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르쳐 부처가 되라 - 1부 1989년 4월 21일, 포모사 (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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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사원을 짓는 걸까요? 인간은 종종 안전함을 느낄 의지할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으며 높은 구두를 싣고 주위를 걸어 다니는 소리도 없고 화장을 해서 우리의 욕망을 휘저어 놓지도 않는 우리 자신이 들어가 조용히 기도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곳에 가서 기도하면 더 집중이 잘 된다고 느껴집니다 집중하면 더 효과가 있지요 그것은 우리가 힘을 가지길 원한다면 어디 있든 상관없이 집중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사원이나 도장이 특별히 기도를 하기 위해 있으니 사람들은 거기 가서 기도할 것을 아니까 그곳에 갈 때 평화롭다고 느끼죠 모두가 일상적으로 그곳에 간다면 그 분위기는 매우 강력해지고 성스러워질 겁니다 그래서 인도 요가에 이런 전통이 있지요 예를 들어,그들은 한 집이나 한 장소를 찾아 매일 명상하러 갑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불경한 사람들은 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과 같은 이상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나 영적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인도의 전통이 되었지요 힌두교에는 많은 사회 계급인 많은 카스트가 있어요 첫 번째 카스트는 브라만 입니다 어떤 브라만은 요즘도 매우 보수적입니다 그들은 브라만이 아닌 사람들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아요 그들은 타인이 자기 집의 부엌에 가게 하지 않아요 그들은 브라만이 최고 계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식하는 사람들은 들어오는 건 고사하고 앞문 가까이 올 수도 없어요 이 관습은 영적인 기운을 보호하는 전통에서 유래해요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것을 가르친 걸 우리는 잊었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법, 화신을 갖는 법, 사람들을 구하는 힘을 갖는 법, 무소부재해지는 법, 안팎으로 빛을 갖는 법을 가르쳤어요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이에요 성경은 그가 전한 어떤 가르침의 기록입니다

그것은 이론이거나 사람들에게 도덕적 행동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외적이거나 형식적인 가르침이지요 마찬가지로 나는 강연을 하러 갈 때 외적으로만 가르쳐요 외적인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외적인 이론이고 사람들에게 도덕적이 되게 가르치고 그 이론을 설명해서 왜 그들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하는지 왜 자신의 불성을 찾기 위해 내면을 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가르침입니다

내면의 가르침은 언어를 쓰지 않아요 내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지 않으면 내적인 가르침을 얻을 수 없어요 외적인 가르침은 모두 가질 수 있어요 강연에 오는 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지만 내적인 가르침은 모두가 얻을 순 없죠 내적인 가르침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중한 언행이나 돈으로 사람들을 속이거나 매수해서 그걸 얻을 수 없어요 그걸 돈이나 애정으로 바꿀 수 없어요 반대로 준비가 되고 순수한 마음과 열린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적인 가르침은 가르치기 힘들고 얻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약간의 이론을 설명하려고 외적인 가르침을 쓰면 사람들이 논리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럴 때만 내적인 가르침을 말할 수 있죠 외적인 가르침은 우리 마음을 열도록 도와 내적인 가르침이 전해질 수 있게 하죠 내적인 가르침은 불교용어로 하면 법맥입니다

입문,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힘, 불립문자입니다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을 뜻해요 이제 우리는 이미 모든 힘이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아요 우리가 우리 힘을 나무불상을 축복하는 데 쓰면 그 불상은 힘이 있게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자신을 축복하고 우리자신을 더욱더 힘이 있게 만들고 더욱 더 고귀하고 더욱 더 존경할 만하고 더욱 더 믿을 만하고 더욱 더 타인을 구할 수 있게 하지 않나요? 이게 더 논리적이죠?(예)

우린 이미 조각되어 있으니까요 부처도 얼굴 한가운데 코가 있고 두 눈과 두 귀와 입이 하나 있었다고 말했지요 석가모니 부처의 머리는 곱슬 이지요 맞지요? 그럼 오늘날은 쉬워요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할 수 있어요 그런 뒤 틀어서 올리면 돼요 그러면 우리는 부처처럼 보일 거에요 부처가 우리보다 부처는 인도인이고 우린 중국인이이라 부처의 눈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면 오늘날은 문제 없어요 성형외과에 가서 눈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요! 우리 코가 석가모니 부처보다 납작하면 더 높게 만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면 우리는 나무불상보다 석가모니 부처를 닮을 겁니다 석가모니부처처럼 말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석가모니부처가 49년 동안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덕을 가르칠 수 있어요 석가모니 부처처럼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할 수 있어요 내면의 비전과 내면의 빛도 볼 수 있어요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가 살아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구하려고 천국과 지옥을 갈 수도 있어요 우리가 나무불상보다 더 석가모니부처를 닮지 않을까요? (예)

그러므로 내 법문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자신을 부처로 만드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또한 불상에 부처의 빛을 주려고 점안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빛을 발하고 우리 자신의 점안을 하니까요 우리는 제 3의 눈 불안을 엽니다 우리의 내면의 빛이 빛나면 우리도 빛을 발산할 겁니다 여러분은 종종 내가 빛나는 걸 본다고 해요 난 빛을 발하는 법문을 수행하니까요 나는 지혜안을 열고 빛을 발하는 법문을 수행합니다

내가 천리안이 있고 여러분이 어디 살든지 내가 보고 여러분이 문제가 생기면 안다고 여러분은 말해요 그것도 내가 지혜안을 여는 법문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간단해요 여러분이 나와 같은 법문을 수행하면 같은 능력을 갖게 될 겁니다 나와 다르지 않을 거에요 영어선생은 타인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그를 자신과 같은 영어선생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렇죠? (예) 소위 전통도 좋아요 나쁘지 않아요 단지 우리는 이런 전통의 원래 목적을 잊고 맹목적으로 계속 그 의식을 따르지요

우리는 본질을 잊었죠 그게 문제에요 오늘 기자가 또 와서 물었어요 『스승님 스승님의 법문과 전통적인 불교 수행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나는 대답했어요 『차이는 없어요』 우리는 진정한 전통불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가르쳤어요 그 자신도 계속 채식하며 영적으로 수행했어요 우리도 채식해요

부처는 사람들에게 불성을 찾으려면 내면을 보라고 했어요 우리도 똑같이 합니다 그는 성불하기 위해 명상했어요 우리도 명상하지요 부처는 별을 보고 깨달았어요 우리 제자들도 별과 달을 보고 깨달았어요 그게 불교전통이 아닌가요? 석가모니부처는 빛을 발했어요 우리,스승과 제자들도 빛이 납니다 그게 불교전통이 아닌가요? 석가모니부처는 정토와 천국에 갈 수 있었어요 그는 사람들을 구하러 지옥에 갈 수 있었죠

우리,스승과 제자도 그럴 수 있어요 그게 불교전통이 아닌가요? 그걸 일일이 다 거명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어요 좋아요! 전통은 아주 유용합니다 예를 들면 점안을 해서 불상에 힘을 주는 전통에 대한 진정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전통이 적절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해요 아무도 목불을 축복하지 않으면 생기 있고 활발하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나무조각에 의해 사람들이 설득되진 않을 겁니다

스승이 그 불상을 축복하고 경전을 몇 권 외운 후 점안을 하고 난 후에 우린 거기에 절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믿지 부처를 믿는 것은 아닌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나요? 생각해보세요(예) 좋아요 우리가 벌써 사람들이 그렇게 강력한 것을 믿으면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아주 논리적이지요 우린 불상에 힘을 주는데 사용된 힘을 모을 수 있고 매일 우리 자신의 빛을 밝히도록 계발할 수 있고 매일 우리 지혜안을 열 수 있다면 부처가 될 겁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모든 힘은 우리 인간에게 속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는 부처가 마음속에 있다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왕국은 우리 내면에 있다고 말한 겁니다 그런 뜻입니다 노자는 도는 말할 수 없다고 했죠 말로 할 수 있다면 노자는 도에 대해 썼을 겁니다 우리가 숭배의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말로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에게 말했을 거고 기록했을 겁니다

하지만 도덕경은 기록하지 않았어요 도를 얻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것은 선생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법맥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 도를 찾으려면 다른 선생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영어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많은 숙제를 내줍니다 맞지요? 학생이 매일 주어진 많은 숙제를 하여 공부를 한 후에 그들은 영어선생이 될 겁니다 하지만 숙제는 선생이 아닙니다,맞죠? 설사 스스로 배운다해도 영어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영어 수업은 기록될 수도 있고 혼자 배울 수 있지만 너무 어렵지요 묘사할 수 없는 도를 배우는 건 고사하고요 그건 왜냐하면 이 형언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므로,이건 이 세상의 언어로 가르 칠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죠 내가 얼마나 많이 말을 해도 완전히 묘사할 수 없는 게 아주 많습니다 난 묘사할 수 없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왜 우리는 관음법문이 매우 논리적이란 걸 알까요? 왜냐하면 내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한 장소에 함께 모여서 어떤 성령을 숭배할 때 그 장소는 강력해지며 그 목불도 더더욱 힘을 갖게 됩니다 때론 나무 불상이 너무 강력해서 인간으로 전환돼서 밖으로 나와 사람에게 말하기도 하죠

인도에 라마크리슈나라는 유명한 깨달은 스승이 있습니다 그는 약 몇 십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동시대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관음보살과 같은 여신을 숭배했죠 그 여신은 인도인의 관음보살과 같습니다 그는 그 여신을 너무나 숭배해서 그녀가 현실이 되어 나와서 그와 대화했죠 왜냐하면 그의 힘이 그 여신을 아주 강력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나중에 그 여신은 강력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걸 이해했습니다

그가 내면에 있는 모든 힘을 그 여신에게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더 힘이 약해진 반면 그 여신은 점점더 강력해진 겁니다 나중에 그는 영적으로 진보하길 원했습니다 그 여신은 그를 방해했죠 그게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때론 우리에게 안 좋아요 만약 그 숭배의 힘으로 우리 내면의 부처를 숭배하도록 방향을 바꾼다고 상상해봐요 어느날 우리는 부처가 될 겁니다 어느날 우리는 강력하게 될 거예요

이건 여러분을 가장 높은 힘인 부처로 만들 수 있는 수행입니다 안 그러면,이중성의 법문이 될 거에요 내 법문은 『무이』법문입니다 우린 스스로를 강력하게 만듭니다 어제 내가 설명했듯이 모든 힘은 우리에게 속합니다 비록 심장박동이 스스로 통제되지만요 하지만 우리는 세세생생동안 아무 오랫동안 해와서 그걸 통제하는 게 우리란 걸 잊었어요 이건 당신이 너무 오랫동안 안경을 쓰게 되면 안경을 썼다는걸 못 느끼는 거와 같죠 당신이 안경을 쓴걸 느끼지 못합니다 유사하게,일단 너무 오랫동안 뭔가를 하게 되면 그것에 익숙해져 그런 능력이 있다는걸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막 운전을 배우기 시작할 때, 무척 어렵습니다 비록 모든 노력과 주의를 기울려도 바르게 할 수가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걸 안다음엔 운전하는 걸 잊지요 운전하는 동안 남들과 농담도 합니다 『어떻게 지냈어요?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죠? 아내와 다퉜나요?』 그렇지 않습니까? 혹은,타이핑이나 다른 것을 배울 때도 마찬가집니다 타이핑을 배우기 시작하면 너무 어렵죠 여기 저기 잘 못 글짜를 치죠 글짜 하나를 치고는 한 번 쳐다봅니다 『아냐,맞지 않아』 나중에 너무 빨리 타이핑해서 동시에 읽고 타이핑합니다 심지언 우리가 타이핑 하고 있단 걸 모르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떤 행동도, 우리의 어떤 효험도 몸과 우주의 어떤 순환도 우리 자신이 만든거죠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와서 그걸 잊어버렸어요 만약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진실로 기억하길 원한다면 다시 생각해야만 해요 다시 우리의 위대한 힘을 개발해야하죠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그게 전부에요 신비할 게 없죠 우리를 축복하는 부처란 없고 벌을 주거나 상을 주는 신도 없죠 우리는 그냥 자신의 위대한 능력을 잊었죠 이제,왜 모든 이가 부처이며 모든 이가 신인지 알겠습니까? (네)

우리 제자들은 관음법문 수행이 때로 매우 재미있다는 것을 압니다 가장 높은 등급을 얻기 전에 재미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동료 입문자 중 한 명이 말하길 그가 한동안 자명종에 집중하면 자명종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이에요 그는 손을 쓰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그걸 움직일 수 있어요 어떻게 이런 묘기를 하는 지 묻지 마세요 그저 내 제자 얘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또 그는 한 장소의 물건을 바라보면 다른 장소로 옮길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걸 말해줄까요? 우리의 힘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에요 물건을 옮길 수 있죠 그래서 산을 옮기고 바다의 물을 마르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요 우리의 힘은 정말 불가사의하며 무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거기 멈춰서 잔재주를 부리면 분명 우리 시간과 집중력을 낭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집중력은 전 세계를 축복하고 우리 본연의 고귀한 지위를 회복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런 묘기를 부리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수행하게 되면 난 여러분이 신통이나 그런 아이들 장난을 금지 시킬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이 진정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해줄 수 있어요 우린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요 치유력도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잘해내면 그 모든 힘은 진보하게 될 겁니다 온갖 신통력도 발전할 것이며 모든 능력이 발전하게 될 거예요 우린 언어에도 재능을 갖게 될 겁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있죠 우리가 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이나 신에게 이것 저것 달라고 기도만 할 뿐이지요 이것도 옳지 않아요 우린 아직도 우릴 점점 더 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외부의 힘에 의존하고 있어요 우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계발하여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루 종일 다른 것을 구걸하죠 누구에게 구걸하든 상관없이 우린 아직 거지들이며 왕이 아닙니다 우리가 왕이었는데 어떻게 거지가 될 수 있죠? 우리의 힘이 이렇게 엄청난데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무기력하고 연약하며 고통 받는 인간이 될 수가 있을까요? 따라서 여러분이 그런 삶을 계속 살고 싶다면 환영합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뭔가에 집착하고 여러분도 그들과 같이 집착하게 되면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여러분 입맛에 맞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며 내면의 힘을 찾기 위해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학 교수가 가르치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명 혹은 두 명의 초등학생이 우연히 혹은 호기심에서 대학에 오거나 어른이 데려온 경우엔 물론 초등학생들은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들은 말할 거에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제 선생님 말씀과 다르군요 우리 초등학교의 전통은 이렇지 않아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대학 교수를 비방해선 안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초등학생이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 같은 초등학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엔 많은 등급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 다른 시각 다른 능력과 다른 힘을 지니고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힘이 없다고 해서 아무도 그 힘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네)

우리가 치료하거나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의사도 그것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지요 그건 의사의 전문이죠 우리가 영어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영어 교사도 영어를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그것에 능통해 있습니다 그가 언제 배웠든 우리와 상관없지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영어를 안다는 걸 보여주지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탈을 주지 못하고 즉각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다면 그들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우리가 할 수 없다면 못한다는 걸 입밖에 내선 안됩니다 체면을 잃을테니까요 나는 준비가 된 사람들과 고향에 가길 원하고 부처가 되길 원하며 그들 자신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죠

오늘 그 기자가 내게 또 물었어요 『경전을 읽거나 불상을 숭배하는 전통적인 불교 수행은 소용이 없으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는『아니요 바꿔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꺼이 바꾸겠다면 환영합니다 그렇지 않다해도 좋아요 온세상을 바꾸려고 내 머리를 고문하거나 힘들게 일해 혁명을 일으키진 않을겁니다 아니요 사람 마다 필요로 하는게 다른걸 아니까요

나는 나가서 강연을 하고 사람들에게 관음 법문을 가르쳐 즉각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뭔가를 바꾸는게 아니라요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말합니다 그들에게 오라고 해서 『그것을 원한다면 줄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 뿐이에요 어떤 것도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오직 친구에게만 말합니다 오랫 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이요 그들은 내가 말을 하는 즉시 알아 듣습니다

포모사(대만)에는 깨달은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사실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저 내 것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그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알아듣는 사람들에게만 말하는 겁니다 오늘 여기 우연히 온 사람들이 있고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과 관계가 없으니 그러니 내가 뭔가 바꾸려할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세상에 있는 모든 걸 바꿀 수 있겠어요?

불상 숭배는 천년 묵은 관습입니다 좋아요 계속해서 불상을 숭배해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일부는 더 높은 경지의 가르침을 듣고 싶으니 내가 상대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죠 물론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남들이 하는 말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상과 생각과 견해와 이해 수준이 다르니까요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요? 이 세상의 모든 게 똑 같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서방 극락에 갈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우리 모두 입이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은 뭐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좋은 것만 나옵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선택하니까요 나는 내 신구의를 가장 높은 경지의 것을 하는 일에 쓰도록 택하고 모든 중생들을 섬기는 일에 내 몸을 씁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내 말을 사용하며 모든 중생과 부처를 섬기는 일에 내 마음을 사용하고 내 모든 몸과 말과 마음을 사람들과 부처에게 바칩니다

나는 내 신구의를 절대로 사람들을 해치는데 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들의 신구의를 그른 일이나 남을 중상하거나 폭력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그들의 권리입니다 그들의 몸과 말과 생각이므로 나와는 무관합니다 이것이 나의 사고 방식입니다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을 섬기는 고귀한 길입니다 이는 높은 경지의 길로 남들을 기분 좋게하고 남들을 도와주며 국가와 사회, 동포들과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합니다 다른 길은 뭔가 다른 걸 합니다 모두들 원하는 길이 뭐든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관음 법문을 수행하는 우리들은 봉사하는 길을 택합니다 남들이 다른 것을 선택하는 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들을 비난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몸과 말과 마음은 그들의 소유이므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론 좋은 것을 위해 쓰죠 그것이 우리에게 더 좋으며 사회에 더 좋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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