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는 입문한지
일년이 넘었습니다
저도 전에는
선생이었지만
저 자신을 스승님과
비교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스승님은 크건 작건
아주 많은 것들을
가르치니까요
그녀는 가장
자비로운 분입니다
예컨대
이 해외 순회 강연중
스승님은
미국, 코스타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
홍콩을 갔습니다
얼마나 먼 거기를
여행했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요
해야할 다른 힘든 일
외에도 스승님은
매일 강연을 하고
입문을 줘야 합니다
아주 힘든 일입니다
포모사(대만)에서
훨씬 고된 일을 합니다
입문자들과 함께
단체 명상에 참석하고
강연을 하느라
매일 바쁘지요 때로는
잠도 못 잡니다
전 스승님에게서
사랑과 자비를
느낄수 있습니다
전 스승님이 청렴하신
것도 말하고 싶어요
스승님은 어떤 공양도
받지 않아요
스승님은 절하면
그 답례로 여러분에게
절합니다 그녀 눈에는
모두가 동등하며
모든 중생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승님이 얼마나
소탈한지 감탄했어요
스승님은 매일 아주
조금씩 먹어요
옷도 아주
검소하게 입고
텐트에서 삽니다
여름에는
때로 그물
침대에서 잡니다
아주 단순한 삶을
살지만 매우 자유롭고
여유가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에서도
큰 스승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어요
또한 스승님의 지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젯밤 스승님의
강연을 들으러 왔다면
스승님이 정말로
무한한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걸 알 겁니다
스승님이 무척
단순하게 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한마디는
우리의 깊고 깊은
의혹들을 씻어내고
많은 질문들에
대답해 줍니다
더욱이 스승님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가르치며
종종 말없이 그녀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손짓이나
몸 동작으로도
우리를 깨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똑같이 느꼈을 겁니다
포모사(대만)의 많은 사람들이
스승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승님이 더이상
어떤걸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스승님은
이렇게 완벽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스승님께 입문받을
기회가 있다면
실제로 내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란걸
알게 될겁니다
제가 다른 입문자를
데려와서 내 말을
확인해 볼수도있어요
타이난에서 온
우 입문자가 있는데
그도 스승님께 입문을
받은지 일년 됐습니다
그는 외면의
체험도 많고
스승님께 얘기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이제 그를 초대해서
스승님께 입문하고
체험했던 변화들을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를 환영해 주세요
스승님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포모사(대만)에서
아름다운 도시
홍콩에 오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즐거운 행사입니다
저는 작년 4월에 인연으로 인해
스승님을 알게됐어요
그때 저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저의 친척이나
친구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강연에 갔어요
강연 후
1,2주 되는
어느 날 밤
스승님이 제가 잘때
나타나서 말했어요
『관음 법문을
수행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저는 왜 칭하이
스승님이 자는데
와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의아했지요
그건 꿈같이 느꼈지만
실은 꿈같지 않고
사실 같았어요
며칠 뒤에
저는 다시 스승님의
강연에 참석하는
꿈을 꾸었어요
저는 앞 줄에 있는
자리를 찾아서 강연을
주의 깊게 들었어요
그 꿈은 스승님이
비범한 스승이란걸
깨닫게 해줬어요
입문 후
저는 오계가
살생하지 않는것
훔치지 않는것
간음하지 않는것
거짓말하지 않는것
술이나 도박 또는
마약같은 독성을
금하는것임을 알았죠
우리가 신실하게
수행한다면
물론
스승님이 우리의
환경을 바꾸고 무상의
법문인 관음법문을
수행할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줄 겁니다
세계 160개국
중에 스승님은
홍콩을 택했습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신겁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스승님의 강연을
듣는다는 것은
행운이며 커다란
축복입니다
아마 우리의 머리가
아닌 영혼이
찾는 것일 겁니다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읽고 우리 내면의
영혼이 그녀에게
끌린 겁니다
우리의 영혼이 바로
그녀라고 말하는거죠
그녀는 친구이며
우리가 찾아왔던
깨달은 스승입니다
관음법문은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위해
수행했던 법문입니다
이것은 보험
법문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입문을 받는것은
보험에 드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때
스승님은 우리가
세세생생 축척해온 업장(응보)를
지워주고
즉시 화신을
보내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그러므로
관음법문은
진정한 보물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존경하는
스승님을 모셔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오늘 좀 늦게왔는데
밖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들과
잠시 얘기하고
사탕을 좀 주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요 이게 있으면
저게 없어요
어제 내가 떠난 후
한 여자가 내 차에
다가와 질문을 했죠
그녀는 물었어요
『왜 세상에는 이렇게
고통이 많지요?
왜 부처가 우릴
도와주지 않지요?』
나는 돕고있다고 했죠
부처가 우릴 도왔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이
다른 식으로
보는 거지요 우린
부처가 어떻게 돕는지
확실히 분간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받을때는 부처나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자나 여신에게 도와
달라고 계속 기도하죠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 것 같고
우린 여전히 아프고
가난하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부처가 돕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방식과 다르게
돕는 겁니다
또 때로 우린 그만큼
신실하지 못해요
정말 신실하다면
우리의 기도는 항상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의 신실함을
어떻게 계발할까요?
쉽지 않지요
때로는
불상 앞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일심으로
기도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결과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신이나 부처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탓할 수 없어요
이 도와주는
힘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부터
도와야 합니다
예컨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모든 중생들과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공자님 말씀에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남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요
그렇게 해서 소위
업장(응보)라는 것이 몸에
들러붙는 겁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업(응보)의 법칙은
불교의 교리에만
언급되어 있고
천주교 교리에는
없다고 합니다
사실 거기에도
언급되어 있어요!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있죠 『뿌린대로
거두리라』
여러분이 뿌린 그대로
거두는 겁니다
이것이 업(응보)의 법칙이죠
이것을 업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원인과
결과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실제로
업(응보)의 법칙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뿌린
것으로부터 그 열매를
거둔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사과 나무를 심으면
사과를 수확하고
오렌지 나무를 심으면
오렌지를 거두죠
따라서 씨앗을 심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하지요
예를 들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보시해야 합니다
그럼 나중에
부와 돈이 우리에게
올 겁니다
예뻐지고 싶었다면
다음 생에서
예뻐질 겁니다
이번 생에서는
바꿀 수가 없어요
이번 생에서는
바꾸기가 힘들지요
하지만
나중에는 가능합니다
다음 생에서
아름다워지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말할 때 예쁜 말을
써야 하지요
사람들을 꾸짖는 걸
피하고요 안 그러면
못생겨질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싶진 않군요
모든 경전에
나와있는 이야기에요
경전에 있는
모든 가르침이
유용하다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불경은
유용합니다
카톨릭 신자라면
성경을 읽는 것도
유용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이 경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 말이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죠
금강경의 아주
유명한 말씀을
예로 들어볼게요
금강경은 아주
유명한
불경이지요
누구나 압니다
거기서 말하길 『빛과
소리를 통해 신의
깨달음을 찾는다면
결코 못 찾으리라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니라』
그런데 누군가 물어요
『그럼 왜 당신께선
내면의 비전을
보기 위해서 빛과
소리를 명상하라고
가르치십니까?
그게 빛과 소리가
아닌가요?』
난 말해요 『아뇨!
그 빛과 소리는
물질적인 빛과
소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건 꽃이고
저건 화장지입니다
우린 그걸 만지고
볼 수 있지요
이건 물질적인
빛이에요
램프의 불빛이며
해와 달에서 온
빛이죠
이들은 물질적인
비전입니다
종과 교회의 종
절의 심벌즈에서 나는
외부의 음악은
물질적인 소리입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빛과 소리는
다른 종류의 비전이죠
그건 이 세상을
초월하는 빛과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소리와 비전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니까요 내면의
지혜로 가능하지요
이런 내면의 지혜를
얻은 뒤에
우린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고
모든 걸 할수있죠
또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어디든 가기가
아주 편리하지요
지금 시대는 교통이
아주 편리합니다
미국가는데10시간
좀 넘게 걸립니다
이전에
비행기는 우리의
상상 밖이었어요
지금 시대는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아주
편리하지요
심지어 원한다면
달에도 갈 수 있지요
하지만
달보다 더 높은
세상이 있고
달보다 더 아름다운
행성이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살지요 저 너머
세상에 속해 있는
다른 존재들이요
그들을
천상의 존재나 부처
천사로 부를 수 있어요
그런 세상은 우리보다
더 문명화됐습니다
우리 세상보다
더 문명화됐지요
예를 들어서
이 행성에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몇몇은 더 문명화됐고
몇몇은 다소
뒤쳐져 있습니다
부처가 사람들을
구하러 온다고 해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행성의
중생들이 아주
문명화되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종류의 행성을
방문할
기회를 갖는다면
다른 종류의 삶을
거기서 볼 겁니다
그들의 최고 문명을
우리가 보고
돌아온다면
아주 부끄러울 거예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겠지요
미국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환자들의 사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유사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천사들이 말하지요
『때가 안 됐어요』
그리고는 그들을
지구로 돌려보내지요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매일 큰 슬픔에 빠져
웁니다
몇 주 동안 울지요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들은 왜 울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멋진 세상을
봤지만 다시 돌아와
이 오염된 세상을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걸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 삶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아서 다시
돌아와야만 했어요
죽었다가 살아난
이런 사람들은 아주
높은 세상에 가지
않았어요 문명화된
세상이 아니에요
하지만 행복해하며
거기 살고 싶어했어요
몇몇 소위 영적
수행자들은
심지어 더합니다
그들은 아주
능력이 있으며
더 아름답고
문명화된 멋진
최상의 세상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에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상상할 수 있죠
그런 사람들에게
모든 선악과
고통과 기쁨이
영향을 주지 못해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우리는
아주 높은 세상에
가도록 허락됩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수행자들은
이 세상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레
가게 할 수 있으며
아무 염려도 안해요
자연히 그들은
번뇌나 장애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번뇌나 장애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성장해서
힘이 세진다는 겁니다
우린 번뇌를 무시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작았을 때
커다란 짐을
나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
필요한 어떤 크기의
짐이라도
운반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많이들 내게 묻기를
왜 부처가 고통스런
세상을 더 행복하게
하지 않았냐고 해요
난 그들에게 말합니다
부처가 우릴 돕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걸
알지 못한다고요
오늘 난 여러분에게
고통을 줄이는 법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몇몇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위대한 영적 수행자인
소위 성인을 찾아서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에게 공양하며
그들을
숭배하는 겁니다
우린
그들의 사진을
집에 가져갈 겁니다
그 성인이나
위대한 영적 수행자가
우리가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린
복을 받을 겁니다
여러분 알겠어요?
모두가 채식을 하고
싶어하진 않으니까요
모두가 명상하고
지혜를 얻거나
부처가 되려고
관음법문을
하고 싶어하진
않습니다
또 다른 더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위대한
영적 수행자를 믿고
그에게
공양하는 겁니다
그가 여러분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럼
분명히 많든 적든
그가 우리 업장(응보)를
짊어질 겁니다
그럼 우리의 번뇌가
줄어들 테고 우리가
위험에 처하면 그가
우릴 도우러 분명히
올 겁니다
그에게 공양할 때
많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꽃 한 송이나 사탕
하나면 될 거예요
돈이 아니라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모릅니다
그들은 돈을 더 많이
줄수록 복을 더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진 않아요
신실할수록 복을
더 많이 받습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죠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명상할
필요도 없지요
매일 그 사람을
그냥 생각하는 거예요
언제든
우린 기억할 수 있고
그를 생각하며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믿으면서요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가 진짜
성인이며
영적 수행에서
정말 높다고 그에게
엄청난 축복과 힘이
있다고 말이에요
그래야만
이런 내면의 자연스런
존경을 가질수 있지요
그런 믿음 없이
그를 존경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는 이럴 필요도
없어야 하지요
영적 수행에서
더 높은 성인이
몇몇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높아서
그에게 공양하지
않고도 우린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를 믿고
매일 그를 생각하고
그에게 기도하며
어려울 때 그를 믿고
그를 공경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 수행에서 그가
아주 높다면 우릴
도우러 나타날 겁니다
그것도 우리의
신실함에 달렸지요
우린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할 때
우리의 에고가
작아져서
무지의 벽이 깨져서
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많은
영역을 볼 수 있거나
진정한 비전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신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지 오만
탐욕 분노와
심취에
가려질 것이며
그러면 위대한
영적 수행자가
화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지라도
우리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광채가 창공에
가득 차도 우리는 그걸
하나도 못 보지요
아마 평범한 인간으로
그를 볼 겁니다
그러므로 신이나
부처의 가피력을
아는 건 쉽지 않아요
때로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부처나
관음보살 같은
부처나 보살,
성인이
진리를 설교하고
사람들을 해방시키러
화신으로
종종 이 세상에
옵니다
때로는
그들은 진리를 설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 자신이 축복입니다
그들이 어디를 가도
그 곳은 축복을 받고
그 나라는 자연히
혜택을 얻지요
그들은 영적인 고양과
물질적인 향상을
가져올 겁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들은 불분명하고
미묘하지요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걸 측정하거나
인지할 수 없어요
때로 우리는
명심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부처 성인이나
그리스도가
어떤 나라에 나거나
다시 태어날 때
그 나라는
5년이나 10년 후
갑자기 변화하고
점점 더 좋아지고
개화되고 안정적이고
혹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거기 태어나서
그 나라에
유익을 준 것이
부처나 그리스도
그 사람인 것을
우린 생각도 못해요
우리는 그걸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감사하지 않아요
부처들과 성인들은
그들에게 감사하도록
반드시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더 감사할수록
우리가 그들을 더욱 더
인정하고 믿을수록
더 많은 복을
받을 겁니다
그것이 문제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을 때,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여서
모두 큰 이득을 얻었고
그들의 내면의
영성, 지혜,
놀라운 힘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또한 그들 삶이
향상되는 걸 봤어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어요
그를 중상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어요
이 사람들은 축복을
받을 수 없었어요
알겠어요?
그들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는 돕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어요
그들은 예수의 말을
믿지 않아서 그는
아무것도 할수없었죠
불교에서 들은
바로는『믿음은
모든 법문과 공덕의
근원입니다』
난 『맞아요!』하죠
약간의 믿음이 없으면
부처나 성인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은
어려워요
인도에 고도로
진보한 영적인
수행자가 있었어요
그는 아주 유명했지만
명상이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어요
약간의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러 가면
그들에게 그냥 사탕
비스킷이나 그가 가진
걸 주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얻었죠
기록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주 가난한 여자가
한 명 있었어요
그녀의 남편은
알코올중독자로 항상
만취해서 집에 왔어요
그는 술 마시는데
돈을 탕진해서
가족은 빈곤했어요
아내는 하루 종일
아주 열심히 일했죠
아주 피곤할 때까지
하지만 때로는
가족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돈은 아직
없었어요
이웃들의 후원이
없으면 그들은
생존할 수 없었어요
어느 날 그 위대한
영적 수행자가
그의 제자들을 보려고
그녀가 살고 있던
마을로 왔어요
많은 사람이 그 불쌍한
여인에게 강연을
들으라고 충고했어요
그녀는 말했어요
『네? 강연에요?
나는 그냥 그를 보러
가는 거지 강연을
듣진 않아요』
그는 강연을 안했어요
그는 말하지 않고
그냥 그를 보게 했죠
그는 무엇이든
말하고 싶으면
제자들이 말하게 하고
결코 말하지 않았어요
전에 그는 말하곤 했어요
수 년간 설법하고
몇 권의 경전을
쓴 후에
그는 말을 멈췄어요
완전히 입을 다물었죠
그 이후부터
그는 표현하는데
손짓만 했어요
이렇게 제자들은
대중을 위해 그의
메시지를 통역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말했어요 『아!
그를 보고 싶지 않아요
부처나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안 믿어요
아무도 돕지 않아요
내 평생 아주
가난했어요
거기 간다고 무슨
유익이 있겠어요
난 아무것도 못 얻고
일당만 잃을 뿐이죠』
그렇게 그녀는 말했죠
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장소에 갔을 때
다른 누군가가
다시 말했어요
『꼭 그 성인을
보러 가세요
확실히 도움이 되죠』
많은 사람이 이걸
그녀에게 말해줘서
마침내 그녀는 갔어요
그녀는 성인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거기
줄지어있는 걸 봤어요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거기
있었으므로 들어갔죠
망설임 때문에
그녀는 등을 똑바로
하고 서있는 걸
알았어요
그녀는 그 성인이
거기 앉은 걸 봤어요
성인에게 엎드려서
축복음식을
약간 받아서
집에 가려고
모두 줄을 서있었죠
그게 전부예요
그녀는 마음속으로
궁금했어요
『이상하다!
그게 전부인가?』
누가 여기 와서
한줌의 사탕이나
비스킷을 얻으려고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 왔으니
그냥 줄을 섰어요
마침내
영적인 수행자는
그녀에게 축복음식
한 봉지를 주었어요
그녀는 받아서
나갔어요
장거리를
걸은 후에
그녀는 봉지를 열고
봤어요 와우!
거기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돈이요!
수 만 NT
달러였어요
그의 제자들에 의하면
이 성인은 사람들에게
결코 돈을 주지 않았죠
그런데 왜
이 여자는 돈을
받았을까요?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인걸
그는 알았으니까요
그녀가 받은
이 돈으로 그녀는
집에 가서 식료품
가게를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그녀는 더 이상은
궁핍하지 않았죠
그 날부터 이 여자는
매해 스승을
보러 왔어요
물론 우리모두가
돈 때문에
스승을 보러 가거나
강연에 참가하지
않아요
그러지 않는게 좋죠!
그러나
많은 이로움을 얻지요
다른 종류의 이로움요
우리가 뭘 좋아하든
신실하게 기도하면
그걸 얻을 겁니다
신실해야 합니다
아니면 효과가 없어요
당신은 내게 말해요
『그녀는 전혀
신실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런데 왜 그녀는
돈을 받았을까요?』
그녀는 신실했어요
그녀의 상황에서
아주 신실했어요
하루 일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알지요?
그녀의 가족은
돈과 음식이 부족했죠
그녀로서는
하루 일당을 잃는 건
큰 희생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그 돈에 대한
갈망은 지극히 강했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그녀가 신실치
않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것은 신실함이었죠
우리가 의례적으로
절을 하고 크게
『우리는 아주 신실해
아주 신실하다!』고
주장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이건 유용하지 않아요
신실함은
아주 자연적인 것이고
아주 강한 생각입니다
내 말을 알겠어요?
뭘 원하든 상관없어요
그런 아주 강한
갈망을 가지면 우린
그걸 얻을 겁니다
이게 소위 신실함이죠
쇼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로부터
도움을 구하려고
크게 불경을 찬송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의 방식으로 해요
우리는 부처와
의사소통을 하고
그에게 우리의 요구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우리가 그걸 잘못
외울까 염려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무언가를 암송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가슴속에서
신실할 수 없어서요
모두 아주 빨리
암송하면 우리는
천천히 암송할수없죠
그래서 우리는 각자
우리가 원하는 걸
기도하는 자신의
최선의 방식이 있어요
그러면 우린 정말로
집중하고 신실하지요
우리가 쓰여진
어떤 구절을 항상
따라야 한다면
우리는 산만해지지요
그러면 우리는
일심의 상태
진정 신실한 상태에
이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뭔가를 위해
기도할 때 실패하지요
기도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살아있는 성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은 살아있고
더 효과적이니까요
이세상에는 위대한
가피력을 지닌
영적 수행자와 성인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대개 인도에 있지요
인도 사람들을
칭송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겁니다
왜 가장 위대한
영적 수행자들이
인도에 있는 걸까요?
대부분의 인도인이
채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량해요
살생을 적게 하고
거의 죽이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죽인
고기를 사지도 않지요
힌두교인들은
대개 채식을 합니다
그래서 살생의
나쁜 업장(응보)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세생생 인도는
영적 수행의 전통을
신봉해왔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들은 축복의 기운과
상서로운 기운
진리를 구하는 정신을
주입 받습니다
그래서 일단 깨달은
스승을 만나면
매우 빨리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성자나
깨달은 스승이
되기가 더 쉽지요
강한 선입관을
갖고 있지 않고
좀더 개방적인
마음을 가졌어요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가
성불하신
보드가야라는 곳에
온세계 사람들이
순례할수 있게
사원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순례를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인이었죠
힌두교도들이 불교도
보다 더 많이 부처를
숭배하러 옵니다
힌두교도들이
이 사원을 재건했으며
석가모니 부처의
불상을 조각하고
힌두교인들이
숭배하러 옵니다
매일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러 옵니다
대개 힌두교인이죠
그건 현재 인도엔
불교도들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거기서
번창하지 못했어요
알겠습니까?
불교는 외국에서
번창했지만 인도에선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보드 가야 성지와
모든 불교 사원들은
부처를 섬기러 온
힌두교도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그들이
힌두교도이지만
회교도들이 숭배할
모스크를 지었지요
그들은 생각합니다
“당신이 우리 종교를
믿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이 신을 섬기도록
교회를 짓겠어요”
인도에는 영적 수행에
높은 등급을 얻고
모하메드와 같은
수준까지 도달한
매우 유명한 이슬람
스승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선
극소수의 회교도들만
이 스승들을 보러왔고
참배자들의 대부분은
힌두교도였어요
그들은 공물을
가지고 왔으며
스승들을 믿고
돌보고 그들을 위해
사원을 지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개방적인 정신입니다
아주 개방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우린 그의 지혜가
위대하며 거만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매우 관대하죠
그것은 그가
성인 혹은 부처의
수준에 매우
가깝다는 걸 보여주죠
왜냐하면 부처나
보살은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가지든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종교를 믿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좋은 사람이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 부처와 성인들
예수 등등이 그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관용을 판단해 보면
우린 그 사람이
얼마나 깨달았는지
압니다
깨달음에는 많은
단계가 있으며
집이나 어디서든
깨달음을 얻을수 있죠
지위나 종교에
상관없이
여러분이 신실하다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불교도나
가톨릭신자가
될 필요도 없고
목사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목사가 재가자보다
더 깨닫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혹은 불교 사제가
재가자보다
더 깨닫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여러분이 만일
벌써 깨달았다면
축하합니다!
아직 깨닫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을 도울수 있죠
내겐 관음법문이
있습니다
매우 편리하고
모두가 깨달을수 있고
아무 문제 없지요
본래 우리는 깨달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신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상의 왕국은 우리
내면에 있지요
난 그저 어디서
어떻게 찾을수 있는지
말할 뿐입니다
매우 간단해요
여러분이
문을 열지 못한다면
내게 더큰힘이 있어요
쾅! 그럼 열립니다
그건 전문성의 문제죠
가령 우리가
많은 램프를 본다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봐! 대단한데
이런 걸 고칠수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지?”
난 절대 못하고
그도 분명히 못하고
전문가들은 할 수 있죠
그들에겐 아주 쉽죠
그래서 깨달음도
같은 겁니다
무지의 문을
여는 것도 같아요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전문가가
필요할 뿐이죠
신비로울게 없어요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깨달음의
법문을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즉각적인 깨달음은
즉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승은
설법을 사용하거나
지팡이나
하나의 문장이나
큰웃음이나 우레같은
꾸지람을 써서
사람들을 깨닫게 해요
많은 방법이 있어요
내가 쓰는 관음법문이
가장 안전하고
빠르며 복잡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을 배우는데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요?
규칙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걸릴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채식입니다
고통 받는
중생의 고기를
먹지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매일
명상해야 합니다
내가 명상법을
가르쳐 줄 겁니다
우리가 부처의
이름이나
만트라를 암송해도
응답을 받게
될겁니다
그것이 입문과
어떻게 다르지요?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만트라나 불경을
암송해서 오는
응답은 비교적
천천히 올 겁니다
입문은 즉각적인
응답이 있습니다
만트라를 암송할
필요도 없으며
손짓을 할 필요도 없고
참배나
향, 꽃이나
공양도 필요없고
다른 것들은
전혀 필요치 않아요
이것들은 불필요해요
우린 스스로 지혜를
열어야 하니까요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더 빠릅니다
예를 들어 내게
티슈가 있어요
내가 티슈를 빼는게
더빠르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이
뽑아주길 기대한다면
더 느리지 않겠어요?
우리가 만트라나
부처의 이름을
외운다면 외부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겁니다
더 느리고
효과가 적지요
백만장자는 많은
돈을 가졌겠지만
우리가 매일 그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돈을
꺼내서 쓰는 것이
간편하고 빠릅니다
따라서
입문할 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입문시켜서
여러분이 자신의
지혜와 불성
자신의 힘을
발견하도록 합니다
그게 더 빨라요 아주
빠르죠 그런 다음
누구에게 묻거나
만트라를 외지 않고도
매일 그것을 꺼내서
사용합니다
사람들을
숭배하거나 호의를
구걸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의 “돈”입니다
스승님, 사람들이
야단치고 때리고
모욕을 준다면
불교도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우릴 꾸짖는 사람에게
재빨리 엎드려서
고맙다고 말하세요
이러면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축복을 줄 겁니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면서
무심코 고기를 먹거나
계율을 어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몰랐다면 괜찮아요
고의로 먹지 마십시오
향을 피우는 것은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까?
향을 피우는 것은
우리가 부처와
보살을 경배할 때
빈손으로
참배하러 간다면
부적절 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용하는 겁니다
향기로운 꽃이나
혹은 달콤한 향이나
예쁜 과일을
공양해야 하지요
이런 물질적인
공양들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느낄거에요
향은 달콤한
향기를 내뿜어
공기를 정화하고
부처가 편안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게
우리가 느끼는 거에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부처 또한 좋아하리라
생각해서 우린 달콤한
향을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린 자신에게 향수를
뿌립니다
그래서 부처 또한
달콤한 향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부처를 볼 수 없으니
부처에게 향수를
뿌릴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비싼
물질을 사서
공기 중에
향기가 번지도록
그것을 태웁니다
이 향을 통해서
우리가 부처와
대화할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면에 있는 신실함을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그렇지만
관음법문은
사실상 이것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우리 자신의 재산과
지혜, 축복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를
모시려고 향을
피울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부처가 됩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불성을 이용하며
매일 그것을 사용하고
매일 발전시킵니다
그러면 어느날
부처와 같아집니다
아마 우리는 이번생에
성불하게 될 테니
숭배하거나
기도하거나
누구에게 호의를
구걸할 필요가 없죠
인도 사람들은 매우
자비롭고 수많은
영적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가난하죠?
가난은 자비심은
어떤 관련이 있지요?
부유하며 악한 것을
더 좋아 합니까?
엄밀히 말해 그들은
선량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으며
지위를 다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돈이 생기면
헌금을 내고
숭배하러 가며
사원을 짓고
타인과 이웃을 도우며
영적 수행자에게
나누어 줍니다
돈을 버는 것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쓸만큼만 있으면
된 겁니다
매우 순수하고
만족하기에 그들은
부유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벌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스승님 가톨릭에선
단식과 금욕 생활에서
생선을 먹는걸
허락합니다
불교의 채식과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서로 다릅니다
우리 불교인들의
채식은 오직 채소만
소비하며
다른 중생을
먹지 않습니다
물고기나 물고기가
아니든 먹지 않지요
스승님 일본의
일련 정종과
불교간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불교와 상관이
없습니다
불교는 마음에 있죠
모든 외부 언어는
부처와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 가짜지요
부처가
진정한 경전이며
진정한 종교입니다
부처는 우리 마음이며
우리 자신의
위대한 힘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변형된 몸을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할수
있고 그힘을 우리는
내면에 가지고 있어요
경전은 우리를 부처로
변하게 할수없습니다
그건 모든
종교가 같아요
전생의 업장(응보)를
바꿀 수 있습니까?
자신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생의 업에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창고에
쌓여있어서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된 적이 없지요
다른 하나는
이번 생에 우리가
발견해낸 것이고요
그걸 “정업”이라 합니다
사용된 적이 없는
업장은
숙업(응보)이라고
부르며
전생이나
축적된 업장 (응보)에서 옵니다
다음 생에 여기로
돌아오면
그 업장을 꺼내
사용하는 겁니다
미래에 쓰이는
업장입니다
하지만 미래에
쓰고 싶지 않다면
우린 없앨수도 있고
옆으로 치워서
미루기도 합니다
그 업장을
없애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우리 업장을
가져가고
우릴 도울수 있는
살아있는 스승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스승에는
두가지 다른 종류가
있습니다
가짜와 진짜입니다
가짜 스승도
업장(응보)를 없애는걸 도와줍니다
우리가 완전히 그를
믿는다면 업장(응보)가
그에게 전해집니다
알겠어요?
그는 업장(응보)를 완전히 가져갈 수 있죠
하지만
가져가서
거기 두기만 할뿐
없애진 못합니다
진정한 스승은
창고에서 업장을
가져갈 수 있고
직접 없앨 수도 있어
우리가 다음 생에
다시 고통 받을
근거가 없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이번 생에 뭔가
나쁜 일을 했으며
우리가 죽을 때도
여전히 나쁜
업장(응보)를 지우지 않았다면
우린 스스로
만회하기 위해
돌아와야 할겁니다
이 생의 정업은
그리 빨리 지울수
없습니다
허나 진정한 스승이
있다면 스승은
우릴 도울수 있죠 스승은 큰 업장을
작게 바꿔주고
작은 업장을 완전히 사라지도록
없애줍니다
스승은 또한 현실을
꿈으로 바꿉니다
그런 겁니다
그렇게 업장을
없앨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분한 복이
없기 때문이며
점점 더 많은
업장 (응보)를 모으기만 하고
없애지 못하니까요
관음법문이
최고의 법문이라면
석가모니 부처가
왜 당시에
다른 법문을
가르쳤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음법문을 배우길
싫어했으니까요
나도 관음법문을
가르치지만
모두가 배우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도
부처를 믿고
경전을 외우고
신실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방금
나는 고통을 최소화
하는 법을 가르쳤지요
그것도 법문입니다
하지만 관음법문과는
상관없어요
많은 법문을 가르쳐도
관음법문만이
부처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건
해탈법문이지
복을 얻는 법문은
아닙니다
내가 어제와 오늘
가르쳐준 건
복을 얻는
방법들입니다
업장(응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고 삶을
더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수행자를 믿는다면
우리도 해탈할 수 있죠
죽는 순간에
그 수행자가 와서
우릴 데려갈겁니다
하지만 해탈하는 것과
부처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해탈할 뿐만 아니라
지혜도 갖는 다는
의미지요
해탈하는 것은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러분을 올려줄
지혜로운 수행자에게
의지하니까요
법명의 용도는
무엇인가요?
법명을 주는 거요?
부처에 귀의할때
받게되는 법명을
말하는건가요?(네)
인도의 전통입니다
카톨릭에도 비슷한
성인의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신부님이 성인의
이름을 줍니다
당신이 왕여사라고
한다면
신부님이 마리아
같은 이름을 주죠
혹은 테레사요
과거 성인들의
이름이지요
이에 대한 또 다른
용도도 있는데 그건
매일 성인들의
이름과 복과
축복의 힘을
일깨우는 거지요
그것들로 인해
우리도 조금이나마
바뀌길 바라면서요
혹은 그들과 같아져서
아주 순수하고
아주 위대해지길
희망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불교에도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원래는 당신이
리우씨 였는데
스승에게 귀의하고는
깨달음의 미덕이나
깨달음의 길과 같은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될겁니다
그는 이 이름을
기억하면서
언젠가 깨닫게 되길
바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런 식입니다
일종의 축복이지요
좋은 소망의 일종이죠
이뤄지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얘기에요
우린 수행으로 모든
욕망을 초월해야 하죠
왜 서방정토 같은
황홀한 세상이
아직 있을까요
황홀하다는 게
감정이나 욕망을
뜻한다고 보세요?
아닙니다
이 행복은 이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다른 겁니다
이곳에서의 행복은
음식을 먹을 땝니다
또 우린 도박할때
행복하지요
우린 술 마실 때
행복해요, 싸울 때
행복하고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때리면 행복하고
그들이 우릴 못때리면
또한 행복하죠
그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서방극락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입니다
이곳의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들은 전혀 서로
비교할 수 없어요!
우리가 없애고자
하는 욕망은
물질세계의 욕망이죠
그건 서방극락세계엔
존재치 않아요
그것을 이 세상의 것과
서로 비교할 수 없죠
너무 다릅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일때
플라스틱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죠?
대단하다고 느껴요
진흙으로
비스켓을 만들고,
나뭇잎이 돈인 것처럼
갖고 놀죠
또 장사가 아주 잘되면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렇게 많은 돈을
그날 만들어요
하지만 우리가 자라면
진짜 돈을 법니다
우리가 자란 뒤에
우리가 사는 세상과
경영하는 사업은
아이들의 장사와
비교할 수 없죠
사람들은 종종
이 세속에서
실수를 하죠
그런데 참회로 죄를
없앨 수 있을까요?
참회는 도움이 되죠
그런데 한없는 공덕을
가진 대수행자에게
참회하게 되면
그가 우리의 업장을
가져갈수 있지요
누군가에게
참회하지 않는다면
업장(응보)를 없애기는 어려워요
예를 들면요
만약 우리가 죄인이고
매일 불평만 한다면요
『오,난 정말
나가고 싶어
난 이 감옥이 싫어
난 죄가 없어
설사 죄가 있어도
이제 후회하고 있어
난 참회하고
자신을 바꾸고 싶어
나에게 기회를 줘!』
그건 좋습니다!
그런데 누가 듣죠?
우리는 변호사에게
말해야만 해요
또는 감옥에 있는
높은 관리에게
말해야 하지요
그에게 말하고 나서
변해야 합니다
진정 참회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좋게 변해야만 하죠
그때 참회가 유용해요
우리가 감옥에 있을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소용 있나요?
우리가 채식을
먹을 때
물을 끓여
채소를 요리해도
수많은 박테리아를
죽입니다 그건
살생이 아닌가요?
그것들이 죽는걸
피하기 위해 어떻게
그것들을 살피죠?
예, 그것도 살생이죠
그러니 난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권합니다
심지어 채식음식도
먹지 마세요 그럼 어떤
존재도 죽이지 않죠
간단해요!
또 숨도 쉬지 말아요
왜냐하면 매시간
숨을 쉴 때마다
또 살생을 하니까요
말을 하자면
더 이상 물을 끓이지
말아야 해요
이건 너무 극단적이고
광적이에요
우리는 이와 같이
수행해선 안돼요
원칙은 우리 마음에서
살생의 생각을
없애야만 한다는 거죠
때로,우리가 피할 수
없으면 피할 수 없죠
우리가 피하도록
애써야만 하는 것은
살생의 욕망이에요
살생의 생각이죠
그게 죽으니까 이걸
안 하는게 아니죠
또 저것을 죽으니까
저걸 안하는게 아니죠
안 그러면,
심지어 걷지도 못해요
걸으면 수많은
중생들을 죽입니다
바닥을 청소하고
손을 씻어도
중생들을 죽이죠
안 그러면, 우리가 왜
우리 손을 씻겠어요?
위생을 위해서죠
세균을 죽이려고요
수행하는 건 좋고
계율을 지키는건 좋죠
극단적이진 마세요
지난 밤에 전 스승님의
강연을 들으러 왔었죠
그런데 여러 번
전 무대전체가,
식물들을 포함해서
황금빛이 나는걸 봤죠
무상사는 부처님과
같았으며 또한
황금빛을 발산했어요
이건 뭘
의미하나요?
내게 빛이 있단거죠
만약 수행자가 빛이
없다면 다른 뭐가
있어야 하나요?
어둠인가요?
수행자는 빛이 있어요
그래서 부처,
보살, 성인들,
예수그리스도,
마리아 그림에 모두
빛이 있는 이유죠
나도 수행자에요
나도 그들과 같지요
나도 빛이 있어요
당신이 그걸 볼수
있는 건 훌륭합니다
대부분은 볼수없죠
평범한 사람 눈엔
그게 안 보에요
당신은 그걸 보았죠
축하합니다!
등급이 나쁘진 않네요
오직 높은 등급의
사람만 볼 수 있죠
삼매란 영혼이
몸을 떠나는 걸
의미하나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죠
삼매란 우리가 잠시
이 육체 몸을
떠나는 걸 의미하죠
떠남 없는 떠남이죠
우리가 남겨 놓는 건
환상의 세계에요
우린 이 몸을 못 느끼죠
이 세상과
이 사람들의 존재를요
그때 우리는 매우
행복한 마음 상태로
살수 있어요
그런데 우린 돌아왔죠
만약 우리가
좋은법문을 수행하면,
우린 돌아올 겁니다
어떤 사람은 삼매에
들어서 못 돌아와요
그런 일이 벌어지죠
인도엔 이와 같은
법문들이 많이 있죠
우린 삼매에 들수있죠
그리고 또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관음법문
수행자를 좋아하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 옵니다
언제라도 그걸 하기가
무척 쉽죠 마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또 돌아와서
문을 닫는 거와 같죠
매우 간단해요
어떤 법문은 사람들이
결코 못 돌아와요
예를 들면,
호흡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또 어떤 종류의 요가는
삼매에 들어가는데,
그들이 삼매에
들어가면 죽은
사람처럼 보이죠
당신은
3개월동안
땅에 묻어도 돼요
아무 문제 없죠
그리고 다시 그를
파내서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마사지하여
그를 깨어나게 합니다
아무도 마사지해서
그를 깨우지 않으면
결코 돌아오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선,
그의 몸은 아마도
결코 썩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소위 말하는
은줄이 있는데,
그의 의식이 여전히
몸에 연결돼 있지요
이건 어떻게 이 전선이
마이크와
콘센트에 연결돼
있느냐와 같죠
전선이 끊기지 않으면
마이크도 여전히
작동합니다
때론 우린 그걸 끊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여기 스위치를 내리면
내 목소리를 못 듣죠
비록 내가 말해도,
마이크는 내 목소릴
내 보내지 못해요
비슷하게, 이런류의
삼매는 방금 말한
후자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는 못 돌아 옵니다
아무도 못 깨우면
그는 못 돌아오죠
그땐 그의 몸이
썩지 않고
수백 년이나
수천 년 동안
그곳에 누워있을
가능성이 많죠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스승님, 방금 말씀에
신실함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되며 강한
의지를 가져야 된다고
하셨는데 신실함과
욕망의 다른점은
뭔가요?
그건 거의 욕망과
같아요
하지만 욕망에도
종류가 많죠
어떤 욕망들은
매우 나쁘지만,
어떤 건 매우 좋아요
우리는 욕망이
나쁘다곤 하지 못해요
좋지 않은 건
나쁜 욕망들이죠
우리는 부처와
보살들에게 기도해서
도와 달라고 해야 해요
그것엔 잘못된 점이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부처에게 기도하고
보살의 도움을
기도하는 것은
나쁜 욕망이 아니죠
만약 사람을 죽이고
해하거나 훔치고싶으면
그건 나쁜 욕망이죠
관음법문의
관음의 이름은
관음보살을 뜻하나요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나요?
아뇨 이건 관음보살을
뜻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난 다음엔
관음 보살과
같은 등급을
얻을 수 있죠
같아질 수 있지요
그녀와 같은 힘을
갖게 돼요
우린 누가 기도하는 어디든 나타날수 있죠
관음보살은
수십억년 전에
관음법문을
수행했어요
그렇게하여 그녀의
등급을 얻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관음보살이라
부르는 겁니다
불경에선
수많은 불국토를
묘사해 놓았어요
스승님, 이 우주의
어디에 그들이 있죠?
오! 여기에 있어요
그들 모두 여기있죠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창조됐어요
모든 등급도
우리 안에 있죠
예수는 우리 안에
천국이 있다고 했어요
부처는 정토는 순수한
마음에 있다고 말했죠
난 불교도 입니다
제 가족들은 종종
집에서 부처님을
숭배했죠 입문하고 난
다음에 불상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들을 가지고 있으며
숭배할 수도 있고,
남에게 줘도 됩니다
우리는 숭배없이
숭배를 하죠
이게 진정한
숭배입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당신이 아직
입문을 안했다면
그렇게 깨달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불상에
집착하는 거죠
숭배해도 되지만
그리 좋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깨달은 뒤에는
이 부처를 숭배할때
불상이 아닌
과거의 위대한 스승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겁니다
그것이 더 낫습니다
우린 돌도 숭배할수
있습니다
불상을 숭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이해를 하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내가 불상을
볼 때
참배할 수 있어요
내가 불상에 절을 해
본적은 없다는 게
아니고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습니다
불상에 절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부처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거죠
그러면 참배할 때도
훨씬 더 낫고
결과도 더 좋습니다
불교도들은 아귀에게
음식을 주는데
소용이 있습니까?
명산에
저녁 예불을 할 때
명산 음식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까?
(네)
별 쓸모 없어요
우리에겐 그것을
무한한 음식으로
바꿀 힘이 없어요
경을 외울때 외우기만
하면 소용이 없어요
내면에 힘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사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해탈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관음법문입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의 입문과
밀교의 개시는
무엇이
다릅니까?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개시 중에는 약간의
축복만 줍니다
그들은 부처를
떠올리라고 가르치지만
입문은 부처를 스스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입문 후에
두 시간 반씩, 많이
명상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좋아요
그럼 자야겠군요
돈은 벌고 싶지만
직장에 가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돈을 벌겠어요?
최선을 다하십시오
얼마나 오래 명상을
할 수 있든, 하십시오
그리고 점점 더
늘려가세요
가게를 더 오래
열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고객이
올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요
하지만 게을러서
가게를 반 나절만
연다면 물론 돈을
반 밖에 벌지
못할겁니다
정말 그래요 내가
엄격한게 아닙니다
난 더 빨리 부처가
되고 이 놀라운 힘을
더 빨리 얻도록
도울수있는 방법을
말해 줬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원치
않는다면 천천히
수행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채식을
지키고
신실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일분씩만 늘려 가세요
오늘 10분
명상했다면
내일은 11분 하고
모레는 12분 하고,
13, 14
15, 16분씩…
그러면 나중에
2시간씩 할수있어요
금방 됩니다
몇 년 전에 척추를
다쳐서 명상하려고
앉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누워서
명상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나요?
있습니다
잠들지만 않는다면요
왜 그럴까요?
왜 앉아야 하지요?
앉아있는 동안은
잠이 들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때로는
앉아 있어도
잠이 드는데 눕는건
말할 것도 없지요
저는 밀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밀교에서는 육식을
허용합니다
제가 입문을 원한다면
육식을 허락해주실수
있습니까?
아뇨
부처는 육식을 안했죠
어떤 사람은 입문 후
부처와 보살을 이내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왜 그렇죠? 그가
부처와 인연이 없기
때문인가요?
그건 그 자신의
업장(응보) 때문입니다
부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명상할때 아주
행복하게 느끼고
명상하고 나서
영혼이 환희에 차고
건강해진다면
그것 역시
좋은 체험이며
좋은 결과입니다
매일 명상하고 나서
자비심이 점점더
많아지고 가족들을
더 잘 대하게 되며
남들에 대한
이해심도
더 많아지며
사회에 더욱
도움이 되고
보다 행복해지며
느긋해진다면
그것도 참 좋지요
부처를 볼
필요가 없어요
그를 보는건 좋지만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그런곳에
집착하지 마세요
부처를 보는건
별거 아닙니다
성불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부처가 되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랑하는 스승님
스승님이 가르치는
관음법문 명상은
내면의 빛과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서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겁니까?
맞습니다
명상할때 발이
마비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버려두세요
참으려고 해보세요
얼마 있으면
더이상 저리지
않을 겁니다
움직이지 않도록하고
움직이지 못해서
죽을것 같으면
움직이세요
그렇지 않고
참을만하면 참으세요
얼마 지나면 육신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인연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왜 운명의
지배를 받습니까?
(인연이요)
인연은 업장(응보) 입니다
전생에 우리가
어떤 관계와
어떤 인연을
만들어서
이제 그 결과를
받으러
돌아온 겁니다
장미를 심을 때와
비슷합니다
때가 되면
꽃이 피어
장미가 됩니다
장미가 변해서
다른 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과입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보살이 부처인가요?
보살은 부처가
아닙니다
보살은 부처보다
한 단계 낮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부처가 보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끔 부처가
한 등급 낮게
내려와서
보살이 되면
중생들과 보다
가까워질수 있지요
예컨대
석가모니 부처가
살아있을 때
관음보살과
문수사리보살이
그를 도와줬어요
부처의 제자이면서
그를 도왔어요
문수사리보살은
원래 석가모니
부처의
스승이었어요
전생에
아주 오래 전에
문수보살은
소위 석가모니
부처의
스승이었어요
하지만 그 시절
그 당시에는
이세상에 내려오는
임무를 석가모니
부처가 맡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처가
내려와서 음양으로
도왔던 겁니다
다시 말해 문수보살이
자기 등급을 낮추고
보살이 되어 부처의
제자가 된겁니다
그는 보살로써
일했습니다
보살의 일은
예컨대 나가서
강연 홍보를 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사람들을 강연에
초대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런거죠
부처의 일은
강연을 하고
입문을 주는겁니다
이해됩니까? 사실
문수사리보살과
관음보살은
이미 오래 전에
성불했어요
그들은 과거의
부처들이죠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는 그 당시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도우러 내려온
겁니다
예를 들어
지미 카터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입니다
맞지요?
그 당시 레이건은
카터의 주지사였으며
카터의 고위 관리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제 지미카터가
퇴임하자
레이건이 올라왔지요
그럼 지미카터도
레이건을 도와줘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들 모두 동시에
왕이 될순 없어요
너무 복잡합니다
왜 이세상에
살 때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여러분 스스로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정말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그냥 이세상을
보세요 그러면
알겁니다
중국 본토에서
스승님을
뵐 수 있나요?
그는 중국본토에서
깨달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가능한지 묻습니다
가능하다고 했어요 아마 그럴거라 했죠 난 거기 없었어요
그가 내게
관음법문과
반야바라밀의
주된 차이가
뭔지 물었어요
난 관음법문이
바라밀을 찾는
길이라고 했어요
반야바라밀은
위대한 완전한
지혜를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이 완벽함을
소개하면서
청중들에게 이것이
제일 좋고 가장 크며
가장 높고 더없이
행복한 마음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어떻게 얻는지 물었죠
그는 관음법문이라고
했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직업 목표와
영적 성장의 지연없이
이 삶의 목적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아울러 가질수
있을까요?
아주 쉽지요
여유있게
일을 하는겁니다
사업을 할때가 되면
사업을 돌보고
수행을 할때가
되면 수행을
하는 겁니다
마치 점심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아침 시간에는
아침을 먹듯이
한번에 하나씩
하면 하루에
많은 일을 합니다
양치질을 하면서
동시에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적인
일을 하던 와중에도
신도 생각할수있고
언젠가 신과 하나되는
것도 얻을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업과 영적 성장,
영적 수행을 동시에
할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적 성장을
늦추지 않을겁니다
당신이 전문적인
사업가라면
이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뭔가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사 당신이 연금
수령자를 찾아봐도
그들은 이미 아무것도
할게 없지만
늘 바쁩니다
그들에게 『올수
있나요?』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뇨 오늘 바빠요』
모두 연금수령자들인데
역시 바쁘며 아이들도
학교 가느라
바쁩니다
나도 강연하고
제자들을 돌보며
사람들의 소원을
듣느라 매일
바쁩니다
모두가 바빠요
그래서 우리의 바쁜
일을 돌보는 중에
우리의 잠재의식이
마음이 아닌 영적
성장을 돕기 때문에
걱정없습니다
그는 내게
사업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지 물었어요
만일 사업을 한다면
영적 성장을
지연시킬까요?
난 아니라고 했어요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일을 해야
하니까요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할 일이 없는
나이든 사람들도
여전히 바쁩니다
아이들도 공부하느라
바빠요
심지어 나도
강연하고 제자들을
돌보며 세상의
필요를 돌보느라
매일 바쁩니다
할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 바쁩니다
하지만
바쁠때는
마음은 사업을
돌보고
잠재 의식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돌볼 겁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두번째 질문입니다
단 한생애 동안
업장(응보)를 다 씻고
윤회를 피하는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참 스승을 만나면
그 참 스승이
도와줄 겁니다
그는 당신의 업장을
없애는 법을 알고
있으며 당신의 업(응보)를 태워서
당신이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게됩니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입문때 당신의 업장을 자주 늦는다고
태워버리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가 내게
세세생생 축적된
업장(응보)를 지우는 업장(응보)를 지우는
방법이 있어서
또다른 윤회를
피할수 있는지
물었어요
스승은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만일 전문가, 즉
깨달은 스승을
찾는다면요
스승은 어떻게
업장(응보)를 지우는지 아니까요
입문식때
당신의 업장이 태워 없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난 그가
스승을 따르고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세세생생 축적된
업장을 처리하는 걸
약속한다고 말했어요
그게 내 약속이죠
관음법문과
대승 불경에
자세히 나와 있는
전통적인 바라밀의
주된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관음법문이
바라밀을 찾는
길입니다
바라밀은 가장
위대하고, 위대한
완전함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완벽함을
찾기위해 관음법문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연결되는거죠
부처가 바라밀을
얘기할 때는
완벽함을 소개한것
뿐입니다
그래서 청중들이
와서 관음법문을
수행하도록
만든겁니다
알겠어요?
내가 지금 하듯이
여러분에게
지혜가 가장 위대하고
그 지혜가 완벽함을
찾을수 있게 해준다는
등 계속 말하는거죠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관음법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