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십자회의 비경: 영원한 부모 - 3/3부 (독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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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부모는 보이지 않으나 확연히 존재하는 것과 같다 분리되거나 조각으로 나뉠 수도 없다 본래는 조각이나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조각이나 입자로 구성된 것은 조각이나 입자의 집합체에 불과할 것이며 실체나 단일체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무한은 본질인 무한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조각이나 입자로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된 무한은 더 이상 무한이 아니라 단지 유한한 것의 집합체일 것이다 절대적인 불가시성은 진정한 단일성과 무한한 존재로 예측될 수 있으며 이러한 논리적 결론에 예외는 없다

영원한 부모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으며 확연한 것과 같다 영원한 부모는 무한히 변화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본질은 같으며 결코 다른 것이 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속성과 특성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므로 반대되는 양 극으로의 변이를 겪을 수 없다 형상이 없기에 형상의 변화를 통해 발생하는 변화도 겪지 않는다

영원한 부모는 절대적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 이 논리적 결론의 예외는 없다 영원한 부모는 무한하고 확연히 존재한다 영원한 부모는 제한되거나 한정되거나 속박되거나 원인이 있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절대적이고 본질적이며 궁극적이고 기초적이며 어떤 것에도 묶이거나 제한되지 않는다 영원한 부모는 절대적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 이 논리적 결론의 예외는 없다 우리가 시간적 존재나 무존재의 상태를 알고자 할 때 진보적 형이상학자와 철학자들은 『무의식,꿈 없는 잠』에서 휴식하던 영원한 부모를 논리적 필연성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형이상학자와 철학자들이 알듯이 의식은 (그것이 꿈일지라도)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변화 없는 의식 상태는 오직 무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철학도는 무한한 무의식을 『의식에 비해 열등한』것으로 간주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무한한 무의식은 평범한 의식을 『뛰어넘는』 무한한 초의식의 상태- 활동 없이 늘 『의식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초월적인 의식의 상태를 뜻한다 평범한 의식은 이러한 의식 상태의 상승이 아니라 하강을 의미한다

이 차이는 중요한 것으로, 철학도는 이것을 놓쳐선 안된다 우리가 알게 된 바와 같이 창조가 시작되면 마침내 영원한 부모는 무한한 우주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이며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 연쇄적으로 존재한다 영원한 부모가 완전히 꿈에서 깨어나 무한한 자의식의 밝은 대낮으로 들어갈 때만이, 완전한 『깨어남』과 의식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잠언을 묵상하며 나아갈 때,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영원한 부모 외에는 실제든 현현한 것이든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자명한 진리를 본다 다른 실존의 존재는- 무한하며 절대적인 현실과는 다른 그런 실재하는 존재는-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무한함과 절대성의 속성은 그 내면적 속성이 혼자이며 하나이고 유일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현실에는 다른 현실의 존재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현현이 없는 경우에는 무한한 비현현의 시기에 존재하는 현현된 (나타난 혹은 창조된 것들)사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결론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결국 학자들은 우주의 밤인 무한한 비현현의 상태에서의 영원한 부모 문제에 관해 첫 번째 격언의 문장에 있는 내용들의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는 다시 한 번 무한한 공간의 상징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그 상징은 학자로 하여금 『무한한 비현현을 생각하는』상황에는 충분히 적절한 것이다 물론 비록 그것이 대표하는 현실이나 상징을 머리 속에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도 말이다 에드가 앨런 포우는 『무한함』의 관념이나 개념 및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마음이 경주한 비슷한 노력들에 대해 다음 같이 잘 표현했다

『이 간단한 말들과 거의 모든 언어들 속에서 그 동의어가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표현들은 관념 자체의 표현이 아니라 관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불가능한 개념화에 대한 가능한 시도를 대변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노력의 방향- 영원히 보이지 않는 이 시도의 목표가 그 뒤에 있는 구름-을 알릴 수 있는 용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지성이 갖는 특정한 경향으로 다른 인간과 즉시 관계 설정을 하도록 수단이 될 수 있는 그런 적절한 단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이 용어가 파생되어 대표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관념의 관념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이 관념의 관념을 지칭하는 이런 류의 용어들을 내뱉자마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자신이 개념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의 정신적인 비전을 해결되지 않은 성운이 있는 지성의 창공에 있는 어느 특정 지점으로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진정 해결하기 위해 그는 본능적인 통찰력에 의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되는데 그것은 그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들의 목적에 그 해결이 중요치 않은 때문이다 그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두뇌를 초월해 있으며 이유는 잘 몰라도 벗어나 있음을 안다』

장미 십자회의 비경에는 그러므로 영원한 부모의 본질적 정수를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 사실 스피노자의 유명한 격언에서 보인 취지처럼 『무한함을 정의한다는 것은 무한함을 부정하는 것이다』로 귀결된다 개성의 제한적인 특질이나 성격들 및 속성들을 영원한 부모 탓으로 하는 걸 거부함으로써 장미 십자회는 무한한 현실이 개성의 차원보다 열등함을 뜻하려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측정할 수 없이 더 높은 차원에 있어 모든 개성을 무한히 초월하는 것이므로 개성의 수준이나 용어로 말하는 것이 유치하다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제한적인 지능으로도 검정 딱정벌레보다는 지능이 높을 가장 지능 높은 인간을 초월하는 높은 상태의 지능을 상상할 수는 있다고 저명한 사상가들은 생각해 왔다 그렇다면 그런 우월한 정도의 지능 있는 존재를 현현시키는 것은 하찮은 노력에 불과할 그런 엄청난 힘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인간의 개성 차원보다 무한대로 초월적이라 실질적으로 개성의 수준에서 고려한다는 것은 차라리 모욕임을 당연히 알 수 있다

이 첫 번째 격언의 해석에 있어 자주 언급이 됐던 것처럼 무한한 비현현 시기 동안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현실인 영원한 부모라는 존재의 상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말의 범주를 초월한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상징인 무한한 공간으로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상징이기는 해도 그것은 오직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그렇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헤겔이 말하듯 『존재』라는 용어가 유한하고 조건적이며 제한적인 존재를 말할 때는 실질적으로 비존재와 동일한 뜻인 절대적 존재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결국 물질의 특성이나 특질 및 속성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그 상태는 인간이 물질에 붙이는 속성들이나 모든 특질 및 특성들을 부정하는 뜻을 가진 용어들의 사용에 의해서만 추론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물질들에게조차 상상보다는 느낌으로 그들의 정신적 노력의 최대한 범위를 보이는 것이다

에드윈 아놀드는 그의 아름다운 시 『아시아의 빛』에서 무한한 현실의 본질에 있어 『사고의 초월』 이라는 불교적 개념에 대해 아래에 인용하는 말들로 잘 표현해 냈다 『옴 아마타야! 측정할 수 없음을 말로 측정하지 말라 밑이 없는 심연에 줄을 늘어뜨리지도 말라 묻는 이도 잘못이며 답하는 이도 잘못이다 말하지 말라 죽을 자의 눈으로 보는 자가 있는가? 아니면 죽을 마음으로 답을 알 것인가? 겹겹의 막이 들려도 뒤에는 또 겹겹의 막만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장미십자회는 절대적 본질인 무한한 비현현에 대해 절대적인 고요와 절대적인 투명함의 상태에서 쉬고 있는 순수한 공간의 무한한 바다라는 상징으로만 바라보며 죽을 자들의 눈으로 보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깨달은 직감은 아무 것도 아닌 대신 모든 것임을 아무 것도 아닌 대신 절대적이며 무한한 존재이며 죽음 대신 무한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다

죽을 자의 감각으로는 인식할 수 없고 상상하거나 그리는 데 있어 지성과 상상의 최고의 노력으로도 미치지 못하지만 순수 이성에 있어 최고의 견해는 그것이 존재함을 알려 주며 직감적인 믿음에 있어 최고의 견해는 그것의 모든 존재성과 현실을 의심함이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무지한 이들과 반쯤 영리한 이들에게는 이 상징이 아무 것도 아님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깨닫고 진정 현명한 이들에게 그것은 현실의 절대적 총체를 대표하는 걸로 보인다 그러니 너흰 무한한 공간의 이 상징을 외경으로 바라보라 그것이 존재의 무한한 정수의 본질을 표하는 데 미미할지라도 우리의 최고의 노력을 표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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