가득하든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든
현자는 다른 식으로 행한다
온갖 두려움과
욕망을 씻어낸다”
비가 오면 누구나
젖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어떤 중생이든
비를 느끼겠지요
사람이 좋든 나쁘든 비는
상관 않는다는 뜻이에요
분별하지 않습니다
현자는 중생의 두려움과
욕망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일합니다
비처럼요, 알겠어요?
더러운 곳을 모두 씻지요
이처럼 다양한 행동과
방법으로 현자는 중생의
욕망과 두려움을 씻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세음보살을 “무외보시불
(두려움을 없애는 부처)”라
부릅니다
보문품 (불경의 법화경 중)의
내용을 기억합니다
관세음 보살은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려고
소년, 소녀, 목사, 여인
또는 다른 모습으로
화현한다고 합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면
그렇게 했어요
“스승은 마야의
영향을 초월해 있다
어떤 적도 없고 모두 존중한다
스승은 우리 고통을 없앤다
우리 과오를 용서하고
아무것도 요구치 않는다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스승은 마야의 환상
세속의 유혹을 넘어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스승은 모두를 존중하죠
그들이 존중 받을만하다고
느끼며 누구도 그의 적으로
여기지 않아요, 고통을 없애고
과오를 용서합니다
아무 요구도 없고
어떤 공양도 받지 않습니다
명성도 부도 원치 않아요
“위대한 현자에겐
기쁨과 고통은 같은 것,
그는 사심 없이 베푸는
완벽한 본보기이다
상담과 충고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봉사한다
언제나 준비된 그 가르침은
명확하고 정확하다”
즉, 위대한 현자,
위대한 스승, 위대한 영적
수행자에게 고통이나
기쁨은 같은 것이란 겁니다
그는 끊임없이
사심 없이 베푸는
완벽한 모범으로써 그에게
오는 모든 이를 가르칩니다
매우 단순하고 명백하며
복잡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모든 것을 명확히 합니다
“그런 위대한자를 찾으라,
에고를 꺾으니,
모든 의심이
사라진다
그러나 현자는
흔치 않으니
운좋은 자 찾을
것이라, 까비르”
여기 그의 이름을 썻네요
그런 위대한 스승은
자주 나타나지 않아
찾기 어렵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찾아야 해요
그런 이를 찾는다면
복 있고 매우 운이 좋은 거죠
그를 찾으면 에고를 바쳐
그가 다루도록 하고
의심은 저기 ‘양계장’에
버려 닭들이
쪼아먹도록 하세요
그러면 자유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익은 열매는
나무를 위함이 아니요
강은 대양이나
바다를 위해 모이고
현자는 오직 타인의 위해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
열매가 익는 것은
나무를 위함이 아니고
강과 시내가 모이지만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대양을 위해서라는 뜻이죠
그러므로 성인은
중생을 위해 사람의
몸을 받는 겁니다
인간으로 여기 온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에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부처나 성인이 중생을 위해
세상에 내려 온다는 것을
우린 알아요
우릴 위해 사람이 되었죠
그러므로 삶의 유혹
온갖 사치, 명성, 부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가 살던 세상은
이 세상보다 수십만 배나
더 매혹적 이니까요
그는 잠시
여기 머무는 것 뿐입니다
불경에 이르길,
부처에게 지구 중생의 삶은
화장실에서 사는 것같이
느껴진다 한 것이 기억나네요
대단하지 않고 지저분하죠
즉, 욕망, 행복, 분노, 슬픔,
기쁨은 단지 문제와
부정적 업을
안겨줄 뿐입니다
평화와 행복으로
이끄는게 아니고요
그러니 보살 또는 성인은
이 세상에 흥미가 없어요
여기 어떤것도 좋아하지않죠
즉, “ 진귀한 현자들”이란 말은
위대한 영적 수행자나
성인, 스승은
드물다는 뜻입니다
“까비르 말하길
모든 숲에
나무가 자라지만
모든 숲에 백단 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니,
진주는 귀하고 광택 있고
둥글다지만
바다 어디나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자도 이와 같아서
가장 드물다
어디서나 찾을 수는 없다”
즉, 까비르가 말하길
숲에는 많은 나무가 있지만
모든 숲에 백단 나무가
자라지는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에게
중국어로 설명했어요
소금을 약간 넣어
맛을 조금 내듯이요
모든 영적 수행자들은
비슷한 말을 합니다!
관음법문 수행자는
그들이 말하는 순간
그걸 이해할겁니다
500년 전에 까비르가
관음법문을 수행했음을
우린 즉시 알 수 있어요
그렇지요?
지난번에 그의 시 몇 개를
읽고 뜻하는 바를
알았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해 못했을 거예요
까비르는 계속 말합니다
진주는 매우 귀하고
반짝이고 둥글고 완벽하지만
바다 아무데서나 진주를
찾을 수는 없다
모든 바다에 진주가있진않죠
모두 같고 이름도 같지만
무상한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성인이란
아주 귀하고 드물다 했어요
어디서나 찾을수는 없습니다
계속 읽겠습니다
“ 사자는 홀로
고요함을 좋아하여
무리 짓지 않고,
백조는 다른 새들과 날지
않네,
진정한 영웅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고,
대중 속에서
평범하고 강하네
현자는
쉬이 나타나지 않네”
즉, 사자는 홀로 있기
좋아하여
사자가 무리 짓거나
다른 동물들과 뛰어다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요
백조도 그러합니다
다른 새무리와 함께
나는 일은 드물지요
영웅은 여러분의 문 앞을
자주 지나가지 않아요
문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정말 드뭅니다
우린 모두 현자입니다
누가 현자가 드물다 했나요?
여기 현자가
한 만 명쯤 있는데요
그의 말의 참 의미는,
수행자들은
명성과 부를 위하여
남과 겨루지 않고
시끄럽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자는 적고 귀합니다
현자를 찾기 어려운 건
그가 세속적인 일에
관심 없기 때문이에요
현자는 평화롭고
조용한 환경을 좋아합니다
운 나쁘게도,
도심, 비행기안, 담배피고,
술 마시는 곳으로
그를 이끌 제자를
만나지 않는 한
말이죠
그것이
빈센트의 옛 스승이
홀로 사막에 산 까닭이죠
그는 작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근처엔 아무도 못 왔어요
영적 수행자들은
평화롭고 조용하게
혼자 있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세상과 섞여야 함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르지 않죠?
안그래요?
아직 우리에겐
가족이나 일 같은
책임이 있으니까요
어디를 가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인내하고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사실 내면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된 후에는
어디서든 인내할 수 있어요
전엔 견딜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어요
이런 의무를 갖는 것이
마지막이란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우린 원하는 것을 찾았음을
마음으로 알지요
수행 할수록
더욱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견딜 수 있습니다
전엔 세속적 유혹
명성과 재물 따위에
이끌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명성과 부를
인내하고 있습니다
(네)
바로 그게 차이입니다
우린 탐닉하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곳에서 살며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요
이제 우린 언덕을 언덕으로
물을 물로 봅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별다른걸
느끼지 않는 거죠
이 스승처럼, 스승이라면
계율에 매우
엄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을 먹일
차파티와 아내를 바꿨죠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어쨌든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버릴 수 있었죠
그러니 그에게 냄새 나는
가죽자루가 무엇이겠습니까
이해합니까?
여전히 이런 것을
놓아버릴 수 없다면
그건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걸 뜻합니다
아직 단단히 갇혀있는 거죠
계율, 가르침
그런 모든 것들은
강을 건너는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강을 건넌 후에도
배를 타고 갈수 없죠
시를 하나 읽어줄게요
불교 뿐 아니라
많은 종교는 염불을 합니다
힌두교에서도
역시 염불이 있습니다
“염불을 합니다”
까비르가 말하길,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계속 염주를 세며
염불했지만
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타락했다
그들의 마음은
평온을 찾지 못하였다.
까비르 왈,
손에서 염주를
내려놓고
내면의 스승을
안내자로 두어라
염주를 세느라 네 손가락이
바쁘니
욕망의 불꽃이
일어날 때
어찌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동상 걸린 발로
거리를 뛰어가려
노력하는 사람은
넘어질 뿐이다.”
즉, 고대부터 많은 이가
염불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방법으론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없으니까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어요
그게 그가 말한 바 입니다
까비르는 염주를 치우고
내면의 염불로 마음을
다스리라 했습니다
즉, 외적 행동에
의지해서는 안되며
내면으로 염해야 합니다
지혜의 눈을 통한
내면으로 말이죠. 왜냐고요?
우린 마음에 집중하기
원하기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입으로
염하더라도
마음은 밖을 향하거나
나돌아다니겠죠
그렇죠?
(네)
밥을 먹거나
타이프 치는 것처럼
많은 생각을 요하지 않는
일을 할때도 두뇌는
여전히 다른 생각 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녁 먹는 동안에도
생각합니다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야지 TV나 영화를
봐야 하는데” 하면서요
염주를 세며 염불할 때도
이와 마찬가집니다
겉으로 보기엔
염불을 합니다
난 보여질 게 없어요
입으로 염불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많은 걸
생각하니 도움이 안 되죠
그렇지 않나요?
내면으로 염하면
도움이 안 되더라도
집중할 수 있어요 그렇죠?
외부로부터 주의를
모았기 때문이죠
두뇌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걸 볼 수 없지요
그러므로, 내면으로
염하는 게 좋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죠
우리에게 전해지는
스승의 힘 때문이기도 하죠
그러지 않으면
염은 소용 없습니다
귀신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수행법을
공개하지 말라 한 겁니다
올바르게 알려주지 않으면
잘못된 방법으로 수행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에게
많은 문제점을
일으킬 테니까요
알겠습니까?
책에는, “부처의 이름을
염할 때 중요한 10가지”가
있다 했습니다
인광대사는 고요한 기도가
가장 공덕이 많다 했습니다
무슨 의미할까요?
우린 모두 알아야 합니다
우린 익숙하지요
5감은 두뇌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지요?
두뇌는 익숙하기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5감은 스스로 작동합니다
그 동안 두뇌는 여전히
다른 걸 생각할 겁니다
외적인 것으로는
두뇌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사용해서가 아니면
제어할 수 없습니다
“어찌 네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겠는가?”
심장은 어떻게 뜁니까?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거나
잘생긴 남자가 오면
심장이 뛰지요 그러나
그때도 계속 염합니다
때로, 파리나 모기를
염주로 잡습니다
밖으로 염주를 세느라
손가락은 바쁘겠지만
내면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염주는 쓸모 없어요
내가 아니라 그가 말했죠
그러니, 내면을 보고
내면의 신의 왕국을
찾는 게 가장 좋으니
내면에 대해 아는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스승의 안내가 있으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다시피
우린 관음법문을 수행하지만
사원도, 교회도
갖지 않습니다
양계장도
교회로 바뀔 수 있고
거위농장도 절이 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우린 어디든 아쉬람으로
만들 수 있지만 외형으로
사람을 유혹하지 않아요
실제로
이곳은 양계장이었지요
양계장이
아쉬람이 된 거에요
다르지 않습니다
단어 하나 차이죠!
그러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냅니다
내면의 진정한
신의 왕국을 찾았다면
이곳이 진정 천국이지요
안 그런가요?
(예)
양계장 지붕 아래에서
우리는 모든 천국을
볼 수 있어요
내면의 천국을 보니
외적인 것들도 마치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채식을 하고
오계를 지키고
단체명상을 하기 전엔
바깥 사람들과 어울려도
아무것도 못 느꼈어요
가끔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주 조금 잠깐일 뿐이었죠
그게 사라지고 나면
다른 일로 바빠져
전부 잊지요
나중에 수행과
채식, 오계를 지키고
명상하기 시작하면
영혼이 점점 정화되어
우리 몸들도
점차 정화됩니다
우리 몸, 언행, 생각이
전과 달라지지요
그래서 이따금씩
불편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은둔하는 겁니다
진아를 찾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는 거죠
그래서
양명산 센터를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수행하러왔죠
두뇌는 가끔
예전처럼 행동하여
재미와 인파를 좋아하기에
산에서의 삶도 가끔은
그리 편치 않지요
이동이 힘들고
가능한 것이 적습니다
속세에선
매일 보는 것이
요란한 세상이라
지루하고 지겨웠죠!
하지만
산에 들어가더라도
우리에게 충분한
의지력이 없고
내면의 힘이 부족하면
두뇌는 종종 우릴 속여
밖으로 나가
즐기고 싶게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시작되고
우린 곤경에 처하지요
갈등하게 되며
불편해지고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속세인들과 있더라도
마치 우리가 속해 있지
않은 듯 보아야 해요
그러면 괜찮을 거에요
산에 은둔해서
수행하고 싶더라도
충분한 인내력이 없으면
종종 고비가 올 거에요
그러니 느긋하게 하세요
할 수 있으면 산에 머물고
아니면 도시로 돌아가
일하면서
수행하면 됩니다
단체 명상에 갈 수 있고요
그것도 괜찮아요!
산속이라고
평화와 고요 속에서
도시라고 해서
해탈 못하는게 아녜요
편한 쪽으로 하면 됩니다
괜찮아요
그렇지 않고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게 하면
너무 엄격해서
계속 발버둥치며
억지로 산에 남으려는건
자신에게 안 좋지요
매일 자기를 통제하려
많은 노력을 합니다
“난 여기 오기 싫어!
아냐, 난 돌아가기 싫어!”
“난 산에서 살아야 해!
아니 도시로 가고 싶어!”
“쇼핑 갈래!”
“안돼! 안돼!
넌 명상 해야 해!”
두뇌를 반으로 나눕니다
왼쪽과 오른쪽 반으로
양쪽이 매일 싸웁니다
“사탕 먹고 싶어!”
그럼 천사가,
좋은 쪽이, “안돼!
너는 야생 야채만
조금 먹어!
산엔 사탕 같은 건
없잖아!”
그럼 나쁜 두뇌가 “맞아”
하고 잠시 앉았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나 커피 마실래!”
그럼 좋은 쪽이
“말도 안돼! 나가서
강물이나 마셔!”
이런 식으로 앉아
하루 종일 분투합니다
두뇌는 사소한 것들로
싸우느라 바쁘죠
진정할 수 없고
열반에, 삼매에도
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에너지 낭비죠!
커피만 좀 주면
나쁜 쪽은
조용해 질 거에요
그러면 두 시간 반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어요
알겠어요? 그렇죠!
혹은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있는 걸
알아도 조용해질 거예요
언제나 먹을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알겠죠?
없을 때는 난리지만
사실 있으면
그리 먹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안 그래요?
어쩔 땐 냉장고에
가득 있지만
보지도 안잖아요
이상하게
다만 없을 때
먹고 싶죠
두뇌는 이렇게 속입니다
우릴 끌어내리려는
마야의 도구지요
그래서 대체로 그 말을
들으면 문제만 생깁니다
가끔 그는,
산에서 한동안 머물며
홀로 수행하도록 부추깁니다
아무런 “가르침의 안내”
없이 혼자 가면
그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홀로 내부의 마야의
도구와 대면하는 겁니다
아! 끔찍해요!
옆에 동수도 없고
혼자인 거죠
그가 원하는 대로
우릴 학대할 수 있어요
시끄럽고 끔찍합니다
그래서 양명산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점점 돌아갔어요
산을 내려갔죠
나쁘지 않아요!
도시에서 더 고요히
수행할 수 있으면 좋아요
대개, 우린 마음이 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두고
혼자 수행하면
언제든 명상할 수 있다
생각하지요! 방해도 없이
오래 명상할 수 있고
삼매에도 들고
오래 앉아 있을 거라는 둥
사실, 혼자 있으면
가만 못 있지요
5분도요
하지만 단체명상 때는
아주 오래 앉아요
이상하죠, 많은 소음과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요
하지만 집에선 혼자이고
아무 방해도 없는데
수행이 잘 안됩니다
그렇게 두뇌는 그 때
우릴 속이는 거지요
두뇌는, 종종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어요
그는 모방하죠!
그래서 단체명상 동안엔
두세 명이라도
함께 앉아 있으면
그가 옆사람을 한번 보고
창피해져
움직일 생각을 못합니다
그러면 옆사람도
움직이고 싶어하다가
옆사람이 가만 있으니
가만 있게 됩니다
서로 돕는 게지요
그렇게 한동안 있다 보면
앉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오감도 점차 침착해져
고요히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2사람이 함께 앉아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내가
함께 하리라고 하신 거에요
논리적이요! 간단합니다!
신비스러울게 없어요
축복하는 힘은 자기것입니다
두뇌는 따라하기 좋아하는
원숭이와 같습니다
좋은 것도 쉽게 배우고
나쁜 것도
빨리 배우죠
그러니, 사회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을
모방하여 나빠집니다
현명한 사람을 찾아
좋은 본보기로 삶을 수 있죠
그럼 우리 두뇌는
그를 모방할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그를 닮아가죠
더욱 더 비슷해지고
결국에는 정말
그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내가 스승인지
스승이 나인지
모르게 되지요”
그때,
도를 이루게 됩니다
이해하겠어요?
에고는 사라질 것이고
다시 말해
두뇌는 더 이상 많은걸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에고는 없어지고
해탈하게 됩니다
점차적으로요
해탈하게 됩니다!
두뇌는 매일 우릴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오랜 습관을 사용합니다
우린 점차 두뇌를 이기고
제어하게 되지요
우릴 위해 일하게 하고
그가 원하는걸 얻기 위해
우릴 이용하게 하지 않죠
예를 들어
두뇌는 정말 우리를 속여요
가끔, 그는 무엇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걸 주지만
좋아하지 않지요
그렇죠
그리곤 말하지요
“이건 싫어”
“다른 것을 찾자고!”
다른걸 주면 그게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게 아니였죠
그는 춤추거나 노래하러
가자고 하고는
춤추고 싶지 않아하고
행복해하지도 않지요
그는 춤출 수 없으면
“아, 이건 지루해, 가서
커피 마시자” 하죠
커피를 마시면
“이건 너무 써” 하죠
그리곤 우롱 차를
원합니다
몇 모금 마시곤
“그저 그렇군” 합니다
두뇌는 이런 것들이
그저 그렇다고 하죠
시간은 지나갑니다
반 나절이 가버리죠
이렇게 세상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두뇌를 제어하는 법을
모르니까요
두뇌는 매일 그들을
제어합니다 코에
구멍을 뚫어 끈을 매어
끌고 다닙니다
관음법문에
입문한
우리 같은 수행자는
이런 두뇌 문제와
그의 전략에 대해
점점 의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두뇌에 속지 않죠
전엔 같은 식으로 요구하며
두뇌가 속였을 때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우린 두뇌가 속이고 있는 걸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죠
그는 예전처럼 요구하고
여전히 시끄럽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우린 “하하 놀리지마”
하고 말하지요
단지 그 차이입니다 그러면
그는 점점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지루해져 멈춥니다
그리고 우린 날뛰는 원숭이
돌격하는 말과 같은 생각을
제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